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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8:1~22 오늘 죽으면 너무 아쉬운 이유

LNCK 2006. 6. 29. 08:01

◈오늘 죽으면 너무 아쉬운 이유           이사야38:1~22        설교스크랩, 출처

 

 

▶죽는 것이 아쉬웠던 집사님

오늘 죽어야 된다는 통보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죽어야 될 상황에서 여생을 내다보면서

가장 아쉬운 이유가 뭔가 한번 각자에게 물어보시지요.

 

제가 목회현장 속에서 기억나는 경험이 있습니다.

서울의 북악터널 너머에 있는 평창동인데, 50살쯤 되시는 여자 집사님이

암에 걸리셨습니다. 평창동에 대저택을 갖고 계십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20년이 넘도록 새벽장사를 하시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저택을 만드셨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집입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다 훌륭하게 유학도 갔다 오고, 또 장가도 잘 가고,

좋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병원에 갔습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인데, 저를 붙잡고 우십니다.

“전도사님, 제가 왜 지금 죽어야 돼요?”

 

제 입장에서 봐도, 그 좋은 집과, 그 많은 재산과,

앞으로 자녀들이 정말 형통한 삶이 쭉쭉 뻗어나갈 것이 예견되고 있는 가운데

50세면 아직 한창인 나인데, 돌아가셔야 되는 이 집사님의 형편..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 애달픈 이유가 이 집사님 경우에 명확하잖아요?

이제부터 좀 재미있게 행복하게 누리면서 살 수 있을 텐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죽는다고 가정하면 아쉬운 이유가 뭐예요?

내가 죽든지, 타인이 죽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든지.. 그 아쉬움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죽을 때 아쉬운 그 이유가.. 바로 인격의 질을 결정짓는다 이겁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 그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고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무엇이냐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본문 설명

 

▶본문 이사야 38장에는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을 예고 받은 히스기야 왕이 기도함을 통해서

벽을 향하여 좌정하고,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안타까움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생명을 15년 더 연장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왜 대단한 사건입니까?

생사를 결정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생사의 결정을, 히스기야의 기도를 통해서 수정 변경하십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의 기도가 모든 신앙인들의 기도의 모범으로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왜 그러느냐?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싫어하는 것의 대표 아닙니까?

싫어하는 것의 일등이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15년 더 뒤로 물러가게 한 그 기도는

기도의 모범 사례 중의 모범 사례가 될 수밖에 없지요.

 

오늘 본문이 참 기가 막힌 본문이에요.

히스기야도 그러한 죽음을 예고 받고

이제 죽어야 되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통탄하며 기도합니다.

그 아쉬워하는 내용이 10절에 나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사38:10

 

음부.. (스올)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을 말합니다.

 

중년.. 이라는 말은 학자들에 의하면 ‘내 인생의 절정기’라는 뜻이랍니다.

40대에서 50대 이런 연령의 중년이라기보다는

내 인생의 절정기에 내가 죽게 되었음을 아쉬워 한다는 겁니다.

 

아까 말씀 드린 대한민국 비버리힐즈(평창동)에 사시던 그 집사님의 아쉬움.

그 아쉬움의 이유가, 우리 모두에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모아 놓은 부, 잘 나가는 자식들..

이제부터 그 돈을 쓰면서 자식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참 아쉽지요. 

 

▶히스기야가 슬펐던 이유

그러면 도대체 히스기야 왕은 무엇을 그렇게 아쉬워했느냐 이거예요.

왜 그렇게 죽는 것이 슬펐냐? 이겁니다. 그게 바로 11절에 답이 나와요.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 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38:11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자기 중년의 죽음이 아쉬웠다 이거에요.

 

이렇게 간절하게 면벽하고 서럽게 복받치게 울면서

하나님께 죽음을 철회해줄 것을 간구한 그 이유가

‘내가 이 땅에서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는 것’

그것이 아쉬움의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는 겁니다.

 

이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약간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

 

▶죽음이 아쉽지 않았던 분들

예수님의 임종을 보면, 죽음이 임하기 바로 직전에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말로, 아쉬움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도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 그 이후로는 내게 상이 주어지리라.

그러므로 이 땅에서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음날 아침이면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내일 아침이면 죽을 거예요. 그러나 아쉬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스테반도 죽음 직전에 하늘이 열리면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과

그 우편에 인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거기에 무슨 아쉬움이 있겠어요? 빨라 올라가서 그분을 만나면 되지요.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위의 인물들과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자기 죽음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매우 신앙적인 이유로, 자기 죽음을 아쉬워하다.

히스기야가 그렇게 죽음을 아쉬워한 이유는

(평창동 집사님처럼) 모아놓은 돈을 쓰면서 살아야 되는데,

잘 나가는 자식들과 더불어 행복해져야 되는데,

이런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뵙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 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 38:11

 

여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어요.

‘계시의 점진성’ 여러분 들어보셨죠?

 

구약시대 때 사람들은 신약시대 때처럼 천국 계시가 명확하지가 않았어요.

천국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 명확하지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죽으면 선악 간에 구분 없이 음부로 가게 되는 건줄 알고, 막연하게 알았어요.

 

천국/지옥/사후세계는.. 신약에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쳐 주시고,

사도바울이 자기 신비체험을 통해 조금 가르쳐 주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뭐 그런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죽으면.. 스올(음부, 무덤, 사후세계의 통칭)에서

그냥 오래도록 지내는 것으로 막연하게 믿고 있었습니다. 욥기, 시편 제외하면..

 

그래서 히스기야가 기도하는 중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38:2~3,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하였다’

히스기야가 모든 우상을 타파합니다.

그리고 오직 성전에서의 여호와 예배만을 남겨 둡니다.

 

종교개혁을 이루는데, 개혁이라고 해서

그것이 행정적인, 종교적인, 문화적인 차원의 이벤트를 행한 게 아니라

결국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고백한 거라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진정한 사랑의 종교개혁을, 히스기야가 이룬 것입니다.

내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았고

하나님 보는 걸 낙으로 살았는데

이제 죽게 되어.. 그 하나님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쉬움의 기도가, 이 사랑의 고백이

하나님의 결정이 철회되고 수정되는, 히스기야의 삶이 연장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었다는 거예요.

 

▶자기 소원을 떼쓰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종교생활하고 교회 봉사 많이 했는데

내 딴에는 의롭게 살려고 애를 썼는데 하나님 벌써 죽음이 오다니요?

이 죽음을 물리쳐주세요. 이런 기도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본문이 가르쳐 주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의 대표로서의 죽음을 물리쳐 주시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의 대표로서 무병장수를 허락해 달라는

그런 기복적 기도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런 자기 소원을 강청기도해서.. 결국 응답받았으니..

그 기도의 모범을 오늘날 우리가 본받자..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가르쳐 주는 게 뭡니까?

 

이렇게 내가 원하는 욕구대로 기도하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내가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이유가 무엇이며,

삶의 내용이 무엇이냐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 분의 신앙수준을 알 수 있듯이,

히스기야는.. 매우 신앙적인, 하나님과 교제를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는

그런 경건한 기도를 드렸고,

그 기도가 응답되어져서.. 자기 수명을 연장 받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적용

 

▶예를 들어 연예인이 오랜 무명생활을 거쳐서 이제 뜨게 됩니다.

연예계에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CF광고가 쇄도합니다.

각가지 드라마의 주연 섭외가 들어옵니다.

절정이에요. 이 인생의 절정에서 죽게 됩니다.

 

그럼 이 사람의 아쉬움의 내용이 뭐예요?

그 인기를 향유하고, 연장하고,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히스기야 왕의 인생의 절정이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히스기야가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뭐예요?

 

여생을 통해서 누리고 성취하고 싶은 그 절정의 내용이 뭡니까?

하나님을 찾았다 이겁니다.

앗수르와의 대치 상태에서.. 간절한 기도의 체험을 통해.. 바른 신앙의 자세로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쳐서 해결하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다음에는 애굽에 도움을 요청해서 실패하고,

마지막에 침묵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 저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합니다.

천지를 주관하시고 영광만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재료로 삼으세요. 이 예루살렘 거민을 재료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영광토록 만방 위에서 찾아주세요.”

 

이게 바로 히스기야 왕의 인생의 절정기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쉬워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 기도, 그 하나님과 교제, 그 친밀함을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물론 천국에 가서 하면 되지만, 구약에서 성도들은 아직 그 지식이 없었다는 겁니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18

 

▶히스기야 왕의 생애의 절정기(중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갖게 된 것이에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늘 기도하며 하나님을 뵙게 되는 그 삶을

히스기야는 인생의 절정의 내용으로 삼은 것이에요.

 

여러분, 만약 오늘 죽으시면 무엇이 가장 아쉽습니까?

여러분이 이제까지 살아오시는 동안에 가장 기뻤던 순간이 뭡니까?

 

아들이 일류대학에 들어갔을 때도 아니고, 손자 봤을 때도 아니고,

아니면 남편에게 프러포즈 받았을 때.. 그때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뵙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실제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힘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인생의 절정기라는 거예요.

 

▶마치는 말

1) 만약 ‘오늘’ 주님이 나를 오라고 부르시더라도

우리는 절대 후회나 아쉬움이 없이 감사하며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평소에 ‘영생을 위하여’ 날마다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내게 어떤 개인적 소원(야망, 욕심)이 있어서,

그걸 ‘히스기야의 면벽기도처럼’ 간절히 간구했다고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살펴보았지만, 히스기야의 기도는,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마음이 있다면.. 천국에 하루 속히 가기를 더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는 매일, 매시간 그런 기도와 경배가 드려지고 있으니까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자기 개인적 소원을 강청기도 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

      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금식으로 오래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는 성경적 근거가.. 목숨을 15년 연장받은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여러분, 그것은 오해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개인적 소원을 강청기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 친밀함을 간절히 소원한 것입니다.

 

3) 내 중년, 즉 인생의 절정기에

나는 무엇에 치중하며, 무엇에 전념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님이 나를 중년(인생의 절정기)에 부르시더라도,

후회할 것이 없는 것에,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