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렘33장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LNCK 2026. 8. 4. 11:3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부르짖는 기도>

(27)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 예레미야 33:1-9 | 2026.07.19 Youtube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렘33:1-9               2026.07.19.  

 

영국 성공회의 목사였고 The New Testament in Modern English 라는 영어 성경을

출간하기도 했던, J. B. Phillips 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1952년에 매우 화제의 신학적인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Your God is too small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너무 크셔서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너무 작기 때문에, 오히려 믿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가

성경의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으로 자기가 그려낸 왜곡된 하나님,

그 하나님을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낸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그 몇 가지의 중요한 이미지들을 그는 열거합니다.

 

예컨대 1) 첫째로, 경찰관 같은 하나님,

숨어있다가 나타나서 범인 잡는 그런 경찰관 같은 하나님,

 

2) 또 하나는 우리가 거부하는, 그러나 실제로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중에는

우리 가정의 엄격한 아버지 정도의 가부장적인 하나님,

그 하나님을 설정해놓고 우리는 거부한다는 것이죠.

 

3) 또 하나는 Grand old man 노신사 같은 하나님,

친절한데 무기력한 하나님,

그런 가상의 하나님을 설정하고, 그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또 하나는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어려움을 처해 도움을 위해서 달려오는

카운슬러 같은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5) 또 하나는 교단과 전통의 박스 안에 갇혀버린, 일종의 ‘종교적 상징에 불과한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사람들은 설정해놓고, 그 하나님을 믿던가, 거부하던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예레미야 33장에 보면,

자기 국가가 멸망해가는 역사의 황혼녘에 감옥에 갇혀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 하나님은 J B 필립스가 지적한 그런 하나님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렘33:1~2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여기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3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일을 행하시고 make, 일을 만들어 form 성취하시는 establish 여호와’

'그의 이름은 여호와'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일을 만든다’ 할 때 야짜르, 영어로는 form,

이 단어는 본래 뭘 만들어낸다, 생산해 낸다 produce 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일을 ‘성취한다’고 할 때 그 성취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쿤,

영어로 표현할 때 establish라는 단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두 단어는 모두가 다 창조와 관련된 단어들이에요.

창조와 관련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이제 창조된 공간 안에 생명의 질서를 establish(설립, 설정) 하고 만들어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등장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나라가 망해가는데, 이 망해가는 유다 나라에,

그 하나님이 그 역사에 개입하실 것이라고,

그래서 무에서 유를 다시 창조하시고, 역사를 회복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지금 감옥에 갇혀 말씀을 받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시위대 뜰에 보호 중임

 

▲1. 첫째로, 그는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자 지금 선지자 예레미야는 어디에서 이 말씀을 받고 있다고요?

감옥에서, 왕궁에 속한 VIP 감옥이에요. 시위대 뜰입니다.

거기 감금된 상태에서 이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에, 왕이 듣고 싶어 하지 않은 메시지,

'유다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이라고,

그리고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그 선포 때문에 그는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말씀이 임한 것이예요. *렘33:1~

그러니까 감옥이 말씀을 제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옥에도 말씀은 임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이 선지자에게 두 번씩이나 임했다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33:1

 

그리고 그 말씀을 주신 여호와 그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은 감옥이라는 그 환경보다도 더 크신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환경에 눌려진 채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환경이 우리를 누르고, 지배하고, 우리를 낙심케 할 때,

그때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이어야 할까요?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마땅히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느 날 갈릴리 바다를 배타고 건너갑니다.

가다가 파도를 만나요. 풍랑이 몰아치고 큰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겁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을 때,

저만큼 파도 위에서 누군가가 그 배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 유령인 줄 알았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나야, 두려워 말라’ 그리고 그분은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 안으로 들어오셨어요.

그가 들어오시자마자, 파도는 잠잠해지기 시작합니다. 바람은 잦아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그분은 누구일까요? 배 안에 있던 제자들은 그분을 향해서 엎드려 경배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마14:33

 

한마디로 그분은 어떤 분일까요? 환경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분,

환경을 다스리는 분, 바람도 파도도 다스리는 분,

그분은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환경에 처해, 환경에 눌려, 환경에 지배당하고 낙심하게 될 때에

그러나 우리가 그 환경에 지배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 환경에 낙심할 필요도 없다는 메시지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예수님, 저와 우리가 함께 믿고 있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아멘!

 

이렇게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신, 다가오신 하나님은,

첫째는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이셨고요.

 

▲2. 두 번째, 그분은 인간보다도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인생들보다 크신 하나님, 본문의 2절을 다시 읽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3:2

 

자 여기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발표하십니다.

‘내 이름은 여호와 이다!’ 혹은 ‘야웨’ 라고도 부릅니다.

 

히브리어로 ‘여호와’ 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2절에 나옵니다. 3번이나 선포하십니다.

‘여호와’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이죠.

개역성경에도 ‘여호와’를 3번 써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

 

다른 말로 말하면 ‘나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나는 인생이 아닌, 너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의 특별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1) 하나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스스로 존재한다, 자존하시는 하나님,

 

출3:14절에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났어요. 하나님이 모세를 쓰시겠다고,

너를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인도자로 쓰시겠다고...

 

그때  ‘당신이 누구십니까?’ 하고 모세가 묻죠.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모세에게 알려주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그게 야웨 이에요.

 

여호와(야웨)는 본래 히브리어 ‘하야’ 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의 어원이 ‘하야’인데, '존재하다', '있다'라는 뜻이죠.

יְהֹוָה (여호와) < הָיָה (하야)

 

하야는 영어로 to be 예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I AM (하야) that I AM(하야)’

하나님은 자존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세요.

 

저와 여러분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해요. 우리는 누군가를 의존하고,

태어나자마자 부모를 의존하고, 그때부터 온갖 것을 의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그분은 인간보다 크신 하나님이라는 선언입니다.

 

2) 자, 여호와 혹은 야웨 라는 이름 속에 두 번째 의미가 있어요.

그 말은, 그는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미래도 계시기에,

영원하신 존재이시지만, 한 가지 더 있어요.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는 과거의 약속을 지켜주시는 분, 미래의 그 약속을 실현하시는 분,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인생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 되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언약을 지키시고 실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여호와’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어요.

 

따라서 그 하나님은, 인생들과, 우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사실 어제와 오늘이 많이 달라요.

오늘과 내일이 또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약속은, 신뢰하기가 어려워요.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히13:8절도 기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멘!

 

따라서 하나님은 뭐예요? 인생과 다르신 분, 인간보다 크신 하나님!

믿으십니까? 아멘!

 

▲3.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본문의 예레미야 선지자,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와 나타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환경보다 크시고, 현재보다 크신 하나님,

인생들은 현재에 매여 사는 존재입니다. 사실 우리는 현재밖에 보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매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약속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렘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유다나라는 현재 지금 질병투성이예요. 그러나 미래에는 치료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불안과 거짓이 판치고 있지만, 미래는 평안과 진실이 다스리는 성읍이 될 것이라

예언입니다.

 

33: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현재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에워싸여 있어요. 포로 상태나 다름 없어요.

그러나 미래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자 이제 8절을 읽겠습니다.

 

33: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현재는 범죄투성이지만, 미래는 죄의 사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벅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의 마지막! 9절을 보세요.

 

33: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현재 이 성읍 예루살렘은 수치와 조롱의 성읍이지만,

미래는 찬송과 영광의 도성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래는, 이 도시의 이름처럼, 진짜 평안이 가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루살렘 이라는 말의 뜻은, 이르 city + 살렘 peace 라는 뜻이에요.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처럼,

평화가 다스리는 도성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현재를 넘어서서 그 미래를 약속하신 그 하나님은, 현재보다 크신 하나님 믿으시나요?

 

◑그 약속을 경험하려면, 부르짖어야 됩니다!

 

-이렇게 환경보다 크시고,

-인간보다 크시고,

-현재보다 크신 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한 가지 조건 위에서 성취될 것을 언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조건이 뭐예요.? 3절이에요. 본문에 가장 중요한 구절이 3절입니다.

예레미야 33:3절.

그래서 이 구절을 많은 사람들이 ‘다이알 333, 언약 다이얼 333’ 이라고 부릅니다.

 

자 한번 읽고 다 같이 외우겠습니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서 키가 되는 중요한 동사는 ‘부르짖으라’는 말이에요.

부르짖으면 크고 비밀한,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부르짖으라’는 말이 히브리 원어에 카라 예요.

영어로 call 혹은 cry out 이죠.

 

자 우리가 부르짖으면,

그 다음에 크고 은밀한 일,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 위대하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이 알게 하십니다.

 

여기서 ‘은밀한 일’, 이게 히브리말로 바짜르로 되어있어요.

영어로 표기할 때 'unsearchable,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상상할 수 없는' 이죠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은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자 그러니까 그 약속을 경험하려면 우리가 뭐 해야 돼요? 부르짖어야 돼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이 명령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이 지구상의 대표적인 민족이, 우리 한 많은 한민족이라고 생각해요.

한恨 많은 한민족이라서, 우리는 부르짖을 수가 있잖아요. *恨-韓 word play

 

사실 그래서 이 한 많은 한민족,

우리가 발명한 특별한 기도 스타일이 있어요.

어느 나라에 가도, 그런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한국만 합니다.

무슨 기도? 통성기도!

 

통성기도를 뭐라 그럴까요? Cry out prayer 이라 안 그러고

Korean Style Prayer 이라고 말해요.

 

한국의 통성기도의 유래가 언제부터였을까요?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거 아니에요.

우리가 스스로 경험해서 하기 시작한 기도예요.

 

대개 기독교 역사학자들은, 평양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사람들이 회개할 때

자기들의 죄를 각자 회개하며 기도할 때

갑자기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터뜨려주신 기도,

막 울부짖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기도,

그때부터 부르짖음의 기도, 통성기도가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자체는 성경적이에요.

성경에 계속 반복 명령된 기도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시편에 많이 나와요.

 

예컨대 시34:17절 다 같이 읽습니다.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란에서 건지셨도다’

 

시50:15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가 부르짖어 구할 때, 하나님이 건지신다는 약속입니다.

 

시118:5 ‘내가 고통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아멘

 

▲저는 우리 주 예수님도, 이 지상의 짤막한 인생을 사셨지만

예수님 인생의 최대의 위기를 만나 지금

우리가 하는 통성기도 비슷한 기도를 그분도 하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그 근거가 있어요. 히브리서 5:7절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 어디서 하셨을까요?

저는 그게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고 생각해요.

십자가를 앞에 두고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주님 (부르짖으신 주님),

 

제가 한국 평양 대부흥에서 오늘날의 우리들의 통성기도가 유래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평양대부흥사를 연구해보면, 그건 그냥 우리나라에서 딱 터진 운동이 아니에요.

 

그 직전에, 바로 3, 4년 전에 영국에서 먼저 부흥운동이 터졌어요.

그걸 ‘웨일스 대부흥운동’이라고 해요.

영국 웨일스 대부흥운동 이 부흥운동을 일으킨 한 사람이 있어요.

에반 로버츠라는 청년입니다.

 

그의 기도와 함께 웨일스 대각성운동, 웨일스 부흥운동이 터졌어요.

웨일스는 광산지대거든요. 본래 광산지대였어요.

 

우리 교회가 이번에 월요일부터 삼척에 한 4천 명이 갔다 왔는데

삼척이 광산지대예요. 삼척이 다 탄광지대입니다. 지금은 탄을 안 캐죠.

 

지금은 옛날 시절을, 역사적으로 보존만 해놓은, 그것만 공원으로 조금 남아있어요.

거기가 원래 탄광지대 였습니다.

 

여러분 탄광지대 같은 데 가면, 거기가 도덕적으로 문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웨일스 광산이 그래서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이 성행했던 곳이에요.

그래서 살인, 폭력, 부도덕이 성행했던 도시였어요.

 

이 도시에서 에반 로버츠가 너무 답답해서 엎드려서

자기 도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우리 도시를 하나님 살려주시고, 저부터 살려주세요.

나를 하나님 앞에 완전히 제가 굴복하게 도와주세요.

Bend me oh Lord 저를 꺾어주세요. 항복시켜주세요.'

이렇게 막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가 기도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본 친구들이 와서 자기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회가, 그 교회의 기도회, 청년들의 기도회가 소문나기 시작했어요.

 

옆의 교회에서, 또 그 옆의 교회에서 따라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웨일스 전역에 기도회가 퍼져요. 그러면서 교회마다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해요.

 

술집들이 문 닫기 시작하고, 도박이 없어지고, 광부들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경찰서와 재판정이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할 일이 없어져요. 이게 웨일스 대부흥이에요.

 

놀라운 그 소식, 웨일스 대부흥의 소식을 선교사들이 한국에 소개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국에도 기도하는 사람들, 선교사들이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평양 대부흥이 일어난 거예요.

 

▲자 그리고 1940년 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1940년 5월에,

저 프랑스의 던케르크 해안에 영국, 프랑스 군인들 무려 34만 명이

독일군에 의해서 이렇게 포위가 되었어요. 이때 영국 국왕이 조지 6세 였습니다.

 

그는 이 급작스러운 상태를 보고 다급한 나머지, 당시 국왕 조지 6세가 5월 26일  주일을

‘국가기도의 날’로 선포합니다.  *1940.05.23. 목요일에 호소

 

‘오는 주일 날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다 교회에 나가서, 성당으로 가서,

혹은 나갈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 학교에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지금 군인 34만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온 국민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온 나라가 위급한 사태를 알아차린 그때, 그날 주일날 새벽부터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교회당으로, 성당으로, 학교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동안 있었던 부르짖음의 기도였어요.

 

근데 참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그 기도한 직후에 독일의 히틀러가 갑자기 진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왜 그런 명령을 내렸느냐?

지금도 역사에 수수께끼예요.

 

그리고 갑자기 폭풍과 몰아치면서, 독일 공군기들이 이륙을 다 중지합니다.

뜨지 못했어요. 그리고 잠시 후, 프랑스의 던케르크 해안 바다가 잠잠해집니다.

 

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33만 8천명의 프랑스, 영국 연합군들이 철수를 시작합니다.

무사히 철수를 해요. 그리고 연합군의 승기를 잡는 놀라운 전쟁의 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하루 동안 전 국민이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였습니다.

 

눅18:7절의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여러분, 한국에도 또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지금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거기 섬 전체를

'천사의 섬'이라고 부르는 거 아세요?

 

'천사의 섬' 왜 그렇게 부르는 줄 아세요?

실제로 거기 섬이 1,004개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1,004개가 조금 안 된다고 그래요.

섬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천사의 섬'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섬 지방을 다니면서

최소한도 100개 섬 이상을 돌아다니며, 이 섬들을 '천사의 섬'으로 만든,

천사같은 전도자가 있었어요. 문준경 전도사님!  ☞rfcdrfcd.tistory.com/15973598

 

 

신안에 가면 문준경 전도사님 순교 기념관도 있어요.

문준경 전도사님이 제일 중요하게 사역한 교회는, 거기 증도에 가면 증동리 교회가 있습니다.

증동리 교회 교회 앞에 시골길이 쭉 펼쳐져 있는데, 그 길이 '문준경 길'이에요.

그렇게 이름을 붙여줬어요.

 

교회 옆에 <문준경 순교기념관>이 있어요.

제가 그 증동리 교회에 가서,

시골교회지만 제가 자발적으로 자비량 부흥회도 가서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증동리 교회, 문준경 전도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인데,

그 교회 바로 뒷산으로 해서 30분만 올라가면, 산마루 위에 바위가 하나 등장해요.

 

제가 그쪽에 국내 성지순례 인도하면서, 꼭 거기로 인도합니다.

사진에 제가 서 있는 바위가 문준경 전도사님이 기도하던 바위예요.

그 자리에서 제가, 기도하던 전도사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앞을 보면 이렇게 섬들이 보이는데, 그게 꼭 한반도 지도처럼 보여요.

거기에서 문전도사님이 손을 들고 한반도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자기 지방 신안군의 섬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셨던 것이에요.

 

종종 동네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 바위에서 기도하고 있던 전도사님의 기도 소리를

저 아래 길에, 마을까지 다 들려왔다고 그래요.

'아, 전도사님이 기도하시는구나..' 막 부르짖어 기도하시는 소리가 들렸다고 그래요.

기도하고 내려가서 전도하시고...

 

 

위 사진은 문준경 전도사님이 순교하신 순교터입니다.

순교터에 순교비(사진)와 묘소가 함께 조성되어 있죠.

공산당에 의해서 마지막 총살 당하신 그곳이죠. 여러분 아시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복음화가 높은 곳이 그곳이에요. 인구의 90%가 복음화됐단 말이에요.

 

한 여인의 부르짖음의 기도, 또 그 여인의 기도와 전도가 신안군을 바꾼 거예요.

천사의 섬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 다같이 예레미야 33:3절을 읽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오늘 답답한 일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우리 사회에,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은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돌파할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우리 나라를 위해,

우리 민족을 위해 '주님, 우리 집 살려달라고, 우리 식구들 살려달라고, 우리 나라 살려달라고,

우리 민족 살려달라고... 주님 도와주세요!' 부르짖어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