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딤전 6:1-2 2026.07.12. Youtube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딤전6:1-2 2026.07.12.
오늘 설교의 제목은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입니다.
크리스찬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딤전6:1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로 앞에 5장에서는, '가정과 교회에서 성도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장의 서두에 자연스럽게 '노예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가 '자연스럽게' 라고 표현을 한 이유는 뭐냐면,
로마제국 내 인구의 1/3 ~ 1/2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숫자가 노예였을까요?
그것은 이제 로마 제국이 확장을 해나가면서 전쟁포로로 잡혀온 노예들,
또 약소국가에서 팔려온 노예들, 또 채무관계를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노예가 된 사람들,
또 노예들이 자녀를 낳으면 신분이 태생적 노예인 거예요.
그래서 끊임없이 노예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5대 도시 중에 하나거든요. 그러니까 고위층도 많고, 부유층도 많죠.
그만큼 당시 로마 사회 안에 노예들이 많았던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라는 초대교회 안에, 노예 신분을 가진 교인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종들은 상전을 공경하라' :1
오늘 본문의 내용은, 주인에 대한 얘기는 없어요. 종들에 대한 얘기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벌써 의문이 시작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아니 어떻게 성경이 노예제도를 반대하거나 폐지하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지지하는 분위기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보라통독 QA 구약편]을 집필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꼭 보세요.
거기에 자세한 얘기가 나옵니다.
중요한 포인트를 몇 가지 말씀 드리자면, 모세 오경은
포학적인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종의 인권을 보호하는 여러 가지 규정들을 만든 겁니다.
고대 사회를 생각해보면, 1차 산업시대인 거잖아요. *농업
그러니까 이제 큰 규모의 기근이 오거나, 큰 규모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경제적인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산업 분야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서 곡물을 사기도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부동산까지 팔고, 부동산을 다 팔았는데도 경제력이 없으면,
자기 몸을 팔아서, 즉 노예로 자신을 스스로 팔아서 생존을 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노예제도는, 최빈곤층을 건져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노예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오잖아요.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제어하면서, 안식령과 희년에는 노예를 자유인으로 복귀시키는
그런 하나님의 평등법을 적용시킨 겁니다.
그런데 신약에도, 구약에도.. 종에 대한 이런 말씀들이 계속 나오다 보니까,
'노예 제도에 대해서 왜 성경은 폐지하라는 소리가 없냐?'
이 질문을 정말 많이 제기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신구약 성경을 보면서 일관되게 독특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했는데,
'성경은 노예제 라는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고,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이 회사에서, 어느 기관에서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어도, 그거를 운영하는 건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빌레몬서 1장의 경우에는, 골로새 교회에 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는 지주였던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라는.. 그것도 집에서 도망나갔던 종을,
'종이라고 여기지 말고 앞으로는 형제로 받아줘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종에게는 '진심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진정성을 갖고 주인을 섬겨야
된다' 이렇게 권면을 하죠.
그러니까 이제 상호 존중하고 평등한 이런 성경의 사상 때문에
기독교가 들어간 곳마다, 성경 어디에도 사실 노예제 폐지하라는 얘기가 없는데,
노예제 폐지운동, 노예해방운동이 신앙이 들어간 곳마다 다 일어나게 된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한 영혼을 바꾸셔서, 그가 세상을 바꾸도록 하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시대를 탓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죠.
▲1절 말씀 다시 읽어볼까요?
'무릇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종들은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하라'
성경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리더를 공경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이거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살아갈 때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은 거죠.
제가 청년부 사역을 예전에 한 5, 6년 했었는데
청년부 소그룹을 하다 보면 '깔때기 이론'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본문에 상관없이, 매일 결론이 두 가지로 납니다. 깔대기처럼 결론이 모아집니다.
-첫 번째는 연애와 결혼. 청년들의 주 관심사니까요.
-두 번째는 뭘까요? 직장 상사 욕하는 거.
'그 상사가 나를 너무 괴롭혀서 힘들다' 이런 거예요. 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일터에서 상사 너머에 계신 하나님이 보이는가요?
나를 이 직장에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이곳에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 일을 통해서 선한 일을 이루시고자 하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지금 사람의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제가 이제 생각을 할 때, 항상 떠오르는 본문이 삼상3:1절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1
자,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누구를 섬겨요?
엘리를 섬긴다고 되어 있지 않고, 여호와를 섬긴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아이 사무엘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젖 떼자마자 성소에 데려온 아이잖아요.
얘가 무슨 결정권이 있습니까? 자기가 뭘 결정할 권한이 없잖아요.
아이 사무엘은 그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가족도 없고, 부모도 없고, 지인들이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그의 곁에는 이미 영적으로 어두워진 엘리 제사장과
계속해서 사고를 치는 그의 두 아들 뿐이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좋은 마음으로 이 자녀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성소에 데려다 놨는데,
여러분, 사무엘은 악인들을 섬기게 된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이 사무엘을 보면서, 그가 어려서부터 명확한 감각이 있었다는 겁니다.
아이인데, 이 아이가 엘리 앞에서, 바로 자기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엘리예요.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이고, 자신의 아들들의 사고를 묵인하는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이렇게 돼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사람 앞에 서 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이 자기 정체성이 명확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 책 읽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공부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어린아이였어요. 근데 중3 때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나서, 제 인생에 꿈이 생긴 거예요.
제 인생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For the glory of God'
이렇게 책상에 딱 써붙여 놓고, 이게 약간 구겨지거나 흐려지거나 하면,
다시 명확하게 써서 이렇게 붙여놓고,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부모님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호령이 무서운 것도 아니고,
'내가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계시다니...
내가 그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야겠다...' 이런 결심이 생긴 거예요.
(*직장 생활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예화)
여러분의 자녀들이 사람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세상에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전임 전도사가 되었을 때, 보니까 명함이 나오더라고요.
교육전도사 때는, 명함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이제 전임 전도사가 되는 순간, 명함을 만들어야 되니까,
거기에 올라갈 영문 이름도 써 내고, 맡은 책임 부서 이런 거 써냈어요.
그럼 행정실 직원이 '교역자 명함 포맷'에 그걸 집어넣어서, 명함을 만들어주죠.
제가 그 명함에 적을 내용 써 내기까지. 한 달 동안 열심히 명함 구상을 해봤습니다.
'내 명함에 어떤 글자가 새겨지면 좋을까?'
'내가 어느 교회 전도사, 어느 부서를 담당하는 전도사, 이런 말이 좋은 걸까?'
근데 제가 묵상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어시스턴트',
'내가 드디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공식적인 명칭이 나오는 거구나'
그래서 명함에 넣을 말을 한 달 동안 묵상을 하는데,
'하나님의 어시스턴트' 라는 그 말에, 엄청 제 가슴이 벅찬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전임 교역자가 되고, 남 눈치 보면서 일하지 않았고,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았고, God's Assistant 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불철주야 정말 헌신적으로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TA, RA가 아니라 GA
▲제가 최근에 한 기업에서 직원들 강의를 하게 됐어요.
대표가 크리스천인데, 직원들은 크리스천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다 크리스천이 아닌 거죠.
이런 경우에 제일 힘듭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도 힘들고, 듣는 그들도 힘들어요.
그래서 이제 대표 분이, '기독교를 인문학적으로 강의를 해달라' 이렇게 요청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직원들 눈높이에 맞춰달라'는 얘긴데,
그래서 제가 아예 이번에는 직원들에게 이런 요청을 해봤어요.
“일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인간관계이든, 심리상담이든, 신앙적인 것이든,
뭐든지 먼저 질문을 하면, 제가 답변을 해주는 방식의 강의를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35개의 질문을 받았는데, 제가 오늘 두 개만 소개해볼게요.
첫 번째 질문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에 30%의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거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
그런데 70%의 일은 내가 하기 싫은 일입니다. 제가 이 일을 계속 해야 될까요?」 질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죠.
「직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이 3:7이라면,
이게 거꾸로 7:3이 되는 직장을 알아보셔야 되는 게 아닐까요?」
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첫 얘기를 꺼냈어요.
그리고 나서 한 얘기는 뭐냐면,
「우리는 인생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 딜레마는 뭐냐면,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를 때, 그때 인생의 큰 딜레마에 빠집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면 안 되는 일이고,
내가 해야 되는 일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에요.
인생은 그러면 완전히 꼬이게 돼 있는 거예요...」
자 그런데 책임감이 강한 유형의 사람들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자율성이 강한 사람, 즉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싶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너무너무 버겁게 돼 있어요.
저희 집 아들들을 키워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냥 맛이 있든 없든 먹어주는 아들이 있고,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아들이 있어요. 다르단 말이에요.
제가 이 질문을 딱 보고 나서, 이 질문자는 후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 유형.
그래서 이런 유형이라면, 두 가지를 생각하시라고 권면했어요.
첫 번째, 해야 하는 일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은,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떠받쳐주는 일반적인 제반 업무 능력이 될 경험이 됩니다.
전반적인 인력관리라든지, 시설관리라든지... 관리하는 거는 사실 잔무가 많잖아요.
그거 다 나중에, 자기가 하고 싶을 일을 할 때..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그러나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강화시켜서,
자신만의 강점을 준비하십시오.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두 번째 질문이었어요.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하는데, 행복하게 노력하는 방법이 없겠나요?」
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보고 '야 재밌는 문제다' 그리고 분석을 해드렸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성공이에요. 그럼 해야 하는 것은 노력이에요.
근데 하고 싶은 것은,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요.
자 그러면 중간에,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냥 편안하게 행복하게 지내는데, 근데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까요?
물론 간혹 그런 경우도 있죠. 로또가 당첨이 돼서 일확천금을 얻게 된다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알려주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숨겨둔 유산을 물려줘서...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케이스에, 대부분 결론이 행복해져요, 불행해져요? 불행해지죠.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빠져나가고, 내가 땀 흘려 벌지 않은 것은
가치를 부여하기가 힘들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비슷한 것을 하나 또 예시를 들었습니다.
「원하는 것은 하늘을 나는 거예요.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것은 이 허물을 벗는 고통의 시간을 갖는 거예요.
근데 하고 싶은 것은 행복한 애벌레로 그냥 지내는 거예요.」
하하하하 무슨 상황인지 아시겠죠?
애벌레가 나비가 돼서 하늘을 훨훨 멋지게 날고 싶어요.
그런데 그냥 지금 이 순간,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고 싶지,
허물을 벗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요.
자 그러면 누군가가 그의 허물을 벗겨주면, 여러분, 날아갈 수 있어요? 날아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허물을 벗는 그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만, 날개에 힘이 생기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도 '그렇게 자신에게 좀 격려를 해주시면 좋겠다.
지금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고
자신에게 얘기를 해줘라. 왜냐하면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다...' 라는 거죠.
▲자 이제 6:1절의 적용입니다.
제가 청소년들을 만나서, 청소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학업 스트레스, 성적, 진로, 대학 입시... 이런 걸로
십대 때 마냥 즐거워야 될 아이들이, 너무너무 버거워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가 학업 스트레스가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건 뭐냐? 공부가 재밌어지면 된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럼 애들이 으아아악 비명을 지릅니다.
'아니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느냐?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려는 것은 알겠는데, 목사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거죠.
네, 여러분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어질 수 있느냐?'
많은 사람들이 이게 인생의 큰 딜레마이고, 장애라는 걸 알면서도, 이거를 건너가지 못해요.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 장마 시즌인데 태풍이 올라올 때,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걸어들어가는 거예요. 태풍의 눈 한가운데는 무풍지대잖아요.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떨까요?
자녀들한테 '너 왜 공부 열심히 안 하니?' 이렇게 얘기하는 부모들...
직장 다니는 부모들은 어떨까요? 여러분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일 그만하고 놀고 먹으면 될까요? 아니면 일을 억지로 하면 될까요?
아니요. 일이 재밌어지면 해결돼요.
자 이제 여러분들이 침묵하잖아요? 애들 공부 안 한다고 다그치지 마세요.
이게 굉장히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게 진리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사람.. 그 사람은 직장 가는 게 행복하고요.
그런 사람이 결국 자기 사업을 하게 돼 있고, 그런 사람이 자기 사업체의 대표가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어질 수 있을까요?
제가 오늘 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제가 일에 대한 묵상을 하다가, 찬양이 한 곡 떠올랐어요.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님을 신뢰하는 자를 위해서, 주님이 계속 일하고 계신대요'
이게 너무 감사한 거잖아요.
근데 우리가 이 찬양하고 있으면, 주님이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아요.
'아니, 지들은 일하고 싶지 않으면서, 나한테 계속 일하라 그러네?'
주님이 온 우주만물을 만들어 놓으시고, 천상의 라운지에서 혼자 누워서 놀고 계시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떨 것 같아요? 굉장히 불안하지 않겠어요? 위기로 생각되지 않겠습니까?
자 그런데 주님은 그러면, 성실하게 이 온 우주만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성실하게 이걸 운영하시고 감당하셔야 되니까 일하셔야 된다 그러면서,
나는 그러면 놀고 먹는 게 맞느냐라는 거예요.
그러고 생각해보니까 지금 7, 8월 휴가 시즌에, 내가 무슨 설교를 하고 있는 거지요?
'왜 이 본문이 하필 이 시기에 나왔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여름휴가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다녀오시고 나서 일터에 대한 좀 새로운 관점이 열리시면 좋겠어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고백하느냐? 시편 121:4절 같이 읽어볼까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24시간 근무하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제일 원하지 않는 거잖아요.
렘33:2절 읽어볼까요?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일을 행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일을 만드시는 분이래요.
여러분 직장에서 일 만드는 사람들 제일 싫어하잖아요.
'아니 기본 업무 외에 또 일을 만들어?'
그런데 '일을 만들어서 그것을 결국에 성취하시는 여호와다' 이렇게 성경은 증거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행복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나의 인생의 완성을 위해,
매 순간 쉬지 않고 계획하시고,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 최고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을 일하게 만들고 나는 쉬면 될까요?
요5:17절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하하하
아버지께서 일하신 것처럼 우리도 일하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구원하신 것처럼,
아버지께서 구속 역사를 완성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각자의 분야에서 여러분 창의적인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 일은 그냥 루틴인데...
아니요. 제가 드리는 말씀은 새로운 마음으로 일하시라는 거예요.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하실 때, 그때 사람은 살아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리고 내 일을 통해서, 누군가를 구원해내는...
그게 직장을 살려내는 것이든, 고객을 살려내는 것이든, 내 가족을 살려내는 것이든,
일을 통해서, 구원의 일을 하고, 이 길 끝에서 여러분의 인생의 완성을 경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그런 삶을 산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 그분의 창조하심과 구원하심과
완성하심을 내가 닮아가는 것이고 동역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일 얘기를 계속하니까, 여러분이 우울해져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서, 사람들이 왜 일의 가치를 점점 하락시킬까요?
그것은 쾌락주의 시대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 노동, 근면>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라, 성공해라 얘기하잖아요.
부모가 성공주의 가치관이에요.
근데 성공주의보다 더 근간이 있는데, 그것이 쾌락주의 가치관입니다.
왜냐하면 성공을 하라고 하는 이유는,
성공을 해야만 내가 물질을 확보할 수 있고,
물질을 확보해야만 내가 편안하게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행복'이라는 것을 철학적 용어로 가치중립적으로 '쾌락'이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리고 쾌락(즐거움) 이라는 단어를 쉽게 한마디로 얘기하면 '재미'인 거예요.
재미있는 인생, 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일이라는 것은 행복에 방해가 된다..
이런 관점도 있고, 또 일은 행복의 도구일 뿐이다..
이렇게 도구로 전락시키는 시대가 되어버렸어요.
여러분 그런데 일은 단순히 물질이나 쾌락이라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나 수단이 아닙니다.
아니면 행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제가 방금 전까지, 하나님이 일하심을 우리가 닮아가야 된다는 것을 얘기했잖아요.
우리는 모두 인생을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럼 행복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가족, 친구...
그 외에도 좋은 결혼, 좋은 커뮤니티도 필요하고
자기 일에 성공해서 보람이 있으면 더 좋겠고, 나중에 건물주가 되면 더 좋겠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이런 요소들이, 행복을 위해서 단기간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도 과하면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독소가 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걸 이미 경험하신 분들도 있어요.
자 오히려 궁극적이고 영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재미가 아니라 의미가 필요해요.
재미는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 결국에는 지루해지게 돼 있고. 싫증이 나게 돼 있고,
허무해지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의미는 오래도록 재미있게 돼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일은 의미를 창출해내는데, 엄청난 힘이 되고 근간이 되어줍니다.
왜냐하면 일이라는 것은 '내가 그래서 세상에 태어난 거구나.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사명 때문에 태어났구나' 이거를 깨닫게 해주는 게 일이기 때문이에요.
어린아기를 낳아서, 다윗과 같은 예배자로 키워내고,
에스더와 같은 기도자로, 다니엘 같은 인물로 키워내는 것,
여러분 이것은 그냥 억지로 떠맡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내게 주신 재능과 열정으로, 일터에서 일을 하며,
세상에 누군가를 살려내는 일을 하는 것, 이것도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들을 창조하신 게
재미로 하신 거예요? 아뇨.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왜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일을 통해서, 단순히 재미를 위한 도구 내지는,
과정으로 일을 전락시키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그런데 바울이 일 얘기를 하다가 한 가지 특별한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이게 뭐냐면 '교회에 나와봤더니 우리 주인도 이 교회를 다니네?'
그러면 주인이나 종이 함께 한 교회 교인이 된 거잖아요.
'그러면 주인이 나를 좀 봐주겠지.. 내가 그냥 쉬엄쉬엄 일해도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나의 섬김이 주인을, 하나님의 자녀를 이롭게 한다면.. 내가 더 잘 섬겨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라는 얘기예요.
▲제가 이 지점에서, 고대 노예제도와 현대 고용제도를 비교를 해봤어요.
그래서 좀 조사를 해보니까 공통점이 있는데,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산업구조라는 점,
-또 한 가지는 주인과 종이냐, 아니면 고용주와 피고용자냐?
약간 다르긴 하지만 주종관계라는 점... 이런 점은 유사합니다.
그런데 노예제도와 고용제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평등과 자유' 입니다.
고대 노예제도 때는, 노예가 주인보다 하등한 존재잖아요. 동등한 존재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나 오늘날 피고용자는 법적으로 평등한 거예요.
법 앞에 그래서 고용주나 피고용자나 평등해요.
참정권에 있어서도, 인권에 있어서도, 기본권에 있어서 동등한 거예요.
또한 노예는 거주나 이동의 자유가 없었어요.
'나 이 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내일은 다른 집에 가야지..' 이거 못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피고용자는, 거주에도 자유가 있고, 이동에도 자유가 있죠.
'나는 이 회사 그만 다니고 싶어' 하면, 퇴사하고 다른 회사 다닐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제 알게 된 건 뭐냐면,
만약에 현대 고용제도 안에서 일하는 사람일지라도,
평등이 깨지거나 자유가 박탈되면.. 현대판 노예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현대 직장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권을 발휘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일터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거예요.
▲그 어떤 인문학 강사가, 제가 그분의 사상을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현대 직장인을 '출퇴근하는 노예'라고 부르면서, 노예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노예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제가 오늘 강조한 포인트가 뭔지 아세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 그 사이에 갈등을 얘기했잖아요.
여러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닌데, 그가 원하는 일, 세상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이게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노예인가, 자유인인가?
그래서 몇 가지로 자가진단을 해보시라고, 제가 다섯 개의 문항을 만들어봤어요.
여러분은 몇 개에 해당되는지 보세요.
-상사의 눈치를 살피면서 일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하면 안 된다고 내 신앙 양심상 생각하는데도, 그 일을 해야 된다
-생계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데, 이유를 모르는 일을 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만약 2~3 가지가 적용된다면
여러분은 출퇴근하는 노예일 가능성이 상당히 큰 거죠.
자유가 없고, 의미가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회사의 문제이든, 상사의 문제이든, 여러분 개인의 문제이든 간에요.
▲자 그러면 성경은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요?
우리가 오늘 읽은 6:1절에서 '마땅히 공경하라'는 것은 당위성이에요.
그런데 6:2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더 잘 섬기라'고 되어 있잖아요.
'더 잘 섬기라'는 것도 당위성처럼 보이지만, 이거는 자율성이에요.
왜냐하면 해야 되는 기본값을 하는 것까지는 당위성이지만,
그거보다 더 잘하려면 내가 자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예요.
'네가 더 잘 되었면 좋겠다' 이거는 자원해야지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엡6:5~6절에도 종들에게 이야기한 게 있는데, 똑같은 구조입니다.
제가 읽어보면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상전에게 순종하라' 이거는 당위성이에요.
그런데 6절에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너의 마음의 그 밑바닥으로부터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지' 이거는 자원함이에요.
이게 자율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인 거예요.
▲제가 그 아까 과거에 저의 전임전도사 때 처음으로 명함 받았던 거 얘기했는데,
제가 전임이 되고 나서, 한 가지! 하루 종일 교회 사무실에서,
여러 명이 이제 함께 앉아서 일을 하는데, 제 마음에 결정한 게 있었어요.
그건 뭐냐면 '내 리더의 일을 내 일보다 우선으로 처리해드리겠다' 이 결정이었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 스스로 그 결정을 했어요.
그리고는 제 담당 목사님의 업무부터 해결해드리고, 퇴근시켜드리고 나서,
그 다음에 제 일을 마무리했어요.
그렇게 몇 달을 거의 반년을, 1년을 이렇게 지나니까
기뻐하고 있는 리더의 뒤에 웃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이더라고요.
자 그런데 여러분, 이제 직장에서 일해보시면 알잖아요.
자기가 맡은 일을 다 하는 것도 사실 버거울 때가 많은데,
근데 이렇게까지 일을 하려면, 일에 끌려다녀서 해서는 불가능합니다.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하셔야 돼요.
'리더의 비전을 내가 더 구체화시켜주고, 더 확장시켜주는 그런 기획을 하고, 추진을 한다?'
그러면 그 일이 그의 꿈이 아니라, 나의 꿈이 돼야 돼요.
조직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비전, 나의 사명,
내가 애정을 갖고 하는 일이 되어야 돼요.
▲제가 이 설교를 이렇게 준비를 하면서, 주말에 내가 지금 일 생각 안 하고.
좀 쉬려고 나왔는데 '목사님은 그냥 설교 내내 일 얘기만 하고...'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단순히 그냥 '일'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도성이라는 것은, 영적 관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자유의지이기 때문이에요.
자유가 없으면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있어도 인간답지 못하고, 결국에 행복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첫사람 아담에게, 하나님이 그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다 맘대로 짓게 하시잖아요.
'야 그건 좀 이름이 유치하지 않니? 이상하지 않니?' 이런 얘기로 개입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아담이 다 혼자 하게 하셨어요. 저를 한번 따라해보세요. '주도성!'
주도성의 영어 단어가 '이니셔티브' 인데,
이 말 자체에 '시작한다'는 뜻이 들어있잖아요. *시작해서 주도해 나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에요. 명령이 와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해서 하는 거예요.
내가 원해서 내가 시작하는 일... 그게 주도성이에요.
여러분, 주도성을 가지면, 자율성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나의 윗사람, 나의 동료, 나의 고객, 나의 밑에 있는 사람들과
협응력이 반드시 향상되게 돼 있어요.
왜냐면 이 반대 상황을 생각해 보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은 자율성이 일단 없잖아요.
그것뿐만 아니라 리더가 일을 시킬 때까지 안 해요.
동료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시킬 때까지 일을 안 해요. 따질 때까지 일을 안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같이 일하기 어렵습니다. 협응력이 떨어지게 돼 있어요.
결국에는 자기 입지를 줄어들게 만들죠.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삼아서, 내가 먼저 이니시에이션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에는 자기 인생이 계속 좁아지게 돼 있고요.
하기 싫은 일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에는 그 일조차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까지 가게 돼 있어요.
▲롬6:6 '죄의 몸이 죽어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기를 원합니다.
'죄의 종노릇'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이거는 일종의 중독현상인데, 로마서 7장을 보면,
'내가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 근데 그걸 계속하는 거예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하면서, 거기에 매여서 살게 만드는 것,
네, 하면 안 되는 일, 그 일에 매여서 사는 것, 이게 사탄이 원하는 거예요.
우리의 자유의지를 망가뜨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천국에서의 그림은 뭔가요?
계22:5 '그들이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왕의 자녀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사탄은 우리를 종노릇하게 만들기를 원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나의 꿈으로 생각하고 나의 소망으로 생각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어린 사무엘 얘기했잖아요.
제가 29년 사역해보니까, 여러분 일터에서, 여러분의 직책이 문제가 아닙니다.
직함의 문제가 아니에요. 파트타임이고 알바고, 아니면 이제 말단 직원이어도,
여러분 자율성과 주도성을 갖고 살 수 있어요. 왜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고 계십니까?
그래서 이제는 '다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까지 드십니까?
근데 그게 여러분에게 정말 고된 일 아니면, 부당한 일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저는 시대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쾌락주의 사상이, 마치 영혼에 설탕물을 들이붓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거든요.
건강한 음식을 거부하게 만들어요. 체질이 변하게 만들어요.
이 쾌락주의라는 사상에 중독이 되면, 인생과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상실되게 돼 있어요. 왜인 줄 아세요?
여러분, 수고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쉽게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쉽게 행복해지려면 대가 지불이 적고, 행복이라는 목표에 쉽게 이르고 싶잖아요.
이게 소위 '가성비 인생'입니다.
여러분 가성비 맛집 가보셨죠? 저도 가성비 맛집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제 가성비 맛집에 가서 먹어보세요. 그러면 딱 그만큼의 값어치, 그 맛이지,
그 이상은 아니에요.
내가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 헌신을 한 만큼,
나는 훨씬 더 깊이 있는 가치와 의미가 창출되게 돼 있어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뜨겁게 경배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예배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영적 자율성과 주도성이 몰라보게 달라질 겁니다.
이게 왜냐면 제가 하나님 인생에 의미 없이 살다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고 나서
'와 이분을 위해서 내가 목숨 걸고 살아야겠다' 이 결단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여러분, 일반론으로 봐도 여러분이 인생에서 폭발적인 힘이 생기고,
이런 기적적인 에너지가 내 안에서 일어난다고, 그런 상황은 딱 언제인 줄 아세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예요.
여러분이 배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아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평생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소중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아기를 위해서 내가 평생 이 아이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살아야겠다' 하면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게 돼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선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여러분의 인생에 상상하지 못했던
내면에 놀라운 창의성과 주도성과 자율성이, 생산성이
여러분 안에서 터져 나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절대로 종노릇 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왕노릇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육아를 하는 분들, 억지로 하지 마세요. 직장 다니는 분들, 억지로 하지 마세요.
인생 살면서 억지로 살지 마세요. 제가 그렇게 살아봤던 사람이거든요.
죽지 못해서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여러분, 정말 내가 자원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여러분이 살고 싶은 인생을 펼치고 왕의 자녀답게 존귀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