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성전에 언약궤 안치 왕상8:1~11 여러 설교 정리
성전 건축 공사와 성전 안에 둘 기구들의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약궤(법궤)는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성막시대에 사용하던 성전 기구들은 교체했지만, 언약궤는 솔로몬시대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장막’에 있던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므로 <성전 봉헌식>을 하게 됩니다.
본 왕상 8장의 내용구성은
1~11절 언약궤 안치 *오늘은 11절까지만 살펴봅니다
12~21절 솔로몬의 봉헌사
22~53절 솔로몬의 중보기도
54~61절 솔로몬의 축사
62~66절 화목제의 희생 드림
▲언약궤의 이동 경로
법궤와 성막이 분리된 것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아벡 전투’에 가지고 나가서, 블레셋에 빼앗긴 때부터 였습니다.
나중에 솔로몬 성전이 완공된 뒤에, 법궤와 성막은 다시 예전처럼 합쳐집니다.
아벡 전투 이후 성막은 실로 ➔ 놉 ➔ 기브온으로 이동했고, *기브온 산당 경내
언약궤는 벳세메스 ➔ 기럇여아림(20년) ➔ 오벧에돔의 집(석달) ➔ 다윗의 장막(40년)
➔ 예루살렘 성전 완공 후에, 거기 지성소에 안치되되었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할 때, 놉의 제사장을 찾아가서,
성소에서 물려낸 빵을 제공받아 먹었던 것을 볼 때,
놉에 제사장들과, 성막이 있은 것을 알 수 있죠. *이때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후(7년 6개월간 통치),
법궤는 기럇여아림(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후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뒤,
법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다윗 성)으로 직접 모셔왔습니다.
이때 언약궤 운반 시도 중 웃사의 죽음(웃사 사건)이 발생하여,
법궤는 인근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머물렀던 적도 있었죠.
3개월 후 법궤가 마침내 '다윗 성'에 언약궤가 들어왔을 때,
다윗이 몸이 보이도록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일이 있었고,
이때 법궤를 다윗 성에 보존하면서 '다윗의 장막'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 종일 계속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막
모세가 만든 성소 장막(성막)은 기브온 산당에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10킬로 거리
그 성소 장막에서 언약궤만 따로 분리되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
다윗이 왕이 되면서, 언약궤만 다윗 성에 모셔왔습니다.
이때 다윗이 기뻐서, 자기 옷이 벗겨지도록 춤을 추었죠.
그 후 다윗 성에 임시 장막을 새로 만들어서 치고,
그 속에 법궤(언약궤)를 모셔두었습니다. 소위 이름하여 ‘다윗의 장막’입니다.
이제 솔로몬이 왕이 되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 성의 다윗의 장막에 있던 언약궤를
새로 지은 성전으로 모셔와서, 그 지성소에 안치했습니다. 그 거리가 600M 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거하실 ‘하나님의 집’이 다 꾸며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며
그분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성소에 안치되는 것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와 있는 것이 진정한 도리였습니다.
▲8: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솔로몬 왕은 성전 봉헌에 맞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언약궤를, 다윗 성에서, 솔로몬 성전으로 옮겨가기 위해서이죠.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의 모세 성막에서,
이제 영구적 건물인 솔로몬 성전으로 법궤의 자리를 옮기는 봉헌식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뜻깊은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두 소집된 자리에서
성전 봉헌식은 성대히 거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장로와 족장들’은 중앙집권 정부가 임명하는 관료와는 구별되는 존재들로,
혈연 및 지파 공동체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동체 내의 유지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봉헌식에 국민의 대표자격인 이들을 소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윗 역시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소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삼하6:1
▲8: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솔로몬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는 다윗성, 곧 예루살렘 남동쪽 구역에 있었던
시온성에 있었는데, 본문 2절에서처럼 에다님월인 7월에 성전 봉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한 달을 당겨서 봉헌식을 하든, 열한 달을 늦춰 봉헌식을 가지든 간에
7월을 그렇게 고집한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유대인의 종교력 기준으로는 에다님 월이 7월이며,
이 시기에 나팔절(새해)과 대속죄일, 그리고 장막절이 연이어 시작됩니다.
태양력으로는 9월말~10월 초입니다. 주1)
우리가 잘 아는 초막절은 바로 7월에 있으며, 15일부터 시작하여 칠 일간 거행되는 절기로,
연중 절기 중 가장 크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수확의 절기이면서
광야 나그네 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전 봉헌식을 7월에 일부러 맞춘 것입니다. 당시는 걸어다니는 시대였으니,
지방에 있는 12지파 대표들이 모두 참석하려면, 아예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는 김에
성전봉헌식을 같이 치러서, 편의를 제공한 것이죠. 초막절+성전봉헌식을 묶은 것입니다.
이 초막절은 그 순서에 있어 율법이 낭독되었는데,
언약 갱신의 목적을 지닌 순간에 율법의 판이 담긴 그 법궤를 성전에 안치하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초막절 행사는 광야생활 동안 지켜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절기이기에 유리방황하던 언약궤를 안식의 장소인 솔로몬 성전에 안치시키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8: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민수기의 규례에 따르면, 언약궤는 레위인들이 메어야 했죠.
그러니 손을 대어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민 4:15).
그런데도 다윗은 언약궤를 옮길 때, 그것을 수레에 싣게 하였고,
게다가 웃사는 손을 대기까지 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죠. 삼하6:3-7
이제 솔로몬은 규정대로 궤를 운반하였습니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5:4에서는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본문 3절과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궤를 멘 자들은 '레위족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하 5:7
원래 언약궤의 운반은 레위인 가운데서도 고핫 자손에게 맡겨졌으며, 민3:30~31
언약궤(법궤)에 덮개를 씌우거나 벗기는 일 등 언약궤를 실제로 돌보고 감독하는 일은
언제나 고핫 자손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인 아론의 자손들에게 속한 일이었죠. 민4:5-15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언약궤의 운반을 고핫 자손에게 맡기지 않고
상위 직위인 제사장들에게 직접 맡긴 것은, 성전 봉헌식을 더욱 경건하고 비중있게
거행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직접 멘 실례는 매우 의의 깊은 역사적 사건,
예를 들면 요단 강 도하시(수3:6, 17), 여리고 성 포위시(수 6:6)등에
이미 시행된 적이 있었죠.
▲8:4~5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날이 이르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일제히 언약궤를 비롯한 거룩한 집기들을 어깨에 메고
성전으로 향했고,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셀 수 없는 짐승들을 잡아
계속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제사는 언약궤를 성전 안에 들이기 전에 언약궤 앞에서 드려졌으며,
언약궤를 들여놓은 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에, 제사장들이 서서 섬길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 제사가 자신들의 허물을 고백하며
하나님과의 은혜로운 언약관계를 다시 받아들이는 의미로 드려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왕과 백성들은 이때 법궤 앞에서 감사와 기쁨의 제사로 성대히 베풀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때의 희생 제사는 단순히 정결만을 위한 예식이라기보다
성전 낙성식으로 갖는 축하와 기쁨의 잔치였을 것입니다.
유대사가 요세푸스는 궤가 지성소에 안치되기까지, 백성들이 노래하며 춤추었다고 전합니다.
▲8: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지성소)로'
성전의 핵심이, 지성소요, 언약궤입니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죠.
따라서 법궤 자체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되기도 하였습니다. 민10:35, 36
그러므로 법궤가 성전의 자기 '처소'(마콤) 즉 제 위치에 안치됨으로써,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가장 요긴한 부분의 일이 마무리된 것입니다.
만약 성전에 언약궤가 없다면, 그야말로 (이런 표현이 죄송하지만) 안코 없는 찐빵인 셈이죠.
성전을 아무리 크고 위용있게 지었다 하더라도,
언약궤를 모시기 전까지는 ‘비어있는 성전’이었고,
‘언약궤를 모심으로써’ 비로소 성전 건축의 화룡점정을 찍은 것입니다.
♣적용 / 나의 성전에는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나요?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나요?
신약에는, 성도인 우리 각자를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전에는 ‘언약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가 있어야,
비로소 성전이 성전 답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야말로 빈집에 불과합니다.
겔47장에 보면, 천상의 성전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겔47:1 ‘물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 나와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로서
이것은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문지방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지방’은 성소, 지성소를 뜻합니다.
거기서, 즉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문이 닫혀있으니 (성소, 지성소는 아무나 못 들어가죠)
생명수가, 그 닫혀진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입니다.
새어나온다는 것은.. 터져나온다, 밀치고 나온다, 아무리 막아도 흘러나온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여기에 언약궤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있어야 당연한 거죠.
거기서 아무리 막아도, 막아도
생명수가 새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겔47장에,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이제는, 성전 마당의 번제단으로 흐릅니다.
번제단은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리는 곳이죠.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제단을 거쳐서 (돌아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신약의 제단인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수 같은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감아서 (돌아서) 흘러나갑니다.
이 물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즉 구원뿐만이 아니라 그 구원의 감격에서 나오는
우리의 삶을 회복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말합니다.
이 은혜와 능력이, 성전(참 교회)를 통해 주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생명수를 솟구쳐 내어야 하며,
우리 교회가, 이 생명수를 솟구쳐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한복음 19:34절에 보면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물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수가 흐르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즉 구원의 감격 위에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를 드려질 때
생명수가 흘러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구원의 감격 위에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생명수가 흘러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겔47:7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여기서 ‘나무가 많더라’는 말은 단지 나무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나무와 함께 그 열매도 풍성함을 내포한 말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심히 많아집니다.
시1:3절에 복있는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형통하리로다.
바로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흘러내리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강가에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면서, 우리의 삶이 형통할 줄 믿습니다.
은혜 받으면 강 좌 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은 것 같이
형통한 삶, 존귀한 삶을 살 줄 믿습니다.
▲8:7~8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모세 성막의 다른 모든 기물들은 솔로몬 성전 규모에 맞추어 모두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이 언약궤만은 시내 산에서 만들어진 바로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거하시는 모습 중 두 가지 주목해야 할 표현이 나옵니다.
1) 첫째는 언약궤를 메고 온 ‘채’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이미 언급된 대로(출25:15) 언약궤는 채를 고리에 꿰어 그대로 두어졌습니다.
동서로 위치한 성전에 반해, 언약궤는 남북으로 놓여진 형국이기에
천사의 날개로 언약궤 속죄소를 가리게 되면
지성소 문을 열더라도 항상 언약궤 속죄소는 어두운 상태에 있게 됩니다.
지성소, 성소에는 창문이 없었고, 등잔대가 그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했죠.
출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릅 천사의 날개가 가려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하기에 채는 보일지 몰라도, 멀리서보면 언약궤 속죄소는 직접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 같은 모습은 마치 신부가 면사포를 가리고 신비스럽게 나타나는 것과
그 원리적인 면에서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9-10절에 나오는 성전에 가득한 구름입니다.
언약궤가 지성소 안에 들여진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기에, 성전에 구름이 가득 덮여졌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 강렬해서 인간이 직접 대면할 수 없습니다. 출33:20
그런 점에서 구름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면사포’ 역할을 해주었죠.
누구든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기 때문에,
하나님이 스스로 이렇게 자신을 가려주시는 것이죠.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산을 가득 둘렀던 것도 구름이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 제자들을 덮었던 것도 바로 동일한 구름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그 백성들의 기도와 제사를 받으셨다는 증거이며,
무엇보다 성전을 거룩한 거처로 삼으시겠다는 응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에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와 증거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되면, 백성들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기보다는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거룩한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가 자신의 부정한 입술을 탓하며 두려워했던 것과 같은 상황과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두려운 영광은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도 이 크고 두려우신 분 앞에 우리의 삶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구름'으로 번역된 '아난'에는 '흐림', '안개'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 성경에는 언제나 구름으로 번역되어 있죠.
그리고 성경에서 사용된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연관되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거죠. (시18:11, 사4:5, 단7:13, 마17:5, 계1:7)
예를 들면 시내 산과 그리고 출애굽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는 항상 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출19:16, 24:15-18)
이러한 구름이 이전에 성막 봉헌시에도 나타났고, 출40:34~35
지금 성전 봉헌시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이전의 모세 성막을 승인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이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 처소로 승인하셨다는 것입니다.
▲왕상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 장면 역시 구름 때문에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세와 비교됩니다. 출40:35
즉 그때의 일이 지금에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의 모세 성막과 마찬가지로
솔로몬 성전 역시 자신의 영광의 거처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여호와의 영광(구름)이 나타납니다.
신약적 표현으로 하면 ‘기사와 능력’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하시는' 가시적 표입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여기서 ‘따른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자연히 동반된다’는 뜻입니다.
그걸 인위적으로 추구하거나, 사역자가 그걸 따라가면 이단으로 빠지게 되지만,
참된 영적인 사역자에게는.. 임재의 구름이 뒤따르게 되어있고,
신약적 표현으로는 ‘기사와 표적’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달라고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자연히 드러나는, 동반되는 것이니까요.
오늘 우리의 말, 설교, 찬양, 사역, 봉사에.. 이런 ‘구름의 임재’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신다는 표입니다.
그게 특별한 게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이란 말이죠.
그게 은혜로도 나타나고, 가르치는 권위있는 말씀으로도 나타나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따뜻한 표정과 말씨, 온화한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만약에 그게 (구름이, 임재가, 기사와 표적,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인간적이고, 인위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역이란 뜻입니다.
뭔가 사역의 순수성을 상실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2천년 기독교 전통에서는 ‘halo - 헤일로’를 중요시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에게는, 그의 머리 뒤에 halo가 뜬다는 것입니다.
이게 실제로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 언어, 그 얼굴 빛, 그의 행동거지에서.. ‘하나님의 임재 표식’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그것을 ‘halo - 헤일로’로 불렀습니다.
성화에 보면, 그 성자들 머리 뒤에 동그랗게 노란색 헤일로를 그려 넣었습니다.
♣후광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정말 성자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그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거룩한 줄 모르고 거룩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어떤 것에도 상관없이
항상 처음처럼 새롭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람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한번은 수호천사를 불러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을 하나 꼭 들어주도록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수호천사가 그에게 모습을 보이고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원이라고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글쎄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그는 한사코 소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천사가 "네게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의 은사를 줄까?" 묻자,
병자를 치유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라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죄인들을 회개시켜 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힘을 줄까?" 묻자,
그런 일이라면 당신들 천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거절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천사가 "그러면 너의 거룩한 삶을 사람들이 모범으로 삼아
존경할 수 있도록 해 줄까?" 하고 묻자,
그는 펄쩍 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교만해져서 사람들에게 오히려 해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는 꼭 들어주어야 한다는 명을 받은 천사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난처해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통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시되,
그 사실을 내가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천사는 하나님께 가서 그대로 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천사를 시켜 그 착한 사람에게 후광(後光)을 걸어 주도록 하였습니다.
(자기는 광채가 나는 것을 모르게 됩니다. 다른 사람만 보게 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능력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평소에, 일상에서 살아갈 때,
자신은 모르지만, 자기에게 후광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
주1)
유대 종교력 7월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다님’은 ‘시내에 물이 흐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2
우리로 말하면 9-10월에 해당하는 7월은, 건기가 끝나고 이른비가 내리는 때로서,
이때 시내가 흘러내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서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여졌으므로
당시 7월이 ‘티슈리’로 바뀌어져 있었기에 *바벨론 어
특별히 ‘에다님월’이라는 설명어구를 첨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