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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6장 기업이 부족한가, 믿음이 부족한가?

LNCK 2026. 8. 18. 09:54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 삶의 통찰력

기업이 부족한가, 믿음이 부족한가? 2026-08-09 Youtube

 

◈기업이 부족한가, 믿음이 부족한가?      수16:10, 17:14~18       2026-08-09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 세계적인 ‘비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이웃이나 직장 동료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을 켜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나의 인생과 비교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인생까지 부족한 것이 객관적으로 부족하다라기보다는,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우리 마음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곤 합니다.  *상대적 빈곤

 

 

예를 들어서 우리 위의 이미지를 한번 보겠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두 개의 검은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을 가만히 보면, 그 검은 점의 크기가 같을까요? 다를까요?

놀랍게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물체에 따라서, 크게 보이기도 하고, 작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다이어트에 활용할 수가 있습니다.

음식을 드실 때, 어느 접시에 음식을 담아야 할까요?

동일한 음식을 담지만 큰 접시에 담으면, 적게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음식을, 작은 접시에 담으면, 풍성히 먹었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시길 축복합니다.

 

동일한 대상이지만, 어느 것을 내 주변에 비교군으로 두느냐에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는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비교하기 전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비교하기 시작하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복이 풍성하고 내게 충분하지만,

내 주위의 다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면,

내가 뭔가 빈약한 인생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비교하다 보면.. 그 생각의 결론은 결핍으로 끝이 나게끔 되어 있어요.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백설공주가 있습니다.

그 백설공주의 왕비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왕비는 그 나라에서 두 번째로 예쁜 여인이었어요.

 

여러분 혹시 여러분 주변 가운데, 그 나라에서 두 번째로 예쁜 분 본 적 있어요?

저는 없습니다. 근데 아마 실제로 만나보면, 상당히 아름다울 겁니다. 뭔가 아주 다르겠죠.

 

그 정도면 굉장히 아름다운 분이지만, 그가 매일 밤 거울을 쳐다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물어보면,

그 때 거울이 ‘백성공주 입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교의 끝은 무엇이냐 하면, 그 상대를 죽여야만 되는 거예요.

비교는.. 자기뿐만 아니라, 질투하고 있는 상대 역시,

미움으로 죽이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1)

 

그런데 이 비교는 영적으로 살펴보면 더욱더 심각합니다.

비교는 내가 하나님께 아무리 큰 복을 받아도, 그것을 작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요.

 

인간이 최초로 죄를 지은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비교였어요.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가인이 아벨과 비교하여,

자신의 예배가 부족하다면 부족한 예배를 바르게 드리면 될 터인데,

자기가 비교하고 있는 그 상대를 죽여서,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살펴볼 여호수아 16~17장의 내용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땅 분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파의 중심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은 비교의 마음이었어요. 비교 의식!

 

야곱의 자녀 가운데 장자는 르우벤이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장자의 직임에서 해임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이 요셉에게 넘어가게 되었어요.

 

역대상 5: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원래 장자는 르우벤이었는데, 그는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습니다.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였어요. 그 죄로 인하여서 장자의 명분이 해임되었고,

그 역할이 요셉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분깃을 받을 때, 장자는 두 배의 몫을 받습니다.

그래서 장자 역할을 이어받은 요셉은, ‘요셉’이란 이름으로 지파를 이룬 것이 아니라,

그의 두 자녀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이루게 됩니다. 두 배의 몫을 반은 거죠.

다른 지파는 갖지 못하는 엄청난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분배받은 것에 대해서

색깔로 구분해 놓고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땅이 보입니까? 요단강을 중심으로 하여서 동편에도 있고 서편에도 있습니다.

한 지파가 갖는 땅이, 요단강을 좌우로, 굉장히 큰 땅을 가지고 있어요.

(므낫세 땅이 넓은 것은, 므낫세 인구가 많았어요)

 

더군다나 에브라임 지파도 보입니까? 에브라임 지파,

그러니까 요셉에게 두 분깃이 주어져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땅을 받게 되었는데,

그 땅의 면적을 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어느 지파보다 큽니다.

 

더군다나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을 다 합치면,

가나안 땅의 거의 1/3 정도 될 만큼의 엄청난 크기를 받았어요.

땅만 큰 것이 아니라, 그 땅 안에 굉장히 중요한 지역들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동서와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고요.

그 안에 가장 강한 성인 여리고성이 들어가 있고, 또한 벧엘도 들어가 있고,

또한 회막이 처음으로 세워진 실로까지.. 그들이 받은 땅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단순히 땅만 큰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영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을 허락받았어요.

 

▲그런데 이 땅을 분깃으로 받은 이들은, 그 땅을 분배 받자마자

여호수아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수16: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여러분, 이 말씀은 가만히 뜯어 보시길 바랍니다. 굉장히 놀라운 말을 하고 있어요.

그들은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자손에게 큰 복을 주셔서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많은데,

더 큰 땅을 주셔야지, 이런 땅을 주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지금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 지파가 하나님께 이미 큰 복을 받았는데,

그래서 자기들의 숫자가 다른 민족의 숫자에 비해서 훨씬 많은데,

왜 이렇게 좁은 땅을 준 것입니까?’ 라고 지금 불평하고 있는 것이죠.

(남의 떡이 크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의 땅을 빼앗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 내용은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살다 보면 사람인지라 비교할 수밖에 없고,

비교하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됩니까? 저 사람은 저것이 있는데, 나는 왜 이것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 가정은 왜 이렇습니까? 내 삶은 왜 이렇습니까?’ 라는 비교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생각과 감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마음과 생각에 대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것을 한번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첫 번째,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스스로 개척하라!

 

자신들이 받은 땅이 좁다고 불평하는 그들에게, 여호수아가 다음처럼 말합니다.

 

17: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서 그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큰 민족이 되었으니, 불평하지 말고 스스로 땅을 개척하라.

너희에게 준 땅 안에, 너희들이 개척해야 될 영역도 있으니,  *브리스, 르바임 등

거기로 올라가서 그 땅을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주신 복 안에는 사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가문에게 장자의 명분을 준 것은,

두 배로 축복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책임감 있는 인생을 살라고 두 배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장자 지파는 다른 지파의 모범이 되고,

그들이 어려울 때 그들을 보호해야 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요셉은, 기근 가운데 그 형제들을 전부 다 먹여살렸어요.

그래서 요셉이 장자의 명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 세대가 되었던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들은

받은 축복은 많은데,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다른 형제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 것을 빼앗아 나에게 달라'라고 지금 요구하고 있어요.

또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이니, 더 다가가서 요구하기가 쉬웠겠죠. 동향이니까요.

 

그래서 그들에게 주어진 땅 안에서 개척하면 되는데, 개척은 제처 두고

남의 좋은 것을 지금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수아가 ‘산지를 개척해서 차지하라’고 말하자, :16

그 말을 들었던 그들이 다시 여호수아에게 다음처럼 반박합니다.

 

17: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여러분, 이 말을 가만히 보세요. 이 말에는 엄청난 모순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우리는 큰 민족이 되었다’ 라고 말을 했어요. :14

 

‘큰 민족’이란 단순히 숫자가, 많은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강한 민족이라면 땅을 스스로 개척해라’ 라고 말을 했더니,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냐면,

‘우리는 큰 민족이다’ 라고 자랑은 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산지 아래 골짜기에는 수많은 가나안 족속이 있고,

또한 철병거로 무장한 군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6

 

이를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쉬운 땅’이었어요.

 

그들은 땅이 아니라 ‘쉬운 땅’을 원했던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개척하지 않아도 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며, 평안하게 들어가서 그냥 얻을 수 있는 땅을 원했던 것입니다.

 

골짜기가 아니라 평지이며 철병거가 없는 비어있는 땅을 원했던 것이죠.

땅은 원했지만 땀을 흘리기는 원치 않았어요.

땀을 흘리지 않는데, 그 땅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런 땅이 있습니까?

 

들어가고 싶은 대학은 있는데, 공부를 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목표는 큰데,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하지만, 가정에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다시금 이렇게 말합니다.

 

17:17~18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 다시 한번 믿음의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큰 민족일 뿐 아니라 큰 권능이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큰 권능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들 안에 있는 어떤 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여호와의 능력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우리가 전쟁에서 이겨서, 땅 분배에 오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얻었던 모든 승리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너희들 가운데 있는 그 모든 적들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불평하지 마시고, 비교하지 마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하나님과 함께 아름답게 기경해 나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기 때문에 그래요.

 

 

▲파라과이에 카테우라 라는 가난한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인데, 이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매일같이 쓰레기를 줍고,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단지 쓰레기를 주워다가 팔므로, 가정의 생계를 도울 뿐입니다.

 

이 마을 안으로 2000년대 초반에, 파비오 차베스 라는 환경기술자가 들어갔어요.

이분의 목적은 그곳에 있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 막상 들어가 보니까, 그 안에서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게 된 거죠. 너무나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차베스는 음악을 전공한 분이었고,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하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겠다라는 마음과 비전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음악을 가르치려면 악기 도구가 있어야 되는데, 악기가 없는 겁니다.

이 도시에서 바이올린 하나의 값은, 집 한 채 값만큼 비쌌습니다.

 

그런데 고민하고 있다가, 그 안에 있는 니콜라스 고메스 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이분은 손 기술이 정말 좋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마음을 합해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자. 악기를 만들어주자!’

‘여기에 쓰레기가 많으니, 이것을 활용해서 악기를 만들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통들과 깡통을 가지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몸통으로 쓰고

넓은 수도관을 가지고 와서 관악기를 만들었습니다.

 

버려진 포크, 숟가락, 병뚜껑, 나무조각을 갖다가 악기를 만드는 도구로 활용해서

악기들을 만들어냈어요. 아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꿈과 희망을 집어넣어주고

그 오케스트라 이름을 ‘카테우라 재활용 오케스트라’로 지었어요.

 

이 장면이 파라과이 사회 가운데 기사화가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TV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차베스는 이 안에 들어와서 재활용 회사를 일으키길 원했는데, 그거는 잘 안 됐어요.

그런데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쓰레기를 보내지만, 우리는 세상에 음악을 돌려보냅니다.

우리 가운데 갖고 있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 쓰레기라 할지라도

우린 세상을 위한 악기로 연주해 나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삶의 의지를 말한 것입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허락해주신 그것들을, 귀하게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없는 것에 대한 목록을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쓸 수 있습니다.

‘돈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처럼 좋은 기회도 없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목록을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데,

그 끝은 결핍이라는 감정입니다. 그러면 불만족으로 끝이 나게 되어 있어요.

 

내게 없는 것을 가지고,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땅을 하나님과 함께

아름답게 기경해 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요셉의 두 지파,

이들 바로 앞에 어떤 가문이 있었습니까? 유다지파가 있었어요.

 

지난주에 살펴봤던 유다지파 가운데, 갈렙 가문이 있습니다.

갈렙은 외쳤습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에 앞서,

40년간 그 헤브론 산지를 자기 마음 속에 품었어요. 가장 험악한 산지였습니다.

 

누군가는 사명을 가지고 산지로 나아가는데,  *유다지파, 갈렙

누군가는 좋은 땅을 받아도 불평하고 있습니다.  *요셉 지파

 

그의 사위가 되었던 옷니엘, 그는 기럇 세벨로 올라갔습니다.

그 산지에 있는 모든 가나안 사람들을 내쫓았어요.

그런데도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악사와 결혼하여 광야 땅을 받았고, 받았습니다. 광야 네겝으로 나아갑니다. *지난 주 설교

불평하지 않아요. 더 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땅을 기경할 샘물을 구합니다.

 

동일한 시간 대에 제비뽑기가 이뤄지고 있어요.

제비뽑기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감사하며 그 산지로 올라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가장 좋은 땅을 받았는데 더 달라라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까지 경험했는데,

신앙의 결과는 달라지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역시 갈렙처럼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말은 무엇이냐면

'더 많은 것을 구하기 전에, 남겨둔 것을 정리하라'

 

더 많은 것을 구하기 전에 남겨둔 것을 정리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찾아와 ‘땅이 비좁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16:10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주2)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에브라임 지파가 못 쫓아낸 게 아니에요.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무엇이냐면, ‘가나안 족속이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그들의 경제적 이득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편리함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을 종으로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죠.

 

그러니 그들 가운데 실제로 주어진 땅이 그들이 살기에 비좁지 않았어요.

비좁았던 이유는, 그들이 분배받은 땅 안에서, 쫓아내야 될 대상들을 쫓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살아야 되니까, 땅이 비좁아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주신 그것들,

‘좁다’라고 말하기 이전에, 우리 안에 정리되지 않는 삶의 영역들은 없는가?

돌아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집이 적은 것이 아니라, 짐이 정리되지 않은 거예요.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 놀고 공부하려다 보니까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살아갈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일과 오락에 시간을 다 썼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쓸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더 달라고 하기 전에,

‘내 삶 가운데 나 스스로 인생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없는가?’

돌아볼 수 있기를 축복해요.

 

그 가나안 백성을 자신들의 이득을 위하여,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큰 문제가 아닌 줄 알았어요.

 

여러분 원래 큰 문제는 그렇게 시작하는 법입니다.

처음부터 큰 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없어요.

누가 보더라도 티도 안 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까.. 그것을 품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죄’에게, 우리의 방 하나를 내어주면,

얼마 못되어 집주인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에브라임 땅 가운데 죄의 문제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조용히 번식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에브라임 땅 안에는, ‘실로’라는 지역이 있어요.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 성막이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던 곳입니다.

영적으로도 중요한 땅이었어요. 그 땅 안에서 오랫동안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그곳에 있었어요. 법궤가 그곳에 있었어요. 날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굉장히 좋은 땅이에요.

 

그런데 그 땅 안에서 가나안 사람을 품기 시작합니다. 동거하기 시작합니다.

그 죄가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 죄가 점점 번식하여

나중에 실로 땅이 어떻게 되냐면, 영적으로 풍성한 땅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땅으로 변하게 됩니다.

 

렘7:12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보라’

 

여러분 보십시오. 영적으로 중요한 땅을 배정 받았지만,

그 땅 안에서 죄의 씨앗을 남겨두었더니, 그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이 그 땅을 갈아엎지 않으면 안되는 땅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기업이 적었던 것이 아니예요. 믿음이 적었던 것입니다.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주십시오.. 사업장이 확장되기를 원합니다.. 사역의 문을 열어주세요..

큰 영향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런 기도는 반드시 해야겠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그 기도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야만 합니다.

 

‘내 안에 남겨둔 것은 없는가? 유익하다는 이유로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랜 기간 한쪽 눈을 감고 있었던 부분은 없는가?’

 

요셉 자손이 요구해야 될 것은 더 큰 땅이 아니라, 더 큰 믿음이어야만 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삶의 영역을 정리해 나간다면,

그들은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땅을 이미 받고 있었어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땅이 부족하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밖으로 개척해 나가라’   *1대지

또 하나 ‘너희 안에 있는 것들을 과감히 정리하라’   *2대지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밖으로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나의 내면 가운데 정리할 부분이 없는가?’

그것을 돌아보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죠.

 

밖으로 향한 믿음과, 안으로 향한 믿음,

이 두 가지 방향성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 인생의 균형을 맞춰 가는 거예요.

그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한 기사를 보게 되었어요.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의 3배를 태운 미국의 산불 원인은 좁쌀만한 이놈이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2018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북부에서 벌어진 큰 산불이 있었어요.

이 산불의 크기가 서울의 3배 정도였습니다. 엄청나게 큰 산불이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냐면 딱정벌레인데, 이 딱정벌레의 몸 크기가 4MM입니다.

굉장히 작은 딱정벌레가 나무 속에 들어가, 그 나무를 갉아먹어

그 나무에 불이 붙어서 전체 산림을 태웠다는 말입니다.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딱정벌레가, 나무속에 들어가면 나무속을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나무가 생기를 잃어버려서, 그 나무 색깔이 하얗게 뜨게 돼요.

 

 

숲 사진을 보면 푸른빛 나무와 하얀빛 나무가 있을 겁니다.

그 하얀빛 나무 모든 나무들이 딱정벌레에서 먹힘을 당한 나무(고사목)들이 됩니다.

 

이 나무들은 빨리 전기톱으로 잘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짝 말라버린 이들 나무가, 거대한 땔감 창고가 됩니다. 

번개가 치거나, 고압선에서 전기가 튀거나, 고사목이 쓰러질 때 서로 마찰이 일어나,

불이 붙게 되면.. 산 전체를 태우게 된다는 것이죠.

 

2018년도에 벌어진 그 산불은, 그 원인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나무 하나가 서있는데, 그 나무는 800년 된 나무입니다.

800년을 이어왔다면 그동안 수많은 가뭄과 태풍과 폭우와 모든 것을 견뎌 오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이 나무의 옷이 하얗게 떴어요. 그 딱정벌레가, 안에 들어가,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적으로 오는 태풍을 8백여 년 동안 막아낸 나무이지만,

안쪽으로 딱정벌레가 들어가면 하얗게 떠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딱정벌레를 잡아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딱정벌레 남겨둔 것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복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작은 탐심, 오래된 미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음란한 생각들,

비교와 교만에서 오는 악한 생각들, 무너지는 감정들... 그것들을 품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품는 것만큼, 우리 삶의 영역이 작아지게 되어 있어요.

아무리 작은 죄라도 그것을 품기 시작하면, 우리 삶의 영역이 좁아집니다.

 

마음으로 미움을 품으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품지 못해요.

누군가를 사랑해야 되는 그 마음의 공간만큼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를 품으면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욕심을 품으면 감사가 사라져요.

두려움을 품으면 믿음의 도전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가운데 어떤 것들을 품기 시작하면,

그것에 우리의 마음이 묶여서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믿지 못하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더 섬기지 못하여 그 인생 자체를 좁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상처에 갇히고 욕심에 갇히고 두려움에 갇혀서

하나님은 더 넓은 세계로 주와 함께 나가기를 원하는데

스스로의 인생을 동굴 속에 가두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분의 손을 붙잡고 그분이 이끄시는 곳까지 인생을 넓게 쓸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마다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로마서 6:6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오늘 하루 보낼 때, 우리가 이 말씀을 좀 암기했으면 좋겠어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첫 번째는 무엇이냐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첫 번째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매우 중요.하죠.

 

그런데 두 번째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무엇이냐면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 안에 죄의 딱정벌레가 들어와서 우리의 믿음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우리가 자녀인데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종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노릇하는 거예요.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가 이미 끝이 났다, 죄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서 이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우리는 죄와 싸워서 이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싸워 이길 만한 능력이 없어요. 그분이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그분의 승리가 내 승리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 되는 것이죠. 그 십자가를 붙잡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업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어요. 믿음이 부족한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은 하나님이 알아서 그들에게 맞는 땅들을 주셨어요.

이미 큰 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땀 흘리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갈렙은, 그 집안은 그 산지를 위하여 올라갔어요.

요셉지파는 ‘땅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 안에 채워놓았던 죄들이 있었어요.

더 달라라고 구하기 이전에, 우리 안에 있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가 정말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 마음 담아서 ‘나는 믿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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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심리학 교수인 피터 살로비(Peter Salovey)라고 하는 교수님은

‘범죄의 20%가 질투에서 비롯된다’ 그랬고요,

또 그레고리 화이트 박사(Dr. Gregory White)라고 하는 분은 "질투 임상학",

"클리닉 오브 젤러시"(Clinic of Jealousy)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말합니다.

 

부부관계로 살다가 이하되는 거... 원인의 30%가 질투라는 거 예요.

여러분 사업도 ‘질투’ 때문에 실패하는 걸 아십니까?

우리가 그런 흔히 말하는 ‘무한 경쟁’이라고 합니다만,

이 경쟁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병신 만드는 거예요.

 

경쟁하는 동안에 내 페이스를 잃어버려요, 도덕성도 잃어버려요.

더구나 허약한 체질이 남들과 경쟁을 하게되면 죽어요.

자기 수준, 자기 능력을 잊어버리기 때문이예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바로 된 인간은, 자기 존재와 수직적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크게 여깁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자기 소명과 사명에 충실합니다. 남들과 경쟁 안 합니다.

 

그러나 시원치 않은 사람(1 달란트)은, 옆사람 말이면, 이 수평적 관계에 신경을 많이 써요.

‘남들이 뭐라고 하나? 체면이 어떤가?’ 이걸 생각 하다가 골병드는 거예요.

 

교회끼리도 경쟁하고, 질투하고, 비교하고...

그거 하느라 자기 페이스를 놓치기 쉽습니다. ‘준거집단’과 이렇게 비교하죠.

 

정신병자가 따로 없어요. 이렇게 될 때, 사람은 병신 되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1달란트를.. 그냥 파묻어버리는 거죠. 화가 잔뜩 나 있는 거예요.

 

‘남이 어떻게 한다’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남 같이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데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이 높이 평가받고, 자기가 낮게 평가되는데 대해서 불평했어요.

또 주인의 그 자기 재능 평가에 대해서 불만이예요.

‘왜 하필 이면 나를 1달란트 밖에 관리할 능력이 없는 자로 평가했느냐?’는 거죠.

이걸 수용할 마음이 없었어요.

 

 

주2) 본문 16:9~10절은 성경만 읽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아래 주석의 배경을 이해해야,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16: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어떻게 해서 에브라임 지파가 므낫세 지파의 기업에 살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므낫세지파의 기업이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일부 성읍을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다고 해석하였다.

 

즉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으므로, 경계선이 재조정되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선이 상향됐다는 것이다.

 

수16:10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수17:11 '잇사갈과 아셀에도 므낫세의 소유가 있으니'

잇사갈 지파의 기업 내 뿐만 아니라 아셀 지파의 기업 안에도

므낫세 지파에 속한 성읍들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분배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이 확정된 연후에야 이루어졌다

(19:17-31). 그러므로 본 기록은 시간 순서에 따른 기록이 아니며,

단지 므낫세 지파의 기업을 전달하기 위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앞선 기록(16:9)에서, 우리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중에도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이제는 아셀과 잇사갈 지파의 기업 중에도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있음을 본다.

 

이처럼 이스라엘각 지파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지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상황과 필요에 따라 시간을 두고 상호 재조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서로 연합하여 상부 상조해야 할 공동체

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