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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물어서 길을 가시라

LNCK 2012. 8. 1. 10:08

◈‘방향’을 물어서 길을 가시라        잠3:1~6           출처보기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고대 점술가들>은 <별자리>를 열심히 살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짐승의 간>을 쪼개서 그 모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집시들>은 <차의 잎맥>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들의 이동경로>를 주시하기도 합니다.

<조개껍질의 모양>으로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은 오히려 우리네 인생을 헷갈리게 하는

<도깨비 방망이>에 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맨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범사에 너는 그를 인정하라>는 여기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누군가를 우리가 인정할 때, 우리는 그에게 가서 자문을 구합니다.

내가 마음으로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사람 !

그런 사람에게 가서 우리가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 <범사에 너는 그를 인정하라>는 말씀은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물어 가며 그대 인생을 설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그 분께서 우리네 인생을 지도하신다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는 제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그 분께 열심히 물어가며 길을 가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우리 인생을 걸어가리라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해도

우리네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인도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합니다.

내 몸에 파고든 그 어떤 질병이.. 우리로 하여금 또 그렇게 느끼게 합니다.

정말 열심히, 정말 정직하게 했는데도 사업이 곤두박질 칠 때..

우리는 역시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해서 커다란 손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역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는 날마다의 삶 속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여러 장의 <입학원서>를 사들고 우리의 자녀들은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실로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런 선택의 선택을 거듭해서

<지금의 자리>에 <지금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것이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진리로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라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사45:11> 말씀도 보실까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그 다음절 말씀을 보시면 <왜> 그렇게 우리가 장래 일을 놓고

여호와 하나님께 열심히 물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親手)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萬象)을 명하였노라 !


여러분, 세상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 모든 것>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 이 <하나님의 뜻>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주권적인 뜻>, <도덕적인 뜻>, <개인적인 뜻>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주권적인 뜻>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련이 있는

매우 광범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도덕적인 뜻>은 세상 속에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관련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개인적인 뜻>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되어지는

그 한 사람만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중에서 <주권적인 뜻>은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뜻>과 <개인적인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나를 인도하셔서

<도덕적>이고 <개인적>인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수단>은 무엇이고, 그 <시기>는 언제일까요?


혹시 광야 길을 걸어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피어올랐던

<구름기둥>과 같은 방법은 아닐까요?

<솔로몬의 성전>을 가득 채웠던 <영광의 연기>는 아닐까요?

아니면 <사무엘>에게 들려던 <세미한 음성>은 아닐는지요?


사람들은 여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성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성경>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것을 바로 보고, 바로 이해하고,

거기 그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해 가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예외적인 방법도 일부 있다고 봅니다.


<성서고고학 박물관>에 가보면 <작은 기름 등잔>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잔의 고리>가 <맨 아래쪽>에 붙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까지도 한 동안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비밀은 이렇습니다.


맨 아래쪽에 위치한 <등잔고리>는,

발목의 <샌들가죽끈>에 등잔을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행자들은 그렇게 <신발>에 <등잔>을 매달고 어두운 길을 걸어 다녔던 것입니다.


여기 이것과 관련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등이 되고, 우리 인생길에 빛이 됩니다.


<칠흑 같은 밤>이라도 우리가 <북극성>을 기준 삼으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침반>은 우리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우리에게 <정북(正北)>을 알리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나침반이 우리에게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제공해 주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오직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성경에서 <방향>을 놓쳐버리고, <백과사전식 지식>을 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접근입니다.


성경은 <도덕적인 뜻>, <개인적인 뜻>에 있어서,

다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성경>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은사적으로, 신비하게 인도 받는 신자도.. 일부 있습니다.

그런데 맞을 때도 있지만, 틀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하고, 분변해야 합니다.

다만 기본적으로는 성경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란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새로운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미 계시된 말씀!

그 말씀을 우리가 부둥켜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런 모습이 있으면, 우리는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안전하고 복된 인생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하는 우리,

그런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은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주실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 하나씩을 결정해 나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고,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모두 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학교 교사>가 되어서도 얼마든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얼마든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구멍가게>를 하면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배추 장사>를 하든, 심지어는 우리가 <청소부 생활>을 하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요?

여기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그가 어느 자리에 처하여 있든, 그는 지금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기 이 사회 안에는 <목수 같은 목사>가 있는가 하면  *늘 집만 짓는 목사

<목사 같은 목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말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목수 같은 목사>보다는 <목사 같은 목수들>!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이 땅에는 훨씬 더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거룩해져 가는 것!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직업>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까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던 그 일 !

바로 그 일을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 <기드온 신드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드온>은 <양털>을 꺼내 놓고 표적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여기 이 양털에만 이슬이 맺히게 하시고

  사면 땅은 마르게 하소서!

그 때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요구하는 방법대로

<당신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좀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여기 이 양털에만 이슬이 맺히지 않게 하시고

  사면 땅에는 이슬이 내리게 하소서!

그 때도 하나님은 그의 요구대로 <당신의 뜻>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기드온 신드롬>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지금 이런 분이 계신가요?

지금은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을 ‘즐겨 사용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이 기본적인 방식인 반면,

이런 것은 예외적인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성경>을 던져 버리고 기드온 신드롬에 빠져 있으면

그것은 곧 전화통 옆에 앉아서 <하나님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 각자를, ‘구원의 완성’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인도해 가십니다.


‘사업의 성공’으로, ‘인생의 성공’으로 인도하는 것은,

우리 각자를, ‘구원의 완성’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인도해 가시는 길에 나타나는.. 부차적 부수효과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 각자를, ‘구원의 완성’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인도해 가시는데.. 기본적으로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비교해서 볼 설교문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비성경적인가?

 

자연인이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믿기 위해서

지금도 <세계 어느 한 부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내기 위해서

자기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그 열심히, 그저 저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한 열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저들로 하여금 거기에 평생을 바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록된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계시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서 길을 가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것은 <성경> 안에서 열심히 물어가면서

여러분의 인생 길을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 대답은 세세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하나 하나 세세하게 <이럴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미래에 대한 <완벽하고 상세한 정보>는 말씀 안에 없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산 사람들!

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상세하고 완벽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들 역시 <지극히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도 그들은 결단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보지 않고 믿는 <믿음>!

<믿음의 본질>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등산>을 해 보셨습니까?

<산 정상>이 한꺼번에 펼쳐지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 딛다 보면 <정상>이 가까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방법도 이렇습니다.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 !

그것이 때로는 <실패>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산 정상>을 밟기 위해서

우리가 때로는 <내리막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리막길!>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기쁨>을 <산 정상>에서 누리게 합니다.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

그것은 훗날 우리로 하여금 <더 큰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

그런 사람은 언제나 <그 장소>에서 <그 시간>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더라도!

비록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이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그렇게 매 순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말씀 안에서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했던 선교사 ☞  말씀의 응답 


그러기에 이제는 여러분 마음대로 길을 가지 마십시오!

이제는 물어서 길을 가십시오!

그로 인한 축복이 이 시간 이곳을 찾은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리하면,

1. 신자들은 큰 그림, 큰 방향성, '내 구원의 완성,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안전' 등

큰 그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관심이 없고,

 

작은 그림, 작은 일상의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면, 늘 성경을 가까이 하면서

먼저 <내 구원의 완성>을 향한 길을, 늘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99% 중요한 일이니까요!

 

2. 그럼 <내 구원의 완성 99%>을 위한 길은, 열심히 진지하게 물었다고 치고,

<일상생활의 결정 1%>을 앞두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일단 하나님의 <도덕적인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건 10계명을 위시해서, 성경에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도덕적인 뜻>을 어기는, '하나님의 뜻'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뜻>을 따르면서, 그것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더 세부적인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것은 기도하시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비성경적인가?

    기도를 하시되, 1주일, 1달, 사안에 따라서는 더 오래 기도해야 합니다.

    하룻만에, 한 번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받기는 어렵습니다.

 

   기도를 해 보면.. 기도가 계속 되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일 가능성이 99%입니다.

   기도를 해 보면.. 기도가 막히고, 사나흘 후에 기도를 잊어버립니다. - 이것은 하나님의 뜻일 가능성이 낮습니다.

 

   위 설교문에서는, 잠3:6절에 의거, 성경을 통해서 일상의 인도를 받으라고 합니다.

   예, 말씀의 감동을 통해서, 또한 기도의 감동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일상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한 인도>도, 얼마든지 우리가 잘못해서 틀릴 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기도의 인도>를 받아야 하듯이요.

 

    또한 자기가 받은 <응답>을, 주위의 신령하신 분들께 물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분들이 기도해 주시면서, 내가 받은 <응답>을 분변해 주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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