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관련글 모음 2 ☞ <중독>
※여러 설교에 단편적으로 들어 있는 '중독' 관련 조각글을 한데 모아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는데요.
아치볼드 하트 의 <참을 수 없는 중독>이란 책이에요.
제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고, 제가 한 3번 정독을 한 책인데
중독의 증상은 상당히 여러 가지가 있어요.

우울증이라든지, 분노 중독, 이런 정서적인 중독 패턴이 있고,
또 쇼핑 중독, 성 중독, 이런 어떤 행위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고,
또 물질 중독, 머터리얼 중독이라고 하는데,
알코올 중독이나 니코틴 중독 같은 중독에 빠지는 사람도 있어요.
또 미국 사람들은 어떤 중독이 많냐면 '독서 중독'이 있어요.
활자를 읽는 거를 내려놓으면 불안증세가 생기는 거죠.
'우리 아이들이 좀 독서 중독에 빠져야 되는데...' 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 종교도 중독입니다. 종교 중독이 뭐냐면
신앙생활을 내가 열심히 하는 이유가
내가 이렇게 기도하고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강박적으로 종교 생활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근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중독을 치유하는 제1단계가 뭔지 아세요?
'내가 중독자다' 라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제가 설교하면서 '저는 좋아하던 영화도 다 내려놨고 커피조차도 안 마신다'
이런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냐면, 저는 중독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 외에는 내가 다른 것들을 가능한 내려놓고 살아야겠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축구는 못 내려놨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처럼 매사에 자기 합리화를 하고 '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가 잘못한 거야'
'블레셋이 나에게 수치심을 준 거야, 백성들이 잘못한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치료의 길이 없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가족들에게 막 성질을 내고, 집안 물건을 다 던지고...
왜 당신은 그렇게 화를 내나요?
'너희들이 이상한 짓을 하니까, 내가 화를 낸 거지...
나는 절대로 분노 중독이 아니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희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망쳐서 내가 술을 많이 마신 거지... 주사를 좀 부렸을 뿐이지...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야'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 너희들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중독이 맞아요. 분노 중독자예요. 중독은 늪과 같은 것입니다.
늪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건져낼 수 없어요. 누군가가 그 사람을 건져내 줘야 돼요.
다 죄의 중독, 유혹의 중독, 어둠의 중독, 불안과 우울의 중독에 많이 빠져 있어요.
이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가 늘 정직하게 기도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제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고백을 하는 사람은, 사울같은 내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앞으로 등장하게 될 다윗은, 여러분, 내 마음의 절반은 다윗이지만, 절반은 사울이에요.
이거를 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으면,
우리의 내면에 놀라운 치유와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중독’을 인정하면, 치료의 길이 열린다
요한1서 1: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무슨 병이든지 인정하기 시작하면 치료가 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알코올 중독을 가진 분들에게 치료를 받으라고 말하면
자신은 언제든지 결심하면 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사람이 병이든 영적인 문제든 일단 인정하고 고백하면 그 다음부터 치료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쓰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제 마음대로 살면.. 결국 중독에 빠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르쳐 우리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라 일컫습니다.
이 시대의 현저한 특성은 삶의 기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절대적인 표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일 뿐이고 주관적일 따름입니다.
이제 현대인들은 더 이상 종교적 계율에 얽매이기보다는 내 식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더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기성세대처럼 내 본능을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관에 의해
통제하며 살아가기보다는, 그냥 내 본능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현대적인(포스트모던적인) 삶의 행태들이 가정파괴, 동성연애,
집단적인 이기주의, 무정부적 사회혼란, 아방 가르드(파괴의 문화),
데카당스(퇴폐문화), 무분별한 방황--그리고 이 방황의 끝에서 만나는 각종 중독증
(알콜, 마약, 성, 포르노, 도박, 쇼핑), 우울증과 자살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흥을 체험하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앞에 서게 됩니다.
성경이, 기독교가 거짓 진리라면... 벌써 없어졌고, 몇 년 후에는 반드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뭍은 복음이 들어가면 우울증이 낫고 가정이 회복되고
중독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 2천 년 동안 검증되었고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 일어나는 각종 범죄들, 전쟁들을 보세요.
온갖 중독과 마약들로 가득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은
왜 그렇게 무수히 일어나는가요? 인간이 악해서? 맞아요.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기 때문이에요.
‘내가 왜 존재하는지’를 알고 돈을 벌면, 돈은 존재의 목적을 위해서 쓰여지잖아요.
타락할 이유가 없어요. 여러분, 내가 돈을 버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돈을 버는 사람은, 그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돈을 의미있게 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돈을 벌어 허무할 것인가? (허무의 결과, ‘중독’에 빠집니다)
-돈을 못 벌어 절망할 것인가? 둘 중에 하나예요.
♣예수를 믿어도 잘못된 옛 습관들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잘못된 옛 습관은 나의 노력과 의지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행해지고 실패하게 되는 것은 습관 때문입니다.
습관은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습관을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강한 결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습관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종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중독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결박입니다.
정신적 질환도 생각 안에 나를 결박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습관은 밧줄로 묶여있는 것 같아서 습관이 오래되면 될수록
더 굵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고 있는 것입니다.
중독이 심하고 습관이 오래된 사람들은 결박을 스스로 풀지 못하고
카운슬러, 정신과 의사를 만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해결방법은 결박을 풀 수 있는 강한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강한 능력은 위로부터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압도하는 힘이 모든 결박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분노 중독도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분노 중독자들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그것은 항상 자기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 건, 너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너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너가 나를 자극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는 거야'
이거를 반복적으로 하면 이걸 뭐라고 그래요?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을 세뇌시키는 거죠.
자기 배우자나 자기 자녀나 아니면 직장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화는 자기가 냈고, 사고는 자기가 치고, 자기가 막 시끄럽게 문제를 일으켰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아빠, 내가 잘못했어.. 엄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당신을 자극했어.. 내 잘못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이거 병적이고 건강한 게 아니죠.
동남아에 가면, 한국인은 ‘화를 잘 내는 국민’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화를 버럭 안 내고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 가면, 거기 현지인들은 거의 화를 버럭 내는 것을,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물론 내면적으로야 사람은 다 화를 내겠지요...)
♣홍콩에서 사역하는 영국인 제키 선교사님,
이분이 무슨 사역을 했냐면, 마약 중독자들 사역을 했거든요.
평생을 마약 중독자들을 사역하신 분인데, 이 마약 중독자들이 엄청나게 치유되고 회복됐는데
딱 방법이 하나였어요. 예수 믿게 하고, 방언 받게 하고, 방언 기도하게 한 거예요.
방언 기도를 꾸준히 했을 때, 마약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거죠. 임상 결과예요.
그렇다면 마약 중독 뿐만 아니라, 다른 중독에도 적용될 거예요.
그래서 저도, 진짜로 마음의 병이 심한 분을 만나면 ‘방언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방언을 못 하시는 분은, 그 은사를 먼저 받아야 되겠죠.
그래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혹시 이 가운데 우울증 있으신 분들은, 방언으로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울증은 어쩔 수 없는 거에요. 현대인은 누구나 약소한 우울증을 앓을 수 있어요.
요즘 우울증이 너무 많아서.. 10명 중에 2, 3명은 우울증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방언으로 기도해보세요. 방언으로 기도해보세요. 차도가 생겨요. 차도가 생겨요.
분명히 변화될 수 있어요. 믿음을 가지고 방언으로 기도하세요.
꾸준히 하루에 30분씩, 한 시간씩 방언으로 기도해 봐요. 차이가 있어요.
차도가 나타날 거예요.
이건 저희 교회에서도 해본 거예요. 차이가 생기더라고요.
또 혹시 여러분 가운데 정말 끊어지지 않는 중독들이 있다면, 방언으로 기도해보세요.
되나, 안되나?
정말 끊어지지 않은 중독들이 있으면, 방언으로 한 시간씩 기도해봐요. 바뀐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14:18
♣개개인의 신앙이 무너지니까..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
어느 한 청년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제가 물었더니
그 청년이 제게 하는 대답이 충격이었어요.
'목사님, 제 주변에 선후배, 친구들, 결혼한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 다 이혼했어요.
그걸 보니, 더 이상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그런 동기도.. 안 듭니다‘
라는 거예요. 이건 엄청난 충격이죠.
지금 가정이 다 무너지고 있고,
그리고 개인의 마음의 심령의 상태가 망가져 있는 것이
나라와 민족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우울증에 고생하는 이들이 많고, 자살의 충동을 받는 이들도 많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음란물에 중독이 되고, 도박에 중독이 되고, 술과 담배에 중독이 되고,
게임에 중독이 되고... 이렇게 거의 중독된 상태에서 살다 보니, 가정이 다 망가지고...
지금 이런 형편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정치의 문제, 사회의 혼란의 문제는
한 개개인의 마음의 심령이 망가진 것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정치도, 나라도, 회복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나라와 사회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지만,
사실 그 기도의 가장 첫 번째 기도 제목, 또한 응답되어야 될 문제는
우리 자신의 마음, 심령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 일은 오늘 우리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독이 될수록 ‘나의 결정권’이 줄어듭니다
여러분, 요즘 중독자들이 많아요. 중독이란 뭘까요? 자유를 빼앗긴 삶입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은 뭐예요? 술에 포로가 되어 자유를 빼앗긴 사람이에요.
내가 주인이 아닌 거죠. 술에 완전한 노예 상태입니다.
여러분, 요즘은 갈수록 중독이 늘어납니다. 마치 '중독 사회'처럼 보여요.
여러분 중독이 왜 무서운 겁니까? 종이 되는 겁니다.
한 번 종이 되면, 한없이 끌려 다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중독에 한 번 걸려 들면, 아까운 인생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한 영혼을 철저히 파괴해 버립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독에 빠지면, 뭐 사람이 흐물흐물 해져요.
그냥 시들시들 해져요. 맛이 가 버려요.
한 때는 열심히 괜찮은 일꾼이었는데, 이 중독에 한 번 딱 잡히면
사람이 이상해져 버려요. 눈동자가 풀려 보여요.
아까운 삶의 에너지가 엉뚱한 것에, 무한 방출 돼 버리는 거요.
중독에 의해 쓰러집니다. 아까운 청춘이 중독의 늪에 허우적 거립니다.
여러분 이 중독이, 지금은 점점 영토를 넓혀 가요. 어마어마하게!
젊은 세대만 아닙니다. 모든 세대입니다.
여러분, 중독자가 되는 과정은 서서히 일어나잖아요.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중독까지 될 줄은, 본인이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가 중독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중독이 그렇게 세죠.
사사기에 보면, 삼손은 힘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너무 많은 사람이 삼손 입니다. 그런 축복된 인생이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한 순간이 아닙니다. 서서히 입니다.
나중에는 그 엄청난 삼손이, 자기 힘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노예가 됩니다.
블레셋을 자기 혼자서 그냥 무찔렀던 용사가, 꼼짝없이 블레셋의 노예가 됩니다.
두 눈 뽑히고, 맷돌 돌리고, 블레셋의 놀이감이 됩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나면 어떻게 되죠? 노예처럼 질질 끌려 다닙니다. 비참합니다.
삼손의 삶을 보면, 얼마나 비참하게 끝납니까? (마지막에 반전을 일으키기는 했죠)
어느 순간까지는 나에게 결정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독이 깊어지면, 나의 결정권이 줄어듭니다.
나의 결정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노예가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끌려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죄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려 하는 인간은,
그때부터 자기 공허한 내면을, 무엇인가로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두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터진 웅덩이에요.
그것을 채우려고 하다가, 채우지 못하고, 노예적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자유케 되는 길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줄로 믿습니다. :32
♣주식 중독, 코인 중독...
여러분들은 무엇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겉으로는 자유가 넘쳐나는 세상에,
어느 때보다도 갇힌 자, 포로 된 자들이 너무 많아요. 어디엔가 소속이 돼 있는 거예요.
돈의 노예가 되어있고, 돈의 포로가 되어 있어요.
도박에 한 번 빠지면, 뭐 꼼짝 못하고 포로가 되어서, 도박장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술이나 약물 중독, 명성과 권력에 집착, 일 중독, 쇼핑 중독, 종교 중독,
성 중독, 음란물 중독, 게임 중독, 주식 중독, 코인 중독, 핸드폰 중독....
현대인들이 거기에 다 통제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얼굴 성형도 다섯 번, 여섯 번... 성형 중독자들이 많아요. 중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멈춰야 되는데, 멈추지를 못하는 왜요? 욕망이에요.
이게 무슨 병입니까? 만족하지 못하는 병이에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내가 주인이 아니에요. 이미 주권이 넘어가 버렸어요.
그것이 나를 콘트롤 해요. 내 모든 신경 조직, 마음, 생각, 사고 방식, 세계관이
거기에 다 올인되어 버렸어요. 숙박을 당하고, 통제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권력 이양이 돼 버렸어요. 나는 없어요.
그 모든 것의 횡포에 내가 시달리고 있고, 질질 끌려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는 노예적 삶, 얼마나 불행해요?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자유예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입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이 자유를 엉뚱한 것에, 너무 하찮은 것들에 내가 빼앗겨 버리면 안 됩니다.
축복 중에 축복은 자유입니다.
신앙연조가 깊어질수록, 자유가 더 커져 가면... 그게 정상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그 자유를 주신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게 되고,
그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가 자유케 된다'는 것입니다. 요8:31~32
내 말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내 삶이 자유로울 수가 있어요?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진리이신 예수님과 깊이 동행할 때(진리를 알 때, 예수님을 알 때),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세상을 멀리하지 않으면.. 중독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문화들이 갈수록 아주 화려하고 강력합니다.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쫙 깔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요물이죠.
여기에 모든게 들어 있어요. 터치하는 순간에
우리가 온 세상을 다 가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요.
우리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여러분, 이런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이 세상으로 향하도록 유혹하고 있느냐는 거죠.
여러분, 예전에는 포르노 물을 접하는게 어려웠어요. 어떻게 구해요? 볼 수가 없어요.
근데 지금은 어때요? 핸드폰이 있어요. 원터치예요.
어디 뭐 찾아서 헤맬 것도 없어요. 그냥 원터치예요. 편리하기 이를데 없어요.
그러니까 죄를 짓는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요.
24시간이에요. 핸드폰은 무소부재 해요. 없는 곳이 없어요. 어디에나 가능해요.
와이파이가 터지면 어디서나 가능해요.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자신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게 해 줘요.
상업주의자들은 온갖 옵션을 걸어놓고, 조금만 돈을 더 내면
더 좋은 것을 제공해 주겠다고 유혹을 해요.
그리고 한번 유혹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해요.
한번의 선택으로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어요. 누구나 중독자가 될 수 있어요.
오늘 지금 누구든지 중독자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미 중독에 빠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예요.
처음에는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하려고 한게 아니에요. 심심풀이로 한번 하려고 했어요.
근데 손을 못 떼는 거예요.
도박, 스포츠 도박? 그렇게 빠지려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근데 한번 덫에 빠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쾌락을 좇는 육신의 욕망은, 길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요.
죄성으로 가득한 이 욕망이, 그냥 욕망이 아니에요.
죄성으로 가득한 욕망은 성난 망아지처럼 뛰는 거죠.
여러분,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너무 쉬워요. 특별히 오늘 날!
한 때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한때는 은혜를 구했어요. 한때는 열심히 기도도 했어요.
한때는 훈련도 받았어요. 한때는 교회 직분자도 했어요.
그런데 한 방에 날아가는 거죠.
한때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한 사람이,
어느 날 악마의 제자가 돼요. 어둠의 자식이 돼요.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백성들,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야
되는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는 순간, 모든게 멈추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
그 세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어요.
그 육신의 욕망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 안에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 그지 없는
에덴 동산의 선악과와 같은 것들이 있죠.
요즘 또 TV 모니터가 얼마나 큽니까? 그리고 화질은 얼마나 좋습니까?
굉장히 육감적이고 탐스럽게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미디어 세계로 점점 더 깊숙이 끌려 가고 있는 거죠.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가족들이 함께 볼 때는 괜찮지만, 홀로 있을 때... 처음에는 생각 없이 시작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극적인 것에 빠져들어갑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선택하지 않죠. 시간이 흐를수록 분별력은 더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죠? 결국은 중독에 빠지는 것입니다.
요즘 스마트폰 중독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중독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미디어를 통하여 끊임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에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사유(사고)를 하지 못할 만큼,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 정보와
그리고 그 컨텐츠들을 소비해내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소비를 당하는... 설득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온라인 선상에서 전해지는 그 정보의 수많은 허위와 기만과 거짓의 메시지들...
그걸 분별해 내기가 소비자들은 어려워지는 거죠.
우리는 검지로 터치를 하기만 하면, 모든 걸 소비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돼요.
'인터넷이나 TV를 어떤 태도로 나는 보고 있느냐?'는 거예요.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간은, 우리의 신앙과 연관이 없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나는 문화를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 내가 미디어를 섭취하는 양을 생각해 보야 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을 미디어에 심취해 있는가?
TV나 인터넷의 영상물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여러분, 영상물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강력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로 가면, 더 심각해지는 거죠.
불건전한 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원터치로 치명적인 영향 안으로 돌아갑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점점 더 내려가는 거죠.
실제로 중독에 빠진 자녀들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부모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과 닮게 되죠.
아이들은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방하려고 합니다.
한 번의 폭력물을 보다 보면, 한두 번 보다 보면, 그것이 축적됩니다.
증상이 금방 나타나지는 않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증상이 나타나게 되겠습니다.
성폭행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그 행위를 하기까지
무수한 그런 영상물을 본 결과라고 볼 수가 있죠.
여러분, 광고를 보아도, 우리는 욕망에 불을 지릅니다. 대부분은 유혹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왜 광고주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광고를 내보낼까요?
오늘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의 핵심이 광고잖아요.
기업이 자선을 위해서 결코 그러지 않아요.
계속 광고에 노출되고 노출되면, 결국 거기에 설득을 당하고,
광고주들은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기가 막히게 파고드는 거예요.
유명한 남자 속옷 광고가 있죠? 켈O 클라O, 이런 거 있어요.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속옷을 입고 있는 그 그대한 광고물!
그의 눈길은 이미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속옷을 파는 게 아니에요.
무수한 암시를 사람들에게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매우 선정적인... 인간의 욕망을, 굉장히 말초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그대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라 할 만한 미디어의 힘을, 이제는 거부하고 살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이 미디어의 힘을 통하여, 오늘 우리는 이 '세속화'와 무서운 싸움을
지금 치르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면서, 세상을 정말 접수했다 할 정도로
한 번의 터치로, 어디에든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는
이 편리함과 정보의 독점, 미디어 제국!
여러분 내가 미디어를 보는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가요?
통제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필터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가요?
필터링을 못해요. 그냥 쏟아져 버리니까요.
리모컨을 손에 들거나, 핸드폰을 열 때마다, 거대한 전쟁이 벌어진 거예요.
이제 미디어 앞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무너지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소명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유혹들에 저항하고,
삐뚤어진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강적이 나타났어요.
캔 마이어스 라는 분이 말했어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대중문화로부터 받는 도전은, 이전 세기의 성인들이 받았던 박해만큼이나 심각한 도전이다'
크고 눈에 보이는 적들은, 눈에 띄지 않는 적들보다 쉽게 싸울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은밀하고 내밀하게 밀고 들어오는 오늘 현대 미디어의 왕국,
이 지배체계에서 우리가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거죠. 거대한 싸움이 벌어져요.
핍박 시기보다 극복하기 더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스스로 체크해 보세요. '나는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선택하는가? 나는 정기적으로 즐기는 사이트가 있는가?
나는 미디어에 들이는 시간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영향을 받고 있는가?'
여러분, 1인 개인주의에, 이 스마트폰에 심취하는 동안에
자기는 스스로 고립되고, 관계는 끊어지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결별하는... 철저히 밀실에서 개인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
그리고 인간 관계는 끊어지는...
나는 미디어 프로그램에 대한 비평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요?
오늘날 미디어와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백기를 든 사람들은, 우연히 미디어에 노출된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유혹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상당히 빗나가버린 안타까운 상태, 그러면 거룩한 삶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는 거죠.
더 이상 세상 문화에 항거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의 아들, 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해서 무뎌지고 있고,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삶,
이 감각적인 세상을 부추기는 문화가 얼마나 드센지...
우리가 미디어를 대하는 순간부터 전쟁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라인에 접속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돼요.
왜요? 오늘날 영적 전쟁의 가장 최대 격전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주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고 뺏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나도 모르게 세상의 지배 아래에 있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의 즐거움에 탐닉될수록
영적 세계는 황폐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볼 시간이 있겠습니까? 기도할 시간이 있겠어요?
여러분 요즘 젊은이는 쇼츠 Shorts 를 보다가 밤을 지새웁니다.
시간 낭비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에요.
엡5:16~17절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기중한 것입니까?
그런데 영상물이 한번 빠져들면, 시간이 그냥 날아가버려요.
요즘은 몰아보기를 하게 해요. 얼마나 친절한지...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면, 시간만 날아가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마음이 뺏앗겨버리고, 영적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최근에 그런 책이 있어요.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거죠. 집중력이 없어요.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요? 내가 거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요.
하나님보다 더 매력적인 우상들이 즐비한 거죠.
그것은 가끔 유혹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죠.
여러분, 세상은 지뢰밭입니다. 매일 매 순간 전쟁이 벌어져요. 여기저기 덫이 놓여져 있어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우리는 이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오염을 차단하고,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망가지게 돼 있습니다.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의 문화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신앙 안으로,
우리의 삶의 영역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거죠.
여러분, 오늘날 가족관계가 심각하게 무너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거대한 성적 방종의 문화는 예사롭지 않아요.
불륜이, 생각보다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준이 없어요.
성적 매력을 가진 배우의 연기에 빠져 있다면, 이미 자극을 받고 있는 겁니다.
미드(미국 드라마)의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돼요.
불륜이 들어있는 드라마를 계속 보고 즐기다 보면, 그게 묵인이요, 허용이요,
그리고 기준이 느슨해지는 겁니다. 얼마나 노골적이고 파괴적인 내용들이 많습니까?
이런 문화에 오염되어 있을 때, 찾아오는 피해는 뭐죠?
나도 모르게 너무너무 이 세상의 문화에 내가 닮아있다는 거예요.
결혼을 한 사람인데, 배우자 말고 다른 연인이 있다는 게,
그냥 어색하지 않은 문화가 이 세상의 문화인데... 그것을 닮아있다는 거예요.
세상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우리의 기준이 무너져 있는 거예요.
통계에 의하면, 세상의 도덕적 기준과,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성경적 가치보다 훨씬 더 하향 평준화되어 있는 거예요.
교회를 다니는 것 말고는,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구분점이 전혀 없는,
그 말을 뭐라고 하죠? Compromise '타협'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쩌면 교회보다 세상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죠.
'성공을 위해서는 편법을 약간 써도 괜찮다'는 하향평준화된 기준,
'신앙은 신앙이고 세상은 세상이다' 라고 하는 이중적 틀에서 익숙해져 있는 삶!
처음에는 화들짝하고 놀라지만, 세월이 흐르면 나도 모르게
이 세상 속에 너무도 내가 익숙하게 적응된 상태로 살다 보면,
한 번 무너지는 게 어렵지... 그 후에 계속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 성경적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성경적 스탠다드를 회복해야 됩니다. Biblical standard '성경적 표준'
제가 이 시간 선포할 때, 여러분은 아멘으로 화답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속에 거짓된 생각은
다 그 정체가 드러나고 사라지게 될지어다.'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분노 중독과 우울증과 불안증은 치유될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