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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LNCK 2006. 1. 5. 13:47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롬12:20           2005.08.07.설교녹취

 

손봉호 박사

사랑의교회 주일설교 녹취, . *설교 원제목: 선으로 악을 이기라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 지금 (2005년 당시) 한국사회가 너무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의견이 분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서로 대립되어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으로서, 가져야할 바람직한 시각은 어떤 것인가?

 

 

◑1. 북한과 통일문제에 관한 3가지 국론분열적 관점

 

▲1. 민족주의적 관점

남북은 같은 역사, 같은 언어, 같은 피, 같은 풍속을 가진 한민족이다.

비록 이념은 다르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감정을 앞세운다.

 

세계에서 피가 같은 분단민족으로 통일이 안 된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비록 미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더라도, 남북 민족적 공조를 앞세워야한다.

 

이 부류 내 극단적 주장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625는 통일전쟁이었다. 미국은 도우려고 참전한 것 아니라,

침략적 참전이었다고 극언한다.

 

비록 그런 극단적 입장을 취하지 않더라도(자유민주주의는 절대 포기 할

수 없지만) “민족공조는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남북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관점이다.

현 정부의 대북통일정책 및 입장표방도 여기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반미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주장도 이 관점에서 출발한다.

 

▲2. 반공주의적 관점

공산주의 국가 북한은 악이고, 악의축이다.

김정일과 지도부 수 만 명 때문에 주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주민을 기근, 질병, 공포에 몰아넣는 북한정권은 없어져야/없애야 할 대상이다.

미국의 힘을 빌려서라도 북한정권을 제거하거나,

고립시켜서 붕괴를 유도한다. 위협을 가해서라도 정권을 바꿔야 한다.

 

즉, 북한에 대해 적대관계를 취하지 않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보는 입장.

연세가 많은 분들, 북한공산주의 잔악함을 체험하고 피난오신 분들의 입장.

 

▲3. 현실주의적 관점

남북이 통일 되어야 한국 경제에 전망이 밝다.

인구, 자원,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통일은 국력에 큰 보탬이 된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합치면 win win game이 된다.

이런 경제적 이유로, 통일이 되야 되고 남북이 상호공조를 해야된다는 입장.

그래서 개성공단건설 등을 적극 추진하는 입장.

 

뿐만 아니라 남과북은 지금 서로 엄청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그런 소모적 비용을 줄이고,

대신에 국가발전에 투자하면 큰 이익이다.

 

매우 현실적인 입장이다. 민족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이 입장을 추가적으로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민족공조를 유지하더라도

통일이 빨리되면 안 된다는 주장을 가진 사람들 많다.

남북이 경제차이가 너무 심하므로, 지금 통일되면 남한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진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그런데 독일보다 경제가 약한 우리는 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통일이 되더라도 휴전선에 군대를 배치해서 북한주민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일 후 북한주민 남하를 군대배치해서 막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피난하는 동족을 총으로 위협해서 막는다는 것은, 비인도적인 처사이다.

 

그러므로 통일이 되더라도 좀 천천히 되어야한다. 지금 북한을 도와서,

북한이 경제적으로 조금 일어선 후에, 그때 통일하는 것이 좋다.

 

북한의 인권유린, 독재, 비인도적 처사에 대해 북한을 심하게 공박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핵개발 등에 대해 너무 심하게 닦달해서 북한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이판사판으로 전쟁을 일으킬까봐 염려한다.

 

비록 핵무기가 없더라도, 생화학무기, 재래식 무기를 사용해도 피해는 불 보듯…

전쟁이 오래 끌어 결국 북한이 패배 하더라도, 우리의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음을 염려한다.

그런 저런 이유에서라도, 북한을 너무 코너에 몰아넣는 것은 좋지 않다는 입장이다.

 

어떤 국민은, 위 3가지 관점을 중복해서 가지기도 한다.

 

 

◑2. 위 세 가지 입장에 대한 기독교적 재고

 

▲1. 민족주의가 과연 기독교적인가?

지금 세계적 대세는 민족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낡은,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본다.

약소국은 (스스로 보호차원에서) 강한 민족주의를 부르짖을 수 있다.

약소국정권은, 강대국으로부터 자국보호위해, 민족주의/민족응집력을 내세운다.

 

그런데 지금 강한 나라들인 미국, 일본, 중국이 민족주의적/국수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바울은 처음에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생각할 만큼 민족주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것을 배설물로 취급해 버렸다.

 

우리 기독교는 민족주의보다는 보편주의(온 세상 사랑)로 나가야 한다.

‘우리 민족’이라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기독교는 모든 인류를 형제자매로 보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사랑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여러 피가 섞일수록 선진국이다”고 말했다.

그가 관찰해 보니, 단일민족일수록 후진국인 경우가 많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 민족의 피를 순수하게 지키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항상 우리 안목은 전세계, 전인류, 전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편협주의적 민족주의를 초월해야 한다.

 

▲2. 반공주의는 성경적인가?

625전후로 공산주의 만행을 체험하신 분들의 반공주의 –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원수를 코너에 몰아넣고 무력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 … 과연 기독교적인가?

성경적으로 무력적 실력 행사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기독교 역사상, 전쟁의 문제, 무력행사는 큰 고민거리였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어떻게 전쟁을 벌일 수 있는가?’ – 큰 숙제였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적 결론은, 아래 세 경우만 예외적으로 전쟁을 용인했다.

*자체 방어를 위한 전쟁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주 못된 강한 자가 선한 자를 압제할 때, 이것을 막기 위한 전쟁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이 너무 극악한데,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될 때,

그래서 지금 상황보다는 더 월등한 결과가 확실할 때만 전쟁을 용인했다.

 

가능한 무력사용을 자제하고, 평화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래정신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3. 내 마음 감정/ 또는 이익을 따르는 현실주의 - 역시 비성경적이다

이라크 전쟁 때, 나는 심정적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은, 한국이 이라크에 파병해서 미국을 도와야 된다고 여겼다.

 

바이에르하우스 독일 보수 신학자가 한국에서 강연 중 이라크 전쟁을 언급했다.

미국이 ‘의로운 전쟁 just war’에 입각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과연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다. 이것은 의로운 전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그는 내렸다.

 

나는 심정적으로 파병에 찬성했지만, 성경적으로 파병 반대 입장에 섰다.

우리는 성경적 가르침에 입각해서, 내 감정적 의견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원칙과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의 감정적 결정에 따라,

또는 자기 이익의 저울질에 따라 입장을 정하는 것은 – 역시 비성경적이다.

 

 

◑3. 기독교인은 남북 통일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

 

▲1. 북한 복음화의 목적으로 - 정당하다

평양은 한 때 예루살렘이라 불렸고, 평양신학교, 오산학교 등 기독교 학교 많았다.

그런데 지금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고, 기독교인은 지하에서 큰 고통을 당한다.

통일이 되야 북한을 전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통일을 바래야 한다.

 

▲2. 통일되어 더 강한 나라가 되면, 다른 민족을 더 잘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목적 이외에 우리나라가 더 강해질 아무런 기독교적 이유는 없다고 본다.)

 

기독교적 입장으로 우리나라의 부강은 반드시 다른 나라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문화적으로 우리가 더 부강해질 필요가

성경적으론 없다. (부강과 풍요가 도리어 영적으로 더 타락하고,

더 하나님 떠남을 염려하기 때문)

 

지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를 잘 돕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2000년 상황

우리만큼 경제규모 가진 나라에서, 우리만큼 해외원조가 적은 나라는 없다.

 

우리 정부는 아주 부끄러운 정도의 해외 원조를 하고 있다.

다만 한국 기독교가 선교지에서 돕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체면을 유지한다.

 

지금 전 세계에 굶는 사람, 질병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통일도 되서, 강한 나라가 되어서, 더 잘 도와야 하겠다.

 

 

◑4. 기독교는 평화통일의 방식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복음으로 무너뜨리 셨다.

만약 미국이 무력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식으로 나오면, 지지할 수 없다.

사랑과 평화와 봉사, 이런 예수님 가르침에 근거해서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채찍보다는 당근을 사용해야 하며

복수보다는 용서와 선행으로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우리가 군사력을 강화해서 북한을 굴복시키는 것 – 아주 현실적으로 보인다.

미국과 공조해서 북한을 압박하는 것 – 매우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기독교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 주류 교회들이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심정적으론 나도 동조를 했지만, 성경적으로는 정당하지 않다.

(개인으로는 지지할 수도 있으나, 교회가 나서서 전쟁을 지지하는 것은.. 고려가 필요하다)

 

미국같이 강한 나라가 자국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5. 통일을 위한 기독교적 준비는 ?

 

▲1. 우리는 더 성숙되어져야 한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북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변화/성숙되어야 한다.

북한이 충분히 민주적이지 못한 것 우리가 다 알고 있다. 통일되면

북한을 민주화해야 되는데, 지금 우리는 충분히 민주화 되어 있는가?

 

우리는 권리만 요구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지는 않는가?

우리의 민주 의식이 그렇게 (북한을 가르칠만큼) 충분히 성숙되어 있는가?

 

한국 사회가 통일이 되어 북한에게 도움을 줄 만큼, 도덕적으로 우수한가?

한국인들이 중국에 진출해서 도덕적으로 도움보다는 해악을 많이 끼친 점도 있다.

 

사회정의/자유 – 이런 것들은 상대적으로 북한보다 우수하지만

그 외 다른 분야에서 우리가 북한에 도움을 줄 만한 것이 과연 있겠는가?

(돈 말고)

 

특별히 영적으로 우리가 통일 후 북한을 잘 전도할만큼 영적 힘이 있는가?

한국 교회가 지금 수준의 도덕성으로, 지금 수준의 영적 힘으로

지금 수준의 성숙성을 가지고 – 과연 북한(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래서 우선 우리부터 좀 고쳐야 한다. 우리부터 좀 정직하고, 더 순수하고

우리부터 성경에 더욱 순종하는 교회가 되야 된다. – 이것이 통일 준비이다.

그래야 통일 후에 북한을 오염시키지 않고, 잘 도울 수 있겠다.

 

▲2.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북한이 밉더라도 우리는 식량, 구호품, 장애인 돕기, 비료 제공해야 한다.

교육 기회도 제공하고 경제 발전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교류도 확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 교회가 비교적 잘 했다.

2004년엔, 정부보다 민간 단체가 북한을 돕는 액수가 더 많았다.

여기서 민간 단체란 대부분 국내 교회 또는 미국 한인교회이다.

 

홍정길 목사님은 시베리아 남단에 넓은 대지를 세 내어,

감자를 심고 거두어 해마다 북한에 몇 백 (기차)량의 감자를 보내고 있다.

이런 것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지만, 한국 교회의 잘하는 점으로 나는 평가한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주민에게, 교회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도, 서독 교회가 동독을 많이 돕고 기여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숯불을 쌓아놓는 것은 원수를 망하라고 함이 아니다.

“원수를 부끄럽게 한다”는 뜻이다.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도우는 것이 아니고, 망하라고 도우는 것이 아니다.

원수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스스로 회개하라고 북한을 도운다.

 

▲3.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핵무기 계발, 인권 유린, 독재에 대해서 기독교는 비판해야 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입 다무는 것은 현실주의지, 성경주의는 아니다.

 

기독교는 선지자적 사명 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정직하게 지적한다.

‘북한을 자극하면 불장난할지 모르니까 우리는 가만 있자’

-세상은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 기독교는 ‘잘못됐다’라고 비판할 줄 알아야.

 

탈북자 문제 - 북한을 자극 않기 위해 교회는 탈북자를 돕지 말자는 주장은.. 잘못 됐다.

기독교는 인권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가능한 탈북을 돕는 것이 기독교적이며

남한에 온 탈북자들도 적극 도와야 한다.

 

그것이 통일에 방해가 되든/안 되든, 북한을 자극하든/안 하든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원칙에 충실히 따라야 하며,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는 민족도 초월하고 국가도 초월한다.

통일이념도 상대화 할수 있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대단한 특권이요, 자유다.

 

우리는 국가의 노예가 될 수 없고, 통일의 노예가 될 수도 없다.

이념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못난 기독교인이다.

모든 것을 상대화해서(↔ 절대화) 볼 필요 있다.

 

▲4. 기독교는 이상주의다

내가 제시한 주장이 여러분에게 너무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성경 가르침 자체가 참 이상적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원수를 사랑하기란 – 이상이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 – 이것도 너무 비현실적인, 이상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는 이상적인 꿈을 이 사회에 불어넣어야 한다.

 

모든 것을 너무 현실적으로만 판단, 대처하는 현 사회에서

우리 기독교의 사명은.. 이상 (성경적 원리, 하나님의 뜻)을 심어주는 일이다.

비록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도, 우리는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 이상을 따르는 것이, 결국에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게도 좋다.

하나님의 뜻은, 신기하게,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내 결론은 - 남북관계,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기독교는 성경적 가르침, 원칙, 이상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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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의 간증

수년 전에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조찬기도회에 나와서 간증했다.

“내가 미국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어떤 안건에 대하여 결재를 하는데

이것이 미국 국가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성경적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합당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될까? 미국 국가이익을 앞세워야 될까?’

나는 고민하다가, 내가 미국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있는 한

미국 국가이익을 앞세워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신앙양심을 굽히고 결재했는데

세월이 지나간 뒤에 보니까 미국 국가이익에도 안 맞았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절대 성경적인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처음에는 불이익으로 보여도, 나중에 결국은 모두에게 윈윈이 된다.

국가이익을 따른다고 해도, 성경적 원칙을 위배하는 것은

나중에 시일이 지나면, 결국 국가이익에 위배된 결정으로 판가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