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같은 실패 왕하2:12
달라스 윌라드(Dallas A. Willard) 박사님이 쓰신 책
「잊혀진 제자도」The Great Omission 135p~150p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문제점 제기
▶왜 오늘날 미국의 현대 기독교가 매너리즘에 빠져서 쇠퇴하고 있습니까.
그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 방안을 정직하게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아시시에 가면 아시시의 성자 성프랜시스의 기념 성당이 있고
여러 가지 유적이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아시시의 프랜시스를 보기 위해서
관광객, 순래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그를 기념하는 유적지의 기념물도 많고,
또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달라스 윌라드 박사께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성 프랜시스가 품었던 그 열정을, 그 비전을.. 팔거나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적 유산은 다음 세대에 계승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는 뜻입니다.
역사 속에 간혹 영감과 능력이 탁월한 인물이 나타나서
자기의 인간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그 시대에 큰 인물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 왕, 소크라테스, 성 프랜시스, 마르틴 루터, 존 웨슬리 같은 인물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정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 시대에 탁월 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큰 역사를 이루어 낸 것도
또한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운동과 단체, 또는 기관들이 생겨난 것도
바로 그들에게는 남달리 비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남달리 가지고 있는 그 비범한 것이 무엇인가요?
정신자원, 신앙자원인데요.
쉽게 표현해서, 그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남다른 불’이 내재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남들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그것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그들에게는 추종자들과 인재들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그들의 활동을 계승하려는 그러한 단체들이 생겨나고
그 위대한 지도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달라스 윌라드 박사의 관찰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다음 세대로 전달이 되지가 않더라는 얘기입니다.
대부분이, 그 시대에서 끝나 버렸습니다.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이 시작했던 사역이, 다음 세대로 가기도 전에
벌써 그 창시자 세대에서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의 정신과 방향에서 이탈되어서, 결국에는..
‘무늬만 남았다’ 말이 있는데, 형식은 남았는데, 내용은 퇴색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창시자가 창설자가 가졌던 처음의 불, 열정, 비전, 따뜻한 사랑,
다시 말해서 십자가신앙.. 이런 것들이 다음 세대로 계승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기 시대에도 20~30년 지나면,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그래서 그가 일구었던 외적인 모양, 외적인 활동, 외적인 교세 이런 것들은 남아 있는데
그 속에 있는 알맹이.. 즉 불, 열정, 비전, 따뜻한 사랑, 십자가 신앙..
이런 것들은 그 시대에서부터 벌써 싸늘하게 식어버린 경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부흥사 찰스 피니는 오벌린 기독교 대학을 설립 했습니다.
이 대학 말고도 많은 크리스천 대학들이,
그 시대에 놀라운 부흥을 이룬 부흥사들에 의해, 기독교 대학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로 지나가면서, 그 대학이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거예요.
왜냐 하면은 설립자의 마음에 품었던 성령의 불과, 정신유산, 십자가 신앙 등을
계승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보니
결국 기독교 대학들이, 세상 대학이 가는 길로 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한번 분석해 보고자 하는 것이
「잊혀진 제자도」책에 나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기독교계에 유행하는 말로 “성공 같은 실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내적 내공이 없이, 내적 본질적 신앙이 없이,
외적으로만 버젓하게, 또는 겉보기에 그럴 듯하게
기독교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결국은 실패라는 말입니다.
정말 뼈가 있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성공 같아 보이나, 속으로는 실패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성공 같은 실패가 나타나는가?’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면, 이상하게도 불이 꺼져 버리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 신앙운동이 시작할 때에는, 그 공동체가 출발 할 때는
그 선교 단체가 출발 할 때는 당연히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무언가란 다시 말하면 내적 신앙 내공이 있었다는 거죠.
사람들의 깊은 내면의 공허함과, 영혼의 갈급함과 그 필요를 채워주는
성령의 불,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의 신앙, 세상적 표현으로는 ‘정신 자원’
이런 것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거기로 모여 들기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나눠주는 성령의 불, 거기서 나눠주는 비전,
거기서 나눠주는 사랑의 온기가..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로 사람들이 모여서, 점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그들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 있었던 성령의 불,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비전, 사랑의 온기, 십자가 신앙 ..
이런 것들이 대개의 경우에 점차 서서히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왜 사라질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그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는 그러한 공통적인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불, 비전, 사랑의 온기로 십자가의 신앙으로 시작했던 많은 사역 단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세대 후기에, 또는 다음세대로 가면서.. 처음 신앙이 대부분 사라지고
또는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도 벌써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이제는 교회 관광이나 하고, 아니면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의 유적지처럼
그저 기념품이나 팔고, 사람들이 한번 와서 휙 둘러보고 가는 장소로 전략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한 번 방문해 보지만,
거기서 무언가 그 정신과 사랑과 신앙을 계승하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입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못됩니다.
▶왜 그러면 다음 세대로 가서 그렇게 쇠퇴하게 되었나요?
물질적 자원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인적 자원, 지식 자원이 부족해서 그런가요?
당연히 아니죠. 자원은 오히려 늘어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럼 그들의 교리가 잘못되어서 그런가요?
그들이 잘못된 교리를 추종하고 나아갔기 때문에,
그들이 길을 잘못 벗어나게 된 것이 아니가요?
일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교리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것은 매우 미묘한 문제라서, 사실 그런 쇠퇴를 감지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예전 같은 불, 예전 같은 하늘에서 받은 비전, 열정, 뜨거움, 십자가 신앙
이런 것들이 미묘하게 식어 버린 것입니다.
너무 조금씩 식어가지고 식는 그 과정에서는, 식어짐을 감지하지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창시자의 영혼 깊은 곳에서, 과거와 같은 진동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 설교 시리즈>가운데서, 이 제목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일부 창시자가 처음 가졌던 <십자가 신앙>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식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십자가 설교 시리즈>에 나옵니다만,
십자가 신앙에서 나온 뜨거움, 불과 열정만.. 참 신앙의 열정이고, 참 뜨거움입니다.
만약 십자가 신앙에서 나온 뜨거움과 열정이 아니라면.. 그건 감정적 끓어오름이요, 가짜 열정입니다.
처음에는 그 창시자 세대에서,
진동이, 무언가 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울려 퍼져나가서.. 모든 게 더욱 활기차게 돌아갔는데,
버스의 연료처럼, 그것이 나와야, 전체 팀이 움직이는데
그게 안 나오니까
돈도 있고, 인원도 있는데.. 그 단체가 원활하게 움직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내적 불, 하늘에서 받은 비전, 예수님의 사랑, 십자가의 신앙 같은
내면적 신앙이 점점 식어지고, 고갈되어 지고,
더 오래 그 기간이 지속되다 보면,
그 단체가 과거의 명성은 그대로 유지 하고 있지만, 점점 화석화 된다고 그러죠.
화석화 되어버리고, 형식화 되어 버리는 그런 길을,
역사적으로 보면, 거의 모든 교단이나, 선교단체나, 교회가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다윗의 신앙이 솔로몬의 신앙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여호수아의 신앙이, 참 신기한 것은 삼 세대를 못 갔어요.
바로 그 다음 세대에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 그 세대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다음 세대부터 또 급격하게 타락한 사사기 시대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윌라드 박사의 원인 규명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며, 우리가 과연 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까요 하는 것이
달라스 윌라드 박사의 주장인데
그 책에서 헨리 나우웬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나우웬이 한 말을, 달라스 윌라드 박사가 그 책에서 인용했는데
그 말이, 이 설교의 주제요, 가장 핵심논지입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만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충돌하는 것은 없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주님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 일에 너무 열중하고 빠져드는 사이에
창시자 스스로 너무 바쁜 사역 가운데서
그 신앙이 점점 서서히 식어져버렸다.. 는 말입니다.
왜 그렇게 처음에 뜨거웠던 열정, 사랑, 십자가 신앙 이런 것들이 식어버렸느냐?
Paradox 역설인데요.
교회 일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까, 사역을 바쁘게 많이 하다보니까
그것이 식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전도 집회 다니느라 바빴고,
지도자들과 모여서 회의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곳 저곳 비행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정말 칭찬 받을 만한 일이요, 박수갈채를 보낼만한 수고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하면 과할수록.. 신앙의 열정이 점점 식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님 중심’보다는, ‘일 중심’이 되다 보니까..
기도하고 성경보는 개인 경건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나중에는 그 시간을 가져도, 형식적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그 단체 전체에 공급되는 성령의 열정, 진실한 십자가 신앙..
이런 것들이 차츰 사라져버리고.. 나중에는 ‘사역의 겉껍질’만 남는다는 것이죠.
그래도 이미 커져버린 그 사역을 보고서
사람들은 다 인정을 해 주고, 존중을 해 주니까
더더욱 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제를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사역만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충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향해서 열심히 사역을 하는 만큼
세상 표현으로 ‘신발에 연기 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며’ 사역을 하다보니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고, 내면적 신앙이 식어져 버렸다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말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역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선의의 봉사, 사역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내면적 신앙, 십자가의 신앙을 더 증진시켜야 되는데
도리어 사역이 신앙을 식게 만든다니요? 이게 도대체 말이 맞습니까?
자기가 먼저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그 나머지 시간에 사역에 임하면
그 사역이, 자기와 주님과 관계를 더 친밀하게 되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우리는 봉사와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봉사와 사역이.. 과도하면.. 문제라는 것입니다.
과유불급입니다. 과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그런 뜻이죠.
그런데 사역이 지지부진 사람은, 뭐 과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역이 좀 되는 사람, 그런 공동체는
사역이 좀 되다보니.. 항상 과도하게 ‘일 중심’으로 빠져들다가
한참 가서 되돌아보니, 외면적 일은 이루어진 것 같은데, 내면적으로 싸늘히 식어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자기 사역이 너무 이렇게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까
기도할 시간이 줄어지고,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줄어들고
첫째 자기 마음부터가 분주해지고, 마음이 이렇게 안정이 되어있지 못하니까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가운데서, 성경을 읽어도, 건성으로 읽게 되고
기도를 해도, 건성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또 사역이 바빠지고, 자기가 불려 다니는 데가 많아지고, 가야 되는 곳이 많고,
이렇게 되면,
자기가 초기에 가졌던 열정이나, 사랑이나, 십자가 신앙이나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기가 십상입니다.
또한 자기가 너무 높아지고 인정을 받다보니까, 교만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그러나 교만해지기 이전에, 벌써 너무 바쁘다 보면,
자기의 온통 관심과 신경이, 사역, 일, 외적, 가시적 성과에 가있고
주님과의 교제, 십자가 신앙, 열정, 이런 것은 그냥 싸늘하게 식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런 상태가 그냥 10년 이상 지속되어지면,
완전히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지요.
▶지난 20~30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적 영향력을 끼쳤던 분이라고 볼 수 있는
데이비드 윌커슨 박사님도, 처음에 은혜를 받고 틴 챌린지(십대 선교회)란 만들어서
버스를 두 대 움직이면서, 스태프들과 미국 전국을 순회하면서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셨는데
그분이 중간에 완전히 자기 스스로가 영적 침체에 빠졌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면서, 자기 팀과 함께 집회를 하던 중
어느 날부터 설교하기도 싫어지고, 집회하는 것도 건성으로 하게 되고,
개인기도를 해도, 집중이 안 되고..
틴 첼린지 집회는, 이미 명성이 나 있으니까,
가는 도시마다 사람들이 수천 명, 수만 명씩 모여도
정작 자신은 설교하기가 싫어지더라는 거예요. 집회를 하기가 싫은 거예요.
그리고 그런 상태니까, 자신이 설교를 해도 사람들이 은혜를 못 받는 것예요.
그러니까 점점 더 설교하기가 싫어지죠. 자기 설교에 자기 스스로도 아무 감동이 없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안 그랬죠. 처음엔 열정적으로 시작했는데
너무 사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너무 사역에 심신이 지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역에만 온통 투신 하다 보니까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역이 가장 큰 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잘되어 교만해져서 잘못 되는 사례도 물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웃시아가 저가 강성해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다’는 말씀이
역대하 26:16절에 나옵니다.
어째든 그가 강성해져서, 커져서, 교만해져서 망하던지
아니면 나우웬이 지적 했듯이 ‘하나님과의 사랑, 열정, 십자가 신앙,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는 가장 큰 적이, 바로 사역이라는 것’이지요.
주님의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
너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몰두하면,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거기서 불이 식어버리고, 내면적 신앙이 차츰 식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과, 하늘 비전과, 열정, 그의 십자가 신앙,
이런 면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다 보면,
그 사람들과 모여서 식사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사람들과 모여서, 일도 같이 해야 하고 하다 보니까..
그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서, 또 교만해 질수도 있겠고
어쨌든 그 사역이 그 다음 세대로 계승되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냥 자기 세대에서도, 부흥한지 약 10년 지나서 보니까
싸늘하게 식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돌이키고, 다시 불이 붙으면 다행이지만,
그 식은 가운데서, 화석화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보면, 이것은 제/편집자 개인적 관찰인데요,
어떤 분이 처음에 시작해서.. 부흥하기까지 10년 걸립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크게 일어나기까지 그 기간을 보니까 보통 10년이에요.
여기까지는 아직 열정이 살아있어요. 아직 뜨겁습니다.
그 다음 10년은 현상유지 기간입니다.
그다음 십년은, 예전에 일구어 놓았던 유명세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거예요.
이 때는, 이미 열정과 초기 신앙이 싸늘하게 식어버렸지만
예전에 쌓은 명성으로 그대로 굴러 가는 기간이 10년
이 기간이, 싸늘하게 차츰 식어지기 "시작"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다가 합쳐서 20년 지나면 은퇴하는 거죠. (나이로는 40대 ~ 60대 사이)
◑정리하면,
▶그래서 우리는 사역을 열심히 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과 봉사를 하느라, 신발에 연기 나도록 뛰어 다니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님과에 사랑에 관계를 방해할 정도로, 열심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연관 지어 말하면 ‘외형적 결과에 너무 연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외적인 결과에 연련하다 보니까, 무리하게 뛰어다니게 되고,
무리하게 확장하게 되고, 무리하게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건물을 짓거나, 재정을 늘이고, 숫자를 늘리고.. 이런 일에 자꾸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어떻게 잘해서 그런지, 아니면 사회적 요인이 도와서 그런지
건물도 늘어나고, 재정도 늘어나고, 숫자도 늘어났다고 하는데
한 십년 지나서 보니까..
거기에 불이 식어지고, 열정이 꺼져 버리고,
싸늘하게 식은, 겉껍데기 기독교만 남은,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세대에 가서는, 완전히 유명무실한 단체가 되고 만다.. 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 설교 시리즈>가운데서, 이 제목을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일부 창시자가 처음 가졌던 <십자가 신앙>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식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십자가 설교 시리즈>에 나옵니다만,
십자가 신앙에서 나온 뜨거움, 불과 열정만.. 참 신앙의 열정이고, 참 뜨거움입니다.
만약 십자가 신앙에서 나온 뜨거움과 열정이 아니라면.. 그건 감정적 끓어오름이요, 가짜 열정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신앙, 구령의 열정, 영적으로 파탄한 사람들의 가련함을 볼 줄 아는 눈,
그 불쌍한 심령들을 위한 진지한 기도..
이런 것들을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고, 외적으로 성공한 것은
‘성공 같은 실패’라는 것입니다. ←설교제목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 사회에 풍조가, 세상 흐름이,
실적/ 건축/ 재정/ 숫자.. 이런 것을 너무 강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는데
그것이 꼭 나쁜 것이 아니고, 많으면 좋습니다만,
자기 안의 내면에 불이 식어져버리고, 열정이 사라져버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싸늘하게 식어져버리고, 십자가 신앙을 떠난 가운데서
남은 건물이나, 숫자나, 재정이나.. 이런 모든 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나중에는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하게 화석화되어 버린 그런 교회,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라스 윌라드 박사는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으세요.”
예를 들어서 직설적으로 이런 뜻인 것 같아요.
‘내가 어디 선교단체 회장을 하더라도, 목회를 하더라도,
자기 자존심이 있으니까, 몇 명은 끌어 모아야 한다...
내 나이가 몇 살이고, 내 경력이 이러하니까, 최소한 이정도 규모는 해야 한다..
그러한 어떤 자기 자존심, 이러한 것이
외적 성장 위주로, 드라이브 해 가는, 몰고 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나가다 보니까, 내면적인 알맹이가 점점 빠져 버리고, 화석화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자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쇠퇴해 가고 있는 미국 교회의 근본원인과 처방을
나름대로 뛰어난 관찰과 혜안으로 정직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 교회만 그렇겠습니까.
역사상 2천년의 모든 교회가 그랬고, 모든 지도자가 그랬습니다.
조금 듣기 싫은 소리처럼 우리에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외적인 규모가 있으면 좋지요.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외적 여건은 쉽게 가지기 힘들어도,
내적인 불, 열정, 십자가 신앙! - 이건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뭐가 진짜 중요한지.. 그걸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달라스 윌라드 박사는, 1980~ 2000년 사이에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말하자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겉으로는 거창하고, 뭔가 되어가고 있는데, 그 안에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윌라드 박사께서
한국의 크고 작은 여러 교회들을 한 번 둘러보더라도
아마 비슷한 평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각자가 그런 것 같아요. 하루에 밖에 나가서 10시간 정도 일하고 돌아오면
주님과의 교제 이런 것은, 가질 힘도 안 나고, 심신이 지쳐서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생각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만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충돌하는 것은 없다”는
헨리 나우웬의 말을 기억하면서
내 마음속에 적어도
그 열정, 하나님이 주신 비전, 십자가 신앙, 거기서 나오는 불같은 열정,
이런 것들을 꺼트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큰 단체만 꺼뜨리겠습니까. 중 소형교회를 하던지
아니면 그냥 평신도로 다닌다 하더라도 꺼뜨려진 사람이 많이 있어요.
너무 바쁜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쁜 일을 다 절제하고, 우리 마음속에, 다른 외적인 것 다 없어도
그 내면적 신앙, 그 십자가 신앙의 본질만큼은 가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역에 너무 바빠서,
원래 가졌던 하나님이 주셨던 열정, 하늘로부터 받았던 비전,
또한 십자가 신앙, 예수님을 향한 사랑, 죽어가는 영혼을 위한 구령의 열정과 사랑
이런 것들이 점점 식어지고
그 식어진 것이 고착화 되어서, 화석화된 공동체가 되기 쉽다는
달라스 윌라드 박사에 지적을 기억하면서
다른 것은 다 빼앗길 수 있다 하더라도, 주여,
내면적 신앙, 십자가 신앙만큼은 빼앗기지 않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 주신 불같은 열정, 하늘에서 주신 그 비전,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 그 신앙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 길로 가는 그 영혼들의 대한 열정,
이런 것들이
너무 사역에 바빠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게을리 하다가
그것이 싸늘하게 식어져 버리는, 형식만 남은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Typing: PKH
'분류 없음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패러독스 (0) | 2014.01.04 |
---|---|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3 (예정) (0) | 2014.01.03 |
십자가의 두 국면 ✝1 (0) | 2014.01.02 |
▦ 매년 정초에 쓰는 나의 글 모음 (0) | 2013.08.11 |
1장 목회자의 자기 관리3 / 찰스 스펄전 (0) | 2013.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