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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2장 화목의 기술

LNCK 2026. 8. 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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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의 기술 | 로마서 12:14-18 | 2025.09.21. Youtube

 

◈화목의 기술                          롬12:14-18                 2025.09.21.

 

한국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표현해주는 속담입니다.

 

실제로 말 한마디를 부드럽고 지혜롭게 함으로써 천냥빚을 갚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말을 거칠고 공격적으로 함으로 인하여,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교회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말을 통해서, 사랑이 넘치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울 수도 있는가 하면,

말을 어리석게 함으로써, 건강하던 공동체도 무너뜨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목한 공동체를 이뤄나가기 위해서

우리의 언어생활은 너무나도 중요하겠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한 가족, 그리고 한 몸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화목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대화의 기술’을 배워보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는

그런 교회가 함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화목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 과연 무엇일까요?

 

◑1. “사실은 저도 그래요...”

 

우리가 살다 보면 종종 실수할 때가 있죠.

그럴 때 여러분께서는 그동안 어떻게 해오셨습니까?

 

또는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셨을 때, 여러분께서는 그동안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누군가가 실수할 때,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죠?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참 이상합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면 좀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랬어요.

그러면 그 실수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누군가가 실수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질책하거나 책망하고는 합니다.

때로는 그 사람을 놀리거나 조롱할 때도 있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그 사람을 질책하기보다는 따뜻하게 격려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음번에 누군가가 실수하는 것을 보셨다면,

그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그래요.”

 

물론 방금 그 사람이 했던 그 똑같은 실수를, 내가 범하지는 않을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습니까?

똑같은 실수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실수, 분야가 다른 (내가 약한) 면에서의 실수들...

결국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저도 그리고 여러분도, 참 많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롬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우리의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낮은 데 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발 지혜로운 척, 똑똑한 척 좀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겸손하라는 것이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도 여러분도 겸손할 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연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무지무능한 존재일 뿐입니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죠. 좀 더 고학력자가 있는가 하면, 저학력자도 있습니다.

사업 수완이 굉장히 좋아서 돈을 많이 버신 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분도 있겠죠.

키가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키가 작은 사람도 있고,

힘이 센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약한 사람도 분명히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평가를 했을 때 드러나는 차이점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상대평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평가하시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전부 다 기준 미달이고, 수준 미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가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실력과 능력이 출중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선하게, 도덕적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모두가 치우쳐서 무익하게 되었다’라고 성경은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롬3:10~12

 

롬3:23절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 판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우리 모두는 기준미달이고 수준미달이라는 것이죠.

 

과연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정말 잘났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을 하자면,

‘다 그놈이 그놈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아무리 잘난 척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렇게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실수했을 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그래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저의 청소년기를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보냈습니다.

한때 과테말라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시도한 결과, 굉장히 어렵게 시청의 고위관리와 미팅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통역할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때 과테말라 한인교회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신 집사님이 계셨지만,

하필이면 그때 출장을 가셔야 했기에, 그분은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스페인어를 조금 괜찮게 하는 집사님들도 계셨지만,

역시 모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모임에는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그냥 한 사람을 징집해버렸습니다.

그날 통역사로 선정된 그 불운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 저는 불과 14살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 중요한 모임에서 통역을 맡았으니, 제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이제 그 날이 되었습니다. 제가 시청에 갔습니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저는 제 앞에 있었던 물컵을 그만 엎질러 버렸습니다.

 

자, 회의석상에서 물컵을 엎은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물이 쏟아진 방향이었습니다. 제가 물컵을 탁 엎질렀는데요.

물이 촤악 쏟아지면서, 제 앞에 앉아 있었던 그 고위관리에게로 쏟아져 버렸습니다.

 

그분의 옷이 흠뻑 젖었겠죠. 이제 망한 겁니다. 저는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아, 이 미팅은 끝장났구나!’ 어떻게 됐을까요?

 

참으로 놀랍게도 그분이 너무나 호탕하게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도 어렸을 때 긴장을 할 때면, 물컵을 쏟기는 하곤 했는데

지금 이렇게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 보니... 이 소년은 아마도 큰 인물이 될 것 같습니다.’

 

(짝짝짝짝...

이 대목에서 여러분의 박수가 나올 줄은,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리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저를 살렸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는 희망이었고 감격이었습니다.

저는 문자 그대로... 그 회의석상에 찬물을 쫙 끼얹은 장본인 아닙니까?

그런 저를 질책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저에게 격려의 말을 들려주었던 것이죠.

 

자, 그날 그분이 하셨던 말을, 아주 짧게 요약을 하자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저도 그래요.’

우리 모두가 실수하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집사님, 사실은 저도 그래요. 그러니 우리 함께 힘냅시다”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화목한 공동체를 이뤄나가기 위해서 두 번째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아니, 저 사람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저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꼭 이렇게 한번 말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자 본문 말씀 17절 우리 화면을 통해서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롬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선을 도모하라 라고 말합니다.

 

이게 참 말로 하기는 쉬운데, 직접 실천으로 옮기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누구에게나 내가 상처를 받았을 때,

내가 받은 그대로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도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굉장히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때 딱 생각나는 성경 말씀이 있죠?

무엇인가요? ‘원수도 사랑하라’ 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이 생각나지 않죠? 우리가 생각나는 말씀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출21:24

우리는 내가 받은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거슬러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러분에게 아주 실질적인 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군가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반드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 사람이 자라온 그 배경을 이해한다면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 사람이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들여다본다면,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책에 보면 저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다음과 같은 자기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어느 날인가 지하철에 타고 있었는데,

한 정거장에서 한 중년의 남자와 그의 자녀들이 타더라는 겁니다.

자녀들이 어린 나이였는데, 어찌나 개구장이었던지...

그 아이들이 타는 순간, 그 지하철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너무나 시끄럽게 떠들고 굉장히 소란스럽게 굽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불편해할 수밖에 없었겠죠.

또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던 사람은, 더욱 거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있더라는 겁니다.

 

자, 만일 여러분이 그 지하철에 타고 계셨다면,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죠.

‘뭐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다 있어? 아니 지금 자기 아이들이 이렇게 시끄럽게 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데, 좀 제재해야 되는 거 아니야?’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참다 못해서, 그 신사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지금 저 아이들이 너무나 시끄러운데, 좀 조용히 시켜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자 그 신사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겁니다.

“아, 네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전에 제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 아이들에게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될지를 잘 모르겠어서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이 몰상식하고,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들여다보니,

이제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 사람이 더 이상 미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쌍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서로의 입장이 되어볼 때, 충분히 그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문을 넓게 열어서,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고,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3.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세 번째로, 우리가 화목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은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누군가에게 크나큰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그러나 이 말은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의 가정이, 그리고 사실은 나 자신이 병들어갑니다.

 

그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힘들어요.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부디 나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하여,

상처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한번 말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해야 되는데,

할 수 있거든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한두 번 시도해보고 할 수 없거든, 그냥 포기하라는 뜻입니까?

 

여기서 한국 번역에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좀 더 정확하게 직역해놓은 영어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죠. “As long as it depends on you"

"너에게 달려 있거든" 또는 "너에게 아직 결정권 또는 선택권이 있는 한"

반드시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최선을 다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나됨을 지켜내라는 겁니다.

아직 내가 기도할 수 있다면, 아직 용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직 나에게 힘이 남아있고 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아주 실질적인 제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을 한번 밥 먹듯이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가 달라지는 것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옥살이를 하셨던 안이숙 사모님이

쓰신 저서 <죽으면 죽으리라>가 있죠.

한국 교계의 모든 크리스천들의 고전입니다.

 

그분의 또 하나의 저서가 있죠.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수필집인데요.

지난달에 있었던 우리 지구촌교회 전체 사역자, 교육자 수련회에서

이동원 원로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추천해 주신 책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책에 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라는 시가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그 시의 내용을 여러분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전문은 다소 길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부분 부분을 발췌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화 잘 낸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일 때문에 피곤하고 신경이 늘어지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늘상 늦는다고 수군거리지 마세요.

일이 많아 바쁘고 전화통화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욕심이 많다고 욕하지 마세요.

매번 다른 사람 생각을 미처 못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무식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멸시하지 마세요.

배울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못 배웠으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인색하고 사랑이 없다고 미워하지 마세요.

경제에 시달릴 때를 염려하여 절제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잖아요.

 

이해하세요. 우리 이해하기로 해요.

내가 나를 싸매고 가리고 변호하듯,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밥 먹듯 하기로 해요.」

 

우리가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을 때는, 얼마나 크나큰 열심과 열정으로 내 자신을 변호합니까?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노라고’

‘너도 나의 입장이 되어보면 아마도 이해할 것이라고’ 우리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근데 참 이상하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의 입장이 되어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그 사람을 이해해주고자 하지는 않을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넓게 열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을 한다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공동체도, 놀랍게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는 오해하지 마셔야 됩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라는 말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랑으로 품어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이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가해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야!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너 목사님 설교 못 들어봤어?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하라고 그랬잖아?

왜 너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거야?’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적반하장이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때, 해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 물론 안이숙 사모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상처를 남겨주는 것 외에, 우리에게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크고도 깊은 상처를 남겨주는 사람도 있죠.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그 상처가 아물지를 않습니다.

그 사람 생각만 하면, 이가 갈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이렇게 외치고 싶죠?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니?’

이 말은 그만큼 그 사람이 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라는 뜻도 되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너만은 나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당신만은, 너만은! 나에게 그래서는 안 됐어!

어떻게 네가 나에게 그럴 수가 있니?’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사람,

여러분 저에게도 한두 명쯤은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가장 신뢰했던 사람,

가장 많은 시간과 애정과 정성을 쏟아부은 사람이, 나에게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럴 때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많이 아프시겠지만, 그리고 결코 쉽지 않겠지만,

마음속으로 다음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인류 역사상 있었던 모든 일들 중에, 가장 그래서는 안 됐을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됐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시며,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시고, 우리의 창조주 되십니다.

그런데 어찌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하여 주먹을 날릴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죄인인 우리의 죄인인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등에 채찍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추악한 죄인인 내가, 어찌 감히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질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감히 예수님께 ‘네가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여거든 십자가선 내려와 보라’

라고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됐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니?’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잠잠히 그 모진 고통을, 그 수치와 모욕을 다 받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은혜 가운데 우리 곁으로 다가오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품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너도 가서 너를 배신한 그 사람을,

너에게 침을 뱉고 너의 마음뿜에 망치질을 한 그 사람을 품어주고 용서해 주지 않겠니?’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깊은 상처를 받았다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은혜를 받았는지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서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화목한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화의 기술”에 대해서 함께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혹시 누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실수했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래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고 하나님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