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차지하라 (2026-08-02) Youtube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차지하라 삿15:13~19 2026-08-02
우리는 계속해서 여호수아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내용적으로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2장까지는 '정복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마지막 24장까지는 ‘가나안 땅 분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전쟁이 쉬울까요? 땅 분배가 쉬울까요? 둘 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전쟁이 끝나면 다 끝날 것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러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는 한마음 되어서 전쟁을 치루었지만,
얻은 땅을 분배할 때는 서로 마음이 갈라져서, 더욱더 어려움을 겪었던 예를
우리는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예가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은 불과 10년 만에 그리스에서 인도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그 10년의 전쟁이 끝난 이후에 32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그는 죽게 됩니다.
죽는 그 순간, 땅 분배에 대한 원칙과 후계자를 명확히 세우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사망
사람들이 물어보았습니다. ‘누가 후계자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고 죽었습니다. ‘가장 강한 자에게..’
그 말을 들었던 수많은 장군들이, 본인들이 후계자라며 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죽이는 전쟁을 벌입니다.
이 전쟁이 흔히 말하는 ‘디아도코이 전쟁’입니다. 후계자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서 알렉산더 가문의 모든 가족은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요.
땅 분배와 관련된 전쟁을 40년간 치르게 됩니다.
땅을 얻는 데는 10년이면 족했는데, 얻은 땅을 분배한 데는 40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운데도 미약하나마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맞는 지인과 함께 창업하였습니다.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 다음에 분배와 역할을 정할 때, 마음이 갈라지곤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잘 모시고, 유산이 남았는데
그 유산을 나누는 과정 가운데, 가족 안에 수많은 아픔이 생기기도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아름다운 사명을 이루었어요.
그 사명을 이룬 다음에, 유독 한 두 사람만 주목받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의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죠.
무엇을 얻는 것도 힘들지만, 얻은 바를 분배할 때는, 더 큰 지혜가 필요한 법입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하여서, 본격적인 지파간의 땅 분배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지파는 유다지파, 그 가운데 갈렙의 가문입니다.
본문 가운데 수15:1~12절까지는, 유다지파의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수15:13~19절까지는, 그 유다지파 가운데 갈렙 가문에 대한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갈렙 가문의 땅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두 가지를 살펴볼 것인데요...
◑1. 첫 번째,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는 기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꼭 맞는 기업을 주십니다.
수15:1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여러분, 지금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본격적으로 땅을 분배하는데,
그 분배하는 방식이 뭐라고요?
그 땅을 분배하는 방법이 제비뽑기랍니다.
제비뽑기로 땅을 얻는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시겠어요?
‘아니, 그렇게 운에 맡겨서 땅을 분배해도 되는 것입니까?’ 라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땅 분배가 장난도 아니고, 행운권 뽑기 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한 번도 행운검 추첨에 당첨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교구 목사를 했을 때, 항상 학기 초가 되면,
교구 목사들이 함께 모여서, 한 학기 동안에 순장 모임을 진행하는 장소를
제비 뽑기 했습니다. 교회 가운데 여러 공간이 있고,
목사님 20명이 모여서 제비 통 안에 있는 것을 뽑으면, 거기 있는 지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잘못된 거 뽑잖아요.
그러면 한 학기 동안 거기서 순장님들과 함께 할 때마다, 눈초리가 장난 아닙니다.
심지어 좋은 장소를 뽑으면, 학기 시작 때부터 ‘신령한 목사님’이란 평가를 받고 시작합니다.
여러분, 제가 어떤 장소를 주로 뽑았을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처럼 땅을 분배할 때, 정말 제비뽑기 하듯이
‘운에 맡겨서 뽑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점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특별하게 사용하신 선택의 방식으로.. 제비뽑기를 정하신 것입니다.
이 제비뽑기 방식이, 교회의 일을 결정하는 모든 일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당대 가운데 정복한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는,
제비뽑기라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주무시다가 지금 깨어나셔서, ‘제비뽑기’라는 말만 들으시고,
여러분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제비뽑으시면 안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제비뽑기는, ‘나에게 주어진 땅의 거처를 정함에 있어서,
운에 맡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을,
제비를 뽑음으로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구나’ 라고 믿음으로 수납하는 방식으로
제비 뽑기를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비 뽑다’라는 히브리 단어를 살펴보면, ‘분깃, 기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제비’라는 말이, ‘분깃, 기업’인 것입니다. *히. 고랄, lot
그러니까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그 모든 기업은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이
지금 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잠16:33
단순히 행운권 추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하신 바를 믿음으로 받는 방법으로, 지금 이 방식을 선택하고 있어요.
▲그래서 땅 분배함에 있어서 제비뽑기,
특별히 분깃과 기업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제비뽑기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믿음의 고백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땅을 고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을 받겠습니다.
내 삶의 기업과 분깃을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겠습니다.’
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을 행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제비뽑기 방식이 아닌,
알렉산더처럼 ‘가장 강한 자가 좋은 땅을 취하라’고 한다면,
또 다른 ‘후계자 전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빼앗았던 모든 땅을, 힘의 논리에 따라서 힘 센 자가 좋은 땅을 독차지한다?’
그러면 땅을 정복한 의미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한 지파간의 힘이나 어떤 영향력에 의해서,
좋은 땅을 얻도록 하는 것을 막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주실 때, 그냥 무작위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민수기에서 땅을 어떻게 분배할지를 미리 정해 놓으셨어요.
민26:54~55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여기 보니까 제비뽑기 땅 분배의 두 가지 대원칙을 정해 놓았는데,
54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냐면,
‘하나님께서 지파의 인구 규모에 따라서 기업의 크기를 고려하셨다’는 것입니다.
55절은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받을지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파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갈 땅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에게 정해놓으신 그 땅, 그 기업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을 제비뽑기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믿음으로 기도하여, 제비를 뽑아서 그 땅이 주어진다면,
이 땅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주신 땅이다’
라고 믿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순간에 제비 뽑기라는 것은,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기업, 우리가 원하지 않는 분깃,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언짢은 마음이 생깁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한 겁니까?
그 사람과 나의 환경은 왜 다른 것입니까?
나에게는 왜 이런 재능을 주시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재능을 주었습니까?
내 인생은 마치 돛단배 위에 얹어진 것 같은데, 저 사람들은 왜 유람선을 타는 것 같습니까?’
이런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삶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품게 돼요.
‘내 인생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비 뽑기 하듯이 운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구나..
내 인생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그냥 되는 대로 운에 따라 되는 것 같다’
라는 불신앙적인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 내가 계획하지 않은 환경, 예상하지 못했던 아픔,
이별, 상처, 위기, 질병 등 ... 그것들을 만날 때마다
‘내 인생은 그냥 운처럼, 우연처럼, 그냥 그렇게 운명론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라는 왜곡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다시금 이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 인생은 우연히 흘러가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분명한 섭리 가운데 있는 줄 믿습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에이미 카마이클 이라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Amy Carmichael, 1867~1951
이 여자 어린아이는 눈동자가 갈색이었어요.
아일랜드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색이 아니고, 파란색 또는 초록색이었는데,
이 아이는 갈색이어서 잠들 때마다 기도하고 잠들었습니다.
‘하나님 제 눈을 푸른 빛이 돌게 만들어주세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갈색이죠.
매일 밤마다 기도하고, 매일 아침마다 거울을 확인했는데, 그때마다 실망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었어요.
그가 가기를 원했던 나라는 아프리카 혹은 중국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질적인 신경통이 있었어요. 선교사 인터뷰를 하던 중에 병명을 말하면,
그쪽은 위험하니깐 등등의 이유로 거절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가 원치 않은 인도 땅으로 가게 되었어요. *인도에서 55년 사역
원치 않은 신체적 조건(갈색 눈)을 가졌지만, 또한 원치 않는 선교지로 파송받은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리던 중에 한 가지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힌두교 사원 가운데 노예로 쓰임받고 있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성노리개로 사용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강한 도전을 받아요.
그래서 어떤 일을 향하냐면, 커피가루로 자기 온 몸을 까맣게 분장한 다음에,
힌두교 사원에 들어갈 때 쓰는 그 옷을 푹 뒤집어 쓰고, 그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하나씩 빼내 오기 시작합니다. 구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때 구출하는 동안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돼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눈빛이 푸른색으로 변했다면,
머리까지 스카프로 가려도, 눈동자 때문에 발각이 되었을 것인데,
그는 인도인들과 동일한 갈색 눈동자이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을 깨달은 것이냐면, 하나님께서는 에이미 카마이클의 사명을 미리 분명히 아시고,
그에게 맞는 신체적 조건들과, 그에게 맞는 인도 사역을 맡겨주셔서,
그녀가 살아가는 동안에 1천 여 명의 아이들을 구출해내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나 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세요.
모든 지파가 동일한 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모든 지파가 그들에게 딱 맞는 땅을 받게 되었어요.
그러니 여러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비 lot 처럼, 랜덤하게 던져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운데, 우리가 여전히 살아가고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믿음으로 차지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셨다는 것과, 그 기업을 온전히 차지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그 약속하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은..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약속하셨어요.
그런데 헤브론 땅은 비어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은 여전히 적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믿어서, 저절로 얻는 땅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나아가 믿음으로 싸워 얻어야 하는 땅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믿은 자들의 믿음의 순종이 더해져서
그 땅을 온전히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15:13~14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여기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헤브론 땅은 비어있는 땅이 아니었죠. 그곳에 아낙 자손들이 있었어요. *거인족
그리고 아낙 자손들의 후손이 되는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가 역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전쟁을 통하여, 비로소 그 땅을 온전히 얻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만이, ’그 땅이 내 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영적인 전쟁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게 주어졌지만,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하고, 내가 누리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나아가 그 땅에서 영적 전쟁을 벌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1862년 5월 20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홈스테드 법’이라는 법안을 서명했습니다.
홈스테드 법은 (Homestead Act) 자영농지법을 뜻합니다.
이는 미국 서부 개척 시기에 미개발 공공토지를
5년간 경작할 조건으로 무상 양도한 역사적 법률입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21살 이상의 사람들 혹은 이주민들 전부 다 포함해서,
서부에 있는 땅 공유지 20만 평을, 각 가정마다 나누어 주는 법안입니다.
놀라지도 않으시는데, 한 가정당 20만 평입니다.
그런데 그 땅의 소유권이 온전히 주어지는 것은, 5년이 더 지나야 돼요.
그 땅을 얻기 위해서는 서류값 18달러만 내면 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어요.
그 땅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살면서, 땅을 경작해야만 합니다.
이 땅을 얻기 위해서는 서류값 18달러만 내면 됩니다.
그러면 160에이커 땅이 그냥 곧바로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서명하고 들어가면, 그 땅에서 살 수가 있는데,
5년 동안 집을 짓고 경작해야 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서, 이웃 주민 두 명을 증인으로 세워서,
‘이 사람은 정말 5년 동안 여기서 살았고 땅을 경작했습니다’ 라고 입증하면,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이 온전히 넘어오는 거예요. 당시 황무지였던 서부 계발 프로젝트였죠.
이 홈스테드 법은 그 후 123년 동안 유지되었고, 30개 주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약 400만 명의 사람들이 신청했어요.
미국의 전 국토 가운데 1/10이 이 법으로 얻은 땅들이 되었습니다.
거대한 땅을 무상으로 나눠주었죠.
그런데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한 사람은 50%가 채 안 됩니다.
5년이 지나는 동안에, 그 땅을 경작하는 동안에 다가왔던 노동의 어려움,
가뭄, 혹한, 외로움,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50% 이상의 사람들이 그 땅을 이탈해버린 것입니다.
결국 끝까지 5년 동안 남아있던 사람들,
약속을 받았지만, 그 땅이 내 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땅에서 땀 흘려 경작하며 생존했던 사람들에게만, 그 땅이 주어졌던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과 땅을 주시지만,
그 영역을 온전히 누리기까지는,
‘이곳이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땀을 흘리는.. 믿음의 수고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대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고 해서, 졸업장이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시험과 과정들을 통과해야 됩니다.
회사에서 직책을 맡았다고 해서, 부서가 자연히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직책에 어울리는 그 일을 감당해야만, 부서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결혼식을 올려서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지만, 결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더 사랑하고, 여전히 더 알아가고, 여전히 서로 인내하고 사랑할 때,
그 결혼이 완성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삶을 허락해 주셨어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땅과 기업과 분깃이 다릅니다. 삶의 무대나 배경이 다릅니다.
가정이 다릅니다. 직업이 다릅니다. 가진 재능들이 다릅니다.
남의 것을 보면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나의 기업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그곳에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믿음의 수고를 다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음 세대를 키운 갈렙
갈렙의 또 위대한 면은 어디에 있냐면,
그는 자기 혼자서 그 모든 땅을 점령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산을 함께 점령할 사람을 초청합니다.
15: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은 땅을 점령하는 가운데,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기럇 세벨이라는 땅이 있는데,
그 땅을 누구든지 점령하면 내 딸 악사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위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죠.
아니 갈렙은 왜 갑자기 이와 같은 제안을 하고 있을까요?
그가 헤브론 땅을 점령하고 나니까, 온 힘이 다 빠져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이제 85세가 좀 넘어갖고, 더 이상 전쟁에 못 나가니까
자기를 대신해서 싸울 사람을 찾고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갈렙은 여전히 싸울 수 있었어요. 여전히 기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갈렙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면,
‘내가 그 산지 가운데 경험했던 그 하나님의 능력을
나와 같이 경험할 다음 세대를 세워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나 혼자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산지 전쟁터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그 놀란 은혜를
다음 세대 누군가가 경험하기를 원해서, 그 거친 산지(기럇 세벨)를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갈렙은 지금 은혜를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세워주려고 하는 거예요.
15: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그 순간에 옷니엘이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손을 듭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보니까, 그곳을 어떻게 점령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어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면, 옷니엘의 힘으로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즉 옷니엘은 갈렙처럼 믿음으로 나아갔고,
갈렙이 그러했듯이 자기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성 기럇 세벨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옷니엘이 누구냐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사사시대가 시작되는데
그 사사시대 가운데 첫 번째 사사가 옷니엘입니다.
삿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옷니엘은 첫 번째 사사가 되는데, 그는 어느 날 하루 아침에 갑자기 등장하지 않았어요.
그는 갈렙이 준비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첫 번째 사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주어졌던 첫 번째 산지 기럇 세벨을 믿음으로 점령하여
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가운데 부모가 있다면,
부모인 우리가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자녀들에게 좋은 분깃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경험할 산지를 남기는 겁니다. ★
푸른 초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험한 산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싸울 그 사명, 그 비전, 그 믿음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녀 세대 역시, 부모 세대가 떠난 이후에도,
그들에게 주어진 땅이 푸른 초장이든 거친 산지이든 상관없이,
그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사명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갈렙의 딸 악사는 옷니엘의 아내가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옷니엘과 악사는 출가하게 됩니다.
출가할 때 아버지가 네겝을 주었어요.
15: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삿1:15참조
네겝은 남쪽이란 뜻인데, 거기는 광야입니다.
이제 옷니엘과 악사가 결혼하여 출가하게 되는데
자신의 사랑하는 딸에게 푸른 초장이 아니라, 광야를 주었어요.
더군다나 옷니엘이 누굽니까? 그는 기럇 세벨을 점령한 장군인데,
그를 악사와 결혼시킨 이후에, 그 땅을 준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갈렙은.. 사랑하는 딸에게, 좋은 땅이 아니라, 거친 땅을 주었어요.
왜 갈렙은 딸 부부에게 거친 광야를 주었을까요?
왜 좋은 땅을 주길 원치 않았을까요?
그들의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만난 곳이 광야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곳도 광야이고,
갈렙 자신 역시 광야를 통과하여 이곳 가운데 들어왔기에,
아버지 갈렙 생각에 ‘딸에게 가장 좋은 곳’을 넘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편안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그 환경을 넘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광야의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너희들 역시 광야의 사람 되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 라는 그 마음으로
지금 딸을 광야(네겝)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갈렙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부모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부모였어요.
광야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그곳에서 자녀가 하나님을 만날 그것을 꿈꾸며,
자녀를 거기로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 땅을 받았던 악사 딸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게 뭡니까? 좋은 거 주세요. 제가 거기서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이렇게 불평하지 않았죠.
악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샘물도 내게 주소서’ :19
자기가 받은 기업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아요. 부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무엇을 요구합니까?
그 거친 땅을 일궈나갈 샘물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친 광야 땅이지만, 샘물의 물을 길어서, 그 땅을 개간하고, 경작하고, 개척하겠다는 것이죠.
자기에게 주어진 기업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현실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기업을 아름답게 가꿀 샘물을 구합니다.
믿음은 받은 것을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잘 감당하기 위한 ‘은혜’(gift)를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받은 것을 잘 감당하기 위한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샘물
우리의 기도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현실을 바꿔달라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이 환경이 아니라, 저 환경을 주시옵소서
이 일터가 아니라, 저 일터를 주시옵소서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주시옵소서'
물론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도 하시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은 환경을 바꾸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통과할 힘을 주십니다.
광야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광야 가운데 마실 샘을 주십니다.
문제를 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돌파할 능력과 지혜를 주십니다.
사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바울 역시 자신의 인생 가운데 주어진 가시가 없어지기를 세 번이나 기도했어요.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은, 딱 세 번 기도했다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40일 작정 기도를 세 번 했다는 말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고린도후서 12:9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아멘!
하나님께서 바울의 인생을 바꿔놓으신 것이 아니라,
그 인생 속에서 온전해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여러분 그 은혜를, 그 샘을 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주어진 그 환경을 돌파하기 위한 신선한 샘물, 그 은혜를 구할 수 있기를 축복해요.
그러자 갈렙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19절 하반절을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딸 악사가 샘물 하나를 구했는데, 갈렙은 샘물 두 개를 주었습니다.
윗샘과 아랫샘 전부를 주었어요.
우리 하나님은 인색한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구하십시오. 후히 주시고 넉넉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힘이 부족하면 성령의 공급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길을 헤매면,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메마른 땅가운데 지금 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거든, 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세요.
그때 그곳에서 오아시스 같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여전히 넉넉히 살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제가 본문 말씀을 묵상하는데, 이 옷니엘-악사의 가정이 정말 부러웠어요.
놀라운 가정 아닌가요?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
그 아버지는 40년간,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지를 내려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고 구해서, 결국 그 헤브론 산지를 차지합니다.
그 ‘산지의 영성’이 있었던 아버지는, 딸에게 척박한 ‘광야’를 넘겨줍니다.
좋은 땅을 주지 않았어요.
그 광야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만든 거죠. 그 아버지에 그 딸입니다.
딸 악사는, 광야를 기업으로 받고 샘물을 구합니다.
그리고 옷니엘이라고 하는 믿음의 남편을 얻게 돼요.
그리고 옷니엘은 여호수아 죽음 이후에, 이스라엘의 사사기 시대를 이끄는
첫 번째 리더가 됩니다. 우리 가정이 그런 가정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갈렙같은 부모 세대, 옷니엘과 악사같은 자녀 세대,
그들이 함께 써내려가는, 끊임 없는 하나님의 역사의 스토리!
그것이 가득한 우리들의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한테 세상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 많은 이력서를 쌓아두는 가정, 그것도 은혜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정까지 역사하신 하나님의 그 위대한 거대한 은혜의 물줄기가
여전히 흘러가는 복된 가정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갈렙처럼 산지를 품으십시오.
옷니엘처럼 기럇 세벨을 향하여 올라가십시오.
악사처럼 광야를 품으십시오.
그때 갈렙에게 믿음을 주셨고, 옷니엘에게 능력을 주셨으며, 악사에게 샘물을 주셨어요.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8월 한 달을 살아가는 동안에
더욱더 뜨거운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 믿음 담아서 ‘믿음으로 서리라’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