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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6장 인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LNCK 2026. 8. 12. 17:11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크리스천 리빙

인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2026-08-07) - YouTube

 

◈인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창46:1~7    2026-08-07 [요셉시리즈 14강]

 

저는 금요일마다 요셉의 인생을 본문이 가는 순서에 따라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나누다 보면, 저는 그냥 본문의 흐름을 따라 설교할 뿐인데,

‘정말 그때 딱 맞는 말씀을 주시는구나’하는 것을 설교하는 사람으로 참 많이 경험합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에 한 본문이거든요.

오늘 우리가 이집트로 (단기 선교팀을) 파송하잖아요.

오늘 본문에 애굽으로 데려가는 야곱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 앞에서, 우리 역시 다양한 삶의 갈림길 속에서

어느 방향이 옳은 방향일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 계시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시 가운데,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있습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작은 대추 하나를 보더라도, 그 대추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 태풍, 벼락, 땡볕, 수많은 시간들이 함께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붉은 열매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밤과 계절과 풍상風霜이 녹아져 있는 것이죠.

 

우리의 인생 역시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분명 믿음으로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눈물과 아픔과 인내와 고통 및

여러 많은 밤들이 함께 얽혀져 그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우뚝 서 있는 사람은 없어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젊은 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질주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하며 태어났어요. 형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나왔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야곱의 기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하여 형의 약점을 이용하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명분을 얻어냅니다.

그 이후에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계속 여러 가지 많은 속고 속이는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그의 인생 가운데 무엇인가 얻은 것이 있다면, 전부 다 속여서 얻은 거였어요.

그리고 이제 그의 인생 하반기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빼앗기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빼앗기는 방법 역시 속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촌 라반 집에 가서 20년 세월을 빼앗겼습니다. 결혼이 사기당했어요.

딸 디나가 강간당했습니다.

아들들에게 거짓으로 속임 당해서 세겜부족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이후에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들짐승에 의해서 죽었다는 소식에 속아서

22년간 그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가 얻었던 모든 것이, 속이는 방법이었고

그가 얻은 걸 모든 것을 빼앗기는 방법 역시.. 속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가운데 이와 같이 속고 속이는 일이 반복되어진다면,

그 사람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까요?

이 세상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 등장하는 야곱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말씀을 통해서 형들과 요셉이 만났어요.  *창45장

그리고 형들이 요셉을 찾았다는 소식이 바로의 궁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바로가 더 기뻐합니다. 그래서 바로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 시작해요.

 

창45:17~20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너희 아버지와 너희 가족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이제 명령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는, 너무나 기뻐서 세 가지 약속을 했어요.

첫 번째, 애굽에 좋은 땅을 주겠다.

두 번째는,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게 하겠다,

지금 기근이 열방 가운데 내렸는데, 기름진 것을 제공하겠다,

세 번째, 가족 전체를 데려올 수 있도록 수레와 양식을 보내줬어요.   주1) 바로의 환대 이유

 

왕의 수레와 양식을 가득 수레에 싣고, 지금 헤브론 땅에 있는 야곱에게 보낸 것입니다.

그 엄청난 수레가 도착했을 때, 그 수레는 단순한 수레가 아니라 바로의 초청장이었습니다.

‘애굽으로 빨리 건너와라’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지금까지 그는 요셉이 죽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들리는 소식은 무엇이냐면,

요셉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총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가 그를 너무 신뢰해서

요셉의 온 가족을 초청하는 수레를 보낸 것입니다.

 

가나안 땅 가운데 기근이 들었어요.

야곱은, 먹고 살기 위해서 아들들을 애굽 땅으로 목숨 걸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무엇이냐면, 너무나 사랑하는 요셉이 살아있고,

더군다나 바로 왕이 초청장으로 수레를 보낸 것을 보게 됩니다.

 

▲누가 봐도 빨리 애굽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 같으면 한 걸음에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한 걸음에 달려가지 않아요.

 

그의 이 모습이, 지금 이 장면 가운데,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나이가 어느덧 130살이 되어서요. 지난 세월 그의 인생 가운데

그는 수많은 밤과, 벼락과, 천둥과 눈 내리는 밤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어느 순간에 ‘잘 익은 대추 한 알’이 되었어요.   *서두의 시

그의 외모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대추처럼 주름이 깊게 파여있지만,

그의 내면은 신앙으로 영글어져 있는 것입니다. 잘 익은 믿음의 대추 한 알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는 이제, 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갈림길에서

‘내가 과연 약속의 땅 헤브론 땅을 등지고 애굽으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계속 머물 것인가?’ 라고 하는 중대한 갈림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 역시 인생 가운데... 내 인생을 가를 수 있을 만한 중차대한,

혹은 인생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선택의 순간이 있을 것인데,

그때 우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우리 인생의 갈림길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그 야곱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1. 첫 번째, 수레가 와도 먼저 예배해야 합니다.

 

수레가 와도, 근사한 초청장이 와도, 믿음의 사람들이 할 일은 무엇이냐면,

먼저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46: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목적지는 애굽이 아니라, 브엘세바였습니다.

 

브엘세바는 어떤 곳이냐면, 이스라엘 지형의 남쪽 경계가 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흔히 말하면, ‘그 땅을 벗어나면, 가나안 땅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브엘세바를 벗어나면, 애굽 땅으로 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브엘세바에 와 섰습니다.

뒤에는 가나안 땅이고 앞에는 애굽입니다.

뒤에는 조상들이 살던 약속의 땅이고, 앞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고 하는 애굽 땅입니다.

 

브엘세바는 조부 아브라함, 부친 이삭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거주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그분들이 쌓았던 돌 제단의 돌무더기 흔적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예배드리기 좋은 장소입니다. 예배가 익숙한 장소였고,

야곱 자신도 어린아이였을 때, 거기서 예배하던 조부와 부친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뒤는 익숙한 땅이며, 앞에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땅입니다.

야곱은 지금 인생의 되게 중요한 경계선 가운데 서 있어요.

 

왕의 수레가 왔습니다. 아들 요셉이 살아있답니다. 총리라고 합니다.

거기 가면 기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한 번만에 수레에 올라타, 단번에 그 길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브엘세바를 먼저 찾습니다. 야곱이 변한 것이죠.

야곱은 누가 봐도 마땅히 가야 할 그 선택의 기로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거예요.

 

너무나 뻔한 선택 아닌가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 아닌가요?

기근 가운데 있어요. 그런데 기근을 해결할 수 있답니다.

요셉이 죽은 줄 알았어요. 그가 총리가 되었답니다.

더군다나 바로가 수레를 보내주었어요. 뭘 더 고민한단 말입니까?

이것보다 더 확실한 싸인이 뭐가 있어요?

 

그런데 야곱은 그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요.

그가 들었던 모든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능성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에 벌어지는 모든 가능성이... 해도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야곱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면,

가능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열렸다고 해서,

기회가 찾아왔다고 해서, 그것을 다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조건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 모든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도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 중요합니다.

 

천국 문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지옥 문일 때가 많아요.

때로는 닫힌 문이.. 우리를 보호하는 문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롯이 그랬어요.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그 얘기는 사방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보기 좋은 곳을 선택하라’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 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렸어요. 그런데 그가 선택한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동산 같고’

그의 눈으로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이 좋게 보였습니다. 가능성이 열려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길은 결국 ‘사망의 문’이었어요.

 

우리 눈에 보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라고 하는 자기 판단,

전도 유망한 가능성.. 그것이 우리가 가도 되는 길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갈림길에 제단을 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막힌 문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는 문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어요. *2차전도여행 중

 

그런데 하나님이 그 기회를 두 번이나 막으셨습니다.

행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바울의 선교 팀이..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방 선교를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성령이 막으셨다’는 것은 또 뭡니까?

 

바울이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막으셨어요.

바울은 답답했겠죠.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왜 막으실까? 어느 곳으로 인도하실까?’

 

그런데 그 막으심이, 결국은 바울을 유럽으로 인도하는,

유럽으로 복음의 문이 열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길이 되었습니다.

 

야곱 앞의 왕의 수레가 왔지만, 그것을 타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야곱은 그 수레에 선뜻 올라타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우리 인생의 갈림길 속에서,

거기서 제단을 쌓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사람은, 인생이 잘 풀릴 때 기도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길이 막히면, 안 좋으면 누구나 다 기도합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좀 잘 되는 것처럼 보여질 때,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질 때,

왕의 수레가 다가오는 것처럼 보여질 때는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해서 기도하는 시간은 오래 갖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정말 기도해야 될 때인 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어진 모든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복해요.

 

여러분,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란 멈춤이에요. 예배의 기본 개념은 멈춤입니다.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지금 내 인생길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가,

또한 내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모든 것을

점검받는 시간은 예배 시간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인공위성을 띄워서 달이나 우주로 보낼 때, 처음에 각도를 정밀하게 계산합니다.

하지만 출발한 인공위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설정한 노선을 그대로 가는 것은 아니에요.

그 궤도를 수도 없이 벗어납니다. 벗어나는 그 순간마다

인공위성 안에는 궤도 수정 장치가 있어요.

그래서 벗어날 때마다 궤도를 수정하여, 원래 길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을 통해서, 위성이 가야 할 곳으로 도착하게 되는 것이죠.

 

비행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발했을 때 도착지를 정해놓지만,

가는 모든 시간 동안에 그 길로만 가는 것은 아닙니다.

바람과 기류의 영향을 받으면, 비행기가 조금씩 항로에서 벗어나게 돼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자동항법 장치가 있어서

벗어날 때마다 제 길로 곧바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장치가 있어야 그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믿음의 여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은 흔들리면서 그 길을 가는 거예요.

누구도 한 번도 흔들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으로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삐뚤삐뚤 흔들리면서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하여, 끊임 없이 나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의 항로를 다시 한번 확인받아 걸어가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인생의 갈림길 속에서

왕의 수레가 왔다고 하여도, 바로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물으셔야 돼요.

 

이것을 묻는 거죠. ‘하나님, 어느 길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여러분, 이런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신 적 있으세요? 다 있잖아요.

 

우리 기도 제목의 대부분은 전부 다 이 제목 안에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어느 길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이겁니까, 저겁니까?’

‘어느 직업이, 어느 학교가, 어느 일터가, 어느 배우자가...’

그 모든 것은 결국 이 제목 안에 들어가 있잖아요.

 

근데 여러분, 이 제목 가지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1번으로 가라, 2번으로 가라’ 그렇게 늘 말씀해 주셨나요? 아니죠.

 

그럼 여러분은 어느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어떻게 분간하십니까?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 가운데,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다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는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그 길을 결정해 나갑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기도 제목과 함께, 다음의 기도 제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어느 길에서 내가 하나님을 가장 신실하게 예배할 수 있습니까?

어느 길이 나를 더욱 순결한 예배자로 서게 합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갈림길 속에서, 이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무리 그게 좋은 길이라 하더라도, 만약 예배에서 멀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자리라 할지라도, 나를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성도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결정할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중요한 기준은,

‘나의 선택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가?’

그것으로 우리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 있기를 축복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브엘세바의 제단이 필요합니다.

 

▲야곱은 인생의 갈림길 가운데, 그가 찾을 브엘세바가 있었어요.

브엘세바는 어떤 곳이냐면 단순한 갈림길이 아니라

그의 가문 가운데 대대로 내려왔던 믿음의 중요한 역사가 흐르는 장소였어요.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하나님을 경험했던 놀라운 장소가 브엘세바였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어요.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브엘세바에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나무를 심었던 에셀나무가 있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그 가문에 영적인 흔적이 묻어있는 장소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삭이 우물전쟁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삭이 우물을 뺴앗기는 사건이 세 번 있었는데, 그 사건이 종결되었을 때

이삭은 브엘세바로 이동합니다.

 

창26;23~25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우물 사건 세 가지가 정리된 이후에,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동일한 약속을

자신에게 다시 한번 주셨어요. 그래서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불렀어요.

그리고 그곳에 또 우물을 팠더니 우물을 또 하나 얻게 됩니다. *세바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브엘세바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맹세로 언약을 맺은 뒤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 엘 올람을 부르며 예배했던 장소입니다.

 

이후 그의 아버지 이삭도 블레셋과의 다툼이 정리된

브엘세바로 올라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어떤 곳이냐면, 야곱이 젊은 날 두려움 가운데 그 집을 떠날 때

출발했던 곳이 브엘세바였습니다.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에서와 불화로) 처음 집을 떠날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인생의 큰 갈림길이었어요.

브엘세바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때 두려움으로 떠났는데,

하나님께서 라반의 집에서 자기를 보호하사,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야곱안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의 인생까지의 마지막 갈림길 가장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야곱은 다시금 브엘세바를 찾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그의 가문 가운데 선조로부터 내려왔던 하나님을 만난 장소이며, 기도의 장소이며,

예배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장소가 되는 것이죠.

 

그 장소로 야곱은, 다시 한번 내려가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가정 가운데, 이 브엘세바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은, 집(부동산)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만난 그 놀라운 은혜의 현장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가정 가운데 큰 위기가 왔는데, 가정 안에서 함께 예배드려 무릎으로 극복했던

그 영적인 추억들...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왔고 갈림길이 온 그 순간에,

자녀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 말씀 붙잡고 그 가정의 문제를 돌파했던 그 추억

 

우리 가정에 수많은 눈물 나는 일이 있는데, 그 가운데 찬송가 하나를 붙잡고,

그 찬송을 계속 부르며, 기도하며 통과했던 그 찬송의 추억... 그것이 브엘세바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가 떠난 이후에, 믿음의 인생길을 이어나갈 때마다,

그 브엘세바를 떠올리고, 그 말씀과 그 예배와 그 찬양과 그 영적인 추억들을 붙잡으며

돌파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영적인 ‘브엘세바’를 통과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 가정이 진짜 복된 가정입니다.

 

바라기는 이 금요예배를, 여러분 가정의 ‘브엘세바’로

자녀들에게 넘겨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곳, 이 금요예배가, 한 시간 말씀 듣고 한 시간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인생의 방향을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점검하고,

세상의 황금 수레가 다가온다 할지라도,

이 제단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말은 무엇이냐면

<나의 두려움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이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야곱은 지금 브엘세바에서 예배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다시 한번 만나게 돼요.

46: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본문을 가만히 보세요.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성경의 저자는 야곱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라고 기록했어요.

그 뒤에 하나님이 그를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본문이 이렇게 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밤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근데 성경은, 야곱의 이름 두 가지를 한꺼번에 쓰고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객관적으로 야곱을 부를 때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라고 썼는데,

 

하나님이 브엘세바에서 인생의 갈래길 가운데 예배하고 있는 그를 부르실 때는

‘야곱아 야곱아’라고 부르셨어요.

이것은 한 사람의 두 가지 측면을, 그의 이름을 통하여

지금 우리 가운데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이름이에요.

야곱은 ‘발 뒤꿈치를 붙잡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고요.

거기서 파생되어서 ‘가로챈 자, 속이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야곱’ 그러면, 그의 인생의 컴플렉스와 그가 인생 동안에 저질렀던 실수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 야곱이에요. 연약한 그의 두려움, 마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이 야곱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어떤 이름입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언약적인 이름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내가 너를 이스라엘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을 이기는 자로,

너를 통해 한 민족을 이룰 거야’ 라고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46:2절에, 두 가지 이름이 한꺼번에 쓰여져 있어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야곱은 지금, 삶에 주어진 현실적인 문제, 기근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혹은 너무나 보고싶은 아들 요셉을 보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 가운데 있습니다.

 

인생의 큰 갈림길 가운데 있어요. 그는 두렵습니다.

‘과연 애굽에 내려가는 것이 맞을까? 여기 머무는 것이 맞을까?’ 그는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런데 두려워하고 있는 그를, 성경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냐면,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온전한 뜻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내려가는 그 방법이, 그 나라를 이스라엘로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는 몰랐어요.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지금, 이스라엘이 되게끔 인도하고 있는 중에 있는 것이죠.

 

▲우리 역시 이 두 가지 갈등 속에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어요.

그 사명을 발견한 분도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 사명은 크고 아름다운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이뤄야 되는 우리는 야곱같은 존재예요.

우린 연약해요. 두려움이 많아요. 매 순간이 고민이에요.

갈림길 가운데.. 어떤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 있어요. 이스라엘과 야곱 사이에 우리가 놓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 성인이 되면,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그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직분이 불려지죠.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아버지, 어머니, 부장님...’ 전부 다 뭡니까? 직분이죠.

그 직분이 불려지면, 거기에 걸맞는 역할을 기대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겠어요?

 

여러분, 혹시 성인분들 가운데, 여러분의 이름 석자를

그대로 불러주는 사람이 많은 분 계세요? 김철수, 박미자, OOO!

 

저는 별로 없어요.

저는 주로 ‘목사님’ 이렇게 불립니다. 호칭으로 주로 불립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름 OOO을 불러주는 관계를,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경훈아!'

 

누군가 저를 ‘목사님’, 특히 그 앞에다 ‘담임 목사님’ 그러면, 제가 부담스러워요.

바짝 긴장하게 돼죠. 그 호칭에 걸맞는 언행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 부장님, 대표님’ 이렇게 직분이 아니라,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그렇게 맺는 관계가, 더욱 더 많아질 수 있기를 축복해요.

 

저도 제 이름을 직접 불러주는 친구들이 몇 명이 있거든요.

그 모임을 굉장히 소중히 여깁니다.

그들은 저를 그냥 ‘경훈이’로 보는 거예요.

‘함께 성장한 경훈이, 고민 많은 경훈이, 두려움 많은 경훈이, 갈등하고 있는 경훈이’

그 앞에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거잖아요.

 

지금 하나님이 ‘야곱이’을 그렇게 만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의 의미를, 제가 설명드렸습니다.

‘야곱아 야곱아, 너의 두려움을 알고있다...’ *매우 친근한 의미

 

46: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야곱이 예배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즉 그는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거대한 민족을 이룰 이스라엘로 보시지만,

여전히 지금 두려워 떨고 있는 야곱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아 야곱아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의 갈림길 가운데, 우리 가운데 있는 갈등과 두려움, 염려들이 있잖아요.

그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아시고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야곱아, 야곱아!’

‘야곱’은 그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말하는 거잖아요.

‘너 두렵지? 무섭지? 그때 고향 집을 떠났던 것처럼 또 두렵지?

하지만 두려워하지마.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을 거야’ 46:4

 

46: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여러분, 그렇다면 야곱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야곱은 왜 두려웠을까요?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 그는 애굽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애굽에 왜 갔습니까? 기근을 피하여 갔어요. 창12:10

 

조부 아브라함은, 야곱 자기처럼 약속의 땅에 살고있다가,

기근이 닥치자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갔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을 다 잃어버렸어요. 아내를 빼앗길 뻔했어요.

 

그럼 ‘내가 지금 조부처럼, 약속의 땅을 떠나 기근때문에 애굽 땅에 내려가는 것이 맞을까?’

갈등이 되었겠죠.

 

더군다나 그의 아버지 이삭도, 기근때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26:2~3

 

그래서 이삭은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었어요.

동일한 상황이 지금 야곱 자기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바로 왕의 수레가 왔는데 내가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맞겠습니까?

여기 가나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맞겠습니까?’

 

모든 상황이 애굽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들의 믿음의 선조들을 보았더니만,

애굽에 가서 좋은 일을 겪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버지 이삭의 애굽행을 막으셨습니다. 26:2~3

 

그러니 야곱안에 이 갈등이 있었겠죠.

‘내가 지금 기근 때문에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이 불신앙은 아닐까?’

혹은, ‘차라리 요셉보고 이리로 오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혹은 ‘지금 내 나이가 130살인데 애굽으로 내려간다면

다시금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 수 있을까?’

라고 하는 삶에 대한 수많은 염려들이 그 안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수레가 왔다는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의 선택 안에는 우리가 기뻐해야 될 일과, 우리가 염려해야 될 일들이

함께 녹아져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어요.

 

‘100%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브엘세바가 필요한 것이죠.

그곳에서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6: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야곱아, 야곱아’ 하실 때,

야곱은 다음처럼 반응했어요.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부르자 야곱은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기도가 오늘 우리가 이 밤에 올려드리는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는 이 말은, 지금 그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제가 이제부터 듣겠습니다. 내 모든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는 말(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즐겨했던 기도가 무엇이냐면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예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몇 사람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의 절정의 순간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창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듣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내리셨어요?

‘네 아들을 데리고 번제로 드려라’ 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말에 순종하며 나아가죠. 모리아 산에 올라갔어요. 아들을 묶습니다.

칼을 들었어요. 내려치려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한 번 더 부르십니다.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세요.

그때도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칼을 들고 그렇게 말할 때, 이삭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자기가 제단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칼 치켜들더니만 찌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가 여기 있나이다’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더 나아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80세의 미디안 광야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그때도 이렇게 반응했어요.

 

출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모세를 부르실 때도, 모세를 이렇게 반응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어린 사무엘을 부를 때도 사무엘은 어릴 적에 이렇게 반응했어요.

삼상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그러니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기도는

성경 가운데 가장 아름답게 쓰임받은 모든 사람들이 즐겨했던 기도문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우리의 입을 닫는 기도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어쩌면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쉬지 않고 계속 말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대화하는데, 내가 계속 말해요. 그러면 그분의 내 귀에 말이 들릴까요?

내 입을 닫아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내 입을 닫아야, 그분의 말이 들리겠죠.

 

여러분, 기도란 기본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다 알고 계세요.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거예요.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듣는 거라면서요. 듣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면서요.

기도는 기본적으로 듣는 시간입니다☞듣는 기도 rfcdrfcd.tistory.com/15976557

 

우리가 그렇게 아뢰지 않아도 그분이 다 알고 계세요.

듣고, 그분이 말씀해 주시면,

그 말씀이 이르신 대로, 내 안의 두려움 내 안의 죄성, 그것들과 싸우는 기도,

그 기도가 우리의 주된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이냐면, ‘백지 위임’입니다.

내 모든 계획을 백지로 하나님께 위임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해 주세요. 제가 그냥 순종하겠습니다.’

내 생각을 포기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더 아름다운 생각을 붙잡는 그 시간,

그 시간이 바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에 포함된 뜻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밤에, 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세요.

‘야곱아 야곱아’ 그 음성에

‘주님, 제 연약함을 아시죠? 두려움을 아시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말씀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이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째, 본문 말씀을 강조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두려운 길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하나님이 약속을 붙잡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6:3~4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야곱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 네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지 않으셨어요. 3절과 4절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니에요. 강제로 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격적이세요.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고요. 대신 약속을 주십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자발적 믿음의 순종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세요.

그 네 가지 약속이 무엇이냐면

 

▲1. 첫 번째는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지금 야곱은 요셉을 만나러 가는 길로 초청을 받았어요.

기근을 피하는 길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현실적인 문제, 너머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야곱은 약속에 대해서 멀어지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 애굽에서도 내가 행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야곱의 가정 가운데 가서는 안 될 땅들이었어요.

아브라함, 이삭 전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기서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나안 땅에 있느냐 애굽에 있느냐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사명이, 어느 땅에 있느냐가 더욱더 중요합니다.

 

땅 자체가 거룩하고, 거룩하지 않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내 인생을 향한 땅이 어디냐?’를 분간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어디냐?’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야곱의 인생에서 요셉과 헤어진 것은, 자녀를 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미리 보내신’ 것이였습니다. 시105:17

 

야곱의 지금 두려움은 ‘내가 지금 애굽 땅에 내려가면 다시금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거대한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한 요람으로 애굽을 정하셨어요.

 

그래서 70명이 들어가서 400년이 지났을 때, 200만 명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야곱의 발걸음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루실 계획을 이루고 계세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보다 큰 것을 보세요. 하나님은 내 인생 전체 역사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하나님께 우리 인생 전체를 올려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입니다.

‘내가 거기서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건데 걱정하지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갈 거야’ 46:4

 

여러분 애굽이 두려운 이유는, 애굽 자체에 있지 않아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애굽’은 두려운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마음이 편한 것은, 가나안 땅 자체에 있지 않아요.

‘이 땅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고 믿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땅이라면 피해야 될 땅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애굽 땅이라면, 얼마든지 가야 할 땅이 되는 것이죠.

 

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그것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 그것으로 우리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연봉의 고저가 아닙니다. 가족이 찬성, 반대가 아닙니다. 미래 전망의 유무가 아닙니다..

 

과거에 하나님은 이삭으로 하여금 ‘애굽땅에 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때는 이삭이 가나안 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애굽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기계적이지가 않아요.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바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날마다 민감하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방향을 예배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민감하게 하나님의 뜻에 맞춰 나가야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애굽에 내려가면, 애굽이 복된 땅이 되는 줄 믿습니다.

 

▲3. 세번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너를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야곱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거죠. ‘내가 애굽에 내려가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46:4

 

그런데 야곱은 어떠한 모습으로 고향 땅에 돌아오게 됩니까? 유골을 가지고 옵니다.

그의 몸은 애굽에서 죽었어요. 그런데 돌아올 때 유골을 가지고 돌아오게 돼요.

 

야곱의 장례는 이집트 총리인 요셉의 주도하에 국가장 수준의 최고 예우로 치러졌으며,

이집트의 방부 처리(40일)와 유대인 전통의 애곡(30일)을 합쳐 총 70일간 진행된 후,

고향인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창50장

 

야곱은 자기 눈으로 고향 땅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는

더욱더 오랜 시간이 있어야만 합니다.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46:4

이 구절을 좀 더 확장해서, 그의 후손에까지 적용하면,

430년간의 종살이와, 모세와 10가지 재앙과 많은 일이 있은 다음에,

그 민족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게 되죠.

하나님의 약속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냐면, 하나님의 약속은, 한 사람의 세월보다 커요.

하나님은 한 사람의 인생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 주신 그 약속이, 그 사명이, 그 비전이

그 사람 당대에 다 이루어진다는 법은 없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 주어진 그 사명이, 믿음으로 대를 이어,

반드시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루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누군가가 씨를 뿌리면, 누군가가 열매를 걷는 거예요.

부모가 씨를 뿌리면, 자녀가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길 원했지만, 그는 출애굽만 하고 멈췄어요.

하지만 여호수아가 이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길 원했지만, 재료만 쌓아두었어요.

그 모든 재료를 가지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합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고전3:6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세요. 우리 때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다 할지라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줄 믿습니다.

 

▲4. 네 번째,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길 것이다’ 약속해 주십니다. 46:4

야곱에게 주신 가장 개인적인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알려주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 너가 정말 사랑하는 그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겨줄 거야.

너는 평안히 잠들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마지막 인생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게 우리 인생의 마무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 끝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힘들까요? 견딜만 할까요?

네, 견딜만 할 겁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냐 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내 인생이 마지막에 ‘내 자녀들이 나를 바라보고 축복하며, 그들이 내 눈을 감겨준다’

그 약속을 받는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야곱 안에 응어리진 마음들이 있었어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내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하지 못한 것, 그런 것들이 아니잖아요.

인생의 마지막에 무엇을 가지고 마음을 아파한다고 합니까?

 

더 사랑하지 못한 것, 용서하지 못한 것,

특별히 가족 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을 때... 마음 아프다고 말하잖아요.

 

야곱안에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요셉을 지켜주지 못한 것,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자기가 먼 곳에 심부름 보내어서 짐승에 찢겨져 죽었다고

알고 지냈던 그 마음, 그런 응어리진 마음들이 있는데,

그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요셉을 만나게 될 건데, 요셉이 네 눈을 감길 거야.

그의 축복 속에, 기도 속에, 너는 나를 만나게 될 거야’ 그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임종을 두려워하지만,

그런 약속을 받으면, 믿음의 길을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날마다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의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그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드디어 수레에 올라탑니다.

46:5~7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왕의 수레가 헤브론에 왔지만, 야곱은 그 수레를 타고 브엘세바까지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까지 걸어갔어요.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제서야 수레에 올라타 애굽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갈림길 그 길에서, 그는 믿음으로 두렵지만

그 미지의 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갈림길을

믿음으로 결정해 나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에 수레가 다가올 수 있지만, 세상 수레보다 중요한 것은, 제단을 먼저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염려와 두려움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야곱아, 야곱아, 애굽에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예배의 현장 가운데 받았던 네 가지 말씀을 붙잡고,

그제서야 수레를 타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어진 그 말씀을 붙잡고

두렵지만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거예요. 믿음이란 감정에 대한 부인이 아닙니다.

두려운데 믿음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두렵지만 믿음을 앞세워 걸어가는 그 인생,

그 인생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 마음 담아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롬11:29

우리를 부르셨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름답게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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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애굽의 바로가, 요셉의 가족을 환대한 이유

요셉이 총리로 있던 당시의 이집트 바로가 힉소스 왕조였다는 주장은

학계와 신학계에서 널리 유력하게 다루어지는 가설 중 하나입니다.

 

힉소스 족은 셈족 계통의 외지인 왕조로 이집트를 다스렸기 때문에,

이방인인 요셉(같은 셈족)을 총리로 등용하는 것이

문화적·정치적으로 수월했을 것으로 설명됩니다. 애굽 사람들은 함족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