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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장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

LNCK 2026. 8. 21. 16:53

설교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성경적인 참 성공

260726_로마서 강해(50)_넉넉히 이기는 사람들(8:31-39)_ Youtube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              롬8:31-39              2026.07.26. [로마서 50강]  

 

우리가 이 본문을 세 번째로 살피고 있는데, 오늘로써 롬8장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37절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래서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 당연히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위 38절에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을 같이 묶어서 설명한 것을 보면,

여기서 ‘권세자’들은 악한 영들의 세력을 말해요.

엡6:12절의 ‘권세’도 마찬가지죠.

 

그럼 이런 존재들이 있다는 거죠.

이런 존재들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설명이 되잖아요.

‘난 열심히 사는데, 왜 이게 안 되지?’ 등등

결국 마귀가 우리에게서 하고자 하는 일은, 우리의 믿음을 허무는 일입니다.

 

늘 그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는 거죠. 근데 이제 결론은 이거에요.

넉넉히 이긴다는 거에요. 영적 전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에도 넉넉히 이긴다!

 

‘넉넉히 이긴다’는 거는, 사실 잘 믿기가 힘든 얘기죠.

왜냐면 오늘날 우리의 얼굴이 그렇게 넉넉히 이기는 얼굴들이 아니에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넉넉히 이긴다’라고 말할 때는, 권투 시합을 예로 들면,

15회전 중에, 한 2회전 정도에서 KO승을 하는 거예요.

그럼 아직 체력도 많이 남아있고, 그게 넉넉히 이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15회전이 마치고 결국 이기기는 했는데,

그 과정에 2~3회 다운 당하면서.. 가까스로 판정승으로 이기는 건, 넉넉히 이기는게 아니죠.

 

38절의 넉넉히 이긴다는 영어로는 ‘more than conquerors’ 그렇게 얘기해요. KJV

이건 ‘정복자 이상이다’ 라는 뜻이죠.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38절에는 ‘넉넉히 이긴다. 우리는 more than conquerors 이다’ 이렇게 말씀하는데,

우리는 겨우 견디며 살지 않나요? 이기기는 해도, 간신히 이기지 않나요?

 

근데 바울은, 얼마나 잘 싸웠길래 ‘넉넉히 이긴대요?’

로마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이게 이제 오늘 우리가 좀 살펴 볼 내용입니다.

 

▲물론 이 말이 해당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8:28

 

이 사람들에게 변하지 않을 미래, 변할 수 없는 미래를

바울은 이렇게 지금 얘기를 하는데,

미래에 대한 얘기이기만 한가요? 아니에요. 현재에 대한 얘기도 같이 하고 있어요.

 

톰 라이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인용할게요.

「따라서 본문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바울이 여기서 하는 일이,

신자를 격려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는 로마에 흩어져 있었고,

종종 도시에서 그리 좋지 않은 지역에 자리한 자그마한 가정교회에 속해 있었을 것이며,

때로는 어떤 큰 집에 종이나 노예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신자들은, 사회의 낙인, 추방, 일터와 생계수단을 잃는 것,

역경과 가난, 핍박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자경단원의 활동이나 국가관원의 단속으로 폭행과 죽음을 당할 가능성도 컸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려는 요점은, 37절도 말하듯이,

우리가 이 모든 일에서 정복자보다 나으며,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은 대단히 극적이다.

이는 우리가 단지 한 전투에서 이기는 차원을 넘어,

전장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게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이 의미하는 바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거죠. ‘과연 내 삶은 그런가?

과연 우리는 그렇다고 우리의 삶을 고백하고 인정할 수 있나?’ 이런 거예요.

 

이 본문은 8:31~38절의 마지막 결론 부분인데,

이 본문에서 다섯 가지 수사적인 질문을 던졌고,

바울은 거기에 대해서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지금 이 결론을 맺고 있는데,

그 결론은 신자의 승리예요. 넉넉한 승리예요.  :37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마지막 질문을 35절에서 마주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게 질문이에요.

그리고 그 대답이 35절부터 39절까지 있는 말씀이에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지금까지 바울이 얘기해왔던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32절에서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셨을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증명하셨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만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내가 끊어졌구나’라고 느낄만한 삶의 자리들이

너무나 우리 삶에서는 많이 일어나는데,

그러면 그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나를 전혀 돌보시지 않는 것 같은데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면, 이런 일이 내 삶에 일어나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이는데도,

절망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나를 끊어내지 않으셨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나?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말하는 거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지금까지는 사도바울이 법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썼어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고,

재판장이 의롭다고 판결하셨는데, 근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냐고, 고발하겠냐고,

시비 걸겠냐고?’

 

근데 이 질문에서는, 사도바울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적인 이미지를 지금 보여주고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예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그 아버지가 나를 어떤 일로 버리실 수 있을까?’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토마스 슈라이너는, 심지어 신자들 자신도,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능력이 없다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정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신자가 화가 나가지고 ‘더 이상 나는 하나님을 안 믿겠어. 내가 하나님을 버리겠어’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거죠. ‘하나님이 네 안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셨다면,

너의 결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너를 끊어낼 순 없어!’ 엄청나게 센 얘기죠.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박해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이랴’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에서도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 7가지를 얘기합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의 7가지 입니다.

 

피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혹시 이 중에 좋아하시는 거 있으세요?

난 칼을 좋아해요. 여기서 얘기하는 ‘칼’은, 처형을 당하는 거예요.

 

우리가... 내 인생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여기서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어야 좋은 것들이죠. 우린 다 두려워요. 이런 것들이 일어날까봐...

 

근데 여기서 얘기하는 칼을 제외하고 여섯 가지는,

바울이 다 자기의 삶에서 겪었던 일들이라는 사실을 아세요?

나중에 ‘칼’도 결국, 로마에서 순교할 때, 바울은 겪게 되죠.

그럼 7가지를, 바울은 다 겪었던 것입니다. 고후11:23~27참조

 

바울은 참수를 당했다고 전해지죠. 로마에 가면 ‘트리 폰타네’라고 그 순교 유적지가 있죠.

베드로는 로마 시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었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면할 수 있었을 겁니다.

폭력적인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십자가든, 칼에 의한 죽음이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내지 못했다’고

바울은 간증처럼 말하고 있는거죠. 8:39

‘이 모든 걸 내가 다 겪었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내지 않더라...’

 

환란, 곤고, 박해’ 이 세 가지는

로마제국과 같이 불경건하고 적대적인, 그리스도에 대해서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받게 되는 불이익과, 그 이상의 압력과 또는 손해와 이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근적신,

적신은 벌거벗김을 당하는 거죠.

벌거벗김을 당하는 건데, 고문을 당하거나 그런 차원의 얘기보다는,

‘기근과 적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가난해서

먹을 게 공급되지 않고, 누더기밖에 입을 게 없는... 그걸 뜻합니다.

그런 극심한 가난의 상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위험은 .. 죽음의 위험이나 실제로 죽음을 만나게 되는 그런 상황들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특별히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이 좋지 않은 게 명백해 보이는 이 7가지 일들을,

바울은 이어지는 36절에서 시편을 인용해요. 시44:22절을 인용하는데요.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아래 시편의 인용입니다.

시44:22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워딩이 똑같습니다.

 

바울이 시44:22절을 인용하는 이유가 있어요.

시44편은 부당한 박해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공동체의 애가’예요.

 

아주 비통함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 고난을,

정당하지 않은 부당한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부르는 노래가 시44편이에요.

 

특별히 22절을 인용을 했는데, 이거는 어떤 얘기를 하는 건가 하면,

우리의 처지가 마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그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쭉 양들이 대기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 양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요? 주인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끌려왔나요?

양들이 주인한테 욕을 했나요? 걔네들의 잘못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양들은 주를 위하여 제사를 위해서 바쳐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 와 있는 겁니다.

 

바울은 지금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너희들이 잘못한 거와 상관없이,

이게 주를 위하여 도살당할 양들이 성전 앞에 대기해 있었던 것처럼

너희들이 지금 그런 자리에 있는 거야’ 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너희들이 믿음 때문에, 너희들이 그리스도를 붙잡는 그 사실때문에

너희가 지금 이 고난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시44:22절에서 얘기하는 성전 앞에 줄지어서 죽임을 기다리고 있는,

도살당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양들과 같은 처지라고’ 지금 말씀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위해서 구별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너희가 바로 그 사람들이야’ 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칼빈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께서 그의 신자들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잔혹성에 부당하게 노출되도록

허용하시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굉장히 자유로운 세상을, 21세기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특별한 고난을 겪어야 하고,

특별한 불이익을 사회에서 겪어야 하고, 직장에서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착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고난을 겪습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살려고 하면, 불이익을 겪습니다.

 

칼빈이 말한 것이요,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증거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여러분들은 주님을 위해서 구별된 사람들이야. 성전 앞에 양들처럼’

이 말이 그들에게 위로가 됐겠죠.

37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나’로 시작해요. 반전의 시작을 알리는 말입니다.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할 양들처럼 너희들은 아무것도 너희가 할 수 없고,

그냥 죽이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고, 너희는 그냥 당하는 입장인데,

그러나 반전이 있는 거예요.

 

35절에서 열거한... 우리 인생에서 불행하고 두렵고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일곱 가지 일들이, 불쾌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승리가 들어서게 될 그 자리라고

지금 얘기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을 영어로 Good Friday 라고 부르죠.

그게 왜 거기 Bad Friday 이렇게 해야 맞죠. 왜 Good Friday에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3일째 되는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이에요.

그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 죽음 때문에 부활이 존재하고, 그 죽음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의 죽음이, 곧 우리의 죽음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의 죽음, 그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에,

그래서 Good Friday라고 얘기를 해요.

부활이 없으면 그것은 Good Friday일 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앞서 8:17절과 18절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바울이 17~18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의 고난과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을 비교하고 있잖아요. 살짝 언급한 거예요.

성도가 겪는 현재의 고난이, 장래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살짝 이런 걸 보여주는 거죠.

 

‘장래의 영광이 어떻게 가능해?’

‘지금의 고난 때문에!’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28절에서는 이렇게 말하죠. 더 분명하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은 뭔가 하면 35절에서 말한, 이 원치도 않고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끔찍한

이 7가지 일들이 우리 삶에서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 7가지 일들이 다 하나님의 원재료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것들이 다 쓰일 것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 재료가 없으면 그 음식이 나올 수 없는 것과 같죠.

이 7가지 재료 덕분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37절을 다시 보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랬잖아요.

 

자, 보세요. ‘이 모든 일’이 뭐예요?

35절에서 말한 7가지 일들을 포함해요. 전부를 포함해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모든 나쁜 일을 포함해요.

 

우리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고, 생각하기도 싫은 그 모든..

일어나지 말았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을 다 포함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이긴다는 표현은 현재 시제예요.

‘결국에는 이길 것이다’는 얘기를, 바울은 할 수 있었어요.

결국에는 잘될 거야라는 얘기는 우리도 해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근거도 없지만,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죠. 할 말이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사실 바울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넉넉히 이긴다’고 지금 내 삶에서 지금 주어지고 있고, 이 주어진 그 일이

지금 당장 사라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이기고 있는 거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그 고난들 속에서, 인내로 나의 믿음을 지금 증거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내 믿음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게 바울이 얘기하는 넉넉한 승리예요.

 

간신히 이기는 승리가 아니고, 평범한 승리가 아니고,

적을 쓸어버리는 승리를 네가 지금 거두고 있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간신히 견디고 있는데요. 나 지금 간신히 견디고 있는데 이게 넉넉한 승리라고요?

바로 그렇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떻게 이 승리가 가능하죠?

바로 나보다 힘이 센 마귀가... 내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내 삶에,, 엎친 데 덮치고, 덮친 데 덮치고 하면서

내 삶에 이렇게 많은 원치 않는 일들을 일어나게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는 것’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바울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가능하다고..’

네 힘 때문에 되는 게 아니고, 네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고,

네가 남달리 믿음을 붙잡고 있고,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너의 악력이 좋아서가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게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예요. :37

 

왜 이렇게 썼을까요?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증명하셨잖아요.

‘그 사랑을 봐!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너를 위해서 아낄 게 있어?’ :32

 

그분 때문에 이긴다고 말하는 거예요.

증명된 사랑, 확정된 사랑을 생각하라고...

이 승리는 결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고!

 

사도 자신이 철저하게 확신했던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이제 승자의 확신을 우리가 보면 38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그렇게 말씀해요.

 

근데 여기에도 헬라어로 보면 ‘왜냐하면’ 이런 말이 나오거든요.

38절을 시작하면서 왜냐하면 설명하고 싶은 거예요. *가르, 영어로 For

 

바울은 이 넉넉한 승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바울은 '(왜냐하면) 내가 확신하노니...’ 라고 얘기해요. :38

 

이거는 이런 뜻이에요. 시제를 잘 살려서 번역을 한다면 이런 거죠.

‘나는 확신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확신하고 있어.

이 확신은 뭐 내가 그냥 붙잡을라고 하는 확신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신 확신이고, 부인할 수 없는 거고,

하나님이 내 안에 마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부어진 것을

내가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확신이야!’

 

로마서 5:5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 확신은 온전하고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것이예요.

그 확신에 대한 얘기를, 8장에서 쭉 바울은 했잖아요.

 

그러면서 또다시 어떤 힘들, 세력(마귀)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꺾어 놓을 수 없다며,

그 세력들, 힘들을 나열을 합니다.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 사망이나 생명

이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망’은 우리가 그렇게 달갑게 여기는 대상은 아닙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상실의 고통을 안겨주죠.

 

근데 여기 ‘생명’은 왜 언급했을까요?

사망은 그렇다 쳐요. 근데 여기 생명은.. 우리는 사는 거 별로 안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왜 생명이 여기 리스트에 들어가요?

 

바울은 굉장히 현실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생명이 사망보다 더 힘들고, 잔혹할 수 있으니까.

때로는 그래서 죽음을 (플라톤도 그런 얘기를 하지만)

죽음을 풀려남, 해방이라고 보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이죠.

 

사망과 생명은.. 결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이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때로는 죽음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과 생명이 우리 주 그리스도와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지 않는다 못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2)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이건 천상의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에는 선하고 악한 개념은 없어요.

 

사실은 그런데 이게 천사가 권세자들과 함께 쓰였으니까,

여기서 ‘권세자’들은 천상의 존재들을 가리켜요.

저 자세히 설명하면 ‘일부 세상의 정부, 권세자’들 위에 역사하는 영들이죠.

그럴 때는 악한 천사들을 가리켜요.

 

그래서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들’이라고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뭔가 하면, 선한 천사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내겠어요?

안 그러죠.

 

바울이 하는 얘기는 뭔가 하면,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영적 존재들이라도,

너희들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어!

라고 얘기해요.

‘마귀에게, 사탄에게 그런 힘이 없어!’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3)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현재든 미래든.. 시간을 우리는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합니다.

시간은 우리 게 아닙니다.

 

시간은 부자나 빈자나,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모두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져 있어요.

미래의 시간을 땡겨서 쓸 길도 없어요. 대출도 안 돼요.

이거는 그래서 종종 시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됩니다.

 

현재의 상황도.. 내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상황을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더더욱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위험해요. 미래는 불확실해서 무서워요. 이런 거예요.

이게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라고 바울이 얘기할 때, 의미하는 내용 같아요.

 

그러나 바울 사도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할 선을 이루는데’,

이 모든 것 안에는 현재 일과 장래 일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황금 사슬’도 끊어질 일이 없습니다. 8:29~30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셨고,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이 5개가 골든 체인

 

이걸 끊어낼 길은 없습니다.

현재 일도, 또는 장래에 내 인생에서 일어날 어떤 극한 상황과 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낼 길이나,

그런 능력이 그 것들에게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4)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리고 나서 바울은 능력을 언급합니다. 38절 마지막에서,

아마 이것은 다 짝을 이루어서 앞에서 나왔잖아요.

그런데 이 능력은 혼자 등장을 하죠.

 

앞에서 언급한 것들뿐만 아니라 어떤 세력과 힘, 다른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들, 네가 생각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너를 끊어내지 못해!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3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조금 아까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은 시간을 말했다면,

‘높음이나 깊음’은 공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간이에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전 우주를 아우르는 하늘 위,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언급하는 거죠.

 

바울은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너희를 끊어낼 수는 없어!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라는 말로써,

바울은 이 앞에서 언급됐던 것들 말고, ‘이게 더 있어요’ 라고 말할 수 없도록,

사람들의 말문을 닫아놓습니다.

 

바울 사도의 확신은 이게 이렇게 시작했잖아요.

38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도의 확신은 자기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자의적인 확신이 아니에요.

이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사도의 사랑, 연약하고 변하기 쉽고 비틀거리고,

때로는 사랑하다가 말기도 하는... 그런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확신이 아니에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요.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요.’

뭐 요즘에 어떤 CCM 중에서는, 막 그거를 반복 엄청 힘들잖아요.

제가 힘든 거는 그거거든요. 찬양 인도자들이 계속 막 반복하는 거.

제가 좀 인생이 못 돼서 그래요. 너무 심하게 반복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너무 사랑을 강요하는 것 같은...

 

근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우리의 확신이 뿌리를 내리지 않아요.

바울이 지금 얘기하는 거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기까지 확증되고 증명되었던 그 사랑에

내 확신이 뿌리를 내리는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사도가 로마서 8장에서 하는 얘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삼위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지난 주 49강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죠)

 

그래서 여기 35b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했잖아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아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35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서 끊을 게 없어요.

 

그런데 39절은 뭐라고 말해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비록 이 무시무시해 보이는 세력들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요.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이 있어요.

그 가운데에서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자 We are more than conquerors' 라고 바울은 얘기해요.

이 38절, 39절은 승리자의 확신을 보여주는 말이에요.

 

◑이걸 잘 보여주는 이야기를 제가 하나 할게요.

 

리사 비머의 이야기인데 Lisa Beamer

2001년 9월 11일 무슨 날인지 아세요? 9.11 테러가 일어났던 날입니다.

리사의 남편인 토드 비머가 유나이티드 93편을 타고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업무차 샌프란시스코를 가고 있었어요. 뉴저지에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한 6시간 가야 되겠죠?

 

그 비행기가 테러범들의 손에 넘어갔고, 이 비행기는 국회의사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토드는 몇 남성 승객들과 함께 테러범들을 덮쳐서

그 비행기는 의사당으로 떨어지지 않고,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추락했고 승객들은 다 죽었죠.

만약 의사당으로 떨어졌으면, 어마어마하게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겁니다.

 

토드와 리사는 휘튼 대학 동문이었습니다. 둘 다 32살이었고요.

리사는 19개월 된 두 아들과, 뱃속에 5개월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황당한 사건을 경험한 리사는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경험하게 돼요.

사실 경황이 없는데 어떻게 가능했어요?  (지금 '넉넉히 이기느니라'의 예화 드는 중)

 

그 덕분에 [래리킹 라이브]에도 여러 번 출연하게 되고

인터뷰와, 많은 토크쇼에 출연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게 돼요.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한 5~6개월 지나가지고 이 책을 썼어요. <Let's Roll>

Let's Roll 은 '시작하자, 출발하자, 공격하자'(군사 용어로 쓰일 때) 등의 뜻인데,

9·11 테러 당시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의 승객 토드 비머가 다른 남자 승객들과 함께

맨 몸으로 테러범들을 덮칠 때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뉴욕타임스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하드커버만 100만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많이 팔린거죠?

 

그리고 강연을 할 기회들을 많이 가지게 되는데, 이 사건이 있고 1년 뒤에

딸인데 셋째를 낳아서 세 자녀의 엄마가 된 리사 비머가, 래리킹 라이브에 또 나가게 돼요.

1년을 회고하는 거죠. 래리킹이 이렇게 물었어요.

‘많은 사람이 당신에게서 위로와 희망을 얻으려 하는데, 그게 부담스럽지 않느냐?’

1년동안 또 많이 유명해졌으니까요.

 

근데 리사 비머는 이렇게 말하죠.

자신의 힘이나 신앙심의 크기를 근거로 대답하지 않고요.

‘내가 붙든 것은.. 내가 아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고 나의 작은 삶과

세상의 모든 사건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나는 붙잡았다고’

 

‘또 하나, 그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아는 것이

나를 지금까지 견디게 해주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거예요. ‘나는 내 믿음을 지켰어요. 내 믿음이 강해서 견뎠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녀의 확신의 근거는,

자기 신앙의 크기나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힘이나 그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 그분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똑같이 로마서의 본문이 말하는 것이거든요.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고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좀 더 견뎌! 좀 더 믿어봐 좀 세게!’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바울 사도가 알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주신 하나님,

그래서 아무것도 나를 위해서 아낄 게 없으신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붙잡는 거에요.

그분을 바라보는 거에요.

 

어떤 환란도 궁핍도 위험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남편을 잃고 혼자 세 아이를 키워야 했던 이 캄캄한 자리에서

리사 비머가 붙든 것은 나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붙잡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붙잡은 거예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은 거예요.

여기에 신자의 소망이 있어요.

‘넉넉히 이기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고가 있고 2개월이 지나서 그녀는 Women in Faith(믿음의 여인들) 라고 하는

한 2, 3만 명 모이는 여성 컨퍼런스에 참석합니다.

이거는 원래 육아하느라고 너무 힘들어가지고

6개월 전에, 가서 호텔 가서 한 며칠 있으면서,

이제 수양회 참석하고 은혜 좀 받고 올라오고 도망가려고

애들 남편한테 맡기고, 그리고 신청을 했던 집회예요. *911 전에 신청

 

근데 그 집 사고가 있고 2개월 후에, 그 집회에 연사로 초청을 받습니다.

리사 비머는 거기서 이렇게 얘기해요. 모인 2만 5천명 여성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저는 소망 안에서 살기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소망 안에서 살기로 선택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하늘의 영원한 소망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통제불능의 감정으로부터 옵니다. 9월 11일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결코 우리가 완전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망은 누가 주관자인지를 아는 지식으로부터 옵니다.

소망은 우리 삶의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리사 비머의 이야기는 1세기 로마교회 성도들이 보여주었을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겨서 의기양양한 만면의 미소를 가득히 담고,

‘여러분 예수 믿는 거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는 화가 나려고 그래요.

 

저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을 때때로 봐요. ‘그게 넉넉히 이기는 거라고?

바울이 지금 그런 걸 얘기하고 있다고?’ 그런 천박한 게 아닙니다.

 

고통의 현실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현실이 결코 신자를 삼키지 못합니다.

그 모든 형태의 고난과 고통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능력이 없으니까요.

 

신자의 삶에는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이런 고통의 현실이 상존합니다.

신자들이 비록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말도 안되는 고난 속에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 소망 때문에, 그 소망의 하나님 때문에 견디고,

이 견딤을 세상에 보여주는, 신비한 성도의 매력이 있는 겁니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

세상으로 인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데 절망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는데 낙심을 하지 않아요.

궁지에 몰려도 질식하지 않습니다.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아요. 또 일어나요.

죽은 줄 알았는데, 또 살아나서 일어나요.

가난한 자 같은데,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에요.

 

성도는 날마다 지는 사람 같아요. 패자 같아요.

근데 항상 이기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넉넉히 이기는’ 사람의 신비가 있습니다. more than conqueror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이 참혹한 세상에 보여주는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이 모든 환란의 현실이 결국 성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젠가 밝혀지게 될 겁니다.

 

바울은 그걸 바라봅니다. 어느 날인가 그런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성도는 넉넉히 이기는 자의 빛나는 자태를 온전하게 드러내게 되겠죠.

 

▲로마서 8장의 마지막 부분, 8:31~39절은

(사실 로마서 5, 6, 7, 8장이 하나의 큰 문단이라고 했잖아요.)

이 처음 부분인 5:1~11절을 다시 향합니다. 말하자면 양괄식이라고 해요. *수미상관

앞에서 얘기한 거 뒤에서 같이 얘기하는 거예요.

 

사도는 ‘성도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라고 얘기했습니다. 5:3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도 안 돼!’

바울은 그때 간략하게 설명했어요.

‘환란은 인내를 낳기 때문에.. 인내가 연단을 낳으니까..

연단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인격을 얘기해요. 연단해서 그런 character가 되는 거죠.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했는데, 모든 소망인가 하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일이에요. 그 일이 일어난다고 얘기를 해요. 5:3~5

 

이 소망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성령을 주셔서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안다고 얘기해요.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요.

 

8장을 마치면서 바울이 하는 얘기도,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8:31~39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에서 끊어낼 수 있는 건 없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은 이런 겁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이런 것들이 결국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시는데 사용되는 도구다 원료다 재료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사탄의 어떤 공격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도구가 돼서

우리를 유익하게 만들 거다...

이게 바울이 말하는 '이기고도 남는 사람', 승리자 이상이 되는 사람,

정복자 이상이 되는 사람, 넉넉히 이기는 사람의 삶입니다. :37

 

▲20세기 후반까지 남아있던, 정확히 말하면 1994년까지 남아있던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법제화된 인종차별 국가 시스템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는 인종 분리 및 차별정책이었습니다. Apartheid

 

여기에 맞서서 싸웠던 지도자 가운데 데즈먼드 투투라고 하는

영국 성공회의 남아공 대주교가 있습니다. Desmond Tutu 1931~2021

 

 

이분은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1984년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이후에 진실화해위원회,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들이 존재하긴 하는데 제대로 된 적이 없죠.)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를 이끌었던 분이었습니다.

 

거기선 제대로 했죠.

넬슨 만델라와 함께 진짜 국가적인 용서와 민족적인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이끈 인물이었죠.

 

이분이 자기를 억압하는 백인 지도자들을 향해서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어요.

저는 플레밍 러틀리지 Fleming Rutledge 의 책에서 간접 인용을 한 건데요.

 

「여러분은 총을 가졌고 모든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졌습니다.」 주1)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도, 설교 때 이런 말을 종종 했다고 합니다.

「I've read the last page of the Bible. It's all going to turn out all right.

저는 이 성경책의 마지막 을 읽었거든요. 모든 게 다 잘 될 것을, 나는 알고 있거든요.」

 

이게 투투 대주교가 자신을 억압하던 사람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게 신자가 넉넉히 이기는 사람으로서, 환란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확신입니다.

 

그들은 총과 권력으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어요? 고문할 수 있고요.

감옥에 가둘 수 있고요. 다 할 수 있습니다.

 

고난도 넉넉히 이기는 사람의 모습을 투투는 이렇게 보여줍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와 함께 이렇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분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분 때문이 아니고요.

나를 사랑하는 분 때문에, 내가 붙잡고 있는 분 때문이 아니고,

나를 붙잡으신 분 때문에 넉넉히 이긴다고 바울은 얘기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까?

여러분 로마서 8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정황에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으십시오.

그리고 넉넉히 이기는 자로 그 자리에서 살아가십시오.

믿음으로 소망의 확신으로 살아가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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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You have the guns, you have all the power... but you are going to lose. You have already lost. “You are powerful. You are very powerful, but you are not gods... So, since you've already lost, I invite you today to come and join the winning s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