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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1장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LNCK 2026. 8. 2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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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요한계시록4) - Youtube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계1:10-20            2021.05.26. [요한계시록 4강]

 

▲'마지막 때’란?

계시록은 누구나 다 알듯이 마지막 때에 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얘기하는 마지막 때는 언제라고 했습니까?

초림부터 ~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을 마지막 때라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성령께서 임하시는 순간에

요엘서 말씀을 인용하면서

‘마지막 때에 내가 내 영을 부어주리니’ 하는 종말에 대한 그 예언이

지금 성취됐다고 선포합니다. 행2:17

 

그래서 그때부터가 마지막 때가 시작된 거죠.

그래서 예수님 오실 때까지, 성령께서 강림하신 사도행전 때부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전체 기간을 성경은 ‘마지막 때’라고 부릅니다. Last days

 

물론 그 성경은 이 마지막 때의 진짜 마지막이 언젠가 오긴 하겠지요.

그렇지만 성경에서 특별히 마지막 때라고 얘기할 땐,

이 전체 기간을 일컫는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시록은 '그냥 끝날에 대한 책이야'

그럼 우리가 이 책을 지금 읽고 묵상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당장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 적용될지도 알 수 없는

지식으로만 알고 말겠죠. 그런데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은 지식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매일매일의 실제 삶 가운데에 직접 들어와서

역사하고 능력을 행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요한계시록도 예외가 아닙니다. 계시록에 있는 모든 말씀들은

우리 삶 가운데 실제로 경험되어지고, 누려지고, 능력으로 행해지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얘기하는 '마지막 때'라는 용어는,

초림부터 재림 사이, 신약시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또 예수님 오실 때까지 전체 기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자 그래서 이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마지막 때는,

그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마귀와 교회가 전쟁을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을 두고

그것을 방해하려고 하는 원수 마귀와,

그것을 사모하고 어떻게든지 예수님 다시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는 교회 사이에,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때이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되고,

또 전쟁 중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지를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사실은 아주 곤란한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마지막 때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는 때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되고요.

영적으로 또 무엇을 해야 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될지를 굉장한 분별력을 가지고

실행해 나가야 되는 때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승리할 수 있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때 중요한 것은,

‘어떤 마지막 때의 징조가 무엇이 있을까?’

또는 ‘마지막 때의 올바른 종말론 신학은 무엇일까?’

이런 것들도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

또 성령님으로 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알아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군사가 여러분 대장이 누군지도 몰라요.

대장이 어떻게 지휘하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라요. 그럼 전쟁을 어떻게 싸우겠어요?

 

그래서 이 전쟁 중에 마지막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주인 되신,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이 어떻게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지를.. 잘 분별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고,

마지막 때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될 것이고,

신학적으로 무천년설이 어떻고, 전천년설이 어떻고...

이런 거 다 이해하는 것보다, 이게 100배는 더 중요한 거예요.

,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거예요.

 

그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 가운데 그분을 아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거예요.

그것이 마지막 때 가장 중요한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대한 책이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책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뭘로 시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고 시작하죠.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1:1

‘계시’라는 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 계시를 우리가 알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에도 보면, 요한이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 환상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계시가, 환상 가운데 요한에게 주어진 것을 기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두세 번에 걸쳐서, 1:4~8절에 나오는

‘요한이 봤던 예수 그리스도, 요한에게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몇 가지 모습들을

살펴봤는데,

오늘부터는 1:10절 이후에 나오는 요한의 첫 번째 환상입니다.

이게 요한의 첫 번째 환상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총 4개의 환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1)

요한이 본 4개의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인데,

물론 뒤에 가면 한 환상의 길이가 굉장히 길어집니다.

 

4개의 환상을 기록한 건데, 첫 번째 환상이 지금 보고 있는 이 환상이에요. 1:10-20 

 

그래서 그 환상의 주제는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환상 가운데 예수님께서 많은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모습들을 통해서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은 1:10~20절 말씀을 통해서, 요한이 처음 봤던 요한계시록에 처음 기록된,

즉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하는 내용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두 번 정도에 걸쳐서 나누려고 하는데,

오늘은 그 중에 앞에 한 두세 가지 정도를 살펴봅시다.

 

◑요한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는 뭘로 나타나냐면,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발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또한 이 예수의 큰 음성에 대해서, 뒤에 보면 몇 가지로 또 다르게 묘사하는데

1:15절에는 그분의 음성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1:15b~16a


▲그래서 첫 번째 계시는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대한 거예요.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음성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데, 그 음성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얘기하는 것, 보여주는 것들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라’

 

예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면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세요. 요한복음에도 그 얘기를 했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 14

예수님은 누구시냐면 말씀이세요.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계시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얘기는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랑 소통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계속 뭔가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계속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고, 지시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창조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다 좋아요. 다 이해하고 동의해요.

 

그렇지만 창조 때는 창조하시고, 또 십자가는 십자가 지시고,

그러고 나서는 할 일 다 했다고 뒷짐지고 침묵하신 하나님이 아니세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 삶 가운데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1:10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때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큰 음성을 듣는 것이에요.

 

물론 이 말씀은 1차적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10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동시에 ‘성령의 감동 가운데 말씀하셨다’고 나와있어요.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 내 뒤에서 큰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이 들렸다’고 

했어요. :10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물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말씀을 1차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글자에 그쳐있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에 감동되어서

이 말씀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성령에 감동되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 가운데,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예요.

성경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기도 가운데 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요한처럼 환상을 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 말씀하실 거예요.

(물론 그 음성이나 환상이 모두 성경말씀의 내용입니다. 거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세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모든 만물을 통해서 다 말씀하실 수 있어요.

왜요?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니까. 만물의 주인이시니까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으시고,

또 정말 아름답고 장엄한 그런 큰 산의 대자연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이렇게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너무너무 장관이에요.

그런데 그걸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세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 크신 창조의 능력에 대해 말씀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모든 걸 다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심지어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왜요? 만물을 창조하시는 분이시고, 만물의 주인이시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통해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말씀하실 수 있어요. 그래서 방법을 제한하지 마세요.

방법에 집중하지도 마시고 방법을 제한하지도 마세요. (물론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고,

성경의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이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이건 다 부차적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싶으시면 아무나 사용하시는 거예요.

 

자 어찌 됐든지 간에 이 모든 만물을 다 사용할 수 있으신데,

당연히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만물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시는 공통적인 특징이 뭐냐 하면,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거예요.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 말씀을 듣게 되는 거예요. 그렇죠?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우리가 ‘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걸 우리가 듣게 됐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듣게 된 거예요?

성령에 감동됐을 때, 그 태양을 통해서 말씀이 들리는 거지,

 

그래서 마지막 때는 여러분, ‘성령에 감동되어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꼭 먼 미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환경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게 그 사람에게는 ‘마지막 때’가 되죠. ‘소종말’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때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우리에게 말씀하셔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기도 하시고, 당신의 뜻을 알리기도 하시고,

때로는 위로하시고, 때로는 경고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시작이며,

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시작입니다.

 

그분은 큰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의 큰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아야 될 첫 번째 계시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요한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 말씀하신 하나님의 특징에 대해서

몇 가지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3, 4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1.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뭐라고 묘사했냐면 <큰 음성>이라고 했어요. :10

 

큰 음성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요? '큰 음성'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큰 음성'이니까요.

제가 이렇게 김전도사를 이쪽으로 따로 불러가지고서

‘김전도사, 이따가 끝나고 나서 있잖아...’ 이러면 작은 음성이죠.

이건 누구만 들어요? 김전도사만 들어요.

 

그런데 '큰 음성'으로 제가 ‘우리 끝나고 나서 찬송가 310장 하겠습니다.’

이러면 여러분이 다같이 듣잖아요.

그러니까 '큰 음성'이라는 건 무슨 소리예요?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거라는 거죠.

 

그 얘기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신 특권이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나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다는 거에요. 언제?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

 

성령에 감동되었을 때, 올바른 믿음 안에 있을 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고,

영적으로 신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큰 음성'이에요.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음성이에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음성이에요.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이에요. '큰 음성'이라는 거에요.

 

두 번째는 '큰 음성'이라는 것은 애매하지 않은 음성이라는 거예요.

명확한 음성이라는 거예요. 이 작은 소리로 얘기하면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소곤소곤 얘기하면, 그러면 뜻이 애매할 때가 많죠.

그런데 크고 명확하게, 우렁차게 말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명확하게 알아듣습니다.

 

큰소리라는 건 이런 거예요. 큰소리라는 것은 헷갈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래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은 애매하지 않아요. 애매하지 않아요.

확실하고 명확합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있으면, 말씀이 확실하고 명확하게 들려요.

 

우리가 왜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모호하다고 생각하고,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냐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아서 그래요. 경험도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것이 애매하고 모호하다고 그러는데,

사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훈련돼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은 굉장히 명확합니다.

 

명확하다고 하는 것을 육체의 귀로 듣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돼요.

육체의 귀로 듣는 것은 순식간에 명확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은 순식간에 들려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떨 때는 그 음성 자체가 ‘성준아, 내가 너를 이렇게 인도한다’ 하는 말씀이

2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성준아’부터 시작해 ‘이렇게 한다’까지가 2년 걸릴 수도 있다고요.

(음성이 2년에 걸쳐 들릴 수 있다는 뜻인듯)

 

그러니까 이게 영으로 듣는 것은, 시간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자꾸 육체의 귀로 듣는 걸 가지고 생각하면 안 돼요.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세요.

 

그래서 영으로 듣는 것이 뭔지를 경험하고 훈련이 돼 있어야 되는데,

그게 돼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굉장히 명확하게 말씀하세요.

한 번도 하나님은 애매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물론 중간에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왜요? 2년 걸려서 말씀하시니까.

어떨 땐 기다려야 될 때도 있지만, 하여간 그 음성을 끝까지 다 충실하게 들은 사람에게는

명확한 음성이지, 애매한 음성이 아니에요.

 

그 음성을 끝까지 충성되게 들은 사람한테는 명확한 음성이지, 애매한 음성이 아니에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음성)의 특징입니다. 큰 소리라는 거예요.

 

▲2. 두 번째 특징은 뭐라고 그랬냐면,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래요. :10

 

나팔 소리가 여러분 뭘까요?

이 나팔 소리의 대표적인 특징은 경고입니다.

 

경고 전쟁 중에 빠바바밤 빠바밤 하고 나팔이 울리면요.

뭔가 지금 사건이 벌어졌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나팔소리는 경고를 의미합니다.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어떤 음성이냐면,

그 속성이 우리를 깨우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올 때는

내가 ‘아이쿠!’ 그러면서 깨나게 됩니다. 그런 경험 들어보셨죠?

 

그러니까 영적으로 아주 깊게 잠들어 있을 때, 주의 음성이 나를 깨우는 거에요.

‘아이쿠 내가 깨어나야지! 정신 차려야지!’ 이러고 깨어나게 되는데,

꼭 그럴 때뿐만이 아니라, 그냥 영적으로 굉장히 깨어있고, 굉장히 예민해 있을 때에도

주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려지면요. ‘아이쿠!’ 이러고 다시 더 맑게 깨어나요. 참 신기해요.

 

그러니까 이 주의 음성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간에

항상 나를 Awaken하는 사운드 음성이에요. *일깨우는

그래서 아마 ‘나팔 소리’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항상 주의 음성이 들릴 때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말씀을 하시고,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말씀을 하시고, 신묘막측한 말씀을 하시고,

나의 모든 계략과 지혜를 뛰어넘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모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보이는 반응은 항상 똑같았어요.

두렵고 놀랍고 떨어요.

 

인간의 그 한계로 훨씬 뛰어넘는 음성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정도면,

영적으로 굉장히 예민해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항상 우리 안에 깨어나는 게 있어요.

항상 깨어나는 게 있어요.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것, 미처 내가 돌아보지 못했던 것, 내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깨우쳐서 보게 하시고, 나의 민감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이켜서 보게 하시고,

 

또 어떤 건, 내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시고,

그래서 주의 음성이, ‘큰 나팔소리 같은 음성’이라는 것은,

우리 영을 깨우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일깨우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반대로 여러분,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있으면,

우리의 영은 잠들게 됩니다. 이건 뭐 분명해요. 절대로 깨있을 수가 없어요.

 

우리의 영을 깨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에요.

우리 영을 깨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거예요.

 

말씀을 듣는 것이 하루 멈추고, 이틀 멈추고, 한 달 멈추면... 그것은 뭐 필패 必敗예요.

반드시 영적으로 잠들다가 패배하게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을 깨우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우리의 영을 깨우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이 정말 나팔소리 같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들려지지 않으면,

우리 영은 반드시 잠들게 돼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하루를 하나님 앞에 나가는 시간 없이 살아요.

워낙 바빠가지고.. 일어나가지고 훅 출근했다가, 훅 돌아왔다가 하다 보니까

‘아이고 오늘 시간이 없네...’ 너무 피곤해서 파김치가 돼서, 그냥 잠들어 버려요.

 

기도하는 시간도, 큐티하는 시간도 없어요.

그 다음 날도 그러다 보니까 늦어가지고, 훅 출근했다가 퇴근했다가..

그거 3일만 해보십시오. ‘영적인 감각이 하나도 없어질 거에요. 딱 3일만 해보세요.

우리 안에 영적인 감각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바닥날 거예요.

 

영적인 감각은 언제 깨어나냐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깨어나요.

그 나간다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내가 듣겠나이다’ 하는 거잖아요.

 

큐티 묵상을 하든, 기도를 하든, 찬양을 하든

이게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나이다’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인지 주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그래서 주님과 교감하며, 그 음성에 귀기울일 때...

그래야 우리 영이 깨어있는 것을 유지하게 돼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우리의 영이 잠들게 됩니다.

그리고 영이 잠들게 되면, 시대에 대한 분별도 긴박한 상황에 대한 인지도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감이 없어져요.

그래서 영적 긴장감을 놓친 채, 영줄 spiritual line 을 놓은 거죠.

 

넋줄이 아니라 영줄을 놓은 채, 그저 눈에 보이는 상황, 그저 눈에 보이는 환경,

그저 먹고 사는 문제에 함몰되어서.. 영적인 좀비처럼 살게 됩니다.

 

이 가운데도 아마 지금 좀비화 되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가예요.

좀비화 되고 있는 사람... 몸이 움직이긴 움직여요. 근데 그 속에 산 영이 없어요.

이게 좀비지요...

 

신자라도 영적인 좀비처럼 살게 돼요. 왜요? 하나님의 음성이 오래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만이 우리 영을 깨우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그랬잖아요.

근데 우리 영에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으니까, 깊이 잠들어버렸는데요.

영혼이 말씀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기근과 핍절과 아사 상태에 들어가버린 거예요. 암8:11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런 영적인 좀비들을 ‘잠자는 자’라고 했습니다.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성경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물론 ‘육신의 잠’을 자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죠.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걸 얘기하는 거잖아요.

 

죽어있는 자들이라는 건 뭐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돼서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들 얘기하는 거죠.

 

그런데 크리스찬들도 그중에 비슷하게 그러고 있다는 거예요.

 

전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감도 없어지고, 뭘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무 감이 없으니까,

그냥 먹고 사는 문제에 함몰돼서 살아가는 거예요...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 엡5:14

이게 뭐예요? ‘나팔 소리’죠! 계1:10

 

그래서 이 나팔소리와 같은 예수의 음성이 들려질 때,

잠자던 우리 영이 화들짝 깨어나게 됩니다.

영적인 감각이 돌아오고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언제요? 나팔소리가 울릴 때!

 

그러면 여러분, 주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우리 영을 깨우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날지어다!’

 

▲3.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이라고 묘사합니다. :15

 

1:15절에서 주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많은 물소리'라는 얘기를 들을 때, 여러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이 말씀을 오해해서 '맑은 물소리'하고 헷갈리는 분들이 있어요. '맑은 물소리'가 아닙니다.

'맑은 물소리'는, 시냇물이 쪼르륵 쪼르륵 흘러가는 이런 소리지요.

그런데 '많은 물소리'는 그런 게 아니에요. 뭐냐 하면,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데 가보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많은 물소리'예요.

 

나이아가라 폭포같은.. 어마어마한 폭포에 가보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는데, 그 바로 앞에 가면 다른 그 어떤 소리도 안 들려요.

그 폭로 물소리 때문에. 콰콰콰콰콰! 이런 소리란 말이에요. 끊임없이 떨어지는...

그래서 그 큰 막 집채만한 물 많은 물...

 

그 거대한 물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상상을 해보십시오.

거대한 쓰나미가 높이 10미터 되는 게 바다가 넘쳐서 '쏴' 하고 몰려오는 거 생각해보세요.

그런 물소리를 얘기하는 거에요. 주의 음성은 마치 그 소리가 되는 거예요.

'많은 물소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등골이 오싹해지고,

거역할 수 없는 장엄함과 거대함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그런 소리입니다.

 

요한이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은 이런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거역할 수 없고,

항거할 수 없는 권위와 능력이 있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 앞에 설 수 없어요.

이 쓰나미가 여러분 한번 확 밀고 들어오면요. 아무것도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뭐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쓰나미가 몰려오면 그냥 싹 휩쓸려가 버리는 겁니다.

 

일본에 쓰나미 몰려오는 영상을 저도 몇 개 봤는데, 야 무섭더라고요.

자동차도, 집채도.. 그냥 둥둥둥 떠내려가는데 무슨 장난감 같아요.

이 많은 물이 몰려오면요. 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게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이라는 거예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권세와 권위가 있는 음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이 선포되면, 그 앞에 버틸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것이 주의 음성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때 계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놀라운 음성을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시면, 만물이 두려워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거대한 산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갑니다.

막을 자도 없고 버틸 자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이 음성을 들을 때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고, 힘이 생기는 거예요.

 

지금 내 앞에 보이는 환경은 어마어마한 산 같고, 난공불락의 성 같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게 생겼지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우리가 볼 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이 어떤 음성일지를 우리가 들을 때,

많은 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권능의 음성인 것을 들을 때,

눈앞에 보이는 현실들을 그냥 뛰어넘게 되는 거에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지라'  슥4:7

이 여호와의 말씀 앞에, 큰 산이 그냥 평지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게 여호와의 말씀의 속성이라는 거예요.

 

요한이 '많은 물소리'라고 했을 때는,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이 물의 어마어마한 위력 때문에, 아무것도 버티지 못하고 싹 휩쓸려 내려가는

그것을 이미지로 그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그런 음성이라는 거예요.

 

많은 물소리 같은... 그래서 그 음성을 들을 때 우리 안에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겨요.

'아, 비록 내 눈앞에 현실은 원수가 힘을 얻은 것 같고,

주의 백성들은 마치 벌레처럼 비참했는 것 같지만, 이게 다가 아니지...

우리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한 번만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거를 자가 없지!'

 

힘이 납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주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불가능의 장벽들을 허물어뜨리고 덮어버리는..

'주의 말씀은 영원하도다!' 할렐루야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도다. 그 말씀으로 천지를 덮으시며,

그 말씀에 해와 달과 별이 순종하도다!' 할렐루야

 

그거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말씀 앞에 해와 달과 별과 순종하는 거 생각해 보세요.

야 그 어마어마한 천체의 별들이, 주의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데,

아 이 앞에 있는 로마 황제 하나가 뭐... 그까짓 인간이고...

이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많은 물 같은 음성!

 

▲4. 네 번째는 <좌우에 날선 검> 같은 말씀이라고 묘사합니다.  1:16

좌우에 날선 검! 쉽게 말하면 양날 검이죠.

많은 물소리가 권위와 능력을 이야기한다면,

'좌우에 날선 검'은 날카롭고 예리한 분별력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신약 히브리서에 보면 이 말씀이 비슷한 표현이 다시 나오죠.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나니'

 

자,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뭘 한대요?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주겠네요.

혼과 영은 알겠는데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는 게 뭐예요?

관절과 골수는 육체를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 육체가 관절과 골수로 돼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씀은, 영, 혼, 육을 다 찔러 쪼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래요?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나니' (과거 개역에는 감찰하시나니)

여기에 '판단한다'는 헬라어에 크리티코스 라는 단어인데, 영어로 critic

그 단어의 뜻은 뭐냐 하면 구별하다, 분별하다, 나누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마음의 생각과 뜻을 분별하나니, 구별하나니'

 

무슨 얘기냐면 우리 안에 보면, 여러분 뒤섞여 있다는 거예요.

영의 생각과, 혼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막 뒤죽박죽이 돼 있다는 거죠.

그래서 어떨 때는 내 마음에 영의 생각이 돌아가는데,

이것이 혼의 생각으로 바뀌고, 또 육의 생각이 어느 틈엔가 기어들어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게 영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분명히 영적인 메시지인데도 불구하고,

'에이 내 생각이겠지...' 이러고 넘어가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내 안에 있는 막 욕망과 육체의 이런 욕망과 러스트들이 있는데,

그것을 또 이렇게 영적인 거로 착각하기도 하고...

이것이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는 거예요?

이걸 찔러 쪼개서 판단하신다는 거예요. 찔러 쪼개서 구분, 분별하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이 영에서 나온 생각인지, 이것이 육에서 나온 생각인지,

아니면 이것이 내 혼의 생각인지를 분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성도들은 날마다 이 말씀 앞에 서야 됩니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과 같은 음성 앞에 서야 돼요.

그래서 그 말씀 앞에 설 때, 날마다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감정과 내 결정들이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를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그 말씀이 나를 찔러 쪼개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는 니 안에 있는 욕심이야' '그것은 그냥 네가 착각한 거야'

'니가 거기에 대해서 그냥 좋아하고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이게 뭐예요?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서 '말씀의 검으로' 우리 안에 분별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 이것은 내 육체의 욕심이구나.. 아, 이건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아, 이건 그냥 내 감정을 좇아갔던 거구나.. 아, 이것은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구나..'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도 여러분 돌아보십시오.

수많은 여러분 생각들이 여러분 안에 혼재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생각도 있지만,

 

또 어떤 건 내 생각도 있고, 또 어떤 건 하나님께서 별로 기뻐하시지 않는데

내 감정의 약으로 조용히 휘둘려가지고서 '막 화냈다, 분노했다, 뒤집어 엎어졌다'

한 적도 있고 그러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음성앞에 서지 않으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영과 혼과 육이 다 짬뽕이 돼서.. 내 삶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하는..

깨어있기 원하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귀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날마다 날마다 선포되어지는

예리한 좌우에 날선 칼 같은 음성들이 선포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1:12~16

 

이어지는 계1:12~16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가장 길고 자세하게 나오는 구절이죠.

 

계1:12~16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자 이 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습은

유대적인 상징을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그것은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을, 요한이 일부러 꼬아서 상징적으로 묘사한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설명을 잘 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겠죠.

 

그냥 하나님께서 이렇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는데,

왜냐하면 요한은 유대인이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상징으로 그냥 이해가 되는 거죠.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검은 고양이' 그러면, 

요즘은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졌는데,

옛날에는 우리 문화에 그걸 기분 나빠하고, '재수 없어' 이런 뉘앙스가 좀 있었잖아요.

요즘은 안 그렇더라고요. 검은 고양이도 좋아하던데...

 

그랬을 때 만약 하나님께서 한국 사람들에게 환상을 통해서 뭔가 보여주셨는데,

그 환상 가운데 만약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그럼 뭘로 이해하겠어요?

'아이고 이건 불안한 건데.. 뭔가 불안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이렇게 이해하겠죠.

 

근데 서양 사람이 아마 그 얘기를 들으면,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를 거예요.

'검은 고양이가 왜 그렇게 해석이 되지?' 의아하겠죠.

 

그와 비슷하게 유대인들의 상징들을 사용해서, 당연히 하나님은 그렇게 보여주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그 문화와 그 사람 수준을 고려해서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그때 그 사람의 수준과 환경과 문화와 시대들을 함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왜요? 알아들을 수 있게 주셨으니까요. 받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그래서 여러분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실 때도, 완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실수합니다.

완전히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큰 실수하게 돼요.

절대로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렇게 이해 안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계속 무엇으로 돌아가야 돼요?

'그 당시 유대인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렇게 읽으셔야 돼요.

 

본문의 '예수님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요한이 여러 가지 환상을 보고 있는데,

이 환상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유대인들이면 다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 금촛대(메노라)가 나왔어요.

그럼 금촛대는 뭐라고 이해할 것 같아요?

1:20절에 금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했잖아요.

 

유대인들에게는 '메노라'라고 하면 다른 걸 상징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메노라가 상징하는 건 유일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거 말고는 다른 걸 떠올릴 수가 없어요. 유

 

우리는 '일곱 금촛대(메노라)' 그러면, '그게 뭐여?' 이렇게 헷갈릴 수 있는데,

유대인들에게는 뭐 전혀 헷갈릴 게 없습니다.

메노라 그러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상징이에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시록에서도,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라' 이렇게 얘기하죠.  :20

교회에 대한 상징입니다.

 

▲1.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님

그런데 이 금촛대가 교회 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빛을 비추잖아요. 빛이라는 것은 진리를 계속 보여주는 거죠.

어둠을 몰아내는.. 그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속성이라는 거고,

 

또 금으로 만드는데, 금이라는 것은 구약에서는, 신약도 비슷한데

특별히 구약에서는 아주 일관적인 상징성을 갖습니다.

그건 뭐냐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금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요. 하나님의 속성 중에 어떤 게 있겠어요?

거룩함, 영광, 진실, 공의 이런 것들이 있죠.

 

그러니까 금은 하나님께 속한 속성, 신적 속성을 얘기해요. 그것이 금이 상징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금촛대가 주의 백성을 상징한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백성도 그런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뜻이에요.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자 어쨌거나 근데 중요한 건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지금 보여주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어디 계시다는 거예요? 초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게 요한이 본 계시예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두 번째 계시는 뭐예요?

촛대 사이에 계신, 즉 교회 안에 계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는 주의 백성들 사이에 계신 분이에요.

'두 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그곳에 예수께서도 계신다'는 거예요.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모인 곳에 교회죠.

주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니까,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니까,

그 모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계신다는 거예요.

 

교회는 여러분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에 누가 계신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거예요. 그게 요한이 전해주는 계시에요.

 

주의 백성들이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지금 여러분, 한 150명 정도 되는 사람이 철저하게 주의 이름으로 모인 거잖아요.

예수님 예배하려고 모인 거 아니에요. 그럼 여기 누가 계시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예수님이 지금 여기 계시다는 거예요. 둘러 한번 보세요. 예수님이 보이세요?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예수님의 임재가 이곳에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이 본, 첫 번째 예수님에 대한 계시는 뭐냐 하면,

우리가 모여있는 곳에 예수께서도 함께 거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모여있을 때 그곳엔 항상 예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계시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나는 교회 가운데 함께하고 있는 예수라

나는 너희가 모일 때 그 가운데 함께하는 예수라' 이 계시를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2.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대요.

이것은 여러분 제사장의 복장을 얘기합니다.  1:13

 

이것도 유대인들이면 그냥 딱 들으면 알아차려요.

'제사장 복장을 하신 거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으로 교회 가운데 계시다는 거예요?

제사장 직분을 행하시면서 계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사장은 무슨 직분을 행합니까?

1)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게 제사장이지요.

그 외에도 제사장의 직분이 하는 일은

 

이 직무는 뭐예요? 성도로 하나님 앞에 나가도록 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제사장의 직무지요. 원래 제사장은, 첫 번째 직무가 뭐냐면 제사를 집행하는 건데,

제사가 뭐예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늘이 닫혀버린 거예요.

우리의 죄 때문에 완전히 하나님과 단절이 일어났어요.

하늘이 닫혀서 전혀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제사장이 제사의 직무를 행하면서, 닫힌 하늘을 여는 거거든요.

닫힌 하늘을 열어서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고,

다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제사지요.

예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계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에는 대단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뭔가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교회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이 열린다는 거예요.

교회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 인해 닫혀있던 하늘을, 예수께서 여시고,

죄로 인해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얼굴과 그 영광을 보도록 하십니다.

 

오늘도 예수께서 여러분 이 가운데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물론 여러분 우리가 혼자 예배 드릴 때도 은혜가 있어요.

또 혼자 예배할 때도 성령께서 도우세요.

 

그런데 예수께서 특별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을 보는 것을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한 것은

혼자 모이는 것하고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이 교회가 여러분 함께 모일 때 뭐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닐고 계시다는 거예요.

 

제사장이 뭐하는 거라고? 닫힌 하늘을 여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여서 예배 드릴 때는요. 그냥 개인이 예배 드리는 것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임재와 예배가 있어요...

 

제 안에 감사한 건 뭐냐면 저희가 20년 동안 이곳에 예배하면서

저는 이 예배가 지난 20년 동안 정말 많은 예배를 드렸잖아요.

그런데 한 번도 예배에 실망해 본 적이 없어요. 나만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주로 내가 설교하니까 여러분들은 좀 의견이 다를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는 하여간 그렇게 느꼈어요. 저는 지난 20년 동안 함께 모여서 예배드릴 때

한 번도 '이번 예배는 뭔지 모르겠어.. 별로야...' 이렇게 느껴본 적이 전 한 번도 없었어요.

 

참 신기해요. 설교를 잘해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에요.

설교라는 게 사람이 어떨 때는 좋은 설교를 해도, 어떨 때는 죽 쑤을 수도 있다고요.

그렇지요, 사람인데 어떡하겠어요.

그것(설교)과 관계없이 예배이기 때문에, 그 안에 부어지는 뭔가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의 히브리서에 보면 '모이기를 패하지 말라'고 했어요. 히10:25

이 말씀의 뜻은 뭐냐면 모이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영적인 파워와 임팩트가 있다는 거예요.

왜요? 제사장직 손을 행하시는 예수께서 그 사이를 거니시고 계세요.

 

2) 제사장의 직무 두 번째는 '질병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 관리하는 또 하나 굉장히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제가 이 말씀 준비하느라 성경에서 제사장을 다 찾아봤다는 거 아니에요.

 

제사장이 여러 가지 직분들을 행하는데, 대표적으로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게 뭐냐면

질병을 관리하는 거예요. 성경에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제사 직무하는 것 만큼이나 많이 나옵니다. 

 

그건 물론 공동체의 어떤 건강을 위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병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 병 걸린 건 분별하는 것도 제사장이고

어떨 때는 치료할 때 이렇게 타가지고 물에 먹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하는 것도 제사장이고, 낫는지 안 낫는지 보는 것도 제사장이고,

그게 예수님의 직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셨을 때 굉장히 많이 하셨던 게 뭐예요?

병을 고치신 거예요. 병을 고치시는 게 제사장적인 직무예요.

 

왜냐하면 죄는 근원적으로 질병은 근원적으로는 죄로부터 온 거거든요.

근원적이란 '모든 질병이 내가 어떤 구체적인 자범죄를 진 결과로 왔다' 이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졌기 때문에 감기 걸리거나 이런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 죄라는 고통은 근원적으로 어디서부터 온 거예요?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온 거지, 그 전엔 하나님께서 질병과 고통이 없게 창조하셨죠.

 

그러니까 질병이라는 것은 결국 죄로 귀결되는 문제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질병의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뭐냐면,

죄로부터 해방, 죄가 처리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징표였어요.

 

죄가 처리되었다. 다시 정결케 되었다. 다시 경건케 되었다.. 라는 가장 강력한 징표였어요.

오늘날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이 직무를 행하십니다.

우리가 모여서 주 앞에 함께 예배하고 기도할 때, 주께서 치유의 역사를 행하실 거예요.

 

오늘 이 가운데 예수께서 계신다고 믿으십니까?

오늘 이 금촛대 사이에 예수께서 거하신다고 믿으십니까?

그분이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신다고 믿으십니까?

긴 옷을 입으시고 금띠를 띠고 계신다고 믿으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세요. 치유의 역사를 행하실 거예요. 할렐루야!

 

▲3. 세 번째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인자 같은 분>이라는 거예요.

자 예수님은 교회 가운데 계신 분인데, 긴 옷을 입고 제사장 직분을 하시면서 계시고,

'인자 같은 분'으로 계시대요.

 

자 구약에서 또는 신약에서 '인자 같은 분'이라고 묘사할 때는

어떤 걸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한 지식들이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어떻게 느끼고 듣는 줄 알아야 되잖아요.

 

다니엘서 7: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게 '인자 같은 분' 하면, 유대인들이 떠올리는 구절이에요.

'인자 같은 분'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면, 

'모든 권세와 모든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에요. 

 

근데 그걸 왜 Son of Man이라고 했을까? Son of God 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아마 제가 생각하기는 이런 것 같아요. 이건 주석을 찾아본 건 아니고 그냥 제 생각에

 

'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 이라는 것은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인데,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대비되는 말로 '인자 Son of Man' 라는 말을 쓴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분뿐만이 아니라

그 하늘의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어요.

'인자 Son of Man'으로 이 땅에 오셨어요.

 

그래서  하늘에서만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 땅의 몸을 가지고 실제로 오셔서

이 땅을 실제로 통치하시는 왕권을 받으시는 거예요.

그게 재림하실 때 모습이잖아요.

 

이미 이 땅의 왕이신데, 잠깐 동안은 이 땅의 왕권이 원수들한테 그냥 가 있는 거죠.

그런데 예수께서 '인자'로 이 땅에 오셔서, 이미 이 땅의 왕이신데 잠깐 동안은

이 땅의 왕권이 원수들한테 그냥 가 있는 거죠.

 

하늘에만 속한 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 가운데 속한 분으로 오셔서

물질세계의 영원한 권세와 영원한 파워와 영원한 영광을 다 취하신다는 거예요.

그게 '인자 같은 분'이에요.

그래서 '인자'는, 보면 항상 종말론적 표현과 맞물려 나올 때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복음서에도 '인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지만,

계시록이라든지 다니엘서 이런 데 보면,   *에스겔서에 나오는 '인자'는 그냥 '사람'이라는 뜻

'인자'라는 표현이, 종말론적인 표현으로 많이 나와요. 왜 그럴까요?

 

종말에 진짜로 예수께서 단순히 하늘에 보이지 않는 영광만 취하신 분이 아니라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몸을 입고 나라를 통치하시고

우리가 보는 이 물질 세계의 실질적인 왕으로 통치하실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자 같은 분', 인자라고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요한이 본 예수가 어떤 예수냐 하면 '인자 같은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 말은. 그의 권세와 영광과 나라가 영원한 권세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 나라예요.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분,

소멸하지 않고 멸망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가지신 분,

그분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 시라는 거예요.

 

영원한 권세와 영광과 능력과 부를 가지시니 그분이 뭐예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인자 같은 분이 영원한 영광과 존귀와 권세와 능력과 부와

이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가지신 분이 우리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거예요.

 

자, 이 계시를 본 사람을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세요.

요한이 이 계시를 봤을 때,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달았을 것 같아요?

 

'아, 이 땅의 진짜 권세자는 예수 그리스도시구나'

요한은 지금 로마의 권세에 의해서 유배돼서 밧모섬에 갇혀있어요.

마음이 여러분 그렇게 좋지 않았을 겁니다.

유배돼서 감옥에 갇혀있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참 암울하고 어둡고 슬프고 그런 상황인데, 그 상황 가운데 

'인자'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때,

아 그렇지,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은 로마의 황제가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로마가 모든 영광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원수가 흥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땅의 진짜 권세는 누구에게 있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거예요. 인자 같은 분에게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분이 누구와 함께 한다는 거예요? 나와 함께 한다는 거예요.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신다는 거예요. 아멘.

그것이 여러분 이 계시의 진정한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계시, 이 지식이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의 힘이고, 우리의 능력입니다.

 

세상의 권세도 질병이나 재난도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어떤 어둠도 어떤 원수도 하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 예수께서 하늘을 여셨기 때문에요.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어요.

영적인 원수도, 제사장 되신 예수께서 하늘을 여심으로

절대로 그의 백성들을 건들지 못하게 하셨고

 

이 땅의 것들도 인자 같은 이가 땅의 영원한 권세를 취하심으로, 우리를 해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그 어떤 권세도.. 그 어떤 원수도.. 우리를 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아멘.

 

로마서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이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7~39 

 

이것이 여러분 계시의 내용이고 능력입니다. 아멘!

그 예수께서 우리랑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우리 그 말씀을 살펴봤죠. 계시를 받는 자의 태도.

 

◑계시를 받는 자의 태도 : '몸을 돌이켜'  :12

 

그래서 '나라와 환란과 참음에 참여한 자여' 이 말씀 가지고 살펴봤죠. 계1:9

그래서 그런 기본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원론적인 건 살펴봤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조금 더 작은 렌즈를 통해서 살펴봅시다.

 

12절에 보면 요한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여러분 요한이 예수의 음성을 들으면서 계시가 시작되는데, 보면 '몸을 돌이켰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12ㅊ그 얘기는 음성이 어디서 들렸다는 거예요. 뒤에서 들렸다는 거예요.

앞에서 들린 게 아니고 뒤에서 들렸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요한은 음성이 들리는 곳, 예수가 계신 곳과는 반대편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많은 경우 이러지 않습니까?

예수가 계신 곳에 시선이 딱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지 않아요?

그럴 때가 훨씬 많지 않아요?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럴 때가 훨씬 많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 예수가 계신 방향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면

이미 진작에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계시가 임했겠지요.

 

예수가 계신 곳에 딱 눈을 맞춰서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보고 있었으면

이미 진작에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예수가 다 임했을 텐데, 그렇게 임하지 못한 건 뭐예요?

그 방향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타락한 세상에서 연약한 인생이 살아가다 보면 영적인 시선을 자꾸 놓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께 맞춰져 있는 것 같다가도 전화 한 통 받으면 시선이 움직여지고,

예수께 맞춰놓은 것 같다가도 이메일이나 카톡 하나 읽으면 마음이 막 요동을 쳐서

궤도를 벗어나고 그러지 않으세요? 하루에도 여러 번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예수님 생각하고 예수님께 딱 시선을 맞추려고 하다가도

잠깐 요동치는 일이 생각나면, 또 막 그 일 해결한다고 막 분노했다가 막 화냈다가 열받았다가

그러다 보면 이렇게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여기 바라보고 있고, 수십 번씩 여러분 그러지 않으세요. 하루에도?

 

이게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의 현실이에요.

그 누구도 한 번도 틀어지지 않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딴 데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반대 방향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나팔소리가 울리는 때예요.

뒤에 계신 예수께서 큰 나팔같은 음성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잠자는 자여 깨어날지어다' 그래서 뒤에서 들리는 거예요.

 

이렇게 앞에 정확하게 예수님과 눈 맞추고 있다면 뭐하러 큰 소리로 말씀하시겠어요?

조곤조곤 말씀하시거나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다 아는데

뒤에서 말씀하시니까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때가 바로 나팔 소리가 울리는 때 아니겠습니까?

뒤에 계신 예수께서 큰 나팔 같은 음성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타락한 세상을 연약한 인간이 살면서

예수께 24시간 시선을 고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항상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팔소리가 울릴 때 몸을 돌릴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항상 시선을 고정할 수는 없다고 해도 나팔소리가 울릴 때 몸을 돌릴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큰 나팔소리로 돌이키라고 하실 때,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던 생각을 내려놓고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킬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같은 분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시는 분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때 여러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보지 못하는 것은,

보려고 돌이키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나팔 소리는 분명히 울릴 거예요. 주의 백성들이 엄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무런 경고도 안 하신다... 그러실 리는 없어요.

 

'큰 소리'라고 그랬어요.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는 경고예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나팔소리로 말씀하실 거예요.

 

그런데 나팔소리가 들려도, 하늘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도, 돌아보지 않아요.

그냥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해요. 그냥 하던 생각을 계속해요. 그러지 않습니까?

 

그럼 여러분, 계시가 임하지 않는 거 아니겠어요? 계시가 언제 임했습니까?

물론 우리 전주에 길게 살펴봤지만 구체적으로 작은 렌즈에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빨리 돌이키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그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여서, 하던 일과 생각을 멈추고,

그 소리를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 거기서 예수가 보이기 시작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실 겁니다.

오늘 하루 종일 말씀하셨을 것이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들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하던 일을 좀 내려놓고, 하던 생각을 좀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돌이켜 바라보십시오. 예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날선 검 같은, 찔러 쪼개는 그 말씀이 나에 대해서 뭐라 그러시는지,

많은 물소리 같은 권능의 음성이 나에 대해서 뭐라 그러시는지,

인자같은 그분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시는 분께서 지금 내 위에 어떤 일을 행하고 계신지... 들리고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야 돼요. 보아야 돼요.

그것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특권이고 능력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시선을 좀 고정합시다. 예수께 시선을 고정합시다.

그곳에서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과 권세와 영광과 위로와

격려와 존귀와 부와... 그 계시가 우리에게 부어질 거예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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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계시록의 4개의 환상

 

첫 번째 환상 (계1: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촛대 사이에 거하시며 일곱 교회를 붙드시고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두 번째 환상 (계4:2~)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하늘에 열린 문 너머로 하나님의 보좌와 네 생물, 그리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세 번째 환상 (계17:3~)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붉은 빛 짐승을 탄 큰 음녀(바벨론)의 정체와 세상 권력의 심판.

 

네 번째 환상 (계21:10~)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회복에 관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