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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능력 고전15:30~31, 고후12:10 인터넷에서 스크랩, 영어 자막
John Piper / You Must Suffer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고후 12:10
<시작 기도>
저희에게 이러한 마음을 주십시오.
오 하나님, 간구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같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 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섬기는 자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셔서,
죽기까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그 주님의 마음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한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게 해주시옵소서.
이 집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문을 내보이며,) 이 신문의 헤드라인엔 “그들이 살았다”라고 써져 있습니다.
생명을 잃을 뻔했던 위기 상황에서,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 되었습니다.
오래 납치 되었다가 구조된 상황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영생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죽어 있습니다.
지금 신문에 난 사람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집회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제 뉴스에는, 이라크 전쟁에서
하루에 52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중 32명은 이미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캘리포니아엔 홍수가,
미국 남서부에는 산불이 일어나서, 삼림뿐만 아니라 근처 집들도 다 불타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제 무슨 전화 통화를 나누셨습니까?
이런 재난과 혼란 가운데, 여러분은 무사하십니까?
우리는 우물쭈물 하거나,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1. 성도의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성경은 무수히 그런 말씀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구절만 살펴보실까요?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주님의 십자가를 감사드립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사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만 늘 생각하지 마십시오.
위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십자가, 즉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10장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죽는데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한복음16장1절입니다.
‘때가 오리니,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여길 때가 올 것이다.’
일부 과격한 무슬림 신도들이
크리스천을 죽일 때, 그렇게 믿고 있겠지요.
물론 매 시대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고난에는 영광이 뒤따릅니다.
로마서8장16절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이런 말씀 말고도, 성경은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무수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에, 이제까지 크리스천으로서 고난이 없었다면,
앞으로 곧 고난이 다가 올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고난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또한 현재 살고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위의 여러 구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고난은 반드시 닥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성도의 영광이요, 오히려 성도에게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1장29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보십시오. ‘다만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에게는 믿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성도에겐 고난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은, 성도에게, 어떤 선택과목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연히 주어진 것입니다. 그가 성도라면, 필수과목입니다.
고난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의 겉포장은 마치 고통으로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고난은 속 알맹이는, 큰 선물로서, 우리에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3.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십시다.
디모데후서1장8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사도행전5장41절을 봅니다.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의회를 걸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목적은
그의 크신 은혜의 영광의 대단하심을
궁극적으로, 그의 아들이 받는 고난 속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제 제가 설교한 내용이고요,
오늘의 설교는
‘과연 너는, 그 크신 아들의 은혜의 영광을,
최상의 가치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주님과 골고다로 향하는 고난의 길을, 나와 같이 가겠느냐?’입니다.
‘Will you join me?’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이 그리스도의 무한한 영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그런 행복하고, 즐거운 장소가 아닙니다.
위험하고 불편한 제삼세계 오지에서,
선교사처럼 희생의 삶을 살면서,
마치 우리의 보물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세상에 보여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번영의 복음 prosperity gospel은 어느 누구도, 예수를 진정으로 찬양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번영 prosperity를 찬양하게 할 뿐입니다.
‘예수가 새 차를 주신다네요. 그렇다면 당연히 예수를 믿어야죠!’
어느 누가, 건강과, 자동차와, 즐거운 결혼생활을 주는
예수를 원치 않겠습니까!
‘내가 얻게 될 혜택들이 괜찮다면,
당신들이 전하는 예수를, 나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쁠 것 없지요.’
이런 방식으로, 절대로 여러분은 캠퍼스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캠퍼스와 사역지를 하나님의 나라로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옷을 고급 명품으로 입거나,
멋진 세단 차를 몰고 다니거나,
가장 최신 컴퓨터나 전자기기를 갖고 다닌다 해도,
그러한 것들로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께,
당신의 삶을 통해서, 어떤 찬양도 올려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그런 것들을 갖게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그건 미혹이지, 전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로는,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께 어떤 찬양도 올려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을 사모하기 보다는,
고난 받는 그리스도를 사모하시고, 또한 성도의 고난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예배 가운데서,
지금 우리의 삶과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이 여러분을, 지금 세상의 길과는, 다른 길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바로 이게 보람된, 후회가 없는, 진정한 인생입니다.
‘뭐 크리스천이 되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삶을 살게 된다고요?
그건 미혹이 아닙니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진정한 크리스천들은,
벌써 이 세상에서, 천국 생활을 하면서 삽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영생을 살고 있습니다.
‘고난이 따르지만, 승리하는 생활!’ - 그것이 바로 천국의 삶이요, 영생인 것입니다.
그것을 살아본 사람들은, 경험으로 잘 압니다.
그 삶이 바로 ‘천국’ 생활이라는 것을요!
사도바울은 결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는 게,
이 현재 세상에서 사는 우리 인생만을 위한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가장 불쌍히 여겨져야 할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복음을,
<오직 이 현실 세상에 적합한 축복의 복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정말 마귀에게 미혹된 것입니다.
이런 번영의 복음, 축복의 복음이, 지금 미국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란, 정말 힘든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가, 미국이 가장 어려운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4.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매 시간 위험에 처해 있고, 나는 날마다 죽음을 당합니다.’ 고전15:30~31
나는 고난당하고 위험한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수많은 선택들을 합니다.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것이, 정녕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고, 나를 영광스럽게 할 고난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것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섬기면서 내려놓은 다른 모든 것보다,
천배나 더 가치가 있는, 죽음에서부터 부활함의 소망을,
만약 내가 믿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고난의 길을, 결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전 세계 수억만의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과, 미전도 종족을 포함해서 온 세상 사람들,
그들 모두의 죄 값은 갚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 은총과 축복을, 맛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예수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를 노래가 없습니다.
“십자가, 감사합니다. 예수님 나의 친구, 십자가 감사합니다.”
우리들처럼, 이런 찬양을, 그들은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 수 천의 남은 미전도종족 사람들과
그 속에 포함된 수 억의 사람들은,
지금 이 집회에 모이신 여러분들로부터, 또한 저로부터
어떤 전도의 메시지도 들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고난의 찬송,
우리의 기쁨과 감격의 신앙고백.. 이런 것들을
그들은 전혀 들어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원한 멸망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는, 지금 서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으며,
설령 우리 가운데 일부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복음에 뭔가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크리스천의 고난과, 그에 따른 영광’이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혹시 ‘번영의 복음’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선교의 역사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처럼 12~13억 명의 신자들이 믿는 기독교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고난의 힘, 고난의 능력>입니다.
그 어느 미전도 종족도,
고난 없이는 뚫리지 않습니다.
또한 그 어떤 어려운 지역도,
십자가 고난을 감당함으로써, 뚫리지 않을 지역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집회에 참석한 여러 젊은이들 가운데,
장래에, 선교사가 되기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있다면
여러분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환경의 고통, 자녀를 잃음, 말라리아, 가정의 갈등과 불화,
자기 팀원 끼리 내부 갈등, 사탄의 방해, 순교 등
이러한 환란들이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올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바로, 복음 전파자가 치러야할 대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해서,
그 고난과, 그 고난을 통한 영광과 구원의 열매를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진리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알겠습니까?
만약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 즉 크리스천의 만족이라는 것이,
마치 최신 컴퓨터 게임인 것처럼, 세상에게 보여진다면,
최신 자동차나, 내가 들고 다니는 명품 가방인 것이 기쁨으로 보여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그로 인한 열매와 부활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명확히 보여져야 합니다.
저는,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합니다.’ 고후12:10
저는 여러분을 가련하고 불쌍한 삶으로 초대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의 고난이, 가련하고 불쌍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물론 거기엔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고난엔,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합니다.’하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기뻐하는 것, rejoicing in tribulation입니다.
고난은, 우리 각자에게
인내심을 기르게 하며,
인내는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켜서,
결국은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 주님의 소망이,
그 첫 단추인, 고난을 통해.. 결국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롬5:3
희망은 우리를 모욕감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퍼부어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5장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여러분이, 하나님께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그 크나큰 기쁨을 더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려서, 위험을 무릅쓰며,
여러분의 물질과, 여러분의 학업도, 비록 일정 기간이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드리며, 모험적인 삶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라는,
또 되라는 것이!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고난 속에서 나를 따르면서,
그 영광과 그 열매와 그 존귀함을..
우리가 먼저 누리고, 또한 세상에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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