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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4장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LNCK 2026. 7. 2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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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주일설교 (2026-07-12)  Youtube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수14:6~15               2026-07-12

 

1~12장까지는 가나안 땅의 정복에 관해서,

13장에서는 요단 동편 땅의 분배에 대해서

본문 14장부터는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요단 서편 땅의 분배가 시작됩니다.

 

▲한때 많은 분들과 인사할 때,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인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9988234’ 기억나세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다가, 2~3일 정도 앓으시고 천국에 가세요.’ 라는 의미에서

‘9988234’ 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26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세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되어서, 이제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대수명이 123세입니다.

플러스 알파 시대를 살아갑니다.

 

과학이 계속 발달하다 보니까, 인간의 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20세를 산다고 하면,

과거 시대의 사람들보다 몇 배 이상을 사는 것인데,

삶의 내용도 그렇게 몇 배 이상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인간의 장수와 함께, 이 땅 가운데 오래 전부터 내려왔던 여러 가지 많은 말들이 있어요.

이와 같은 말입니다.

 

이태백 .. 20대 태반이 백수

38선 .. 38세 퇴직

사오정 .. 45세 정년

오륙도 .. 56세까지 쓰면 도둑

 

‘인간의 수명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이 해야 될 일들은

그만큼 많이 줄어들고 있다’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나이가 한 50세만 되어도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분께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25세에 죽지만, 75세가 되어서야 묻힌다’

 

젊은 나이지만,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이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와 같은 말들이, 우리네 성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활동 안에,

열정적이며 사명 중심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사명의 상실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25세 때부터 죽은 사람처럼 살다가,

84세가 되어서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80세가 되어도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다가,

그분이 이미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곁에 살아있는 것처럼

여전히 뜨거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후자처럼, 그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렙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여호수아 14장의 말씀은,

요단 서편 땅에 있는 땅 분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수13장은 ‘요단 동편 땅에 대한 분배’ 이야기였고요.

본문 수14장부터는 ‘요단 서편 땅, 그러니까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한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수14:1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1절에서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력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어요.

 

그런데 성경에서 이름을 기록할 때, 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인물부터 기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십시오. 여호수아보다 앞에 등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전까지 모든 여호수아서의 기록은 여호수아가 단연 가장 앞에 등장했어요.

그런데 땅을 분배하는 이 본문 가운데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여호수아보다 앞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시대가 바뀌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전쟁 때는 대장군이었던 여호수아가 앞장서게 되지만,

정착의 시대에서는 제사장 엘르아살이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정복의 시대에서는 칼을 들어야 하지만,

정착의 시대에서는 예배와 말씀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복의 시대는 땅을 빼앗는 것이지만

정착의 시대는 그 땅을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맞는 사람을 선택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거예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이름 배열의 순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90~100세가량의 어른이 되었고

갈렙의 나이는 85세가 되었어요. 갈렙의 나이는 85세가 되었어요.

 

모든 전쟁을 주도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나이가

근 100세, 85세가 넘은 노인들이 되었단 말입니다.

 

이쯤 나이를 드신 어르신들이 모이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보통 이 연령대에 있는 어르신들이 모이면 '어디가 아프다, 무릎이 시리다,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다, 그리고 어떤 약이 좋더라, 어떤 병원이 좋더라’

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는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도 어느덧 친구들을 만나면, ‘약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요. 갈렙은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어요.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과 여호수아의 대화를 가만히 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도 없어요. 노후 대책에 대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이들이 하는 말을 그냥 그대로, 문자 그대로 보게 되면

그냥 20대 청년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미 전쟁이 끝났습니다. 땅을 분배하고 있어요.

지금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냐면

‘우리가 얼마나 더 좋은 땅을 받을 것이냐?’ 이 부분에 모든 관심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뭘 말하고 있는 것이냐면, 그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누구보다 좋은 땅을 얻을 만한 권한이 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지금 다시 험지로 전쟁을 하러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하나님은 이 갈렙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무덤에 들어갈 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바로 곧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갈렙과 같은, 열정 넘치는,

사명 중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 두 가지로 한번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 번째,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라입니다.

 

14: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지금 땅 분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정복 전쟁이 대강 끝났다는 말이죠.

그때 갈렙이 나와서 하는 말이, 자신의 전쟁의 업적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도 않아요.

 

그는 뭘 말하고 있냐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지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려 45년 전에 받았던 약속입니다.

45년 전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12명의 정탐꾼이 되어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어요.

 

그때 10명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했지만, 갈렙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갈렙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갈렙도 눈이 있었습니다. 그도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10명의 사람들이 보았던 거대한 성을 보았어요. 거인족 아낙 자손도 보았습니다.

두려움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데 갈렙은 그 큰 세상의 어떤 조건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갈렙은 이 땅의 관점으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사명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현실 감각이 있어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께서는 45년 전에 갈렙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러분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어요.

‘네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 땅은 내 것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렙은 지금 그 땅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땅이 좋아서 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땅은 기름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헤브론은 해발 900미터 높은 산지 가운데 있어요.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땅은 아낙 자손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45년 전 정탐꾼들의 마음을 두렵게 만들었던 아낙 자손이, 그곳을 점령하여 살고 있었어요.

그 성읍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이었어요.

 

그 땅을 달란 말은 무엇이냐면, 그 땅에 나아가 정복전쟁을 벌이겠다는 말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좋은 땅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갈렙이,

가장 거친 땅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그 땅을 지금 요구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할 때,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계산하지 않았어요.

그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 계산했죠. 약속만 붙잡을 뿐입니다.

 

그래서 40대가 되었어도, 그리고 85세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갈렙도 늙습니다. 그도 나이가 들었어요. *85세      :10

그런데 갈렙을 청년처럼 살게 맞았던 그 힘은, 그의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건강에 달려있었던 것이 아니라, 변함이 없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청년과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렙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자기의 어떤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언급합니다.

 

수14:6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갈렙은, 지금 자기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된 말씀을 근거로 그 땅을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14: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또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갈렙의 모든 언어는, 하나님이 약속으로 가득 차 있어요. 한번 더 볼까요?

 

수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 갈렙을 늙지 않게 만든 것은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든 상황이 바뀌었어요. 환경도 바뀌었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어요.

전쟁도 그쳤습니다. 사역의 방향도 바뀌었어요.

여호수아가 아니라, 제사장 엘르아살이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또한 갈렙은 그 중심 가운데 변함이 없어요.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면, 외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형편이 아니었어요. 여호와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분이 주셨다면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14장에서 갈렙이 말을 한 이후에, 그는 45년 동안 성경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수14장에 등장해서, 85세가 되어서 하는 말이 무엇이냐면,

45년 전에 하나님께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말을 하고 있어요.

 

무엇을 의미합니까? 45년간 갈렙은 그 말씀을 또 묵상하고, 또 붙잡고,

또 묵상하고, 또 붙잡고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까지 주어진 그 말씀이기를 축복합니다.

그 말씀이 주어졌다면, 그 말씀 붙잡고 우리가 사는 모든 삶 속에

그 말씀의 은혜와,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말씀을 붙잡은 사람들이었어요.

사명을 붙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인 레이먼드 룰에 대해서 잠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이먼드 룰은 1,232년 스페인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왕실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왕세자의 궁전 관리인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서실장 정도 되는 위치입니다.

 

그는 세상의 중심에서 왕과 함께 성장했어요. 그런데 30살이 되었을 때,

다섯 번의 환상을 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다섯 번의 환상을 보게 돼요.

 

그리고 이슬람 국가를 향한 선교사로서의 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이슬람 선교를 위한 준비에 몰입합니다.

아랍어로 배우고 이슬람 문화를 익힙니다.

 

이슬람 나라를 몇 차례 왕복하면서 그 땅을 정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그는 북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어요.

그때 그의 나이가 60세가 넘었습니다. 1,232년도입니다. 13세기죠.

 

그때 60세쯤 되면 지금의 한 100세가 넘는 정도의 신체 나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북아프리카 가서 국가로 옮겨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부지아에서 붙잡혀서 감옥에 6개월간 투옥 되었어요.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추방 당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80세가 넘은 노인이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유럽에서 마음 편하게 그냥 인생을 즐기만 살 수도 있는데

그는 다시 한 번 선교로 나갑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83세였어요.

 

1,200년도에 83세 어르신께서 비행기도 없는데, 북아프리카로 복음전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명에 붙들린 사람들은,

나이를 잊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의 신체적 조건이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명이 그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록 몸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하나님의 사명은 늙지 않기 때문에

사명을 붙잡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날동안에

사명의 이끌림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살아서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여건들을 계산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신 그 하나님을 더 크게 묵상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그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라는 것입니다.

 

수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갈렙은 하나님 주신 그 말씀을 45년 동안 붙잡고 있었어요. 40~85세

붙잡았을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온전히 따라갑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갈렙을 소개할 때면 항상 나오는 단어가 있어요.

그 단어는 무엇이냐면 ‘온전히’ 입니다. 우리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평가

‘여호와를 온전히 좇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흔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잘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에요. 매우 제한적으로 쓰여집니다.

그런데 갈렙을 소개할 때는 항상 온전히가 등장합니다. 우리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민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히. 말라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하나님이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나를 온전히 따랐다라고 평가하시는 거예요.

너무 부럽지 않나요?

 

2) 또한 모세가 갈렙을 표현할 때도 ‘온전히’ 라는 단어를 씁니다.

 

신1: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말라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이것은 모세의 평가였습니다.

모세가 보기에 갈렙은 그냥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어요.

누가 보더라도 갈렙을 보면 그냥 ‘온전히’가 떠올려지는 것입니다.

 

3) 갈렙 자신이 자기를 평가할 때도 온전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수14: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말라

 

여기 ‘충성’이라는 단어가 ‘온전히’ 라는 단어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온전히’라는 단어를, ‘충성’이라는 단어로 의역해 놓았어요.

그러니까 ‘충성’이라는 단어가 ‘온전히’ 라는 단어입니다.   *히. 말라, wholly

 

갈렙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도 '나는 온전히 하나님만 따랐습니다' 라고 말할 만큼의

온전히 주님을 따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4) 성경 기자의 평가 역시 '온전히' 라고 쓰고 있습니다.

 

수14: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말라

 

여러분 보십시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데,

동일하게 이처럼 반복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없습니다.

 

‘갈렙은 용감하였더라. 싸움을 잘하였더라’ .. 이런 평가가 아닙니다.

‘그는 85세였지만 동안이었더라’ .. 이런 식의 표현이 없어요.

 

갈렙을 표현할 때.. 하나님, 모세, 자기 자신, 성경의 기자가 동일하게 말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히’라는 단어는 어떤 뜻이 있을까요?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뒤를 가득 채우며 따르다’ 이것이 온전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면 fully, wholly 라는 단어를 썼어요.

'가득 채우며 따라가다'

 

여러분 성경에서 '온전히 따른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여호와의 뒤를 서서 따라가는데, 그 간극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습니다.

온전히 가득 풍성히... 하나님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두지 않고 따라가는

그 상태를 ‘온전히 따랐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갈렙은 그렇게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두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라간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많은 것들을 둡니다.

성공이니, 건강이니, 돈이니, 재정이니 많은 것들을 두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믿음이 흔들릴 리가 없어요. 상처 받을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두지 않고 따라갔던 그 사람,

그 사람이 갈렙이 되는 줄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만 따라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너무 부럽지 않나요?

 

▲또한 ‘갈렙’이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온전히’ 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어요.

학자들은 갈렙의 이름을 두 가지로 분석하는데

 

1) 첫 번째는 ‘개’라는 의미가 그 이름의 뜻입니다.

갈렙은 히브리어로 보면 ‘칼레브’라고 읽는데, 개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케레브’입니다.

자음은 똑같아요(같은 단어입니다). 모음만 약간 달라서 발음이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이름을 왜 ‘개’로 지었을까요? 그것은 ‘충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가는 그 동물의 습성을, 그 이름 가운데 녹여둔 것이죠.

 

2) 두 번째 갈렙의 이름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어요. 두 가지 단어의 합성어인데

칼은 ‘전부, 온전히’ 라는 뜻이고

렙은 레브인데 그것은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갈렙은 ‘온 마음을 다해, 온 마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어떤 의미를 채택하든지 간에, 갈렙은 그의 이름에 걸맞게

이름뿐만 아니라, 그 인생 전체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아가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고가 되기를 원치 않으세요.

성공이 아닙니다. 1등이 아닙니다. 온전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1등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최고가 못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온전히 따라갈 수는 있잖아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것도 두지 않고,

우리 간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꼴찌’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흥미롭게 보았어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경기 100M 경기입니다.

그때 출전 선수중에 아프리카 적도 기니 출신의 에릭 무삼바니 라는 선수가 등장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올림픽 출전 전 8개월 전에 처음 수영장을 갔답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니깐 수영할 곳이 없지 않겠습니까?

국가에서 대표 선수를 보낼 때, 한 명을 택해서 8개월 전에 훈련을 시킨 거예요.

수영장이 없다 보니까 호텔에 수영장에서, 길이가 12M 호텔 수영장에서 홀로 연습했습니다.

 

국가 대표로 경기에 출전했어요. 예선전을 치르는데

함께 나왔던 선수 두 명이 부정 출발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라인에 혼자서 서요.

그러니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혼자 서 있는 선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수영복도 유행이 지난 옛날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썼습니다.

그리고 휘슬이 울렸는데, 수영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전부 다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처럼 개 헤엄을 치면서 나아가는 거예요.

 

너무 사람들이 놀랐어요. 당시 100미터 자유형 세계 신기록이 48초였는데

이 사람은 50미터 반환점을 도는데 40초가 이미 되었어요. 사람들이 놀란 것입니다.

허우적거리고 너무 힘들어하니깐 ‘과연 끝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며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등수와 상관없이 온전히 나아갑니다.

그의 기록은 1분 52초, 초등학생들이 보통 1분 남짓에서 끊게 되는데,

1분 52초가 나온 것입니다.

 

인터뷰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완주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기록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100미터만 완주하자’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수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6년도, 6년이 지나서 그는 개인 신기록 52초를 이루었어요.

6년만에 1분 이상을 단축한 겁니다. 엄청난 성적이죠.

지금도 그 나라의 수영 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믿음!’ 등수와 상관없습니다. 메달의 색깔과 상관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트랙 위에서,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의 길을 온전히 나아갈 뿐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갈렙은, 어떻게 그렇게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을까요?

성경은 다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민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이 말씀을 가만히 주목하여 보십시오.

‘그러나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갈렙이 변함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냐면,

그 마음이 그들과 달랐답니다.

 

이 부분을 원어와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해석해 놓았어요.

그에게는 다른 영이 있었다 'he had another spirit', 'different spirit'

무슨 말입니까? 성령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그냥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를 온전히 쫓을 수 있었다... 라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그분을 온전히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산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생명력이 넘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말씀이 떨어질 때

어린아이처럼 그 말씀을 받습니다. 그의 영혼은 순수하고 맑고 깨끗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것을 믿고 나아가는 영혼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스가랴 4:6절은 다음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아멘!

 

사람의 힘으로 안 돼요. 인간의 능력으로 안 됩니다.

오직 여호와 영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줄 믿습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 충만이란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성령 충만은 순간의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평생을 충성하며 살게 만드는

인생의 방향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면 식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성령의 불은 꺼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갈렙은 85세가 되어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쳤던, 그 산지가 있었어요.

체력이 남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지가 강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의 기질이 도전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어요.

 

그의 마음이 성령 충만하였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 영혼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부름받았고요. 모세는 80세 부름받았고요.

갈렙은 85세가 돼도 그 산지를 외쳤고요.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갈 때가 83세쯤입니다.

사도 요한은 구십세가 되어서 유배를 갔지만, 그때도 성령 충만하여 계시록을 기록했어요.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명의 붙들린 바 되면 사명은 늙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신체의 어떤가 상관없이 사명이 이끌림 바 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헤브론 땅은 어디입니까? 그 산지는 어디입니까?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특수한 사명, 직장, 가정, 자녀 교회, 국가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그 사명을 주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성령 충만하여 온전히 그 사명 위해 살아가시다가

인생 마지막 날에 ‘하나님, 내가 그 산지를 향하여 온전히 나아갔습니다.

부족했지만 온전히 충성했습니다.’

 

그 말로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 마음 담아서 ‘주님의 주신 땅으로’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