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려고 하지 마세요. (딤전 6:3-10) 2026.07.19 Youtube
◈부자 되려고 하지 마세요 딤전6:3-10 2026.07.19
설교의 제목은 "부자되려고 하지 마세요" 입니다.
자, 뉘앙스를 잘 보셔야 돼요.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입니다. 이해하셨어요?
네, 오늘 설교 내용을 이제 들어보시면, 더 잘 이해가 되실겁니다.
딤전5장에서는 교회 안에 여러 그룹들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리고 오늘 이 내용은 '참된 경건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다른 교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른 교훈'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다르다'라는 단어는, 이질적이다 라는 뜻의 헤테르 인데요. *헬라어
'바른 말씀의 기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자 그러면 그 기준점은 무엇인가요? 위 3절에 말씀한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항상 기준점이죠.
그리고 그 말씀과 더불어서 3절에는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고 표현했는데,
'경건, 참된 신앙'에 대해서, 이것이 무엇이라고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들이 있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의 교훈이,, 그 기준점이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이단'이라는 말은, '끝이 다르다'는 뜻이거든요.
내용은 거의 똑같은데, 끝(결론)만 살짝 다른 거예요. 그래서 엉뚱한 결론이 나오는 거죠.
여러분, 일반 성도들이, 일반 교인들이 이단을 분별하기가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네, 어려우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빠지겠죠.
그래서 '뭔가 다른데, 뭔가 이상한데..' 그러면 따라가지 마시고,
'그래도 괜찮겠지?' 이렇게 따라가시면 안 되고,
일단 예의주시를 하시고, 제보를 하셔야 됩니다.
제가 교회개척운동을 하면서 '정말 도시마다 강력한 예배공동체를 세워야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 견고한 교회를 세워야겠다'
그런데 이제 그동안 제가 [성경통독 사역]은 했지만,
지금 성경의 주요 질문들의 문답을, 제가 집필을 하고 있잖아요.
[통독]과 [성경문답], [교리문답]이, '바른 교훈'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교리문답]은 작년에 쓴 <새신자가 묻다> 책이 그런 내용이죠.
이런 내용을 중요한 컨텐츠로 해서, 교회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도록 해야겠다...
이런 선물을 하나님이 주신 게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구시대적으로, 주입식 교육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기독교 변증식으로, 이 시대의 영혼들을 일깨울 수 있는 말씀사역이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딤전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자, 기준은 예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인데,
이 성경 말씀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 맘대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자기가 기준이 된다...
여러분, 이거는 교만한 건가요, 교만하지 않은 건가요? 엄청 교만한 거죠.
그래서 교만은 사실 '거짓'에 해당이 됩니다.
전능자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절대화 시키는 것이,
영적 관점에서 보면 교만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교만은 또 사탄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천상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시도하다가, 쫓겨나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 구절은, 여러분 뭐 기억을 하시기가 좀 쉬운 구절이 아닐까 싶은데,
이사야 14:1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네, 이런 시도를 하다가 바벨탑이 무너진 것이고,
이런 시도를 하다가 바벨론이 멸망했고,
또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사탄은,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자 하나님의 절대 진리의 말씀 앞에,
기꺼이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반응할 수 있는 순전한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왜냐면 이런 ‘바른 기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 틈새로 교만이라는 게 생겨서, 변론과 언쟁이 일어나고,
투기와 분쟁, 비방과 악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절대성을 가진 말씀이, 상대적인 모든 존재들을 다 품으시는
그런 어떤 역설적인 은혜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세대, 모든 성향, 모든 배경의 사람들을 품어주시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큐티 사역을 담당했고,
제 바로 옆자리에 친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은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어요.
근데 하루는 그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큐티는 말씀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위험하지 않냐?
말씀의 절대 기준이 있는데, 그걸 개인이 큐티하면서 주관적으로 적용하면 되겠냐?’
그래서 제가 대답을 드렸죠. ‘맞는 말씀입니다. 성경 공부는 말씀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고,
큐티 말씀 묵상이라는 것은 주관적 접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 공부는 10명이 한 본문을 놓고 성경 공부를 하면,
다 대동소이하게, 똑같은 결론에 이르게 돼 있어요.
그런데 말씀 묵상이라는 것은, 똑같은 본문을 놓고 10명이 묵상을 해도,
다 다른 개인적인 적용을 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정말 다이아몬드처럼 굉장히 많은 면을 갖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개개인에게 필요한 적용점을 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놀라운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절대적인 말씀이지만, 상대성을 품어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은, 진리 밖에서 자유한 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자유해야 되는 거죠.
‘나는 바른 교훈의 진리를 벗어나서 나는 자유하겠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자유한가요, 자유하지 않은가요? 자유하죠.
물고기가 물속에서는 어디든지 마음껏 움직일 수 있잖아요.
그러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뭍으로 뛰쳐나가서 ‘내가 여기서도 자유하겠다?’
그거는 불가능한 것이죠.
여러분,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신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상실하고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했어요.
어떻게 ‘경건이 이익의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얘기합니다.
자 그런데 그런 경건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궁극적인 목표지점이죠.
그런데 그 경건을, 자기가 세상적인 이익을 얻는 데 도구로 쓴다는 거예요.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는 데 있어서,
자신의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서,
그런 경건의 모양새를 사용하는 거죠.
▲제가 이 부분을 이렇게 묵상하는데, 두 사람이 떠오르더라고요.
여러분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제가 예전에 청년부를 섬길 때였는데, 찬양팀으로 정말 열심히,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찬양팀에서 참 열심히 섬기는 형제였어요.
그런데 기도집회가 새벽이든 저녁이든, 기도집회가 끝나고 나면,
꼭 싱글 자매들을 기도를 해주겠다고 으슥한데 데리고 가는 거예요.
‘아니 여기서 기도하면 되지, 왜 자꾸 딴 데로 데려가냐?’
그래서 몇 번의 제보가 들어와서 못하게 만들었죠.
여러분, 경건을 가장한 자기 사심을 채우려는 거죠.
새벽기도를 정말 신실하게 나오는 한 사업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정말 그렇게 새벽 기도 신실하게 나오니까
주변에서 집사님, 권사님들이 다 그분을 신뢰하게 되잖아요.
근데 그분들에게 투자를 받아서, 수억을 사기를 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경건을 미끼로, 자기가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게 옳은가요, 그른가요?
매우 그릇된 것이죠.
예수님 당시에 여러 종파들이 있었는데, 바리새파를 예수님이 가장 많이 책망하셨어요.
그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은’ 거예요.
경건주의를 표방한 사람들이 바리새파였어요.
그런데 경건주의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신앙활동을 통해서 권력을 얻고, 재력을 얻고,
세상적인 지위상승을 노렸던 것이죠.
자 그래서 ‘경건과 이익’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비교를 해보자면,
경건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잖아요.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가 잘 되고자 하는 것!
여러분, 이런 게 우리 신앙생활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네,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사실 기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할 때,
‘하나님 제가 이렇게 예쁘게 열심히 하니까, 제게 잘 해주세요.’
하나님께 내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하는 게
내가 잘 되기 위해서 하고자 하는...
근데 이게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거의 다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신앙생활에서 경건을 추구하는데,
-정말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목적이어서 그 길을 가느냐?
-아니면 이 경건이 내게 뭔가 유익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냐?
이건 굉장히 미묘한 차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개개인이 스스로가 가장 정확하게 아는 거예요.
▲저희가 작년에 이어서 올해 두 번째로 ‘임직자 훈련’을 합니다.
저희 교회 임직 기준을 세우면서, 제가 중요하게 결정한 건 뭐냐면,
“일정 교육이나 훈련을 이수만 하면, 이분이 아무 사역을 안 해도 직분을 주는 게 아니라,
현재, 신실하게, 성실하게, 꾸준히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 있을 때, 직분을 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교회에서 이 ‘직분’이라는 것이, 이익의 도구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런 사역을 안 하는데, 내가 소정의 과정만 거치고 나면,
어느 정도 햇수만 지나면...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받는다?
그러면 이게 감투가 되는 거예요. 자기 영광이 되고 마는 거예요.
그러면 직분의 본질이 섬김이잖아요.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아예 아무 직분도 안 주는 경우들도 있더라고요.
이것이 일종의 사람들에게 파워게임이 되기 때문이에요.
제가 얼마 전에 한 지역교회 목사님이 제게
‘교회 장로님들이 어떻게 몇 명 되느냐고?’
그래서 제가 ‘올해 두 분 연말에 더 세우면 총 네 분이 됩니다’ 그랬더니,
‘아니 개척한 지 3년여 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장로를 많이 세웠냐고?’ 그러면서,
시중에 개척한 교회들은, 처음부터 담임목사에게 리더십이 있으니까,
담임목사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방향대로 가고 싶어서,
일부러 장로를 10년 동안 안 세우는... 이런 교회들도 있어요.
그럼 과연 그게 옳은 것이냐? 라는 거죠.
여러분, 장로도 안 세우고, 권사 집사의 임직도 안 하고,
성도들 간에 서로에게 형제자매라고만 부르는 교회가 있어요.
목회자에게도 형제님이라고 부릅니다. 직분이 없어요.
이런 교회를 ‘형제교회’ 라고 합니다. Brethren Church라고 하는데
여러분 이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이단이에요. *또는 극단 extreme
이 교회는 '우리는 초대교회를 지향한다' 이렇게 주장해요.
그러나 신약의 에베소 교회도 초대교회인데,
에베소 교회에도 3장, 4장, 5장을 쭉 보면 직분이 있었어요.
초대교회라고 직분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직분이 꼭 있는 게 문제가 아니고, 직분을 없앤다고 해서 그게 또 해답이 아닙니다.
직분의 유무를 떠나서, 이런 외적인 것을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사용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게 중요한 것이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정치계나 회사나
직분, 어떤 직함을 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책임을 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책임은 다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위만 내세운다?
섬기지는 않으면서 누리기만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리더십 포지션에 있으면, 조직 전체가 어려워지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극단적인 평등주의로 가자’ 아니면 ‘무정부주의로 가자’
과연 그게 옳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의 위계에 가운데, 탑 포지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기꺼이 섬겨주신 거예요.
리더의 포지션, 직함이 왜 필요한가요? 그건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섬김을 위한 자리인 것이죠.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안 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 것이냐? 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딤전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그래서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쪽으로 가지 말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경건을 추구하라’ 이렇게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족’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세상적인 것을 얻어야만 만족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마음 상태가 충분하게 만족이 돼 있는 자!
그러면 크리스찬들이 자족이 가능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첫 번째는, 세상 영광이나 세상 자랑이나 세상 유익..
이거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 세컨더리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어떤 게 본질적인 것이냐?
오직 예수, 오직 진리,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본질이라는 것을 아는 거죠.
이 두 가지를 알게 되면, 내가 세상에 뭐가 없어서 마음이 늘 결핍 상태에 있고,
이런 상태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존재의 위계질서를 놓고 보면, 이건 너무너무 당연한 거예요.
제가 질문 하나 해볼게요.
‘일시적인 것이 있고, 영원한 것이 있다면.. 어느 쪽이 더 본질적인가요?’
영원한 것이잖아요.
그리고 ‘어느 쪽이 부차적인 거예요?’ 일시적인 거죠.
가령 예를 든다면 이런 거에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최애 식당이 있으시죠?
가서 식사하기 좋아하는, 그런 가장 좋아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근데 만약에 그 식당에서 ‘1회 식사권’하고, ‘평생 무료 식사권’
둘 중의 하나를 준다면, 뭐가 더 좋은 거죠? 평생무료식사권이 좋은거죠.
그러면 하나님의 그 영원의 뷰포인트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면
세상 영광과 세상 자랑, 세상 유익은 마치 ‘1회 식사권’과 같은 거예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가치는, 이런 세상 것과 비교가 불가하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소유를 강조하거나, 금욕주의를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이미 디모데전서 4:4절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감사함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감사함으로 받아야 되는데, 이게 과도해지면 안 된다는 거죠.
*뭘 주시든지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이 막 정신없이 자기 일을 하다가,
휴가철은 다들 놀고 먹고 쉬는 때잖아요. 그러다 보면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여러분의 마음에 생각하기를
‘휴가는 한철이다... 너무 몰입하지 말자’
여름 한 철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인생의 한 철은 그냥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영원한 것,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줄로 믿습니다.
자 이런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유익이 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어요. :6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삶을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정말 내 삶의 최고의 본질적인 우선순위가 되려면,
'아 세상 영광과 자랑은 매우 부수적인 거구나' 라는,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거예요. 만약에 자족하는 마음이 없잖아요? 그럼 경건에 이르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저는 성공도 해야겠고, 물질도 명예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은 뭐라고 반응하실까요?
‘오 그래? 너는 나만으로 만족이 안 되니?
나만으로 만족이 안 된다면 경건해 이르기는 굉장히 어려울 거다’ 이렇게 반응하실 거예요.
▲사도바울이 청년 시절에 최고의 랍비 교육과, 최고의 헬라 교육을 받았죠.
그리고 나면서부터 태생적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바울은
정말 가문도 명문 가문의 자제였어요.
오늘날의 표현으로 얘기하자면 남부러울 것이 없는 금수저였습니다.
그런 청년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리고 나서 그의 인생의 모든 존재의 위계가 뒤집어지게 된 거예요.
그거를 표현한 게 빌립보서 3: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8
자 이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얻기 위해서!’ 할렐루야!
여러분 사도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고급하게 만들어주는
사회적인 컨디션 조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을 만나게 된거에요.
그래서 ‘나는 그분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이 고백을 하고 나니까,
사도바울의 인생에 “자족”이라는 게 엄청난 능력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방금 읽은 빌3장에서 한 장 넘어가면, 빌4장에 나오는 표현인데요.
빌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3
우리는 이 13절을 엄청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13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1절과 12절을 이해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13절을 받아들이셔야 되는 거예요.
여기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모든 미션들을, 내가 초월적 능력이 생겨가고 다 할 수 있다’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삶의 부요한 풍요로운 극단과, 반대로 정말 궁핍한 극단, 그 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11절부터 문맥에 맞게 해석하면, 그렇게 되죠.
여러분, 풍부에 처해도, 비천에 처해도,
아니면 인생이 평탄하거나, 또는 환란 가운데 있어도,
건강할 때도, 연약할 때도
일체 만족의 비결, 일체 자족의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뭐냐면
내 인생이 평탄해야만 내가 능력이 생기거나,
아니면 내가 육체적으로 건강해야만 능력이 생기거나,
아니면 내가 물질적으로 부요해야만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정말 본질적인 능력을 내게 주시는 분은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빌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이 누구시겠어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주님이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만이 나를 진정으로 강력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삶의 상황이 어떠하든 이게 상관이 없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의 중년을 지나다 보면,
건강이 이렇게 좀 시즌마다 업앤 다운이 있잖아요.
우리가 이제 학기제로 하는데, 한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저는 체력이 약간 하향곡선이 되더라고요.
그럴 때는 몸이 지치면, 마음도 지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럴수록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건강해서 모든 걸 다 할 것처럼 하는 게 아니라,
연약한 중에도 나에게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이 인생을 감당하고 사명을 감당하는구나’
이거를 깨우쳐 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고후12:9절 이것도 동일한 사도바울의 고백이죠.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그러므로 ‘나는 약하기 때문에 결핍 가운데 있어,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결핍 가운데 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거예요.
약할 때 강함 되시고, 가난할 때 부요케 하시고,
내가 무지할 때 지혜를 주시고, 무능할 때 능력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반전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족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거에요.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자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뭐 이렇게 물건들 잡고 태어나셨어요?
그런 건 뭐 돌 때나 하는 거지... 세상에 태어날 때는 맨몸으로 태어났잖아요.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도 맨몸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바울이 8절에 뭐라고 얘기하냐면
‘아니 세상 살 동안 먹을 것과 입을 것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라!’
‘아니, 내가 한 끼 식사하고, 입을 옷 한 벌이 있다고 그걸로만 어떻게 만족하냐?’
인생에 원하는 거, 필요로 하는 거, 갈망하는 게 너무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의식주 문제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 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얘기하신 마6: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람들이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가 앞부분 때문일까요, 뒷부분 때문일까요?
네, 뒷부분이죠.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이 구절을 계속 보시면, 이 구절이 의미하는 건 뭐냐면, 선택과 집중이에요.
여러분 사업을 할 때도 선택과 집중이잖아요.
공부를 할 때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내가 어디에 중점적으로 공부를 할 거냐?
선택과 집중이잖아요.
인생도, 신앙도.. 선택과 집중인 거예요.
그런데 내가 세상 것도 가지고 싶고, 하나님 사람으로도 살고 싶고,
이 두 가지 중에 명확하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 이 우선순위를 정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채워주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무엇으로 사는가’ 와 ‘왜 사는가?’의 차이입니다.
‘오늘 뭘 먹지? 내가 오늘 뭘 입고 살지? 내가 어디서 누워 자며 살지?’
이렇게 무엇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 인생, 내 생명, 내 재능, 나의 모든 것을 쏟아버려도 아깝지 않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궁극적인 비전, 이게 명확한 사람은
나머지는 자연히 채워지게 돼 있다’ 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딤전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여러분 2002년도에 엄청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CF 광고가 있어요.
배우 김정은 씨가 “부자 되세요!” 이 광고 카피 한마디에,
온 국민이 그냥 너무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그냥 광고 그 말 한마디만 들어도...
왜냐면 2002년도는 IMF 외환위기가 끝나가면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엄청 힘들 때였거든요. 그래서 이게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게 됐죠.
자 그런데 오늘 성경은 정반대 얘기를 하는 거예요.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오늘 내가 왜 이런 설교를 듣나?’ 이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이유를, 9절에서 뭐라고 얘기하냐면,
‘그러다가 시험과 올무에 빠진다. 거짓되고 해로운 욕심, 탐욕에 빠진다’
‘결국에 그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파멸과 멸망에 이르게 될 거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이유가 뭔가요?
마6:2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긴다’ 이거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표현,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뭐냐면,
왜 ‘재물을 섬긴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재물을 섬긴다’고 말씀한 건 뭐냐면,
하나님을 워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는 게 아니라, 재물을 섬기는 거예요.
정말 물신숭배,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술하고 친하신 분들이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이런 삶을 살게 되면 주객이 전도되는 거잖아요.
모든 중독적인 삶의 패턴은 딱 똑같은 모양이에요. 주객이 전도되는 거예요.
사람이 물질 중독에 빠지면, 내가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데,
물질이 물질을 부르고, 물질이 나중엔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거예요.
물질에 따라서 사람들이 현혹이 되고,
그것에 따라서 자신의 양심, 자신의 어떤 사회의 법적 기준 이런 것까지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물질이 넉넉하면 좋은 점들도 많이 있죠.
그러나 반드시 물질이 넘치게 되면, 향락과 유혹과 타락이 따라오게 돼 있어요.
자 돈 문제 때문에 부부간에 치정극이 벌어지기도 하고,
부모 자식 간에 형제 간에 유산상속 다툼을 하는... ‘저 사람들이 정말 가족이 맞나?’
이런 법적으로 암투를 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고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자기 가족을 죽이는 존속살해.. 이런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전혀 모르시는 일들인 것 같아요. 표정상.
근데 이게... 먼 데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돈에 사로잡히면,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고, 가족도 눈에 보이지 않고,
형제,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만 안 보이느냐?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왜요? 물질이 최고니까, 물질이 지배를 당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10절에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 역할을 한다.. 이게 탐욕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5절에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자 구약에서 엄청나게 많은 하나님 말씀의 계명을 주셨는데
그 중에서 열 가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정리한 게 뭐예요? 십계명이잖아요.
십계명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탐심이에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관계에 대한 말씀이잖아요.
제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어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거짓 증언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 그리고 어떤 종류든 탐심을 갖지 말라’
이 여섯 가지예요. 이거를 탐심으로 다 해석이 가능해요.
부모라는 포지션이 있잖아요. 부모라는 그 포지션에 대해서
내가 충분히 존경하고 따라가야 되는데, 내가 그걸 하지 않겠다라는 것은
리더의 포지션을 탐하는 거예요. 권력욕이죠.
살인하지 말라.. 말씀하셨는데, 살인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탐하는 것이고,
간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순결을 탐하는 것이고
도둑질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하는 것이고
거짓 증언, 위증은.. 다른 사람의 진실을 빼앗으려는, 탐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떤 종류든 ‘탐심을 갖지 말라’는 거예요.
탐심에 사람이 사로잡히고 종노릇을 하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고,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를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5계명부터 10계명만 탐심일까요?
이 탐심이 나를 압도하면,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도 경외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면 1계명부터 10계명까지 다 ‘탐심’ 때문에 무너지는 겁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거에요.
근데 ‘탐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게 아니라, 세상 것을 갈망하는 거에요.
사실 ‘물질’이란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수단이고, 도구인데,
이게 주인의 자리에 올라앉으면, 현대인들이 짓는 이 모든 세속적인 죄악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게 된다라는 거예요.
자 그래서 뭐 요즘 세상에 ‘부자가 되는 법’ 뭐 이런거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리고 땀 흘려 노동하지 않아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 많죠.
△자, 부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에게 권면을 드립니다.
현대인들이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여러분 돈을 사랑하지 마시고, 먼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돈을 사랑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이웃을 진정성 있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미 읽었던 것처럼,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떠나잖아요.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고 가는 것이 없이 떠나는 날이 오게 될 거예요.
여러분, 그 떠나는 날이 오기 전에, 여러분에게 도구적으로 허락하신 이 물질들을
선한데 사용할 줄 아는, 선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기꺼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리시고
두 번째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 위해서 플로잉을 기꺼이 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마음 가운데 ‘나는 하나님 사랑하지, 나는 이웃을 사랑하지’
그런데 물질이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면... 사실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물질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산상수훈에 말씀했잖아요. 마6:21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훈련을 하시면 좋겠어요. 훈련이에요. 플로잉도 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도 훈련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임하게 되어 있어요.
아,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렇게 물질을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대로 쓰기 시작하면
성경적인 물질관이 생기죠. 그리고 그 가치관과 철학 때문에
여러분의 소유하고 있는 물질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자 제가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 이해하셨죠?
‘엄마, 목사님이 부자가 나쁜 거래’ 뭐 이렇게 얘기하지 마세요.
성경은 부자 되는 것을 나쁘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욥과 같은 거룩한 부자들이 있잖아요.
잠언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하게 되느니라’
그래서 성경은 근면성실해서 부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의 인생에 복이 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물질의 복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겁니다.
다만 그 똑같은 잠언에서도 ‘이게 탐욕으로 가면 안 된다’ 이 얘기를 합니다.
잠언23: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부자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지,
돈 많이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한 10여 년 전부터 그 이전에는 초등학생들에게 ‘네 장래 희망이 뭐니?’ 물으면
‘저는 의사예요. 저는 파일럿이요. 저는 우주비행사예요.’ 이런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한 10여 년 전부터 초등학생들한테 ‘장래 희망이 뭐니?’ 그러면
‘돈 많이 벌어서...’
‘돈 많이 벌어서’가 모든 아이들이 입에서 나와요. 누가 가르쳤겠어요? 부모가 가르친 거죠.
직종에 상관없이 ‘돈 많이 벌어서...’
돈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 의사가 ‘돈 많이 버는’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재앙이죠)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인생이 가치있게 쓰임받기 위해서 수단과 도구로 주시는 거지,
그것이 인생 목적이 되면, 그 인생은 망가지게 돼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사업하는 분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데 잘 들으세요.
사업에 성공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봤어요.
사업에 성공을 한 그리스도인들이 두 가지 갈래로 인생을 가게 되더라고요.
-한편은 돈이 많아지고 여유가 생기니까 향락과 안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기꺼이 쓰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자, 제가 목회를 하면서 또 주변에 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실패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봤어요.
근데 이 사람들도 인생의 미래가 두 갈래로 갈라지더라고요.
‘아니 어떻게 내가 이렇게 주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업을 실패하게 만드시느냐?’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나오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한때는 정말 연간 매출이 몇백억 하면서, 정말 내가 부요하게 살았는데
교만과 안일과 탐욕에서 하나님 나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 사업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을 더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하며 따라가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여러분, 내가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에, 우리는 목을 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여러분이 평생에 여러분의 존재를 갈아 넣고,
거기다가 다 쏟아 부을 인생의 마지막 궁극적인 목표냐?’ 라고 성경은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아주 쉬운 질문을 해볼게요.
‘여러분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게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않아요.
여러분 그러나 모두가 주 안에서 성공하고 승리할 수는 있는 거예요.
제가 이거 찾아봤어요. 제가 한 10여 년 전에 어떤 사업하시는 분이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목사님, 신규 사업해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다시 찾아봤어요. 식당을 10개 신장개업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이 분들이 3년 뒤에 그 식당이 서바이벌을 할 수 있는, 남아있을 수 있는 확률이
10개 중에 몇 곳일까요? 1 곳이더라고요. 10%
회사를 열 곳을 새로 창업해서... 사람들이 자기 이제 사업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세요.
5년 뒤에 그 회사가 남아있을 확률이 10개 중에 몇 개일까요? 3개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번에 찾아보니까, 더 놀란 것이, 투자를 유치하는 스타트업 회사가
성공할 확률은 몇 %인 줄 아세요? 몇 프로일 것 같으세요?
0.2%예요. 0.2%!
1천 명 중에 2명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제 또 궁금했어요. ‘대한민국에서 학생이 공부로,
학업으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니?’ 하고 AI한테 물어봤어요.
AI가 몇 프로라고 대답한 줄 아세요? 2%
부모님들, 자녀들을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사업해서 사업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고 다 성공하나요?
애들한테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라’ 그게 우리가 늘 자녀들한테 거의 강박에 시달릴 만큼
반복해서 얘기하는 거잖아요. 그게 가능한가요?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 인생의 승리는, 내가 세상 적인 기준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구나’
이것은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는가?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학교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요.
불평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불평거리가 늘어나게 돼 있어요.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감사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4가지 실제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첫 번째는 식사할 때 감사 기도 하시는 거예요.
이거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아 하나님 내가 오전에 열심히 수고했는데
이렇게 점심 먹을 수 있게 해주셔서,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
2) 또 하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 감사기도 하는 거예요.
아직 아무런 일을 안 했어요. 그래도 오늘 하루를 은혜로 채워주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는 하루를 마치고 취침할 때
‘오늘 하루 내가 만족스러운 것도 있고 좀 버거웠던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쉼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감사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마무리하고...
하루에 세 번을 감사로 하나님 앞에 식탁에서 기도하고, 그럼 하루에 다섯 번이잖아요.
△마지막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하나님이 공급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완성하신다는 거예요.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자기 인생을 완성하려고 하면, 반드시 극단으로 가게 돼 있어요.
이게 탐심으로 가든지, 아니면 과도한 집착 강박으로 가든지
문제가 반드시 생기게 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노력의 끝에, 탐심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의 노력의 끝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그 노력의 끝에 은혜로 인하여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시금 그 은혜가 날아와야 노력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다시 인생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고
그 도전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로 또 완성하며 하나님께 감사,
이 선한 선순환의 인생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