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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장 수렁에 빠진 자가 사는 길

LNCK 2026. 8. 6. 10:5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성결, 성화      

2026.07.30 l 12:1-2 l 수렁에 빠진 자가 사는 길 Youtube

 

◈수렁에 빠진 자가 사는 길             롬12:1-2            2026.07.30.  

 

지난 주 목요 집회 때, 우리가 중독자들을 위해서 같이 섬기면서

우리 주변에 마치 수렁에 빠진 심정인 성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여러 경로로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중독자만 아니고, 그저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가운데,

도무지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그런 절박한 심정에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좀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 내 심정이, 내 형편이 수렁에 빠진 것 같고, 벗어나기는 해야 되겠는데,

길이 없고, 모든 게 다 막막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도,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내 믿음이 이것밖에 안 됐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 조심할 것은, 그냥 속에서 나오는 탄식을 입으로 내뱉는...

절망을 나도 모르게 그냥 입으로 토해내는...

‘나는 죽겠어.. 너무 힘들어.. 이제는 끝난 것 같아..’

이걸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도 권세가 있어서, 그렇게 하면 할수록,

도무지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한 말이 자기 믿음이 되고, 그리고 서로 말과 마음이 묶여버리게 돼요.

그와 같은 때, 우리가 살아날 길은, 수렁에서 건짐을 받을 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이 가지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 상황에도 있구나’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에 평강이 오고, 그리고 헤쳐나갈 힘이 생깁니다. 전진해 나아갈 힘이 생겨요.

 

도무지 헤쳐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데,

그런데 갑자기 나갈 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놀랍죠.

 

오늘 이 시간에도 영상으로 이 목요집회에 참여하는 분들 중에도

'나는 도무지 이제는 길이 없는 것 같아' 이런 생각하시는 분들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 길이 확 열려지는, 믿어지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답은 너무 명확하고 간단합니다. 성경 말씀에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는 뜻, 하나님의 뜻은 선하신 것이고,

그리고 기뻐하시는 것이고, 온전하신 뜻이 항상 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떤 상황에서도 믿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근데 성경 말씀에 다 기록이 되어 있어요.

성경을 읽어보면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었구나’ 다 그런 고백을 하게 돼요.

 

‘나보다도 더 심한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았구나’ 다 깨닫게 돼요.

그리고 ‘그들도 그 가운데 하나님이 기적을 보았고 살았구나’ 하는 것도 알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 완전한 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말고, 또 하나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아도, 하나님의 뜻이 딱 마음에 안 와 닿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렇죠.

 

심지어는 이단들도 성경 말씀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는, 아직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하기가 어려운데,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

하나님께 나 자신을,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드리는 거예요.

 

반드시 이 둘이 같이 가야 하는 겁니다.  *말씀과, 몸을 드림

그러면 어떤 누구도,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뭘 원하시는지,

이 일은 왜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를... 알게 돼요.

 

하나님 뜻을 알게 되면 마음의 평강이 오고,

그리고 수렁을 이길 힘을 얻게 되고,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많은 사람들이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치라’를 엄청 두려워하는 말씀으로 받으세요.

근데 몰라서 그런 거예요.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해석을, 마귀가 자꾸 왜곡시키는 거예요.

 

‘하나님께 나를 바칠 거냐, 말 거냐?’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 말씀이 부담되고 두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하나님께 나를 바칠 거냐, 말 거냐?’ 그런 게 아니고,

세상에다가 나를 바칠 거냐, 하나님께 나를 바칠 거냐?이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은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답인 거예요.

‘하나님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로 바치라’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수렁(중독)에 빠져서 완전히 죽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는데,

그 말씀인 거예요.

‘너의 몸을 이제는 하나님께 바치라’

 

그러면 그동안에는 어디에다 바쳤어요?

세상에다가 바치고 살았더니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이제는 하나님께 바치라’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렇게 말씀한 것을 주목해야 돼요.

‘이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그동안에 그렇게 세상에 바치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세상 바라보고, 세상 의지하고, 세상 기대하고,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수렁에 빠진 거예요.

길이 없는 수렁에 빠진 거예요.

 

‘이 세대를 따라 사는’ 게 그렇게 안 좋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나는 별로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잖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1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자고 눈을 떴는데, 지금 2026년이에요.

이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요? 놀라고 충격이 말할 수가 없을 거예요.

 

100년 전에 살던 사람이, 잠들었다가 깨보니까, 갑자기 지금 세상이에요.

‘100년 뒤에 이런 세상이 된다고?’ 꿈에도 상상 못 했을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깨보니,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뀐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바뀔 수 있지?’ 물론 좋은 쪽으로 바뀐 게 있어요.

근데 나쁜 쪽으로 바뀐 게 훨씬 많아요.

 

‘아니 세상에 이런 말들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한다고?’

‘아니 이런 행동을 너도 나도 다 하고 있다고?’

‘아니 어떻게 이런 영상을 사람들이 수시로 다 보는 영상이 되어버렸지? 말세가 됐구나!’

이렇게 반응을 할 거예요.

100년 전 사람만 되어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금방 알게 돼요.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느낌이 없는 거죠? 그건 서서히 변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상당히 바뀌었고,

또 지나오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서서히 바뀌었어요.

 

여러분도 잠잠히 생각해보면,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과 지금이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고 다 느끼잖아요. 이게 무서운 거예요.

 

마12:39절에 주님은 이 세대를 ‘악하고 음란하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귀가 사람을 서서히 악하고 음란한 쪽으로 몰고 가요.

이게 서서히 바뀌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생각이 이렇게 스며들어서,

너도 나도 비슷해지고 하니까... 심각한 걸 모르는 겁니다.

 

한순간에 바뀌었다면 사람 취급도 못 받을 일을, 지금은 태연히 말하고 행동하고 있어요.

그걸 커밍아웃이라고 그러죠. ‘나도 그런 욕구가 있어.. 나도 그런 사람이야..’

 

동성애 문제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죠. 서서히 바뀌니까, 우리가 그 심각함을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만약에 지금 우리 가운데 되어지는 일을, 마귀가 하는 일을 실제로 본다면,

우리는 정말 세상을 본받고 살지 않을 거예요. 너무너무 끔찍하고 더러우니까요!

 

▲어떤 분이 남편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어느 날 남편 꿈을 꿨는데, 이렇게 뱀이 남편을 칭칭 감고 있는 꿈을 꾸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사정을 캐 보니, 그 남편이 간음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편 되시는 분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보지 못하니까, 그걸 청산을 못하는 거예요.

자, 이 상황을 우리가 정말 알고 나면, 그러면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죠?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리는 그게, 이 세상을 사는 유일한 길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이전, 2000년 전에

이미 성도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 몸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립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섭리라는 거예요. 롬12:1~2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인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치라’ 이 말씀은,

‘이게 너희가 살 길인 거야.. 복받은 사람만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라고 말씀해 주는 거죠.

 

지금도 여러분 마음이 어떤지를, 여러분 스스로가 대략 짐작이 되는데,

하나님께 내 몸을 산제물로 바치라그 말씀이 너무 부담되고, 두렵고,

너무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제로는 거의 끊어져 있는 것과 같은 관계예요.

 

그냥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고, 교회는 다니는 정도지만

실제로 영적인 상태는 하나님과 거의 끊어져 있는 상태,

그러니까 이 말이 그렇게 힘들고, 부담스럽고,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하나님과 사이가 좋으면,

그러면 완전 느낌이 달라요.

 

여러분 결혼할 때, 결혼은 자신을 배우자에게 완전히 바치는 일이에요.

결혼은 ‘내게는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여자가 없고, 내게는 더 이상 다른 남자가 없어요.

이제는 가능성조차도 없어요.’ ... 그게 결혼이에요.

그래서 얼마나 기뻐하고 축하받고 하지요.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의 몸을 산제물로 바친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요구를 하시지?’

만약 그런 생각이 든다면,

여러분은 결혼은 어떻게 했었어요? 한 남자에게 내 삶을 다 바쳤잖아요.

한 여자에게 내 삶을 다 바쳤어요.

 

그렇게 하고, 또 축하도 받으면서, 또 카메라에 대고 웃고, 사진도 다 찍어 놓고...

다 그런 경험도 있고, 그렇게 해보기도 했고,

실제로 결혼하지 않은 미혼도 다 상상이 되잖아요.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삶 전체를 그 배우자에게 주는 일은,

너무 행복한 일이에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는, 그게 그렇게 부담되고 힘들게 느껴지는 거죠?

하나님이 아직은 나에게는 남처럼만 느껴진다면...

그건 하나님을 아직 온전히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내 몸을 정말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린다. 그게 어떻게 사는 건가?’

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돼요.

 

여기 ‘산 제물’이라고 그랬는데, living sacrifice

제물은 죽어야 제물입니다.

 

그런데 산제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죽으면 안 되는 거죠.

살아있는데, 그런데 제물인 거예요.

‘살아는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은 것과 같다...’

그게 정확하게 예수를 믿은 우리들을 향한, 복음이 말해주는 의미예요.

 

로마서 6장이나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복음이

정확하게 이 말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

이 말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믿음으로 살라’ 그런 뜻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멘!

 

이 고백을 정말 입으로 담대하게 고백하며 살다가

시험이 올 때, 마음이 힘들 때, 절망이 올 때, 마음의 갈등이 생길 때,

여러분 담대하게 외우고 선포하며 기도하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게 바로 내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으로 어떤 시험도 다 이겼어요.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했어요.

어떤 문제도 다 해결됐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권하는’ 거예요.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봤거든요. 이게 말할 수 없는 복음이에요.

세상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세상을 따라 살지 않아도 되고,

세상이 아무리 크고 강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그때 어느 집사님 몇 분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이런 복음과, 이런 말씀이 좀 부담된다... 목사님 그것 좀 바꾸시라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교회로 갈 거라고요...’

아 엄청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복음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결국은 그 집사님들이 교회를 떠났어요. 굉장히 제 마음이 아팠고, 그리고 좌절도 왔고,

'내가 이렇게 계속 목회를 해도 될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 이상 목회할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전했는데.. 뭐 다 정말 좋아하는 말씀은 아니었지만,

아주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기까지 하는 분들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에 확 흔들림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암환자인 교인 심방을 갔다가, 제가 크게 회개했어요.

지금 암으로 너무 절박하게 기도하는 그 교인을 위해서, 제가 기도하면서

 

이렇게 지금 절박한 처지에 빠져서 어려움 당하는 분들이 많고,

진짜 수렁에 빠진.. 깊은 수렁에 빠진 처지에 있는 분들이 너무너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들을 도우기에도 바쁜데)

저는 ‘내가 왜 이렇게 힘든가?’ 제 자존심, 저 자신에 대한 평가,

그게 저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거에요. 너무너무 죄송하더라고요.

 

‘나는 죽었다고’ 그렇게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그랬으면서도,

내가 죽었으면 뭐가 문제가 돼요?

 

만약에 교인들이 떠나는 일이 생기면.. 깊이 기도하고 나 자신을 돌아봐야죠.

‘내가 뭘 정말 잘못한 게 있나?’ 그러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되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해서 교인이 떠나는 거라면...

 

그런데 아무리 나 자신을 살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고, 그게 복음이었고,

‘그러면 이건 내 자존심의 문제지...

그것 때문에 내가 흔들릴 문제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나를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교인들은 지금 너무너무 절박하고.. 힘들고.. 정말 부르짖고 있는데,

나는 내 자존심 문제 때문에 힘이 없다... 이게 맞아?’

하나님 앞에 정말 회개했고, 그리고는 그 문제를 깨끗하게 주님께 맡겼어요.

 

‘진짜 나는 죽었다’는 이 복음을, 제가 정말 받아들이고 나니까,

해결 안 될 시험이 없구나.. 극복 안 될 문제가 없구나..’

그렇게 부산에서의 목회 때, 아주 중요한 어떤 위기 상황을 이겨낸 경험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이 복음을

선뜻 아멘으로 이렇게 붙잡지를 못해요.

 

사실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이 복음'은,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다는 뜻이거든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그런 마음이 그냥 저절로 들어요.

‘나는 죽고 그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은, 그건 사랑에 빠진 게 아니에요.

여러분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이든, 배우자든, 자녀든, 친구든,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해요.

그러면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죽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요. 그게 사랑인 거에요.

 

우리는 예수님에게만 이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사실은 ‘나는 죽고 그 사람으로 사는’

이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왜 예수님께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삽니다’ 이 고백이 그렇게 힘들고,

‘내가 죽는 게 너무 힘들어’ 이런 표현을 하는 거죠? 이유는 하나인 거예요.

아직도 예수님과 내가 사랑하는 그 경험을 못해보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해요. 여러분 이거 굉장히 위험한 일이니까,

그냥 예를 들어서만 알고, 실제로 해보지는 마세요.

 

어떤 이성을 자꾸 눈으로 똑바로 쳐다봐요.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가 아무 감정이 없었어요.

서로도 잘 모르고.. 그런데 계속 눈과 눈을 마주쳐서 이렇게 계속 지내보면요.

어느 순간에 그 이성에게 내 마음이 빼앗기는 순간이 옵니다. 정이 들게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을 계속 눈으로 쳐다봐요.

그래서 영화 찍다가, 실제로 결혼한 배우들이 많아요.

그냥 영화 찍은 거예요. 영화 스토리를 연기한 거예요. 가짜 연애였던 거죠.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서로 사랑한다 그러고, 서로 계속 얼굴 마주하고,

계속 또 컷하고 또 다시 찍고, 또 컷하고 또 다시 찍고 그러다보면...

느낌이 점점 이상해지는 거예요. 갑자기 자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려면, 예수님을 계속 바라봐야 되는 거예요.

늘 주님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늘 같이 동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나를 보고 계세요.

내 안에 오시기까지, 나 위의 십자가에 죽으셨고, 내 안에 오셨어요.

그러니까 주님은요. 나를 24시간 주목하시는데,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고, 완전히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눈이 막 이글거리는 그런 눈 보셨어요?

누가 나를 보는데 눈이 이글거리는 것 같아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에게 그런 눈빛으로 보면 이건 정말 무서운 거예요.

이건 정말 스토커죠. 주님이 꼭 우리에게 스토커 같으세요.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세요. *과거에는 ‘추적자, 추적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썼죠.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또 온 거잖아요.

 

근데 내가 나도 주님께로 내 눈을 돌리는 순간,

그동안에 왜 예수님이 스토커죠?

 

나는 계속 세상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드라마 보고, 영상 보고, 주식 보고, 그리고 직장 보고, 사람 바라보고,

나 자신 바라보고, 내 문제 보고...

 

주님은 계속 나를 보시는데, 나는 계속 문제 보고, 사람 보고, 환경 보고, 세상 재미 보고,

그렇게 계속 딴 데를 바라보니까.. 주님이 스토커처럼 되신 거예요.

 

자, 그런데 내가 주님께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나도 주님을 생각하고, 나도 주님을 바라보고... 그러면 사건이 안 생길 수가 없죠.

마음이 안 변할 수가 없어요. 그분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고백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삽니다. 이제는 더 이상 더 다른 거 바랄 것도 없어요.

지금 환경, 지금 여건으로도 충분해요.

주님이 따로 역사 안 해주셔도 돼요.

주님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계시고, 내 안에 계신 것으로 충분해요.’

이런 마음이 생겨요.    주1)

 

그렇게 ‘뭘 고쳐달라, 뭐 해결해달라’ 내게서 그런 간구가 없어졌어요.

저도 회심할 때, 오히려 제 오른쪽 다리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어떻게 그때 그런 기도가 나왔는지 몰라요. 그렇게 돼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나면, 주님 내 몸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해요.

가장 감사해요. 그럴 수 있다는 게 특권이에요. 이런 마음이 든다니까요.

 

그러면 마귀가 건드릴 수가 없어요.

예수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건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

그러면 돼요. ‘아, 하나님의 뜻이 그거였구나’ *내 몸을 바치는 것

그러면 어떤 고난도 감사함으로 나갈 수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알았는데요. 하나님의 뜻은 내가 망하는 게 아니었어요.

나에게 너무 유익한 것이었어요. 그러면 눈물밖에 안 나요.

그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 그렇게 해결되거든요.

 

그러려면 반드시 말씀을 봐야 되고,

그리고 내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물로 바치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산제물로 바치는 마음만 분명히 가지면 돼요.

 

십자가 지고 주님 따르는 일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일이에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그런데 이게 사실은 너무 쉬운 길이에요.

예수님께서 마11:30절에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너무 어려운 길이면서도 너무 쉬운 길이에요.

 

주님만 따라가는 그 길이, 주님과 하나가 안 된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내 본성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진짜 믿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길이에요.

그 길만 사는 길인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마음의 문제라는 거예요.

주님만 따라가는 길이 ‘그 길 자체가 힘들다, 어렵다, 쉽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 길이.. 어떤 사람에게 너무 쉽고, 그게 너무 복된 길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어렵운 게.. 그게 마음이 달라서 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그렇게 말을 한 거예요.

열쇠는 내 마음이 안 바뀌니까, 복된 길이 어렵게 느껴져요.

내 마음이 바뀌면, 아무리 어려워서, 다들 다들 끔찍하게 생각하는 길도,

내게는 그 길이 복된 길이 되니까요.

 

▲어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어요.

‘스승님, 제가 고뇌의 짐이 무겁고, 제 마음이 너무 마음이 심란하고

정말 그런 고뇌의 짐을 어떻게 벗어버릴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을 가르쳐 주겠다고, 숲으로 데리고 가서,

큰 나무 둥치 하나를 스승이 이렇게 두 팔로 감싸 안고 붙잡았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 스승이 막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는 거예요.

따라가던 제자가.. ‘이게 무슨 일인 게지?’

스승이 갑자기 나무를 굳게 껴 안고는, 막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그 나무가 그 스승을 꽉 붙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건가 해서,

그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라,

나무가 스승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고, 스승이 나무를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스승님, 손을 놓으세요. 아니 나무를 부둥켜 안고 살려달라고 하면 어떡해요?

손을 놓으세요. 손을 놓으시면 됩니다’

 

스승은 ‘나는 안 돼, 그게 잘 안 돼’

제자는 ‘뭐가 안 돼요? 그냥 손만 놓으시면 돼요!’

 

그때 그 스승이 비로소 나무에서 손을 놓고는,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게 바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야!’

그렇게 말해주었다는 참 유명한 일화가 있잖아요.

 

이상하죠?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문제들을...

옆 사람의 눈으로 보면요. 자기 마음 하나 달라지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

계속 자기가 그걸 붙잡고 씨름하는 거예요. 남의 문제는 그렇다니까요.

그 나무 둥치 붙잡은 팔을 못 놓는 거예요.

 

남의 문제는.. ‘마음 하나만 바꾸면 아무것도 아닌 문제인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지?’

‘자기 문제가 도저히 해결 안 된다’ 하는 건, 그게 자기 마음이 안 바꿔진다는 거예요.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것은 예수님을 진짜 내 마음의 왕으로 모시는 거예요.

그게 마음을 새롭게 하는 거예요.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바꿔요? 실제로 다 해보셨으니까 알 거예요.

제일 안 되는 게 내 마음 바꾸는 거예요.

 

옆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이.. 나는 안 된다니까요.

근데 되는 길이 하나 있는데, 예수님을 진짜 영접하는 겁니다. 왕으로 영접하는 겁니다.

그때 내 마음이 확 바뀌어요.

 

▲요한계시록 3:20절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늘 ‘예수님 영접한다, 예수님 영접한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건 실제로 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거예요.

그리고 모든 게 달라진다는 거예요.

 

제가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을 겪고 그 문제로 기도하다가

그렇게 마음에 깨달아진 것이 있는데,

‘왜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나?’

그런데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겪는 고통들이 정말 힘들죠.

그런데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확인이에요.

 

제가 다리 수술을 군인병원에서 할 때, 그때 육군 소위가 이제 최전방에서 철책선 근무하다가

지뢰를 밟고 발목이 이제 결단하게 되는 수술을 하고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이 됐는데

그 육군 소위는 정말 20대 초반의 기독교인 청년이에요.

 

제가 바로 그 반대편 침상에 있었는데, 군의관이 아침에 회진할 때 그 청년에게는

주사 바늘을 가지고 그 청년의 다리를 살짝 찔러보는 거예요.

그리고 ‘아프냐, 안 아프냐?’ 물어봐요.

‘안 아프다’ 그러면, 다리 신경이 죽은 거예요.

 

여러분, 이게 정말 얼마나 끔찍한지요!

‘고통이 없다, 고통을 못 느낀다’ 그러면, 결국은 그 무릎을 절단합니다.

신경이 살아나지 않으니...

 

그 육군 소위를 위해, 밤에 기도해 주는데,

그가 하는 말이 ‘진작 그러면 무릎을 절단하지, 이 수술을 왜 또 하게 하느냐?’

먼저 발목 절단하고... 그 위로 신경이 안 살아니니, 다시 무릎 아래로 절단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고통은 역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에요. 고통을 못 느끼는 순간이 와요.

이건 정말 그 자체가 두려운 거예요. 내가 고통이 느껴져요.

그건 그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에요.

 

고통 없이 누가 성장을 해요?

고통이 왜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고통이 전혀 없으면 사람은 거의 어린애 수준이에요.

그냥 한순간에 어려움에 확 넘어지는 자가 돼요.

고통이 나를, 영적인 근력을 계속 키워놓는 거예요.

 

▲미국에 계신 어느 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셨는데

「저는 항상 내가 왜 변화받을 수 없는지.. 그게 고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 들을 때, 나는 오히려 서운하고 부러움이 교차되었습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를 수없이 찬양하고 눈물로 고백했지만,

내가 주님의 기쁨이 아니라, 나의 기쁨에서 끝나버리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 마음이 계신 것을 믿고, 주님을 계속 바라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제 속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 안에 이미 예수님이 계시지.. 모든 상황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게 뭘까?’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과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목사님, 지금 제가 목사님께 글을 쓰는 이 순간, 너무나 너무나 기쁜 마음에 글을 씁니다.

‘초점이 나에게서 주님으로 바뀐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제가 주님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단지 내 안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눈물 나도록 고맙습니다.」

 

여러분 안에 일어난 이 기적,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생명과 왕으로 오신 이 기적을,

이거 작게 여기면 안 돼요.

 

저는 예전에는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신 게, 내 인생에 뭐 그렇게 중요한 대단한 일인가?’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전부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신 것을 진짜 안 믿으니까 문제지,

내 안에 주님이 오신 게 정말 믿음으로 붙잡는 순간에,

어떤 환경과 여건이 나를 넘어뜨릴 수가 없게 됐어요.

 

만약 지금 이 시간 여러분 안에,

‘내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붙잡고,

내 마음을 완전히 주님께 드리고, 내 몸을 산제물로 주님께 바치는 삶을

나는 살 자신이 없어... 설교는 듣지만,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은 없어’ 이런 분은...

 

마크 배터슨 목사님이 <올 인 All In>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여러분이 알코올 중독이나 거식증을, 평생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딱 하루 동안은,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다음 주나 다음 해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보십시오.

 

24시간 동안만, 24시간 동안만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겠습니까?

유혹과의 싸움에서 오늘 하루 동안은 이길 수 없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분명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당신도 알고 원수 사탄도 압니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십시오.」

 

여러분 이거 '평생 어떻게 내가 정말 내 몸을 하나님께 산제물로 바치고 살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라니까요. 왜요?

그렇게 살 힘은 주님이 주시는 거라니까요.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에, 주님께 나를 드리는 거예요. 그럴 거냐 말 거냐를 결정하는 거예요.

‘그동안 세상에 주었던 내 마음을 이제는 주님께 드리겠다!

내가 그동안 세상에 살았던 거를 주님께 드리겠다!’

오늘 밤에 여러분이 그렇게 결단하셨잖아요.

오늘 밤만큼은 몸을 주님께 산제물로 바치셨잖아요.

 

영상으로 들어오신 분들도 지금 이 시간은 이 시간은 만큼은 주님께 드렸잖아요.

‘오늘 하루 그렇게 해봐야 되겠다. 밤에 잘 때까지 오늘 하루, 주여 오늘 하루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는 이길 수 있겠습니다.

계속 주님 생각하고, 주님 기뻐하실 일만 생각하고, 주님 어떻게 하는 게 기뻐하실까?

내가 지금 뭐 하는 게 주님이 기뻐하실 일일까?’

 

그것만 묻고, 그대로 하고, 너무 골치 아프면 그냥 자고...

왜요? 주님이 ‘그냥 자라. 쓸데없는 고민하고 있으면 그냥 자라’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주님께 오늘 하루를 정말 맡겼어요.

내일 일은 내일 주님이 하실 것으로 믿고... 그러면 알게 돼요.

그 한 걸음이 여러분의 영적인 삶에 엄청난 변화가 될 수 있어요.

 

주님께로 눈을 돌린 것만 가지고도,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미 주님은 여러분을 불꽃 같은 사랑의 눈으로 보고 계시니까요.

 

오늘 밤에 여러분이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렁에서 아 내가 벗어날 수 있겠구나’

‘주님은 능히 나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이 마음에 믿어지면 붙잡아야죠.

그건 성령이 아니하시면 주실 수 없는 거니까요.

 

조금 전까지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보시면 알아요.

‘내가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난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내 영혼이 끝나나 봐’

‘그 사람(배우자)은 안 변할 것 같아, 우리 가정은 이렇게 그냥 계속 갈 건가 봐..’

이게 정말 무서웠잖아요.

 

근데 내 생각이 바뀌었어요. ‘될 수 있겠구나’ 이건 엄청난 기적이라네요.

성령께서 엄청난 역사를 하신 거예요. 그걸 붙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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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위기에 처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로 응답해 주심.

 

삿6: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이때 하나님께서 딱 한 가지만 약속하세요.

‘걱정하지 마! 내가 네 팔뚝에 근육을 붙여줄게, 내가 군대를 붙여줄게,

내가 신무기 도입시켜 줄게, 아무 걱정하지 마, 군대 숫자를 늘려 줄게!’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어요.

 

어떤 조건을 증강시켜 주겠다는.. 어떤 벌어진 현실을 보완해 주겠다는..

그런 표피적이고, 증상만 해결리는 어떤 조건이나 옵션을 약속하지 않으셨어요.

 

6: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하나님의 약속은 뭐였어요?

‘걱정하지 마. 내가 군대 더 보태줄게.. 전차 동원시켜줄게..’가 아니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러니까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준비는 뭐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이것도 좀 하나님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고, 저것도 좀 하나님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고...’

그런데 그런 옵션들이 우리 신앙의 사실 본질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런 우리 니즈들을 외면해 가시면서,

허겁지겁 목말라 하는 우리에게

누구와 동행하는 법을 배우라는 겁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빈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현실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대안도 갖지 말아야 돼요.

 

하나님이 대안이에요. 하나님이 현실이고,

신앙은 밸런스 게임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신앙은 합리적인 것도 아니라고 그랬어요.

그냥 하나님께 엎어지는 거에요. 올인하는 거에요. 믿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