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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눈 3710

LNCK 2012. 7. 19. 09:58

◈3가지 눈            왕하6:13~23                출처보기 

 

 

▲아람이 엘리사를 잡으러 온 이유

미국이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던 1775년에 사라토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독립전쟁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인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전투를 앞두고 미 독립군은, 영국군이 병력이나 화기 면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뉴햄프셔의 다니엘 모건은 <모건 소총부대>라는 오합지졸의 농부들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전투 전날 밤, 모건은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일당 6펜스를 벌려고 싸우는 놈들에게 총알을 낭비하지 말라.

견장 단 놈들만 맞추어라."


독립군은 실탄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적 사병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명령에 따라 그들은 어깨에 견장을 단 영국군 장교들에게만 집중 사격을 했습니다.

전투 이틀째가 되자 영국군 장교들 중에 태반이 죽었습니다.


영국군은 여전히 병사들은 물론 화기와 보급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영국군에는 장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는 자를 공격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을 넘어뜨리고 합니다.


그래서 아람의 군대는,

엘리사를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영적 전쟁의 선봉에는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어주신 능력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집니다.


그런 엘리사를 마귀가 그대로 내버려 둘리가 없습니다.

엘리사가 제거되어야 이스라엘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적인 공격이 대상이 된 엘리사가

어떻게 아람 군대의 공격을 물리쳤는지 살펴보면서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을 얻고자 합니다.


◑본문 설명


주전 8백 여 년 전 이스라엘 나라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 한데 받은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서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 중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소상히 알 수 있는

기막힌 능력도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능력을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히는

아람 나라 왕궁의 사정을 살피는데 사용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당시 아람 왕이던 벤하닷 2세가 아무리 기발한 작전을 짜가지고

이스라엘을 쳐 들어가도, 여지없이 패하고 마는 기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벤하닷 2세가 신하들을 불러 놓고서는

왜 번번이 전쟁에서 지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밝혀진 사실이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에는,

아람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엘리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벤하닷 2세는 엘리사를 먼저 없애야 하겠다는 판단을 하고서는

밤을 틈타서 잘 훈련된 정예 부대를 이스라엘에 침투 시켜서

엘리사 선지자가 머물고 있던 도단 이라는 작은 성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곧 바로 성을 점령하고 엘리사를 체포할 요량 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이 일 까지도 모두 알고 있어서

그 일에 완벽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엘리사를 시중들고 있던 사환이 거처에서 나와서

성 아래쪽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이 사환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가

그야말로 물 샐 틈도 없이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환은 위급한 밖의 사정을 엘리사 선지자 한데 보고를 하면서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라고 하면서

한탄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엘리사 선지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왕하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 선지자가 놀라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이 인간적인 배짱이 두둑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말씀처럼 엘리사는 사환이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보내신, 하늘의 군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사환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기도 이었는지 17절 봅니다.


왕하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가 기도를 마치자 사환의 눈이 활짝 열려서

조금 전까지 만 해도 전혀 보이질 않던 영의 세계가 보이길 시작 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보신대로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사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온 산을 뒤 덮을 정도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군대가 아니라 ‘불로 된 말과 불로된 마차를 탄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서 야 그 사환은 안심을 할 수가 있었고 엘리사처럼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담대한 모습으로 아람 군대를 바라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이런 하나님의 보호가 엘리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없는

아람 군대는 계획대로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을 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아람 왕인 벤하닷 2세나 군사들은 엘리사는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해서

체포를 확신하고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거처를 향해서 돌진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었고

더 없이 큰 죄악을 범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볼 것도 없이

아람 군대의 작전은 힘도 한번 써보질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작전이 어떻게 실패 했는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왕하6:18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의 기도가 마쳐짐과 동시에 놀라운 이변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말씀처럼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달려오던 군사들 모두가

갑자기 앞을 전혀 못 보는 소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서 모든 군사가 앞을 못 보고 우왕좌왕 하니

무슨 수로 엘리사를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엘리사를 붙잡기는커녕

자기들이 도리어 이스라엘의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해석 및 적용


▶1. 아람 군사들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에 보신 것처럼 아람 군사들이 가지고 있는 눈은

‘보이지 않는 눈’ 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런 소경의 눈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밝은 눈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서

이스라엘 나라 깊숙이 있는 도단 성까지 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밝던 눈이 갑자기 어두워짐으로 해서 엘리사를 체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도리어 자신들이 포로가 되어서 이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우리들이 주목할 것은

왜 이들이 갑자기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잡으려고 달려들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을 대적 하는 큰 죄악’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표면적인 면으로 본다면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지만

기실 그 일은 하나님께 도전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멀쩡한 눈들을 멀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주목 할진데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경우에는

영적인 면에서 이들처럼 소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소경이 된다.’ 라는 것은 얼굴에 있는 이 눈이 먼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소경이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사단의 뜻을 분간 하지 못한다든지

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잃어버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경험 하는 바이겠지만

저나 여러분이 죄악을 범한 까닭에 분별력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 보십시오.

이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죄악’ 으로 인해서 앞을 못 보는 소경처럼 되지 않도록

늘 은혜 가운데 사시기를 축원 합니다.


▶2.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환의 눈은 한 쪽만 볼 수 있는 눈일 뿐

다른 한 쪽은 전혀 볼 줄을 모르는 반 쪽 눈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 엘리사와 사환은 같은 처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볼 수 있는 반경도 똑 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환은 아람의 군대를 보고서, 곧 죽을 것처럼 놀라고 낙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같은 군대를 보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상반된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원인을 찾는다면, 이 사환의 눈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한쪽만 보는 ‘편향적인 눈’ 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힘들고 문제되는 부정적인 면만 보았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승리와 보호와 축복 같은

긍정적인 면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환이 쳐들어온 아람의 군사들을 보고서

놀라고 당황하고 낙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은 지금 어떻습니까?

혹시 사환처럼 어렵고 힘들고 문제투성이인 것들만 보이는

편향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또 다른 한쪽도 볼 수 있는 눈으로

고침 받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편향적인 눈을 고치지 않는 다면

평생을 그렇게 힘든 것만 보면서 한숨을 쉬어야 할 것이고

문제투성이인 환경만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사환과 같은 눈을 고치는 방법이 무엇인줄 압니까?

오늘 말씀에 보니까? 사환의 눈을 고치기 위해서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사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기도로 말미암아서 편향적인 사환의 눈이 고쳐지게 되었고

그때까지 보지 못하던 영의 세계도 비로소 보길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주목 할진데, 반쪽만 보는 눈을 열어서 온전히 볼 수 있게 하는 데는

‘기도’ 밖에 없는 줄 압니다. 기도로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일을 위해서 쉼 없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서

온전하고 건강한 눈으로 고침을 받고 살게 되길 축원 합니다.


▶3. 엘리사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 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군사들이 가지고 있던 눈이나 사환이 가지고 있던 눈은 온전치 못한 눈들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온전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엘리사의 눈은 ‘죄악’ 때문에 어두워진 눈도 아니었고,

사환처럼 당면한 어려운 현실만 보는 편향적인 눈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군사들이나 사환이 보지 못한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엘리사는 그 눈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보내신

불 말과 불 마차를 타고 있는 하늘의 군사를 보면서

그렇게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온전한 눈을 갖게 되길 축원 합니다.


엘리사가 가졌던 눈은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믿음의 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보호 하시고 계시고 인도 하고 계시며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담대한 사람’ 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다윗도 그런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잖습니까?

그랬기에 왜소한 소년의 몸으로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우겠다’고 나갔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믿음을 증명하는 시편의 고백이 있습니다.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 환난, 풍파를 만난다 할지라도 흔들림이 없이

담대한 모습을 지킬 수가 있을 줄 믿습니다.


원하기는..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긍정적이고 축복 된 면들’을 보면서

늘 힘을 얻고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서

사단을 비롯한 모든 대적들을 끝까지 물리쳐 이기는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원 합니다.


▶마치는 말, 기도

오늘은 주신 말씀 통해서 ‘세 종류의 눈’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죄악으로 말미암아서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분별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게 하소서.


둘째, 힘들고 문제 많고 부정적인 면들만 보는 편향적인 눈을

쉼 없는 기도 생활로 고쳐져서,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함께 볼 수 있는 온전한 눈을 가지고 살게 하소서.


셋째, 엘리사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온전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봄으로써

끝까지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눈> 관련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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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군대가 안전하게 돌아갑니다 (21-23절)


졸지에 원수인 아람 군사들을 사로잡게 된 이스라엘 왕은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신이 나서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라는

이스라엘 왕의 소리가 아람 군사들에게는 죽음의 사자의 소리입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칼과 활로 잡은 자들도 아닌데 어떻게 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물과 떡으로 대접하고 돌려보내도록 합 합니다.


포로가 된 자들에게  "치지 마소서"라는 엘리사의 대답은 복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권고대로 그들에게 먹을 것과 물을 제공해주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잘 대접해서 보낸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무사히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니

아람 군사들이 이스라엘 땅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역은 하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무엇이 참다운 승리입니까? 쳐들어온 원수를 다 죽이는 것입니까?

사환은 엘리사의 기도로 영의 눈을 떠서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반면, 아람 군대는 엘리사의 기도로 육의 눈까지 어두워져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사마리아 성까지 끌려가 졸지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들을 잘 대접해서 돌려보내라고 당부합니다.

엘리사가 왜 그랬을까요?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잡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자신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을 그들에게 알리기 원했습니다.

여호와는 악한 자라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전쟁은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 미움과 갈등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

끝없는 보복과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포로가 된 아람 군대는, 도리어 후한 대접을 받은 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굴레서 벗어나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분간은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