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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는 성령님

LNCK 2012. 8. 7. 21:38

◈도우시는 성령님             롬8:26~28          출처보기, 편집



▲음악을 연주하면서, 새로워지는 음악가

파블로 카잘스는 20세기 최고의 첼로 연주자이며, 작곡가요, 지휘자요, 피아노 연주자입니다.


   1966년, 그의 90회 생일이 되기 직전에 노만이라는 사람이

   위대한 음악가. 파블로 카잘스의 노후의 생활을 관찰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관절염과 호흡 곤란으로 카잘스의 손은 부어 있었고, 손가락들은 서로 엉켜 있는 듯했습니다.

‘저런 손으로 어떻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카잘스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으로 간신히 피아노까지 걸어갔습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노만의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손가락들이 마치 태양 빛에 펴지는 꽃봉오리처럼 펴지더니, 건반을 만집니다.

꾸부정했던 그의 허리도 반듯하게 펴졌습니다. 확실히 숨 쉬는 것도 편해 보였습니다.


그는 바하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섬세하고 예민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브람스의 곡을 연주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카잘스는

생기와 영감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연주를 다 마친 그가 일어나 걸을 때,

그의 몸은 곧바르게 되었고, 키도 더 커진 듯했습니다.


간신히 침대에서 나와 고통스럽게 옷을 입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음악인은 음악 안에서 새로워졌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어떻게 새로워질까요?

성령 안에서 새로워져야할 줄 믿습니다.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


성령님은 성도를 양자로 보증해 주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최종적으로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도와주십니다.


성도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성령께서 성도 가운데 계시면서

성도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16:13)

양자로서의 보증이 성도 안에서 확실히 성취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은 보혜사이십니다(요14:16, 26, 16:7).


보혜사라는 말은 ‘곁에서 돕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는 돕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롬8:26


'도우시나니'(쉬난틸람바네타이)는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가 연약해 있을 때에 성도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시고

곁에서 일으켜 세워주며 붙들어 주십니다.


돕는다는 말은 “함께 담당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하면 “맞잡아 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령께서 맞잡아 주시면 훨씬 쉽습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통나무를 어깨에 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길고 무거우니 혼자 지고 가기가 무척 힘들겠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 쪽 끝을 지고, 내가 다른 한 쪽 끝을 지면 어떻겠습니까?

매우 쉽지 않겠습니까? 힘이 절반 이상으로 확 줄어듭니다.


성령이 바로 이렇게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성령은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고,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우시고, 쓰러질 때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잃은 슬픔과 고통에 실망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하다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이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바로 교회의 탄생을 말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성령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어 왔고, 부흥성장 되어 왔습니다.


성령은 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지금도 역사하시고, 주님 오실 때까지 쉬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1. 인간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사람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린다면 “약하다”라는 것일 것입니다.

자기가 약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강하다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속으로는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가 젊었을 때에 광산에 들어가서

전도사 일을 한 적이 있답니다. 그는 신학교를 다닌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광부 한 사람이 물건을 포장했던 천으로

셔츠를 만들어 입고 오는 것을 보았어요.


광부가 만들어서 입은 옷 뒤에는 “부서지기 쉬운 물건이므로 주위해서 다룰 것”

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포장지 문구이지요.


한국 사람들이 흔히 사용 하는 표현으로 “취급주의 fragile”

이렇게 써져 있는 것을 입고 다닌 것입니다.


그것이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고흐가 그것을 보고서 부서지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이구나 하고서

큰 깨달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때 유럽을 정복하였던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도

집에서는 부인 조세핀의 무릎을 붙잡고 울 정도로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때 주먹으로 세계를 정복한 권투의 왕 무하마드 알리도

지금은 파킨슨병에 걸려, 겨우 몸을 움직이는 연약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 비친 그의 모습은 손, 발이 떨려 제대로 서 있거나

무엇을 붙잡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가 한창일 때는 “내가 가장 세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다”라고 떠벌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기자 회견에서 그는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런 병에 걸렸습니다.”


사람은 건강할 때 보면 무엇이나 다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발가락 하나만 아파도 꼼짝을 하기가 어렵고 감기만 좀 심해도

모든 스케줄을 취소해야 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죄를 이겨야 하지만 죄의 유혹에 넘어갈 때가 더욱 많고

세상 따라 갈 때가 더 많습니다.

몰라서 못할 때도 많고 알면서도 행치 못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은 그의 택한 백성들의 이런 연약함을 도와주셔서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가게 하십니다.


내일 일에 대하여 물론 계획은 되어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한 주간에도 수 없는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누가 예측을 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과 몇 초 뒤도 모릅니다.

오직 우리는 이런 존재이니 성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바르게 잘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꼭 붙들고 그 분께 부탁하는 심령에

도우시는 은혜 주시는 줄 믿습니다.

 


◑2. 친히 간구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       8:26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 합니다.


성도는 연약하기에, 영적 힘을 공급해주는 통로인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이 아니면, 기도의 능력도, 기도할 내용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심은

성령께서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성도들 편에 서서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실들을 미리 아시고

성도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기도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의 사역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잘 안 되시는 분은,

자기 안에 성령의 사역이 약화/근심/소멸된 것입니다.


성도가 갈등으로 인해 탄식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성령께서도 성도보다 더 심한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성도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며 구원에 대한 보증입니다


월남 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교회 청년들도 월남전에 많이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을 월남에 보낸 한 자매님이 교회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저녁마다 걱정하고 잠을 못 이루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님, 성령님은 우리의 빌 바를 아시므로 자매님의 기도를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 후부터 이 자매님은 아들을 위해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그 아들이 베트콩과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전방에서 날라 오는 포탄을 피해, 3미터 앞으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무서운 힘으로 어깨를 누르면서 “그 자리에 엎드려라”하고 명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잽싸게 그 자리에 엎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꽝’하는 소리와 함께

분명히 자기가 뛰어가려던 바로 그 지점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청년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자기의 어깨를 누르면서 엎드리라고 소리치던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무사히 귀국한 청년은 찾아와 “만일 제가 3미터 전방으로 뛰어가서 엎드렸다면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기도로 성령님이 저를 못 가게 막으셔서

목숨을 구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눈앞에 닥쳐왔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성령님께 기도를 부탁드리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때 방언기도가 효과 있습니다.


성령은 영혼으로 주님을 사모하게 하며 기도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기를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를 찾듯이 사모하는 일은

성령의 은혜로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고 기도하게 됨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사모하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도우시는 성령께서 주의 집을 찾도록 하시고 기도하도록 하기 위하여

친히 기도 하시는 줄 믿습니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8:27~28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6절, 27절, 28절을 연결해서 읽어보십시다.


26절 : 성령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26절 : 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하심으로써,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27절 :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

28절 : 그 결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님께서 친히 간구해 주시지 않으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삐그덕거리고, 총체적 파국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모든 게 평안하고, 평탄한 결과가 된다는 뜻도 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삶은 여전히 괴롭고, 황당함의 연속이지만,

그 고통과 환란 가운데서도.. 묘하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래의 예를 보십시다.


<절망적 삶 속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버티며 승리한.. 믿음의 거장>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맨 나중에 나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이 불놀이를 하다가.. 불에 타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동생 하나가 집 근처 벌목 현장에서 나무에 치여 죽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세 형님들이 차례로 급사急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6.25 때는 아버지와 가족들이 눈앞에서 공산당에게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자신은, 8.15와 6.25의 사선을 수없이 헤매다가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해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던 동생이 10~16살까지 딸 넷을 남겨놓고

간암으로 죽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후에는 (남한에 하나 남은) 딸이

위암으로 157일 동안 고통을 겪다가

어린 두 딸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죽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동생과 제수가 죽고,

막내 동생은 지금 간경화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고아원을 차려야 될 정도로, 모두가 자녀들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분이 이 이야기를 글로 썼을 때는 환갑을 맞는 나이였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상황입니까?

만약 여러분이나 저나 그분이 겪은 사건을 하나라도 겪었다면

우리는 아마 주눅이 들어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런 줄줄이 이어오는 비극을 겪으면서도

놀랍게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하나의 얼굴로는 웃고, 다른 얼굴로는 운다.

내 영은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깊은 곳에서 샘물같이 환희가 솟는다.

그러나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옆을 보면 정신착란증에 걸릴 것 같고.. 위를 보면 현기증이 난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들이 있고..

과거는 회한과 슬픔뿐이고..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나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는 아무리 더럽고, 아프고 서러워도

내일과 새해와 미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페이지,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이 열려 있다.


시집가는 처녀처럼 새 날을 맞이하여 새 집에서 새 살림 꾸려 새 사랑을 살자.

한 해 한 해를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아니다.

한 발짝, 한 호흡, 주님을 사랑하며 창세기 첫날처럼,

날마다 영원한 첫사랑으로 살자. 내게 깊은 위로와 감사와 찬송과 평안이 있다.

그것은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은혜로 내게 주시는 것들이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게 바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분이 바로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목사님이십니다.


그렇게 험한 눈물 골짜기를 거쳐 오면서도.. 기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늘 향해서 처녀가 새 살림 꾸미듯이.. 새 인생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이런 초인적인 능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연약을 도우시고 친히 간구하심으로 도우시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이십니다.

 

     더욱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 입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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