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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장 마음은 내 책임 몸은 예수님 책임

LNCK 2026. 8. 9.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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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1-27 마음은 내 책임 몸은 예수님 책임 Youtube

 

◈마음은 내 책임 몸은 예수님 책임    마8:14~17, 갈3:27      2025.11.11.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그 마을에서 많은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십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에 느닷없이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덧붙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사53:4, 마8:17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구절을,

우리는 그냥 예수님이 우리 몸의 약함과 질병을 고쳐주신 것으로 이해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함을 고쳐주셨다’는 말과, ‘연약함을 담당하셨다’는 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병을 고쳐주셨다’는 것과,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도 역시 다른 의미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연약하고 질병이 발생하는 우리의 몸을

우리 마음에서 떼어내어, 예수님께서 책임지시고 담당하실 일로 가져가셨다는 뜻입니다.

 

그동안은 우리 몸의 연약함과 질병이 발생하면,

그 고통을 우리 마음이 고스란히 담당하였다는 것이지요.

 

우리 마음은 늘 몸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상황을 끼어 안은 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고스란히 다 졌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마음이 우리 몸에 달라붙어서

스스로 몸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일어난 일은, 내 몸과 내 마음을 서로 떼어내신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분리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하십니다.

 

골로새서 2:11절을 보면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그리고 이 내용을 다시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등에서는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로 옷 입음’이라고 하십니다. 갈3:27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믿는 사람 모두에게, ‘내 마음이 입을 옷’으로 제공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여 부활에 이르는 중에

내 육의 몸을 벗고, 대신에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을 입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하신 사건도, 같은 맥락의 의미를 가집니다.

 

열병이 상징하는 상태가 무엇일까요?

마음이 몸에 붙어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상황을 상징합니다.

 

마음은 자기 안에 공백이 있잖아요. 이 공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크기의 공백입니다.

(원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담겨져 있었다는 뜻)

하나님 있음에 대한 존재감과, 하나님 좋음으로 인한 만족감이 있어야만 채워질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타락 후, 인간의 마음이 영이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자기 육체에 밀착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철저히 육체에 의존합니다.

 

내 육체의 오감으로 포착되는 대상으로, 내 배를 채워야만 하기에

이제 내 마음은 육체를 주인처럼 섬기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육체의 오감이 포착하는 대상 중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있음과, 하나님의 좋음의 크기를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주인처럼 섬기면서 마음을 채우려는 모든 시도와 노력과 수고는

제자리에서 헛바퀴만 도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실효성 없는 채움의 시도를 평생 하느라,

탈진된 마음의 상태를 오늘 본문은 열병으로 상징합니다.

 

(적어도 예수님이 그저 고열이 나는 질병을 고쳐주셨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의 원래 기록 목적은 아닌 거죠. 소경이 눈을 뜬 얘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예수님께 치유받은 베드로 장모가 ‘예수님을 수종 들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수종 들었다는 말씀은 주인으로 섬겼다는 뜻입니다.

 

즉, 단순히 예수님의 물리적인 필요를 채워드렸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공백을 채워야 하는 그 마음이,

자기 몸을 주인으로 섬기는 대신에,

예수님에게 밀착하였음을 뜻합니다. (자기 마음에 예수님으로 채워넣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자기 몸에 밀착하면,

하나님 크기의 마음 공백을, 이 세상 것으로 채우려고 안간힘을 씀으로써,

헛바퀴를 돌며 ‘열병에 걸린다’ 그랬어요.

 

그러나 내 마음이 예수님께 밀착하면,

이제 예수님은 그 마음을 이끌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여 가십니다.

 

예수님께 밀착한 모든 마음은, 천국 보좌까지 같이 감으로써 마주하게 되는

하나님 자신으로, 자기의 마음을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열병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는 거예요.

 

이제 그러고 나면, 이 땅 위에 남은 몸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 연약함을 떠맡으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의 의미대로, 사53:4, 마8:17

 

내 마음을 하나님께로 끌고 가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남아있는 내 몸도 역시 떠맡으십니다.

즉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대로,

그 예수님의 자리로, 예수님이 보내시는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내 몸을 떠 맡으시고 책임지시며, 이끌어 가신다는 겁니다.

 

잊지 마십시다. 24시간 깨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야 하는 내 책임은,

내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밀착시키는 일이고,

그래서 ‘예수님으로 옷 입는’ 것입니다. 갈3:27

 

그 결과 천국 보좌와 하나님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일이 내 일이에요.

이때 이 세상에 남은 내 몸과 내 몸으로 사는 이 세상의 삶은 절대로

더는 내 책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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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

 

바다에 가면 소라게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소라게는 한 백여 종 되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자기가 살 수 있는 껍데기를 가지고 나오는 소라게도 있고.

어떤 것은 날 때부터 자기 껍데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소라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집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집을 못 가진 놈은 자기 눈에 들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제 집처럼 삽니다.

기어 다니다가 빈 소라껍질 가운데 하나를 고른 다음에,

집게발을 벌려 그 소라껍데기 입구를 재어 봅니다.

 

재어 보고는 그 집이 자기 몸에 맞겠구나 하면 지체 않고 배부터 밀어넣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삽니다. 살다가 나중에 소라가 몸이 커져 불편하게 되거나

살다가 좀 싫증이 나면 금방 껍데기를 획 벗어버리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찾아 나섭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들어가 살다가 싫으면 또 집어던집니다.

이것이 소라게의 생활 습성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 부족한 사람은 소라게처럼 자주 자기 집을 바꾸는 버릇이 있습니다.

주일을 맞으면 주일에 뒤집어 쓰고 갈 수 있는 껍데기,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는 껍데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세상에서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껍데기가 또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의 옷은 하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것뿐입니다.

그 옷을 입고 어디든지 다녀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 현세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 자기중심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이 바뀌어야만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 영광 위해 살 수 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 가슴이고 배고 다리일 뿐, 내가 아닙니다. 내가 쓰는 몸입니다.

 

이것은 지구별에 오기 위해서 입은 지구 옷입니다. 이것은 지구복입니다.

옷을 자기로 착각하는 것이 죄요 벌입니다.

이 착각은 사람만이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만이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자 은총입니다.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자유와 행복입니다.

 

자기에게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힘들게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남들이 좋아한다고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옷을 그것도 겹겹이 입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사람을 참 많이 봅니다.

바울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그리스도의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