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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9편 거룩함의 원리

LNCK 2026. 7. 24. 06:4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데스티니>

[데스티니 2] 거룩함의 원리 (시139:14-16절)┃2026.3.6 금요예배

◈거룩함의 원리          시139:14~16      2026.03.06. [데스티니 2강] 

◑서론                      

데스티니에 대한 말씀을 다시 살펴보고 있습니다. 
데스티니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말로 운명, 팔자 이렇게 번역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좋은 번역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한국말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어서, 그냥 14~15년째 '데스티니'라는 
단어를 그냥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시기도 전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복되고 충만한 계획을,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다 가지고 계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은 그것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에요. 왜냐하면 창조주가 계획하셨으니까, 
우리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인생의 목적은,
창조하신 분이 생각하셨던 게 우리 목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복을 계획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고 이루어가면 충만해지게 되어 있어요. 

복은 충만하고 풍성한 거거든요. 충만해지게 되어 있고, 풍성해지게 되어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함을 누리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데스티니에서부터 멀어지면 무엇을 하든지 간에 허무하다고 느껴요. 
허무하다고 느껴요. 허무라고 하는 감정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데 
왜냐하면 존재 목적이 이걸 위해서 하나님 창조하셨는데 
거기서부터 멀어져 있으니까 허무한 거죠. 왜 존재해야 되는지 이유가 사라진 거잖아요. 

원래 이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데, 거기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으면 
창조주가 계획해 놓으신 목적에서부터 멀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왜 창조됐는지 이유가 애매해지는 거죠. 그때 느끼게 되는 것이 이제 공허함입니다. 

그래서, 혹시 여러분의 삶 가운데에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이 계속 지속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합니다. 데스티니의 문제예요. 
잠깐씩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데 오래 지속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데스티니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있지 말아야 될 곳에 있다는 뜻이에요. 

꼭 죄가 아니라도 있지 말아야 될 곳에 있기 때문에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여러분의 부르심, 데스티니를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내가 어디에 가야 됩니까? 무엇을 위해 부르셨습니까? 하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 길로 들어서야 그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데스티니에 있는 능력을 살펴봤습니다.  *1강
데스티니의 길을 살아가면, 우리 앞에 다가오는 난제를 돌파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죠. 
데스티니는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우리가 발을 떼서 그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는 돌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는 걸 누가 막겠어요?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내가 안 하는 건 할 수 없어요. 그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그렇게 정하셨어요.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나님은 결정하셨기 때문에 
내가 안 하겠다는 걸 억지로 하실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것만 아니라면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어요. 
그래서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면,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진짜 장벽은요. 우리 인생의 진짜 장벽은 환경도 아니고 내 능력도 아니고요. 
그것은 말씀 앞에 순종치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데스티니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리 두 가지를 꼽으라면 
1) 첫째는, 하나님과의 인카운터 이고요.     *만남, 대면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나의 데스티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데스티니는 연구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80억 명을 다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에, 연구해서 나의 부르심을 찾는 방법이란 건 없어요. 
다 다르게 만드셨는데, 연구해봐야 뭐 하겠어요? 


그것도 좀 비슷하게 만들어져야, 어떤 패턴이 있고, 그럼 그 패턴을 분류해가지고 
이런 사람은 이렇게 부르셨고, 저런 사람은 저렇게 부르셨고... 
그래서 연구해서 찾을 수가 있는데, 그게 아니고 전부 다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에, 
아담부터 지금까지 다 다르게 인생을 만드셨기 때문에, 연구한다고 하는 건 무의미하고요.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의 데스티니는 하나님께 들어야 돼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인카운터고, 

2) 두 번째 중요한 단어가 뭐냐면, "알았으면 순종"하는 겁니다.  

이제 순종이라고 하면, 율법하고 연관을 지을 때가 있죠. 
그거는 그러면 율법적인 거 아닙니까? 

'순종이라는 건, 내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되는 거니까 율법이 아닙니까?' 
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순종에 대해서는 좀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순종해야 되는 이유가 있는데, 순종해야 되는 첫 번째 이유는 뭐냐면,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게 율법이랑 구분이 되는 거예요. 나 자신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큰 피해가 가느냐? 뭐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순종하든 안 하든지 간에, 그냥 스스로 계신 분이세요. 

여러분이 순종 안 한다고, 하나님이 큰 일 나시는 것도 아니고, 
순종 안 한다고 하나님이 큰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순종의 1차적인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의 데스티니가 망가지는 거죠.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나의 데스티니가 망가지는 거고, 
나의 데스티니가 망가지면, 내가 괴로운 거예요. 내가 허무하고 내가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율법이랑 구분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이슈가 아니라 
마음의 동기에 대한 얘기예요. 

마음의 동기가 두려움이나 억지로 하는 것을 율법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율법적인 순종은 뭐냐면, 두려워서... 
그러니까 이거 안 하면 하나님이 화내실까 봐, 
그러니까 이거 안 하면 하나님이 벌 주실까봐... 그게 이제 율법이 되는 건데, 

참된 순종은요. 그런 동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물론 더 깊은 수준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성령의 탈레마 desire 에서 
나오는 순종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가지 순종의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 
그거 안 하면 내 인생이 망가지는 거예요. 그거 안 하면 내 인생이 고달파 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데스티니가 이루어지지 않는 진짜 이유는, 환경도 아니고요. 
내 능력도 아니고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또는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 장벽이 무너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거다' 그러면, 
그냥 아무 생각 말고 그거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루어집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장점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능력이 많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것 같죠? 그런데 능력이 많으면 어떤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요. 
능력이 많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요. 그냥 자기 힘으로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의지해서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착각하지 마세요. 내가 이런 은사가 있고, 이런 능력이 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써야지... 

여러분, 그거 없어도, 하나님은 충분히 일하실 수 있어요. 
그거 가지고 오면 골치 아파요. 왜 골치 아프냐 하면, 내 힘으로 하려고 그러거든요. 

내 힘으로 한다고 하는 게 뭐냐 하면.. 기도를 안 해요. 
능력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뭐냐 하면.. 기도를 잘 안 해요. 
기도는 뭐냐면, 연약한 사람만 하는 거예요. 
'아 내 힘으로 안 되는구나. 아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시면 안 되는구나' 
이걸 아는 사람만 기도를 하죠. 

그냥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능력이 많은 사람은, 참 하나님께 쓰임 받기가 힘들어요. 

쓰임을 받는 것 같아도 뒤에 가보면 끝이 안 좋아요. 항상 사고치고요. 
뒤에 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많은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장점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연약한 것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정말 안 될 것 같은 사람.. 정말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그런데 신기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이 하신 것을 세상이 알 거 아니에요. 
할 만한 사람이 하면,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겠습니까? 
절대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하면, 그러면 '와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고 
나도 알고 세상도 알고 다 아는 거죠. 아멘  

그래서 여러분, 연약함이 있으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연약함이 있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뭐냐 하면, 
믿음이 없는 게 문제지요. 오히려 문제는 뭐냐 하면 순종치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믿음과 만나면요. 그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아멘 
그리고 그 연약함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거에요. 
그 연약함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이끄는 거에요. 아멘 

▲자 오늘도 계속해서 "데스티니를 이루는 길"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 데스티니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고 그랬죠? 

1) 첫 번째는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돼요.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우리의 데스티니는 시작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데스티니가 없죠.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 데스티니가 시작도 되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걸 하는 것 같고, 많은 것을 이루는 것 같지만, 
그 마음에 깊은 곳에 들어가 보면 다 공허함이 있습니다. 다 공허함이 있고요. 
데스티니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냐 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거듭날 때 뭘 알게 돼요? '아, 내게 창조주가 있구나 내 인생을 계획하신 분이 있구나' 
그걸 알게 되는 것이고, 그 거듭난 이후에도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데스티니를 들어야 돼요. 

2) 기도해야 됩니다
'듣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 기도하면 듣습니다. 기도하면 들어요. 
기도 안하면 못 들어요. 이건 그냥 룰이에요.  

기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어떻게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요. 
꼭 뭐 초자연적인 방법이 아니라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아 지금 하나님이 이 말씀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아는, 그 촉이 살아나요. 

그런데 기도 안 하면 이걸 못 들어요. 
그 옆에서 하나님께서 그냥 큰 소리로 꽹과리를 치면서 말씀하셔도, 
그게 하나님의 소리라고 하는 것을 몰라요. 이게 기도 안 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알아요. 
하여간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알아요.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분명해요.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방법은 뭐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뭐 설교 중에 깨달음이 올 수도 있고, 
또 누가 와서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하여간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기도하는 사람은 '아 이거 하나님이 하시는 거구나' 하는 걸 안단 말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데스티니를 알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요. 이걸 몰라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요.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크리스천 중에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신앙생활의 패턴이 어떻게 되냐면, 성경을 연구해서 원리를 발견하고, 
그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시켜서 살아가요. 

그러면 그것이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데스티니는 어떻다고 그랬어요? 유니크하다고 그랬잖아요. *독특
그러니까 나만을 향한 부르심을 찾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일반적으로 '크리스찬은 이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오케이, 그거는 알 수 있어요. 
성경을 읽고 깨달으면 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뭔가? 
이거를 발견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데스티니를 발견하고 이루어가는 데는 
말씀과 더불어 정말 정말 중요한 게 뭐죠?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하셔야 됩니다. 
기도하셔야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창문을 열어놔야 비를 맞는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그래요. 비라고 하는 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면, 
언제 은혜를 주시느냐 하는 건, 우리가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거지만, 

우리가 창문을 닫아놓고 있으면 (비가 내려도 비를 맞을 수 없듯이) 
언제 하나님이 언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도, 절대로 은혜를 못 받습니다. 
기도는 마치 영적인 창문을 열어놓는 거하고 똑같아요. 

기도한다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기도할 때마다 임재가 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런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기도의 문을 열어놓은 사람은, 은혜의 비가 올 때 그 비를 맞아요. 

그런데 기도의 창문을 닫아놓은 사람은, 
아무리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로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창문을 열어놓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의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먼저 <거짓 데스티니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요9장에 보면, 날때부터 소경된 실로암 연못의 거지가 등장합니다. 
자 이 소경은 자신의 데스티니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즘도 장애인들은, 뭐 살아가는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어떻겠어요?
오늘 날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그런 어려운 사회였습니다. 
이런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도 없고요. 배려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는 때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손가락질했습니다. '저 사람은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야' 

더구나 눈이 보이지 않으니, 공부를 할 수도 없고, 농사나 목축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뭐냐면, 그냥 빌어먹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길거리에 앉아서 도움을 구하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것을 사람들도 그게 그냥 그 사람의 데스티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네 팔자야, 소경으로 태어난 네 팔자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여!'

그 결과 이 소경도 '그냥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이게 내 팔자인가 보다..' 
그러고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데스티니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정해준 팔자, 또는 운명을 자신의 데스티니라고 믿고 삽니다. 
그게 사실 거짓 데스티니죠. 

그래서 우리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 데스티니를 이루기 위해서 
먼저 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바로 거짓 데스티니를 부수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 안에는,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사람들에 의해서, 또 환경에 의해서 잘못 만들어진 생각들이 있어요. 

'나의 데스티니는 이건가 보다..' 잘못 만들어진 게 있어요. 
'내 삶의 목표는 이거야, 내 삶의 비전은 이거야' 잘못 만들어진 거짓 데스티니들이 있는데 
이것이 먼저 무너지지 않으면, 참된 데스티니가 세워질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이 주는 거짓 데스티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1. 첫 번째는 뭐냐면 <거짓 소명>이에요. 별로 중요하지 않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그렇게 우리한테 거짓으로 인식된 거예요. 

별로 중요하지 않는데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그렇게 과장하고 속입니다. 
주로 돈 또는 성공, 명예 이런 것들이죠. 

그래서 돈을 많이 벌면, 또는 좋은 대학을 나오면, 또 명문대학에 가면, 
또 좋은 직장을 얻으면... 그러면 인생이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 거짓 소명을 줍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향해 가잖아요. 
'아 맞아, 난 이걸 위해 지음을 받았어'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을지라도, 
'그게 내 삶의 이유야' 라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거죠. 

내 삶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또는 성공하는 것이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고..
이것이 이제 "거짓 데스티니"에요. 
이게 생각보다 우리 속에 굉장히 깊게 뿌리 박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도 잘 안 바뀌어요. 방향이 잘 안 바뀝니다. 
계속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거죠. 
계속 그러고 있으면 데스티니가 이루어지기가 참 힘들겠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창조해 놓으신 것은 이쪽 길인데, 
지금 계속 저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으니까, 
이걸 지금 스탑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우리의 데스티니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예요. 

▲2. 두 번째는 뭐냐면 세상이 속이는, 낙심시키는 거예요. 
'너는 안 돼, 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이 소경이 그랬잖아요. '너는 안 돼 너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야, 니가 뭘 할 수 있겠어? 
넌 어차피 안 되는 거야' 세상은 여러분 우리를 계속해서 정죄하고 낙심시킵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실패자라고 하고 
취업이 잘 안되면.. 루저라고 하고 
'너는 어쩔 수 없어, 너 같은 게 뭘 하겠어? 너는 머리가 나빠서 안돼! 
너는 못 생겼잖아? 넌 여자잖아? 넌 건강이 안 되고... 
너는 소경이고, 그게 네 팔자야!' 끊임없이 낙담케 해요. 이게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낙심시켜서, 하나님이 계획해 놓으신 자기 데스티니와 멀어지게 합니다.

사실 이것은 저주죠. 그래서 우리의 참된 데스티니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거짓 데스티니에 세뇌된 분이 있다면, 이것부터 빨리 벗어나야 됩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우리를 '너 같은 게 뭐야?' 그렇게 만들지 않으셨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특별하고 놀라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주에는 좀 곰곰이 기도하면서 생각해 봤던 게 뭐냐면 
자존감에 대한 거였어요. 

자존감이 뭐냐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존귀한 자라고 하는 걸, 
예수 믿고 거듭났을 때 자존감이 생기는 거죠. 

'나는 그렇게 형편없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계속 실패만 하고, 
세상에서 얘기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래서 존귀한 자야' 
이게 이제 우리 안에 참된 자존감의 근거인데, 

근데 제가 26년 목회를 하고요. 그리고 사역한 지는 30년도 훨씬 넘었는데, 
이게 되는 사람을 그렇게 별로 못 봤다는 거예요. 이게 잘 안되더라는 거예요. 
(자존감이 낮더라는 거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자존감이 건강하세요? 
'내가 예수 믿고 거듭났더니, 나는 아무것도 없어, 쥐뿔도 없는데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나는 대단한 존재야!' 이게 되세요? 
이게 참 쉽지 않단 말이에요. 이론적으론 맞아요. 
이론적으론 맞는데 실제적으로는 잘 안 돼요. 이게 우리 현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번 주에는 제가 이제 갑자기 그 생각을 하면서 '이게 왜 안 될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서 
'아, 그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조금 알겠더라고요. 

맞아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새로운 신분이 생겨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자존감의 진짜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제 이론이 그렇다는 거고, 
그것을 내가 내 것으로 진짜 느끼려면 뭐가 있어야 되냐면, 경험이 있어야 돼요. 
아무리 말해봐야 잘 안되더라구요. 

제가 26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렇게  
설교도 하고, 또 일대일로 제자훈련도 하고, 멘토도 하고, 상담도 하고, 뭐 해봤는데 
이게 순전히 믿음만으로, '그렇지, 내가 하나님 안에서 거듭났으니까 나는 존귀한 자야' 
이렇게 한 번에 해결된 사람은 사실은 거의 못 봤어요. 

그런데 해결된 사람들은 봤어요. 한 번에 해결되진 않았지만, 시간이 좀 걸리긴 했어요. 
5년 걸린 사람, 10년 걸린 사람... 하지만 회복된 사람들은 분명히 봤어요. 
완전히 바뀐 사람들을 분명히 보긴 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예요. 
작은 것 하나부터, 작은 것 하나부터 기도했더니 
'정말 하나님이 이렇게 도우시는구나.. 나를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도 행하시는구나..' 
그것을 이제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면서,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3년 지나고 하면, 진짜로 자존감이 변하더라고요. 
'그렇지, 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재야' 이게 되더라는 거예요. 

근데 이게 경험이 안 되면 이론만 가지고는 잘 안 돼요. 
그래서 여러분들 가운데 이 낙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경험해야 돼요.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을 경험해야 돼요. 

맞아요. 하나님은 진짜 좋은 것 주시는 분이시고요. 
우리가 기도하면 진짜로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이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역사들을 행해주시는 분이세요. 
이런 작은 것 하나하나, 뭐 큰 게 아니라도 괜찮아요. 

큰 거 아니라도 작은 것 하나씩 둘씩, 우리가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경험해가기 시작할 
때 '아 하나님이 날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게, 한 번 경험되고, 두 번 경험되고 
1년 이렇게 계속 경험이 축적되어 갈 때, 결국 뭐가 생기냐면 
'와 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구나' 하는 것에 대한 정체성이 생겨요. 

그러니까 이거는 과정이 필요.해요. 관계라고 하는 것은 과정이죠.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관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관계는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 경험들, 추억들... 그런 게 쌓이면서 
나중에 그게 '관계'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지, 그냥 순간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믿음으로 거듭나는 건 순간적으로 거듭나지만, 
그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머리로 아는 건 순간적으로 되지만, 
그것을 내 마음으로 알게 되기까지는 반드시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런 길을 우리가 하루, 이틀, 1년 keep going 하면요. 
내가 사랑받는 자라고 하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게 되는 줄 믿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잠깐 샜는데 어쨌거나 이 거짓 데스티니에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낙심으로부터 빠져나와야 돼요. 
'나는 실패했어.. 난 안 돼.. 난 뭐가 부족해.. 나는 뭐가 없어..'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게 뭐냐 하면, 사실은 세상이 정해놓은 어떤 피라미드 때문에 
그러거든요.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세상이 주는 거짓 기준들, 세상 가치관에서부터 빠져나와야 됩니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순위가 있잖아요. 
위쪽에는 뭐가 있을까요? 의사, 판사부터 시작해서 
가장 밑에는 취준생 아니면 백수까지 이렇게 쭉쭉 있겠죠. 

그 표가 이렇게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항상 그 표에다가 나를 대입을 해봅니다. 
대입을 해보고는, '내가 있는 자리가 이만큼 밖에 안 돼' 그럼 이제 낙심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으로 뒤집어져야 될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은 다르게 만드셨지, 차등되게 만드시진 않으셨어요. 

맞아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의사로 만드시고, 어떤 사람을 판사로 만드시고, 
또 어떤 사람을 운동선수로 만드시고, 다 다르게 만드셨는데 
거기다가 순서를 부여한 것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차등을 부여하신 적이 없어요. 

이거를 깨고 나와야 돼요. 이 세상적인 가치관, 이게 더 중요한 거야라고 믿는 
이 세상적인 가치관, 이게 예수 믿고 나서도 참 이 물이 잘 안 빠져요. 
참 이 물이 잘 안 빠져요.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요. 이거는 빨리 빼셔야 됩니다. 빨리 빨리 빼셔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다르게 만드셨지, 차등, 우열 순서를 부여하신 적은 없어요. 
다 다르게 만드신 거예요. 

그래서 어쩌면 내가 잘하는 것이, 세상 순위표에다 집어넣어 보면, 
별로 그렇게 존중 못 받는 걸 수도 있어요. 대접 못 받는 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계속 그렇게 재단하고 있으면 
결국 우리는 이 낙심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질 못해요. 

이거는 빨리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뀌어야 됩니다. 
'아 그렇지, 하나님이 다양하게 만드셨지, 이것은 나만을 향한 부르심이니까 
사람들이 인정을 하던, 인정하지 않던,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하던, 실패했다고 하던, 나는 신경 안 써!' 
이 믿음까지 가셔야 돼요. 

이 믿음까지 가야, 그 낙심에서부터 빠져 나와서, 참된 내 데스티니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여러분만을 향한 데스티니의 길을 가는 것이 참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 기준으로는, 별로 안 좋아 보이는 데스티니일 수도 있거든요. 
80억명을 각자 다 다르게 만드셨는데, 
어쩌면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별로 그렇게 성공한 것처럼 안 보이는 데스티니일 수도 
있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내게 계획하신 그 길을 가야, 사실은 나한테 충만함이 있고, 행복이 있는데, 
그 길을 가려고 하면, 계속 아래서 이렇게 끌어당길 거 아니에요. 
'그거는 가봐야 별게 없어' 계속 낙심시키고, 이럴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거를 빨리 정리하셔야 돼요. 빨리 빨리 정리하셔야 돼요. 
하나님은 여러분만을 향한 특별하고 독특한 계획을 가지셨지, 
거기에다 우열, 서열을 부여하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 존귀하고요. 모든 하나님의 부르심이 다 특별해요. 아멘! 
이거를 빨리 붙잡으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도 이 세상 가치관이 해결 안 되고, 그게 빠지지 않은 채로 
계속 신앙생활하고 있으면... 맨날 가봐야 믿음이 성장하지 않아요. 
맨날 가봐야 그냥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세상 물을 빨리 빼셔야 돼요. 
세상 물을 빨리 빼셔야 돼요. 그것은 세상이 운명 지어둔 거짓 데스티니예요. 

세상이 만들어놓은 거짓 환상이고, 진짜 데스티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아멘

 

▲이 세상이 주는 거짓 데스티니에 속아서, 거짓으로 살아가던 이 소경에게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창조주를 만난 거죠.

 

그랬더니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러니까 예수께서는요. 사람들과 다르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은 이 사람에게 뭐라 그랬냐면 ‘너는 저주받은 자야 네 죄 때문에 그런 거야,

너는 실패자야, 너는 소경이야’

 

세상은 다 그렇게 말해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렇게 말하는데

하나님만 다르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야, 그것은 네가 저주받아서 그런 거 아니고, 너의 부모가 죄를 져서 그런 것도 아니야

네가 그렇게 태어난 것은, 너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야.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기 위해서 그런 거야’

 

이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의 데스티니에 대해서 무시할 수도 있고, 멸시할 수도 있어요.

 

‘너 예수 믿어서 대단한 거 하는 줄 알았더니, 그렇게 사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어요.

세상은 우리의 부르심과 데스티니를 깔볼 수도 있고, 또 무시할 수도 있고,

저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억해야 될 건...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거야’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분들의 세상 기준으로의 능력은 각자가 다 다를 거예요.

세상은 여러분 줄 세우는 걸 너무 좋아해요. 등급 나누는 걸 좋아해요.

사람의 머리까지도 줄을 세우려고, 학교에서도 성전 순으로 등급 나누고,

아이큐 테스트 해가지고 줄 세우고, 직업으로 줄 세우고, 또 외모로 줄 세우고...

그러고 또 남자들은 키 가지고 줄 세우는 거 참 좋아하죠.

 

하나님은 줄 세우시는 거 안 하세요. 절대 줄 세우시는 거 안 하시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하는 거야’

‘너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거야’ 아멘!

 

혹시 머리가 안 좋게 태어났어도 괜찮아요.

그 안 좋은 머리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거예요. 아멘!

 

아니 머리는 안 좋지만,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 세상은 그거는 별로 중요한 능력으로도 안 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거짓 잣대예요. 거짓 잣대!

그러니까 다 똑같이 만드시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운동 잘하게 만드셨고, 어떤 사람은 음악 잘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미술 잘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난 정말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그런데 보니까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사람,

 

근데 그런 건 우리가 별로 중요한 은사라고 생각도 안 해요.

남의 얘기 잘 들어주는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다 똑같이 소중하게 보시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를 향한 진짜 부르심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 그 기준표에 계속 매여 있는 거예요.

 

계속 그 기준표에 매여 있으면서 ‘그래도 난 이거 하고 싶어, 그래도 난 그거 하고 싶어’

그게 정말 여러분 적성에 맞는지 좋아하는지 상관없어요. 남의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불행해지는 거예요.

 

적어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한 가지는 분명히 있어요.

‘내가 하고 싶어요’ 그건 분명히 있어요.

 

근데 그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세상 기준표에 눌려버려가지고서

해야 되는 걸로 바뀌었어요. ‘이거를 해야 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이건데, 그거 해봐야 별로 사람들한테 대접도 못 받고,

별로 인정도 못 받고 그러니까, 그게 이제 어렸을 때부터 세뇌된 거죠.

 

진짜 여러분의 데스티니를 찾고 발견하시려면, 이 세상 가치관부터 지우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나에게 어떤 부르심을 주셨는지,

그것을 깊게 들여다보세요.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그 길로 순종하셔야 돼요. 그 길로 순종하세요.

그러면 그 앞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영광이 드러날 줄로 믿습니다.

 

◑자기 데스티니를 이루려면.. 죄를 멀리하셔야 돼요.

 

이 데스티니의 쥐약(위험 요인)은 뭐냐 하면 죄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의 그의 영원한 운명이 어디서 바뀌죠? 죄지음에서 바뀌잖아요.

 

원래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영원히 누리도록,

죽지 않고 영원히 누리도록 그렇게 창조됐어요.

 

그런데 이 놀라운 놀라운 이들의 Destiny가, 죄와 타락으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버리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도 끊어지고, 에덴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죽음을 맞이해야 되는...

 

자, 이렇게 완전히 바뀌어 버렸는데, 이게 언제 일어난 거예요?

선악과 따먹을 때 일어난 거죠. 선악과 따먹을 때 일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죄는, 여러분, 우리의 데스티니를 파괴합니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죄를 짓는 순간에, 그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거기서부터 쫓겨나서 유리 방황하는 자가 되고, 평생을 불안하게 떠도는 자가 되죠.

 

가인은 한 번도 안정감을 누려본 적이 없어요. 평생을 불안함 가운데 떠도는 자가 되잖아요.

그래서 성을 쌓고... 그러니 비참한 운명이 어디서부터 오죠? 죄로부터 오죠.

 

이 죄는 여러분, 원죄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짓는 죄 말이에요.

내가 짓는 죄, 그걸 자범죄라고 하는데,

물론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권위 아래에 있기 때문에,

죄의 환경 아래에 태어나고, 그것을 원죄라고 부르죠.

 

하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데스티니를 파괴하는 훨씬 파괴적인 건 뭐냐면,

내가 실제로 짓는 죄예요. 내가 실제로 짓는 죄!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자범죄).. 이 죄가 우리의 데스티니를 꼬이게 합니다.

여러분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어요. 이것은 율법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거 안 하면 내가 고달픈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정말 큰 복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고, 그것을 다 계획해 놓으셨는데,

죄가 그것을 다 깨뜨리고 망가뜨린단 말이에요. *'반대 원리'에 지고, 굴복하는 거죠. 주1)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이유는,

그 죄가 하나님께 피해를 주는 게 아니에요. 죄는 우리 인생을 망가지게 해요.

우리의 데스티니를 망가지게 해요.

 

▲그래서 데스티니를 이루어가는 굉장히 중요한 열쇠가 뭐냐 하면.. 거룩함이에요.

거룩함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함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늘 했던 간증이 있는데,

제가 박사과정에서 논문 쓸 때 일이었는데, 그 논문이 꼬였어요.

 

근데 벌써 한 27년 전 얘기네요.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다 썼어요.

써가지고서 다 통과를 했습니다. 논문을 다 쓰면, 디펜스를 통과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관계되는 교수들 이렇게 모아놓고서, 제가 연구한 걸 발표를 합니다.

 

교수들이 논문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답하고(디펜스 하고),

그래서 그 정도면 오케이, 그럼 패스가 된 거예요.

 

그럼 싸인받고, 이렇게 본부에다 내면, 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게 프로세스인데... 디펜스가 다 끝났어요. 그러니까 뭐 다 끝난 거죠.

박사 공부 끝난 건데, 디펜스가 끝나고 나서 시간이 좀 남았어요.

가을 학기 초에, 논문 제출, 디펜스가 모두 다 끝났으니까요.

 

그러니까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어차피 학위는 그 학기 말에 받는 거고...

그래서 시간이 남아서 그냥 좀 여유를 부리고 있었어요.

10월 정도에 끝냈던 것 같네요. 그러고 한 11월 정도가 돼가지고서 싸인을 받으러 갔어요.

 

지도교수 싸인을 받으러 갔더니, 잠깐만 앉으라고 그러면서

'스탠퍼드에 있는 교수 하나가 자네 논문을 읽어보고는 조금 이상하다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는 '진짜 재수없다' 생각했죠.

그러면서 지도교수는 논문을 다시 주면서 '조금 더 생각해보라고..

그 교수가 클레임을 했으니까, 거기에 대답을 해줘야 되니까, 대답해주고 나서 싸인하자고'

 

그래서 논문을 반려받아서 돌아왔어요.

돌아오면서는 '진짜 재수없다 하루만 빨리, 어저께 와서 싸인받아서 내면 되는 건데,

괜히 하루 늦게 가는 바람에...'

그러니까 그날 아침에 다른 교수의 클레임 이메일이 온 거거든요.

 

그래서 그건 재수가 되게 없는 거예요. 사실 재수가 정말 없는 건데...

아니 원래 논문이라는 게, 처음부터 완전한 건 없어요. 조금씩 빈틈들이 있는 건데,

그게 시비 거는 사람만 없으면 되거든요. 시비 거는 사람만 없으면

일단 퍼블리시를 하고, 그 다음에 시비 거는 거는, 그때 또 그거 가지고 토론하면서

그 다음에 수정한 논문 내고... 원래 이렇게 하는 건데, 이게 학계의 룰이에요.

 

뭐냐면 발표하기 전에, 시비 거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해결하고 책을 내야 돼요.

그게 학자의 양심인 거죠. 문제가 있는 걸 알고도, 그냥 내면 안 되는 거예요.

 

근데 원래 발표하고 난 다음에도, 조금씩은 문제가 다 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토론하면서 고쳐가고 이러는 건데...

 

이건 양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학자의 양심상 문제를 알고 책을 내는 건 안 돼요.

그러니까 재수가 없는 거지요.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거든요.

몰랐기 때문에, 싸인 받아서 그냥 내면 되는 건데, 그러면 박사 학위를 받는 건데...

제가 집에서 계속 놀다가 지도교수를 너무 늦게 찾아가는 바람에...

 

그래서 할 수 없이 논문을 그냥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가지고 와서 고치려고요.

그래서 그 교수의 반론을 참조해서 제 논문을 들여다봤는데,

사소한 실수인 줄 알았는데, 되게 큰 실수였던 거예요.

그래서 이게 쉽게 고쳐질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거 고치려고 애쓰다가... 결국 그 학기는 넘기고, 또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됐습니다.

그 결론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어요. 결론이 틀린 건 아닌데,

수학 논문은 빈틈이 없어야 되거든요.

A면 B고, B면 C고, C면 D고... 증명 과정이 쫙 설명이 돼야 되는데,

한 단계가 설명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그 교수가 시비를 걸었으니까, 하여간 그 단계를 설명을 해줘야 되는데,

이게 뭐 설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학기를 그냥 거의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집 밖에도 안 나가고, 수염도 안 깎고...

일어나면 문제 풀다가, 그래서 지치면 쓰러져 자다가...

 

근데 한 달에 제가 A4 용지로 3천 장씩 계산을 했어요.

그러니까 뭐 그래도 이게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게 조금만 더 하면, 이건 해결 안 된다는 걸 차라리 증명하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거의 해결이 불가능해 보였어요.

지난 수 년간 공부한 게, 박사학위를 못 받으니, 물거품이 되어버릴 위기였던 거죠.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인데 새벽에요. 이 문제가 풀린 거예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가지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한 밤 2~3시쯤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비 걸었던 교수한테 쫙 이메일을 썼어요.

이래 저래, 저래 저래 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그렇게 보내고 자려고 누웠어요.

 

누웠는데 계속 이 생각만 하다 보니까, 잠은 안 들고, 또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 몇 개월만 그 논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쉽게 안 멈춰져요.

그래서 계속 머리가 돌아가고 있어서,

그만 멈추고 자려고 하는데도, 계속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침 7시쯤 됐는데, 또 틀린 걸 찾았어요. 이게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었어요.

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한 거예요.

그래서 '아휴, 그러면 그렇지, 그게 쉽게 해결이 되겠냐?' 그래서 그러고 일단 그냥 잤어요.

 

자고 한 오후 2시쯤 일어나가지고서, 이메일을 체크하려고 딱 쳤는데, 답장이 온 거예요.

시비를 걸었던 교수한테서.

그러면서 축하한다고 답장이 온 거예요.

 

이 사람도 속은 거에요. 근데 워낙 복잡하다 보니까, 또 다른 작은 결함을

그 교수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도 대충 보다 보니까, '그렇네 그렇네 OK' 하고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아 됐다고, 당신 논문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고' 이러고 이메일이 온 거예요.

그래서 딱 그걸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드냐면 '그냥 넘어가?'

'내가 말만 안 꺼내면 시비 걸 사람이 없잖아? 그냥 넘어가? 빨리 학위 받아야지...'

그 생각이 딱 드는데,

 

제가 그 당시에 [매일 성경]을 가지고 큐티를 하고 있었는데,

2시에 일어나서 큐티하겠다고 폈어요. 그걸 펴서 봤는데, 그날 본문이 요한계시록이었어요.

 

그런데 계시록에 보면 흰옷 입은 주의 백성이 나오잖아요. 딱 그 본문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딱 읽는데, 무슨 생각이 드냐면

'왜 주의 백성들은 맨날 흰옷만 입을까? 까만 옷도 입고, 회색 옷도 입을 수 있는데...'

그 생각이 드는데, 성령께서 그림 하나를 딱 떠오르게 하셨는데, 무슨 그림이냐면

하얀색 와이셔츠에 잉크 방울 하나가 딱 떨어지는 그림이었어요.

 

그러면서 뭐라 그러시냐면 '까만 옷이나 회색 옷에는 대충 뭐가 묻어도 눈에 잘 안 띄지만,

흰 옷은 딱 눈에 띄지 않냐? 나는 내 백성의 죄에 대해서 이렇게 예민하다'

딱 그 말씀을 하시는데, 여러분, 말씀을 함부로 펴는 게 아닙니다. 웃으시지만 진짜예요.

이게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는 말씀이 무섭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는 말씀이 무서워요.

 

그냥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냥 살아서 정말 칼처럼 찔러요.

말씀을 함부로 펴고 묵상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휴 그 말씀이 그냥 제 양심을 찌르기 시작하는데.. 근데 어떡해요?

그래서 차를 타고 일단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 가서 지도교수 방에 들어갔더니,

지도교수도 그 이메일을 벌써 받았죠. '어우 잘했다고, 그럼 싸인해 줄 테니 졸업하라고!'

 

근데 제가 그 앞에서 이실직고를 쭉 했습니다.

'사실은 그게 해결된 게 아니고요. 뭐 사실 이래저래 해가지고 착각한 거고요.

그 교수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겁니다...'

 

그랬더니 지도교수는 '알았다고.. 그럼 좀 더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나왔어요.

근데 나오는데 제가 알았어요. 더 이상 해볼 게 없다는 걸!

'아 이건 해볼 게 없다. (논물을 망쳤구나)'

'거의 6개월을 매달려 있었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다음부터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예요.

 

'이걸 해결 못하면 어떻게 되지?' 그러면 잘못하면 그냥 중간에 공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유학생들에게 제일 큰 트라우마가 뭐냐면, 공부하다 못 끝내고 돌아오는 거거든요.

그게 석사 때랑 박사 때는 굉장히 다릅니다.

 

박사 때는 뭐냐면 나이가 들었어요. 석사 때는 그만두고 돌아와도 젊었기 때문에,

뭐 딴 거 하면 되는데, 박사는요. 그렇게 돌아오면요, 딴 거 할 게 없어요.

나이가 들어가지고서... 나이가 들었으니까 어디다 뭐 취업하기도 그렇지...

그때 저는 나이가 벌써 34~35살이었는데, 다 20대들이 취업하지,

30대를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들어간다는 건, 그 당시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선배들도 중간에 이렇게 학위 못 마치고 들어오신 분들이 가끔 있는데,

그분들은 보통 사라져요. 모든 연락을 다 끊고.

 

그래서 대부분 어디로 가냐 하면, 학원가로 가세요. 대부분 학원가로 가세요.

학원 선생님하고 그러는데, 요즘은 일타강사가 있어서 돈도 많이 벌고 그러지만,

그 당시에는 또 그런 시대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학원 가면 지금처럼 엄청난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시대였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큰일 난 거예요.

그리고 또 제가 공부할 때 국비학생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3년 동안 지원받은 게 있어서, 그거 다 물어내야 돼요.

그러면 3년 동안 생활비랑 학비를 다 물어내야 돼요. 미국 학비가 비싸거든요.

그거 다 물어내야 되고 그러니까... 이게 보니까 인생 종쳤더라고요.

 

'이거 큰일 났다. 해결 못하면...' 그 생각이 이렇게 밀려오는데,

그래도 하나님 말씀하신 것이 '내 백성은 죄에 대해서 깨끗하기 원한다'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 자동차 안에서 성령께서 임재하시기 시작하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임재는 거의 경험한 적이 없어요.

정말 이렇게 차에 하나님의 임재가 꽉 차서, 폭발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소근소근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막 거기서 울었다가 웃었다가, 부흥회를 혼자 하면서 집에 돌아온 거예요.

 

그날 집에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염려가 안 되요. '아 그렇구나, 이게 하나님 손에 있는 거구나'

근데 뭐 저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플랜 B, C, D가 다 있어야 안심되는 사람이고요.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궁지에 몰리면, 패닉이 되는 사람입니다.

 

원래 그게 제 성향인데, 그때는 아무 염려도 안 되고, 그냥 완벽한 평안...

그래서 제가 알았어요. '아 평안이라는 것은 환경에서 부터 오는 게 아니구나.

평안은 환경에서 부터 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거구나...'

 

그러니까 불안이라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상태를 일컫는 거예요.

그걸 불안이라고 일컫는 거고,

평안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상태를 일컫는 거예요.

적어도 크리스천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완벽한 평안을 누리면서 교회 가서 이렇게 봉사하고. 짐 나르고 이러고 있으면,

선배들이 '야 너 얼굴 보기 좋다. 문제가 풀렸나 보다..'

그러면 저는 '아니요. 저는 한국에 가야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너 미쳤냐고? 빨리 가서 지금 문제 해결해야지.. 어디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제가 그러고 다녔어요.

 

그러고 한 일주일쯤 있었는데, 한 일주일쯤 있다가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열심히 그 문제를 풀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문제 푸는 건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주일 지나서 꿈에서. 제가 그 문제를 딱 풀었어요. 그러고 딱 깨어났는데,

보통 꿈의 특징이 뭐냐 하면, 꿈에선 풀리는데 깨어나면 기억이 안 나는 거죠.

그게 꿈의 특징인데,

그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기억이 다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이게 뭐지?' 하면서, 계산해 봤더니 그게 정답이었어요.

제가 도형을 하나 찾았어야 되었는데, 그냥 도형이 아니고

진짜로 슈퍼 울트라 복잡한 도형입니다. 정말 보기만 해도 끔찍한 도형인데,

조건에 맞는 도형을 하나 찾아야 되는데, 찾을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정말로 아무리 생각해도, 6개월을 생각해도 그 도형을 찾을 방법이 없었는데,

꿈에서 제가 봤어요. 그 도형을 보고 거꾸로 계산해 보는 건 쉽거든요.

보고 나서 거꾸로 계산해 봤더니, 모든 조건이 다 맞는 거예요. 그렇게 답을 찾은 거죠.

 

그래서 논문을 끝냈습니다. 그러고 두 번째 디펜스를 했고, 수학 박사학위를 마치게 됐습니다.

할렐루야! 별로 남의 일이라고, 여러분은 안 기뻐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제가 두 번째 디펜스 할 때, 지도교수가 물어보더라고요.

'너 그 도형을 정말 기가 막히게 찾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찾았냐고?'

그걸 어떻게 찾았는지는 상관없어요. 그런 조형이 있다는 것만 보이면 되는 거기 때문에.

그래도 궁금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도대체 어떻게 찾은 거냐고?

 

그래서 제가 간증을 쫙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포기하고 있었는데,

꿈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셔서... 그래서 꿈을 깨고 계산해 봤더니 그거였다고!

그래서 교수님도 예수 믿으셔야 된다고... 예, 그분은 지금도 안 믿어요.

근데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끝났는데 제가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제게 가르쳐 주신 게 있어요.

아주 중요한 진리였는데 그건 뭐냐면,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거예요.'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라는 거예요.

거룩함을 여러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럼 어떤 분들은 그러실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던데요?

맞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그냥 은혜이지..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죄가 있으면요. 임재를 거둬가실지, 그냥 조금 더 기다리실지는

그냥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임재를 걷어가셔도, 아무런 문제될 게 없다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조금 더 기회를 주실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정당하게 내가 요구할 권리는 아니에요.

언제 하나님의 임재를 걷어가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죄는 여러분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가 조금 있어도 조금 더 기다려주시고, '조금 있으면 해결하겠지' 참아주시고 하세요.

맞아요. 그렇게 하세요. 하나님은 인내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시는데,

그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영원하지는 않아요.

 

죄의 속성은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요. 그게 죄의 무서운 점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요. 아멘.

 

그래서 거룩함은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어가는 통로예요.

그것이 연결되어 있어요.

 

거룩함은 임재로, 임재가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돼요.

그래서 우리 삶 가운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실은 처음으로 고민해봐야 될 것은 죄 문제입니다.

 

물론, 죄가 없다고 해서 언제나 임재가 있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그건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하지만 죄가 있으면 하나님 일하시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어요. 히12:4

 

맞아요. 우리가 거룩함을 지켜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1차적으로는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 그걸 기뻐하시죠.

당신의 자녀들이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면 기뻐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적인 이유는 나를 위해서예요. 아멘!

거룩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한번 다같이 일어나서 기도합시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실은 능력이 없어서 일을 못하시는 분은 아니세요.

오히려 거룩함이 없어서 일을 못하세요. 그것이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하셔서, 우리 삶 가운데 개입 못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거룩함이 없어서 개입 못하세요.

거룩함이 없는 곳에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위배되잖아요.

그렇게 하나님은 일을 안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물론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다 자유케 되는 것은

지금 이 육신 가운데는 불가능할 거예요. 우리는 계속 넘어지고 계속 죄를 짓고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냐면 죄와 싸우는 거예요.

싸우는 죄로부터 완전해지라고 요구하지는 않으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는 하지만 죄와 싸우는 건 가능해요.

 

그러나 이 시기에도 죄와 싸우는 건 가능해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건 뭐냐면, 포기하지 않고 죄와 싸우는 거예요.

 

죄를 회개했는데 또 짓고, 회개했는데 또 짓고, 회개했는데 또 짓고... 그럴 수 있어요.

그런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하면 '벼룩도 낯짝이 있지, 똑같은 죄를 가지고 50번을

회개를 했어요'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포기하게 돼요.

 

아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그거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원하시겠지만, 그 전에 원하시는 것은 뭐냐 하면

그 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그 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100번을 넘어져도 101번 회개하고, 200번을 넘어져도 201번 회개하고

매번 처음인 것처럼 회개하는 거예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 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그 태도를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받으시는 거예요.

그 태도를 회개로 받으시는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죄가 완전히 없어져야만 그래야만 회개가 완성됐다고 생각을 해요.

아니 여러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이 육신을 가지고는,

물론 한 가지 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그럼 또 다른 죄가 있어요.

그럼 또 이 죄는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럼 또 다른 죄가 생겨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부패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모든 죄로부터 다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불가능해요.

그것은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는 안 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냐면,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상태를 요구하시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원하시는 거예요.

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오늘 넘어져도 또 일어나서 '하나님, 제가 다신 죄 짓지 않겠습니다.'

어 근데 또 넘어졌어요. 그럼 '내가 죽일 놈이지, 난 도저히 안 돼!'가 아니라,

그러면 마치 처음인 것처럼, 마치 처음인 것처럼

'하나님 내가 이 죄를 다시는 다시는 이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그럼 또 넘어져요. 그럼 또 일어나서 하나님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성화, 성숙에 이르는 거예요.

그 싸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결국에는 그 죄로부터 자유케 돼요.

여러분, 그 회개의 능력을 무시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언젠가는 자유케 하세요.

 

근데 그 죄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 또 그럼 다른 거 가지고 씨름을 하겠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이겨나갈 수 있어요.

하나씩 하나씩 이겨나갈 수 있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죄와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죄에게 잠식당하는 건 뭐냐 하면, 싸우는 걸 포기해서 그래요...

 

우리가 포기하면 그 죄에 결국 잠식당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겨요. 시간은 걸리지만 반드시 이겨요. 아멘이십니까?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믿음으로 받으세요. 아멘!

 

그게 가능한 이유는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가 이미 도말됐기 때문에 그래요. 아멘!

그래서 뻔뻔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죄가 이미 도말됐기 때문에 뻔뻔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아멘. 죄와 끝까지 싸우시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한번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죄로부터 나오게 하여 주시고, 죄가 우리의 삶을 비틀고 왜곡하는 그 역사로부터

제가 자유케 하여 주십시오.

나의 데스티니를 파괴하는 모든 죄악들은 이 시간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오니

다 제게서 떠나가게 하여 주시고, 우리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저를 충만하게 채워주셔서,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날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제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를 위해서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특별히 여러분 가운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오늘 다시 싸우십시오 어제까지 졌어도 괜찮아요. 오늘 다시 싸우시고

오늘 또 져도 괜찮아요. 내일 다시 싸우시고, 내일 또 져도 괜찮아요.

그럼 그 다음날 다시 싸우시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이겨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이겨요. 이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멘!

우리 이를 위해서 주 한번 부르짖고 다 같이 합심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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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반대 원리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 데스티니가 있는데,

그게 소중한 만큼, 마귀가 그걸 못하게 방해하고, 훼방하고, 죄짓도록 유혹하는

그 '반대의 힘'도 그만큼 크다는 뜻. 그걸 넘어서야 자기 데스티니가 이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