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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십자가의 6가지 기적

LNCK 2011. 8. 11. 18:39

◈골고다 십자가의 6가지 기적       마27:45~53        09.10.11.설교스크랩, 축약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6가지의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 곧 기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복음서의 1/3~1/2까지 가장 길고 자세하게 기록된 내용이지만,

반대로 강단에서 가장 설교가 안 되는 내용이라서,

십자가에 관한 내용 있는 설교문을 만나면.. 너무 반가워집니다. /편.



◑1. 첫째로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마27: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흑암의 세 시간 

예수님은 제 삼시부터 제 구시까지,

즉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처음 3시간 동안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밝히 바라보는 가운데 온갖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다음 3시간 동안은, 45절에서 말하는 바대로, 흑암이 임했습니다.


참고로, 밝은 시간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요19:26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27


우리 시간으로는 낮12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하루 가운데 가장 밝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환한 대낮에 갑작스러운 어둠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때 어둠은 “온 땅에” 임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구름이 태양을 가리어서 생긴 어둠도 아니었고,

황사와 같은 먼지에 의해서 그 곳의 하늘이 어두워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어둠은 일식에 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유월절입니다. 이 때는 한 달의 중간이기에,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이 때 달은 해의 정반대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일식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핵심 논지

눅23: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이와 같이 온 땅에 어둠이 임한 이유는.. 해가 빛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해를 창조하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얼마든지 해가 그 빛을 잃게 만드실 수가 있으십니다.


예컨대 수10장에서, 하나님은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왕하 20장에서, 하나님은 해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하나님은 세 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 때 어둠이 임하게 하셨습니까?

성경에서 빛은 언제나 구원을 의미하며, 어둠은 언제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러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바깥 어두운 데 내던짐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져 내린 자리입니다.

그래서 흑암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그러면 이 때 하나님은 무엇을 심판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죄입니다. 벧전2:24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친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전혀 봐 주지 않으셨습니다. 온 세상에 캄캄한 흑암이 임했습니다.

죄의 삯은,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때 10가지 재앙이 있을 때도,

9번째 흑암이 온 세상에 임했습니다.

그 흑암은, 심판의 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구원의 표이기도 했습니다.

애굽에 대한 심판이 끝나가는(9번째, 10번째 직전) 표였습니다.


똑같이 예수님도, 우리 죄로 인한 비극적인 심판을 받으셔서,

온 땅에 흑암이 임했지만,

그것은 또한 심판이 끝나가는 표였습니다.

이제 곧 구원이 시작된다는 표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로 인해, 온 세상에 흑암의 심판이 임한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죗값을 대신 치르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구세주를 희망으로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흑암은 심판이지만, 동시에 '심판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9째 재앙은 거의 끝이었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두 번째 기적은 제구시쯤 일어났습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오후 세시쯤이었습니다.

온 땅에 임했던 어둠이 물러갈 무렵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입니다.


▶핵심 논지

여기서 두 번째 기적은 -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신 것,

곧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신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분리 되신 것은.. 우리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버리셨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네 번째로 외치신 말씀은 구약성경 시22:1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신 이유를

그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인 시22:3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를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죄 자체가 되셨습니다.  고후5:21

그러니 이 때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시며,

예수님을 버리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두 번째 기적, 곧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단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력히 나타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이 단락, 더 상세히 연구하실 분은 아래 각주를 보세요. 주1)


▶적용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일어났던 두 번째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으심으로,

영원히 하나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분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 절규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였습니다.


이 두 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을 강력히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도, 그 죄의 전가를 인하여 버릴 수밖에 없었다면,

하물며 우리야 어떠하겠습니까?

오늘도 우리가 범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며 처절하게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회개하면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구해 주시겠지만,

가급적 그런 절규와 버림받는 고통을, 안 당하는 게 상책이죠.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절규로 끝나야지, 나의 절규, 나의 버림 받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을,

우리는 다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소리지르시다. (서론)

오늘 본문 46절에서, 예수님은 이미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 때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50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십자가상의 마지막 두 말씀, 곧 여섯째와 일곱째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요19:30 ....다 이루었다....

눅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이 내리신 모든 진노를

우리를 대신하여 그대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구속의 모든 사역을 “다 이루었다”고

크게 외치실 수 있으셨습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시금 예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드시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아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크게 외치시면서,

평안하게 숨지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스스로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본론)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목소리는 다 죽어 가는 사람의 가냘픈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마지막 두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의 기운이 다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2~3일 정도 있다가 죽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6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막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이와 같이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님이 6시간 만에 돌아가신 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27:50

예수님의 영혼이 스스로 떠나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때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버릴 권세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가 원하는 때에, 자신의 의지로,

그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신 것입니다.


요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요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십자가는 비참한 패배가 아닙니다.

아무 능력도 없고 권세도 없어서, 무기력하고 비참하게 짓밟혀서

어쩔 수 없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게 아니란 뜻입니다.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안 죽으실 수 있고,

오히려 반대로 대적들을 모조리 십자가에 매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인류를 구원하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가장 어렵고 힘든 선택을 스스로 하셨던 것입니다.


흔히 사랑하는 부모를 위해, 또는 자녀를 위해

신장이나 간 이식을 해 주는 식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온 몸을, 그것도 십자가의 극도의 고통을 감수하시면서

스스로 모두 내어주셨습니다.

그만큼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제에 의해서,

혹은 종교지도자들의 모략에 내몰려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안 지실 수 없는 지경에 내몰려서,

강제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스스로 죽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적용

그럼 나는, 그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스스로

무엇을 헌신하고 있나요?

억지로 하는,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은 아닌가요?


 

     위 3개가 <죄의 무서움, 죄의 대가>에 관한 십자가라면,

     아래 3개는 <부활을 위한 십자가>가 되겠습니다. 



◑4. (네번째 기적)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많이 설교되어지는 부분이라서 중략합니다.

대신에 아래 설교문을 보십시오.

 

 휘장이 찢어지다 / Lon Solomon



◑5.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마27:51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땅이 진동하며.” 이것은 지진을 의미합니다.

“바위가 터지고.” 이것은 이 때 엄청나게 큰 지진이 발생한 것을 뜻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바로 이 지진 때문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진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에 속합니다.

예컨대 출19:18에서 하나님이 시내 산에 나타나실 때, 온 산이 크게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지진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또한 왕하19:11에서 하나님이 엘리야 앞을 지나가실 때, 그 곳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지진도 역시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입니다.


▶지진의 의미 - 경고, 심판, 그리고 약속

그러면 이 다섯 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다시 말해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는 이 큰 지진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히브리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12: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모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지진은.. 경고와 심판의 무서움을 뜻합니다.

십자가 때.. 바위가 터지고,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심판, 장차 되어질 심판의 경고.. 라는 뜻입니다.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2:26

장차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은 또 한 번 큰 지진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세상 삼라만상을 다 흔들어 심판하시는 그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입니다.


히12:25~26에 “경고”가 나오고 “약속”이 나옵니다.

경고는..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질 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못에 던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불신자에게는 하나님의 경고가 되며,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됩니다.


우리는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하나님이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심판의 경고를 받고 있습니까?

또한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6.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무덤들이 열리며.”

이는 바로 앞의 기적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질 때, 무덤들이 열린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것은 기적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덤들이 열린 것은

지진이라는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서 일어난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지진이 기적이었던 것처럼,

이것도 역시 기적인 이유가 다음에 나옵니다.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우선 여기에 “자던 성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자던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가리켜서 잠을 잔다고 표현합니다. 행7:60등


▶부활의 깜짝 예고편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 때,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영은 이미 하늘 나라에 가있습니다.

이 때 무덤 안에서 일어난 것은 자던 성도들의 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육체의 부활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때 자던 성도들의 몸들이 전부 다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자던 성도들 가운데서, 그 일부만 대표적으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그들의 영은 하늘에서 내려와, 신령하게 된 그들의 몸과 합쳐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차 있을 육체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까지, 그대로 무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15:20 말씀과 같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들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마27:53


물론 그들은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들을 보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언제나 믿는 자들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 부활한 성도들이 자신들을 보이면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증언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다시 살 것이며,

자기들이 바로 그 사실의 산 증인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적용

그러면 이 마지막 6번째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이 된다는 사실을 밝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 곧 부활의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적용하면,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때(죽을 때)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회복과 부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회복과 부흥(revive 다시 산다는 의미)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서 죽는 일이.. 오늘날 희소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이 시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


주1) ▶이 단락, 더 자세히 연구하실 분만 읽으세요.

마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기 때문에 했던 말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분명 그들은 예수님이 시22:1 말씀을 인용하셨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르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 말씀대로,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오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와 같이 조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저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구나. 저가 엘리야를 불러서 우리에게

자기를 메시야라고 증언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이다. 정말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먼. 하하하.”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그들은 온 땅에 어둠이 임한 것을 보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19:28을 보면, 바로 이 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섯 번째 말씀으로,

“내가 목마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마27: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신 포도주는 포도주에 많은 물을 타서 만든 값싼 음료수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더운 지방에서는 로마의 군인들이 이것을 음료수로 사용했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의 한 사람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내가 목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얼른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셨습니다. 해면은 바다 동물의 뼈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스폰지처럼, 다량의 액체를 빨아들여서 그 속에 간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갈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요19:29에서는 우슬초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갈대나 우슬초나 그다지 크지 않은 식물들입니다. 40~50cm 정도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그 당시의 십자가가 별반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요19장을 보면, 십자가의 높이는 쇠방망이로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다리를 쳐서 꺾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의 십자가는 지상에서 발이 약간 떨어질 정도로 나지막했을 것입니다.


마27: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막15:36에 의하면,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주었던 사람도 똑같은 말로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했던 행동은 선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명을 좀더 연장시켜서,

과연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을 구원하는지를 보려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초자연적인 어둠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처럼 끝까지 조롱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들의 양심이 화인 맞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