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마8장 세상과 다른 명령 체계를 보는 믿음

LNCK 2026. 8. 2. 08:5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순종>

20251106-26 세상과 다른 명령 체계를 보는 믿음 Youtube

 

◈세상과 다른 명령 체계를 보는 믿음           마8:10                   2025.11.06.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본문의 전후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로마 백부장이 나와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함을 호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의 집에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백부장은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장황한 이유를 들어, 예수님의 직접 방문을 거절합니다.

 

이유는, 자기 집으로 모시기에는 예수님이 너무 높으신 명령권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군인이기에, 이런 명령 체계를 잘 안다면서,

자기 집 하인의 중풍병 정도는, 그냥 자리 이동 없이 명령만 하셔도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로마 군대에서 중간 계급에 속한 백부장은

한 사람의 군인답게 예수님을 명령권자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로마에 있는 황제의 명령도,

이역만리 떨어진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자신에게도 하달되고 있는 판인데,

하물며 예수님의 명령은, 당연히 공간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거절의 이유에 예수님은 놀라십니다.

그리고 기뻐하시면서 ‘정말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의 지배력이 지중해 중심의 세계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까?

드넓은 로마 제국 판도 안에서는, 땅 한 뼘도 황제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곳은 없던 시기

였지요.

 

더구나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서, 그런 황제의 실시간 지배력을 실효성 있게 하려고

팔레스타인까지 파견 나왔던 군인입니다.

 

▲그러면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게 놀라셨을까요?

이렇게 황제의 실질적인 지배력으로 뒤덮인 세상 안에서,

백부장은 전혀 다른 권력체계가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남루한 행색을 한 하층민 출신의 예수님이

이렇게 전혀 다른 특정한 권력체계가

세상의 명령체계에서 최상위에 계시는 특별한 분이라는 사실까지도 알아채고 있었다

는 것이 더욱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이지요.

 

이러고 보면 예수님이 놀라신 것은 너무나 당연했어요.

제자들을 포함하여 아직은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황제의 지배력이 뒤덮고 있던 세상 안에서, 전혀 다른 명령체계로 움직이고 있는

별도의 세계가 있고, 예수님이 그 세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난데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방나라 로마의 군인인 백부장이

아직은 예수님 자신만이 홀로 머물고 계셨던 이 별도의 세계 안으로

불쑥 들어와 버린 겁니다.

 

마치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들어간 집에, 낯선 사람이 떡하니 앉아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지요. 그러니 얼마나 놀라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사시는 세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명령 체계만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백합화가 꽃을 피움도,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가 나고 빠짐도..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팔게 될 가룟 유다에게서도

당신을 로마인들에게 넘겨주려고 모의하는 사내들인 공회원들에게서도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재판하는 빌라도나,

빌라도를 총독으로 임명한 로마 황제 위에서도

명령권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은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버려지고,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었음에도,

예수님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왜 당신은 나를 버리시냐고’ 외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평생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만나셨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사람과 사건의 배후에 계시는

명령권자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을 상대하시며 사신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대상을 앞에 두고 말하고 행동하여야 할 때면

당신 스스로 주체자로서 직접 반응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대신에

늘 다음과 같은 태도를 반복하셨던 것입니다.

 

5:19절 말씀대로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이 세상 안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권을 보고 있는 한,

단 하나의 말과 행동도 예수님 스스로 결정하여 행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을 듣고 주제를 비약적으로 바꾸십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것임을 밝히십니다.

 

마8:11절에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죽어서도 천국 가는 믿음은, 백부장의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체계가 실시간으로 내 삶의 현장에서 작동되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는 반드시 백부장의 경우에서처럼,

주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내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해 죽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스스로 살려는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가 막힘없이 내 삶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러한 믿음으로 삶을 살아야만 우리는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백부장의 기도처럼! 눅7:2~3 참조

이번 학기부터 제가 순장이 되었습니다.

순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중보기도하는 순장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기도에 게으름이 없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 순cell group에 처음오신 집사님이 3분이나 계십니다.

처음 시작부터 이렇게 풍성하게 순원들을 보내주시니

저는 복이 많은 순장입니다.

 

처음오신 집사님들을 소개할 때,

우리 순의 한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자기 하인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한) 백부장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새벽에 잠깐 일어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계속 거실을 서성대며 생각+기도를 같이 드립니다.

 

어제 잠깐 뵈었던 집사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래요 아직 젊으신 분이신데.. 암이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봅니다.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말이야 순장이지.. 우리 순에는 장로님이 두 분이나 계시고

전임 순장님을 빼면 사실 저 혼자나 다름없어서

등 떠밀려서 당첨된 땜빵용 순장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장을 시켜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순에 집사님을 보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이, 저에게 필요하신 것입니다.

순장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요 하나님! 길지 않은 인생에서,

이렇게 제게 순장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새벽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도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소중하지 않으신 분 어디 있을까요?

 

가정에 문제가 없는 분이 어디 계시며

기도가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 어디 계실까요?

 

전 사실 저의 기도도 급합니다만

이렇게 기도로서 하나님과 같이 동역하실 기회를 주셨습니다.

 

백부장같이.. 순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순장이 되고 싶습니다.

백부장 같은 기도하는 순장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세요.

저는 힘이 없답니다. 저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에겐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내려 주시사, 기도하는 순장이 되게 해 주세요!

 

“암 투병이신 집사님의 병이 나을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집사님의 몸을 괴롭히는 암덩어리야, 썩 물러 갈지어다!”

 

이글을 보시는 여러분께서도 같이 기도해 주십시오.

집사님께 들러붙은 암이 물러가고,

집사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게.. 주님, 도와주세요!

 

♣히틀러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사람

독일의 천재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버거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약관 27세에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31세 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해서 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반 나치적이고, 친유대적이었던 하이젠버거는,

나치의 탄압 속에서 살아야만 했었습니다.

 

2차대전 직전인 1939년도에, 하이젠버거는 미국 시카고 대학의 초청을 받아서,

시카고 대학에서 수개월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그의 학문적 재능과 인품에 감동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 망명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대서양을 건너서 히틀러 치하의 조국 독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를, 당시 그는 이렇게 직접 밝혔습니다.

‘독일을 엄습하고 있는 죽음의 폭풍 속에서, 몇 사람이나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만 독일을 바르게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념으로 독일로 되돌아간 아이젠버거는

폰 바이체커와 함께 우라늄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히틀러로부터 원자탄을 제조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우라늄 프로젝트에 관한 한,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음에도,

독일이 미국에 원자탄 제조에 뒤지게 된 것은,

하이젠버거 같은 사람이, 고의적으로 그 계발을 지연시켰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이젠버거는 단 하루라도 더 빨리 히틀러 정권이 붕괴하는 것이,

독일과 세계를 지키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원자탄 계발을 지연시켰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이젠버거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무자비한 히틀러의 광란의 폭압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자기 삶의 자리에서 구현하기 위해, 생명을 건 사람이었기에,

그는 원자탄 계발을 지연시킴으로써, 독일을 지키고 살렸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원자탄 재앙으로부터 유럽인도 지켜줄 수 있었습니다.

 

하이젠버거 교수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자기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자신의 온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하이젠버거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위대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요?

그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계속 서쪽으로 항해하면,

결국은 인도에 도착할 것이라는 그의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그 판단은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이미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혹은 그의 용의주도한 탐험준비와 선박에 대한 그의 전문지식이

신대륙을 발견케 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당시 그런 사람은, 유럽 대륙에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의 위대성은, 이미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대륙을 떠나,

배의 비축한 식량과 장비만으로는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향해, 계속 <항해한 결단과 용기>였습니다.’

 

행동하는 하이젠버거이기에, 그만이 깨달을 수 있고,

언급할 수 있는 지적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무리 야심만만하게 항해를 시작했다 할지라도,

아무리 가도, 자신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확신한 대륙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시 범선에 비축할 수 있는 식량과 장비만으로는

콜럼버스는 절대로 유럽 대륙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경우에 콜럼버스에게 주어진 길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었습니다.

망망대해 위에서, 속절없이 굶어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서쪽으로 가면, 동쪽에 있는 인도에 도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쩌면 망망대해 위에서 속절없이 굶어죽을 지도 모르는 그 길을 향해,

인생의 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그 한사람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