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말씀 위에 새 나라를! | 예레미야 36:1-10 | 2026.08.09 | Youtube
◈말씀 위에 새 나라를! 렘36:1-10 2026.08.09. [예레미야 29강]
오늘 예레미야 36장 말씀으로 "말씀 위에 새 나라를" 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에워싸여 있고,
유다 민족은 바벨론의 포로가 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시고,
그로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인생들이 위기를 만날 때, 그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위기의 환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다양한 출구를 우리는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출구, 해결책’을 우리에게 제시하기보다도,
먼저 자기의 백성이 영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서 있는 모습을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으로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처방을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국가적 위기 탈출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레미야를 통해 그 배움을 갖기 원합니다.> *주제
▲이미 우리는 예레미야가 위기 앞에서, 하나님 앞에 받았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말씀은 뭘까요?
이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선지자에게 주셨던 첫 번째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 다이얼 333’ 예레미야 33:3절의 말씀,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이죠.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자 그렇다면 우리가 위기 앞에서 먼저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역사의 주인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기도한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 ‘너는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렘33:3절 이하에 계속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33: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33: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33: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33: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3:28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신 다음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뭔가를 말씀하고 계셨어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되고,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적(가정, 교회, 사회 공동체의) 위기 탈출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 하더라도, 더욱 친밀한 관계로요!
예레미야 3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리고
풀어주었던 노비들을 데려다가 다시 노예로 삼았을 때
34: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이 또 말씀하세요.
35장에 보면, 선조와의 약속을 지킨 레갑족속의 모범을 보여주신 후에
35:12절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렘35: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지금 33장부터 살펴봤는데, 33~35장에 이르기까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어떤 하나님일까요?
한마디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위기에 처하여,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기도했다면,
그 다음에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기다려야죠.
‘주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일찍이 스위스의 라브리에서 우리 시대의 지성인들을 향하여 전도자로 사역했던
철학자요 전도자였던 프랜시스 쉐퍼 박사는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중요한 책 한 권을 썼어요.
그 책의 제목이 뭐냐면 영어로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그는 거기에 계시고, 그는 침묵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거기에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런 제목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역사의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배워야 할 핵심적 레슨은 무엇일까요?
▲1. 첫째, 우리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희망,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고 있었을 때,
그때는 아직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런 완성된 성경,
정경, 캐논으로서의 완성된 성경이 없었을 때였어요.
자, 캐논은 언제 완성돼요? 성경에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으로 기록되었을 때,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쳐서 성경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때 정경 39, 26, 66권의 성경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의 마지막 말씀인 요한계시록 22:18~19절의 말씀이 뭐였습니까?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8~19
이게 성경의 마지막 말씀이에요. 다시 말하면 성경을 완성하시면서
하나님은 이 말씀은, ‘더할 수도 없고, 이제는 뺄 수도 없이 충족한 계시의 말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성경 계시의 충족성’ 이라고 말합니다. The sufficiency of Scripture
그런데 이렇게 완성된 성경이 주어지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 말씀을 주시고,
또 말씀을 계속 기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장차, 정경의 일부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에게 말씀을 전달하신 후에는
‘이 말씀은 네 귀로 듣고 흘려버릴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말씀을 반드시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본문의 1절과 2절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렘36:1~2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그냥 흘려버릴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기록하라’ 라고 말씀하십시죠.
다시 본문의 4절입니다.
36: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으로 직접 말씀을 받았고, 받은 말씀을 구술할 때,
바룩이라는 비서가 그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게 <예레미야서>예요.
△자, 우리의 소망은 바로 이와 같은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21절은 이런 성경 예언의 특성을 어떻게 증언합니까?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디모데후서 3:16~17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바로 기록된 이 말씀에 기초하여 형성된 소망의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예레미야 29장에서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궁극적 소망을 말씀으로 예언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아멘!
미래를 주고 희망을 주는 것, 그것이 말씀이에요.
다시 말하면, 주의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소망의 근거인 줄로 믿습니다. 아멘.
▲2. 본문이 가르치는 두번째 레슨은,
역사의 위기 앞에서도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 앞에서도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시시 때때로 이 말씀을 낭독해야 할 것입니다.
36:6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낭독해서 계속 말씀을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바룩이라는 예레미야의 동역자는, 말씀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또 말씀을 군중들 앞에서 낭독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낭독은, 작은 소리로 자기 혼자 들을 정도로 낭독하는 것이 아니죠.
큰 소리로,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낭독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귀에 들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큰 소리로 낭독하라는 것입니다.
36:10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그 당시 서기관이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의 방은 성에서 제일 높은 곳이에요.
그리고 거기에는 큰 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을 열면,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낭독하는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읽어주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는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1:3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우리가 복을 누리기 위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이 말씀을 읽고 계속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함이 영적인 축복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1:1~2절을 같이 읽어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우리는 흔히 시편 119편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 예찬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자 119편 1절이 어떻게 시작돼요?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그런데 어떤 복일까요?
119:6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는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복, 그런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말씀을 가까이 할 때!
119:7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정직한 인생을 사는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한다고 당장에 온 세상에 돈이 내게 들어오는
그런 부귀를 성경이 약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면,
말씀이 약속하는 진정한 행복, 부끄럽지 않은 인생, 정직한 인생을 사는 복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축복이에요?
신앙의 성숙, 영적 성숙은 따라서 말씀을 지속적으로 기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말씀을 사모함이 없이 영적 성숙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자라게 하는 책, 말씀의 젖,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 마4:4
우리의 육체는 육체의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적인 음식을 먹고 자랍니다.
저 유명한 전도자 디엘 무디는 늘 이렇게 외쳤어요.
'노 바이블, 노 브렉포스트
성경 읽지 말고는 아침도 먹지 마라'
오늘도 성경 읽지 않고 아침 잡숫고 오신 인생들,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먹을 때, 영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성숙할 때, 우리는 인생의 숱한 위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정, 새로운 나라, 새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가 있을 줄 믿습니다. 아멘!
▲3. 세 번째로, 새로운 나라의 시작은,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써
회개하고 돌이킴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먹고 있다는 징조, 표지는 무엇일까요?
말씀에 대한 최선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오늘 본문 렘36장에서 선지자는 그것이 바로 ’회개의 돌이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6: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36: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여호와의 분이 큰데 돌이키면,
하나님이 더 이상 징계하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의 돌이킴이 없다면,
그건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로운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을 기록하고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성도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있다면,
그 진지한 성숙의 표지는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또한 민족의 지도자가, 회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일 때
그 나라는 비로소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살고 일하는 동안에, 대표으로 두 왕을 모셨어요.
요시아 왕과 또 그의 아들이었던 여호야김 왕입니다.
그런데 이 두 왕은 부자지가 아니지만, 정반대의 삶을 살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반대의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책인 하나님의 말씀이 발견되었을 때,
요시야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왕하22:11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옷을 찢는다’는 것은, 마음을 찢는다는 말이에요. 회개한다는 거예요.
말씀을 듣자마자, 옷을 찢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어요. 요시야 왕을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등장한 또 하나의 왕, 여호야김 왕은,정반대의 반응을 보입니다.
36: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찢고 불에 던졌다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다’ 이 말이죠.
‘그런 말씀은 나에게 너무 기분 나쁘다’
‘나라가 망한다.. 왜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느냐?’
그래서 예언의 말씀을 칼로 찢고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36: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이 말씀 앞에 경외심이 없었어요. 옷을 찢지 않았어요. 마음을 찢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회개하지 않았다 이 말이에요.
다시 우리 요시야 왕으로 돌아가, 요시야 왕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열왕기하 22:19절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말씀을 듣고 옷을 찢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고 통곡하는 요시야 왕을 보고
하나님은 ‘나도 너의 말을 들었다. 나도 내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너를 용서한다 너를 축복한다’ 이게 요시야 왕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에요.
자 그런데 여호야김은 어떻게 했다고요? 칼로 찢고 말씀을 불살랐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말씀이 없어질까요?
36:28~29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칼로 찢고 불로 태워낸 말씀을, 하나님은 다시 기록하게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36: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그러니까 ‘너는 후계자가 없이 망할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네 시체가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는 말씀, 그 시체 유기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큰 저주'로, '가장 큰 하나님의 형벌'로 여겼던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존귀히 여긴 사람과, 말씀을 조롱하고 대적한 자의 최후는 얼마나 대조적이었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을 때
그때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선생님으로 계셨던 김교신 선생님이라는 분이 있었어요.
이분은 일제의 통치 아래서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발간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있습니다. *金敎臣, 1901~1945
근데 이 책이 일제시대에 놀라운 역할을 해요.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그 책을 기다리고, 그 책을 읽고,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준비합니다.
그분은 이 <성서조선>이란 잡지를 발간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분의 두 가지 인생의 모토가 있었어요.
‘성서 위에 조선을, 조선을 성서 위에!’
‘성서 위의 조선을, 조선을 성서위에 세울 수 있다면,
장차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서 반드시 맞이하게 되리라’고
그는 선포했습니다.
엄혹한 일제의 감시 아래서, 1927년부터 1942년까지 계속 꾸준히 발간해서 읽혔어요.
처음엔 연 5회 정도 발간하다가, 1930년부터 월간지가 됩니다.
그러다가 1942년에 일제에 의해서 폐간되어, 더 이상 발간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주1)
그래서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일제의 통치 아래에서 이 책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자란, 그리고 학교에서 직접 그에게 교육을 받았던 김교신 선생의 제자 중에는
유명한 사람이 손기정 선수, 양정고등학교 바로 선생님의 직계 제자가 손기정 선생이에요.
또 서울농과대학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던 유달영 교수.. 다 김교신 선생의 제자들입니다.
김교신 선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 함석헌 선생이에요.
함석헌 선생은 이 책 <성서조선>에, 당시에 이런 글을 계속 매달 연재했습니다.
그 글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고 그래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의 역사>
우리 조선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새로운 조선의 희망을 그가 계속 꿈꾸었습니다.
나중에 이 책의 제목이 바뀌어요. <뜻으로 본 한국사>
그런데 본래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의 역사’로 이 책에 연재를 했던 것입니다.
이 글로 수많은 일제 치하의 지식인들이
당시에 민족의 내일을 준비하며, 말씀위에 세워진 새로운 내일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오늘 우리나라를 만든 것이에요.
여러분, ‘다시 대한민국을 성서위에, 성서위에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저와 여러분이 앞장서고, 우리가 먼저 말씀을 붙들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조용히 기도할 때 ‘주님 말씀 주신 거 감사합니다. 말씀 붙들고 살겠습니다.
저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말씀을 붙들고 살게 하시고,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민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나라가 말씀위에 세워지는 나라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부르고 우리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
주1)
김교신 선생은 1942년 3월 잡지 《성서조선》의 글 '조와(弔蛙)' 필화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약 1년간(12개월) 옥고를 치렀습니다.
1942년 3월 30일 《성서조선》 제158호에 실린 권두언
"조와(弔蛙, 얼어 죽은 개구리를 애도함)"가
민족의 회생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일제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1942년 3월 말 구속되어 약 1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43년 3월 29일에 출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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