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8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길

LNCK 2008. 9. 18. 12:23

◈세속주의Christian Secularism를 극복하는 길     약1:5      인터넷설교 녹취

 

 

◑평탄한 삶이 지만.., 세속주의가 쉽게 침투한다.

 

▲시험인줄도 모르고 당하는 시험 - 안주

살다보면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한다.   약1:2

그런데 ‘시험인줄도 모르면서 당하는 시험’이 정말 위험하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다.

 

삶의 안정감stability이 있는 것은 좋고, 누구나 그것을 동경한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유도,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편안히 살기 위함 아닌가?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원하신다.

 

그러나 <세상에 깊이 파묻혀 안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안주>는 이유 없이, 그저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롯이 소돔 성에서 안주하고 살았다. 

실제로는 좋지 않은데도 말이다.

 

▲야고보서가 말하는 시험은 - 세속에 안주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시험’(유혹)과

베드로서에서 말하는 ‘시험’(박해로 인한 시련, 투옥, 방랑)과는 약간 다르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시험은

‘안주하고 싶은 마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적당하게 믿으려는 신앙 자세,

‘주님 임하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뜻뜨미지근한 마음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야고보서의 시험’과 가깝다.

과거에 신사참배에 반대하던 일제시대 때는 ‘베드로서의 시험’과 가까웠다.

 

▲세속주의secularism의 시험

인류 역사에 면면히 내려오는 시험은 - <세속주의>라는 시험(유혹)이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 풍요로움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풍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세속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속에서 풍요로움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세상적 풍요로움 때문에, 하나님을 점점 떠나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구약시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띠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믿음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고.. 나는 믿는다.

바알주의가 바로 '하나님을 떠난 풍요와 다산'의 유혹이었다. 

 

이 세속주의 유혹은

교회가 '핍박'이란 외적인 압력이 없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은

언제든지, 어디든지,

예쁘고 화려한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편안할 때 두 배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

내게 모든 것이 잘 될 때, 삶에 큰 어려움이 없을 때,

우리는 평소보다 두 배로 기도하고, 두 배로 성경 읽어야 한다.

 

수준 있는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문제가 없을 때, 기도를 두 배로 전념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어렵다.)

문제가 생겼을 때가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두 배로 기도한다.)

 

편안한 지금, 앞으로 내게 문제가 안 생기게 예방차원으로, 두 배 기도가 아니라,

문제가 없이 편안할 때, 그 때 내 신앙이 나태하고 부패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에 세상적인 문제가 없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때 신앙생활 더 뜨겁게 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내게 문제가 없어질수록, 내 삶에 세속주의가 쉽게 침투하는데...

그래서 오늘 설교 주제는,

<평탄한 삶 가운데, 침투하는 세속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두 마음을 품는 성도들

 

▲자기 욕심에 이끌리던 성도들에게...

야고보 사도는

점점 세속화되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이 야고보 서신서를 썼다고 저는 생각한다.

 

네로의 박해 직전인 주후60년 경에

교회는 벌써 세속화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세속화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적 풍요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1:14

이 말씀을 보시라.

그 당시 성도들이 받았던 ‘시험’은

‘자기 욕심’이라는 세속주의였지, ‘환란, 투옥’이 아니었다.

 

우리 신앙이 더 성숙하게 되면

이 세상 욕심들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세속적 욕심에 시험들지 말아야 하는데... 

 

▲문제가 없을 때.. 세속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문제없으라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 교회를 괴롭게 하는 문제가 없을 때,

교회는 세속화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평탄하고 편안할 때

안 넘어지는 성도와 교회가 있다면... 기적일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바깥에서

세속적인 만족, 세상적 부요함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한다.

즉, 내가 바로 세속화 된 성도일수도 있다고 생각하셔야 한다.

 

 

▲세속화된 성도의 특징 - 결핍

이들이 겪는 공통적인 특징은 <결핍을 겪는다>는 것이다.

참 만족이 없고, 참 행복이 없고,

늘 부족하고, 불만족하고, 자기가 늘 불행하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세상이 주는 만족과 행복은, 잠시 달콤하게 느껴지나,

결국 아무리 먹어도, 가져도, 올라가도... 거기엔 <결핍 의식> 뿐이다.

아직 만족 못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가져야 되겠다는 것이다.

 

▲예레미야가 목청 돋군 <터진 웅덩이>

예레미야가 이런 세속화된 성도들에 대해 잘 지적했다.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2:13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참 만족과 행복은 주님께 있는데, 그분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 스스로 풍성해지려고, 스스로 발버둥 친 것이다.

 

그래서 풍성한 웅덩이를 만들어 보았는데, 그 웅덩이가 터져 버렸다.

아무 것도 저축하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다. 그 결과, 더욱 결핍을 느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찬송하며 “아멘” 해야 하는데,

‘믿음’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과 아울러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서 뭔가 부요함과 만족함을 찾으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세속주의다.

<하나님을 떠나서/등지고, 하나님 말고 다른 데서 만족함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살다 보니까, 남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그야말로 '물을 저축치 못하는 터진 웅덩이'였다.

 

▲야고보 사도는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권고한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약4:8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잠시 제쳐두고,  

세상 속에서 부요함을 찾으려고 했을 때

두 마음이 든다.

 

세상 사람들은 두 마음이 안 든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아예 (세상을 사모하는) 한 마음 뿐이다.

 

그런데 신자가,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서 부요함, 참 만족을 찾으려 할 때... 두 마음이 된다.

하나님 외에, 내가 다른 어떤 중요한 것(우상)을 두면

나는 두 마음을 갖게 된다.

 

▲두 마음(세속주의)을 품은 성도에게 나타나는 2가지 현상

성도가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속에서 부요함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결과는 결핍이었다고 했다. (예레미야) 

 

그 결핍이 일어난 인간들의 모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야고보는 2가지로 설명한다.

 

①입술로 인한 분열     약3:1~12

내 마음이 결핍되면, 내 언어가 자꾸 거칠어진다.

그래서 내 입술로, 사람들을 갈라 세우는 말을 하게 된다.

 

여러분, 잘 살펴보시라.

여러분과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을 공정하게 칭찬하시는가?

 

그런데 세속(세상)에서 부요/만족/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내 입술로 누군가를 깎아내려야 한다. 경쟁에서 그를 도태시켜야 한다.

내가 세속적 인정과 만족을 추구할 때.. 그렇게 된다.

 

하나님이 입술을 주신 이유는, 그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한 입술로

사람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데,

때때로 우리는 쓴물과 단물을 같이 솟구쳐 내고 있다.

자기 마음에 '복음이 주는 부요함'이 없으니까...

결핍이 있으니까... 

 

하나님은 적당히 믿고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존경, 칭찬, 높임... 이런 것들을 받으려고 하면,

내 입술이.. 세상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똑같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입술에서 쓴물과 단물을 동시에 배출해서.. 사람들을 이간, 분열시킨다.

 

②물질로 인한 분열   약2:1~7

세속주의를 추구하면서 얻은 물질은, 그것 때문에 많은 분열이 생긴다.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물질이 결정적으로 인간을 분열시키는 요소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질을 중심으로 사람을 구분해서 대할 때> 특히 그렇다.

 

이것은 결핍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내 안에 복음의 풍성함이 있을 때는 그런 일이 안 생기는데,

내 안에 결핍이 있을 때는

자꾸 ‘물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하게 된다. 약2:1~7

 

이렇게 그 당시 성도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속에 오염되어

결핍과 분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두 마음 품기=세속주의>를 해결하려면?

 

야고보 사도는 어떻게 세속주의를 이길 수 있는지 얘기해 준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풍성함을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놀라운 풍성함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눈 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 가치에 눈을 안 돌리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하신다.

 

▲1. 그래서 <참된 지혜를 구하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야고보 사도가 보니,

성도들이 자꾸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서

여러 가지 시험(유혹)을 당하는 것이 야고보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길로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지식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야고보서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서두에서, 참된 지혜를 가지라고 가르치는데... 

저는 이 1:5절이, 야고보서의 전체 주제라고 본다.) 

 

▲2. 하나님만이 풍성한 선물을 주신다.

 

가장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7

*여기서 '은사'는 성령의 은사라기 보다는, '좋은 선물'이란 뜻

 

앞서 예레미야는, ‘물을 저축치 못하는 웅덩이’를 말했다.

야고보는 그것과 정 반대되는 <가장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라고 했다.

 

<가장 좋고 온전한 선물>을 가졌다는데,

세상 것이 뭐가 부러워서 자꾸 한 눈 팔겠는가?

 

문제는 이 축복이, 내 귀에 솔깃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세속주의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축복이 예수 믿는다고, 구원 받았다고

그날 당장 피부에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풍성함을 끊임없이 더 알아가고, 더 발견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정답’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

<가장 좋고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가 정답이다.

우리 인생의 참 만족, 참 행복, 참 풍요로움은...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온다.

 

이 ‘생수의 근원’을 놓치고, 자꾸 ‘물을 저축치 못하는 웅덩이’를 파면 안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기독교 신앙이,

이런 주님을 ‘세상 축복을 주시는 도구’로 바꾸어 버렸다.

기독교를 세속주의와 혼합시켜버린 것이다.

 

‘물을 저축치 못하는 웅덩이’에 물을 더 보태 달라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주님께 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던 적이 있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그런 좋고 온전한 선물을 줬다/안 줬다 하시지 않으신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주신다. 차별없이 주신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보다 더 밝고, 더 빛나는 누가 있다면.., 그 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

그러나 그런 분이 없기에, 하나님께는 그림자가 없다.

가장 전능하신 분이, 가장 좋고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데,

우리는 자꾸 그 선물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다른 세상 재미와 행복을 달라고 한다.

 

다시 반복해서 말하자면, 야고보 사도는 이 편지를 읽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세상 가운데서 세상에 휩쓸려 살고자 하는 유혹과 위기에 처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풍성하시고

가장 좋은 분이시며,

가장 좋고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니, 

그것을 <지혜>를 가져서 깨달아 알고  약1:5 

그 분에게서만 만족과 행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만족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세상에 안주하거나, 세속에 빠지지 않는다.

 

▲입양아로 살면 안 돼!

어떤 입양아는 입양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냉장고 문을 마음대로 못 연다고 한다. 눈치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의 친자녀는, 새벽 2시에도, 곤히 자는 부모를 깨워서

자기가 아프다고 약 달라고 뻔뻔스럽게? 요구한다.

 

(우리는 성경에 보면 양자로 입양된 것은 맞지만)

우리가 입양아처럼 눈치 보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아버지 집에서 풍성함과 은혜와 각종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아야 정상인데 말이다.

 

어떤 집 아이들은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니까

아버지 집안에서 안정감과 행복을 못 누리고

집 바깥에 나가서 동네 나쁜 아이들과 어울린다. 탕자처럼 말이다.

거기서 배고프며 죽을 고생하면서도... 거기가 더 좋다고 믿는다.

 

그런 말단적인 재미에 자기 영혼을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바로 우리 모습은 아닌지..?

 

하나님 안에서 풍성함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것은 뭔가 부족한 것 같고,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세상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한다.

야고보 사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신다.     약1:5

 

 

▲마치는 말

모든 풍성함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 안에 있다. 위에서 내려 온다.

그러나 풍성함을 하나님 밖에서 찾으려 할 때,

우리는 세속주의에 물들게 되는데...

 

야고보 사도는

모든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에 대한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갖는 것이

세속주의를 이기는 힘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지혜를 구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신다. 약1:5

 

이 말씀의 도전에 우리 모두가 진실하게 “아멘”으로 응답하실 수 있기 바란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주님과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

돈 버는 재미, 출세하는 재미, 영화보고 여행다니고 취미생활하는 재미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발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08.02.05.인터넷 설교 녹취, 한규삼 목사 *원 제목 :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