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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장 성도의 참된 위로

LNCK 2026. 8. 1. 09:15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믿음론

260705_로마서 강해(47)_성도의 참된 위로 (8:28-30)_ Youtube

 

◈성도의 참된 위로              롬8:28~30          2026.07.05. [로마서 47강]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8~30

 

우리가 로마서를 읽을 때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서신을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을요? 믿음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당시 성도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 속에서 탄식이 있어요. 그래서 위로를 주는 게 본 서신서의 목적 중 하나죠.

 

근데 하나님은 이 서신(로마서)을 통해서,

단순히 구원론의 교과서로 우리에게 딱 던져주고 ‘야 이거 외워!’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게,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게,

이게 얼마나 큰 복인가?’ 하는 것들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죠. 이게 복음의 위로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복음의 위로’라고 하면, 막연하다고...

‘그게 무슨 위로냐?’고 얘기할 수 있죠.

왜 그런가 하면, 복음의 위로는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하나님께서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1

그렇게 말씀하세요. 근데 내 백성을 위로할 수 있지, 남의 백성을 위로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림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위로하실 수 있어요.

하나님을 부정하는데, 어떻게 복음이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본문 8:28절 말씀은, 그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읽은 것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28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가요.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어려움들이 결국에는 다 잘 되겠구나세상에 좋은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 말씀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누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그 말이 진짜가 되게 하시는가?’

그거를 29절과 30절에서 설명을 해요.

 

그걸 오늘 우리가 살펴볼 텐데,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도에게는 정말 정말 참된 위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게 나에게 정말 위로가 되나?’

 

‘무슨 저세상 얘기를 하는 거야?’ 만약 그렇게 여러분들이 받아들이신다면,

여러분들은 어쩌면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위로가 되지 않다니요? 성도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먼저 28절의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28절을 좀 해석을 잘 할 필요가 있는데, 첫 번째는 주어예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의 주어가 무엇인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거는 뭐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문장 자체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얘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어죠.

 

그러나 어떤 사본들에는, ‘하나님’이 주어로 나와 있고,

영어성경 중에 NASB는 사실은 그렇게 그 사본을 택해서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선을 이루신다’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죠.

 

그러나 사실 의미 자체는, 주어가 뭐든지, 크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왜냐하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들, 또는 사물들,

그런 것들이 알아서 척척척척 의지를 가지고, ‘내가 이 사람에게 잘되게 만들어야 되겠다’

그렇게 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은 이 문장의 주어가 '모든 것'이냐, '하나님'이냐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모든 것들을 그렇게 선이 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 여기서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17절부터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며,

고난에 대한 얘기를 쭉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 마지막까지도 이 고난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일, 장래일,

능력 높음, 깊음, 다른 어떤 피조물... 이 모든 것들 다 포함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주로 이것들은 고난과 관계된 것들이라면, 왜 고난만 상관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의 뜻’을 한번 생각을 해보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했는데,

그의 뜻은 물론 하나님의 뜻이지, 우리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 이거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부름을 받았다’ 그런 의미예요.

 

그럼 ‘하나님의 뜻’이 뭘까요?

여기서 얘기하는 하나님의 뜻이,

만약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그의 뜻대로’를 우리가 부정한다면,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일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위로가,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건 남의 얘기가 되는 거죠.

 

이 ‘’이라고 하는 이 단어는,   *프로테시스 purpose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엡1:11절에서는 ‘계획’으로,

엡3:11절에서는 ‘뜻 (즉 목적, 의향)’이라고 번역이 돼 있어요.

계획, 하나님의 의향,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서 우리가 부름을 받았어요.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한 거는, 우리 어렸을 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닐 때

‘아, 나는 내 계획이 있어. 내가 목적이 있어,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

내가 되고 싶은 게 있어’ 그런 생각들을 하죠.

 

근데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변화는 뭐예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뭘까?’

이거는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게 되는 생각입니다. 그죠?

 

‘내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하면 탑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우리를 꽉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겠어요? 어떻게 이런 말씀들이 그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겠어요?

 

같은 단어가 딤3:10절에서 의향이라고 나왔고,     *프로테시스

엡3:11절에서는 예정하신 이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 목적, 계획다 같은 의미예요.

그러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의 뜻대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고, 인도하신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destiny와 비슷하네요.

 

그리고 이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라고 지금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선이에요.

 

그럼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선’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걸까요?

29절을 한번 보십시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바로 이거예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이게 앞에 28절에서 말하는 ‘그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단순히 죄악된 세상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가서

그냥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약간 유치하게 말하면 코란에서 말하는 바.. 거기는 너무 예쁜 여자들,

눈이 동그란 예쁜 여자들이 너무 많다고 남성 위주의 천국 묘사죠.

기독교의 천국이 그런 천국과 비슷한 개념입니까?)

 

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서 열두 진주문이 나오고, 여러가지 보석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거기에 보석이 많다 그러면... 저한테는 천국이 아니죠.

왜냐하면 저는 보석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요. 보석을 돌과 같이 여기니까요.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죠.

이 세상에서 극히 값진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와, 영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거예요. :29

 

만약에 우리가 예수 믿고, 그래서 ‘번영신학’ 이라고 하는 거 있죠? 기복신앙이요.

예수 믿고 건강과 부와 문제 해결을 받는.. 이런 것은 거짓된 복음이죠.

 

그건 우리의 모든 시선을,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이 모든 것이 되게

만드는 게 기독교라면..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그건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된 복음일 뿐입니다.

 

슬프게도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모여있는 수많은 교회당 안에서,

이런 거짓된 복음이 전해지고 있을 걸 압니다. 한국뿐이 아닙니다. 전세계에서요.

아프리카도 심각하고, 남미도 심각하고, 일부 미국도 심각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그것을 원하시는 분들이 일부 계시겠죠.

 

그것은 잘못된,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럼 참 기독교는 뭡니까?)

본문에서 말하듯이,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겁니다. 그 아들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에요.  :29

예수님을 닮아가는 겁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28

 

성도는 이걸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그 일이 일어나도록,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것이 합력하여 그 일을 이루도록, 우리의 인생을 주도해 가십니다.

    ☞구원으로 푸는 내 일생과 세계 역사 rfcdrfcd.tistory.com/11683484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는’ 대상이 누굽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곧 우리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 구절을 좋아하지만, 8:28

이 구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지 않아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럼 뭐라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 말은 좀 부담스러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나?

내가 영적인 침체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나?’

쉽게 대답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을 총칭하는 표현이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십계명에서 이렇게 말하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게 그리스도인이에요.

 

신약적 의미에서 말한다면, 이게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가리키는,

구약에서 언약백성을 가리키는 총칭이에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왜요?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백하는 거예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표지예요.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는 인생이,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해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약속이에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 성도들을 향한 약속이에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이고, 내적인 성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니까요.

근데 이건 주관적인 표현인 건 맞아요.

그럼 진정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런데 이어서 바울은 이 말을 덧붙이고 있다는 것이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무슨 말이에요?

누가 불러요? 성령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거예요.

 

이것을 ‘효력있는 부르심 effectual calling’이라고 해요.

성령님이 우리를 불러서,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내가 생각을 해보니까 결론이 기독교야‘ 그래서 온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나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4대째 기독교인이니까 저절로 된다?‘

아니요. 그 중에서도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이어지는 이 표현은,

사실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28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제가 그대로 번역을 해서 읽으면

’그런데 우리는 아노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향하여 합력한다는 것을‘

그리고 28절 맨 뒤에 ’곧 그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 그들에게‘ 라고 되어 있어요.

뒤에서 설명을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게 유효해‘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바로 이 사람들이야‘

이거는 굉장히 강조되는 문장 구조예요.

 

’하나님을 사랑한 자‘가 누군가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야,

’하나님이 너를 불러서 여기에 와 있는 거야.. 맞아‘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조금 이따가 그 얘기는 좀 더 설명을 드릴 텐데, 바울은 위로하고 싶어해요.

이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을 겁주거나, 사람들을 더 회의 가운데로 몰아넣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로마의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을 위로하고 싶어해요. 5장부터 8장이 그런 위로로 가득해요.

 

’여러분이 받은 구원은, 로마의 황제는 여러분의 생명을 뺏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 온 세상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이신 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십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거죠.

 

우리가 확신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의 주관적 감정, 하나님을 향한 나의 주관적 감정이나 태도에 따라서

우리가 확신을 누린다고 말하지 않아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객관적인 일에서,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누린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하나님의 행하신 변할 수 없는 행위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이 뒷부분에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말이야’

이렇게 쓰는 것, 이 구절 뒷부분에 그것을 덧붙여준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인생의 여정에서 여기까지 왔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28절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주권자에 계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들이 되게 일하신다’ 하는 겁니다.

이게 사도의 확신이에요.

 

‘우리가 알거니와’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28

‘알거니와’ 이건 확신을 표명하는 말이거든요.

 

사도의 확신이자 또한 로마교회의 성도들의 확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서두에서 제가 29절과 30절은, 28절을 설명하는 근거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이게 그렇게 되게 하시는가?

내게 일어나는 정말 이렇게 최악의 사건이 내 인생에서 일어난,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어떻게 선이 되게 하신단 말인가?'

 

어떻게 이 일들을 통해서 내가 성질만 더 나빠지고,

이 일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을 버릴 뻔했는데,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이 다 합력,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29절과 30절이 그걸 설명하는데,

이것을 ‘구원의 황금사슬’이라고 말합니다.

 

황금사슬 golden chain 이라는 것은.. 끊어질 수 없고, 그저 연결된다는 얘기예요.

이 황금사슬이 나오는데 다섯 가지 요소가 있어요.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이에요.

 

이 대상이 누군가 하면, 동일한 성도들이에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미리 아셨다면, 여러분들은 미리 정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요.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5개가 황금 사슬

 

이것을 바울은 얘기하는데, 처음에 두 가지, 미리 아심미리 정하심

영원 속에서 일어난 일이고요.

 

우리의 삶 속에서 시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일어난 일은

부르심의롭다 하심영화롭게 하심입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먼저 ‘미리 아신을 한번 보죠.

미리 아심을 보통 ‘예지’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거는 예견을 의미하기 위해서, 바울은 이 말을 쓴 게 아닙니다. 미리 보는 거죠. 왜요?

 

미리 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점쟁이들이나 진짜로 미리 보진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예견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 삶 속에서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은 아시죠. 당연히 아시죠.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이 미리 아심이라고 하는, 또 미리 정하심이라고 말할 때,

‘미리’ 라는 말을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여러분 ‘미리’ 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피조물에게만 적용이 되는 말이죠.

 

하나님은 영원하신데, 하나님에게 ‘미리’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은 ‘그냥 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냥 모든 것을 아세요.

‘미리’라는 말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이걸 우리가 ‘전지하심’ 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누가 믿을지, 누가 믿지 않을지..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에,

‘그것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예정하셨다’

이 구절을 근거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이 구절의 의미를 의도를 벗어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걸 ‘예지 예정’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안다’는 말은요. 구약적 배경에서 여러분이 많이 들으셨겠지만,

그것은 선택적 인격적 관계적 앎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모스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으니’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아무도 몰라. 누구야 누군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너희는 내가 알겠어‘ 이런 말이 아니고요.

 

’모든 민족 중에서 내가 너희를 선택했고, 너희만 알았다‘는 말이죠.

즉 ’너희를 사랑했고 너희와 관계를 맺는다‘ 이 말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랑하여 선택했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안다‘라는 말을 쓰십니다.

똑같은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는 않으면서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주의 이름으로 이것 저것 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세요. 무슨 얘기예요?

’나하고 니네하고 아무 관계없어‘ 이 말입니다. ’전혀 모른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다고 할 때

미리 아심의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건데요.

미리 아심의 대상이 우리의 믿음이 있을지 없을지를 아셨다가 아니고,

무엇을 아셨다가 아니야, 여기서 미리 아신 대상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을 아셨다는 거지, 그 사람이 믿을지, 안 믿을지 아셨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이런 의도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 말씀은 미리 아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얘기하는 말씀인 거예요.

 

그러면 미리 아신 자들은 어떻게 했다고요?

2) '또한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죠.

 

’정하셨다‘는 말을, 우리는 그냥 예정 그러면, 막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을 잘 보세요. 무엇을 정하셨다는 말인지를 보세요.

 

29절에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고 얘기해요.

그럼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를 아셨고 우리를 정하셨는데, 뭘로 정하셨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정하셨어요.

그의 뜻대로 부르신 부름!

 

그럼, 그의 뜻이 뭐예요? 선을 이루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거예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우리를 정하셨다고 얘기해요.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에 ’얘네들을 어떻게 만들어볼까?‘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고,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셨고, 아셨고, 우리를 정하셨어요.

 

우리가 이 인생을 살면서, 주님을 닮아간다는 게

한가한 취미생활만도 못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면, 제가 이 말을 자꾸 하잖아요.

왜요? 착각하시지 말라고요.

 

여러분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면, 내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내 생애의 최고의 목적이 되는 거예요. 그걸 위해서 '미리 정하셨어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봐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제가 인도네시아에 살 때도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여기서 복음을 전한다고 그러고, 신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치고 기르고,

내 일생을 이 수마트라에서 보내면, 뭐가 좀 될까?‘

 

근데 그런 게 있잖아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평생 이렇게 생각하면서 온 것 같아요.

 

’그래도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다' 제 맘대로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누가 불렀는데, 제 맘대로 그만둬요?

그런데 하여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오늘 이 말씀은, 저희에게 얼마나 큰 격려인지 몰라요.

’니가 하냐? ㅋㅋ 하나님이 하신다‘는 거예요.

 

아... 이게 선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우리 삶에서 정말 여러분이 잘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삶이 아니라, 잘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오늘 여기에 그 말씀이 있어요.

이것은 여러분의 인생이 잘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향한 복음이에요.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라면,

마음대로 살 수는 없죠. 그럴 수 없겠죠.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 미리 정하신    *5개의 황금 사슬 중 3번쩨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부르심 이에요. 이제 시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시간 속으로 들어오면, 부르심이 있는데,

 

황금 사슬의 세 번째가 부르심이에요.

이 부르심은 앞에서 나왔어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라고 나왔어요. :28

 

이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을, 교리에서도 여러분 배우셨겠지만,

일반적인 부르심이 있고,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요.

내적인 부르심이 있고, 외적인 부르심이 있어요.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잖아요. 이거는 김형익이라는 사람이 말하는 거잖아요.

김형익이라는 사람이, 여러분 정말 잘 믿으셔야 된다고,

하나님께로 나오셔야 된다고,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의 삶을 드리셔야 한다고,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리스도께로 나오시라고... 그러면 이거는 ‘일반적인 부르심’이고, 외적인 부르심이에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이게 성령의 부르심이 되어서, 거듭나고, 회심하고, 각성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똑같이 그 말씀을 들어도, 그렇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성령께서 부르시는 게 있어요.

이걸 ‘내적인 부르심’ 또는 ‘특별한 부르심’ 또는 ‘효력있는 부르심’ 이라고 말을 해요.

 

이 부르심은... 주권적이고,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게 고후4:4~6절 말씀이에요.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 신이 미혹하는 것을 받아서 비신자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못 봐요.

 

고후4:5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하면서 바울의 복음전도의 얘기가 나와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고후4:6절에서는 ‘태초에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의 복음전도를 수단으로 사용하여, 칠흑같이 어두운 그들의 영혼을 향하여

너희에게 빛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의 영혼이 살아나게 되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 돼요.’

 

그 전에 못 봤는데... 이게 어떻게 일어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의 부르심이에요. :6

그리고 5절에 있는 것은 바울의 부르심이에요.

 

바울을 통해서 부르시는 걸 통해서,

성령은 그 영혼을 부르시고,

이게 복음전도가 가지는 영광이죠.

 

특별한 목사나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복음전도가 가지는 영광입니다.

성령의 효력이 있는 부르심은, 불가항력적이에요.

 

‘불가항력적’이라는 거는, 오해하지 마셔야 되는데,

우리를 강압적으로 그냥 내 의지를 꺾으시고 막 이렇게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죽은 의지를 살려내는 기적이에요.

 

그래서 이걸 제일 잘 보여주는 게 뭔가 하면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돼서 벌써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근데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굴려버리래요. 주님께서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시죠?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얼굴을 수건을 감싼 채로, 시체 그 모습, 그대로 시체가 죽은 지 나흘 된 사람이 걸어 나와요.

이게 성령의 효력있는 부르심이에요. effectual calling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거라구요. 우리의 의지를 꺾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의지를 강압하는 게 아니고, 죽은 영혼을 살리는 거에요. 이게 중생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부르시면 그 영혼은 살아나요. 거듭나요. 다시 태어나요. 영혼이 살아나요.

그럼 영혼이 살아났으니까 반응할 수 있겠죠. 믿음과 회개로 반응할 수 있어요.

 

4) '의롭다 하심'

그러면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도,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에요.

그래서 그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세요.

지금 ‘의롭다 하심’으로 건너뛰고 있죠.

 

황금 사슬 golden chain 5가지. 5가지가 체인으로 연결된다는 거죠.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이에요.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0절을 보면 ‘또한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이게 지금 우리가 로마서에서 그토록 많이 살펴보았던 그 말씀입니다.

 

그런데 의롭다 하시면서, (성화로 넘어가지 않고요) 바로 영화로 넘어가요.

영화롭게 하셨다고 얘기해요.

 

5) 그런데 놀라운 건 여기 시제를 보세요.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거는 아직 우리 삶에서 시간 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에요.

이것은 언제 일어나요? 그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 날,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일어나게 될 거예요.

 

그런데 뭐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과거 시제를 쓰고 있어요.

이거를 신적인 과거, 선지자적인 과거라고 얘기해요.

왜요? 이거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이거는 하나님이 확정적으로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시간 속에서 일어날 건데, 일어난 것과 진배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중간에 이것은 멈출 수도 없습니다. 끊어질 수 없습니다. 황금사슬입니다.

이게 ‘성도의 복된 운명’이라고 성경은 얘기하는 겁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인생에 어떤 위로가 됩니까?

사도는 여기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더 많이 기도해, 기도 안 하니까 그렇지’

라고 말하지 않아요.

 

사도는 ‘성경 좀 읽기만 해서 되니? 묵상을 해!’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하나님을 좀 더 사랑하려고 좀 해봐!’ 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도가 얘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네 인생 속에서, 네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선을 이루고 계시는 그 목적,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그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보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게 바울이 의도적으로 '성화'를 뺀 이유입니다.   *의화에서 영화로 바로 건너뜀 :30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다 하신다고 얘길 하는 거예요.

물론 성화도 거기에 포함되긴 하지만,

우리가 거기(성화)에 함께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성도의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주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여러분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완성하세요.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편지를 쓰면서

‘이 일을 시작하시니 이가 마치실 줄을 나는 안다, 확신한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빌1:6

 

▲여러분, 한 나이든 그리스도인이 간증을 했는데

(실제로 미국에서 어떤 목사님이 한 얘기예요.)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서 발견하셨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고, 자기를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치유해 주셨는지 간증을 잘 했어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영광을 증거했어요.

모임이 끝나고 한 약간 율법주의적 성향을 가진 형제가 와서, 이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서 하신 일도 좋지만, 당신이 빼먹은 게 있다고.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당신의 몫에 대해서는, 당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이 나이든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아, 그거 해명할게요. 내가 한 일은, 달아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저를 잡을 때까지 저를 쫓아오시고, 달려오신 일이었습니다.’

 

이게 정확해요. 여러분이 한 게 뭐가 있어요?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한 게 뭐가 있어요?

영원전부터 일어난 일인데... 여러분이 애썼습니까?

애썼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애쓰는 그 시점 이전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내적인 증거가 내가 애쓰는 거라고요.

 

이 예화가 보여주는 전도(바뀌는)현상,  *어떤 질문자의 질문

하나님이 하신 일 대신에, 내가 한 일을 붙잡는 것,

이게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는 원인이라고.. 로이드 존스는 얘기를 합니다.

 

이게 바뀌면 성도들은 괴로워하여

하나님의 행하셨고 행하시고 계시고 행하실 일을 붙잡는 게 아니라

내가 한 결심, 내가 순종을 한 행위, 내가 한 헌금, 내가 순종을 한 행위,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정, 헌신을 붙잡으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절대로 바울이 말하는 확신에 이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칼빈주의

 

우리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합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이에요.

 

‘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나로하여금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도구가 된다’라고

토마스 슈라이너가 말합니다.

 

'현재 시대의 모든 고난과 혼란들은

신자들이 궁극적인 구원을 얻는 데 장애물이 아니라, 구원이 성취되는 수단이다.

우리는 장애물처럼 느낄 때가 되게 많은데, 이게 하나님이 내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수단이다' 라고 말해요.

 

이 말씀이 어떤 분들에게는 거짓 위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심미리 정하심부르심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벧샬롬 교회에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예배당 안에 앉아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나에게도 당연히 적용이 된다(구원받는다)고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거짓 확신을 심어주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내적 증거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몸이 이 자리에 와있다는 것 때문에

내가 모태신앙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몇십 년 동안 교회를 다녔다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나에게 적용된다고 쉽게 생각할까봐 두렵습니다. 진실로 두렵습니다.

 

만약 내가 그런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님, 내가 구원을 받은 게 맞습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믿음을 주십시오.

롬8:28~30절의 약속이 나의 것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구하셔야 합니다.

 

만일 이런 자기 영혼에 대한 근심이 있다면, 그것도 은혜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것조차 없다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르심을 받았고 거듭났고, 참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어떤 곤경과 어려움과 환란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러분이 그 안에서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지 상관없이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여러분이 궁극적이고 영화로운 구원을 얻는데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수단들 가운데 있는 겁니다.

 

사도의 이 말씀이 서신의 1차 독자인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었던 외적 고난도 있고

그 안에서도 내적 갈등까지 있었던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말씀이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주목하십시다

29절 뒷부분에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맏아들이 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형이 되시는 거예요.

이게 어떤 의미예요? 이것은 가족을 구성한다는 얘기예요.

하나님의 큰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그림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맏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아

성품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들로 변화된 사람들로 구성되는 한 가족 공동체를

여기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로마교회와 모든 교회, 벧샬롬교회, 그리고 우주적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하는 것은 이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신앙에서 머물지 마십시오. 그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속해있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그리고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그런 신앙의 자리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니까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