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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6장 맞추어 주시는 하나님

LNCK 2026. 8. 11. 17:40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영적성장

사사기강해(12)/사사기6:32-40/‘맞추어 주시는 하나님’  Youtube 

 

◈(내 눈높이에) 맞추어 주시는 하나님           삿6:32-40           [사사기 12강] 정리

 

이제 우리는 사사기의 ‘기드온의 이야기’를 오늘 세 번째로 하게 됩니다.   

앞으로 기드온 이야기는, 조금 몇 차례 더 남아 있을 만큼

기드온이라는 한 인간 속에 담아내고 싶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그만큼 풍요롭습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표정을, 얼굴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삿6: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요아스는 기드온의 아버지죠.

위 구절은 오늘 설교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짜는 틀 안에 숨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곡식 마저 빼앗길까봐

몰래 거기서 밀타작을 하고 있다가, 하나님께 소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죠.

그러나 그 부르심이 너무 강력하기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주신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데,

첫 번째 미션은, 아비 집의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파괴하는 일이었어요. 삿6:25~26

 

그는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로, 역사의 전면에 부득이 나서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려워서 무서워서

그 하나님의 명령을 백주 대낮에 명령을 행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우상을 파괴하는 일을 행합니다.

 

삿6: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새 날이 밝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어느 놈이 이런 짓을 했느냐?’

탐문하고 추적해보니까, 그래도 이 공동체 안에서 가장 바알에 대해서 섬기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요아스인데,

의외로 그의 아들 기드온이 이 짓을 했다는 게 밝혀졌어요.

 

그래서 기드온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요아스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죠.

방금 읽었던 31절은, 지난주 결론처럼 다루었다시피 했어요.

이 요아스의 발언은 굉장히 모호성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억나시죠?

 

어떤 측면에서 모호성을 갖고 있는가 하면,

1) 첫째, 요아스가 하룻밤 사이에, 이 아버지가 개종을 했는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2) 그러면 아들이 어쨌건 위기에 처해 있으니까, 부성애적 변호인가? 이것도 아니라면,

3) 또 하나의 개연성은, 그는 마을 공동체의 입지에 실익을 위해서 나선 것인가?

어디에도 이 요아스의 기드온 옹호 발언에 대한 정확한 동기를 설명하지는 못 해요.

 

그래서 제가 '모호하다'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평소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그 요아스가,

왜 갑자기 그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을까요?

 

우리가 이 점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섭리적 시각을 갖고 보아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기드온)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하고 계시구나...’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모호한 지점에 떠밀려 서게 될 때가 많아요.

‘이게 뭐지? 왜 하필 이 사람일까?’

‘왜 그 일을 하필 나한테 부닥치게 했을까?’

잘 설명이 안 되고, 선뜻 이해도 안 되고, 모호해질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해답을 명확하게 알 수 없더라도,

그 모호성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믿습니까?

 

왜요? 역사의 주권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 그분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일은, 너무 명확하게 판단하려고 하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너무 의외의 사건이 많습니다. 우리가 명쾌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를, 겸허하게 지켜보는 거죠.

마치 욥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요.. 욥38~41장

 

◑삿6: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이제 기드온에게 새 이름이 붙여집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여룹바알이에요.

성경에 뜻을 풀어놨죠. ‘바알이 기드온과 다툴 것이다’ Let Baal plead against him

(요아스의 말 대로) ‘바알이 그와 맞설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공동번역

 

그러니까 기드온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건데... 아이러니죠.

바알하고 다투는 자가 되어버렸어요. 새 별명이 붙은 거예요.

 

근데 참 놀랍게도, 우리 인생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역사의 전면에 떠밀려서, 전사가 될 때도 있고,

또 내가 원치 않았던 역할을 맡아야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기드온의 케이스가) 사실은 남의 얘기가 아니고,

우리가 일터에서, 일상에서,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매일 매일 부딪혀 나타날 수가 있어요.

 

저(설교자 자신)인들 그런 경우들이 없겠습니까?

‘나는 정말 이 역할이 내 적성에도 안 맞고, 내가 원치도 않는데...’

부득이하게 떠밀려서 그거를 맞서야 되고, 감당해야 될 일들이 가끔씩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밀착해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 기드온같이 소심한 사람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여룹바알’

즉 ‘바알과 다투는 전사’가 되어버렸어요.

 

근데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성경에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행간에 아주 중요한 개념이 감춰져 있는데

 

여러분, 항상 우리는,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라는 전선에 서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아주 ‘이게 나한테 손해가 될까, 이익이 될까?’

‘이러면 망할까, 흥할까?’

 

내 인생 길에 아주 어떤 실리, 눈 먼 이익 앞에 끙끙거리고 전전긍긍할 때라도,

우리는 항상 어떤 시선을 놓아선 안되냐 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악한 영의 세력과의 전선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내 의식 가운데 놓쳐선 안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어제 곰비스라는 신학학자가 쓴 에베소서 강의를 쭉 읽다가 Timothy G. Gombis

그분이 에베소서를 어느 관점에서 설명하냐 하면,

‘구약의 전쟁의 관점’에서 설명을 해요. 굉장히 통찰력이 깊은 설명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요지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작은 인생의 걸음을 내딛더라도,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으로서

악한 영의 세력과 전쟁 가운데 있다.

내가 그 전선에 떠밀려 (원치 않더라도)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에요. 지금 기드온이 얼떨결에 떠밀려서, 이 전선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놓쳐버리면, 그저 하루하루를

‘이게 나한테 손해일까 이익일까, 내가 망할까 흥할까?’

여기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내 삶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기드온은 졸지에 ‘여룹바알’이 되어버렸어요. ‘바알과 다투는 자’

그런데 이 별명이 놀랍게도, 기드온이 스스로 만들어 가진 별명이 아니고,

그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에요. ‘여룹바알이라 하라’

 

기드온의 이름 뜻은 '찍어 넘기는 자', '베는 사람', 또는 '벌목하는 자'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별명을 기드온에게 왜 붙였겠습니까?

‘우리 바알 신이 저 녀석하고 반드시 싸워줄 것이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이 별명을 이름하여 붙였을 겁니다.

바알이 그와 맞설 것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32

 

◑6: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이 므낫세 지파의 내부적인 우상은 척결이 됐는데,

항상 성도의 삶에 패턴이 그렇습니다.

 

‘산넘으면 이제 좀 쉬겠다’ 싶은데 뭐가 나옵니까? 더 큰 산이 나오고,

또 건너야 될 강이 나오고, 또 달려야 될 들판이 나와요.

 

‘아 이제 내부적으로 우상도 제거됐다’ 싶었는데, 이제 외부적 대적이 들어옵니다.

미디안이라는.. 이스라엘을 7년 동안 압제하던 이 군대가,

혼자 오는 게 아니고 아말렉과 합세하여 들어옵니다.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스라엘 골짜기에 그 메뚜기의 중다함 같은 셀 수 없는 무리가 되어서

와아악 하고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쫄게 만드는거죠. 13만5천이라 그랬어요. 8:10

 

지금 그 지역의 지도자(사사)로 세워진 기드온도 지금 불안불안한데.. 산 너머 산이에요.

더 험한 산을 만난 거예요.

이때 하나님께서 34절 여러분 한번 같이 읽어보십시다.

 

◑6: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앞서 기드온이 ‘아, 나는 우리 집안에서도 제일 소심하고 작은 자인데 못 갑니다’ :15

그러니까 하나님이 딱 하나 약속했어요.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동행, 임재를 약속을 했습니다. :16

 

그 약속대로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우리말 번역은 조금 아쉽습니다.

히브리어 ‘라바시’ (개역에 임하다) 라는 말은,

이 원어가 강조하고자 하는 그 원래 뜻을 좀 백프로 살려내질 못했어요.

 

여기 ‘라바시’(임했다) 라는 말은, 성령께서 기드온을 ‘옷 입듯이 입었다’ 그 말이에요.

옷을 입듯이요. 누가 이걸 ‘장갑 속의 손’으로 비유하기도 했어요.

장갑은 기드온이고, 손은 그 속에 성령님이세요.

 

어느 쪽이 더 강렬한 의미와 이미지를 주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와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듯이 입었다.

 

그러면 행동은 기드온이 하는 것 같은데,

그를 입고 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통해 일을 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죠.

 

이처럼,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들을 입으시는 은혜가 드러나기를 축복합니다. 어마어마한 복이에요.

 

이렇게 성령이 임재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아비에셀이 뒤따랐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지도자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동역자와 따르는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붙여주셨다는 뜻이죠.

‘아비에셀'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기드온이 속한 므낫세 지파의 한 가문(클랜)이자, 그 조상의 이름을 뜻합니다.

이들은 기드온이 나팔을 불었을 때, 가장 먼저 모여 그를 따랐던 동네 사람, 친족들입니다

 

◑6: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여기서 우리가 성경적 묵상이 필요합니다. 묵상을 하려면 질문을 해야 돼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얼굴’ 앞에, 우리가 질문을 해야 돼요.

 

‘아니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의 원뜻은, 하나님이 기드온을 옷 입듯 입으셨다면,

우리는 보통 어떤 기대를 가지냐 하면,

그냥 완전히 뭐 초월적인 역사를 드러내셔서,

 

해도 만드시고,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신데,

홍해 바다를 가르시는 분이신데,

그럼 이스라엘 군대의 동원이 필요 없이,

그냥 하나님 혼자 초월적인 힘을 발휘해서, 미디안을 싹 제거하실 수 없나요?‘

 

당연히 그러실 수 있으시죠.

그런데 지금 제일 먼저 뭘 하시냐면,

기드온을 대적했던 아비에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셔서, 기드온을 따르는 군대로 삼으십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아비에셀 가문에 속했고요, 6:11

기드온과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아비에셀 가문의 촌락인 오브라에 살았고, 6:24

그러니 우상을 찍어버린 기드온을 잡아 죽이려했던 자들도, 아비에셀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제일 먼저 기드온을 따라 나선 자들도, 아비에셀 가문이었죠. 6:34

 

이게 누가 하시는 역사일까요? 성령이 하시는 역사예요.

또 그 뒤에 많은 족속들을 붙여주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면, 사람들이 붙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개 그렇죠.

 

근데 어쨌든 그를 대적하던 아비에셀 가문 사람들은,

처음엔 기드온을 죽이려고, 그의 아비집 문 앞까지 몰려왔던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은 그 친척 사람들을 마음을 바꾸셔서, 기드온을 따르는 군대로 삼으시고,

또한 므낫세 주변의 지파들도, 기드온의 군대에 가담하게 됩니다.

 

근데 굳이 뭐 이렇게 하실 필요있어요?

하나님이신데, 성령님도 그냥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그냥 완전히 산사태를 나게 하시고, 바다를 한번 뒤집어 엎으시고...

이러면 굳이 이런 동원의 지난至難한 과정을 안 거치더라도, 승리할 수 있잖아요?

*지극히 어려운

 

여기에 성령께서 임재하심, 그리고 우리를 다루시는 중요한 성령님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 방식이 뭐냐면 이런 거예요.

 

성령이 임했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완전히 기계적으로 걷어내고,

그분이 홀로 하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성령님이 임하신 자리에서, 우리의 순종을 기다리시고,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셔서,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하시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 내 안에 성령님이 정말 함께 하셨구나

이거를 눈금 하나씩 하나씩, 우리로 하여금 가르쳐 나가시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생 속에 찾아오셔서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잘 보세요.

한때 성령 충만해가지고.. 은사 드러내고 난리를 치던 사람들.. 계속 가던 사람이 있나요?

그것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욕심의 도구로 쓰여지고,

사람들을 호도해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돈 버는 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면,

성령님이 그를 떠나시는 거예요. 그 은사도 사라지고, 걷어 가시는 겁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많이 준다, 안 준다, 적게 준다'

이런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우리를 입으셔서

우리의 믿음이 눈금 하나씩, 하나씩.. 자라게 하시는 거예요.

 

△왜 (어쩌면 쓸데없이) 이런 사람들을 동원하실까요?

우리에게 무언가를 단계적으로 가르치는 겁니다.

 

첫 번째 가르치는 게 뭐예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무슨 뜻인지를 말씀을 드립니다.

 

한 숟가락씩, 한 숟가락씩 실질적으로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도록

가르쳐 가시는 거예요. 성장을 시키시는 겁니다. 믿습니까?

성경을 다시 보시면 이렇게 돼있죠? 36절을 보겠습니다.

 

◑6: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기드온이 하나님께 ‘양털 시험’을 하는 겁니다.

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굉장해요.

이렇게까지 하시는데도, 기드온은 끝까지 마음속에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불신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못 믿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앞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고, :16

그에게 ‘성령으로 임하셨어요’ :34

 

그런데도 기드온은 더 확실한 증표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이 그를 두고서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주님이 약속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증표 하나만,

저로 하여금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타작마당에 이렇게 양털 한 뭉치를 놓을 테니까, 밤새 이슬이 내릴 텐데,

제가 갖다 놓은 이 양털 뭉치만 이슬에 젖고, 주변 땅은 안 젖도록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이, 기드온의 요구대로 그대로 시행해 주세요.

자 여기에 우리는 좀 생각해야 될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야단을 안 치세요.

제 성격만 같아도 ‘야 너 진짜 진상이냐? 왜 그러냐? 너한테 내가 약속했잖냐?’

그랬을 법한데, 하나님은 야단을 안 치세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기드온의 불신앙, 믿음의 연약함에 초점만 둬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그대로 들어주시는 하나님!

여기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뭐예요? “맞추어 주시는 하나님”

기드온이 아직 그 수준까지 못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야단을 안 치세요.

 

여러분! 어린 애기한테.. 야단 칠 레벨이 다 다르죠.

이제 뭐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따지고 묻고, ‘너 왜 일을 이 따위로 하냐?’

그런 엄마가 없잖아요.

 

‘아이고, 이게 엄마가 잘못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내가 이걸 여기 둬가지고 괜히 네 발을 다치게 했구나’

엄마는 오히려 자기 탓을 하지, 어린 아이에게 야단을 안 쳐요.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 양면의 메세지를 발견하는 거죠?

기드온은 불안해요. 두려워요. 아직 희미해요. 그래서 표적을 요구한 겁니다.

자,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것도 믿음입니까? 아니면 불신입니까?’

 

네, 이것도 믿음이에요. 왜요?

하나님의 자녀니까, 치열하게 확실히 파고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겁니다.

이걸 단순히 ‘불신앙’이라고만 매도해서는 안 돼요. 이것도 믿음이에요.     주1)

 

그의 이 약한, 부족한, 불안한 믿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세요? 맞추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보십시다.

 

◑6: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물을 짜 봤어요.

난 여기서 혼자 웃었어요. ‘참 어이가 없다’

‘야 진짜 이걸 뭐 꼼꼼하다고 해야 될지.. 양털을 짜고서 진짜 이게 이슬 물이 맞나?’

그리고 한번 짜봐요. 짜보니까 어떻게 됐어요?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싸우러 가겠습니다.’

해야 되는데,

 

◑6: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기드온은 굉장한 사람이에요. (*죄송한 표현이지만 하나님을 가지고 놀아요)

자기도 알아요. 39절을 보면 ‘노하지 말래요.’

‘하나님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이번이 진짜 마지막입니다’ 하고,

이번에는 반대로 한번 해 주세요.

 

‘그래서 이번에는, 주변의 땅은 젖는데,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안 내리도록

거꾸로 한번 증표를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그것도 해 주세요. 야단치시던가요? 야단 안 치세요.

아니면 속으로 얼마나 웃겼을까요. ‘참, 너도 대단하다..’ 하셨겠죠.

 

이 대목에서 하나님과 밀당한 요나가 생각납니다. 욘4장

그도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무례하게 요구하고, 항의하고, 성내고.. 했죠.

 

하나님의 성품에는, 이런 면도 있는 게 사실인 거죠.

그러니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을 너무 멀리, 저 셀 수 없는 계단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고, 교제하고, 말이 안 되는 대화도

서로 주고 받고 하는 것이.. 하나님도 그걸 (재미로) 받아주실 때가 있다는 거예요.

 

미국 백악관에는 아무나 절대 못 들어가지만,

그 대통령 아들이나 손자는.. 거기 집무실에 가서 술래잡기 하고, 숨바꼭질 하며 놀잖아요.

자유롭게.. 대통령도 1~2분은 애들과 같이 놀았을 거예요.         주2)

 

결과가 어떻게 됐죠?

'그 밤에 하나님이 기드온의 요구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더라’ 할렐루야!

 

▲자 우리는 여기서 세가지 결말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1) 첫 번째는, 이 모든 소명을 확인하고, 사명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결국 기드온에게 뭘 가르쳐 주신 거죠? 뭘 확인시켜 주신 거죠?

뭘 경험케 하셨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16

 

‘요즘에도 이런 증표 보여달라고 하면 돼나요?’

본문의 사건을 요즘도 있는 일이라고, 일반화 시켜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이런 증표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그 방법이 뭐죠? 성경이죠.

 

사실 이런 방법을 요구하면 확실해질 것 같죠? 아니에요.

하나님 말씀이 제일 확실합니다.

완성된 계시가 있는데, 그런 걸 요구할 필요가 없죠.

이걸 오늘날에 일반화시켜서는 안됩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의도하지 않게 일어날 수는 있을 거예요. 이건 일반화가 아니죠.

 

기도 가운데 자꾸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분들 계세요.

‘8월 말까지...’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말씀과 밀착해서, 내가 순종할 부분을 쫓아가다 보면,

하나님이 최고의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를 배워요. ‘아 하나님이 정말 함께 하시는구나’

‘오 하나님, 나를 입으시옵소서’ :34

우리는 그거 배우면, 구하면 되는 겁니다. 믿습니까?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기드온을 향한 태도예요.

귀엽게 봐 주시는 겁니다.

야단을 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낮아지셔서

기드온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기드온을 이끌고 가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모형을 만납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신데, 아버지께 순종하여 이 땅에

우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셔서,

죄인의 죽어야 될 자리에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

거기에서 온전한 구원이 완성되지 않습니까?

 

오늘 그 원형을 이 기드온의 스토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신약의 완성을 향하여 내다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 크시고 높으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셔서, 인간을 친구로 상대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전도하고, 주님께 인도할 때에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인들이 제삼세계에 선교하러 나가면, 또는 단기선교하러 가면,

한국인들은 다들 고학력자요, 상대적으로 재산도 많고, 피부색도 흰 편입니다.

대부분 제삼세계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키도 더 커요.

 

그런데 상대하는 현지 사람들은, 학력 차이도 너무 크게 나고,

경제적 차이, 신분의 차이가, 클라스의 차이가 크게 납니다.
그런데 고고하게 높은 자리에서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선교가 안 됩니다.

 

대통령이 쪽방촌을 찾아가서, 거기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식사를 같이 할 때,

그 장면을 보는 국민들이 감동을 받듯이,

하나님이 기드온을 대해 주시는 그 겸손하신 태도, 자세를.. 우리 깊이 묵상해야 되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세 번째,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해서

자기 백성들을 초월적인 존재로 만드는 게, 하나님 나라의 초점이 아니에요.’

 

자꾸 우린 기독교를 그런 식으로 요구를 합니다.

오히려 나를 초월적인 존재로, 기적적인 우리 공동체로

우리를 만드시는 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목적이 아니에요.

 

우리는 여전히 불안해요. 여전히 넘어져요. 여전히 연약해요. 여전히 의심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시선을 하나님께 두어서,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가를 보게 하시는데.. 초점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꾸 새로워진다는 것이,

뭔가 우리 레벨이 업그레이드 되고,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것으로... 기독교를 오해합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려면 뭐하러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까?

그러니까 성육신의 신학을 통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무한함을 배워요.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적으로 만들어 가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그분 안에서 어떻게 그분께 시선을 두게 하시는가,

오직 구원의 시작과 구원의 완성은 그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한 걸음 한 걸음씩, 한 눈금 한 눈금씩 배우게 하셔서,

 

이제 다가오는 9월, 10월 하반기와

또 지난 동행하셨던 시간을 돌아보면서

9월도 여러분들에게 그런 은혜로 눈뜨고 동행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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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럼 신약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야단치신 마12:39, 16:4

예수님의 말씀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할까요?

 

기드온은 어쩌다가 한 두 번, 표적을 구한 것이죠.

그의 신앙이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밀당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야단치신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표적을 밥먹듯이, 습관적으로, 보여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한 거예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아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있어서,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에요.

 

괜히 트집 잡기 위해서, 자기들이 안 믿을 근거를 삼기 위해서,

그러니 아주 불순한 의도로.. 표적을 요구해서.. 예수님이 그들을 야단치신 겁니다.

 

 

주2) 오바마 및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 거주하던 시절

대통령의 딸들(오바마의 말리아·샤샤, 클린턴의 첼시)은

자기 친구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숙박이나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적 거주 구역 (관저) 중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