(25) 라헬이여, 눈물을 멈추어라 | 예레미야 31:15-20 | 2026.07.12 | Youtube
◈라헬이여, 눈물을 멈추어라 렘31:15-20 2026.07.12.
※맨 마지막에, 과테말라 단기선교 소식이 눈길을 끕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예레미야 31장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때로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감정의 배출구 이상의 것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실상은 정교한 신체 방어 시스템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이 바깥으로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예민한 센스티브한 그런 장기입니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눈이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있도록
24시간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그래서 우리의 눈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감당합니다.
눈물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지고, 눈물이 심하면 각막에 상처가 생겨서
시력이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먼지같은 이물질이 들어가면,
눈물이 쏟아져 나와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눈을 세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물은, 각종 독성 물질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따라서 눈물은 우리의 눈의 건강을 지키는, 천연의 안약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쌓여지는 스트레스 감정의 앙금을 씻어내는
창조주 하나님이 고안해 주신 일종의 자동정화 시스템이 눈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 울 수가 있다는 것, 눈물을 흘릴 수가 있다는 것은
사실은 축복입니다. 울지 못한다는 것이 병이죠.
▲이해인 시인은 ‘눈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새로 돋아난 내 사랑의
풀숲에 맺히는 눈물
나를 속일 수 없는
한 다발의 정직한 꽃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처럼
간절한 빛깔로
기쁠 때 슬플 때 피네
사무치도록 아파 와도
유순히 녹아내리는 흰 꽃의 향기
눈물은 그대로 기도가 되네
뼛속으로 흐르는 음악이 되네」
김현승 시인도 똑같은 “눈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남겼습니다.
「눈물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시편기자도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유명한 기도를 기록했습니다. 시56:8
그렇습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의 가슴에 숨겨두신
가장 깨끗한 정화제 선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말로 다하지 못하는 기도를, 눈물로 하늘에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병에 담으시고, 그 한 방울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31장 본문은 유다의 멸망과 포로기라는 절망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위로와 회복,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오늘 본문은 ‘라헬의 눈물’로 시작됩니다.
라헬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슬픔을 대표하는 의인화된 인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라헬이라는 여인은,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어서,
저 베들레헴 인근 길가 라마 라는 곳에 묻혔습니다.
그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슬픔의 어머니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라헬의 이름을 부르면서
(라헬이 일찍 죽으며, 얼마나 남겨진 어린 자녀들을 위해 울었을까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동족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라마는, 예레미야 당시 포로 후송 집결지였죠.
수많은 이스라엘 어머니들이 거기 와서, 포로로 끌려갈 자녀들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자 오늘 본문에 이 눈물을 통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첫째로, 우리의 통곡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자, 본문이 시작되는 15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렘31: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일찍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무려 400년 동안 종살이, 노예 생활을 하며 통곡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2:25a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또 여인 한나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해 괴로워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삼상1:1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그런데 하나님이 그녀(한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의 결과가 바로 아들 사무엘의 출생이었습니다.
우리가 또 더 나아가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난치의 질병에 걸려 죽음을 대면했을 때
그는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그 눈물을 보셨다는 것이에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통곡하는 당신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는 분이십니다.
저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무려 17년 동안 아들이 이단에서부터 주께로 돌아오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은 돌아왔고,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별 같은 성자가 되었습니다.
▲1904년 경, 저 영국 시골 웨일즈에 살던 에반 로버츠라는 청년이 엎드려서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그 기도 제목은 ‘주님 저를 꺾어주세요. 저를 항복시켜주세요. Bend me, O Lord'
라는 기도를 했어요. 그 기도의 결과 웨일즈의 영적인 각성을 일으키는
유명한 웨일즈 리바이벌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여파로서 한국까지 영향을 끼쳐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그 부흥은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1904년과 5년, 두 해 동안 에반 로버츠가 기도했는데,
그 기도의 결과가 한반도까지 영향을 끼친 거예요.
1904년 선교사들이 웨일스의 부흥을 소개하며,
한국에도 같은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했고,
대한민국, 그 당시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500명의 성도들이 모여
또 선교사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살피며, 기도하는 사경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며칠 동안 지속되었지만
뭔가 집회의 은혜를 가로막는 느낌을 사람들이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날 저녁 사회하던 길선주 장로님, 나중에 그분은 목사가 되었어요.
길선주 장로님이 갑자기 성령님이 자신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리에 엎드려 통곡하고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어나 성도들 앞에 자복합니다.
사실은 몇 해 전, 자기 친구가 죽기 전에, 당시에 미화 100불 상당의 돈을 자기에게 맡겼는데
그가 그 돈을 도적질했다고...
내일 아침 그 돈을 친구 집안에 돌려줄 것이라고...
바로 그 순간 거대한 통곡과 함께 회중 가운데 울음소리가 터져나와
모두들 각자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평양 대부흥의 시작, 폭발이었습니다.
그날의 통곡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기초를 만들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며 통곡하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동일하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과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2. 이 눈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둘째로, 그분은 우리 장래에 소망을 주십니다.
렘31:16~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통곡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눈물 저 건너편에서
우리의 미래에 우리의 장래에 소망을 준비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마침내 그들의 고향 땅에 돌아와 미래의 소망을 꿈꾸며
그들의 소망을 실현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들려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소망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눈물을 이제는 멈추라’고
그리고 이제 ‘너의 눈물은 너의 미래를 가꾸는 땀흘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 독일의 현대 신학자로 알려진 위르겐 몰트만이라는 분은
자신의 신학을 “희망의 신학”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원래 이분은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독일군으로 참전을 했다가 포로가 되었어요.
포로생활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을 친히 경험하고, 조국이 황폐화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깊은 절망 가운데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시편과 복음서를 읽으면서, 자기 마음속에 소망의 하나님이 다가왔습니다.
소망의 주님, 그리스도가 다가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이 하나님을, 자기가 의지할 하나님,
자기의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신학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희망의 신학”으로 그렇게 명명하게 된 것입니다.
몰트만에게 특히 영감을 주었던 말씀이, 바로 예레미야의 말씀이었습니다.
특별히 렘29:11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렘29장에서 이미 살펴보았지만 한 번 더 읽습니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 신학자 몰트만이 붙잡았던 희망의 말씀, 희망의 약속은
렘29장을 지나서, 오늘 본문 31:17절까지 지속됩니다. 한 번 더 본문 17절을 읽습니다.
렘31: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독일이 낳은 또 한 분의 신학자가 있습니다.
제가 종종 소개하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치 저항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를 당했어요.
그가 체포당한 순간 자기의 저항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감옥에 수감되기 직전, 자기 영국인 친구 주교 조지 베리라는 친구 목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메시지는 간단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This is the end for me, the beginning of life'
'이것이 끝이다. 그런데 아니다. 내게 있어서 이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라면서
그는 자기 인생의 끝에서 끝을 넘어서는, 희망을 아직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얼마 되지 않아서 교수대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합니다.
본회퍼가 죽은 날이 1945년 4월 9일이에요.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4월 9일날 죽었는데, 5월 8일 한 달이 되지 못해
나치 독일이 항복하고 독일은 해방됩니다.
그렇습니다. 독일은 마침내 나치의 압제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날, 새로운 역사,
새로운 희망, 새로운 미래를 역설적으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절망의 순간, 소망의 하나님은 소망의 미래를 준비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여러분? 아멘!
◑3. 우리의 눈물을 통해 만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세 번째로 그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렘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과거를 치유하시고,
근데 거기서 끝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시고... 근데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오늘 현재 들끓는 사랑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창자가 들끓는 사랑’이란 단어가 나와요. 히브리말로 ‘라캄’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표현할 때는 ‘스플랑크니조마이’라는 단어이고,
영어로 이것을 표현하면 ‘컴패션’이라는 단어입니다.
컴패션은 두 가지 단어의 결합인데,
‘컴’.. 같이, 함께
‘파시오’.. 고통, 열정
그런데 이게 함께 고통당하면서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단어들은 다 엄마의 자식 사랑에서 본래 연유한 단어들입니다.
엄마들의 자식 사랑의 극치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자식들의 고통을 껴안는 그런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무리를 보실 때마다 불쌍히 여기셨다 할때, 바로 그런 사랑인 것입니다.
▲신약의 복음서에 보면 이런 창자가 끊어지는 긍휼의 사랑,
이 사랑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은 유명한 세 가지 케이스가 복음서에 등장합니다.
1) 첫 번째 케이스는 시각장애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르짖었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그는 눈을 떴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봤어요.
2) 또 10명의 한센병 환자가 지나가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또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 모두가 열명이 다 깨끗함을 얻지 않았습니까?
3) 또 하나의 케이스는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어요.
자 바리새인이 먼저 기도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요.
십일조 꼬박꼬박 드렸고요.’ 이런 자기 PR(홍보)성 기도가 끝난 후에
세리의 기도가 시작됩니다.
세리는 감히 하늘을 올려다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구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까? 세리의 기도죠.
여기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증거들이 아니겠습니까?
◑과테말라 선교사 섬김 집회 '샬롬 라틴 아메리카' 2026년 7월

지난 두 주간 저는 특별히 과테말라 선교사들을 섬기기 위한 ‘샬롬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과테말라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 중미에서는 과테말라가 중심지역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거기에 선교사님들 120분 이상, 또 선교사 자녀들까지 초청하고,
우리 한국 지구촌교회, 또 워싱턴의 지구촌교회,
또 워싱턴 지구촌교회에서 개척한 버지니아 지구촌교회, 뉴욕 지구촌교회에서 온 70명의
섬김이가 함께 모여서, 선교사님들을 아주 사흘 동안 풀로 함께 섬겼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중남미 선교 역사를 보면,
특별히 ‘스페인 서구 제국주의’라고 보통 그렇게 말하는 그 세력들에 의해서
사실은 중남미 원주민들, 과테말라는 마야 라는 원주민들이 거기 주로 있는데,
그들은 심각한 수탈을 경험했어요.
강제노동 그리고 서구인들에 의해서 억압당한 슬픔의 역사가 있었어요.
그 결과로써 그 과테말라에는 서구 사람 편에 서는 사람, 서구 사람을 반대하는 사람,
이렇게 친서구/ 반서구 세력으로 과테말라가 나뉘어져서,
1960년부터 96년까지 무려 36년간, 과테말라는 심각한 내전을 겪었던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마야 원주민을 포함한 약 2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되거나 실종되는
끔찍한 비극이 발생했으며, '침묵의 홀로코스트'라고도 불립니다.
내전은 1996년 12월 정부와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공식적으로 종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거기에... 수많은 교회들이 놀라운 일을 했어요.
교회들이 피난민들을 보호하고, 고아들을 돌보고,
그 폭력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부르짖었고,
그들의 노력, 그들의 사랑, 그들의 애씀을 통해서
내전이 끝나자 과테말라에는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테말라는 가톨릭 40%, 개신교 45%
여러분 개신교가 가톨릭보다 인구가 더 많은 나라는,
중남미에서 과테말라가 유일한 나라예요.
그래서 85%가 크리스찬인 나라로 복음화된 놀라운 변화가, 과테말라에 일어난 것입니다.
과테말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을 경험했다’고 말합니다.
두 가지 유형의 서구 그리스도인들!
1) 하나는 십자가를 군기처럼 깃발로 들고 와서 원주민들을 정복했던 사람들,
2) 또 하나의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겸손하게 원주민들을 섬겼던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고...
우리는 그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그 과테말라 제가 선교 역사를 좀 더 알기 위해서 돌아보는 가운데
거기에 바톨로메라는 수사가 있었어요. *수사=수도사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는데,
그는, 막 원주민들이 수탈당할 때 앞장서서 그 수탈을 막으면서
스페인 왕에게 원주민 학대를 당장에 멈추어 달라고
이들도 하나님의 형상들을 지음받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우리가 그를 존중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선교할 수 없다고 외쳤어요.
그는 ‘인디안의 사도’란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그들의 언어는 서구사람들에게 조롱거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 번역 선교사들, 위클리프 같은 선교사들이 도착해서
그들의 말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그들의 말은 우수한 말이라고, 훌륭한 말이라고.. 그들의 자존감을 심어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과테말라가 그렇게 복음화된 나라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김우준 목사님이 거기서 틴에이저 시절을 다 보냈어요.
목사님이 섬기던 교회에 가서도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도 굉장히 커요. 작은 교회가 아니에요. 우리 한인교회도 상당히 큰 교회예요.
거기서도 교인들이 매달 대통령궁 앞에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더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선교하러 갔다가, 우리가 더 마음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근데 우리도 열심히 섬겼습니다. 치과, 한의사 사역, 미용사역, 말씀사역...
네, 또 MK (선교사님들 자녀)들을 부지런히 섬기면서
우리는 단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그들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들을 섬기는 것은,
여러분도 이렇게 이 땅의 사람들을 섬겨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섬김의 눈물을 우리는 그 땅에 뿌리고 오면서
또 한 번 과테말라에 더 위대한 부흥이 일어나도록
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도록.... 우리는 계속 중보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은 한 나라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눈물은 열방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눈물, 기도의 눈물,
그것이 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하늘의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여름철, 섬김의 눈물로 또 섬김의 기도로,
주님 앞에 서서 이 뜨거운 여름을 위대한 여름으로 바꾸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우리가 인생을 삶면서 때로는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들이 많지만
기왕이면 섬김의 눈물을 흘리게 해 달라고,
'복음을 전하면서 흘릴 수 있는 섬김의 눈물 그런 눈물로 세상을 바꾸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그런 눈물을 주시옵소서! 함께 우리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