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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6장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라

LNCK 2026. 8. 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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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라 (딤전 6:11-21) 2026.07.26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라          딤전6:11-21               2026.07.26.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라 디모데전서 17번째 시간이고 마지막 강의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부탁을 하는 내용입니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성경에 많은 호칭이 있고, 세상에 많은 직함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 A man of God'

이 표현만큼 영광스러운 칭호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직함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인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세상 지위나 역할로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만 설명되는 인생인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린 사람들을 이번에 좀 찾아보니까,

신명기 33장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신33:1

 

또 청년 사울의 시종이 사울에게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삼상9:6

이렇게 얘기를 해요.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였죠.

 

그리고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를 기억할 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을 했었다' 이야기를 합니다. 대하8:14

 

열왕기하에 보면 아합의 신하 한 사람이 엘리야를 향해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이렇게 부릅니다. 왕하1:9, 11, 13

 

여러분 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는

정말 성경에서도 아주 대표적인 인물들에게 붙었던 호칭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평생을 살고 나서, 우리의 묘비에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잠들다’

그런 글귀가 남게 된다면, 얼마나 귀한 인생을 산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본문 11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그리고 나서 바울은 두 가지 명령을 했는데, 동사 두 개를 말합니다. ‘피하고. 따르라’

그 두 가지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피하라’는 것은, 절제해야 될 것을 얘기하는 것이고,

‘따르라’는 것은 추구할 것을 얘기한 겁니다.

 

세상 자랑, 세상 영광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절제하고,

여섯 가지를 따르라(추구하라) 그랬는데,

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상당히 논리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이 그냥 아무 단어나 던진 게 아니라,

분명히 논리적인 일관성이 있을 텐데, ‘도대체 왜 이 여섯 가지일까?’

이번에 좀 곰곰이 묵상을 해봤습니다.

 

‘의’라는 것이, 공의나 정의를 뜻하는 justice라는 단어로 번역이 될 때는 사회적 정의죠.

그런데 righteousness로 번역될 때는 내면적인 성품이에요.

내 안의 진실됨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 바르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성향입니다.

(주로 righteousness 로 번역하는데, 간혹 justice 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찬에게 ‘의’는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로부터 오는 것이죠?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덧입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고, 닮아가는 경건으로부터 ‘의’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의’와 의의의 출처인 ‘경건’을 얘기했고,

경건 다음에 3덕이 나옵니다. 여러분 크리스찬의 3덕은 믿음, 사랑, 소망이잖아요.

본문에 소망이 대신에 뭐라고 써 있어요? ‘인내’

 

그래서 왜 인내냐? 소망은 인내를 낳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인내’는, ‘소망’이라는 단어와 동의적 개념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경건한 사람은 세 가지 삼덕의 열매를 맺게 돼 있고,

그리고 그 세 가지가 이루어진 온전히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평안이 다른 사람들을 넉넉하게 받아줄 수 있는 ‘온유’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에는 경건과 삼덕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해지고,

그리고 온유를 통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해질 때,

하나님의 의가, 그 사람의 성품과 삶이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같이 외워보실까요? 경건믿음사랑인내온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축복해주고 권면한 이 여섯 가지 성품이

저와 여러분 안에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12절에 두 가지 명령을 더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확한 정체성,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져야 되는

내적 성품 여섯 가지, 이게 이제 분명하게 세워지고 나니까,

그 다음 12절에 두 가지 명령을 했는데, “싸우라, 취하라”

 

그러니까 11절에 나오는 정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동적인,

180도 다른 명령을 내렸어요.

 

자 그래서 11절과 12절이 이렇게 이어진 이유는

내면의 정체성의 싸움, 그리고 내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성품의 싸움,

이 부분에서 분명히 승리를 해야만,

비로소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모세가 여러분 젊은 시절엔 혈기가 가득했잖아요.

그래서 자기 동족을 구한다고 또 이집트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온유가 내 안에 없으니까,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무런 존재가 아니구나’

그후 40년 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죠.

 

그래서 ‘나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 정체성이 명확해지고,

하나님의 성품인 온유가 그 안에 이루어지게 되니까,

비로소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타이밍이 오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여름캠프를 요즘 한참 하고 있는데

여름캠프와 주일학교를 통해서 ‘내가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 내 삶에 새겨지게 되면,

비로소 세상과의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그 사람이 정체성도 명확하지 않아요.

이런 여섯 가지 성품도 명확하지 않아요.

그런데 실력만 있으면 세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실력이라든지 성적이라든지 공부 이런 걸로 애들 계속 압박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의 진흙탕 싸움에 빠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바르게 가기를 정말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이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저를 따라해보세요.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아멘!

 

‘하나님, 우리 안에 이 정체성이 명확하게 해주시고

이 성품이 분명하게 자리잡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이런 준비가 되지 않으면, 어리석은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또 악한 싸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소속을 분명하게 하고, 내공이 쌓이고 나면,

비로소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주에 2004년도 영화 '맨 온 파이어'라는 영화를 보게 됐어요.

그래서 아주 옛날 영화이긴 한데, 안 보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결말을 얘기를 할 거니까, 스포를 주의하시고...

(결말을 알면, 나중에 영화 볼 때 재미가 없어지는 것을 주의하시고..)

 

여기 덴젤 워싱턴하고, 다코타 페닝이 주연을 맡았는데

덴젤 워싱턴이 ‘크리시’라는 인물로 나옵니다.

존 크리시 John Creasy 는 전직 CIA 암살 요원이자 해병대 출신 경호원으로,

납치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무자비한 복수를 시작하는 인물이에요.

 

전직 특수요원으로 여러 차례 국가 기관에서 진행하는 미션을 수행하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자책감과 우울증에 빠져서, 알콜 중독에 걸린 사람으로 나와요.

 

생계를 위해서 멕시코에 있는 한 기업인의 어린 딸을 경호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간성을 점점 회복하게 되고, 삶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인신매매 조직이 이 어린 소녀를 납치하면서

주인공이 총 4방을 맞았고 거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

 

그 후 이 주인공이 조직원들을 차례로 소탕하다가,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냥 일반 액션 영화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 마지막 선택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이 소녀의 목숨을 건지는 거였어요.

 

평생을 ‘내가 왜 이 싸움을 싸워야 되는지’ 모르면서 살았던 거에요.

작전 가운데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되기 때문에

정말 때로는 처절하게, 비열하게 싸웠던 거예요.

 

그런 악한 싸움을 싸우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찾게 되고,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된 이후에, 정말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되는

그런 인생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잠이 안 오실 때 보시면, 엄청 감동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세상에서 무한 경쟁을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전투적으로 살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미친듯이 일하고 있을까?’

이유도 모른 채, 신념도 철학도 없이,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마다 여러분 우리 영혼의 원점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러분, 이 고백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하나님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런데 12절에 나오는 ‘선한 싸움’이라는 표현이,

원어상으로 보니까 ‘전쟁을 치른다’는 개념보다는, ‘경기에 나간다’는 개념이에요.

시합에 나가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서 승리를 위해 경기를 해야 됩니다.

 

자 이제 경기 얘기가 나왔으니까, 지난달에 끝난 월드컵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국가 대표들이 싸우는 A매치 경기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어려웠었잖아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그런데 다른 나라들의 8, 4, 결승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느낀 결정적인 차이점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도, 목숨 걸고 싸운다는 거에요.

그게 경기에 임하는 사람의 자세인 거죠.

 

여러분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 중심 사회가 돼서 ‘능력을 키워라’

자녀의 실력을 키워주려고 부모가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런데 그러다가 마음이 깨지고, 그러다가 신앙을 잃어버려요. 자 그럼 뭐가 우선순위일까요?

 

여러분, 실력이 있어도,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안 하고, 다 포기하는 애들이 많아요.

실력은 있는데, 신앙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철학과 방향성을 상실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거(내면)는 뒷전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내면적 신앙)은 후순위로 두고

외적인 실력, 능력 등 세상이 요구하는 우선순위에, 우리 자신도 경도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안에서 내면의 힘(내공)을 키우고, 영력을 키우면,

필요한 능력과 실력은 주께서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정말 청소년 때, 정말 전투력이 없던 사람이거든요.

우울증에, 내향형에, 또 생각만 많은 T 유형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 구원의 감격을 체험하고 나서, 제 안에 놀라운 뭐랄까요?

‘내 안에 이런 야성이 있었나? 내 안에 이런 전투력이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내적인 힘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건 뭐냐면, 나도 원수의 거짓말에 너무나 많이 속아봤기 때문에,

그 원수의 거짓말에 속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 제가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래서 원수의 궤계를 파하고, 이 사람들을 다시 건져내고 싶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고 싶은.. 그런 열망이 생깁니다.

 

제가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데,

이제 전투력이 너무 올라오다 보니까,

제가 교역자들을 대부분 열정형 유형들을 뽑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일주일에 한 번씩 운동을 할 때,

사실 매주 운동을 하다 보면 서로의 실력은 다 알잖아요.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가?’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달에 [오픈 워십]에 청주 상당교회 안광복 목사님이 오셨어요.

메시지를 해주셨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시면서 제가 배웅을 했는데,

‘가을에 교육자들을 데리고 청주에 놀러오라고.. 함께 축구를 하자고...’

그 말이 제 가슴에 불을 질러서,

안 목사님이 축구를 비롯해서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스포츠맨 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낮에는 집필을 하고, 또 저녁에는 체력단련도 하고,

제가 한 여름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마11:12절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여기서 ‘침노한다’는 것은, 성을 공략하듯이, 전쟁을 치르듯이,

그렇게 파이팅을 해야 된다.. 이 얘기를 하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예화로 ‘세계 3대 대전’, ‘중국사 3대 대전’ 이런 것도 찾아보다가,
그래도 ‘한국사가 더 적합하겠다’ 싶어서, ‘한국사 3대 대전’ 찾아봤어요.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을 들더라고요.

(근데 저는 한산도보다 명량이 더 감동이 있는데...)

 

살수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나라가 당시에 1차 침공에 실패하고 2차 침공을 했을 때,

그때 110만 명이 왔는데, 그중에서 30만 명을 살수(청천강)에서 이 사람들을 쳐서

수천 명밖에 도망가지 못했어요. 엄청난 대승이었죠.

 

귀주대첩은..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거란군은 3차 때였어요.  *평북 구성

1차 2차 실패를 했는데도 포기를 안 하고 3차 때 침공한 10만 명의 거란군을

귀주에서 전멸을 시킵니다.

 

한산대첩은..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넓은 바다에서 학익진 전술로 적을 포위해 대승을 거둔

공격형 해전이며, 명량대첩은 13척의 배로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130여 척의 적을 막아낸 방어형 기적의 해전이죠.

 

여러분, 전쟁에 임할 때 어떤 마음인가요?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거예요.

승리하지 못하면 내가 패하는 거예요.

과연 우리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내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가요?

 

△저와 여러분이 선한 싸움을 싸우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끊임없이 역풍이 불어오잖아요.

원수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잖아요.

 

또 사람들은.. 여러분이 열심히 살면, ‘뭐 그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냐?’

이렇게 또 훼방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 마음이 초점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유약해질 때가 있죠.

 

그래도 여러분,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될 이유가 뭔가요?

오늘 11절에서 두 가지 명령을 했고, *“피하고, 따르며”

12절에서 두 가지 명령을 했는데,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마지막 네 번째 명령이 뭐였어요? ‘영생을 취하라’

 

주님 앞에 서는 그 지점까지, 여러분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날 우리가 천성문 앞에 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음성을 주님께 들을 수만 있다면, 우리 평생의 시름이 다 녹지 않겠어요?

 

이번 여름에 캠프 사역을 하는 것도,

또 청년들이 지금 일본 큐슈 오이타에 갔는데,

오이타와 제주도 아웃리치를 가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도,

또 공동체마다 도시정탐 사역을 하는 것도... 다 선한 싸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수는 어떻게든 한 영혼을 방황하게 만들고, 멸망시키려는 거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든 한 영혼을 주님께로 돌이키고, 살려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선한 싸움을 싸울 때, 하나님의 승리가 여러분에게 체험되기를 축복합니다.

 

◑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길게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이 명령을 한다’

그림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지존자가 왕좌에 앉아계시고, 그 앞에서 글쎄요.

사역의 작전 통수권을 갖고 있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라는 장수에게 군령을 내리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이에요.

 

제가 삼국지를 좋아해서, 요즘 틈틈이 다시 읽고 있는데,

여러분 군인에게 군령이라는 것은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군령에 순종하지를 않으면, 이행하지 않으면.. 목숨을 내놔야 돼요.

 

그리고 군령을 완수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겁니다.

그렇게 지금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

이 정도의 무게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14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라는

재림을 얘기하는 겁니다.

‘재림의 그날까지 흠도 없고 책망할 것도 없이, 이걸 감당해야 된다..’

 

그런데 저는 이제 의문이 드는 거예요.

아니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됐을지라도, 아직 성화의 과정 중인데,

흠도 하나도 없고, 책망을 들을 것도 하나도 없이 산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여러분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않잖아요. :14

그럼 사도바울은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요?

 

여기 ‘흠이 없다’라는 이 표현은, 구약의 레위기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표현이죠.

‘흠 없는 제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된다..

 

로마서 12:1절에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래서 우리가 이 성전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평소에 여러분의 일상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는 결단을 하시라는 거예요.

 

제가 이제 여덟 번째 책을 쓰고 있는데요. 그런데 책을 계속 쓰다 보니까

사람들이 당연히 ‘쓰시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책을 쓰는 게 에너지가 엄청나게 빠집니다.

그런데 7월 말까지 써서 탈고를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거의 밤늦게까지 12시, 1시, 2시까지도 썼는데, 제가 이제 간혹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 나는 공생애를 살고 있다.. 공생애를 살고 있다...’

 

저를 한번 따라해 보세요. ‘내 인생은 하나님께 바쳐진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에 상관없고, 여러분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든 상관없어요.
여러분은 ‘나의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미 마음의 결단과 고백을 하고 사느냐?’

이 방향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면, 자꾸 세상에 기웃거리게 돼있어요.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엉뚱하게 한 데 가 있고,

시선도 엉뚱한 데 가 있는... 그렇게 인생을 살다 보면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충실하지 못하고,

자기 일에도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영혼의 무게중심을 낮추고, 먼저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헌신하기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20~ 30년 살아보면 다 알게 되는 거예요.

40~ 50년 살면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세상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예요.

 

우리가 아는 ‘세상 자랑’ .. 그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정말 인생을 가치 있게 산다는 게 뭘까요?

한 번 주신 생명을 쏟아 부을 만큼 가치 있는 게 뭘까요?

 

그것은 지존자 되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상대적이잖아요.

세상 자랑은 다 상대적이잖아요.

유일한 절대자이시고 지존자이신 그분께, 내 인생을 헌신하며 사는 거예요.

이게 나의 결단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나의 존재 이유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존재 이유를 놓고 고민하거나, 이 존재 이유로 돌아오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인생이 방황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빨리 결단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사도 바울이 15절과 16절에...

아까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명령한다’ 해놓고 나서, :13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얘기하고 있어요.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주님의 재림, 종말의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 재림의 날에는 분명히 알겠지만,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복되신 분이시고, 인생과 역사의 유일한 주관자가 되시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불멸의 존재이시라는 거에요.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다, 범접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존재하시는 분,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비가시적인 존재라는 거예요.

 

‘가시적인 세상을 창조하신 그분은, 아무도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분이다.

그분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자 그런데 갑자기 사도 바울이 이 얘기를 여기 왜 했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는 걸 디모데가 모르나요? 디모데는 이미 잘 알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왜 했을까요?

 

사실 이 설교의 제목을 정할 때, 보통은 여러분, 이 본문으로 설교 제목 정하면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정해요.

‘파이팅 하십시오!’ 뭐 이렇게 설교 제목으로 정하기에 가장 좋죠. 눈에 확 띄고...

 

근데 저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냥 지나가는 이 구절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설교 제목을 정한 거예요.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라”

 

왜냐하면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요. 내게 사명이 있어요.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존재의 이유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거를 외면하며 살 때가 많다고요.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흠이 생기고, 책망들을 일들이 생기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망각하고 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내 영혼의 초점을 상실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세상 잣대로 자신을 바라보고..

초라한 나 자신, 결핍의 나 자신을 묵상하며 살고 그렇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의 시선을 주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현존의식(코람데오)이 명확해져야만, 인생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명령을 딱 두 절 얘기하고 :11~12

하나님 앞에 하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누구신 줄 아느냐?’ 이 얘기를 오히려 4절 했어요.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13~16

 

여러분, 이 예배의 자리가 정말 소중한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찬양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우리의 잃어버렸던 초점을

하나님께 다시 맞추는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자,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면, 인생을 어떻게 살게 되느냐?

마지막 두 가지 권면인데요. 17절에서 19절 같이 읽겠습니다.

 

◑6:17~19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지난 주에 ‘부하려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있었는데,

오늘 본문 17절에 다시 나옵니다.

 

17절은 ‘부하려 하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들에게 명령합니다.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 갖지 말고,

정함이 없는,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넉넉하신 하나님, 후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둬야 된다’

 

그렇다면 18절 말씀의 세 가지 표현이, 다 똑같은 표현인데,

결국엔 ‘당신에게 주신 물질로 선한 사업을 하면서 살라’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의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다.. 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 제 마음가운데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부분이 있어서, 간증을 좀 하면

저희가 [리조이스 캠프]를 올해 3년 차 하면서,

서울 외 지역은 올 초에 ‘부산 장신’을 처음 했습니다. *신학교

 

작년 10월에 부산장신을 가보니까, 그 강당 1층, 2층에 옛날식 변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아직도 이렇게 열악하게 지내는 신학생들이 있구나’

그래서 이걸 얘기를 했더니 한 분이 기꺼이 헌금을 하셔서, 새 걸로 다 교체를 해드렸어요.

학생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또 그 신학생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그런데 내년 연초에 [리조이스 캠프]는 ‘대전 신대’에서도 하기로 했거든요.

대전 중부지역 대전 신대를 갔는데, 여기도 옛날식 변기들이 아직 있더라고요.

 

제가 일단 도착하면, 교역자들한테 ‘화장실로 가보시라고’ 먼저 화장실로 보내거든요.

그래서 여기도 한 분 성도님이 기쁘게 헌신을 하셔가지고, 공사를 이미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3주 전에 광주를 갔어요. 광주에 ‘호남신학대학교’가 있는데,

호남신대는 제가 한 10여 년 전에, 대강당 예배실에서 집회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한 600석 정도 되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몇십 년 된 장의자가 아직도 있더라고요. 다 낡아서 휘어지고...

 

그래서 딱 보는 순간 ‘딱 600석?’

‘성심 지하 1층에 비전홀에 있는 600개 의자를 보내드리면 너무 좋겠다’

이런 선한 생각이 났어요. 할렐루야!

 

우리 장로님들이 동의를 하셨고, 호남신학교에서 기쁘게 받아주시기로 했고,

여러분 저희가 이사를 하면서, 사실 어디다가 둘 자리가 없기 때문에,

비전홀 600개 의자가 거의 새 거예요. 근데 이거 어디 창고에 넣어놔야 될 상황이거든요.

창고에 몇 년 놔두면, 사실 못 쓰게 됩니다. 그래서 600개 의자를 이번에 보내드리게 됐고,

 

또 거기 예배실 입구에 있는 기도실이 몇 십 년 동안 그냥 냉방이에요.

사계절 냉방 기도실이에요. 그래서 냉난방 공사까지 해드리기로 했어요.

이것도 성도님들이 헌신해서 해주신 거예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희가 답사를 갔을 때, 호남신학교의 시설 담당자가 나와서, 저희에게 다 보여주시고,

‘제가 교회와 상의를 해야만 최종 결정을 알려드릴 수 있겠지만,

의자를 보내드리고 싶고, 기도실을 수리해드리고 싶어요.’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믿습니다.

기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아낌없이 선한 사업을 하는 것,

이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 일인지요...

 

서울 광장동에 있는 장신대, 또 경기도 광주에 있는 서울 장신대,

정말 좋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모여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부산에 있는 부산 장신, 대전신대, 대구에 있는 영남신대, 전주에 있는 한일장신,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교 등 모든 신학교들이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곳에서 정말 다음 세대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좋은 목회자들과 설교자들과

예배사역자들과 청소년 사역자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겁니다.

그냥 우리가 잘 되자고 하는 것은, 그건 개인 사업과 다를 게 없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아름답게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6:20~21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제가 이걸 보면서 다른 사도바울의 서신들과 달리,

마지막 인삿말이 인삿말이 아니라, 거의 잔소리 수준이에요.

앞에서 다 했던 얘기거든요. 근데 왜 잔소리를 또 했을까요?

 

아비가 된 사도바울의 심정에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너도 잘못되면 안 된다. 너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된다.

그러나 너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저를 따라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있을지어다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바, 제 삶의 태도이기도 한데,

여러분의 삶의 태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따라해보세요.

나의 최선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가는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 근심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이에요.

은혜를 구하세요. 그러나 은혜로 이루어질 거라고 아무 노력을 안 하고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부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오늘 사도 바울이 유약한 디모데에게
야 너 파이팅을 해야지.. 선한 싸움을 싸워야지..’ 이 얘기를 하는 내용인데,

왜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했는가요?

하나님을 주목하는 그 시선을 놓치게 되면 흔들리게 돼 있어요. 무너지게 돼 있어요.

타협하게 돼 있어요.

 

여러분의 영혼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시선”이라는 찬양을 부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