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을 찾는 사람 2 - 복 있는 사람 마5:3-12 Youtube
◈복 있는 사람 마5:3-12 2026.08.02. [산상설교 2강]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의 설교인 [산상설교의 서론]을 이야기했다면
드디어 오늘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첫 번째인 팔복을 설교하십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팔복의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오늘 한 번의 설교로 하나하나 여덟 가지를 다 나누어 설명을 못 드리고,
다음에 한 번 특별 시리즈로 팔복을 따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드디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첫 번째 산 아래에 있는 사람(무리)들 중에,
산 위로 제자들을 부르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메시지의 첫 번째 단어가 뭐냐면 ‘복’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단어는 ‘복, 마카리오스’라는 단어입니다.
(창1:28절과 비슷하네요)
어떤 분은 ‘목사님, 아닌데요, 심령이가 먼저 나오는데요?’ 라고 질문을 하실 겁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고 나오니까요.
하지만 헬라어 원문에 보면 ‘마카리오스 - 복이 있도다’ 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나오죠.
영어로는 Blessed 입니다.
그래서 원문의 어순 대로 번역이 된다면, 이렇습니다.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여’ 이게 원래 어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입에서 ‘복’이라고 하는 단어가 처음 가장 먼저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복’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는
중요한 힌트가 되는 거죠.
물론 이 ‘복’의 개념은 우리 사회의 통념과는 많이 다르죠.
가장 쉽게 표현하면 ‘풍성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첫 번째 말씀에 ‘너는 복이 될지라’ 라고 말씀하셨고, 창12:2
시편 150편의 대장정의 시작도 ‘복이 있는 사람은’ 이라고 시작을 하고 있죠.
*‘에제르’로 시작하죠. 헬라어 70인역으로는 ‘마카리오스’ 입니다.
본문 상상설교에서도, 예수님의 첫 번째 단어가
‘마카리오스 - 복’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해서 ‘복’이라고 하는 단어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 나라 안에서 풍성한 삶, 행복한 삶, 에덴이 회복된 삶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복’이라고 하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단어를,
사탄마귀는 우리 입에서 훔쳐가서, 그런 얘기를 하면,
‘복’이라는 얘기를 하면, 타락한 목사 같고, 타락한 성도 같아서
애써 다른 단어로 에둘러서 말하고, 언급을 기피하려는 경향은
마귀가 우리 입에서 ‘복’이라는 단어를 훔쳐간,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그것을 완전히 되돌리고 싶습니다.
‘복’이라고 하는 단어가 얼마나 성경적으로 하나님께 가장 어울리는 단어이며,
이것을 우리가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되는 단어라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차세대도, 복 있는 차세대, 복 주는 차세대,
물론 그 복이 변질되고 잘못 이해되어져서,
잘못된 개념의 복이 되는 건 우리가 지양해야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욕물 버릴 때, 아이까지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복’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알고 다시 사용해야지, 그 단어조차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팔복적인 삶이 복되므로, 열심히 살아내면, 많은 사람들이 ‘복’을 거부하겠죠)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무리들 가운데서 제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 팔복의 교훈은, 저 산 아래에서 물론 들리겠지만
그들을 일차적으로 대상으로 삼고 전한 설교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주시는 설교입니다. *‘초급반’이 아니라, ‘고급반’입니다.
그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제일 먼저 눈을 맞추면서 하신 말씀이 뭐냐면
‘너희들 그거 알고 있냐? 너희는 복받은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참 이상합니다. 그 현장으로 가본다면,
예수님 앞에 나와 있는 그 제자들은,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복을 지지리도 못 받은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왜 예수님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은 갈릴리의 촌부요, 어부요, 무지랭이와도 같았던
그냥 한 평범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복을 받기는커녕, 복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고
예수님은 ‘너희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한다면, 도대체 그 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팔복, 8가지 복을 통해,
자기 앞으로 나아온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이것을 전체적인 개념에서, 제가 오늘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팔복 내용을 하나 하나를 다 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8복을 말씀하신 이유를, 여러분과 설교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자 팔복 전체의 구조를 설명하자면, 생소한 단어지만 수미상관법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수미상관법 首尾相關法은 글의 처음 부분(머리, 首)과 끝 부분(꼬리, 尾)에
같은 혹은 비슷한 구절을 반복하여 배치하는 문학 표현 기법이죠.
영어로는 인클루지오 inclusio 라고 하는데, 원래 라틴어인데, 영어로 그대로 씁니다.
그래서 팔복은 ‘괄호식 구조’입니다. *수미상관법
첫 번째 복과 여덟 번째 복이 똑같이 결론이 나고 있다는 겁니다. 뭐죠?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10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3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5:10
이렇게 팔복의 시작과 끝이 동일합니다.
마치 천국으로 괄호를 열고, 천국으로 괄호를 닫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천국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에서 일곱 번째 복으로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땅을 차지할 것이다, 너희가 배불러질 것이다,
너희가 긍휼의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이것들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지상+영원) 천국에서 누리는 복을 그렇게 설명해주고 있는 거죠.
△자, 산상설교를 시작할 때 ‘너희는 복된 사람이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 :3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0
이렇게 복과 천국을 쌍으로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왜 예수님은 복과 천국을 연결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강조하고 싶냐면,
바로 이 메시지입니다.
‘사람이 누리는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천국을 소유한 복이다’ 이걸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너희에게 집이 없고, 이제 더 이상 그물이 없고, 더 이상 배가 없고, 가족이 없고,
무엇이 없어도... ‘너희는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에 이미 너희는 부자다’
라고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는 거죠.
따라서 팔복 전체를 결론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부터 나 예수의 제자가 되어 나를 따르면,
가난해질 거다, 배고픈 날도 있을 거다, 억울한 일도 있을 거다,
눈물 나서 애통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핍박도 받고 매도 맞을 것이다,
가슴 답답한 억울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이미 복받은 사람이다. 왠 줄 아니? 왜냐하면 천국이 너희 것임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가 보는 이 한글성경에는 1복에서 8복까지 원어 중에
단어가 송두리째 8번 나오는 게, 다 빠져버리고 해석이 안 된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 ‘호티’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입니다.
한글성경에 ‘왜냐하면’이 빠지고 나니까, 해석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천국 줄게, 이렇게 참으면 위로 줄게’가 아니라,
‘왜냐하면’을 넣으면, 이렇게 해석되는 거죠.
‘너희는 무슨 일을 당해도 복받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천국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면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면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이렇게 원문에 되어 있다는 거죠.
5:3~10절까지, 매 구절에 다 ‘호티 - 왜냐하면’이 나옵니다. 모두 8번 나오죠.
영어성경에는 ‘for - 왜냐하면, 그 이유는’ 으로 나오죠.
‘이렇게 하면 천국을 받는다’가 아니라,
‘왜냐하면 천국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해도 너희는 복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장차 얻을 천국이 아니라, 이미 받은 천국을 누리는 사람은, *현재 천국
무슨 일을 당해도 억울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왜요? (호티)
‘왜냐하면 천국을 받았으면 받을 복 다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요.
무슨 의미냐? 제가 여러 번 여러분에게 설교 중에도 표현했던 말인데
‘바다를 본 사람은 실개천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사람이 진짜 좋은 걸 만나면,
작은 것에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빼앗기거나, 유혹받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 광활한 바다와 그 웅장한 파도를 보고 가슴이 커진 사람이,
실개천에 일렁이는 파랑을 보고, 두려움이 오거나, 그렇게 마음이 흔들릴 일이 없다는 거죠.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너희가 나를 따른다고 하면서, 너희가 가난해질 때도 있고,
너희가 배고플 때도 있고, 너희가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때 너희가 나 때문에 뭘 잃어버렸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너희가 무엇을 받았는지를 생각해라.
너희는 그 모든 잃어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걸 말씀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여러분, 산상설교 팔복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한 번쯤 궁금했던 생각이 있을 거예요.
마태복음 5장에도 팔복이 나오고, 누가복음 6장에도 팔복이 나옵니다.
근데 누가복음에서 묘사하는 팔복과,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팔복이 조금 달라요.
마태복음에서는 ‘영적으로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이런 영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면,
누가복음은 이런 게 다 빠집니다. 막바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매맞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진짜로 육체적인 가난, 육체적인 배고픔... 그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런 사람을 포함해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도 복이 있다’고 하는데, 이건 “확장된 개념”이에요.
자, 그럼 이렇게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듭니다.
‘그러면 가난하기만 하면 복이 있는가?’
‘그러면 핍박을 받으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건가?’
‘배고프기만 하면 그 사람은 상관없이 천국을 가는 건가?’
‘그럼 가난한 게 천국 가는 필수 조건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 얘기가 아닙니다.
이 팔복에서 심령의 가난이든지, 그냥 가난이든지
의에 주리든지, 그냥 주리든지 상관없이
이 팔복 앞에는 중요한 한 단어가 괄호에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뭐가 생략되어 있냐면, 이걸 알아야 이게 이해가 됩니다.
‘나를 위해’ 입니다.
다시 말해,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주리게 된 사람은 복이 있다,
나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나 예수 때문에, 안 가난해도 되는데, 나를 위해 다 버려서 가난해진 사람은...
하나도 억울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뜻입니다.
가난하다고 다 천국 가면,
배고프다고 다 천국 가면... 그런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나 때문에’ 안 가난해도 되는데.. 가난해진 사람,
‘나 때문에’ 애통 안 해도 되는데.. 애통하는 사람,
‘나 때문에’ 자기 것 먹고 살면 되는데.. 남 살리려고 배고파진 사람,
하나도 손가락질 안 당해도 되는데.. ‘나 때문에’ 수모를 당하는 사람,
‘나 때문에’ 순전히 핍박받는 사람...
‘나 때문에’가 있어야, 이게 다 해석이 됩니다.
*‘나 때문에’가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죠.
다만 마5:11절에 ‘나로 말미암아’가 나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눅6:22도 마찬가지죠.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런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너희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거죠.
예수님의 말씀 아시죠?
‘너희가 나를 따르다가 포기하고 버린 게 너무 많아서,
야, 이거 예수 잘못 따른 거 아니야?
집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리고... (이거 손해가 많네, 몇 배로 안 갚아 주시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들고, 내일도, 모레도
나를 따라다니다 보면,
오늘보다 더 배고플 거야.. 오늘보다 더 옷이 적어질 거야..
오늘보다 더 많이 욕을 먹을 수도 있어..
그럴 때마다 천국을 본 사람은, 실개천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너희가 나를 위해 버린 걸 생각하지 말고,
나로부터 받은 천국을 생각하면,
너희가 버린 것을 생각하면 시험들지만,
받은 것을 생각하면, 또 장차 받을 것을 생각하면, 기쁨이 넘치기 때문에...
천국을 기억해라! 그 천국 안에서 너에게 줄 위로와,
너희를 배불리게 만들어줄 것과,
나의 자녀라고 불러주는 특권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그 놀라운 상급을 기대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이 잘 아시는 토마스 아 캠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하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He to whom God is all has enough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해석하면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은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으로 가득 차면,
내가 뭘 포기했는지.. 배를 포기했는지, 집을 포기했는지, 청춘을 포기했는지,
내 직업을 포기했는지,
하나님으로 가득차면... 채워진 사람은 이미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뭘 내놓은 것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거죠.
△여러분에게 한 사람 소개할까요?
이번에 차세대 캠프의 주제가 'Like Paul'입니다. ‘바울처럼!’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봅시다.
바울은 예수님 만나기 전에,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로마 시민이어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죠.
요즘 뭐 미국 영주권을 받으려면 최소 투자 금액이 80~100만 달러라고 합니다.
돈이 있어야 뭐 준다, 만다 하고 있는데,
그거하고 비교할 수 없는 로마 시민권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그는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아버지가 부자였기 때문에, 어릴 적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똑똑한 지성을 수학했습니다.
부귀도 가졌고, 지성도 가졌고, 산헤드린 공의회에
가장 젊은 나이에 들어갈 수 있는 명예도, 이제 눈앞에 코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뭐 하나 부러울 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인데,
정말 안타깝게도 예수를 만나버렸습니다.
바울은 예수만 안 만났으면, 당대에 출세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나 예수를 만나는 그날, 그는 예수님을 얻는 대신에,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바울은 예수 만나고 인생이 꼬인 사람입니다.’
‘야, 명예도 버렸대.. 돈도 없어가지고 얻어먹고 다닌대.. 맨날 두들겨 맞고 다닌대..
거지도 저런 상거지가 없대.. 아이고 참 어떻게 예수를 만나도 저렇게 만나냐?’
남들이 봐서는, 바울이 예수 만나고는 다 잃어버린 불쌍한, 운이 나쁜 사람이겠죠.
어느 날 바울은 스스로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요?
‘주님, 그날 왜 날 만나 주셨습니까?
그날 다메섹 도상에서 나에게만 오시지 않았다면.
제가 여전히 잘 먹고, 여전히 어디 가면 대접받고, 존경받고,
내 한마디면 법이 통과되는 명예도 가지고, 권력도 가질 텐데...
예수님 만나고 보니, 나한테는 왜 이런 게 하나도 없습니까?’
‘아이고 괜히 무리에 섞여 있을 걸... 제가 괜히 산위에까지 쫓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후회막심합니다.’ 그랬을까요?
바울은 다 버리고, 예수를 얻은 게 불행이었을까요?
아니면 남들은 그렇게 봐도 자기는 행복했을까요?
‘나는 참 지지리 복도 없다’ 했을까요?
‘나는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라고 했을까요?
백날 생각해봐야 뭐합니까?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보면 되지요.
그가 뭐라고 얘기합니까? 빌립보서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내가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이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이라’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 때문에 뭘 잃어버렸느냐’를 보고 있지만,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내가 무엇을 얻었느냐’를 보고 있기 때문에,
‘내 심장을 열어보십시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실 것이고,
예수의 심장을 한번 열어보십시오. 그 안에서 내가 발견될 겁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잃어버린 게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보니,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은,
버린 게 아니라, 다 자연스럽게 밀려났던 것 뿐입니다. 배설물처럼 말이죠!
바울은 모든 것을 버렸는데도, 버린 걸 생각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내가 얻은 그리스도를 생각하다 보니까,
내가 얻은 영광에 비하면,
내가 버렸던 세상의 귀한 것들도
배설물보다 더 낫지도 않은 것들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바울은 자기가 바울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끝까지 바울이 하나님의 종으로, 그 제자의 길을 걸었던 것은
그가 평생 예수님 때문에, 이것도 버렸고 예수님 때문에 저것도 버렸고...
‘아이고 지금 생각해보니 아까운데...’ 가 아니라,
바울은 한 번도 예수님을 좇아가면서,
예수를 위해 뭘 버렸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께 무엇을 얻었는지를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산상설교로 돌아와서,
가난을 생각하지 않고, 애통함을 생각하지 않고, 헐벗음을 생각하지 않고,
그때마다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네가 버린 거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준 천국을 생각해라’
그렇게 제자들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팔복에서 제자들에게이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따르는 것 때문에 가난해진 것 같고, 목마른 것 같고, 핍박받는 것 같고,
어느 날 문득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망했네 라는 생각이 들 때,
잘 기억해라. 너희는 하나도 버린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준 천국 안에 다 있다.
그러므로 너는 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버린 게 아니다.
네가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버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에 내가 너에게 준 천국에 이르는 날에,
천국에서 보게 될 것이다. 네가 버린 게 그곳에 다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 것이다 ‘내가 버린 게 하나도 없네?’ ”
네, 그렇습니다. 나는 버렸다고 생각을 하고,
‘예수님 한 분 얻으려고, 왜 이 귀한 걸 버려야 하지?’
‘왜 예수님 한 분 선택하면, 다다익선처럼 이것도 붙잡고, 저것도 붙잡아야 되는데,
왜 이걸 놓아야 되는 거지?’ 하고 입이 삐쭉 나온 날도 있었는데,
천국 가보고 무릎을 치면서 ‘내가 버린 게 아니었구나..
어 나는 뒤에 있는 걸 잊어버려도(빌3:13), 주님은 어떻게 다 기억하고 계셨구나’
그것이 바로 천국(1복)과 천국(8째복), 그 사이에 약속해 놓으신 그 수많은 것들,
이게 팔복의 구조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 때문에 이것저것 놓쳤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를 따르기 위해 너희가 버린 것보다,
나를 따르면서 누리는 게 더 많을 것이다.
나 때문에 잃어버린 것보다, 나 때문에 너희는 얻은 게 더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너희는 복되도다..‘ 이렇게 8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와 복음을 위해, 아무리 많은 청춘을 버리고, 아무리 많은 물질을 버리고,
아무리 명예를 버리고,
내가 한 주먹도 안 되는 사람 앞에, 예수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자존심도 버리고,
내가 성질 한 번만 내면 고요해질 텐데, 성질도 버리고,
내가 예수님 만나서 바보가 된 것 같고,
내가 정말 옛날에 제가 예수 믿더니 완전 사람이 멍청해졌다는 수모나 듣고...
그렇게 다 버린 것 같아도..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 보면,
‘나는 다 버린 것 같았는데, 주님은 그걸 다 갚아주시며,
천국에서 너는 버린 것이 없다. 너는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재산이 얼마인지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의 재산으로 이 땅에 몇 평 땅을 살 만한 거부인지는 모릅니다마는,
여러분 그 재산 다 모아도, 천국에 한 날도 못 사는 거 아시죠?
이 세상 모든 걸 가진 여러분이, 자기 가진 걸 다 줘도,
천국에 하루를 못 사는데,
여러분이 예수님 따르느라 (몇 푼 안 되는) 다 버린 것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얻은 게 말이나 됩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지금 뭘 버렸는지 몰라도, 버린 거 다시 다 모아가지고,
천국의 한 날과 바꾸어 보세요. 바꾸어 지나요?
그런데 뭘 버렸다는 겁니까?
천국에서 우리는 한 날도 못 사는데... 주님은 영원한 천국을 주셨잖아요?
천국에만 들어갑니까?
여러분이 돈을 다 모아서, 미국의 영주권을 사거나 해도,
여러분이 버린 거 다 모아도, 천국 시민권을 살 수 있나요? No
그것도 모자라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시고...
여러분이 다 모은 재산을 가지고, 이 땅에 몇 평 땅은 사겠지만,
하늘에 기업을 살 수 있나요? No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한 기업을 내게 주신다고 말씀하시니...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버린 것은, 버린 게 아니에요.
그 버린 것 다 가지고도, 내가 천국에 뭐 하나를 못 사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자녀로 하루도 살 수 있는 값어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손바닥만한 땅 한 평도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안 되는 것인데... 내가 뭘 버린 겁니까?
(배설물을 버린 겁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린 겁니다)
내가 얻은 게 더 많지요...
하나님께 그저 천국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고,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받는 것...
여러분 아무리 우리는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주님께 드린 것보다, 주님께 받은 게 더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 설교 마치고 이제 이 산에서 내려가서,
(마태복음 8장부터) 즉시 나는 문둥병자를 고쳐야 되고, 눈먼 자를 고쳐야 되고,
배고픈 사람은 너희 도시락을 뺏어가지고 먹여야 될 거기 때문에,
너희는 앞으로 나 따라다닐 때, 지금 무리해서 산 위로 올라온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배고파질 거다.. 더 억울한 일들이 많을 거다...
더 너희는 지금은 두 벌 옷 있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것도 벗어줘서 한 벌 옷도 없을지도 모른다...
나 따라다니면서 더 버려야 될 일들이 많을거다.
그때의 고민되거든이 생각해라.
‘내가 주를 위해 버린 거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걸 생각해라’
‘아 천국이 있었지..’
‘천국이 너의 것이다. 천국 안에 다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받은 것을 생각해라!’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네가 예수님을 위해, ‘아 예수님은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굴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단기 선교해라, 뭐 해라 뭐 해라..
나를 가만 놔두지를 않으시는가?’
네가 예수님을 위해 희생을 드린다고 생각할 때, 네가 드리는 희생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널 위해 죽은 희생을 생각해 봐라!
네가 아무리 희생을 드려도, 그분이 너를 위해 희생한 것보다 크지 않다.
네가 드린 걸 생각하면 공로가 올라오지만, 네가 드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그분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올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흘린 땀이 많을 때,
‘와 예수 믿는 게 어렵네.. 참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게 되네..
주님은 뭐하러 내 땀이 필요하다고, 이렇게 땀을 흘리게 하고, 수고를 하게 하시나?’
이렇게 네가 주님을 위해 땀을 흘린다고 생각을 할 때,
너희는 십자가 위에 너를 위해 피를 생각해 봐라.
너는 땀을 흘리지만, 난 널 위해 피를 흘렸다.
네가 주님을 위해 흘린 땀을 생각하면, 네가 뭘 한 것 같고,
네가 대단한 헌신을 한 것 같지만, 그 때 문득 네 땀과 비교할 수 없는 그분이
네 한 사람 살리려고 흘려주신 피를 생각하며
‘아 내가 드린 것보다 받은 게 많구나’
“너희가 내 이름으로 수모를 당할 때, 핍박을 당하고 사람들부터 오해를 받고,
‘내가 예수만 안 믿었으면, 내가 저 목을 그냥 하고 꺾어놓을 텐데
내가 예수님 때문에 참는다’
‘예수님, 예수 믿는데 왜 이렇게 내가 수모를 당합니까?’
‘어휴, 나 이러고는 예수 못 믿겠다고.. 수모와 창피가 너무 커’
예수를 위해 하는 그 일이 화가 나거든
널 위해, 십자가 위에 온 세상 사람 다 보는데 벌거벗고 수치당한 나를 생각해 봐라.
네가 아무리 날 위해 수모를 당해도,
너 하나를 위해 십자가에 벌거벗은 나의 수치만 하겠는가?”
내가 주님 때문에 받는 수치보다, 날 위해 주님이 당하신 수치가 더 크다.. 이 말이에요.
예수님 따르느라 내가 잃어버린 게 많다고 생각될 때,
나는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가를 생각하면.. 정신이 화들짝 들죠.
여러분이 살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에, 주님 앞에 무엇을 드려 보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땀을 드리나요? 그분은 피를 주십니다.
수고하시나요?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수치스럽나요? 여러분 한 분 때문에 벌거벗겨지셨습니다.
자존심 구겨지나요? 여러분을 살리려고, 하나님인데 인간의 옷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하십니다.
“나를 따르다 보면 고민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고,
점점점점 성공하는 게 아니라,
점점 옷 한 벌까지 빼앗길 것 같이 가난해져서
‘아휴, 나도 산 밑으로 내려가야 되나...’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버린 걸 생각하지 말고, 너희가 받은 것을 생각해라.
천국이 너희 것이다!
산밑의 사람에게 주지 않은, 산 위의 나를 따르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천국이 너의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라. 천국에 가면 다 있다. 너는 버릴래야 버릴 수 없다.”
▲예수님이 왜 제자들에게, 공생애 초기에, 이 정신교육을 시키시는 줄 아세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면, 이 마음 하나가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보세요. 주의 일을 할 때, 받은 마음보다 드린 게 많다고 생각하면서,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기쁨이 없어요.
‘또 달라 그러시네.. 또 하라 그러시네?’
‘단기 선교 갔다 왔으면 됐지..
무슨 교회는 이렇게 바빠가지고, 또 캠프한다고 또 오라 그러네?’
‘왜 자꾸 달라고만 하지?’ 라고 생각을 하면... 하다가 지쳐요. 중략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멋진 종의 이야기와 같이 고백하는 사람!
그 종이 하루 종일 밭에서 수고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또 주인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것을 보고
주인이 종에게 ‘수고했다’고 칭찬을 하니까,
‘그럼요.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러지 않고
그 주인 앞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눅17:9
‘이와 같이 너희도 이종과 같이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수고하고 땀 흘리고 매맞고 헐벗고 가난해진 모든 것을 다 한 후에
주님이 너에게 수고했다 말하시면 이렇게 대답하거라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눅17:10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지난주 4부 예배 때 90명이 침례를 받고 올라와서 ‘침례축하식’을 여기에서 할 때,
수세자들이 특송을 하는데, 제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 찬송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찬양을 불러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의 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없으면
나는 한순간도 못 삽니다 주님의 생명이 없으면
이제 내가 사는 것 아니요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시니
오직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 나의 모든 날들도 주의 것
나는 오직 한 분 바랍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 나의 주」
주님이 아니면 아니라는 이 무익한 종의 고백이,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조금하고도.. 한 것만 기억하면,
‘이것도 했는데, 저것도 했는데, 날 안 알아줘?’
근데 내가 드린 것보다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놓고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I am nobody'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제, 차세대 캠프가 있어서 양수리 월드센터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이렇게 수고하시는 교사들을 이렇게 보고 하는데.. 참 복된 동산입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청소년 부가 또 이렇게 동네로 노방전도 내려가고,
동네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제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교육 목자들!
그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 자기의 친자식도 아닌데, 우린 영적 가족이라서
내 아이처럼 돌보고... 자기 휴가도 반납하고 거기까지 올라가서,
자기 사비 털어가지고 또 재정을 보태면서...
정말 공동 숙소에서 잠자면서, 아이들을 챙기는 선생님들을 보니까,
‘저분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단기 선교 때도 있었고, 어디나 있는...’
수고하는 그런 분들 보니까, 제 마음에 너무 감동이 되더라구요.
‘어떻게 주님 앞에 저렇게 충성을 다 할까?
휴가까지 반납하고, 저렇게 충성을 다 할까?’
마치고 저녁 설교 준비를 마무리해야 돼서, 다시 수양관에서 내려오면서
차 안에서 꽤 한참 동안 우리 김요한 목사님과 저희 아내와 함께 대화를 했습니다.
‘김 목사님 봤지? 성도가 우리 목회자보다 백배 나아!
성도가 우리 목사보다 백배가 나아!
그거 우리가 알아야 돼! 그래야 우리가 목회를 겸손하게 할 수 있어’
‘성도가 우리 목사보다 백배가 낫다’는 얘기를 계속 했습니다. 감동되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어제... 너무 고마워가지고, 대표로 한 분께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섬겨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딱 말을 했는데, 그분이 아주 시크하게 한마디로 딱 하고 가시더라고요.
되게 멋있었어요.
그 분이 지나가면서 하시는 말이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고 가더라고요.
오늘 설교 한 편이 그 단어에 다 들어있어요.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얼마나 복된 고백입니까? 중략
▲본문에 팔복이 마5:3~10절까지 마치고 나면
11절에 또 하나의 복이 나오니까,
자세히 보면 이게 ‘구복’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팔복이 끝났는데, 11절 12절이 나오는데, 내용이 팔복과 비슷하니까요.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이건 아홉 번째 복이 아니라, 여덟 번째 복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여덟 가지 전체를 다시 해석해 주는 복입니다.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셔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뒤돌아 서지 마라.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미 천국을 주셨고 이미 천국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또한 하늘나라에 여러분이 주를 위해 버린 것이 다 상으로 되돌아 온다는 사실!
여러분 오늘 여러분 앞에 이렇게, 예수님의 심정으로 질문을 드려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계시죠.
‘자 여기까지 듣고 너희 버린 것이 아까워 다시 뒤돌아 산 아래로 다시 내려갈지
이걸 듣고도 더 나은 것을 위해 나와 함께 이 길을 갈지... 너희가 선택하라!’
이 심정으로 여러분에게 물으면서 마칩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로 가시겠습니까?
지난 주처럼 대답은 역시... 여러분의 몫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