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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598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기

LNCK 2007. 3. 21. 20:11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22:39 


▲1. 연약한 자의 입장에 서기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대인을 핍박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유대인 아이가 어떤 교회에 찾아가서 자기를 숨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교회를 맡은 성직자는,

그 아이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을지 모른다며 미안하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코리텐 붐의 아버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 유대인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숨겨 주었습니다.


그 성직자는 ‘도움을 주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한 반면에,

코리텐 붐의 아버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의 입장’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바로 율법사와 예수님의 이웃 사랑을 이해하는 차이였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도움을 받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리, 창녀, 죄인들을 거리낌 없이 만나셨습니다.  


오늘 나는 어느 입장에서 항상 말하고, 행동하나요? 

혹시 ‘도움을 주는 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나요?

 

 

▲2. 부모 입장에 서기

어떤 목사님이 한 번은 일본에서 제일 효자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 전국에서 효자 상을 받은 분이라서, 뭔가 배울 점을 찾아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회사에서 퇴근해서 들어왔는데,

자기 어머니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씻고 나서 방에 들어가니까 ‘얘야 먹어라.’하고 어머니가 먹을 것을 갖다 줍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대화합니다. 


그는 지켜보면서 속으로 ‘아~ 세상에 저렇게 불효막심한 사람이 무슨 효자냐?’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효자는, 부모님 하고 싶어 하시는 대로, 거기에 맞춰드리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부모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자기를 맞추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 입장에 서서)


여러분! 어머니의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성공하고 사업 회장되면 어머니의 접근을 막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방 안에 계세요, 어머니 참견하지 마세요, 말씀하지 마세요,

안에 들어가시라니까요.’ 그러면서 어머니를 방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이게 불효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 물 좀 주세요, 도와주세요.’ 이게 효도입니다.

회사에 갔다 오면 손도 만져보고 이래야 그게 효자입니다.


저는 사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지만 제가 보통 12시 가까이 집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주무시면 깨웁니다.

‘아버지! 한 수 합시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그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나보면 아버지는 좋아하십니다. 그게 좋은 것입니다.


아무 대화도 안하고 방에다 넣어 놓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도와주도록 하는 게, 그게 부모 자신에게 좋은 것입니다.



▲3. 형제 입장에 서기

어릴 때 교과서에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을 기억합니다.


옛날 옛적에 두 형제가 살았는데, 한 사람은 독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딸린 식구가 많았다.

추수 때가 되자, 두 형제의 아버지는, 논의 소출을 두 형제에게

공평하게 똑같이 절반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독신이었던 사람은, 밤에 몰래 나가서, 자기의 낟가리에서 볏단을 들어서

다른 형제의 낟가리에다 몇 번 옮겨다 놓았다.

그에게 딸린 자식들을 염려해서였다.  

그리고 자기는 독신이니, 수확이 좀 적어도 별 탈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거느린 식구가 많은 사람 역시, 밤에 몰래 나가서,

자기의 수확 낟가리에서 독신 형제의 낟가리에 볏단을 몇 번 옮겨다 놓았다.

그의 독신을 염려해서였다.

‘나는 노후에 공양해줄 자식이라도 있는데, 그는 자식도 없으니 어찌살꼬?

지금이라도 여윳돈을 좀 준비해서 자기 노후를 대비하려면... 아무래도 모자라겠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그들 형제는 자기들의 곡식 낟가리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그래서 그날 밤, 그들은 또다시 부지런히 볏단을 각각 서로에게 옮겨다 놓았다.


그러기를 며칠 계속하던 중 어느 날, 그들은 그제야 왜 자신들의 추수한 낟가리가

전혀 줄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달밤에 그들은 볏단을 손에 든 채, 서로 길에서 마주쳤던 것이다... 


 

▲4. 주님의 입장에 서기

주님은, 우리가 그저 ‘주님에 관하여’ 아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대신에 ‘주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God wants someone to know him

not just to know about him!


예수님은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셨든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The Father and I are one. 요10:30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 편에 서셨다는 뜻입니다.



나를 예로 들어 생각해 봅시다.

내 부모님, 내 자녀들, 내 친구들과 연인이

‘나에 관해’ 그저 아는 것을 나는 원할까요? knowing about me

아니면, ‘내 인격 자체’를 아는 것을 원할까요? knowing me


내 전화번호, 내 이메일주소, 내 직업, 내 나이 정도 아는 것은

‘나에 관해’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나와 깊은 인격적 교통이 있고,

‘내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아는’ 것은

‘주님 입장’에서 주님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경건훈련이 더욱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됩니다. 



◑아버지 입장을 고려하는 자녀... 가 철든 자녀다


나에게 좋은 것이, 하나님께도 좋다.

자식이 일등하면, 부모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뒤집어서, 자식이 아프면,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가 더 안타깝다.

마찬가지로 내가 괴로우면, 하나님도 괴롭고 안타까워하신다.


그런데 매일 풀이 팍삭 죽어있는 모습을 내가 보인다면,

하늘의 아버지께서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도

내가 늘 기쁜 삶을 살기 원하신다. 그래야 당신 마음이 편하시니까...


“항상 기뻐하라!”는 그래서 하나님의 애틋한 소원이 담겨있다. 살전 5:16

‘너희들 기쁘면 내가 더 기뻐서 그래...!’ 라는 말씀이 뒤에 생략되어 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늘 자기 연민에만 빠져서 슬퍼하는 사람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철든 신앙인은, 부모님 생각도 동시에 하는 사람이다.

내 슬픔에 너무 연련하지 말고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늘 염두에 두며 습 3:17

혹시 슬픈 일을 당해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라!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아버지를 고려하는 자녀가 되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렇다. 말씀 없으면 못 산다. 맥이 빠져서 못 산다. 

오늘 당신이 힘이 없는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말씀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다.  (이상 모두 펀 글을 편집함) 

 

[관련글]

*상대방 입장 생각은 '나를 다스림' http://blog.naver.com/jdsjkw/24858588

*5-3=2   http://kr.blog.yahoo.com/fbthdj2004/1091965

*어린아이가 자기중심적 성격에서 벗어나려면 친구관계가 필요하다. <피아제 

*내 인생 좌우명은 '역지사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11060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