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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하라

LNCK 2013. 5. 11. 12:53

www.youtube.com/watch?v=Ur8m6rJDdC8

이렇게 기도하라 (부제: 나라가 임하옵시며)               막9:17~29                        출처

       

1. 영적 무관심과 무감각한 세대

      

스스로 속는 세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알지 못하도다." (3:17)

 

라오디게아 교회의 결정적인 문제는 자신에 의해서 자신이 속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지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속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도 그와 같습니다. 대단히 화려한 미래를 꿈꾸며 스스로 부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 내면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먼 상태로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시대의 모습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진단은 매우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영적 무관심 세대

마태복음 2437-39절을 보면, 주님은 마지막을 향하고 있는 모든 시대를 노아의 시대에 비유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영적 무관심입니다.

 

들은 하나님의 일과 영적인 것에 무관심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감각이 무뎌져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는 데에만 온 마음을 다 쏟았습니다.

이것이 말세를 진단하시는 예수님의 지적이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적하신 주님은 이 마지막 세대에 대해서

그들의 결정적인 문제가영적인 무감각,영적인 무관심이라고 지적하십니다.

      

답답함(안타까움)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는 특별히 어떤 신령한 영적 능력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대를 꿰뚫어 본다든가, 사람을 보면서 그의 앞날이 어떻다든가 하는

예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놓고, 이 땅을 놓고,

이 땅의 젊은이들을 놓고 이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숨 막히게 밀려오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정말 이것은 견딜 수 없는 답답함 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저 사람에게 무슨 말을 시작해서

어떻게 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가 죄인이며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그가 영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떤 때는 이미 기존에 신앙생활하고 있는 우리 성도님들을 바라보면서도

'도대체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 줘야 다시 영적인 감각을 찾게 해 줄 수 있을까,

찾는 것은 둘째 치고 영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까' 하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더 기도해야 합니다

마더 테레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이 때 마더 테레사는 주저 없이, "그래요, 미국인들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미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겠지만,

그들을 향하여 단호한 어조로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것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요롭고 안정되게 살고 있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그들이 영적으로 매우 빈곤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기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신화적 세계관을 버리고 과학적 세계관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테레사에게는 기도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인간의 최대 교만이었고,

인간의 눈을 멀게 하는 어두움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테레사는 주저 없이 미국인들에게 기도의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심판과 종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세대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심판과 종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비를 통한 심판을 말할 때 비웃었고, 노아가 산 위에서 배를 만드는 것을 업신여겼습니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극단적인 방탕과 타락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러한영적인 무감각은 바로 오늘 이 시대 사람들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현재의 삶에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역사의 끝과 심판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인류의 파국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확신은 제한된 시간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쾌락과 잘못된 목적에 낭비하게 만듭니다.

      

노아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가 영적 무관심과 영적 무감각이었던 것같이

이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 역시 부족한 기술력이나 부족한 자본이나 부족한 과학적인 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입니다.

      

 

2. 기도의 핵심

      

변화산은 자연의 산이지만 여기에 초자연인 영적인 세계가 임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기도'란 제한된 이 땅의 문제들이 영원의 세계로부터 오는 하늘의 능력과 만나서 문제의 해결을 보는 것입니다.

      

땅위에 하늘이 내려옴(나라이 임하옵시고...)

 

바로 이것이 변화산 입니다. 이 산은 자연의 세계입니다. 이 자연의 세계에 초자연이 임하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산 위의 세계는 말 그대로 땅 위에 임한 하늘의 모습이었습니다.

땅에 있는 하늘의 모습!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땅 위에 하늘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 땅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이 땅에 하늘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세계가 임하는 통로.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늘이 사라진 땅의 현실(변화산 아래)

그런데 이 변화산 아래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귀신들려서 고생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아이를 붙잡고 고치려고 씨름하고 있었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 산 아래의 모습을 마가복음 917-1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이러한 산 아래의 세계는 변화산 위의 세계와는 너무나 대조적 이었습니다.

변화산 위에는 지금 이 땅에 하늘이 임했습니다. 자연의 산에 초자연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 밑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한 아버지가 고침을 받으려고 귀신들린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제자들에게 왔지만

제자들이 이것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하늘이 사라진 땅의 현실입니다.

      

산 아래의 아홉 명의 제자들이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런 중에서도 잘 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왜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는가의 원인을 예수님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행 중에도 좋은 신앙의 자세입니다.

      

그들은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 때에 예수님은 뭐라 하셨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산 위에서는 이 땅에 초자연이 임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산 위에는 그곳이 이 땅이지만 그냥 자연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땅입니다.

산 밑에서는 자연의 이 땅이 그대로의 땅입니다. 이 땅에 귀신들린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조치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원인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가복음 929절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뒤집어서 말하면 '제자들이여, 너희들이 기도했다면,

이 산 아래도 비록 자연의 땅이지만 초자연이 임했을 것이다.

결국 기도했다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 하늘의 능력이,

하늘의 역사가 이 땅에 임했을 텐데 너희들이 기도하지 않아서 이 병이 고쳐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에 관한 굉장히 중요한 핵심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이런 뜻입니다.

      

여기 고통하는 땅의 현실이 있습니다. 벙어리 귀신들린 병자가 와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 땅의 문제는 하늘과 연결되어야만 풀립니다. 마치 변화산 위에서 일어난 역사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문제와 하늘의 능력을 연결하는 것이 뭡니까? 기도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기도 없이(부족하게) 땅의 문제를 풀려 한 것입니다.

      

설교 초기에 우리는 영적인 무감각과 무관심에 대해 말했습니다. 영적인 무감각이란 뭘 말합니까?

'하늘의 역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초자연적 역사가 나에게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무감각입니다.

 

그 중 하나의 내용이 마가복음 9장의 내용인데,

이 내용은 결국은 이 땅에 고통당하는 현실이 있지만 제자들조차

이 땅의 문제를 하늘과 연결해서 기도하며 풀어나가지 않았고, 결국은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이 땅은 영적인 무감각으로 그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명령의 순종의 차원에서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공로를 쌓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이 땅의 자연의 삶을 초자연의 삶으로 바꿔 놓는 것입니다.

땅의 제한된 자원에 하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그냥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 땅에 하늘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가장 좋은 기도 응답은?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하시고,

끊임없이 성령을 우리 가운데 부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1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좋은 선물이 뭡니까?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성령 충만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소유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풍족한 영적 감각을 가지고 기도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기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강청 기도입니다.

      

'뭔가 구하는 것이 있으면 강하게 요청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실 것이다.

그러니 많은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약점을 잘 파고들어서 강하게 많이 요구하고 응답을 받아내야 한다.

꼭 달라고 해야 할 것을 모른다거나 또 요청을 하지 않아서 못 받아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잘 연구해서 많이 강하게 요구하라."

      

한국 교회는 이런 투의 기도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브루스 윌킨슨'야베스의 기도입니다.

      

브루스 윌킨슨의야베스의 기도는 뭐라고 합니까?

이 책을 요약해 보면 한마디로 '기도가 투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에 익숙해지면 영적인 감각을 회복하기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기도 제목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제가 가끔 기도제목을 내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 달라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열 번째 쯤 되는 이유는 '정말 이 분이 영적인 감감이 있는가.

영적인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기도 제목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거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능력을 받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는 어떤 것도 기도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더욱 추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저의 답답함은 여러분들의 기도가 '정말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인가,

또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새벽에 달려 나온다면 저는 박수를 치겠습니다.

그러나 투자의 일환으로 새벽에 기도하러 나온다면 안 나오셔도 됩니다.

      

오늘날 인간 공동체는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사회일반 노동의 문제든,

국제 외교의 문제이든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 공동체는 땅이 사는 길을 하늘과 분리하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모두 다 하늘이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뭔가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고사도 드리고 별짓을 다 하지만 모두 다 무익한 일입니다.

인간끼리 해결하려 하니까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어드리면 됩니다.

기도로 하늘을 여는 순간 위로부터 쫘악 쏟아지는 성령의 은사들을 얼마든지 받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열매들을, 영적인 풍성함을 맘껏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