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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9장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다

LNCK 2026. 7. 22. 11:0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언약>

2026 07 19 창세기 강해 (22) / 창세기 9:1-17 /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다            창9:1-17              2026.07.19. ]창세기 22강]

 

◑도입

 

오늘 본문은 창세기 9장입니다. 8장에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홍수 심판은 끝났습니다. 이제 세상에 남은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 단 8명 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노아의 가정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십니다.

창1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인류를 시작하셨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창세기 9장을 “재창조의 시작”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오늘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을 하시는데요.

 

창1장에서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8절에서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과 똑같습니다.

이 창조 때 복을, 노아에게도 똑같이 주십니다.

 

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위 말씀도 1:28b절의 반복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다스리라’는 말씀이 빠졌습니다.

대신에 ‘온 짐승들이 너희를 무서워한다’고 하십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이죠.

무서워한다는 것은,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거니까요.

 

9: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 말씀도 창조 때의 말씀과 유사한데요.

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다만 추가된 메뉴가 있습니다.

1장의 창조 때는 채소만 먹게 하셨었죠. 태초의 먹거리는 채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홍수 이후부터는 육식이 허용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제 맛있게 먹고 있는 삼겹살, 제육볶음, 소고기 같은 고기 반찬이

바로 이 노아 홍수 이후부터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노아의 홍수는 좋은 건가요?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죠.

육식이 허락되었다는 건, 그만큼 땅이 황폐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채소와 열매만으로도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을 정도로, 땅이 비옥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타락과 죄악으로 땅이 오염되고,

그 영향으로 충분한 소산을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채소만으로는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먹거리로 육식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런데 육식을 먹되, 하나의 단서를 붙이십니다. 본문 4절인데요.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그러나 고기를 먹되 피째 먹지는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4절에 붙어 있는데요. ‘피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피가 생명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피째 먹지 말라’는 말은, 짐승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고기를 먹으려면 살육하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돼지나 소를 죽여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짐승의 생명을 경시할 수 있습니다. 자꾸 죽이다 보면... 그러지 말라는 거죠.

 

음식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살육하지만,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거나, 단순히 사냥의 즐거움으로 인해 죽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먹기는 먹되, 그렇다고 채소만으로 먹고, 짐승의 생명을 경시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짐승이라 할지라도 그 생명의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사람의 생명은 더 존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찌그러진 깡통도 깡통입니다.

구겨진 돈도 돈이죠. 타락한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자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향한 도전입니다.

 

자 그래서 만일 사람의 피를... 흘리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6절에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나오는데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7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1절의 축복을 반복하십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또다시 처음 창조 때, 아담에게 주셨던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은요. 노아를 통해 인류를 다시 시작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노아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영광이겠죠.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듣는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마냥 기뻤을까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겠습니다!’

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노아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었을 겁니다.

어떤 기억일까요? 홍수 심판에 대한 기억, 그로 인한 불안함이 있었을 겁니다.

 

‘홍수가 또다시 쏟아지면 어떻게 하지?

또 물이 차오르고 세상이 멸망하면 어떻게 하지?’ 이 불안함이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또 온 세상이 타락할 수 있잖아요. 홍수 이전 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을 떠나 살아갈 수 있잖아요. ‘그러면 또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 하실텐데...

그러면 새로운 인류고 뭐고, 이 모든 축복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예전에 제 친구가 등산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뭐하러 저렇게 고생해서 산에 올라가냐?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거,

그냥 계속 밑에 있으면 되지... 뭐하러 무릎 연골 닳아가며 시간을 쓰냐?’

 

노아도 그런 생각 들지 않았겠어요? ‘또 홍수가 쏟아지면 어떻게 하지?

또 심판이 임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모든 것을 또 잃게 될 텐데...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축복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불안한 마음이 한켠에 있었을 겁니다.

 

그때 하나님은 노아의 불안한 마음을 아시고 답을 주십니다.

그 답이 뭐냐면 바로 오늘 본문의 ‘언약’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언약’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에 계속 반복됩니다.

제가 세 보니까 7번 반복되더라고요.

여러분 한번 성경책에 표시를 하면서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9:9절에 ‘내가 내 언약을’

9:11절에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9:12절에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9:13절에 ‘언약의 증거니라’

9:15절에 ‘언약을 기억하리니’

9:16절에 ‘언약을 기억하리라’

9:17절에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이렇게 ‘언약’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이 되죠.

 

언약이라는 단어는, 성경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장로교의 신학을 ‘언약 신학’이라고도 하는데요.

성경을 이해하려면 그만큼 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책이잖아요. 하나님의 구원이 언약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은 우리와 먼저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근거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언약을 쉽게 풀이하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말 언약言約은 한자어인데요. 언약의 약約은 ‘약속’입니다.

 

그래서 언약이라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 언약이 뭐라고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약속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에 근거에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흔들리니까요. 넘어지니까요. 믿지를 못하니까요.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구원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근거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언약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노아 언약’입니다.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노아 언약’입니다.

오늘은 이 ‘노아 언약’을 집중 공부해 보겠습니다.

 

※노아 언약 말고도, 성경에는 아담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등이 있으며, 모든 언약의 공통된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백성의 구원’입니다.

그게 시대의 변천을 따라서, 점점 더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죠.            주1)

 

◑1. 첫 번째, 노아 언약의 대상

우리가 약속을 하면, 반드시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 결혼할 대상이 있다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약속, 이 언약에도 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노아 언약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 대상이 본문 9~10절에 나옵니다.

9:9~10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여러분 언약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먼저 ‘노아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우리도 포함이 되는 거죠. 즉 홍수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모든 인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만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그 뒤에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도 언급하십니다.

사람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 동물도 언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13절에 보면 ‘나와 세상 사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노아 언약’은 범위가 넓습니다.

언약을 맺는 대상이 사람만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 세계 전체와 맺으신 언약이죠.

 

이 사실이, 노아 언약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다른 모든 언약의 대상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어진 언약입니다. 자 그런데 노아 언약의 대상은,

택함 받은 백성만이 아닙니다. 먼저는 모든 인류입니다.

택함 받지 못한 자도 불신자들도 포함이 되는 거죠.

 

또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 만물도 언약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노아 언약을 ‘일반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상이 일반적이라고 해서, 특별 언약이 아니라, '일반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2. 두 번째, 이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 만물에게 주신 약속,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 언약의 내용이 11절에 나옵니다.

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언약의 내용, 약속이 무엇이죠? ‘다시는 홍수 심판이 없다’는 약속입니다.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은 홍수가 전혀 없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와 같은 홍수, 온 땅을 덮어버리던 그 홍수는 다시 없을 거라는 말입니다.

 

지역적인 홍수는 있습니다. 우리도 장마 때인데요.

장마 때면 일부 지역에서 홍수 피해를 겪게 되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노아 시대의 홍수처럼, 온 세상을 물로 덮는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다시는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노아 언약을 약속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노아와 가족들만 아니라, 그 후의 사람들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가 올 때마다 ‘홍수 심판’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구름만 잔뜩 껴도 불안하지 않겠어요? 비가 조금만 내려도 불안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또 심판하시는 거 아닌가?’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하는데요. 사람이 크게 놀라거나 상처를 받으면

트라우마, 또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깁니다.

 

저는 어렸을 때 엘리베이터에 갇힌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오래 동안 엘리베이터를,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 놓고 타지 못했습니다.  주2)

 

그러니 대홍수를 겪고 난 사람들은 오죽했겠습니까?

홍수 심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법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빗소리만 나도 부들부들 떨었을 겁니다.

먹구름이 조금만 몰려와도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을 겁니다.

빗소리만 들어도 미친 듯이 도망가거나,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홍수 이후에는 사람들이 경건하게 살았을까요?

정신을 차리고 다 거룩하게 살았을까요? 그럴 리가요.

 

오늘 본문 바로 다음에 또 타락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불안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러다가 하나님께서 다시 세상을 홍수로 이 땅을 쓸어버리는 거 아니야?’

그런 늘 불안함과 두려움에 살았겠죠.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안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약속이요?

다시는 내가 노아의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인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소위 노아 언약입니다.

 

언제까지요? 최후 종말의 날까지요. 최후 심판의 날까지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요.

이 땅의 모든 생명과 자연 질서를 보존하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노아 언약을 뭐라고 하냐면, ‘보존 언약’이라고도 부릅니다.

*노아 언약 : Noahic Covenant, 보존 언약 Covenant of Preservation

 

이 언약의 내용이, 세상의 보존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시는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보존하신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주3) ‘보존’

 

▲또 하나, 이 언약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이 약속에는 어떠한 조건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반복되는 주어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라는 말이 반복되는데요.

 

특히 15절에 하나님은 ‘내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만들고 지키는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보존의 약속이 유지되는 것은, 인간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기초에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순종’ 때문에 유지되는 거라면, 그 언약은 깨지기 쉽겠죠.

 

그래서 이 노아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도 부릅니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니까요.

그래서 ‘일반 언약, 보존 언약, 은혜의 언약’입니다.

 

▲정리하면, 노아 언약은, 일반 언약, 보존 언약, 은혜 언약입니다.

사실 이 보존에 대한 약속은 앞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때는 스킵을 했는데요. 같이 한번 읽어볼게요.

 

창8:21~22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그 중심에 이르시되’ 8:21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의 의지였던 거죠. 이미 하나님은 이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공식적으로 약속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원래 여름과 겨울이 오는 거야.. 원래 낮과 밤이 바뀌는 거야..

원래 심음과 거둠이 있는 거야.. 원래 매일 해가 뜨는 거야.. 원래 그런 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하나님의 보존의 섭리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발딛고 걷는 이 땅도, 몇 번은 멸망했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노아시대 못지않게 타락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노아 언약이 오늘도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질서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루하루 반복된 일상도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에, 허락된 일상입니다.                주3)  '보존'

 

이 사실을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이 언약을 믿는 신자의 자세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확신을 가져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어떠한 확신이냐면요. 인간이 지구를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이런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러다가 지구가 멸망하는 것 아니냐고?’

 

유튜브 보면, 소행성이 충돌해가지고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으면 무섭지 않습니까? ‘진짜 지구가 멸망하면 어떻게 하지?’

 

또 최근에는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의 운명은요. 우리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지구를 잘 돌봐야겠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곳이니까요.

청지기 의식을 가질 필요는 있습니다.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관리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나 어떤 인간의 행위가, 예를 들면 핵전쟁도 있겠죠.

그런 것들이 지구의 멸망을 가져오는 게 아닙니다.

왜요?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해 주셨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이 피조 세계를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멸망은 환경의 변화나 인간의 악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이 피조세계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구의 멸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피조세계를 잘 돌봐야 하겠지만

그 모든 행위가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3. 세 번째는 언약의 증거

 

하나님은 이 언약을 주실 분 아니라, 언약의 증거도 함께 해주십니다.

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여러분, 이 노아 언약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증거로 무지개를 두십니다.

 

무지개는 히브리어로 캐세트입니다.

이 캐세트라는 단어는 무지개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활, 양궁할 때 이렇게 쏘는 활 있잖아요. 그 ‘활’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둘 다 모양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무지개도 반원형 모양이고요. 활도 똑같이 반원형의 모양이죠.

 

영어로 보면 무지개를 레인보우라고 합니다. rainbow

비온 후에 생기는 무지개를 활 bow 처럼 생각했다는 거죠.

고대인들은 무지개를 보고, 하늘에 활이 걸려있구나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활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활은 전쟁 무기잖아요.

원래 전쟁 중에는 사람이 활을 어떻게 잡죠? 수직으로 잡죠. 세로로 잡고 쏘잖아요.

 

그런데 전쟁이 끝났습니다.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 활을 어떻게 메고 다니죠?

활을 내려놓겠죠. 가로로 메고 다니겠죠. 수직이 이렇게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이렇게 메고 다니겠죠. 그러면 여러분, 활이 어떻게 되겠어요?

수평으로 메면 무지개 모양이 되겠죠. 그렇죠? 그게 이제 무지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이 언약의 증거로 두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공격하지 않아 멸망시키지 않아.. 내가 너희를 대적하고 있지 않아..’

그 증거가 무지개입니다. 활이 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다시 심판하지 않을 거야.. 전쟁은 끝났어, 이제는 평화야..’

심판 후의 평화, 그게 무지개의 의미입니다.

 

▲또 하나 여러분 무지개의 모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지개가 활 모양처럼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활의 모양이 어느 쪽을 향해 있죠? 하늘을 향해 있습니다. 땅이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 화살을 끼우고 쏘면,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죠? 하늘로 날아가죠.

만약 그 상태에서 화살을 쏘면, 결국 하늘이 (하나님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격하지 않겠다는 거죠.

 

어떤 의미예요? ‘내가 이 약속을 책임지고 보장할게, 내가 책임지고 이 약속을 지킬게!’

이 하나님의 맹세, 하나님의 보장이 무지개입니다. 여러분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마치 십자가의 사랑이 떠오르죠.

‘내가 대신 화살을 맞을게, 내가 대신 죄의 저주를 받을게’

그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 사랑 아닙니까?

 

무지개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내가 이 땅을 다시는 심판하지 않을 거야, 멸망시키지 않을 거야.

내가 책임지고 그 약속을 지킬게’ 그 약속의 증거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내가 이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가 이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십니다.

똑같은 말씀이 16절에도 반복됩니다. 무슨 얘깁니까?

무지개가 있는 한 하나님이 이 언약을 책임지고 지키시겠다는 얘기입니다.

 

놀라운 건요. 이 무지개가 성경 맨 마지막에 다시 등장합니다. 아십니까?

계4:2~3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위에 무엇이 둘러 있습니까? 무지개가 둘러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노아 언약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우리는 무지개를 기억하고 매일 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이 언약을 지키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도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의 증거가 저기 있구나 하나님이 기억하신다고 했지,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 하신다고 했지’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무지개입니다.

 

◑4. 네 번째, 이 언약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존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단순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더 크고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의 약속을 끝까지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창3:15절에서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 머리,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아담 언약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구원의 약속, 최초의 복음입니다.

 

이 약속을 은혜 언약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 홍수 이후 다시 세상이 멸망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다시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다 멸망시킨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창3:15절에 약속된 구원이 완성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자를 통한 출생이 끊겨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수 없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약속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노아 언약의 목적은요. 무대의 보존입니다.

구원을 위한 무대의 보존,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한 무대의 보존입니다.

이 땅이 지속되어야 여자의 후손이 오게 되니까요. 메시아가 오게 되니까요.

 

실제로 그 약속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의 계보를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노아로부터 셈으로, 셈으로부터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으로

그리고 마침내 약속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신 지금은 어떨까요? 예수님이 이미 오셨잖아요.

왜 하나님은 아직도 이 세상을 보존하고 계실까요?

 

그 이유를 베드로후서 3:9절이 말씀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도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계절을 유지하시며,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구원의 문이 닫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복음이 전해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회개하고 구원받을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창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들,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이 세상을 우리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붙들고 계십니다.

그 속에서 저와 여러분도 구원을 받은 것 아닙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께서 세상을 조금 더 일찍 끝내셨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교회를 나가기 전, 바로 며칠 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멸망시키셨다면,

또 홍수 심판을 내리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들을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겠죠. 우리가 오늘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노아 언약을 따라

세상을 보존하시고, 오래 참으시며,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

이 세상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보존

 

자 그래서 이 노아 언약은요. 단순히 세상이 계속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택자를 모두 구원하실 때까지

역사를, 이 무대를 신실하게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노아 언약의 목적은요. 구원을 위한 무대의 보존입니다.

세상이 지속되어야 택한 자 구원이 완성이 되니까요.

 

▲그렇다면 노아 언약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적용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한 가지만 적용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존하시는 목적을, 우리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오늘도 해를 떠오르게 하십니까? 왜 계절을 이어가십니까?

왜 이 세상을 보존하고 계십니까?

아직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보존의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보존하시는 목적이 영혼구원이라면

우리도 영혼구원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이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24:14절에서 종말의 때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종말의 기준을요. 기후변화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소행성 충돌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핵전쟁이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과 연결하셨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여러 재난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마지막이 환경의 변화와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와 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모두 이루실 때, 모든 택자를 다 부르실 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완성될 때.. 역사의 막이 내려갑니다.

 

그래서 우리는요.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삶은,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 이유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면,

우리 역시 그 목적을 따라 그 타임라인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요. 복음 전파를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다같이 하던 일 그만두고 선교를 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직업과 가정 다 내팽개치고, 하루종일 밖에 나가 노방전도만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전도할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이걸 흔히 요즘에 ‘선교적인 삶 missional life'이라고 말합니다.

 

선교적 삶 꼭 가는 선교만 아니라,

여기서도 선교하는 삶,

더 정확히는 우리의 삶 자체가 선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저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나도 저런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삶'

'그래서 나도 저 사람이 믿는 예수님 믿어보고 싶다'라고 말하게 만드는 삶이

바로 선교적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있는 삶의 자리가 사실은 선교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직장이 선교지이고 여러분의 가정이 선교지이고

여러분의 학교와 이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의 현장입니다.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vocation입니다.

이 vocation은 부르다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직업도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저같은 목사만 아니라 여러분의 직업도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직업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부르셨습니다.

 

가정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여러분이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까?

바로 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자녀들의 출생보다도요.

여러분의 자녀들 다 복음 전파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전도하는 것, 그게 가장 선교적인 일입니다.

또 또래 엄마들에게 선교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그것도 가장 선교적인 일입니다.

 

꼭 어디를 가야 하는 게 아니라요. 다른 모든 직업이 다 같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직업적인 목사나 선교사로 부르지 않았지만,

여러분도 다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이 직장에 있는가?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일터로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왜 나를 이 가정으로 보내셨는가?

왜 하나님이 나를 이 학교에 보내셨는가? 왜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살게 하셨는가?'

 

그때 꼭 연결해야 할 것이 복음 전파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복음 전파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예를 들어 진로겠죠.

어떤 대학을 갈지 어떤 회사를 갈지 그때 세상 사람들의 기준은 가장 큰 기준은 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기준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기준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내가 어디서 일하는 것이, 어느 학교를 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유익할까?

내가 어디를 가는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 더 도움이 될까?

영혼구원을 기준으로 묶고 그것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다른 교회 얘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한 분이 교회에 새로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오게 됐냐고 물으니까, 여기 교회 권사님이 집주인이라고

그런데 권사님이 월세를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고.. 너무나 고마웠다고...

 

그런데 어느 날 월세는 더 올려서 안 받아도 되니까,

'예수님 믿었으면 좋겠다고, 같이 교회에 다니자고' 해서, 오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니까 베푸는 거라고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알잖아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않습니까?

그 권사님의 삶의 목적이 영혼구원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여러분 우리가 살펴봤듯이 이 노아 언약의 대상은 신자만이 아닙니다.

불신자에게도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보존되는 그날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항상 어디를 가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공존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그 공존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니까요. 또 그들도 복음을 들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그리고 그 목적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금도 보존하고 계시니까요.

 

지금 주니어부 나오는 친구들 대부분이 다은이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이 다 등굣길의 친구들입니다. 사는 동네가 비슷하니까요.

 

1학년 때 학교 처음 다닐 때 등굣길에서 만나서 이제 다 친해졌습니다.

가다가 어 같은 학교 다니네? 또 가다가 같은 학교 다니네?

가다가 한 명씩 만나고 만나서 다섯 명인가 됐습니다.

 

보니까 다은이 빼고 한 명도 교회를 안 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한 명 빼고 다 같이 우리 교회를 다닙니다.

지금 보니까 하나님의 섭리였더라고요.

 

처음에는 믿는 친구들 만나게 해달라고 사실 기도를 했습니다.

다은이가 처음에 학교 적응을 많이 힘들어해서요.

믿음이 좋은 친구들 붙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공존의 은혜였더라고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붙여주신 거잖아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선교지에 찾아간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붙여주셔서 전도할 기회가 열린 것 아닙니까?

물론 이 아이들이 좀 더 크면 교회를 안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교회 다닌 친구들은, 대부분 커서 하나님이 다시 부르시더라고요.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여러분의 삶의 무대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 공존의 무대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모임이 됐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또 학교를 가든 직장을 가든 어떤 모임이 되든, 공존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통해 그들 중에 누군가가 훗날 교회를 나가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간증이 있지 않습니까? 그게 공존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부름을 받게 되었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누군가를 통해 일하시는 거죠.

저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결단했습니다. 저도 교회 빼고는 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거든요. 특히 제가 지금 사는 빌라도 한 분 빼고는 다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공존하고 있는데요. '내가 좀 더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겠구나'

 

꼭 입으로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할 환경은 아니더라도,

'삶의 목적이 복음을 전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구나..

다른 모습을 보여야겠구나.. 그래서 나중에 내가 목사라고 했을 때

놀라지 않게 해드려야겠구나..'

'뭔가 좀 달랐군요' 라는 말을 듣게 살아야겠구나..

그리고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해도 괜찮은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고 다시 한번 결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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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언약의 점진적 발전

 

-아담 언약 (행위 언약 & 은혜 언약): 인류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메시아)을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원시 복음'(창 3:15)을 주시며 구원의 서막을 엽니다.

 

-노아 언약 (보존의 언약):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 무지개로 모든 피조물을 향한

보존의 약속을 세우시며, 은혜로 구속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아브라함 언약 (믿음의 언약): 구원의 범위가 특정 혈통과 민족(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창 12:3)이라는 구체적인 구속의 방향성으로 발전합니다.

 

-모세 언약 (율법 언약):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으로, 율법을 통해

인간의 철저한 죄성을 깨닫게 하고 장차 오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다윗 언약 (왕권 언약): 다윗의 가문에서 영원한 왕권과 나라가 세워질 것을 약속하며,

이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로 성취됩니다.

 

-새 언약 (성취와 완성의 언약):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고되고(렘 31:3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성취된 언약입니다. 율법이 마음에 새겨지고(히 8:10)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을 얻는 온전한 형태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언약'의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도해서 맺으신 '언약'이므로, 깨지지 않는 견고함이 그 특징이죠.

성도의 구원이 그만큼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특징이죠.

 

 

주2)

저도 초등학교 때 엘리베이터에서 갇힌 경험이 있습니다.

토요일날 학교 끝나고... 저희 때는 토요일날 오전 수업까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였는데, 수업이 끝나면 친구 집에 가서 TV를 보면서 같이 놀았습니다.

 

그날도 친구 집에 갔는데요. 친구가 아파트에 살아서,

제가 그 아파트 이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원효로 3가에 있는 삼호아파트인데요.

거기 아파트에 살아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다가, 그날 갑자기 승강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엘리베이터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갇혔다 나왔는데요.

너무 무서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저는 주택에 계속 살았어서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그날 이후부터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더라고요. 성인이 돼도 불안감이 남아있습니다.

 

승강기에서 조금만 끼익 소리가 나도, 조금만 이렇게 뭔가 이렇게 흔들리는 느낌이 나도,

지레 겁부터 납니다. '또 멈추는 거 아닌가? 불 꺼지면 어떻게 하지?'

 

 

주3) 하나님은 만물을 보존(preservation)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에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밀물, 썰물은 정해진 지경까지 유지하면 들고 납니다.

 

만약 바닷물이 100미터 정도 더 육지로 거슬러 오르면 안 되는 것입니까?

누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100미터 더 밀고 오른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걸 가리켜 우리가 쓰나미라고 합니다.

 

바닷물이 10미터만 더 밀려온다면 도시가 물바다가 돼 버릴 것입니다.

인천 앞바다 바닷물이 정상보다 더 들어오면 서울까지 물바다가 돼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다야, 너는 거기까지만, 정지.”하면 “네”하고 정지하는 것입니다.

 

별들이 왜 궤도를 그리고 있습니까?

그 별들중 하나가 지구와 부딪쳐 버리면 지구는 박살날 것인데

예수님이 “별들아, 너희는 궤도를 정해 그 궤도를 그리며 돌아가고 다른 데 가지 마라.”

하시니, 지금껏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의 온도 10도가 갑자기 올라가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농산물도 하나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온도를 유지하며 춘하추동 적절한 온도를 우리에게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미국 대통령이나 유엔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의 말씀을 보내어 만물을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