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창8장 기억, 점점, 예배

LNCK 2026. 7. 15. 15:3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기다림>

2026 07 12 창세기 강해 (21) / 8:1-22 / 기억, 점점, 예배 - YouTube

 

◈기억, 점점, 예배                     창8:1-22                 2026.07.12. [창세기 21강]

 

오늘 본문은 창세기 8장입니다.

창6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기억하시는 하나님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여기 ‘기억하사’가 오늘 설교의 첫 번째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기억하다’는 어떤 뜻일까요?

우리처럼 ‘아 깜빡했다. 노아가 배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런 뜻일까요?

하나님이 잊고 있었다가 ‘아 맞다, 내가 노아를 방주에 넣어두고 깜빡 잊고 있었네’ 하고,

뒤늦게 기억을 떠올리셨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기억하다’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자카르 인데,

이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더 적절한 번역은, ‘하나님이 계속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들과

가축을 늘 생각하고 계셨다가 맞습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단 1초도 노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하시고, 노아를 보살피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왜 이 단어, ‘기억하셨다’는 표현이 중요할까요? 8:1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이 계속되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가?’

 

노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노아는 지금 방주 안에 있습니다.

비는 40일 동안 내렸지만, 물은 150일 동안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 안에서 보낸 이 150일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방주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창문도, 또 방향을 조정할 키나 돛도 없었습니다.

그저 출렁이는 사망의 물결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해야 했습니다.

 

이때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습니다.

방주를 만들 때는,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어라, 동물을 태워라, 먹을 양식을 준비해라, 또 방주로 들어가라’

그런데 방주의 문이 닫힌 이후 150일 동안에는, 단 한 마디의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노아의 마음 속에서는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방주 안에서 영원히 갇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이렇게 불안하고 의심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순간 성경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자카르

하나님은 150일의 침묵 속에서도, 1초도 노아를 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를 기억하시며, 그 캄캄한 방주를 친히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도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기억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신 것처럼, 우리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순간도 잊지 않으십니다.

 

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낳은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은 자카르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의 순종,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한순간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기도한 내용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잊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삼상1:19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자카르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창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이 ‘생각하신지라’도, 오늘 본문의 자카르입니다. ‘기억하셨다 remembered’

하나님은 라엘의 기도를 늘 기억하시고, 때가 되자 그의 태의 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린 기도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한 기도를, 자카르, 늘 기억하시고 때가 되면 응답해 주십니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도 제목을 부탁합니다. 저도 기도 부탁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좀 기도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자카르 - 기억하사, 응답해 주십니다.

끝까지 기억하시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결국 자카르의 하나님,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순종도 하나님이 기억해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순종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카르 -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38: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여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창8:1과 똑같은 자카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 우리의 순종을 다 기억하십니다.

 

히6: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성도를 섬기는 것, 즉 교회를 섬긴 것을,

자카르 -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자카르(기억) 하셔서, 은혜의 사건으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의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자카르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세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3: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관심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난 중에 돕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난의 때에도, 우리를 자카르 - 기억하십니다.

 

시136:23 ‘우리를 비천함 가운데서도 기억해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는데, 오늘 본문에 바로 그 자카르입니다.

언제요? 우리가 비천함 가운데 있을 때요.

 

우리가 실패하고 낮아지고 무력해져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극심한 고난의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때도 우리를 자카르 remember 하십니다.

 

세상은, 우리가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초라하고 비참한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우리를 자카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비천한 자리, 고난의 자리에서 건져내 주십니다.

노아를 방주에서 건져내셨듯이, 고난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찬양의 자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카르, 기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어디에 소망이 있습니까? 도움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끝까지 기억줍니까? 다 자기 살 길 바쁘지 않습니까?

 

물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깜빡할 때가 있습니다.

잊고 지낼 때가 많죠. 처음에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깜빡하다가 다시 기도하기를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고통당하는 우리의 아픔을 계속 기억하고 도와줍니까?

처음에는 좀 살펴봐주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혀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카르 - 기억하십니다.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특히 자카르는 언약적인 표현인데요.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을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 백성, 노아와 가족들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방주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 자카르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기억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순종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의 때 자카르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고난을 기억하십니다.

 

평안할 때만 아니라, 비천한 자리에 있을 때에도

사람들이 다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카르 -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도우시고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카르의 하나님’을 우리도 자카르 - 기억합시다

시편 63:6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 하오리니’

 

하나님이 우리를 자카르 - 기억하시고, 날마다 붙드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이 시간 침묵의 방주 안에 계십니까?

혹시 고난의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나를 자카르 -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우리도 그분을 자카르 - 기억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오늘 본문 창8:1절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이 한마디가 홍수의 끝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자카르 때문에 회복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기억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홍수 심판 후에 시작되는 <새 창조> 역사

 

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다시 본문 1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시고, 땅에 바람을 불게 하십니다.

바람이 부니 물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여러분 ‘바람’이 히브리어로 루아흐입니다.

 

창1:2에 보면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루아흐, 바람도 됨)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본문 창8:2절에 나오는 ‘깊음의 샘’에서

‘깊음’이라는 단어 역시, 창1장에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할 때 쓰였던 단어입니다.

창8: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히. 트홈

 

또 1절과 2절에 나오는 ‘물’과 ‘하늘’이라는 단어들 모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셨던 같은 단어들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세기 1장의 단어들인 바람, 깊음, , 하늘이

오늘 본문에 다시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을 새롭게 다시 창조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죄로 가득했던 옛 세상은, 홍수 심판으로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창8장은, 단순히 홍수가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심판 이후에 시작되는 새 창조의 이야기입니다.

<재창조>의 표현이 바람, , 깊음, 하늘이라는 단어입니다.

 

◑2. 그 다음에 주목해야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점점’이라는 단어입니다.

 

8: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5절에도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8: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반복되는 표현이 ‘점점’이라는 단어입니다.  *continually *할락

하나님은 물을 한순간에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점점 물러가게 하셨고, 점점 줄어들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이까지껏 물쯤이야.. 한 번에 사라지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손가락 한 번만 딱 튕기시면, 그 많은 물이 1초 만에 바싹 마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점점 물러가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이 ‘점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이 문제가 지금 당장 한 번에 싹 해결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한 번에, 당장에!

 

변제할 빚이 있는데, 내일 아침에 기적처럼 0원이 되게 하소서..

꽉 막힌 자녀와의 관계가, 하룻밤 새에 좋아지게 하소서..

내 몸의 병이, 오늘부터 씻은 듯이 낫기를 원합니다..

또 교회도 단번에 부흥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숨에 해결해 주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이 점점 역사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단숨에 해결하지 않으시고, 답답해 보일 정도로 점점해결해 주실까요?

왜 하나님은 홍수의 물을 점점줄어들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놀랍게도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만약 온 지구를 덮었던 어마어마한 물이 1초 만에 증발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 하나만 들어도 낑낑대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지구를 덮은 물은, 에베레스트산 같은 높은 봉우리들까지 다 덮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그 무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 수천억 톤의 어마어마한 물이 엄청난 힘으로 지구의 땅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물이 1초 만에 싹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쉽게 용수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용수철을 손으로 힘껏 꾹 누르고 있다가

갑자기 손을 딱 떼면 용수철이 어떻게 되죠? 팡 하고 무서운 속도로 튀어오릅니다.

 

지구의 땅도 똑같습니다. 땅을 짓누르던 수천억 톤의 물이, 1초 만에 사라지면,

억눌려 있던 지각이 짓눌리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갑자기 튀어 오릅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땅이 무섭게 요동치고, 갈라지고,

전 지구적인 초강진과, 지형 붕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들은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겠죠.

 

또 당시 방주는 물 위에 떠있지 않습니까? 수천 미터 높이에서 떠있는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당장 물이 다 증발해버린다면, 또는 1초 만에 그 물이 다 빠져버린다면,

그 물 위에 떠있던 방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치 자이로드롭이나 수직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맨땅을 향해 그대로 곤두박질을 치게 됩니다.

 

그러면 방주 안의 노아와 그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점점’은,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노아를 위한 가장 안전한 속도였습니다.

노아를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보호이고, 사랑의 일하심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고난을 단번에 해결해 주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점점’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보호하심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의 문제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날 아침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하셔서

수십억 원의 돈벼락을 내려주신다면... 여러분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십니까?

 

겉보기에 완벽한 기적이고 최고의 응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뉴스를 보면 알게 되지 않습니까? 통계를 보면요.

이렇게 갑자기 로또 맞아서 벼락 부자가 된 사람들의 끝은.. 대부분 비극입니다.

 

돈을 다스릴 마음의 그릇과 지혜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큰 돈이 주어지며,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 간의 소송이 벌어지거나,

방탕함에 빠져서... 예전보다 훨씬 비참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심지어는 그 많은 돈 때문에, 하나님도 떠날 수 있습니다.

혹시 떠나지는 않더라도, 신앙이 타락할 수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에 빠지고 돈 쓰러 다니기 바쁠 수 있습니다.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근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정 문제를, 마술처럼 단번에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돈 폭탄을 던져서 우리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대신,

점점 일하십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나를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진짜 깨닫게 하시고,

또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단단한 그릇으로 우리를 먼저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회사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그 직원을 너무 아낀 나머지, 하루아침에 부장이나

임원의 자리로 초고속 승진을 시켜줬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과연 축복일까요? 처음 며칠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수십 명, 몇백 명의 직원을 통솔해야 하고

수십억 원이 오가는 프로젝트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압박감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로 쓰러지거나, 큰 사고를 치고 쫓겨나듯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사업이 하루아침에 대박나게 해주세요. 단번에 높은 자리로 오르게 해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밑에서부터의 과정을 주십니다.

바닥에서부터 작은 실패도 겪어보게 하시고, 또 성공을 겪게 하십니다.

껄끄러운 사람을 품는 법도 배우고, 억울한 위기를 대처하는 법도 배우며

점점 성장하게 하십니다.

 

당장은 더딘 것 같은 그 점점의 시간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시고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배려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마찬가지겠죠.

만약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내 병을 치료해 주신다면,

그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건강해지면 하나님을 떠날 수 있거든요. 

몸이 아프니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기도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몸이 불편하니까 주일에 교회라도 나왔는데,

건강하니까 주일이 되면 놀러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건강의 회복도.. 점점 차츰 좋아지게 하십니다. 점점 낫게 하십니다.

 

주님은 ‘점점’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먼저 만들어 가십니다.

건강해졌을 때 건강을 다스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 점점의 시간 동안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를 배우게 하시고,

예배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만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함께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점점 낫게 하십니다.

 

이렇게 보면 뭐든지, ‘단번에’가 다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정이 만들어지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점점의 시간’이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성숙인 것이죠.

 

그래서 이 ‘점점’은,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무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가장 안전한 속도이고 일하심이 바로 ‘점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요. 믿음의 사람들은 다 점점의 시간을 거쳤습니다.

다윗도 그런데요. 사무엘하 5:10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은 하루아침에 위대한 왕이 된 것이 아닙니다.

목동의 시간도 있었고, 광야에서 쫓기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지나서, 하나님께서 점점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도는 했지만, 기도는 하지만 아직 응답은 없고, 상황은 조금씩만 변하는 것 같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점점’은 하나님이 쉬고 계신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세밀하게 일하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가정을 점점 회복시켜 가시고,

우리의 믿음을 점점 자라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점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이 점점의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점점’ 일하시니, 우리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단번이 아니라, 점점 일하신다면,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일하시는데, 사람이 앞서 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물을 거두고 계시는데, 먼저 방주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점점은 언제나 우리의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점점’과 같이 반복되는 단어가 또 하나 있는데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8: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8: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사실 노아는 기다림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것이 언제입니까?

 

창7:12절인데요. 제가 타임 테이블을 한번 만들어 왔습니다.

여러분 가진 성경책에 표시를 하면서 한번 따라와 보세요.

 

 

7:11절에,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17째 날 방주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600년 2월 17일에 방주에 탑승했습니다.

 

8:4절에 ‘일곱째 달, 열일곱째 날 즉 600년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더라’

방주에 탄 지 5개월 뒤에, 이 아라랏산에 안착을 한 거죠.

 

그런데 여기 아라랏 산은, 참고로, 단수가 아닙니다.

‘산’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보면 ‘하레이’ 라는 단어인데요. 복수입니다.   *'하르'의 복수

 

정확히 번역하면 아라랏 지역에 있는 산들, 혹은 아라랏 산맥이 맞습니다.

왜 이 말을 하냐면, 지금도 방주가 머문 산이 어딘지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어느 특정한 한 개의 산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방주가 산에 머물렀다고, 곧바로 내린 것이 아닙니다.

10월 1일이 되어서야 산들의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8:5

거기서부터 또 40일을 기다렸다가 창문을 엽니다.  8:6

 

날짜로 치면 11월 10일쯤 되었습니다.

창문을 열었지만 노아는 또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지금 ‘기다림’ 설교하는 중

바깥의 땅이 얼마나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까마귀를 날려보냅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왕래만 했습니다. 왔다 갔다만 했다는 거죠.  :7

그러니까 알 길이 없는 거죠.

보내면 다시 오고, 보내면 또 다시 오고...

까마귀를 통해서는 물이 말랐는지 확인이 안 됩니다.

 

그래서 노아가 까마귀 대신 비둘기를 보냅니다.

그런데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자, 노아는 다시 7일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시 비둘기를 보냅니다. 그제서야 비둘기가 아주 기쁜 소식을 물고 돌아옵니다.

11절에 보니까 ‘새 잎사귀’를 물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느 나무 새 잎사귀이죠?

11절에 보면, 감람나무, 올리브 나무인데요.

이 올리브 나무는 높은 지대에서 살 수 없는 나무입니다.

이제 물이 상당히 빠졌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거죠.        주1)

 

그리고 노아는 또 7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비둘기를 보냅니다.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땅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8: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601년 1월 1일에 땅 위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걷혔다는 말은, 물이 빠져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햇빛이 비치고 땅이 보이는 거죠. 그런데도 노아는 내리지 않습니다.

‘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14절입니다.

8: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둘째 달, 21일의 날에 땅이 말랐더라’ :14

여기 말랐더라는 말은, 완전히 땅이 말랐다는 뜻입니다.

 

이 601년 2월 27일에 노아는 방주에서 나옵니다.

노아는 600년 2월 17일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600년은 노아 나이 기준

그리고 601년 2월 27일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무려 1년 10일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땅이 보입니다. 햇빛도 비칩니다.

문만 열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노아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가라고 지시하실 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이죠. 믿음은 하나님보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내 발걸음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점점 일하시는데, 내가 조급해서 먼저 움직이면

하나님의 때, 가장 좋은 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점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장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은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도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25년 기다렸습니다.

요셉도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노아도 방주 안에서 1년이 넘도록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빨리 해결해 주세요. 지금 당장 응답해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점점 일하고 계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점점을 신뢰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만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빚으시고, 우리의 모난 성품을 다듬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자 그러므로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가장 깊이 개입하여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기다림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견뎌내시기 바랍니다.

비록 당장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보이는 것이 없어도,

기도를 해도 당장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 기다림의 시간을 낙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한번 채워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자카르 하시는 하나님, 점점 일하시는 하나님이

마침내 우리를 온전히 회복하시고, 우리를 찬송과 영광의 자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 노아가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방주에서 나와 온전히 회복된 마른 땅을 밟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점점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리는 여러분의 삶에도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아름다운 응답의 땅을 밟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방주 밖으로 나온 노아가 첫 번째 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러분 노아는 그 답답하고 비좁고 냄새나는 방주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 드디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노아는 지금 1년이 넘도록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전에 살던 세상은 사라졌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농사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먹고 살아갈 방법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노아였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일단 집부터 짓자.. 일단 먹을 것부터 구하자.. 일단 내 생활부터 안정시키자..’

 

그런데 노아는 그런 생존보다 하나님을 먼저 예배합니다.

왜요? 지금까지 자신을 지키시고 붙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방주를 만든 것도 하나님 때문이었고, 방주에 들어간 것도 하나님의 지시를 순종한 것이었죠.

홍수 가운데 살아남은 것도 하나님 은혜 때문이었고, 1년은 넘는 기다림을 견딘 것도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먼저 세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일입니까?

아니면 가족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여러분도 예배가 가장 먼저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삶의 최우선순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내 삶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예배와 관련해서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를 깨닫게 되는데, 바로 예배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방주에 타는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정결한 짐승을 부정한 짐승보다 더 많이 태우라고 하셨습니다. //////////////////

 

오늘 8:20절에 와서 그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방주를 타기도 전에, 노아의 예배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 중 하나는

예배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심판하신 다음에,

예배하는 자들로 세상을 가득 채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그 뜻을 따라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배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피곤하다고 쉬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목숨 걸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구원받은 이유가 바로 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위해 6일을 살아갑니다. 예배보다 더 급하고 더 중한 건 없습니다.

모든 삶의 방향과 기준이 예배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제가 전에 ‘다음 세대 사역’할 때,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것이 있습니다.

방학 때마다 수련회가 있었는데요. 그때는 교단 수련회를 다녔습니다.

우리 교단은 SFC 수련회를 다녀왔는데요. 한 3박 4일 다녀옵니다.

 

왜 다녀옵니까? 수련회를 가는 이유가 무엇이죠?

주일 예배를 잘 드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예배 더 잘 드리려고요.

 

그런데 수련회 갔다 오면, 주일날 안 나오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수련회로 퉁 치는 거죠. 아니면 수련회 다녀오니 피곤하다고

예배에 늦게 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면 우리가 수련회 가는 의미가 없는 거라고.

주일을 더 잘 지키려고, 하나님을 더 잘 예배하려고 수련회 가는 건데,

이러면 안 간만 못하다고...’

 

학생들이 감사하게도 잘 따라줬는데요.

여러분 꼭 수련회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모임과 행사는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수요 기도회와 새벽 기도회도 마찬가지죠.

 

왜 우리가 수요일날도 모이고 새벽에도 모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명하신 주일 예배를 위해서입니다.

 

평일에도 은혜를 받아서, 주일 예배를 더 온전하고 거룩하게 준비하기 위한 것 아닙니까?

우리의 모든 것이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노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이 노아에게는 그러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왜 하나님이 노아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그 목적이 8:20절에 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8:20

 

오늘 보니까 너무 명확하지 않습니까?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은혜를 주십니까?

왜 믿음을 주시고 왜 구원해 주십니까?

왜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기도의 은혜를 주십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장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삶의 울타리를 지켜주십니까?

그 모든 은혜는 하나님을 지켜주십니까? 예배하는 데 있습니다.

예배는 내 삶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닙니다.

또 상황에 따라 양보할 수 있는 타협의 대상도 결코 아닙니다.

 

예배는 내 삶의 목적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노아의 예배는요.

앞에 자카르 remember 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자카르 - 기억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노아도요. 하나님을 자카르 - 기억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카르 -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자카르 -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사람 먹튀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를 자카르 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도 하나님을 자카르 - 기억합니다.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카르 - 기억하시고 한주를 붙들어 주셨기에

우리의 한주의 마지막과 시작이, 바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

주1) 노아는 땅에서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주 밖으로 비둘기를 총 3번 내보냈습니다.
첫 번째: 비둘기가 쉴 곳을 찾지 못해 방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 7일을 기다린 후 다시 내보냈고, 비둘기가 올리브(감람) 잎사귀를 물고 돌아와 물이 빠진 것을 확인했죠.
세 번째: 또 7일을 기다려 내보냈으나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아, 땅이 완전히 말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