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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꺼지지 않는 사랑의 등불을 가진 사람

LNCK 2014. 4. 26. 20:22
  ◈꺼지지 않는 사랑의 등불을 가진 사람    13:34,35; 15:9-15, 25:1-13    13. 10. 20. 

 

▲천국 백성은 반드시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국은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시편을 쓸 만큼 예배의 사람이었습니다. 천국 백성은 반드시 예배하게 되어 있는데,

예배한지가 오래되었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만난 것이 오래 되었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 언제 하나님을 깊이 예배해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때는 어떻게 그렇게 깊이 예배하셨습니까?

 

예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천국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예배를 하는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예배를 인도하려고 하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이 예배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가 사라지면, 그는 더 이상 천국의 백성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회중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만들겠습니까?

나도 예배하지 않는 하나님을 누구를 예배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주일 예배 때, 예배하십니까? 예배인도자들은 예배를 인도하면서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해봅시다.

 

나는 한번이라도 하나님 자체를 예배해 보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자체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실 것들을 기대하며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뭔가 예배 안 드리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마지 못해 예배하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공사 현장에서, 하루 종일 손을 흔들면서 교통 신호를 미리 알리는 일은 하지만,

심장은 없는 마네킹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모양도 있고 일도 부지런히 합니다. 그런데 심장이 없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은 것입니다.

 

예배도 드리고 있고, 말씀에 대해서도 말을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지 않은 자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없는 설교자, 목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예배에 계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런 예배에는 거듭남의 은혜도 없습니다.

거듭남은 영적인 예배에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멸을 느끼시고 역겨워 하시는 예배에 거듭남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이유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의 예배를 토해 내 버리십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은 회개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과 예배를 점검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역자가 되기 이전에,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당에서 예배를 인도하기 이전에, 가정에서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이 예배자가 되지 못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고, 찬양을 인도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 데이빗 리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을 쓰셨습니다. 그 분의 모든 설교에는 남다른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지금 소천하신 후에도, 그 분의 설교는 인터넷을 통해서, 아직도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특히 목회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많이 전하셨습니다.

때로는 설교 중에 강하게 목회자들을 질책하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비판으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에게는 애통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인데,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애통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비판하는 내용을 말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말을 경청해서 들었습니다.

 

또한 그 분은 설교도 혼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높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설교 하셨습니다.

제가 본 설교 가운데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찬양한 적도 없으십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을 위시해서, 그런 분들은 사람들이 볼 때에도 저 사람은 다르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본다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다르다.” 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나 똑같다.” 고 하겠습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무언가 하지 마십시오. 그런 종류의 모든 시도들을 멈추시고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멈추십시오.

모든 일의 동기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멈추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의 예배자가 회중 전체를,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진짜 예배자 때문에,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임재 가운데 거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역겨워 하시는 예배자가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의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다면,

또 그런 예배를 드린 지가 오래 되었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사람은 누가복음 15장의 집을 나간 둘째 아들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해서

며칠이 지나서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얼마나 궁핍했던지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살게 되었는데

주인이 탕자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했습니다.

탕자는 너무 굶주려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 했지만, 그것조차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떠나 사는 탕자의 모습입니다. 누가 탕자입니까?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자들이 탕자입니다.

아버지 돈 가지고, 아버지 이름 팔아서 목회하는 목회자가 탕자입니다.

탕자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 없이 사역하는 목회자의 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탕자로 사는 한 그는 돼지 쥐엄 열매나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야만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세대에는 하나님 이름 팔아서 살면서, 돼지 쥐엄 열매나 먹고 사는 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집이나 주고 차나 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고 말합니다. 성공한 줄 압니다.

그게 바로 돼지 쥐엄 열매나 먹고 있는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 있으니까요)

, 명예,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 이 모든 세속적인 성공이 돼지 쥐엄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인데,

자신이 아버지 집의 잔칫상을 먹고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잔치를 누리는 사람은 반드시 구별되고,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잔치상에 있구나.” “아버지가 가락지를 끼워 주었구나.”하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보면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른다면 우리도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 뒤적거리며 살고 인생일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언제까지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셔야 아버지를 쳐다 볼 것입니까?

여러분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여러분,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을 드리십시오. 이 시간 드리십시오. 잠시 기도합시다.

 

 ▲여러분, 요즈음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하나님과 대화를 하십니까?

사랑하는 관계라면 반드시 대화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화도 하지 않고,

깊이 만나는 예배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 하십니까? 예배는 하나님과 나, 단 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배한다 해도,

진정한 예배자는 하나님과 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자유롭습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는 부부관계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놔두고

이 사람 쳐다보고 저 사람 쳐다봅니까?

그런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역겹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여기 저기 쳐다보고, 이 사람 저 사람 신경 씁니까?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아예 관심도 없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얼마나 대화를 하십니까? 얼마나 하나님 앞에 머물러 계십니까?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과연 길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의 길이 있다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지옥행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지옥에 갑니다.

 

천국과 지옥이 무엇으로 나뉩니까? 사랑으로 나뉩니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두움에 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습니까?

 

내가 목숨 보다 더 사랑하는 분이, 싫어하고 저주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분이 그것 때문에 죽었는데

사랑하는 분을 죽인 저주스러운 일을 내가 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 죄를 다시 지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빛에만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얼마나 하나님을 만나기 싫어하면 어두움에 가 있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싫어하기에 죄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나는 지옥 백성입니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저주하고 있기에, 죄와 사탄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고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셨는데,

이웃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지키지도 않고

아주 작은 것 까지도 불순종하고 내 멋대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게 됩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말하는 대로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뭔가를 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작은 명령조차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고,

죄 짓고, 헌금도 도둑질하고 아무것도 삶에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일 뿐입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지옥백성입니다.

그들은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