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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 / 데이빗 윌커슨

LNCK 2012. 9. 28. 10:12

www.youtube.com/watch?v=fSpKWr5I8tI

◈참된 그리스도의 신부 : 교회            벧전2:4~5    David Wilkerson 목사님   설교녹취

What is The True Church Of Jesus Christ

*부제 : 산 돌 위에 세워진 산 돌들

 

 ※교회와 예배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 즉 '산 돌'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는 곳인데,

 오늘날 진정 거듭난 적이 없는 교인들, 즉 '죽은 돌'들이 주로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니까

 교회와 예배가 생기가 없어지고 있다는 주제의 설교문.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는 뜻. 

 

 

※위 동영상 7분20초부터 ~22분까지 녹취, 정리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특별한 사랑의 관계를 갖고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20장에 참된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생전에 예수님은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6:18

그리고 그 약속대로, 교회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생겨났습니다.

 

요20장은, 부활하시고 난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 주님의 교회가 갖는 모든 특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통 교회는, 사도행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요20장도, 그 교회의 준비 모임이 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살아있는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우리 성도들도 각자 산돌이 되어서, 그 기초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산 돌:우리 각자가 ‘살아있는’ 교회의 건축 재료라는 뜻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교회의 모든 특성을, ‘부활 후 첫 모임’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각자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모두가 다, 그리스도께 헌신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위해 직업을 버렸고, 예수님이 중요한 분들 중의 한 분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께 거룩하게 바쳐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삶의 일부가 아니라, 자기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인격적으로 헌신된 그 사람이 ‘교회’이며,

그런 각자 ‘교회’(산 돌)들이 함께 모인 자리가.. 바로 진정한 공동체로서 ‘교회’인데,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의 한 가지 큰 약점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벽돌들이 ‘산 돌’이 되지 못하고 ‘거의 절반 죽은 돌’이라서,

그들이 함께 모인 교회 자체가, 흔들거리고, 비틀거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20장에, 거기에 (교회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가 개인적으로 예수님과 깊은 개인적/인격적 교제를 가지고 있고,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을 했고,

진정 자기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 드리는 헌신이 되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 진정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장례를 도왔던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도 있었을 것이고,

엠마오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두 제자

무덤에 가서 빈무덤을 보고 온 베드로, 막달라 마리아도 물론 있었을 터이고,

그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산 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있습니다.   *신앙이 살아있다는 뜻

 

이 모임은, 목사가 회중에게, 그리스도를 계시(설교)해 주는 모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데이빗 월크슨 목사님의 설교인데, 전체 문맥 가운데 이 표현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평소의 삶에서, 주님을 ‘알고’, 교제하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렇게 평소에 각자 진정한 ‘교회’의 삶을 살다가..

그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교회’의 역동적 생기가 모아지고, 분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평소에 각자가 진정한 ‘교회’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다가,

주일날 함께 모여서 공동체 ‘교회’를 이루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건물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활 후 첫 번째 모임은, 베드로가 회중에게 예수에 관해 듣고 본 것에 대해

설교하는 그런 모임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가르치고, 다른 모든 사람은 듣는.. 그런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일어서서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과 대화도 했습니다.’ 요20:18

 

그리고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두 제자들도, 자기들이 만난 예수님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 외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12제자, 그 외 다른 제자들도

제 각각, 자기들의 삶의 정황에서, 자기들 각자가 만난 예수님을 말하고, 서로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 모임은, 매우 ‘흥분되는’ 모임입니다.      *exciting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설교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A

그들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로 왔습니다. B

(A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A측면도 있지만, B측면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살아나려면,

우리 개인 각자가, 평소의 삶에서, ‘교회’로서 충실하게 사셔야 합니다.

그런 개인 ‘교회’들이 함께 모일 때, 우리 공동체 교회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교회로 살아가게 되겠지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순환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

우리 개인 각자가, 평소의 삶에서, ‘교회’로서 충실하게 살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어져서 ‘공동체 교회’로 함께 모였다가,

그렇게 끄진 불들이 모이다 보니, 거기서 서로를 더 싸늘하게 식힙니다...

 

우리 각자가, 교회로서,

평소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친밀함을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들이 모인 ‘공동체 교회’가..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됩니다.

 

우리 각자가, 진정한 교회로서, 평소에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지 못하면,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산 돌’이 아무리 수 백 개, 수 천 개 모여 봤자,

집을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교회’는,

교회만 나와서 잘 믿는 성도가 아니라, (교회 봉사에 충실한 성도이기 이전에)

각 성도들이 평소 삶에서, 진정한 ‘교회’로 살아가도록,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 살도록

거기에 목표와 초점을 두고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저 ‘교회 유지’가 아니라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수축했는데,

신구약 성경에 ‘건물’은 ‘성도들’(공동체 교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성공하려면, 각 벽돌 하나하나가, 온전한 ‘산 돌living stone’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각 벽돌이 부실하면, 벽돌이 아무리 많아도, 그 전체 건물은, 결코 지어지지 않습니다.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벧전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온 세계 가운데서,

심지어는 공산주의나 이슬람의 핍박 가운데서도,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와 친밀함을 가진 헌신적인 ‘교회’들이 모인

그 ‘공동체 교회’에 함께 하십니다. 

주1)

 

주님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시고, 그들과 모임을 갖고 계십니다. 회중 박수

주님의 교회는 건재하며 살아있습니다. 할렐루야!

 

잘 들으세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이

그리스도의 몸을 서로 하나로 강하게 묶어 줍니다. 자석처럼 서로 딱 달라붙습니다.

 

제가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어떤 미국인이, 제가 미국인인 것을 알고는, 말을 걸어왔습니다.

‘예, 저는 뉴욕출신이며, 타임스퀘어 교회 목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저도 교인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이 동행하는 시간 내내, 자기 여행 이야기를 했습니다.

둘러보았던 여행지, 음식, 숙박 등.. 여행이 그의 주된 관심사요,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주된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가 ‘교인’일지는 모르나, '교회‘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교회끼리’만나면, 동질감이 생깁니다. 서로 딱 연합하게 됩니다.

서로 근본 본질이 같고, 같은 성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작은 교회에 가더라도,

거기서 찬양 드리는 모습, 진정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대하면,

우리는 생면부지의 처음 만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인종과 피부색이 달라도,

‘크리스천’이라는 동질감으로, 서로 형제자매가 됩니다.

그리고 즉시로 함께 ‘공동체 교회’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크리스천이,

주님께 완전히 헌신된 다른 크리스천을 만날 때,

그것은 같은 ‘그리스도의 몸’(지체)을 만나는 것이며

그런 성도끼리 서로 만나면, 즉시로 서로 유대감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교회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자고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연합되어 있습니다.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은, 언제나 하나이며, 언제나 서로를 끌어당깁니다.

언제나 연합을 이룹니다. 역사상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제도로서는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영으로는 늘 연합되었습니다.

 

▲내(우리 각자)가 예수님과 함께

교회를 둘러보기 위해서,

함께 양탄자를 타고, 미국이나 세계를 다닌다고 합시다.

 

주님과 함께 5천명이 모인 큰 교회에 갑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 여인이 내 교회다. 저기 앉은 저 사람이 내 교회다’ (모두가 교회가 아니라는 뜻)

 

주님은 그 중에 소수의 무리들만 지명하시며,

‘그들이 나의 교회’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내게 헌신된 자들이다.’

 

‘주님, 그렇지만 여기에 찬송가를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내가 없다. 그들은 말만 하고 순종은 없으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그런 자들은 나의 교회가 아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늘 아침, 이 예배 가운데 오셔서,

우리 타임스퀘어 교우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을 지적하시며,

‘보라. 저들은 얼마나 나를 사모하고 갈망하는가! 저들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는가!

저들이 진정한 교회이다!’ 라고 말씀하실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여러분 모두는 아닐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분명히 양과 염소가 함께 섞여 있고,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관념적으로, 그저 머릿속의 생각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하고, 주님과 동행해야 하고,

주님께 묻고, 주님의 지시를 받으면서,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들만이 진정한 ‘주님의 교회’입니다.

 

 

◑2. 주님의 교회는, 주님께 헌신된 자들의 모임이며,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은, 그런 헌신된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모이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권고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헌신된 모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함께 모일 때 온전해 집니다.

예수님은, 그들 개인들에게는 계시하지 않는 것을, 모임 가운데는 계시하십니다.

 

예를 들면, 은사가 있습니다.

은사는.. 대개 자기 혼자 사용 못합니다.

은사는.. 함께 모일 때 사용되는 것입니다.

즉 타인을 온전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함께 모일 때,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나눠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계시)도

공동체가 함께 모일 때, 공동체적으로 인도(계시 reveal)하십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계시를 받으면, 그것은 공동체에서 검증을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요20장에 모인 이 사람들은, 모두 3년 동안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와

산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 공동체로 모여서, 예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게 됩니다. 요20:21~23

이런 계시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을 때, 주어지지 않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마18:20

여기에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두 세 사람만 모여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은, 평소에 죄에서 떠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일 때,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지,

무조건 두 세 사람만 함께 모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평소 삶이, 주님께 헌신되고, 거룩하게 바쳐진 가운데라야.. 주님이 그 모임에 함께 하십니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 보면,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였는데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 같지 않다..’ 라고들 말합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평소 삶이, 주님께 철저히 헌신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20장이나,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두 세 사람만 함께 모였어도,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평소처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평소 삶이, 철저히 헌신되어 있었고, 악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주님이 그들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렇게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신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가, 우리 찬양가운데, 기도와 설교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시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물론 주님이 직접 모습을 보이시거나,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더라도,

‘주님의 영광’이 회중 가운데 반드시 나타납니다.

온 회중은 ‘그 무거움, 그 영광스러움’을 반드시 느끼게 됩니다.

 

주님이 임재하실 때, 또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든지,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시든지

어떤 말씀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 심각하고 무겁게, 우리 각자의 마음 판에 새겨집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모임은,

그것은 교회가 아니란 말입니다.

 

왜 그 모임가운데, 주님이 임재하시지도 않고, 말씀하시지도 않느냐..

그것은 그들의 평소 삶이, 주님의 뜻(말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모인다고 해도, 주님은 임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예배 가운데, 주님이 임재하시지 않으신다면,

즉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고,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다면,

즉, 예배가 시종일관 밋밋하다면..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입니다.

그것은 예배자인, 우리 각자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광의 임재가 함께 하시는 예배가 될 때,

그것은 거기에 불참하는 것이.. 자기 손해입니다.

자기 혼자 집에서, 그 시간에 TV보고 지낸다면.. 그 얼마나 후회막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님의 임재가 임하는 예배가 되도록,

우리 각자가 평소에 성결한 삶을 살고,

각자가 교회로서 ‘산 돌’로서 살아있고,

그런 ‘산 돌’들이 합쳐져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자기가 그 예배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자진해서 참석할 것입니다...

 

 

..................

 

주1)

목숨 걸고 드리는 예배

 

평양 어떤 공장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다.

이들에게는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으므로

종이쪽지에 성경 구절을 적어서, 돌려가며 읽고는,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노동당 반장이 뒤에 와서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리 없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반장이 다가와 “동무들, 무엇하고 있는 거요?” 하고 물었다.

 

그때 한 대담한 여공 성도가 “우리는 지금 독보회를 하고 있소.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 하시려오?” 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그 반장은, 한참 앉아 있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소” 라고 하고는 가 버렸다.

 

그 순간 이들은, 그 반장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이들은 때로는 눈을 뜨고 기도드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생명을 걸고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수 천 명이 모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느 것을 기뻐 받으시겠는가?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그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