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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풀기, 섭리의 의외성

LNCK 2012. 7. 23. 08:20

◈보따리 풀기, 섭리의 의외성            눅1:5-80            출처보기



▲보따리 풀기-의외성을 나타내는 말

‘보따리 풀기’

삶의 여러 방면에서 이 말이 쓰이잖아요?


근데 항상 보따리 풀기라는 말과 같이 연관 지어서 생각되는 것은 ‘의외성’입니다,

보따리를 풀고 보았더니.. 기대하지 않은 것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대한 것이 나왔을 때는.. ‘보따리(패키지)’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습니다.

이 표현이, 본문(사가랴가 성전에서 세례요한의 잉태 고지를 받는 것)과 어떻게 관련될까요?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보따리를 풀어 내셔야 재미가 있습니다.

인생에 신바람이 납니다.


그리고 '보따리 풀기'에 따라다니는 게 의외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서 보따리를 풀어야

우리의 하루하루가 날마다 새로울 수가 있습니다.


본문은, 어마어마하게 길게 쓰여 있는 이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태어나는 과정과, 예수님께서 태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얘기입니다.


마태와 마가와 요한복음, 그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들이,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되는 제사장 사가랴와 그 어머니 엘리사벳이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이젠 도저히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

무자한 상태로 인생이 점점 황혼기에 접어들어서 마감을 하고 향해가고 있는 중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사가랴에게,

그것도 제사장으로서 성소에서 분향단에 불을 붙이고 분향을 하고 있는 중에

‘네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예언을 통해서 세례요한이 태어나고,

세례요한이 태어나서 이름이 지어지는 과정,

 

또한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을 예언하게 되고,

마리아의 찬가 이러한 것들이,

다른 복음서에서는 흔적조차 없는 내용들이 기록되어지고 있습니다.


왜 누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썼을까요?

마태와 마가에서는 그냥 이 땅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복음의 역사를 기술해 나가기가 급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잉태되고 태어나게 됐는가,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사역을 해 나가실 때에 그 사역을 준비하는 자로서

잠깐 등장시키고 맙니다.


근데 누가는 왜 이렇게, 마태와 마가에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 제거한 이야기를, 누가복음에 등재시키고 있을까요?


누가복음의 구원 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누가의 관심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데오빌로와 같은 사람들(우리 각자)의 삶에서.


이 땅에 대하여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세밀하게 깊게 배려하고 계시고

간섭하고 계시는가를 드러내 보여주고 싶은 것이에요.


풀어서 드러내야 될, 하나님의 계획의 보따리(의외성)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19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네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천사가 말하자 사가랴가 깜짝 놀랍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하나님의 (의외적인 섭리의) 보따리를 풀어놓는 겁니다.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풀어 놓는 거예요.


이때 마리아와 사가랴가 반응하는 태도가 뭐냐?

의외성이에요, 의외성.


뜻밖의 일을 만나게 됩니다, 뜻밖의 일을.

그리고 마리아와 사가랴가 기쁨의 찬가를 올리게 됩니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 하는 맛이라는 거예요.


언제나 뜻밖의 일들이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어지면서 내 삶에 나타나게 되는 것,

이게 바로 신앙생활의 생명력이라는 것이에요.


나한테는 지금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리고 있는지 아닌지 이걸 알려면

의외성이 준비되어야 됩니다, 의외성.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리려면 그 의외성이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예레미야서 33장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너희에게 응답하겠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희에게 이루리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 할 때, 우리 기도의 내용들이 다 뭐냐 하면,

내가 소원하는 것들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에 대해서, 이 문제가 풀려나가는 해답은,

이렇게 이렇게 진행되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가 예측하고 감을 잡고

기도를 드립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이 예측되어 있고,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의 기도 속에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의외적인 섭리의 보따리'를 풀어놓아도,

우리가 도통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을 못 잡는 것입니다.


그게 계속되면, 하나님의 섭리가 내게서 떠나갈 수도 있습니다.

계속 엇박자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이루어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내가 주님입니다.

심지어는 어떻게까지 얘기하는가 하면,

‘구체적으로 기도해라’ 이렇게까지 얘기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래서 ‘내년도까지는 연봉 얼마가 되게 해 주세요,

내년도 까지는 교인이 몇 명 뭐 500명이 되게 해 주세요’ 구체적으로.


'크고 비밀한 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릴 때,

그 보따리가 풀리는 배경이 될 수 있는 의외성이라는 게

우리 마음속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내 삶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릴 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준비된 배경이 뭐냐 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뜻밖의 의외성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마찬가집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아이를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고…’


또 그 당시 많은 처녀들이, 처녀가 메시아를 잉태한다고 하는

이사야서의 예언 때문에

처녀들이 베들레헴에 모여 가지고, 결혼하기를 거부하면서

메시아를 잉태할 것을 기도하고 있던 처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전혀 그런 예상과 소원을 갖고 있지 않았던 그런 사람입니다.

의외성이 준비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의외성이 보전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보따리를 풀어내신다는 얘깁니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을 때, 다윗도 마찬가지로,

의외성이 있었습니다.

전혀 자기가 기름부음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안 했습니다.


그건 광야 80세 노인, 모세도 마찬가지고,

에스더도 마찬가지고,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사가랴도 나이가 많아 가지고

이젠 애를 낳을 것을 접어 버렸습니다, 접어버린 상태에요.

그런데 나타나서 의외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네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따리를 풀어내는 역사’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생각의 보따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계획의 보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못 풀어내시느냐 하면,

우리 마음속에 의외성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보따리를 풀어내지 못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보따리를 풀어내시려고 해도,

내가 항상 상식적인 것만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섭리를 도통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엇박자로 따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따리를 못 푸시는 거죠. 풀어도 또 금방 다시 거두실 것입니다.

손뼉도 서로 맞아야 소리가 나니까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뜻밖의 일이, 하나님의 보따리를 푸는 모든 일들이 뜻밖의 일이 되려면,

주님의 뜻만이 완벽히 이루어지려면, 

내 뜻이 없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뜻밖이라는 것은,

내 뜻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전부, 모든 것이 다 뜻밖의 일이 되어 버리고, 이렇게 뜻이 없어져 버리면,

하나님의 뜻의 보따리가 열릴 때마다 의외가 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어떤 태도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하나님의 보따리가 풀렸나요?


정혼한 여자, 약혼한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될 경우에,

아버지가 밝혀지지 않는 그런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에, 파혼을 당함은 물론,

길거리로 끌려 나와서 돌에 맞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지어다’라고 말했던  것은,

자기의 뜻 자체를 자기 삶과 연관 지어서, 자기의 뜻을 갖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평소에 마리아의 마음 태도가 어떤 거였냐 하면,

자기는, 자기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자기의 뜻을 내세워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뜻에, 반대나 거부를 안 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내 뜻이 죽은 사람, 모든 일이 다 뜻밖의 일입니다.

왜? 내 뜻이 없으니까요,


그럴수록, 내 뜻 바깥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보따리 풀기’가 잘 일어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워낙 관습, 인습, 체면, 사회적 여건

이런 상식적인 일들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어서,


하나님이 ‘섭리의 보따리를 푸시려고 해도’ ..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고, 감동하셔도 .. 우리가 ‘노 땡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하는 말과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처럼 상식적으로만 움직이셨다면,

수가 성의 여인.. 안 만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 다가오면 급하게 피하셨을 것입니다.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 꿈에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려고 했던

보따리를 풂의 연속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스스로 종의 형태를 띠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뜻을 죽여 버리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신바람 나는 인생의 핵심내용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내 뜻을 완전히 죽일 때

하나님의 뜻의 보따리가 풀려나오면서.. 모든 게 뜻밖의 일인 겁니다.


내일을 향한 뜻도 없습니다. 내일을 향한 뜻이 죽었으니까.

내일을 향한 뜻은, 내일 아침에 또 보따리가 풀릴 것입니다.


내 뜻이 죽어버려서 하나님의 뜻의 보따리가 날마다 풀려나갈 때,

사가랴가 아이를 갖게 된다는 일에 깜짝 놀라 뜻밖의 일 앞에 부닥치듯이,

마리아가 자기가 예수라는 메시아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고지 앞에서,

뜻밖의 일에 깜짝 놀라는 것처럼, 그리고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놀라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왜 찬양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라고 하는 이 땅에 있는 이 티끌 같은 존재에 대해서

깊은 배려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겁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느냐는 둘째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나한테 이렇게 자세하게 세심하게 깊은 계획의 보따리를 갖고 계신다는

그 사실에 감격하는 겁니다.


여러분, 누가도 마태나 마가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 부활과 승천하신 주님의 그 사건들을 경험하고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이야기가 십자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용적으로.

이 연관성을 피해서는 어느 것도 기록할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걸 먼저 경험했기 때문에…

경험자들로서 그 십자가의 의미를 이처럼 찾아내는 겁니다...

.........................

 


아프리카의 최전초 선교 기지에서 봉사하고 있던 한 여자 선교사가 위독한 병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한 달 동안 생활비도 도착하지 않아

매일 보리죽과 깡통에 든 분유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소홀히 하지 않으시나 하며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30일 정도 지나자 심했던 질병이 사라져 건강이 회복되었고

생활비도 다시 도착하여 식량을 구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해 후 안식년으로 귀국한 이 선교사는 교회에서 당시 힘들었던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친절해 보이는 한 의사가 찾아와 그 질병에 대해 자세히 물어 보더니

 

'선교사님의 생활비가 제때 왔더라면

선교사님은 오늘 살아서 저와 대화를 하지 못했을 뻔했습니다.

잘 모르셨겠지만 사실 그런 소화 장애 질병은 30일간 보리죽 처방을 해야 낫는 병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그 여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자기를 돌봐 주셨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적절하게 돌봐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롬 8:32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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