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십자가의 패러독스

LNCK 2014. 1. 4. 11:45

십자가의 패러독스 - YouTube

◈십자가의 패러독스 (역설)           막15:25~37              인터넷에서 스크랩, 정리

 

 

▶주제 요약

‘십자가의 패러독스’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은, 대적들의 조롱을 이용해서, 십자가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창세부터 예언된 십자가 사건이 성취되도록 도와준 이들은,

제자들이나, 신실한 성도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자들인, 바리새인과 제사장 등, 예수님의 대적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패러독스)’입니다.

 

오늘날에도,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과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혀 얼토당토 않은 대적들과, 죄인들이

오히려 성도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을 섬기는 길을 가면서 ‘이상한 일을 당할 때’

너무 당황하거나, 의아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 성도가 주님을 잘 섬기면..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이해하지만,

진짜로 성도가 주님을 잘 섬기면.. ‘십자가(핍박과 고난)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너무 당황하거나, 이상한 일 당하는 것처럼, 의아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축복은, 그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으로 찾아올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천국에 가서 보상받거나, 그 후대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1. 조롱을 이용해서, 진리를 드러내는 십자가

 

특히 본문에는, 죽어가는 예수님을 끝까지 조롱하고 모욕하는 이들이 내뱉은

어리석은 말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가가 밝혀집니다.

이것은 역설, 십자가의 패러독스가 잘 드러납니다.

 

▲조롱1. ‘유대인의 왕’

그들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했는데,

실제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아침 9시쯤이었습니다.

예수의 죄패에는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막15:25~:26

 

로마 제국은 사형수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써서 죄패에 붙이도록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명을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적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야한다고 했지만

빌라도는 거절했습니다.

 

그럼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것은, 믿음으로 쓴 것일까요?

아닙니다. 빌라도는 유대인 전체를 모욕하고 싶어서, 그렇게 쓴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길거리에 다니는 어떤 부랑자를 보고 ‘한국인의 왕, 민족의 지도자’ 이렇게 쓰면

그것이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모욕의 말을 하도록, 하나님은 허락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이 진짜 유대인의 왕 되심이, 역설적으로 드러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갈 적에, 때로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욕설을 듣기도 하고, 비방을 받기도 하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그러한 모욕과 비방을 역설적으로 사용하셔서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기도 하며,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니까 ‘잠잠하고 있어라’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조롱2. ‘남은 구원한다면서, 왜 자신은 구원 못하는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남을 구원한다고 하면서, 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이유는,

남을 구원하지만 자신은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했다면 예수님은 메시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조롱하고 있는 그들의 말처럼 남은 구원하면서도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대적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홍보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이유는, 남은 구원하셨지만, 자신은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더라면, 아마 남은 구원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구원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버리셨다면,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오늘도 그러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아이고, 저 사람은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저렇게 주의 일을 한다고 돌아다니는가’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자기 앞가림을 한다면, 주의 일은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십자가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이 아니라

불의한 십자가를 참고 계속 인내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불의하게 조롱을 하고 모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롱과 모욕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한 역사는 나타날 수 있는 것임으로,

우리가 정말 그 예수님을 본받아서, 계속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모욕과 조롱이 불의하다고해서

당장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오던지, 자기가 지는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모욕하고 욕하는 그 사람들의 멱살을 쥔다면

십자가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한 역사는, 오늘날에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메시야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이 아니라,

불의한 십자가를 참고 인내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롱3.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뒤덮이더니 오후 3시까지 계속됐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은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째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입니다. 막15:31~:32

 

여기서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오해1) 이것은 마치 “지금까지 하나님께 순종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부르짖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았다는 부르짖음 같습니다.)

 

오해2) 혹은 고통이 너무 커서 ‘이 정도일줄 몰랐습니다.

이토록 큰 고통을 주시는 것을 보니, 저를 버리시는 것입니까?’라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따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의 고난을 아셨고, 고난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변화산에서, 이미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의논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앞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동안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정답) 놀라운 것은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붙잡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만 합니까?”라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조롱을 받는 순간에도,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그런 뜻입니다.

그런 뜻이, 행간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라는 전적인 신뢰의 고백입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마27:43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는 하나님을 아들이라’고 말한 것을 조롱했습니다.

요즘 자기 피알(홍보)하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듭니까. 광고료가 엄청 비싸죠.

 

그런데 간혹 부정을 저질러서, 언론에 확 떠서,

(비록 부정으로 인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자기 피알이 확 되는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연예 지망생 중에는, 그런 식으로라도 자기를 알리려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비방한 자들, 물론 그게 이제 부정적인 비방의 말이긴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어떤 하나님의 선한 뜻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세 가지 비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유대인의 왕이다’,

-두 번째는 ‘남은 구원한다면서 왜 자기는 스스로 구원 못 하는가’,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이들은 부정적으로, 나쁜 뜻으로 예수님을 비방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신비적인 역사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욕적인 말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고 홍보하게 되는

그러한 역설적인 효과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각에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그러한 전도나 홍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도망 가버렸지만,

그 대적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즉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또한 ‘자기를 구원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구원하시는 분’으로

이렇게 온 세상에 널리널리 알리는데, 이러한 죄인들의 모욕이 일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2. 불의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십자가 구원을 이루셨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를 통털어서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그러한 사건이죠.

왜냐면 나를 구원하셨고, 이 세상 모든 죄인을 구원하신 그러한 놀라운 구원 역사!

 

그러한 세계 히스토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십자가 사건이,

신기한 것은,

이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종결되어지는 그러한 모든 과정에

의인들이 동참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죄인들을 통해서 십자가 구원사건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위대한 십자가 사건,

그것은 의인들이 어떻게 손을 모으고, 도움을 다 모으고 합쳐져서 이루어져야 마땅할 터인데,

거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은 죄다 불의한 죄인들이였습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 빌라도, 로마 군병들, 성난 군중들,

아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거기 밑에서 조롱하던 사람들,

이러한 죄인들이 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패러독스, 역설’인 것입니다.

 

◑적용

 

오늘날 우리도 마찬 가지 라는 거죠.

오늘날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데,

 

물론 뭐 어떤 의인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백성들을 통해서도

선한 역사가 일어나긴 하겠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용하시고

아주 간사하고, 악하고, 무지막지한 그러한 인간 이하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무언가 역사를 이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식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우리 각자 신앙인이 돼야 되는 거죠.

그런 상식의 한계를, 만약 우리가 뛰어넘지 못 하면

 

하나님은 이렇게 종교 지도자, 빌라도, 로마 군병, 성난 군중,

십자가 밑에서 조롱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다 이렇게 움직여서 십자가 사건을 이루어나가고 계시는데

 

계속 자기는 뭐 신세타령하고, 스스로 한탄하고

‘하나님, 하나님 억울합니다.’ 이렇게 뭐 하고 있으면

자기는, 그 오늘날의 ‘자기 십자가의 역사’에 동참되지 못하겠지요.

 

▶이 세상 인류 역사에 가장 중대한 사건인 그 십자가 사건을

가장 크고 잔인하고 가장 악독한 그 죄인들의 손을 빌어서

물론 하나님이 ‘그 죄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뒤에서 사주를 하셨다’는 뜻은 아니고요.

 

죄인들은 자기들의 악독함을 표출해서, 자기들의 악독함으로

그 악한 일을, 죄를 지어 가는데,

하나님은 그걸 다 합력해서,

인류 구원의 십자가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길에 있어서

꼭 좋은 일만 일어난다, 좋은 사람들만 나를 도와준다,

그리고 나쁜 사람들은 다 원수들이다. 나쁜 사람들은 다 방해꾼이다,

이렇게 생각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들도 사용하시지만,

또는 나쁜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하시고

나쁜 사람들의 악한 꾀와, 그들의 비방과 그들의 올무와

그들의 모든 대적하는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설교 제목이 ‘십자가의 패러독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내 상식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내 인간적인 짧은 아이큐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더 깊은 기도와 성경말씀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끌어 가시고 현실을 이끌어 가시는 (십자가) 방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게 뭐에요 자기 자아의 죽음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자아의 죽음이 될 적에

우리는,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내 머리로써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딜레마를

우리는 이해는 못하지만.. 믿음과 신뢰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거죠.

 

단지 우리가 한 가지 여기서 생각 할 것은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일 하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든 케이스에 역설적으로 일 하신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하나님은 순리적으로, 상식선에서 일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역설적으로도, 패러독스 하게 역사를 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리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던지

아니면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던지

어떤 일이 나에게 닥치던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하면서

그걸 그냥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요 우리 신앙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절규 하셨죠.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오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 행간에 담긴 그 어떤 진짜 의미는

아무리 내가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할지라도

‘하나님 저는 철저히 주님을 신뢰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그러한 처절한 상황에 놓인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는 결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라는

 

그러한 철저한 신뢰 표현 이라는 것. 그러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우리 삶에 주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처럼 묵묵히 걸어가는 데서

우리 가정의 구원의 역사, 내 주변 환경의 구원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누군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오늘 우리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당신은 주님의 일을 하면서

오늘날 한 번도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거에요.

 

그러나 내가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

내가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그 사람 멱살을 잡는다면

그것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설적인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내 주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

이것을 역설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류 없음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역전이 없어도  (0) 2014.01.07
생명의 탄생에는 고통이 따른다 ✝5  (0) 2014.01.06
거룩한 십자가의 왕도✝3 (예정)   (0) 2014.01.03
성공 같은 실패 ✝2  (0) 2014.01.03
십자가의 두 국면 ✝1  (0) 201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