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09 창세기 강해 (24) / 창10:1-32 / 노아의 세 아들의 족보 - YouTube
◈노아의 세 아들의 족보 창10:1-32 2026.08.09. [창세기24강]
오늘 본문 창10장은,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입니다.
이 족보가 길게 32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요.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왜 이 족보를 굳이 이렇게 길게 기록했을까?’
우리가 앞서 몇 개의 족보를 살펴봤습니다.
가인의 족보도 살펴보고, 셋의 족보도 보았습니다. *창4~5장
그때는 나름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가인의 족보를 통해서는 인류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셋의 족보에서는 노아나 에녹처럼, 우리가 잘 아는 친숙한 이름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노아의 세 아들의 족보는 좀 다릅니다. 일단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재미로 읽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재미가 좀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성경을 읽으면, 뜻을 다 몰라도, 어떤 단어나 스토리를 통해
바로바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족보는 몇 번이나 읽어도, 바로바로 와닿는 게 없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어떤 중요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족보에 그냥 이름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나오고, 그 이름을 가진 인물에 대한 스토리가 거의 없습니다.
또 이 족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름들이, 상당히 생소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왜 이 족보를 굳이 이렇게 길게 기록했을까?
이 족보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본문 창10장을 가지고 설교하는 분들이 많이 없습니다.
아마 저도 창세기를 차례대로 강해를 하지 않았다면, 이 10장을 설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믿는 바가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내 눈에 낯설고 지루해 보이는 이 족보의 명단 역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숨결이 담겨져 있습니다.
겉보기에 그저 딱딱한 이름의 나열 같지만,
이 안에는 분명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족보를 함께 살펴볼 텐데요. 네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족보의 순서
-족보의 목적
-족보의 특징
-족보의 적용
◑1. 족보의 순서
창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노아의 세 아들이 나옵니다. 위 1절에 기록 순서가 셈, 함, 야벳입니다.
첫째가 셈, 둘째가 함, 막내가 야벳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밑에 족보가 나올 때, 어떤 순서로 나와야 합니까?
이 아들들의 이름 순서대로 족보가 기록되어야 합니다. 셈, 함, 야벳의 순서로요.
그런데 실제 족보의 순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죠? 여러분 누가 먼저 나옵니까?
야벳이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그 다음 함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셈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이 밑에 족보가 나이 순서로 기록된 게 아닙니다. 출생 순서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순서로 기록이 되었을까요?
창세기 족보 순서는 패턴이 있습니다.
어떤 패턴이냐면, 선택받지 않은 족보를 먼저 기록하고, 선택받은 민족을 나중에 기록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도 그렇습니다.
불경건한 가인의 족보가 먼저 나왔고, *4장
선택받은, 구원의 계보를 이을 셋의 족보가 뒤에 나왔습니다. *5장
오늘 본문 뒤에도 족보가 나오는데요.
아브라함의 아들 가운데 버림받은 이스마엘이 먼저 나오고, 25:12~18
그 뒤에 선택받은 이삭의 족보가 나옵니다. 25:19~26
또 이삭의 아들 중에서도 에서의 족보가 먼저 나오고, 36장
그 뒤에 선택받은 야곱의 족보가 나옵니다. 37장
오늘 본문도 똑같습니다. 야벳과 함의 족보가 먼저 나옵니다. 10:2~5, 10:6~20
그 뒤에 셈이 나옵니다. 10:21~31
이렇게 맨 마지막에 셈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족보에서 선택받은 민족은 누구라는 얘기입니까?
이 족보에서 구원의 계보를 이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셈이라는 얘기입니다.
족보의 주인공은 셈입니다.
하나님은 셈을 통해 구원의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여자의 후손'의 계보를 이어가십니다.
지난번에 말씀을 드렸는데요. 셈을 통해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과 야곱이 나오고,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다윗을 거쳐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창3:15절에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
죄와 사망을 이기실 구원의 약속이, 바로 셈의 계보를 통해 이어집니다.
이 사실을 오늘 족보의 순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의 계보를 이을 선택받은 사람인가요?
누가 ‘여자의 후손’의 계보를 이을 족보인가요?
바로 셈이라는 사실을 이 순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2. 족보의 목적
본문 창10장의 족보의 목적은 구속사의 족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구원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가요?
바로 셈을 통해 이어가신다.. 이게 이 족보가 쓰여진 목적입니다.
왜 이 족보의 목적을 설명하냐면,
이 족보를 가지고, 대륙이나 인종을 구분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후손을 통해 온 인류가 퍼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야벳의 후손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야벳은 백인의 조상이다.
함의 후손은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함은 흑인의 조상이다.
셈의 후손은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그래서 셈은 황인종의 조상이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이렇게 구분하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구분이 완전히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 족보의 몇몇 이름들은, 오늘날의 그 지역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야벳의 아들 가운데 3절에 나오는 야완이 있습니다.
야완은 고대 그리스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는 유럽에 속하죠.
그리고 4절에 달시스가 나옵니다. 여러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했는데, 가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달시스, 다시스 발음이 거의 똑같죠? 그 다시스입니다.
다시스가 어디입니까? 오늘날의 스페인입니다. 역시 유럽이죠.
그래서 야벳의 후손들이 유럽으로 가서, 유럽인들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야벳의 후손들이 모두 유럽으로만 가지 않았습니다.
10:2절에는 마대가 나옵니다. 마대는 성경에 나오는 메대, 바사할 때 그 메대입니다.
그런데 이 마대, 즉 메대는 유럽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이란 북서부에 해당됩니다. 주1)
유럽이 아니라 서아시아인 거죠.
그러니까 야벳의 후손이 주로 유럽으로 퍼져 나간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야벳의 모든 후손이 유럽에만 정착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야벳의 후손은 백인이다’ 이렇게 도식화해서는 안 됩니다.
▲함의 후손도 마찬가지인데요.
10:6절을 보면 함의 아들 가운데 구스가 나옵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입니다. 아프리카죠.
그 뒤에 미스라임이 나옵니다. 미스라임은 성경의 애굽 오늘날의 이집트를 가리킵니다.
역시 아프리카죠.
그래서 함의 후손 가운데 상당수가 아프리카 지역과 연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함의 막내 아들이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지역 아닙니까? 그러면 아프리카가 아니죠. 흑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함족속은 아프리카 흑인이다’ 이렇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함의 후손 가운데 상당수는 아시아에서 살았습니다.
▲셈족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셈족속의 후손은 아시아이고, 인종은 황인이다’
이렇게 도식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족보의 이름 하나하나를 가지고, 현대의 인종이나 사는 대륙을 구분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 족보의 목적은 대륙 분류나 인종 구분이 아닙니다.
구원의 역사를 보여주는 족보입니다.
‘창3: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이 오시는가?
누가 여자의 후손이 오는 계보인가? 바로 셈의 계보이다’
이것이 창10장 족보의 기록 목적입니다. 다른 족보에도 적용되겠죠.
홍수 이후에도 사람들은 타락했습니다.
노아도 죄를 지을 정도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당신의 약속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셈을 통해서요.
그것이 이 족보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3. 족보의 특징
▲먼저 야벳 족속인데요.

쉬운 이해를 위해 제가 가계도를 가져와 봤습니다.
파란색이 야벳인데요. 야벳의 아들은 밑에 7명입니다.
고멜부터 디라스까지, 그리고 고멜에게서는 세 아들이 나오죠.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터키)가 나왔습니다.
야완에게서는 4명의 아들 엘리사, 달시스, 깃딤, 도다님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야벳의 자손들을 보면 총 14명인데요.
이들로부터 또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머물렀던 땅이 어디라고 말합니까?
5절 끝에 보면 ‘바닷가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닷가에 자리 잡으며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단순히 고기만 잡나요?
아니죠. 무역을 하게 됩니다. 부자가 됩니다. 경제적인 중심지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인천, 부산이 그렇습니다. 바닷가의 땅이기 때문이죠.
바다를 통한 무역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번성을 한 후손이 야벳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어떠한 말씀이 떠오르죠? 노아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창9:27절에서 노아는 야벳에 대해 이렇게 예언합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이 약속의 성취가 바로
야벳의 후손들이 바닷가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위 도표의 도갈마, 달시스, 깃딤, 도다님이 모두 섬 또는 바닷가입니다.
▲이어서 함 족속도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특징이 있냐면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민족들이 주로 함의 후손들이었습니다.
함족속에는 총 30명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제가 이렇게 이름만 정리해 봤는데요.
그 중에 중요 인물로는 미스라임, 가나안, 가슬루힘(블레셋), 구스입니다.
이 가운데 미스라임이 있습니다.
미스라임은 성경의 애굽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노예로 있던 나라였죠.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도 꾸준히 괴롭힌 나라가 미스라임, 애굽입니다.
또 뒤에 가나안이 나오죠. 이 가나안에게서 일곱 족속이 나왔는데요.
헷부터 히위까지가 가나안 일곱 족속에 들어갑니다.
이 가나안 일곱 족속은 훗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끝까지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족속입니다.
또 14절을 보면 가슬루힘(블레셋)이 있습니다.
블레셋도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나라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갑돌(그레데)에서 팔레스틴으로 이주한 족속이죠.
대표적인 사람이 골리앗이죠. 골리앗이 블레셋 출신입니다.
이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철저한 원수 같은 나라였습니다. 다 함의 자손들입니다.
△또 8절을 보면 함의 자손 중 아주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구스가 낳은 니므롯입니다.
10:8~9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성경은 니므롯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라멕과 비슷하네요. 4:24
‘세상의 첫 용사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들으면 굉장히 칭찬같아 보이죠.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여기에 ‘여호와 앞에서’ 에서 '앞에서'가 히브리어로 리프네이 입니다.
‘얼굴 앞에서’ 라는 뜻입니다. * ל+ִפְנֵי to face
그래서 ‘리프네이 야웨’ -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입니다. *개역엔 ‘여호와 앞에서’
그런데 언제 여호와의 얼굴 앞에 있을까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을 때가 아니라 주2)
소위 맞짱 뜰 때를 말합니다.
격투기 선수들이 경기하기 전에 서로 마주보지 않습니까? 그게 리프네이 입니다.
싸우기 전에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노려보는 이유가 뭐죠?
싸우려고 벼르는 이 상태가 리프네이 입니다. *얼굴 앞에서
이 니므롯은 세상에서 첫 용사였습니다.
힘이 셌습니다. 그런데 이 힘을 가지고 뭐 했습니까?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짐승을 잡았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사냥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힘과 무력을 의지해 사람들을 사냥하듯 억압하고 지배했던, 잔혹한 정복자였습니다.
심지어 누구와 싸웠습니까? 하나님과 마주보며 싸웠습니다.
하나님을 노려보고, 하나님께 얼굴을 맞대고 대적했던 사람이, 니므롯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성경 주석인 타르굼 targum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더라고요.
‘여호와를 대적한 첫 용사였다’
니므롯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영토를 확장해 지은 성읍들이 나옵니다.
10:10~12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니므롯은 도시 하나만 세운 게 아닙니다.
시날 땅의 바벨부터 그 뒤에 쭉 이르기까지 제국을 건설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사람이 니므롯이었습니다.
이 중에 두 곳만 주목해 볼게요. 바벨과 니느웨입니다.
여러분, 바벨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게 바로 뒷장인 11장에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 니므롯이 바벨탑 사건을 주도했다고 말합니다.
또 이 바벨이 나중에 바벨론이 됩니다.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나라가 바벨론이었습니다.
또 그 뒤에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는데요.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나라입니다.
남유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바벨론, 앗수르가 함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함족속의 특징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대부분의 나라가 함의 후손이었습니다.
▲이어서 셈 족속의 특징입니다.
셈의 후손들은 26명인데요.
셈에게는 아들도 많고 손자도 많았습니다.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에벨이 셈의 첫째 아들일까요? 아닙니다.
에벨은 이 족보를 보면 한참 뒤에 나옵니다. 24절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에벨은 첫째 아들이 아니고, 한참 뒤에 나오는 증손자입니다.
셈-아르박삿-셀라-에벨
그런데도 성경은 왜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다 제쳐두고
굳이 증손자인 에벨을 내세워서
"셈은 에벨의 조상이다" 라고 강조했을까요?
대체 에벨이 누구이기에 그럴까요?
바로 '에벨'이 '히브리인'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좀 어려운 부분인데요. 들으면 도움이 됩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한번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 히브리인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서 성경은 히브리인, 히브리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언어도 히브리어 아닙니까?
놀랍게도 이 히브리라는 말이요. ‘에벨’이라는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잠깐 원어를 한번 살펴볼게요. 에벨이라는 이름이 히브리어로 에베르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은 이브리입니다. 에베르, 이브리 발음이 굉장히 비슷하죠.

에벨, 히브리.. 이렇게 단어도 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에베르, 이브리
그러니까 같은 어원의 단어인 거죠. 연결이 된 단어입니다.
자 그러면 ‘히브리’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로 ‘건너온 자, (강을) 건넌 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뒤로 넘기면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아시죠?
이스라엘의 조상,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창14:13절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에게 알리니’
성경에서 처음으로 '히브리'가 나오는 곳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을까요? '건너온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저 먼 타국에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온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이 볼 때 아브라함은 낯선 이방인이었거든요.
그래서 저기 ‘강을 건너온 사람’하고 불렀던 별명이. 바로 히브리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 히브리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부르는 이름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왜 셈을 가리켜 굳이 '에벨의 조상'이라고 불렀을까요?
셈이 바로 저 강을 건넌 히브리 민족, 즉 이스라엘의 진짜 뿌리, 이스라엘의 조상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셈의 계보는 어떠한 계보입니까?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이 나오는 계보이고,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계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위대한 구원의 계보입니다.
창3:15절에 약속된 여자의 후손의 계보가, 바로 셈의 계보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의 족보,
그 은혜의 줄기가 바로 셈을 통해 흘러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셈의 족보의 가장 빛나는 특징입니다.
▲또 하나 이 족보의 특징이 있습니다. 셈 함 야벳 족보의 특징이 있는데요.
이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을 모두 세어보면 70명입니다.
왜 70명으로 기록할까요?
PPT 보여주시면 14, 30, 26, 70명인데요. 왜 70명으로 기록할까요?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이 전부 70명이어서요? 아니죠.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명으로 숫자를 맞춰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7은 성경에서 완전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10은 충만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70 (7X10)은 세상의 모든 민족과 열방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족보는 말하는 겁니다.
'온 민족과 열방과 세계가 한 뿌리에서 왔다
노아에게서 왔다 그리고 노아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이 사실을 고백하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0:32 '이들은 그 백성들의 족보에 따르면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그 땅의 백성들이 나뉘었더라'
그러니까 열국 백성들이 누구에게서 나왔다는 겁니까? 노아에게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지만 문화가 다르지만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한 뿌리에서 온 한 가족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의 출발점, 기원은 노아의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 계시록이 바로 이 비전으로 끝납니다.
계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여러분 보이십니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 장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언어가 갈라져서 각각 흩어집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어떻게 됩니까? 그 흩어진 곳에서 다 나와
어린 양 앞에 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 비전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결국 성경 역사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사람들이 흩어졌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 가셔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 앞에 세우시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족보의 적용인데요.
▲1. 첫 번째,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족보를 보며 반복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나위었다’난이었다는 표현입니다.
본문 5절인데요.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본문에 '나뉘었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 나뉘었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9: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이제 인류가 흩어집니다.
그런데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창세기 10장은, 창세기 11장 뒤에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온 인류의 언어가 나뉘어서 각자의 땅으로 흩어져 살게 된 것이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해지죠. 언어가 다양해집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흩어져 살게 되죠.
그러니까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가 갈라지는 것은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 족보 10장을, 11장 바벨탑 사건 앞에 위치하고 있을까요?
만일 10장이 11장 뒤로 갔다면, 사람들은 10장을 11장의 결과로 볼 것입니다.
그러니까 흩어짐을, 열방의 기원을, 바벨탑 심판의 결과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열국의 기원을 심판의 결과로 인식할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성경기자는, 바벨탑 사건 앞에 이 10장을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민족들과 나라들이 나누어진 것이..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세 아들에게 축복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결과로,
약속의 성취로 인식하도록 만듭니다.
물론 언어가 갈라진 것은 심판의 결과입니다. 원래는 한 언어였죠.
한 언어를 가지고 생육, 번성, 충만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언어가 갈라진 것, 언어가 혼잡해진 것은 심판이 맞습니다.
그러나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생긴 것은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였다는 것을 오늘 이 10장의 족보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을 알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까지도 다스리셔서, 결국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바벨탑은, 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분명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 때문에 계획이 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죄를 심판하심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 전체의 원리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애굽에 팔았습니다. 분명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 죄 때문에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해 요셉을 애굽에 총리로 세우시고,
기근 가운데 수많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죠.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불의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모두 인간의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가장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연약하여 넘어집니다. 실수합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는 너무 늦었다 나는 너무 많이 넘어졌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오늘 창세기 10장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죄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실패보다 크고,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 연약함보다 큽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마저도 헛되게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를 빚어가시며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혹시 실패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혹시 과거의 죄 때문에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실패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삶속에서 신실하게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넘어진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복은 약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노아의 세 아들을 봤습니다. 야벳, 함, 셈 이 중에 셈이 구원의 계보였죠.
하나님께 노아의 세 아들을 받았습니다. 선택받은 계보였습니다.
하나님께 축복받은 족속은 셈 족속입니다.
반면에 함의 후손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니므롯이었습니다.
이 니므롯은 뱀의 후손의 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용사였기 때문입니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강함이 교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강함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로 그렇더라고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강한 자들입니다.
돈이 많고요. 지위가 높고요. 학벌이 좋고요. 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강하면, 자기를 믿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강한 줄 알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약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입니다. 내 자식이 뜻대로 안 될 때입니다.
사업이 안 될 때 또 남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겼을 때입니다.
그때 깨닫습니다. ‘내가 뭐 좀 된 줄 알았는데 강한 줄 알았는데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구나’ 그런데 그게 복입니다.
그렇게 깨어질 때, 또 연약할 때, 실패할 때,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가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니까요. 겸손하게 되니까요.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까요.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이 나의 강함이 되시니까요.
내가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니까 ‘이제부터 나는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
그게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약함이 복입니다. 고난이 유익입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약함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질병일 수 있고요.
또 변화되지 않는 남편과 자식일 수 있고요.
누군가에게는 꽁꽁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과거일 수 있고요.
누군가에게는 물질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약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에 겸손히 나와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약함이 없었다면, 우리가 너무 강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기고, 다 되었다면.. 우리는 니므롯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이 이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고난 때문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 속에, 우리의 약함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약함이 복이고 고난도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연약함이 있다면 하나님을 찾읍시다.
삶의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시다.
그래서 우리의 약함과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성도는 종말(끝)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족보에서 제일 잘나간 후손들은 함의 후손들입니다.
니므롯은 제국을 건설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세상적으로는 가장 성공한 후손들이 함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과도 마찬가지 패턴이네요)
반면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족속, 셈 족속은 가장 별 볼일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결국 역사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함의 후손들이 아니었습니다.
니므롯이 세운 제국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니므롯이 시작했던 바벨론 제국, 다 아시죠?
멸망하고 없습니다. 세상이 부러워했던 제국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성경 마지막에도 이 바벨론이 다시 등장합니다.
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세, 사탄의 나라, 뱀의 후손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계18:2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세상에 자랑하는 힘도, 인간이 쌓아올린 영광도,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없이 세운 것은 아무리 크고 화려해 보여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러분, 셈의 계보는 어떻습니까?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별것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셈의 후손들을 보면 알 수가 있죠. 큰 나라나 제국을 세운 사람도 없습니다.
니므롯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조용한 계보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셈의 계보에서 아브라함이 나오고요. 다윗이 나오고요.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실제로 셈의 족보를 보면요. 이 창10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셈의 족보는 계속해서 성경 곳곳에 등장합니다.
창세기 11장, 그리고 역대상 1장, 그리고 놀랍게도 신약 누가복음 3장에도 등장합니다.
눅3: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그러니까 이 족보가 역으로 올라가고 있는 거죠.
눅3장은 예수님의 족보인데요. 셈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누구를 통해서? 셈의 후손들을 통해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는 셈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당장의 성공이 아니라,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끝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을 붙드는 삶,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믿음을 지키는 삶,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따라가는 삶,
그 삶이 결국 승리하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세상의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았던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도 끝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최후 승리를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갑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다가
결국 멸망을 맞이하는 니므롯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속에서 천국의 생명책 족보에 내 이름이 영원히 남는
그런 복된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주1) 마대, 메데
히브리 원전에 같은 단어,
한글성경처럼 일부 영어성경에도 스펠링 다르게 표시. Madai, Media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단어를 통일해서 번역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10:4절의 달시스도, 요나서에 나오는 다시스와 히브리어 원전에는 같은 단어죠.
주2) 리프네 야웨 -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이게 לִפְנֵי יְהוָה 좋은 뜻으로 쓰일 때도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오죠. 레1:3, 대하30:21
일례로 삼상1:15에서 한나가 기도할 때
"내가 여호와 앞에(לִפְנֵי יְהוָה) 내 심정을 쏟아 놓았나이다"
그러나 본문의 니므롯의 경우는, 부정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는 의미로 나옵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여호와의 얼굴 앞에서 반항했다는 거죠.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