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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장 중독보다 더 큰 믿음

LNCK 2026. 7. 25. 20:17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중독>   

[예수동행 목요집회] 2026.07.23 l 마8:1-4 l 중독보다 더 큰 믿음  Youtube   

 

◈중독보다 더 큰 믿음             마8:1~4                   2026.07.23.

 

오늘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좀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주님께서 정말 여러 번 애통하는 마음으로 저를 울게도 하시고,

그리고 진짜 중독에 빠져있는 이들을 향한, 정말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도 느끼게 하시고,

 

그리고 오늘도 말씀을 전하러 나오기 전까지도,

주님이 그런 (긍휼한) 마음을, 계속 저에게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직접 나오신 분도 계시고, 온라인으로 참여한 분들도 계시고,

나중에 유튜브 영상으로 이 집회를 보실 분들도 계시겠는데,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정말 심각한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란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소식,

그리고 폭염이나 폭우, 장마, 홍수로 인한 환경에 대한 문제들,

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너무너무 어려운 문제들이지만,

그보다도 정말 견딜 수 없도록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바로 중독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흉악한 결박’이라고, 성경이 그런 표현을 써서,

‘흉악한 결박에 묶인 자들을 주님이 풀어주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사58:6참조

예수님은 자신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고 하셨죠. 눅4:18

 

지금 현재 그런 형편 속에 있는 분들은,

진정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분들은 다 그렇죠.

 

예수님께서 오죽하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셔야만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를 흉악한 결박에서 풀어줄 수 없으시니까, 그렇게 하신 거죠.

 

단순히 마약 중독만 아니고, 지금 여전히 알코올 중독으로,

또는 어떤 성 중독으로, 또는 도박이나 어떤 재정적인 눌림으로,

또는 인터내셔널 게임 같은 형태의 중독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기 싫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은 자꾸 하게 되는... 그게 사실은 다 중독이죠.

 

두려움과 염려도, 죽고 싶은 생각도, 우울증도 그렇고, 분노도 그렇고,

정말 미워하는 마음도 그렇고...

하나님의 말씀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길로만 자꾸 가게 되는 하루를 지나고 나면...

너무너무 자신이 스스로 비참해지고,

이런 모든 현상이 사실은 ‘흉악한 결박에 묶여있는’ 것이거든요.

 

▲북아일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조지 베스트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유명한 축구선수 펠레에 비견할 만한 재능이 있었던 선수였지만,

그가 알코올 중독으로 완전히 자기 커리어를 다 망치고,

그리고 간 이식 수술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들은 내가 술을 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은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피눈물을 흘리며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짐을 하는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술이라는 단어로 가득 찼고,

저녁이 되면 좌절감, 수치심에 또 술을 마셨습니다.’

 

흉악한 결박이 얼마나 무서운 건가를 말해주는 거예요.

이 중독이 가지고 있는 잔인한 현상이, ‘끊으려고 노력하는 걸’ 오히려 먹고 자라요.

 

이 중독이 이게 기가 막힌 거죠.

그래서 옆에서 ‘좀 제발 끊어, 그만 해!’ 그 말이 그 중독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그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거예요.

 

옆에 있는 사람도, 그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고,

본인은 본인대로 미칠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그 수치심과 절박함, 좌절 때문에

결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게 되죠.

 

지금도 아마... 우리 중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중독의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고,

또 가까이 있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그런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답은 예수 그리스도세요. 예수님이 흉악한 결박(중독)을 푸시는 분이세요.

눅4:18절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자신을 소개하신 말씀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위 구절은, <예수님의 사명선언문> 이라고도 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가장 놀라운 사역이,

‘우리가 묶여있는, 영적으로 마음으로 내 삶속에 이렇게 꼼짝달싹 하지 못하게 묶여있는,

거기서 우리를 풀어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속박에서 풀어주시는 일을 하시려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사명선언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때는, 흉악한 결박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나병’이었어요.

사실 우리도 여러 가지 형태의 중독을 이야기하지만,

나병에 걸린 사람의 심정... 그보다 더 할까요?

 

네 그는 빨리 죽는 게, 사실 구원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끔찍한 상태지요.

우리 영상을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만나서 고쳐주시는 영상입니다.

 

*영상은 맨 위 출처 유튜브 영상에서 각자 보시겠습니다.   09:30~12:45초

 

예수님께서 나병을 치료하신 일은, 우리가 사실 너무나 잘 아는 내용이죠.

그런데도 제가 오늘 이 영상을 한번 봤으면 하는 것은,

사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너무 강하게 와닿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나환자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나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나환자는 믿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에게 드린 말씀이에요.

 

‘주님께서 저를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이 나환자가, 예수님께서 자기를 지금 고치실 것에 대한 믿음은,

분명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능히 죽은 자도 살리신 분이고, 나병도 고칠 수 있으심은, 그가 분명히 믿었어요.

근데 문제는 ‘예수님이 나를 정말 고치실까? 지금 고치실까?’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가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 저를 깨끗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담대하게 구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저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이 나환자의 마음을 볼 때...

너무 제 마음이 아픈 거예요. 마8:2

 

그는 평생 거절받고 살았어요.

나환자는 누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 자체를, ‘나는 부정하다’며

스스로 소리질러서 막아야 됐어요. 그는 평생을 거절당하고 살았습니다.

그게 예수님 앞에서도, ‘주님이 나를 정말 알고 계시고, 오늘 나를 고치시고, 나를 건지실까?’

그 점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린 거예요. 확실히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도 똑같이 우리들의 문제예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다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이시고, 그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신 것’을 다 믿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주님이 오늘 나를 중독에서 건지실까?’

그 점에 대한 믿음에는 문제가 있어요.

그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거에요.

 

중독은 치유받기 전에, 먼저 믿음이 회복이 돼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환자에게 먼저 손을 대셨어요.

그리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나환자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손을 대셨다’

‘누군가가 건강한 사람이 자기에게 손을 댔다’ 그건 나환자에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손을 대셨다는 말은,

그 자체가 ‘내가 분명히 너를 고칠 것이다’ 라고 하는 명확한 싸인이었어요.

그리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나환자가 고침을 받은 거예요.

 

마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자 오늘 우리들에게도, 바로 이 문제가,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서 붙잡아야 될 일이에요.

 

오늘 여러분들 중에 실제로 마약 중독에서 지금 놓임을 받기를 갈망하는 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흉악한 결박에 묶여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그런 가까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지금 가장 우리에게 지금 어려운 게 믿음의 싸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나를 고치실까? 오늘 해결해 주실까?’

그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이 자신이 없으신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언젠가는 고치실지 몰라... 그래, 주님은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겠지...

근데 그게 오늘일까? 그 사람이 지금 나일까?’ (이것은 흔들리는 거죠)

 

믿음은 언제나 엄청난 저항을 가져와요.

우리가 계속 ‘믿으라,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라,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저도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보려고 할 때,

‘믿음이 얼마나 어려운가, 가장 어려운 게 믿음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저는 한 때, 설교의 열등감 때문에 엄청난 수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고전1:27~28절에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저는 그걸 온전히 믿지를 못했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신다’ 진짜 믿으면, 해결 안 될 문제가 없어요.

‘내 약한 것 때문에, 내 부족함 때문에’ 그런 걱정할 거리가 뭐가 있겠어요?

 

하나님이 약한 자를 택하시고, 미련한 자, 없는 것, 천한 것, 멸시받는 것을

하나님이 택하신다면,

그러면 나의 약한 것, 나의 부족한 것 때문에, 오히려 춤을 추고 기뻐할 일이죠.

문제는 믿음인 거예요.

 

제가 3일 동안 그 문제로 몸부림치다가 ‘하나님, 제가 말씀 그대로 믿겠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고꾸라졌어요.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여러분, ‘믿음으로 치유를 받으라’ 그 말에, 지금 더 마음이 무거운 분들이 있을 거예요.

‘안 믿어지는데... 도대체 어떻게 믿어지는 거지?’ 이런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본문의 나환자를, 우리가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환자는 ‘자기 나병이, 그날 예수님으로부터 고쳐질까?

예수님이 나를 고치기를 원하실까?’

여전히 그는 그 문제에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환자는 예수님께 나아갔어요.

예수님 그분은 모든 것을 고치실 수 있음을, 그는 그냥 믿은 거예요.

그거 하나뿐이에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거 하나를, 분명하게 붙잡은 거예요.

그리고 반전이 일어나게 됐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말씀하실 때에,

‘내가 중독에서 오늘 벗어날 것이다’ 이걸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에요.

그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아닌가 봐’ 오늘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어요.

 

주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믿음을 주셨어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을 우리 가운데 허락하셨어요.

 

예수님이 나환자에게 손을 얹으신 것보다,

우리는 더 놀라운 주님의 터치를 받고 있어요.

주님이 내 안에 오신 거예요. 지금 내 안에 오신 거예요.

 

지금 현재 온갖 형태의 흉악한 결박으로 인하여 몸부림치는 분들,

마음이 무너진 이들,

지금 여러분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여러분이 오늘 꼭 확인하셔야 될 것은,

그런 내 안에 ‘예수님이 과연 오신 건가?’ 이걸 확인해야 돼요.

 

▲어느 한 분의 동행일기가 참 감동이었어요.

「캄캄했던 밤, 저는 더 이상 기댈 사람도, 방법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릎 꿇고 ‘저는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한마디밖에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문제가 그 자리에서 풀린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에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임했습니다. *‘기도응답’이 된 거죠. ‘평안’이 싸인.

 

그제야 알았습니다. 주님은 짐을 치워주시기보다,

그 짐을 지고 갈 수 있는 당신 자신을 주신다는 것을!」

 

정말 정확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더 크지,

주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내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 주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이 훨씬 커요.

훨씬 더 놀라운 일이에요!’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일이 내게 이루어졌어요.

그러면 충분한 거예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시잖아!’ 이거 하나는 분명히 믿어져요. 그러면 된 거예요.

그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돼요.

 

△제가 도무지 기쁠 수 없는 일을 겪었어요.

근데 '항상 기뻐하라'는 설교를 해야 했어요.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내가 지금 기쁠 수가 없는데, ‘항상 기뻐하라’는 설교를 어떻게 할 수 있지요?

 

그때 주님이 주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기쁨은.. 기쁜 일이 생겨야 기쁜 게 아니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기쁘지 않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요.

 

그런데 어떻게 항상 기뻐해요?

기쁨 그 자체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쁘지 않는 일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날 그 마음으로 설교를 했어요.

‘주님은 제 안에 분명히 계시니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은 참 기가 막히게 어렵지만,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니까...’

그리고 (항상 기뻐하다 보니 얼마 지나) 하나님께서 그 정말 수렁에서 저를 벗어나게 하셨어요.

 

오늘 이 시간 만약에 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면 돼요.

아주 간단해요.

 

무슨 특별한 어떤 장소로 가야 되거나, 어떤 특별한 목사님 앞에 가야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주님, 제가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생명, 나의 왕으로

제가 영접합니다. 주님 제 안에 오세요.’

 

여러분이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고백하면, 주님은 신실하셔서,

반드시 우리 안에 오신다고 하셨어요. 그럼 충분해요.

주님이 내 안에 오신 것으로 끝이에요.

 

그리고 이제는 그 주님과 함께, 그냥 한 걸음씩 순종해 가면 돼요.

그게 모든 것이에요.

 

지금 내가 너무 캄캄한 어둠 속에, 절망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빛으로 주님은 와 계세요. 여러분이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면,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 심령에, 빛으로 주님이 와 계신 걸 알게 돼요.

그 빛인 주님을 붙잡아야 돼요. 그러면 주님이 이끄세요.

 

▲한 번은 제가 대학부 담당 목사일 때, 다급한 전화가 왔어요.

칼을 들고 죽겠다고 발버둥 치는 대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가, 전화하신 거예요.

아무리 해도 이 아이를 못 막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 아들은 어려서부터 간질이었어요. 본인도 너무나 좌절했어요.

그는 생각하기를 ‘내가 죽어야 우리 가정에 평화가 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죽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 목사님하고 한번 통화라도 해보고,

자기가 마지막 죽어도 죽겠다... 아버지와 최종적으로 그런 타협을 했습니다.

 

‘그러면 좋다. 목사님하고 한번 통화를 해보자!’

그 부모님은 교회 다니시는 분이 아니셨어요.

워낙 다급하니까 그냥 그렇게라도 제안을 한 겁니다.

 

‘목사님이라는 분하고 한번 통화라도 해봐라!’

그렇게해서, 전화가 제게 연결이 된 겁니다.

 

‘제가 교회에 올 수 있겠느냐?’ 오겠대요.

그래서 그러면 오라고 했어요. 칼을 들고 왔어요.

교회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의 손을 붙잡았어요.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간질 증상이 다시 나타났어요.

 

입에 거품을 불고 온몸이 그냥 돌덩어리처럼 뻣뻣해지면서 그냥 쓰러지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제 마음이 애통한지...

그 청년을 붙잡고 엄청나게 울었어요. 그 청년을 붙잡고 제가 엄청나게 울었어요.

 

감사하게도 다시 경직이 풀리고, 그리고는 (제 정신이) 돌아와서,

교회 나오고, 그때부터 제가 그 대학생을, 말씀 양육을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고, 말씀을 설명해주고,

하나님은 계시고, 자녀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그랬더니 자기는 안 믿어진대요. 그 말이 안 믿어진대요.

 

그래도 매주 말씀으로 양육하면서, 정말 놀라웠게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시는 것을 보았어요.

그해 송구영신예배 때, 송구영신예배 드리러 와서,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거예요.

 

뭐냐고?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 주실 것이 믿어진대요.

그래서 이제 약을 안 먹고 싶대요.’

 

그래서 의사에게 갔대요. 오늘 엄청 야단 맞았대요.

의사가 ‘너 교회 다녀서 완전 이상하게 됐구나. 넌 평생 약을 먹어야 돼!’

그게 너무 절망이 되어서 제게 온 거예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은지?’

 

하나님이 나를 고칠 수 있다는 게 믿어진대요. 근데 의사는 약 끊으면 안 된대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저도 의사의 말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그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나마저도 ‘너 평생 약 먹어야 돼!’

이렇게 하면 이 청년 안에 일어나는 이 믿음을, 그냥 무너뜨리게 되잖아요.

 

‘주님, 어떻게 해야 되죠?’

그때 다니엘 생각이 났어요. ‘아, 그렇게 해보자’

다니엘서 1장에, 육식을 하지 않고도, 얼굴이 더 윤택했던 다니엘,

그래서 관리장에게 ‘열흘 동안 시험해 보라’고 했던 다니엘!

 

그래서 그 청년에게

「의사에게 찾아가서 ‘하루만 약을 안 먹게 해주세요’ 부탁하고,

아마 그 정도는 의사가 허락해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루는 약을 안 먹고.. 괜찮으면.. 그러면 얼마 지나서

‘3일을 안 먹게 해주세요.’ 부탁하고,

 

3일도 괜찮으면, 얼마 지나서 또 가서 ‘이번에는 1주일을 약을 안 먹게 해주세요.’

그래도 괜찮으면 그 후에 ‘한 달을 안 먹게 해주세요.’

그래도 괜찮으면 ‘3개월을 약을 안 먹게 해주세요.’

그래도 괜찮으면 ‘이제는 약을 끊어도 되겠다!’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의사분이 하루는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해줬어요.

그 후 경과가 괜찮으니, 그럼 한번 해보자 해서, 3일을 안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했죠.

 

제가 매일 전화로 기도를 해 줬어요. ‘어떠냐? 지금 몸 상태가 어떠냐?’

그리고 전화로 기도해 주었어요. 그는 결국은 약을 다 끊었어요.

지금은 어느 감리교회의 권사님으로 섬기고 있어요. *감리교는 남자 권사 있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만 분명하면,

그러면 내가 어떻게 고침을 받고 벗어날지는,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하나만 분명하면 돼요.

 

주님이 오늘 나와 함께 하루를 함께 하시는 것으로 충분해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냥 하루를 살면 돼요. 그 기쁨으로 사는 거예요.

 

아침에 주님을 부르고, 하루 종일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하루를 걸은 것이 이건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일이에요. 기적의 하루에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 돼요.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놀랍게 세워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중독에 사로잡히는 강력한 무기가 은밀함이에요.

 

중독은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자라요.

‘이것만은 아무도 몰라야 된다.’ 그 비밀이 결박을 점점 단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계속 정죄해요. ‘네가 그러고도 성도냐? 네가 그러고도 집사냐?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그래서 더 혼자 있게 되는 거예요. 더 숨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결국은 완전히 얽매이게 만들어요.

숨을수록 혼자가 되고, 혼자가 될수록 중독에 더 매여요.

 

야고보 사도가 말했습니다. 약5:16절에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갖 얽매인 굴레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하여 공동체를 주셨어요.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그 공동체 역할을 하는 자들이에요.

지금도 중독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에게, 우리는 그 공동체가 되어줘야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공동체를 통하여 그를 치료하고, 빛으로 나오게 합니다.

빛으로 나오면 결박의 힘은 거의 다 풀어진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하시는 일이 시작이 돼요.

 

요일1:7절에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 사귐깨끗하게 하심이 한 구절 속에 있어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을까요?

오늘 이런 목요 집회는 왜 갖게 하시는 걸까요?

오늘도 영상에서 보았던 교회와 공동체와 예배가 왜 필요한 걸까요?

 

우리가 주님의 역사를 그렇게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집회를 통하여 여러분을 만나주고 계세요.

 

여러분이 혼자 싸우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혼자 싸우게, 주위에서 내버려 두지도 말아야 됩니다.

믿음의 지체들 사이에 주님이 함께 계시고,

그 주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