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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장 산 위의 사람

LNCK 2026. 8. 4. 18:49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하나님을 찾는 사람 1 - 산 위의 사람 (마 5:1-2) Youtube

 

◈산 위의 사람                     마5:1~2                  2026.08.02. 

 

오늘부터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란 주제로,

마태복음 산상설교를 20번으로 정해서 시작하는데,

[서론]이 필요한 것 같아서

오늘은 서론을 나누고, 그래서 총 21번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목이 “산 위의 사람”, 다음 주가 “복 있는 사람” 이렇게 설교가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설교자이고 목회자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저를 포함해서 모든 설교자에게는

이런 바람이 있어요. 어떤 바람이냐면,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그분이 역사 속에 있었던 분이든, 당대의 분이든,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설교자의 설교 원고를,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초안,  first manucript 를 한번 볼 수 있다면,

저에게는 뭐 찰스 스펄전이나, 로이드존스 같은 분의 설교 원고를 보는 게 소원이죠.

 

▲제가 미국에서 목회를 하던 중에, 제가 나온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서

채플(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이름이 '맥골먼 채플 MacGorman'이라고 해서,

물론 그분에게 저도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사우스웨스턴 신학교에서 50년 이상 가르치신 신학자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따서 맥골먼 채플이 4천석 예배당으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입당 예배 때, 세미한 교회에서도 그 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제가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병락 목사가 텍사스에서 개척한 한인교회

 

그 입당 예배를 하고 난 뒤에, 건축 헌금을 한 리더들을 따로 또 모아서

채플 투어를 시켜주었는데, 채플 2층에 박물관처럼 전시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전시실에 들어가서, 제가 굉장히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거기에는 역사 속에서 있었던 유명한 설교자들의

육필 원고가 거기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찰스 스펄전의 스크립트가 있었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설교 원고, 손으로 쓴 원고가 있었고,

유명한 D L 무디의 설교문,

그리고 50년 이상 달라스 침례교회에서 목회를 한 W. A. 크리스웰 같은

위대한 설교자들의 많은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었고,

 

아드리안 로저스 같은 유명한 침례교 설교자의 원고까지...

별과 같이 역사 속에 살았던 분들의 원고를 보고,

제 마음이 굉장히 웅장해지면서, 참 감동을 받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찰스 스펄전이나 위대한 D L 무디와 같은 사람들의 설교 원고가 아니라

만약에 여러분이 예수님의 설교 원고를 볼 수 있다면...

위대한 설교자인 예수님의 first manuscript, 그분의 설교 원고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놀랍고 감동적이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5, 6, 7장 이 세 장이

바로 예수님의 설교 원고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신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은 마5:1~2절이 설교를 시작하는 서론이라면,

5:3절부터 7장 끝날 때까지 완벽하게 성경에 ‘빨간 글씨’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녹취되어 기록되어진, 예수님의 설교 원고라는 사실입니다.

그걸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설교’라고 부르죠.

 

제가 안식년을 지내면서, 올 한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Reaching out church'

성도들은 'Reaching out life' 세상으로 나아가 그리스도인답게 나누고 돕는 삶을 살아가도록,

그렇게 우리가 올 한해를 시작했고,

‘안식년 기간’ 하나님 앞에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최근 안식월 다녀오심

 

이제 하반기를 맞이하면서

“하나님, 제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가서 'Reaching out church'에 맞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위해, 어떤 설교를 해야 합니까?”

하고 기도하며 묵상할 때에, 떠오른 말씀이 산상설교였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온 세상에 제자를 보내어,

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가르쳐주는 설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통 우리는... 저도 ‘산상수훈 山上垂訓’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런데 수훈垂訓은 요즘 현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고,

교회 안에서만 거의 사용한다고 봐야 합니다.

垂 (드리울 수) 드리우다(가르침을 내리다)

訓 (가르칠 훈)

 

수훈은 그래서 ‘권위 있는 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는’ 것을 뜻합니다.

(*중국 교회에서 쓰던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쓴 것으로 봅니다)

 

수훈이란 말이, 용어적으로 오늘날 현대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마5~7장 내용을 보더라도, ‘수훈’이라는 말보다 ‘설교’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적합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The Sermon on the Mount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산 위에서 전해진 설교'

그래서 앞으로 저는 '산상수훈'이라는 말 대신에, '산상설교'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 시리즈 설교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그 산상설교의 서론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산상설교,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마5장, 6장, 7장 전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서론적으로 마4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연하겠죠. 5장을 이해하려면 4장을 알아야 되니까요.

 

그러면 마4장에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다음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고,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천사들이 수종들면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신 다음에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뭐냐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물을 깁고 있고, 그물을 던지고 있던 제자들을 불러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고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고, 4:18~22

 

그 장면 뒤에, 그 제자들과 함께 행하신 일이 마4:23~25(끝)절까지 나오는데,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마4:24~25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그러니까 그 앞에는 제자들을 부르셨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면서

아픈 사람, 귀신들린 사람, 불치병이 있는 사람, 각종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치시다 보니까

그게 수리아 지역과, 갈릴리 지역뿐 아니라, 저 수도인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서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예수님을 수많은 무리가 따르더라’ 이렇게 나오죠.

 

자 이제 예수님 앞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생겼습니다.

-무리 가운데 섞여 있지만, 그 중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있고,

-또 무리가 있습니다. 군중이라고도 부를 수 있죠.

 

두 종류의 사람이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시작되는 구절이 5:1절인 겁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이건 산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병 고쳐달라고, 배부르게 해달라고,

내가 힘든 일이 있으니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모여든 그 무리를 보신 다음에,

예수님은 어디로 가셔요?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 무리들을 떠나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이 그림을 머릿속에 기억하시고요.

 

흔히 많은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산상설교 마5, 6, 7장을 대중들에게 설교하신 내용이라고 오해합니다.

 

사실 이 설교는, 아무에게나...

듣고 싶은 사람은 들으라고 전하신 설교가 아니라,

그들 중에서 걸어나와, 예수님이 올라가신 산에까지 뒤따라 올라와 앉아있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거죠.

 

이 설교는 무리에게, 많은 무리에게 주신 설교가 아닌, 제자들에게 하신 설교입니다.

따라서 아무나 들을 수 있는 설교도 아니고,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설교도 아닙니다.

 

귀 있다고 다 들을 수 있는 설교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메시지가 산상설교라는 겁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서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산 아래에서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예수님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 가운데 드문드문 베드로도 있고, 야고보도 있고, 그런 제자들도 섞여 있었겠지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를 떠나 저 산에 올라가 앉아 있을 테니,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고 싶고, 내가 곧 너희들 눈앞에서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이룰 텐데,

그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어, 세상 방식이 아닌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산 위로 올라와라.

 

올라오기 전에 그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너희의 가진 것을 많이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안 받아도 되는 핍박도 많이 받을 수 있다.

 

너희들이 어부로, 세리로 살아왔던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을 다 바꾸고,

완전히 정반대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이걸 듣고도,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 나라 백성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내가 산 위에서 기다릴 테니까 올라와라...」

 

그리고는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5:1

 

▲산에 올라가 앉으신 예수님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면

‘누가 올까? 베드로는 올까? 이 말을 듣고도 야고보는 그물을 버리고 올까? 누가 나아올까?’

 

그렇게 예수님의 마음에 그런 궁금증이 있었을 때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무리 가운데 섞여 있었던 몇몇 사람들이, 기꺼이 그 높은 산으로 올라와,

*팔복산 해발고도 396M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 말씀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이 장면을 그려보십시오.

 

그 제자들을 보았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야말로 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온 그 장면은.. 이렇게 묘사할 수 있죠.

 

‘예수님이 찾고 있었던 사람, 예수님을 찾는 사람’    *21회 연속설교의 주제

이게 산상설교의 큰 대주제가 된 겁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나온 제자들 앞에서 드디어 2절의 말씀이 시작되죠.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입을 열고 가르치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께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쳐다보면, 입을 열어 가르치고 싶은 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만 바라보면 ‘야야, 이리 와봐. 내가 보여줄 게 있다. 내가 가르쳐줄 게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지 이렇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말이지 이런 것도 있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면, 그냥 입이 열려서 잠잠하지 못하시고,

막 하늘의 신비를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앉아 있어도,

‘네 앞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말이 안 나온다’

 

1시간 내내 빵 몇 조각만 떼서 드시다가, 묵묵히 뒤돌아서서,

입을 열어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딱 눈만 맞추면,

예수님 안에 있는 게, 그냥 막 흘러나와가지고,

20분 설교할 것도 50분 설교하시고...

예수님께서 막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

언제든지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면, 가르쳐주고 싶은,

그러한 사람은 복된 사람인줄 믿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산 위로 나아오니까, 예수님이 침묵하지 아니하시고

너무 기쁘셔서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본격적인 가르침이 시작된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렇게 나온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산상설교 전체를 보면 명확해집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얘들아, 내가 앞으로 이 땅에 너희 눈앞에서

하나님의 나라,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 거다.

그리고 너희를 그 백성으로 초청해서 살게 할 거다.

 

따라서 내가 만드는 세상에, 너희가 새로운 백성이 되어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의 훈련을 시키려고 한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백성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고..

이럴 때는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

이게 마5장, 6장, 7장에 하나님 나라에 살게 되는 하나님 자녀들의 삶의 방식인 거죠.

 

우리에게 좀 더 쉽게 이해되도록 표현한다면

「내가 새 부대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새 술을 담그려고 한다.

내가 만드는 나라는 새 부대에, 너희는 새 술이 되어줘야 하는데,

만약 너희가 준비되지 않으면, 부대도 터지고, 그 새포도주도 땅에 다 쏟아져 버리기 때문에

부대는 내가 준비하고, 너희는 새 술이 되어, 내가 만드는 나라에서 너희가 살아야 한다」

 

그것을 지금 가르쳐 주시는 것이 바로 산상설교인 겁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만드실 그 나라, 그건 원래 어디에 있었던 나라죠?’

 

예수님이 하늘에서 성부, 성자, 성령님과 함께 누렸던 그 나라를,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 이루고 싶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 있지 않고,

이 땅에 있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마5장, 6장, 7장 중에 6장 한가운데 있는 말씀 중에

다이아몬드와 같이 콱 박혀있는 가장 중심된 구절이 뭔 줄 아세요?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 주기도문에 예수님의 뜻을 담아두셨죠.

 

‘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thy kingdom come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고,

thy will be done 당신의 뜻이 이 땅에 세워진 그 나라에서 이루어지소서’

on earthj as it in heaven 천국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재현되어지고, 이 땅에서도 당신의 뜻이 통하며,

이 땅에 당신의 백성들이 그 뜻을 이루는...

 

그걸 (하나님 나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해 제자들을 지금 훈련시키는 게 산상설교다... 이 말씀이죠.

 

▲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를 받은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각자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다.

-나는 그냥 산 밑에서... 무리들과 함께 예수님께 뭔가 혜택만 받기 바라는 무리인가?

-예수님이 ‘누구든지 앞으로 나를 따라 오려면, 내가 만드는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먼저 산에 올라가셨다면,

나는 그 초대의 말을 듣고 산으로 올라갔을까?'

 

여러분이라면 어디에 있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디에 있고 싶습니까?

스스로 한 번 물어보십시오.

 

내 마음에, 있고 싶은 거야 여러분 모두가 다 주님과 함께 있고 싶겠지요.

그렇지만 정직하게 지난 한 달의 자기 삶을 평가해보고,

지난 일주일 동안 살았던 여러분의 삶의 방식을 근거로 해서,

여러분이 만약에 그 당시에 그곳에 있었다면,

어디에 더 어울리는 삶을 살았느냐?’ 이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은 뭘 선택해야 될지를 돕기 위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나는 무리에 속해 있기로 했습니다.’ 라고

무리에 속하는 걸 선택했다면, 여러분 굉장히 현명한 판단을 하신 겁니다.

 

왜냐면 이 무리(군중)이라고 하는 자리는, 판타스틱한 자리입니다.

왜냐면 혜택만 있고, 헌신은 안 해도 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많은 무리들 함께, 오늘은 예수님이 저기 있다더라 그러면, 거기로 달려가면 되고,

가서 배고프면 밥 달라고 하면 되고, 아프면 고쳐달라고 하면 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달라고 하면... 그게 ‘무리’입니다. multitudes

 

그렇다고 해서 다 배부른 것도, 목이 해갈되는 것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면, 운 좋은 어느날, 예수님 눈에 띄기만 하면

‘너 오늘 네가 주인공이다. 네가 뭘 말하든지 간에,

낫게 해달라면 낫게 해주고, 부자되게 해달라면 부자되게 해주고,

형통하게 해달라면 형통해주고... 내가 해주마!’

 

해서 예수님에게 눈에 띄는 운 좋은 날이 하루라도 걸리면, 내 인생은 대박나는 거니까

그 자리에서 내 문제 해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혜택은 있지만 책임이 없는 자리,

 

무리는... 예수님을 내가 원해서 따르고 싶을 때는 따르다가,

‘오늘은 귀찮아’ 그러면, 가지 않아도, 자기 집에 머물러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자리,

요게 좋으면 오늘 그것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무리 multitudes

 

△대신 만약에 여러분이 ‘아, 무리는 아닌 것 같아, 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될 것 같아’

그래서 여러분이 제자의 자리를 선택한다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건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가 자원해서 산 위로 올라간 이상, 엄청난 책임을 동반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이 곧 만드실 나라의 시민답게 사는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배경에서

 

이제 앞으로 내 삶의 습관을 바꾸면서, 언어를 바꾸면서, 태도를 바꾸면서

살아내야 한다는 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살 때는

내 빵은 내 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내가 먹으면 되고, 누가 달라 그래도 안 줘도 됩니다.

내 거니까 아무도 욕하는 사람 없습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누가 욕을 해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제자가 된 이상, 하나님 나라의 제자가 된 이상,

내 것인데도, 내 것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배고파서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먹어야지 했는데’

그걸 또 누가 기가 막히게 알고 ‘그 빵을 내게 주시오’

그러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 되는 세상!

그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실천되는 세상! 행20:35

 

이제 내가 너무 목이 마른데, 내가 물병에 남은 마지막 물 한 모금,

‘누가 달라기 전에 얼른 마셔야지’ 했는데,

그걸 또 누가 기가 막히게 알고 ‘그 물을 내게 좀 나누어 주시오’ 그러면,

그 말을 들은 이상, 내 물이 아닌, 네 물이 되어서 너에게 주고서,

의에 주린 목마른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가 나에게 자기가 지고 가던 짐을 나한테 탁 옮겨 놓고,

‘나 대신 5리를 좀 걸어서 옮겨주시오’ 그러면,

내가 예전에 살아왔던 방식은 ‘이 사람이 미쳤나? 내 짐도 무거운데,

당신 짐까지 그냥 내가 지고서 5리를 가자고?’

 

과거에 이런 방식으로 살아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면... ‘5리라니요? 제가 십리를 가 드리지요.’

이렇게 살아야 되는 삶!

 

누군가가 뜬금없이 갑자기 여러분 앞에 와서, 자초지종 설명하지 않고 오른뺨을 후려쳤을 때,

옛날에 내 성질 같았으면, 딱 2배로 갚아줘야 되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왼뺨도 돌려대면서

‘속 시원할 때까지 때리시오’라고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

 

내가 입은 속옷을 어떻게 알았는지, *옷이 매우 귀하던 시절

‘속 옷을 달라 그러면 겉 옷까지 주고...’ 마5:40, 눅6:29

‘겉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며’ 눅6:29

 

누가 비판을 하면, 누가 나에 대해서 디스하는 글을 SNS에 올리면,

10배, 20배로 그 사람의 악담을 쏟아내야... 그게 과거의 내 삶의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누가 너를 비판하면, 돌려 비판하지 말라’고 그러시고,

‘내가 누군가를 도왔으면, 은근히 내 자랑 좀 해도 되는데, 은밀하게 구제해라’ 그러시고,

 

누군가를 향해서, 육체의 간음이야 하면 안 되겠지만,

마음으로 간음한 것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데, 혼자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려 통회하고,

자복하고 울 줄 아는 사람...

 

친구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삶,

이게 예수님 따르겠다고 산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이라는 겁니다.

아까, 무리 중에서 혜택은 있으나, 책임이 없는 삶과는 너무나 다른 삶이죠.

 

예수의 제자로 따르는 순간, 무한한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삶 중에

오늘 여러분에게 선택의 요구가 있다면,

어느 걸 선택하시겠냐는 질문입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책임이 있지만, 어마어마한 혜택도 따라옵니다.

그래서 제자로서 따를만 한 겁니다.

 

제자가 되었을 때에 치러야 될 책임이 있지만, 가질 수 있는 혜택은 뭘까요?

 

1) 첫째, 예수님께 직접 배울 수 있습니다.

수만 명이 무리가 모여 있어도, 제자에겐 어떤 혜택이 있는가?

예수님이 내 이름을 아십니다.

‘거기, 그 사람’ 하다가, ‘아무 야!’ 라고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 황홀한 혜택입니다.

 

2) 예수님이 앞으로 무슨 기적을 행하셔도

기적의 첫번째 수혜자는 내가 될 수 있습니다.

 

3) 밥을 먹는 시간이 되면, 언제나 예수님과 한상에 둘러앉아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는 혜택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이 많은 무리에게 많은 비유로 설교를 했을 때에,

한 자도 못 알아들어도 괜찮은 것은,

예수님이 밤에 나를 따로 불러 개인 교습까지 해주십니다.

 

5) 이 땅에서,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내 혈기도 포기하고, 내 빵도 포기하고, 내 물도 포기하고,

내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해서 버렸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자는 죽어 천국에 들어갈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천국에 가보면 내가 포기한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다 보상해 주시니까

결국은 다 하나님이 되돌려주시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여러분은, 두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겠냐는 겁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기독교 변증학자 C. S. 루이스가 쓴 책 중에

가장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책은 <Mere Christianity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입니다.

 

기독교 변증서로,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에게,

가장 변증학적으로 잘 쓰여진 책입니다.

 

C S 루이스가 그 책에서 이런 말을 기록해 뒀습니다.

"Aim at heaven, and you will get earth thrown in. (덤으로 끼워주는)

Aim at earth and you will get neither."

 

'하늘을 목표로 삼으면, 땅도 덤으로 얻게 된다.

그러나 땅만 목표로 삼으면, 둘 다 잃게 된다'

 

무리는 땅만 붙잡아서, 하늘의 것을 포기했던 사람이고,

제자들은 하늘의 것을 잡으려고 땅의 것을 포기했는데,

결국 그 사람이 둘 다 얻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죠.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렇게 불러놓고 

무조건 손해만 보라고 얘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즉 ‘너 비판받아도, 비판 못한다.

빵 달라면 네 것 아니다.

물 달라고 하면 네 것이어도 그때부터 네 억시 아니다.

억울하게 누가 너의 눈을 빼고, 너의 이를 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네가 배웠어도,

이제는 오른뺨 때리면 왼뺨까지 돌려대야 된다. 너 이렇게 살 수 있느냐?’

라고 주님이 도전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눈동자가 흔들어지면서 내가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없을까?’ 할 때에,

C S 루이스의 말처럼, 예수님이 똑같은 말씀을 산상설교의 가장 가운데

6: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너희에게 더해질 것이다

 

즉 하늘을 목표로 삼으면, 땅도 함께 얻게 되지만,

땅만 목표로 삼으면 둘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

참으로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이 설명을 다 듣고 다시 질문드려요.

여러분이 그날 그곳에 있다면, 이제 어느 자리를 선택하실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보다 보면,

결국에는 산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산 아래의 무리들의 자리에 섞여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고,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다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라

산 위에까지 올라온 사람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7:13,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시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언제나 ‘무리’가 많은 법이지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그래서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산 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헌신 없이 혜택만 있는 자리를 찾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이 절실히 필요할 때마다, 그냥 찾아나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지,

자기는 ‘뭘 예수를 위해 살 필요가 있어?’

‘아, 예수님은 능력이 많은데, 좀 엎드려서 뭘 달라고 구하고, 그래서 받으면 되는 거지,

능력 많은 그분을 위해,

지금 내가 그분을 위해서 뭘 헌신해서 살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자기만의 논리를 만들어서, 무리들 속에서 넓은 길을 선택한 사람!

이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이 필요할 때만 찾아가면 되지,

뭘 매일 예수를 따라다닐 필요가 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평생 예수님을 따라오는 척하면서, 평생 했던 말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 나에게 뭘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수! What can you do for me? Tell me, what can you do for me?'

평생 이 말만 합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해 내가 뭘 하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는 사람!

 

언제나 기도를 해도 ‘내게 뭘 해주실 겁니까?’를 물었지,

‘주님, 내가 주님을 위해 뭘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물어본 적 없는 사람!

그는 산 아래에 있는 사람은, 무리요, 넓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산 위에 올라온 사람은, 제자요, 좁은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여기(산 위)까지 왔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뭘 할까요?

What can I do for you?'

 

▲저는 이제 다음 시간부터 20회에 걸쳐서

산상설교를 하나하나 20개로 나누어서, 여러분에게 설교할 겁니다.

 

앞으로 20주간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은 여러분이 살아내기에 매우 힘든 말씀으로

가득할 겁니다.

 

설교를 듣다 보면 ‘맞아! 내가 아는 그 사람, 저렇게 살아야 돼!

오늘 나와서 이 설교 들었어야 돼’ 하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먼저는 나를 향한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절대로 내가 살고 싶지는 않은 삶’에 대한, 그런 설교를 매주 할 겁니다.

다른 사람 누군가는 살게 하고 싶지만,

내가 살고 싶지 않은 부담스러운 말씀들을 전할 거라는 거죠.

 

예수님이, 이제 곧 세우실 나라

thy kingdom come 당신의 왕국이 임할 것이고

Thy will be done 당신의 뜻이,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고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천국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님이 곧 세우실 나라에 걸맞는 사람을 불러서,

걸맞는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훈련 교과서가 바로 산상설교라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지상 세계영원 세계가 나뉘어져 있지만, *그 중간은 죽음

예수님께는 지상 세계와 영원 세계가 이어지 있습니다. 하나요, One line 선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영생, 천국,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지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지상에서 영생, 천국, 하나님 나라를 못 누리는 사람은.. 죽어서도 못 들어갑니다.

지금 이 지상에서 영생, 천국,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은.. 죽어서도 자동으로 누립니다.

 

예수님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이 임하였다’고 하신 것은,

죽어서 가게 될 미래 천국을 뜻하신 게 아니고, *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

그 메시지의 1차적 의미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미래 천국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다 들어 알고 있는 존 스토트가,

그의 <산상설교> 책에서, 이 산상설교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언문’ 그랬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나라를 세우실 선언문과, 그 백성들을 부르는 이야기,

이 하나님이 세우실 나라는,

지금까지 제자들이 살아왔던 갈릴리, 예루살렘, 이스라엘에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규정하고 만들어놨던 법을 따르며 살아왔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나라이며. 다른 걸 (천국 라이프스타일을) 요구하는 나라입니다.

 

매우 낯선 나라, 한 번도 들어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내가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로의

초청입니다.

세상 방식을 사용해 보면 하나도 통하지 않는 나라,

그 나라에 가보면, 개념이 바뀌어 버려요.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복은 잘 먹고, 유명해지고, 삶에 문제가 없는 게 복이었는데,

이 나라에 딱 들어오면.. 복이 바뀌어요.

배고픈 게 복이고, 목마른 게 복이고, 애통하는 게 복이고, 뺨 맞는 게 복이고,

옷을 벗어주는 게 복이고, 비판당하는 게 복이고, 고난당하는 게 복이래요.

 

이런 나라가 어딨고, 그런 나라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죠.

 

‘왜 빵이 없냐? 왜 너는 물이 없냐? 왜 너는 울고 있냐?’고 했을 때에,

내가 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울 일도 없이 살 수 있지만,

 

‘왜 울게 되었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거죠.

‘내 빵이었는데, 더 배고픈 사람이 달라고 해서 주어서 나는 배고픕니다.’

‘그래, 너는 복이 있도다’

 

‘원래 내가 마시려고 아껴놓은 물인데, 더 목마른 사람이 달라고 해서

그의 목을 축여주고, 내가 목말라졌습니다.’

‘그래, 너는 복이 있도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내가 그 사람 멱살 잡고 싸워 이기려고 하다가,

그 영혼 위에서도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셨는데, 그걸 묵상하며

주님, 제가 그와 싸우지 않고, 지금 주님 앞에 나와 애통하며 하나님 제가 울고 있습니다.’

‘그래, 너는 복이 있도다!’

 

‘너는 왜 옷이 없느냐?’

‘제 옷을 더 필요한 사람이 달라고 해서, 겉옷을 걷어서 속옷을 벗어주다 보니,

나는 헐벗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 너는 복이 있도다’

 

‘너는 왜 그렇게 평판이 그러냐?’

‘내가 나의 모든 잘못된 이야기들을, 내가 세배, 네배로 변명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다 들으신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내 마음을 토로하면서,

이렇게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래, 너는 복이 있도다’

 

‘너는 얼굴이 왜 그렇게 붉게 상기되어 있느냐?’

‘누가 제 오른뺨을 칠 때, 제가 두 번 쳐서 갚아주려고 하다가

왼뺨까지 돌려대는 게 하나님 나라 방식이라고 해서,

오른뺨, 왼뺨 다 맞으니, 제 얼굴이 이렇게 붉어져 있습니다.’

 

전혀 세상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삶의 방식을, 예수님이 초청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신약신학자 도널드 크레이그 빌은, 이 나라를,

이렇게 예수님이 만드시는 나라를 ‘업사이드다운 킹덤’이라고 했습니다.

‘전복된 하나님의 나라!’ Upside-Down Kingdom by Kraybill, Donald

  

좀 더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뒤집어진 하나님의 나라'

세상 방식하고 완전히 거꾸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그의 책에서

'예수님이 세우시는 나라는 대안 세계 Alternative World'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기존 학교에 문제가 있어 대안학교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워내듯이

예수님이 세우는 방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안세계를 만들어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그러한 나라가, 예수님이 세우실 나라 예수님이 초청하시는 나라요,

그 백성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내가 이런 나라 세울 텐데, 내가 이런 나라 세울 텐데...

누가 나와 함께 하겠느냐?’

 

제자들이 산 위로 올라왔을 때

「지금부터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천국백성 교육을 시키겠다.

앞으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너희는 율법을 통해 배웠으나,

이제는 누가 너의 오른뺨을 친다고 해도, 두 배로 갚지 말고, 왼뺨까지 돌려대는 사람이 되고,

 

누구를 돕고도 자랑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남의 눈에 티 하나 발견했다고 온 SNS에 그 사람 험담을 실어 나르지 말고,

티를 보고는 ‘내 눈에 들보는 없을까’ 오히려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고,

비판을 받아도 더 센 비판으로 되돌려 주지 말고,

‘내게 그런 못난 부분이 있었는가?’ 오히려 회개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되고,

 

누가 억울하게 자기 짐을 네 등에 지어 5리를 가자 하면,

10리까지 가서 그를 놀라게 만들어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벗어주어, 그 사람을 당황시키는...

그렇게 세상을 당황시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라!」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완전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줄 때,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저 바보하나 나왔다. 저렇게 멍청하게 세상을 사느냐?’ 비웃을 겁니다.

 

‘저거 다 쇼하는 거야. 설교 듣고 잠시 은혜 받아서 한 주 동안 마취돼가지고 저러는 거지,

2주만 지나면 제정신 돌아올 거야’

 

그런데 2주가 지나고, 한 달 지났는데,

여전히 그 성도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말도 안 되는 급진적인 삶을 살면,

몇 번은 쇼처럼 보이겠지만, 몇 달~ 몇 년을 계속 살면.. 그게 인정받게 되는 거죠.

‘쇼하는 게 아니라 삶이 바뀌었네? 저러고 이 세상을 산다고?

저렇게 얻어맞고도 또 복수하지 않고, 뺨을 돌려댄다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겠지만

여러분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

여러분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제는 ‘저 뒤에 누가 있길래 저렇게 고상하게 살지?

염려할 때 염려 안 하고 살지?

어떻게 얻어맞고도 참을 용기와 그 배포가 생기는 거지?

어떻게 자기의 마지막 걸 주면서도, 내일에 대한 걱정이 하나도 비치지 않는 거지?’

 

사람들이 계속 궁금해 하다가, 이 산상설교의 목적대로

마5:16절에, ‘결국에는 저희가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은 설교가 마치면, 세상으로 나가겠지만

거기서 다른 나라(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이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어

세상을 당황시키다 못해 궁금하게 만들어,

결국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을 궁금하게 하여,

‘저희가 너희의 착한 행실로 말미암아 결국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그들도 하나님 나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삶을 살라고,

우리를 훈련시켜 세상으로 내보내시는 겁니다.

 

이 질문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오늘 예수님이 이 예배당에 오신다면, 여러분에게 다시 그날처럼 물으신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OOO야, 산 아래에서 무리 가운데 섞여서 넓은 길로 갈래?

힘들지만 산 위로 올라와 나와 함께 좁은 길로 갈래?’

대답은,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