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성공하는 신앙인 시37:1~7 설교 스크랩, 정리
◑여호와를 기뻐하는 신앙 시37:4
▲<동가식 서가숙>이란 고사성어가 있지요
시집가고 싶어 안달이 난 처녀에게 마침내 중매가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중매가 들어왔으니 입이 찢어질 수밖에.....
먼저 동쪽에 사는 총각을 만나보니.. 재산이 엄청나게 많고, 가문도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천하에 그렇게 못생긴 사람은 처음이더랍니다.
서쪽에 사는 총각을 만나보니 훤칠한 키에,
기가 막히게 잘생긴 얼굴에 근육질의 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난하여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택할 것인가?
처녀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시집은 가야할 터인데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
며칠 후 처녀는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아버지께 아뢰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시집가겠습니다.
그래서 밥은 동쪽 남편 집에서 먹고(동가식),
잠은 서쪽 남편 집에서 자겠습니다.(서가숙)’
물론 우스개 소리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냥 웃을 이야기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신앙생활의 본질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37:4
신앙생활의 첫걸음은 하나님을 기뻐하는데서 시작되어집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데, 어떤 관계인가 하면 생명의 관계입니다.
생명의 관계의 특징이 바로 <만남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만남의 기쁨이 <예배>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만남의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그 삶에 반드시 신앙의 성숙과 기쁨이 나타납니다.
▲과거에는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넘쳤다.
한국교회가 전에는 성경공부니 제자훈련이니 이런 것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부흥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그때는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왜요? 하나님만이 생명이요 복의 근원으로 믿었기 때문에
만남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배시간 전에 10~20리 걸어와서 한 시간 전에 교회 와서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예배에서 만남의 기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왜요?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맛,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
이제 그 맛을 잃어버리니까..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동가식 서가숙 신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에서 만남의 기쁨이 없어져 버립니다.
마치 콘크리트에 흙이 들어가면 부실공사가 되어 힘을 못 쓰듯이
성도의 신앙생활에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삶의 열매가 없습니다.
▲<저절로>의 묘미
우리가 열매있는 신앙생활 하려면 <저절로의 묘미>를 알아야 합니다.
즉 신앙생활이 저절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지겨운 것, 힘든 것이 본질적으로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재미만 있으면, ‘힘든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그렇게 힘들어도, 재미가 있으니까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 맺는다고 합니다. 요15:5
그렇다면 오늘 나의 신앙생활은 재미있습니까?
신앙생활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 내 신앙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기뻐하면 → 소원이 이루어진다. 순서에 유의해야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37:4
우리는 먼저 내 소원을 성취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포기상태에 들어갑니다.
신앙생활 교회생활 다 지겨워지고.. 특히 직분이 부담이 됩니다.
이건 원리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세요. 그리하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면 저절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삶에 변화가 있고 신앙생활에 열매가 있습니다.
직분자들이 왜 몇 년이 지나면, 그 직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까?
바로 직분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배를 통한 만남의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감격해하는 모습,
말씀을 들으면서 진지한 얼굴표정
이런 기쁨이 있어야, 내 마음에 소원도 이루어 주십니다.
▲예배에 만남의 기쁨이 없는 이유는,
-기대를 갖고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준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갖지 않고, 준비성이 없는 이유는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사1:12
주일날 교회에 도장 찍으러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러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 은혜 받아 기쁨을 회복하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음의 소원까지 이루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 맡기는 신앙 시37:5
▲사람에게는 <윤형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한 알피니스트가 알프스 산 등반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13일 만에 구조되어 살아나왔는데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었느냐? 물으니
하루 두 시간만 자고 계속 걸었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걸었는가 물어보니 6Km밖에 걷지 못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경 6Km내에서 뱅뱅 돈 것이지요.
사람이 <윤형본능> 때문에
자기는 똑 바로 걸어간다고 했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불신의 40년 ‘광야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방황’이라 합니다.
뱅글뱅글 제자리에서 도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푯대를 예수님 삼고 살아가세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인생 다 산 후에 남는 것은
‘내가 방황했구나...’ 하는 허무감 밖에 없습니다.
돈만 벌면, 졸업만 하면, 학위만 따면, 진급만 하면, 자격증만 따면
이제 잘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인생 갈릴리 바다에 떠있는 조각배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공이 되셔야만, 이 바다 건너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윤형본능적 방황을 극복하는 길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시37:5
‘네 길’은 우리 앞날의 계획과 모든 삶의 문제를 말합니다.
우리의 길 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부를 맡기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시는 분으로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자기 범사를 맡길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편에 내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할 때 이런 역사가 내게 나타날줄 믿습니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세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103:3~5.
▲평탄할 때가 위험한 이유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 붙듭니다.
그러나 평탄하면.. 하나님 붙든 손을 놓으려고 합니다.
왜? 이제 내가 더 잘 알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운 허드슨 테일러
중국 내륙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선교사 생활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고민하느라고 밤잠을 못자고 있는데,
어느 날 영국에 있는 누님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까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쉬는 법을 배우라>고 쓰여 있더랍니다.
마치 포도나무가지는 혼자 애쓸 필요 없이
원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진액이 흘러들어와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는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고
그는 선교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상급으로 만들어 주신다 시37: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37:6
▲최상급 인생이 되게 하신다.
영문법에 최상급 이란 문법이 있지요.
형용사 부사에다 est를 붙이면 되지요.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겠다는 말씀의 뜻은
<우리의 속에 있는 재능을 최상급으로 발휘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은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재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인생의 앞날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을 최상급으로> 나타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우리의 상황은 반대로 이럴 수도 있습니다.
사5:2,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좋은 포도열매를 맺기를 바랬는데, 들포도를 맺었도다.
어떻습니까?
지금 나는, 최상의 컨디션과 최상급의 능력을 발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반대로 들포도 맺는 인생으로 전락했습니까?
내 인생 내 것이라 생각 말고
내 인생의 명코치 되시는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참고 기다리는 신앙 시37:7
‘최상급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한 가지 더 첨부한다면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시37:7
▲말세의 특징 - 참지 못함
그런데 딤후3:1절 이하,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 구절에서 말세에 신앙생활 하기 곤란할 때
그 이유로 사람들이 「조급하며」「자고하며」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침몰 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감사와 기쁨이 마음속에서 사라질 때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면 다음 뭐가 옵니까?
불평, 원망, 짜증, 비판... 이런 게 마음에 자리 잡습니다.
▲믿는 사람이 인내한다
왜 불평하고 원망하는지 아십니까?
풀핏 주석에는 이스라엘 40년 광야생활 중에 불평이란 것은
「하나님의 신뢰성에 건방진 행동」이라 말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하나님의 신뢰성이 나타날 건데.. 참지 못해서 일을 망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1:2, 여러 가지 시험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즉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을 때 우리 신앙인격이 온전해져서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만 가지고 다 되지 않는다. 믿음+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히11장에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성도는 믿음만 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어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면서
히12:3에 <예수님 바라보고 참아라> 합니다.
11장에서 믿음을 얘기한 다음에,
12장 서두에서 예수님처럼 인내할 것을 가르칩니다.
▲신앙생활의 초점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시니라. 약5:7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최대이슈가 바로 마라나타 즉 주의 강림이었습니다.
주의 강림을 기다리며 참고 인내했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의 최대 이슈가 무엇입니까?
대부분 성도들이 초점 없는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지 못합니다.
사람이 어떤 목적이 있을 때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참고 견딥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이 주님 앞에 섰을 때가 될 때에
아니 최소한 의인의 삶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08.08.24. 인터넷설교 발췌, 정리. *원제목 :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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