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수18장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LNCK 2026. 8. 20. 15:56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결단, 선택>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2026-08-16) Youtube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수18:1~10                  2026.08.16.

 

여러분, 여러분은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미국 유타주에 협곡을 지나고 있었던 등반가 아론 랄스턴은

갑자기 큰 바위가 떨어지면서 오른팔이 협곡과 바위 사이에 끼게 되었습니다.

팔을 아무리 빼려고 해도 빠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주변에 도울 사람은 없었고요.

 

구조를 요청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물과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처음 며칠간은 그 바위를 부수며 어떻게든 팔을 빼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일반적인 판단으로 ‘이제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결론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가운데 갇히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이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계속 구조를 기다린다

두 번째, 끝까지 팔을 빼는 기존의 방법을 반복한다

세 번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러분은 어떤 결정을 할 수 있겠어요?

 

이 순간에 아론 랄스턴은, 자신의 인생까지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갇혀있는 피해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로 결단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해야 될 주체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데, 팔을 부러뜨려 자릅니다.

그리고 그 협곡을 빠져나와 구조를 받게 되었어요.

 

누구나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결정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론 랄스턴은, 우리 인생에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살기 위하여, 그의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던 것이죠.

인생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입니다.

 

▲아론 랄스턴 같은 결정을 우리가 내릴 일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하루 평균 150가지 이상의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고요.

 

운동을 할지 말지, 점심을 어떤 걸 먹을지,

어떤 TV 프로그램을 볼지에 대한 사소한 결정으로부터,

이직을 할지 말지, 운동을 할지 말지, 재테크는 어떻게 할지..

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풀지에 관련된 생활에 대한 부분과,

 

또한 이렇게 날씨가 궂은 날에 예배드리러 교회 갈지 말지,

오늘 말씀을 듣고 순종할지 말지,

내 판단을 따를 것인가, 말씀을 따를 것인가? 우리는 수많은 결정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현대인은 선택지가 많은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까, 선택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선택은 무엇이냐 하면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하는 순간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내가 져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으므로 그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결정하지 않는 결정이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자기를 무너뜨립니다. 자기를 신뢰하지 못하는 감정이 쌓이게 돼요.

 

‘아니 너는 어떻게 이런 사소한 문제 하나도,

너의 인생인데 이것을 나는 왜 결정하지 못할까?’ 라는 마음이 쌓이게 되면서,

자기 효능감, 자신감, 자존감이 떨어져서,

결국 결정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내 인생을 결정하게 되고,

우리는 끌려가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까지 주신 최고의 선물 중에 하나는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는 다른 말로 자기결정력, 자기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책임있는 인생을 살아가며,

기도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유의지를 어떻게 쓰는 것이냐면,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 인생의 결정을 내려갈 때.. 우리 삶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어요.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면

그 믿음을 따라 결정하며 선택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결정과 선택에 관련된 말씀으로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아직 땅 분배를 받지 못한 7지파

수18: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이제 땅 분배를 함에 있어서 일곱지파가 아직 받지 못했습니다. 18:2             주1)

그 가운데 성경은 다음처럼 그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수18: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이 말씀을 가만히 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혹시 우리 인생 가운데 중요한 결정 앞에서,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한 부분 있지 않습니까?

 

혹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 무엇인지 몰라 결정을 못하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혹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두려워서 결정하지 못하고 지체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삶의 기준이 명확해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1.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결단해야 함을 우리 가운데 말해주고 있어요.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의 전쟁은 7년 반만에 끝났습니다.

그래서 1절 말씀에서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수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1절에 보니까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다’고 합니다.

참고로, 여기 실로에서 회막은 약 350년을 지내게 됩니다. 삼상 4장 아벡 전투까지.

 

‘이 땅이 하나님의 땅입니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소를, 실로에 세운 것입니다.

그 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이어서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1b

여기서 정복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그 땅에 있는 모든 가나안 백성들을 모두 다 내쫓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땅에 대한 주권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땅 안에는 싸워서 이겨야 할 가나안 백성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싸우는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부터 벌어지는 전쟁은 그들이 제비를 뽑아 들어가는 땅 안에서

그들 지파가 각자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18: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그런데 그들 가운데 아직까지 본배받지 못하고 남은 지파가 일곱 지파가 있었어요.

요단강을 기준으로 해서 요단 동편에 이미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땅을 받았어요.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와 요단 서편에 7년 반 동안 가나안 정복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전쟁이 끝난 다음에 유다가 가장 먼저 땅을 받았고요.

그 다음에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지파가 또 땅을 분배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아있는 지파는 이제 7지파가 되는 거예요.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 스불론 지파,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단 지파

 

그런데 그들 역시 빨리 제비뽑기에 동참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땅이 어딘지를 알고

그 땅으로 나아가 전쟁을 치러야 되는데, 그들은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3절, 오늘 우리가 중점으로 붙잡고 있는 말씀에,

그 땅으로 나아가 전쟁을 치러야 되는데, 그들은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3

라며 지금 여호수아가 그들을 채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이들은 왜 제비뽑기를 하지 않고 있는 거죠?

그들 앞전에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가 제비를 뽑았어요.

근데 뽑은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평지가 아니라 산지였어요.

더군다나 철옹성 같은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전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 땅에 대해서 불평하였습니다. *수17장

 

그런데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점령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질 땅을 빨리 뽑지 못하는 거예요.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아마 옆에 있는 지파 옆구리를 찔렀을 것 같습니다.

‘니가 먼저 해, 니가 먼저 해, 니가 먼저 해..’

그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땅이 있다라는 믿음으로

제비뽑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지금 슬슬 눈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수아가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며 그들을 채근하고 있어요.

조금 전까지 싸움은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싸우는 싸움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

 

여호수아가 선봉에 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모든 전쟁에 관해 승리를 경험했어요.

그때는 모든 지파가 다 함께 나와서 한마음으로 전쟁을 치뤘습니다.

 

12지파가 함께 치르는 전쟁이 끝났어요. 18:1

이제부터 전쟁은 각 지파에게 주어진 땅으로 들어가서, 각 지파의 전쟁을 치러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각자의 전쟁 앞에서 지체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함께 싸우는 전쟁과 각자가 치르는 전쟁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함께 전쟁을 할 때는, 믿음으로 나아가는데

개인의 전쟁으로 들어갈 때는, 한없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지금 여름 시즌을 보내면서, 교육국과 청년국의 여름 캠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현장을 가보면,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요.

십대 아이들, 청년들이 찬양할 때 보면, 방방 뛰는데 손이 천장에 닿을 것만 같습니다.

기도하는데 입에서 불이 나가는 것 같아요. 기도할 때면 눈물 콧물 다 쏟습니다.

 

그래서 자매들 같은 경우에, 팬다 곰으로 변하게 돼요.

화장이 내려와서 눈 주위가 검게 되는 거죠.

 

근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정말 그 모습 그대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팽팽한 고무줄을 놓을 때,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전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성도들이 해외로, 국내로 비전트립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그 땅을 밟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경험해요.

정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바대로 ‘네가 밟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리라’ 라는

그 경험을 그 땅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돌아가면, 내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리라’

라는 결단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쌓여있는 설거지와, 집안 일과, 회사 일을 바라보면서

심한 영적 요요를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요요 : 과거 상태로 되돌아가버림

 

갈 때보다 더 흐트러진 모습이 그때부터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주일날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드립니다. 찬양할 때 막 심장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영성이 뜨거워진 것 같아요. 말씀을 들을 때면

‘아 이 말씀은 정말 나를 위한 말씀이다’ 라며 그 말씀을 붙잡기도 합니다.

 

마지막 결단의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이 문을 나갈 때면,

‘이제는 결코 돌아서지 않으리. 나는 예배드릴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나가지만,

주차장에 내려가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교회 가운데 은혜가 가장 많이 쌓여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주차장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은혜 다 쏟아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기에, 거기에 은혜가 많이 쌓여있대요.

 

여러분, 주차장에서, 받은 은혜를 쏟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승리해 나가야 되는데, 공동체로 함께 할 때는

‘내가 은혜 받은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 같고,

나의 결단이 살아있는 것 같은데...’

 

그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나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갈 때마다,

무너지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하고 있는 것이죠.

 

주일 예배의 뜨거움과 결단이,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교회가 부흥한다고 하여서 개인의 인생이 부흥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는 깨어있는데.. 개인은 잠들어 있을 수가 있어요.

공동체가 전진해 나가도.. 개인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그 은혜가,

우리의 일상과 삶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간디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1온스의 실천은, 1톤의 설교보다 더 가치 있다’  1톤은 35,274온스예요.

 

그러니까 간디의 이 말이 맞다면 ‘35,274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번의 실천이 더 강하다.

더 의미 있다’ 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믿음의 열매는 순종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 여러분, 결단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결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붙잡음과 동시에 무엇인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어요. 그래서 결정이라는 영어 단어를 보면 Decide인데

라틴어 Decitere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떼어내다, 잘라내다’의 합성어예요.

 

결정은 무엇이냐면, 떼어낼 것을 먼저 결정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로 움켜쥐는 겁니다.

여러분, 세상과 하나님.. 모두를 다 취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불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잘라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각자의 싸움이 있어요.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만, 흩어지면 각자의 싸움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싸움, 자녀를 믿음으로 세우는 싸움, 직장에서 타협하지 않는 싸움,

오래된 내면의 상처를 다루는 싸움들, 음란, 중독, 오래된 습관과의 싸움들 남아있습니다.

미뤄두었던 사명과의 싸움도 있습니다.

 

그 싸움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요. 목회자도 부모도 배우자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치러야 될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무엇이냐면

‘믿음으로 일어나 맡겨진 땅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결단하였다면 믿음으로 일어나 맡겨진 땅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책망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였어요.

그는 그래서 다음처럼 말을 합니다.

 

수18:4 ‘너희는 각 지파에 그들의 기업을 따라 그 땅을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니라’

 

여호수아는 ‘지체하지 말라’ 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지파에게 ‘너희 각 지파는 대표 3명씩 선발하라’

그러니까 일곱지파에서 3명씩 선발을 했으니까 21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두루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나에게 가져와라’ :4

 

‘가만히 앉아만 있지 마라.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있지 말고,

종이를 가지고 그 땅을 두루다니며, 그 땅이 어떤 땅인가, 그 땅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그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인가, 그 땅에 전쟁을 벌일 곳은 어디인가?’

너희들의 구체적인 그림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두 가지 성격을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은 두 가지 성격이 있어요.

 

▲1. 첫 번째, 믿음은 동사입니다. 믿음은 움직이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했어요. ‘왜 지체하느냐?’

그런 다음에 뒷말이 무엇이냐면 ‘더 큰 믿음을 가져라, 더 많이 기도해라, 더 많이 고민해라,

더 많은 전략을 짜라, 더 많이 생각하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만 책상을 박차 일어나 그 현장으로 나아가라, 그 땅을 두루 다녀라,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돌아와라,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움직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믿음을 머릿속에만 가둬두면 그 사람은 움직일 수가 없어요.

믿음이 발끝으로 내려와야.. 믿음의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으면, 나아가서 그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누가 문을 엽니까?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신다고 믿는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누가 나아갑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땅이 있다고 믿는 그 사람이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은 ‘동사’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으로 알려져 있어요.

거기 나와있는 믿음장 ‘믿음 짱’들에 대한 이야기가 히11장인데,

거기 기록되는 모든 분들은.. 모두 다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믿음으로 노아는 백년간 방주를 짓습니다.

누가 조롱과 비난 속에서, 마른 하늘에 햇빛이 쨍쨍한데, 방주를 지을 수 있겠어요?

‘믿는’ 사람이에요. 믿는 사람은 움직여 방주를 짓는 겁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누가 정든 고향을 갈 바도 알지 못하는데 나아갑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은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땅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는 왕자됨의 자리를 거절합니다. 누가 그 자리를 거절해요?

모든 사람이 그 자리로 올라가기를 원하고 있는데요. 누가 그 자리를 거절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출애굽의 리더로 부르셨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거절하고, 광야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기생 라합은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보호합니다.

수색하는 여리고 군사들이 찾아왔지만, 자기 목숨을 걸고 그들을 보호합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방주를 짓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나아가는 거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왕자의 자리를 거부하는 것이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해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고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서로가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작은 머릿속에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 몸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갑돌이와 갑순이의 불행이 우리가운데 벌어질 수 있어요.

여러분,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김세레나 씨가 불러갖고 히트신 곡 있잖아요. 내용은 다 아실 겁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에 빠졌어요. 누구도 먼저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있지만, 다가가지 않는 거예요. 갑돌이가 큰 결단합니다.

매일같이 편지를 써요. 그런데 찾아가 고백하지 않습니다. 편지만 맨날 써요.

그러다가 결국 갑순이는 다른 남자가 결혼하게 됩니다.

그 갑순이가 누구랑 결혼했는지 아세요? 그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와 결혼했답니다.

갑돌이가 편지를 쓰면 쓸수록, 더욱더 우체부가 갑순이를 만나게 돼서.. 만나다가 정들었대요.

그리고 결혼했답니다.

 

사랑도 머릿속에만 있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움직여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열매를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두 번째, 믿음은 ‘그림 그리기’입니다.

믿음은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행위예요.

 

수18: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 올 것이라

 

위 구절에 네 가지 동사가 등장합니다. 일어나라, 두루다녀라, 그려오라, 돌아오라.

이 모든 동사의 목적은 무엇이냐면 ‘그려오라’는 것입니다.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리지 말고,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그 땅을 밟아보고,

‘그 땅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에요.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구체적인 실상을 갖는 것입니다.

 

누가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까? 그 그림이 명확한 사람이에요.

그 그림이 흑백이 아니라, 칼라로 명확한 그 사람 믿음을 정말 그려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믿음이 생각 속에서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세요.

 

▲그래서 성경에 나와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어요.

느헤미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라는 사명을 받았어요.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도 모르게 밤에 나가서

그 성 전체를 그리기(살펴보기) 시작합니다.

 

느2:13~16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

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도 모르게 그 밤에 나가서

그 성 전체를 둘러봅니다. 그 밤에 골짜기 문을 통과하여

분문 dung gate 으로 나아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정도를 직접 확인합니다.

 

샘문으로 나아가 그 길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점검합니다.

시내를 타고 올라가 성벽을 자세히 보며, 그 성을 어떻게 재건 할지에 대한

설계도를 (일단은 머릿속으로) 그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느2:17b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아멘!

그 얘기는 설계도가 있었어요. 그림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꿈꾸고 있었는데

느헤미야는 누구보다 발빠르게 그 성을 두루 밟아다니며

그 성을 재건할 믿음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겁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어요. 성경에서 요셉은 누구보다 꿈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꿈만 꾸고 있지 않았어요. 그는 꿈을 이뤄나가는 실행가였습니다.

 

창41:45~46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요셉은 총리가 되자마자 총리실에서 누리고 있지 않았어요.

그는 곧바로 나아가서 애굽 온 땅을 순찰합니다.

 

애굽 온 땅을 순찰하면서,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던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흉년을 준비하는 겁니다.

적어도 14년간의 설계도가 그의 두 손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 2백만명이 되기까지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그림 그리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어떤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지,

기도하는 가운데 품는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십시오.

구체적으로 그리세요. 그리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믿음의 가정 되기를 원합니다!’ 그 소원은 정말 좋은 소원이에요.

그런데 어떠한 모습이 믿음의 가정의 모습일까요? 그것을 정의하셔야 돼요.

 

부부가 함께 모여 언제 예배하며, 자녀들과 어떻게 영적 소통을 나누며,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어떻게 결정할 것이며,

우리 가정이 재정과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있는 가정이

믿음이 있는 가정입니다.

 

우리 회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소원은 좋은 소원이에요.

그런데 어떤 기업이 하나님의 기업되는 것입니까? 막연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는 재정은, 경영은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그 그림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는 거예요.

 

내가 야망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깊은 기도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 또는 데스티니를 캐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그 비전, 그 마음, 그 꿈, 그것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마지막 결정은 여호와 앞에서 해야 한다’

 

마지막 결정은 여호와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까지만 들으면 ‘자기 개발’가르침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앉아만 있지 말고 행동하자’, ‘나가서 그림을 그리자!’

그리고 나서 ‘꿈은 이루어진다’ 하고, 자기가 선언하고 믿고 나아가면

정말 다 이루어지는 것인가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본문은 한 가지를 정말 중요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 앞에서’ 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쓰고 있어요.

 

이제 각 지파에서 선발된 3명, 총 21명은 그 땅을 두루다닙니다.

그리고 각자가 그림을 그려옵니다.

그리고 그 그림(가나안 중부와 북부) 가운데 7군데를 경계선을 그어,

그들이 만들어온 그림을 가지고 여호수아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는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하냐면,

‘자, 이제부터 너희들이 원하는 땅을 골라가져라’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했냐면 그 그림을 가져오니, 여호수아가 그 그림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내려놓고 제비뽑기를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제비만 뽑아서 모든 것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대표들이 나아가서, 발로 밟고 정탐하고 지도를 그린 후에,

그 지도를 놓고, 어느 지역을 누가 차지할런지.. 제비를 뽑았던 것입니다.

 

앞서 가나안 남부의 세 지파(유다, 에브라임, 므낫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땅 구분도 안 해 놓고, 어떻게 제비를 뽑겠습니까?

 

땅의 크기와 각 지파의 인구 숫자 등을 고려해서,

비슷한 땅을 대강 그려 놓고, 그 안에서 제비를 뽑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의 주권에 남겨놓는 것이죠.)

 

우리 6절 하반절 말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아멘.

 

그들이 지도를 그려 가져고오자, 그 지도를 여호와 앞에 내려놓고, 제비 뽑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다시 한번 10절 말씀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18:10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

 

그들이 땅을 면밀히 그려왔어요.

그리고 가져온 그 지도를 여호수아에게 드리면,

여호수아는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더불어 함께)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돌이나 나무조각 등을 이용했겠죠.

 

그래서 본문은 ‘여호와 앞에서’ 라는 단어를 두 번 강조해서 쓰고 있죠. 18:6, 10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기를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마 ‘실로의 성막 앞에서’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신전 의식’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잡음을 내거나 불복 선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땅(기업)을 주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 그 땅을 밟으며, 지도를 그리고 구체화 시키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한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나의 최선 위에 하나님의 최종 승인이 떨어져야

그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기 인생을 향한 책임감 있는 삶을 살기 원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을 다하여 살아가지만,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 받는 것이죠.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제비뽑기를 통해서

그들이 지도를 그려왔지만, 마지막은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여호와 앞에서 결정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서, 세상의 저울을 쓰지 않겠다는 거예요.

자기의 잣대를 들이대지 쓰지 않는 거예요.

 

‘내가 이 결정을 할 때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들이 나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을까? 나에게 등 돌리지 않을까?’

‘내가 남들 보기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은, 세상의 저울에 내 인생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 그분의 저울 위에 우리를 올려놓는 것이죠.

‘이 선택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일까?

이 선택이 성도다운 선택일까?

이 선택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인가?’

그 무게를 재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호와 앞에서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우리 역시 지금 결정해야 될 문제들이 있는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고 있는 부분은 없지 않습니까?

 

아니면, ‘결정하지 않기로’ 결심하신 분 있습니까?

그것은 내 인생을 환경에 맡기는 거예요.

그것은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인생의 운전대를 넘기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인생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 보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그 선택을 하기를 원하세요.

 

그 선택을 하려면 잘라내셔야만 합니다.

결정은 무엇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져요.

 

하나님의 저울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원치 않는 것은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것을 우리가 붙잡고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이 필요해요. 믿음은 동사입니다. 믿음은 머릿속에 가둬두지 않습니다.

믿음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림 그리기예요.

우리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도전하시고 기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지경을, 그 기업을 모두 다 밟아 나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그 마음 담아서 ‘주님 말씀하시면’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주1)

수18: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라’

 

'기업의 분배를 얻지 못한 자가 오히려 일곱 지파라'

여기 7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차지한 두 지과 반(13:8-33)과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요단 서편에서 먼저 기업을 얻은 두 지파 반(15:1-17:3)을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반

 

제외한 나머지

베냐민 지파, 시므온 지파, 스불론 지파, 잇사갈 지파,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단 지파 등

아직 기업을 얻지 못한 지파들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