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영적침체> ▣ 영적전쟁
2026.07.09 l 갈5:19-23 l 영적 침체에서 성령충만으로 Youtube
◈영적 침체에서 성령충만으로 갈5:19-23 2026.07.09.
저는 이따금 저희 집 뒤, 뒷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산길을 걸으면서 하루는 아침 일찍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산에 오르고 기도를 하는데,
저기 멀리서 어느 여자분이 복면을 쓰고 나타나셨어요.
그래서 ‘아직도 해도 뜨지 않았는데 저렇게 복면까지 쓰고 나타날 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좀 지나치잖아?’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근데 제가 꼭 그런 평가를 받고 있거든요.
‘이렇게 보니까 저건 좀 지나친 것 같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보면 꼭 그렇게 말씀들을 하세요.
‘너무 좀 지나친 것 같다.. 일기를 매일 쓰고, 그걸 나누고..
또 다른 사람 보고 또 일기를 쓰라고 권하고..
설교할 때마다 결국 결론은 또 일기로 가고...’ 뭐 그런 평가를 제가 받습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지나치다고 하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매일 동행일기를 쓰고 나누고 사는 이유가 있어요.
복면 쓴 분이 괜히 썼겠습니까?
자기도 거울을 보면, 그게 얼마나 섬뜩한 느낌인 것을 본인이 알면서도,
복면을 쓰고 이렇게 등장한 이유는, 피부가 소중하니까... 그렇죠?
자기 피부가 소중하니까, 그렇게 복면을 쓰고 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저도 피부보다, 제 마음이 너무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매일 동행일기를 쓰는 거예요.
지나치다는 평가도 알지만...
‘꼭 그래야만 되냐?’ 하는 말도 듣지만,
너무 중요하니까, 마음을 지키는 일이 너무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예수동행일기를 쓰게 되는 겁니다.
▲저는 한동안 성령 충만을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 때문에, 솔직히 마음에 굉장한 혼란도 있었고, 낙심도 있었어요.
분명히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저는 정말 구한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왜 하나님이 속히 저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지 않으실까?’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제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계속 성령 충만을 구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로 그것이 ‘마음(준비)’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성령 충만을 구하니까
성령께서 역사를 안 하시는 게 아니고, 못 하시는 거였어요.
실제로 어떤 사람은, 뭐 도대체 하나님을 믿기가 어려울 만한 환경 속에서 있는데도
아주 영적으로 충만한 분이 계세요.
또 어떤 분들은, 그런 조그만 시험이나 어려움에 맥없이 무너지는 분들도 있어요.
시험이 오거나, 또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또는 혼란스럽거나...
그러면 그냥 영적으로 무너지는,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분들도 있고,
그럴만하다고 생각되는데도... 오히려 영적으로 더 충만해지는 분도 계세요.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종으로 갔는데 한결 같았잖아요.
다니엘이 예루살렘 성이 다 무너지고, 성전도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그 끔찍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도 다니엘은 그 상황에서, 정말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했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흔히 ‘시험이 크다.. 사람을 잘못 만났다..
너무 어려움이 커서 내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건 결정적으로 내 마음의 문제인 겁니다.
▲우리의 마음의 뿌리가 두 가지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데,
하나는 육체고, 하나는 성령이세요.
불신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는
우리의 마음의 뿌리가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는 육체(육신)인데, 오늘 성경 본문에 명확하게
내 육체로부터 오는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어요.
아주 정확하게 하나하나 또박또박 ‘이건 육체의 생각이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5:19-21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
이와 같은 것은 정확하게 ‘육체의 생각’이라고,
마귀가 ‘육체(또는 육신)’를 통하여 내게 준 생각이라고, 성경이 명확하게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흔히 겪는 일들이죠.
‘분을 내는 거, 화가 나는 거, 어떤 사람의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그리고 끼리끼리 모여서 수근수근대는 거’
혹시 여러분 마음에 그런 마음이 생긴다면, 마귀가 주는 생각인 겁니다.
마귀가 육체를 통하여 주는 생각인 거예요.
이걸 깨달으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2) 그래서 두 번째는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뭐 사람 살다 보면 늘 그렇지...’ 이렇게 되지 않는 거예요.
정말 정확히 말씀대로 내가 분별한다면,
여러분, 화가 났어요. 분노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시기하는 마음도 생겼어요.
‘우리 좀 저 사람하고는 사귀지 말자. 우리끼리 뭉치자’ 이게 당짓는 거거든요.
분열하는 거, 분쟁을 일으키는 거, 원수 맺는 거, 음행과 더러운 일을 하는 거,
술 취하고 방탕하는 거, 사람들이 흔히 짓는 그런 일 같은데,
영적으로는 마귀가 육체를 통하여, 그 사람에게 주는 생각인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것을 분별을 못해요.
성경을 그렇게 읽었으면서도, 실제 상황이 되면 ‘마귀가 주는 생각이구나’ 그걸 분별을 못 해요.
주변 사람이 안타까워서 ‘그건 마귀가 주는 생각이야’ 그러면 막 화가 나요.
‘나보고 마귀라고?’ 이래서 더 화가 나요.
다 자기를 위해서 분별해 준 건데도, 안 받아들이는 거죠.
△일본 아동정신과 의사인 미야구치 코지라고 하는 분이,
범죄를 저지른 아동들, 그들을 수감한 소년원에 거기서
그 아이들을 상담을 한 내용을 바탕으로 <케이크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어요.
그 아이들에게, 종이에 원을 하나 그리고, ‘이걸 케이크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이 케이크를 똑같이 세 등분으로 나눠봐’
그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상당수가, 그걸 세 등분으로 못 나누는 거예요.
그냥 가운데를 줄을 쫙 그어버린다든지...
똑같이 세 등분으로 나누려고 그러는데, 일단 가운데부터 잘라버리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세등분으로 나눠야 될지 쩔쩔맨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잘 이해가 안 되실 거예요. ‘그걸 못한다고?’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 인지능력에, 엄청난 손상이 가있더라는 것이죠.
그 어린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우리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그 내면의 문제가 있는데,
이런 것을 ‘인지능력의 손상’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능히 ‘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을 거야’ ... 그런데 그게 판단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영적으로도 똑같아요. 영적으로도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귀가 주는 생각을 그냥 품어요.
분명히 성경에 ‘마귀가 주는 생각 육체의 생각은 어떤 거라고’
명확하게 말씀을 했는데도, 제가 목회하면서 교회를 이렇게 섬겨보면,
어떻게 얼마든지 분별하실 수 있는 분 같은데 ‘왜 마귀 생각을 품을까?’ 깜짝 놀라요.
여러분, 뱀을 품을 수 있겠어요? 기겁을 할 겁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멀리 있는 뱀을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잖아요.
근데 그 뱀을 어떻게 품어요?
실제로 마귀가 주는 생각 음란한 생각, 미운 마음, 분열하는 마음, 당짓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그걸 그냥 품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분별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자’ 우리 예수동행 파트너스 목사님 중에
처음에 제가 ‘24시간 주님 바라보자’고 하는 말을 듣는데, 그렇게 싫더래요.
지금 그 말씀을 하시니까 제가 알았지,
저도 그렇게 싫은 목사님이 계신 줄 몰랐어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이 그렇게 싫다’ 그게 어떤 역사지요?
아이들 기르다 보면 ‘밥 먹으라’ 하면 싫대요.
‘공부해라’ 하면, 싫대요.
‘예배드리자’ 해도 싫대요.
하여튼 모든 게 싫어요. 유익한 건 다 싫어요.
그런데 자기가 왜 싫은지도 몰라요. 그냥 싫어해요.
계속 그냥 싫어하는 것은 영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는 유익한데 그냥 싫어요. 이건 심각한 문제인 거예요.
근데 그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도 똑같다니까요.
‘나에게 이거는 유익되구나.. 이거는 내게 해롭구나’ 이 분별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데, 내게 해로운 게 좋아요.
그 생각을 하나 품고 있고 싶어요.
그리고 내게 유익한 것은 오히려 싫어요.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이 안 되는 거예요.
성령께서 역사하시려고 하는데, 내 마음이 이미 성령께서 역사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로
되어 있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해도 ‘왜 성령님은 역사 안 해주시나?’
‘왜 나는 그런 말씀에 그대로 은혜를 못 받나?’
내 마음이 지금 성령께서 역사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혹시 내가 지금 그런데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은
일단 분별이 된 거니까, 너무나 놀라운 일인 거예요.
‘아 이게 마귀 생각이었구나’ 이걸 분별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그 생각이 계속 품어지지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 그런 일이 깨달아졌을 때 꼭 기억할 것은,
그냥 ‘하나님, 이런 생각이 없게 해주세요.’ 이렇게만 하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생각을 이길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에요. 대적하면 돼요.
‘사탄아 물러가라. 내게 이런 생각 주지 마!’ 하고 명확하게 대적해야 돼요.
계속 ‘하나님, 제가 이런 생각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생각 안 하게 해주세요.’
이미 안 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말이죠.
△어떤 청년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왔어요. 보니까 ‘죄의 종노릇 하지 않기 원합니다.’
지금 어떤 마음이고 상황인지를 대략 느낌이 와요.
하지 말아야 되는데 자꾸 그 죄를 반복적으로 짓고 있는 그런 문제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그 청년에게 기도해 주기 전에 ‘기도만 하지 마라.
죄의 종노릇 하지 않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만 하지 마! 이제는 선포해!’
그렇게 조언해줬어요.
▲갈라디아서 5: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하나님 앞에 계속 욕심과 탐심, 그런 음란한 생각, 죄된 마음을 품지 않게 해달라고 할
문제가 아닌 거예요.
우리에게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 은혜를 다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마음과 생각에 계속 시달린다면
그러면 ‘하나님 이기게 해주세요.’ 기도해야죠.
그리고 ‘사탄아, 너 떠나가! 내게 더 이상 그런 생각 주지 마!
나는 이미 내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렸어.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어. 이제는 예수님이 내 주인이셔!’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해야 돼요. 영적인 싸움인 거예요.
만약에 누가 여러분의 목을 이렇게 조르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 숨이 안 쉬어지네.. 아, 답답하네.. 점점 더 답답하네..’ 이럴 사람 누가 있어요?
누가 여러분의 목을 조르면, 여러분이 아마 그런 힘이 어디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을 막 내치지 않겠어요?
그런데 왜 영적으로는, 왜 조용히 죽어 가나요?
분별을 못하니까..
▲또 하나 마귀를 대적할 뿐만 아니고,
성령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품어야 돼요.
그냥 마귀가 주는 생각이 떠나가기만을 구하지 말고, 성령의 생각이 함께 있어요.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분명히 이 점도 명확하게 말씀하셨어요.
‘성령의 생각’이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명확하게 아홉 가지를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갈5:22~23
그러니까 내 마음에 이제 성령께서 주시는 이 아홉 가지 생각을 품어야 돼요.
만약에 내가 그걸 품지 못하면, 다시 마귀가 생각 주는 거에 사로잡히게 돼요.
여러분이, ‘아 이게 성령의 역사구나’ 이렇게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는 어떻게 알지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제로 손에 잡히지도 않아서요. 그러나 알 수 있어요.
‘사랑하라, 기뻐해라, 화평을 이루라, 오래 참으라, 자비해라, 선을 행하라, 충성해라,
온유해라, 절제해라’ 그러면 성령님께서 계신 거예요.
성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만드신다는 거예요. 그게 ‘성령의 열매’인 거예요.
여러분이 ‘이게 성령께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거구나. 주님이 지금 역사하고 계시구나’
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주님이 역사하시는데도, 자기는 주님이 역사를 안 하신대요.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그렇게 기도해도 주님은 아무것도 안 하신대요.
가만히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성령께서 그분 안에서 계속 말씀하고 계세요.
‘사랑해라. 오래 참으라’ 그 말씀이 오히려 힘들게 느껴져요.
‘참기는 뭘 참어?’ 하면, 마귀가 주는 말에 스스로 속는 것이죠.
그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끼고도
‘절제해라’ 하시는 데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거는... 그 대가를 (열매를) 나중에 각오해야 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그 삶의 열매가 맺어질까요?
요15:5절에 말씀하셨어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니까 삶의 변화는, 내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역사가 일어나는 거에요.
근데 많은 분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써요.
그러고는 계속 주님 앞에 기도만 하는 거예요.
‘해결해 달라고.. 빨리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고.. 문제를 이기게 해달라고..’
▲시골에서 자란 어느 목사님이,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자기 집 처마에 참새가 둥지를 만들었더래요.
참새가 새끼를 부화해서, 참새 새끼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기가 잘 길러주려고, 둥지에서 새끼를 꺼내서 끔찍하게 사랑을 부어줬대요.
자기 이불 속에 참새 새끼를 데리고 들어가서 거기서 재우고,
학교 갈 때 가방 속에 넣고 가서, 학교 데리고 가고,
파리를 잡아가지고 안 먹으려는 거 억지로 먹이고...
‘너 먹어야 돼. 먹어야 살아’
그렇게 억지로 사랑하니까 어때요?
그렇게 별의별 사랑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새끼 참새가 죽었어요.
계속 하여튼 그렇게 사랑을 쏟아부었는데.. 다 죽는 거예요.
나중에 이제 자기가 커서 커서 깨달은 거예요.
참새 새끼는 엄마 참새 품에 있어야 산다는 걸! 그걸 커서 깨달은 거예요.
자기가 보기에는, 자기 이불 밑이, 훨씬 더 그 참새 새끼한테 좋은 것 같아요.
그 처마에 붙어있는 새집을 보니까, 어째 이런 고생스러운 곳에 사느냐 말이에요.
그래가지고 참새를 사랑해서, 이불 속에 기르고, 책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아마 병 속에
파리 억지로 먹이고... 그러니까 참새가 죽죠. 참새는 엄마 품에 있어야 사는 건데...
엄마가 먹여주는 거 먹어야 참새가 사는 건데...
우리도 사실 똑같아요. 환경과 여건이 좋다고 잘 살게 되는 거 아니거든요.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여건 속에 있어도
사람이 메마르고, 삶이 무너지고, 말할 수 없는 풍파와 시련 속에서 시달리게 돼요.
정확히 알아야 돼요. ‘왜 내가 이런 영적인 방황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 그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거예요.
‘주님 안에 거하는’ 게 바로 그걸 말하는 거예요.
▲저는 한국교회 부흥을 위해서 정말 마음이 간절하고, 안타깝게 늘 기도했지만
계속 그 문제는 좌절이었어요. 한국교회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고,
제 기도는 전혀 응답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더 이상 기도할 힘도 없다...’
게다가 또 저는 은퇴까지 했잖아요.
이제는 뭐 현직 담임 목사도 아니니, (큰 상관 없다)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제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성령께서 깨우쳐 주셨어요.
저는 성령의 충만함이나 부흥이, 하늘 위에서부터 이렇게 부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분이 있을 거예요.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큰 능력으로 내게 역사하시는 그런 은혜를 허락하시려나?’
‘이 집회에 오면, 하나님께서 그런 큰 능력과 은혜를 내게 주시려나?’
그러신 분들이 있으실 거에요.
사실 생수의 강이신 성령이세요. 그분이 부흥의 실체예요.
근데 그분이 제 안에 계신 거예요.
근데 저는 계속 하늘만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뭔가 역사가 일어나야 될 텐데요. 뭔가 놀라운 일이 벌어져야 될 텐데요.
실제로 놀라운 일은 이미 벌어졌어요.
제 안에 주님이 생수의 강되신 주님이, 제 안에 와 계신 거예요.
마음이 답답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애통하고.. 정말 눈물로 기도가 된 그게 무슨 역사예요?
제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죠.
여러분이 다 예수 믿으시는 분이 주변에 많으신데,
다 들어보면 마음이 다르고, 기도 제목이 달라요.
다 나 잘되게 해달라고,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떤 분의 기도를 들으면, 먹고 입고 사는 거에 대한 기도가 없어요.
‘하나님 이 나라가 정말 부흥이 일어나기 원합니다.’
마치 자기 문제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 거죠.
북한을 위해서 애통하고 지진이 일어난 나라, 전쟁이 일어난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눈물로 기도가 되는... 기도가 똑같지가 않다니까요.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께서 아니면, 있을 수 없는 마음의 갈망과 소원이,
우리 안에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과거 한국교회 부흥회 시절이 굉장히 그리웠어요.
그 시절에 한 번 있어라도 보았다면...
기독교 역사책에 나오는 한국교회 부흥 시절에, 그때 내가 그 현장에 있어 보았다면...
그 어떤 말씀을 들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기도를 했을까?
그때 어떤 성령의 역사가 임했던 걸까?
그 시절에 그 부흥을 일으켰던 그 목사님들을, 내가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의 설교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들과 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저에게 너무너무 간절히 있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런 안타까운 제 마음에 답을 주셨어요.
아니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데...
아니 그런 부흥을 일으킨 목사님, 그 부흥을 일으켰던 그 설교가 중요해요? No
예수님 그분이 더 중요하세요. Yes
'아니 그때 그 부흥을 일으켰던 그 주님이, 내 안에 이미 계신데,
왜 나는 그 목사님을 기다리고, 그때 그 상황에 내가 가보지 못한 게 답답해 했으니,
내가 정말 바보 같았구나...’
이미 내 안에 부흥은 이미 내 안에 와 있는 거예요.
영적인 침체와 성령의 충만은 우리 안에 동시에 다 들어와 있어요.
한쪽으로 보면 나는 너무 답답하기만 해요.
그런데 동시에 내 안에는 엄청난 역사와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요.
주님이 내 안에 와 계신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 기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외치기 시작했어요.
‘나는 죽었습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만 바라볼 겁니다.
저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전에는 그런 고백과 기도가 두려웠었어요.
‘저는 예수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십니다.
주님 저를 사용하십시오!’
이건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기도인 거예요.
그렇게 고백하기 시작하면서, 그 고백하는 기도가 막 외침이 되고,
나중에는 그게 통곡이 되고, 눈물이 되고... ‘야 이게 부흥이구나!’ 그렇지요?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하면, 진짜 그건 부흥이죠.
아마 다른 사람들이 와보곤 ‘이건 뭐야? 이 집회는 무슨 집회야? (놀라운 부흥 집회네!)’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될 거예요.
우리 마음 안에, 우리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진짜 믿고,
그리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이제는 다른 뭘 구할 게 없잖아요.
그게 내 진짜 간절함이 되고, 믿음이 되면, 그게 내 심령의 부흥이고, 가정의 부흥이고,
우리 교회 전체의 부흥이에요.
‘이야 이렇게 간단한 거구나’
그때부터 제가 어느 부흥회를 가거나, 어느 교회에 초청을 받아 가면,
저는 부흥은 한순간에도 올 수 있다는 것을 느껴요.
‘성도들과, 그리고 그 교회 목사님들이 주님이 내 안에 계시구나’
이 사실을 진짜 믿음으로 붙잡게 될 때, 그때 부흥은 폭발할 수 있는 거예요.
이미 우리 안에 부흥이 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여전히 마음이 메말라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마귀가 주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스스로가 주님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지금 막고 있는 겁니다.
마음의 온갖 더럽고 악한 것들을, 스스로 계속 허용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허용하니까, 마귀가 내 속에서 악한 마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그런 생각을 거절할 거야’ 하고, 단호히 예수 이름으로 선포하고 물리치면,
승리하는 거예요.
살다보면, 시기심도 생길 수 있죠. 누가 미운 마음도 들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우리끼리 좀 우리끼리 잘해보자며 당짓고 싶은 마음도 아무래도 생기죠.
‘야 이게 마귀 생각이구나...’
마귀 생각을 내가 왜 품겠어요?
‘마귀야, 당장 내게서 떠나가!’ 우리가 계속 이렇게만 해나가기만 해도,
그 다음부터 성령의 역사가 놀랍게 나타나게 돼요.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원에 올라가야 되거나, 또는 금식해야 되거나,
부흥회에 가서 소리 지르거나...
사실 그것보다 24시간 진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보면 훨씬 빨라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