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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구원의 영적인 부분

LNCK 2015. 7. 17. 10:46

잃어버린 구원의 영적인 부분            2:1~2             출처 분실

 

 

 

주님, 저희의 죄된 지성으로 깨닫게 하지 아니 하시며, 우리 영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고 했사오니, 주님 성경을 지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게 하시고

성경을 기록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붙잡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예배가 생명을 낳고 살리는 예배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2천년 전에 있었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이

우리에게 역사할 것을 청합니다.

 

주님 구하시고 치유하시며 죄와 중독에서 해방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을 낳는 예배되게 하소서. 부족한 사람은 감춰주시고

주님 살아계신 주님을 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주님 구원 역사를 일으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서론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2장입니다. 에베소서 2:1~2절만 읽겠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의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오늘은 <잃어버린 구원의 영적인 부분>이란 제목으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미국의 교육은, 세계에서 제일 잘하고 있죠.

눈에 보이는 것, 비교, 분석, 측정 가능해서, 증명 가능한 것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국은 측정할 수 없고, 보일 수 없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홀히하며 지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과학이 발달하고 군사 대국이 되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것, 신뢰, 사랑 등이 파괴되면서, 이혼율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동네마다 점쟁이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신기한 게, 동네마다 손금보고 점치는 집이 있다는 거죠. 미국 사람들이요.

과학은 발달했지만, 그 중에서 점쟁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말에, 세계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안톤 라벨이라는 사람이

사탄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루시퍼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예배합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미국 가수들이 마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발달했지만 마귀를 노래합니다.

 

여러분 사탄은 있습니다.

미국에서 과학의 교육과 이성의 교육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신학교마저도 사탄에 대해서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있습니다.

 

이 설교를 하게 된 배경은, 최근 저희 교회가 집회가 많아지고 기도가 강해지면서

귀신이 많이 나왔어요. 귀신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도 귀국을 서둘러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보니 우리 집부터 귀신이 나왔더라고요. 저희 식구들이 기도 많이 합니다.

놀라운 것은 저희 집안에서도 귀신이 나왔어요.

본인도 알고 기도하는데, 견딜 수 없이 쓰러지게 되면서,

감사한 것은 또 성령 세례를 받게 됐어요.

 

저희가 귀신을 쫓는 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창세기 첫장부터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나온 사탄에 대해서

현대의 신학교가 소홀히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배 가운데 주님을 기쁘게 하시는 예배를 드리면 할수록,

은사(선물이란 뜻), 선물로, 귀신을 내쫓게 하십니다.

 

귀신을 본 적 없고 느낀 적이 없다고요? 없는 게 아니에요.

간디스토마처럼 잠복기가 있을 뿐. 여러분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 아냐고요? 정말 주님을 따르고 예배하려고 그러면.. 나타나요.

 

현대인의 예배는 20분이어야 해요.

왜냐면 그냥 한번 왔던 사람들조차 심리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게 20분이에요.

현대의 예배는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대중을 위해 안배했어요.

 

교회가 많이 모이게 하려면 설교를 20분 해야 해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과 격려와 위로를 많이 말해야 해요. 목회를 하다보면 본능적으로 알게 돼요.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자기가 평생 읽은 성경을 요약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다른 설교를 많이 들어봐도, 현대의 선교는 이렇게 말해야 해요.

교훈과/ 격려와/ 위로와 사랑으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두렵습니다. 바울이 아는 것은 그게 아니었어요.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사랑은 안 나옵니다.

여러분, 두려운 것 같아요.

 

제가 지난 주간에 중국에 갔다 왔잖아요. 저는 1년 중에 중국 설교를 제일 좋아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식사 시간 빼고 계속 하려고 그래요.

사실 그들은 안 쉬려고 해요. 제가 힘들 뿐이지.

 

놀라운 것은 어린 아이들을 중국에서 많이 버립니다.

크리스천들이 데려다 키우는데, 6살이에요.

6살인데 똑같이 이런 두꺼운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걔가 성경을 다 찾아요. 나는 설교하지만 걔를 쳐다봐요.

쟤가 뭘 안다고.. 놀라운 것은 알고자 한다는 거예요.

 

주일학교 설교가 20분이란 건 거짓말입니다. 그건 자본주의 세계에서나 가능합니다.

걔를 보면 영이 있는 걸 알게 돼요. 혼자 고아가 됐잖아요.

자기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의 답을 알고자 하는 거예요.

 

걔가 이제는 성경책을 들고 있더라고요.

작년에 처음 봤을 때는 같이 옆에서 노는 거예요.

놀다가 아는 듯한 말이 들리면 딱 서는 거예요.

그 눈동자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집중하는 모습.

 

우리 애가 게임할 때랑 똑같은 그 모습이죠.

밥을 줘도 안 먹고 게임하는 그 모습이에요.

 

그렇게 자기가 아는 듯한 단어만 나오면 집중하는 거예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여러분, 그게 영이에요.

가르치는 제가 은혜 받는 거예요.

 

같은 성에서 모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 다른 성에서 왔어요.

내몽고, 헤이롱장, 훠베이, 허난, 물어봐요. 서로 발음도 안 맞아요.

그런데 하나님께 집중하는 거예요.

 

저는 저녁 먹고 쉬어요. 제가 모르고 성경책 가지러 갔어요.

저녁에 또 예배하더라고요. 아침에 오기 전에 또 예배하고 온대요. 하루 종일 하는 거예요.

누가 하래서 하는 게 아니에요. 의례히 그런 줄 아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만 자본주의 세계에 기독교는요. 자본주의를 저항하지 않아요.

만약 미국에 핍박이 온다면 한 달을 버틸까요. 못 버틴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보면 공산주의가 이길 수 있을까 싶어요. 못 이길 것 같아요.

공산주의가 왔다가, 자기도 믿으려고 할 것 같아요.

 

저는 중국에 갔다가, 정말 충전이 되어 돌아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여러분 성경에서 말한 모든 말씀을 골고루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본론/ 오늘 설교는 사탄에 대한 거예요.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희를 주님 살리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회개 핵심은, 우리를 씻는 게 아니에요.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골로새서 1:13~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제가 낮에 제자반에서 늘 찾고 있는데요.

죄 사함이라는 단어 앞에 훨씬 세 배 이상 긴 문장이 있어요.

 

그것은 우리를 예수와 함께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예수와 함께 우리를 다시 일으키셔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살린 다음에 우리 죄를 씻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먼저 살리십니다.

 

갓난아이가 이렇게 난로와 불을 보면 좋아하죠. 선악과를 먹은 나쁜 놈이에요.

엄마가 만지지마 그래도 더 만져요. 예뻐보이지만 나쁜 놈이에요.

불순종의 영이 가득해요. 만지지마 그래도 만져요.

결국은 엄마가 엄하게 해도, 엄마가 안 보는 틈에 어린 아이는 난로를 만지고 말아요.

 

그때 막 울죠. 그때 엄마가 뭐라고 해요.

회개하라. 이 패역하고 불순종의 영은 회개하라

그렇게 해요? 아니죠. 먼저 아이를 살리죠. 말할 틈도 없죠.

 

더 이게 화상이 잘못되지 않게 먼저 살리잖아요.

주님은 먼저 우리를 살리시고 죄를 씻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죄 사함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아요.

세례는 거의 죄 씻는 건 줄 알아요. 물에 들어가는 이유가 씻는 걸 상징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는 침례에요. 죽는 걸 상징하는 거예요.

세례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와 함께 살리시는 설교가 훨씬 깁니다.

 

골로새서 2장에 또 나옵니다. 아주 길어요.

예수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예수와 함께 다시 일으키심 받았으니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너와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 사함은 한 문장 밖에 안돼요.

그 앞에 세 배 이상 긴 설명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 세례입니다.

 

현대인의 세례는 위험합니다.

현대인의 세례는 자기 옛사람은 괜찮은 거야.

다만 옛사람 옆의 죄가 문제인 줄 아는 거예요.

죄만 씻는 줄 아는 거예요. 세례는 죄를 씻는 게 아니에요.

 

로마서 62절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이게 세례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하여 내가 죽은 거예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직전까지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

세례 받으면 뭐가 살아나는 거예요? 영이 살아나는 거예요.

 

죽었다는 게 뭐에요? 에베소서 22절입니다.

그때의 너희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공중 권세 잡은 자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르콘이라는 말이 프린스에요.

공중의 권세가 있는 왕자를 따랐으니. 우리말은 번역을 안했어요.

왕자까지는 번역 안한 거예요. 그 단어는 왕자에요. 프린스. 왕자/왕입니다.

 

여러분. 지금 주님을 모르는 자들은요. 자신들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아니에요.

자아가 주인인 사람은, 반드시 사탄에게 속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인 사람은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도 베드로도 하와도, 혼자서 사탄을 이긴 자가 없습니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공중의 권세 잡은 프린스, 왕자를 따르고 있는 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네 종류밖에 없어요.

첫째는 길가의 뿌린 자.

말씀을 듣되 사탄이 그 말씀을 가져간다는 거예요.

성경은 심리학적인 문제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이큐 문제를 쓰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이유를 썼습니다. 여러분 지금껏 설교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분. 사탄이 한 겁니다.

 

저희가 작년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데 벙어리 귀신을 쫓아낸 적 있습니다.

벙어리 들린 귀신이 한 일은요, 제가 한 시간 동안 강의했어요. 세례를요.

그리고 세례 받겠니?’ 말했을 때 울더라구요. 울면서 하는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한 시간 동안 나눈 얘기 중에 한 단어도 기억이 안 난대요. 울더라구요.

아이큐가 아니에요. 기억이 안되는 거예요. 사탄이 있습니다.

 

두번째 밭이 있죠. 돌짝밭입니다.

돌짝밭은 자라는데 기쁘다가 뭐에요. 햇빛이 나면 마른다는 거예요.

인내가 없어서 자라다가 넘어진다는 거예요. 그 말씀으로는 그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돌짝밭이 있습니다.

 

그 다음은. 가시밭이 있죠.

성경에는 기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내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돌짝밭이 말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기쁨을 추구해요.

여러분. 여러분이 기뻐하는 설교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몇주째 설교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설교는

뭇 사람에게 칭찬 바른 설교가 아니라

나사렛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분노케 한 설교였습니다. 무엇입니까?

여러분을 구원하는 설교가, 여러분이 감동을 받고 여러분이 좋아할만한 설교가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감동을 받고 여러분이 기뻐하는 설교가, 여러분을 회개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뭇사람이 칭찬했지만, 뭇사람이 회개하진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때 40일동안 금식한 다음에, 성령의 능력으로 돌아왔어요.

놀랍게 성령의 능력으로 한 설교가, 그들을 회개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말은, 그들을 회개케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첫 설교는, 사람을 분노케 한 설교입니다.

여러분을 기쁘게 한 설교가, 여러분을 구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못합니다.

 

 

◑'믿음'이전에, 십자가/회개/용서받음이 분명해야 .. 진짜 믿음

 

한번은 저희 아들이 고등학교 때 그러는 거예요. ‘아빠 폴 워셔 알아?’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이죠. ‘이단이 아니야?’

?’ 그랬더니

어젯밤에 설교 들었어, 인터넷으로.’

 

어떻게 하다가 모르고 두드렸는데, 폴 워셔가 나왔대요.

얼마나 오래 모르고 두드렸으면 그게 나왔겠어요. 거의 컴퓨터 헌신한다는 뜻이겠죠.

어땠는데?’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그러더라구요.

, 아픈데. 좋은 거 같아.’

 

걔가 할 수 있는 한글이 그런 거예요. 들으니까 아픈데, 좋아.

이단이야 아니야?’ ‘이단 아니지. 아주 좋은 사람이야.’

그 사람이 진짜야. 그랬더니 , 설교한 다음에 쫓겨났대.’

 

여러분 우리를 구하는 설교가, 우리가 기뻐하는 설교가 아닙니다.

현대 교회가 치유와 예언은 있는데, 회개는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감격에서 너무나 멀리 떠나

십자가의 감격보다 더 큰 성령의 기쁨은, 반드시 미혹됩니다.

 

계시록까지 성령을 찬양하는 건 안나와요. 언제나 죽임 당한 어린 양을 노래합니다.

십자가의 감격보다 더 기쁜 물질의 복은 타락해요.

 

여러분. 목사로서 말하는데, 물질이 부족한 것을 무한 감사하세요.

여러분들 있으면요. 반드시 넘어질 사람들이세요.

 

듣기에 괴로워도 들어야 해요.

나는요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서 새벽 기도 나오는 사람 못 봤어요. 한번도.

십자가의 감격보다 세상에 더 기쁜 것이 있으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래도 한번 있어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라고요?

여러분, 독약은 먹고 깨달으면.. 너무 늦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를 주님이 물질이 주지 않은 것을 무한 감사합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여러분의 자세가 있잖아요.

주님이 로또 같은 거 당첨되게 하면 여기 있을 사람 몇 사람 안되요. 관리하느라고.

 

그것처럼, 십자가의 감격보다 세상이 기쁜 게 아니라

십자가의 감격보다 하늘 기쁨, 성령의 계시, 성령의 능력, 성령의 어떠함을 더 기뻐한다면 반드시 미혹됩니다.

 

천지창조 이후에 주님이 다시 올 때까지, 가장 위대한 일은

십자가에서의 새 창조밖에 없어요. 죄인된 우리가 의인이 됐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돌이켜야 합니다. 이러면 안돼요.

십자가의 감격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천사들이 알아요.

죽임 당한 어린 양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감격이 안될까요?

아직 십자가의 죄 사함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자기가 죽을 죄만 짓는 거예요.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현실이에요.

사실이에요. 기도를 많이 해보세요. 귀신이 나와요.

 

귀신이 나온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거의 다 있어요.

주님을 따르고자 예배하고 기도하잖아요. 그럼 나와요.

 

정말입니다.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찬양하잖아요. 나와요.

문제는 우리의 예배가 주님을 따르니, 성경에도 안 나오는 기독교,

주일 성수와 십자가로 제한시켰다는 것이죠.

 

이건 주일 성수와 십자가는 구약의 절묘한 짝퉁이에요.

신약에는 전혀 없는 종교고, 구약 중에서 십일조와 재정에 대해서

시간은, 주일,

이건 사실 구약에도 안나오는 거예요.

 

현대인의 기독교는 위험해요.

현대인의 기독교는 성찬이 원래 뭐 먹는 거예요. 성찬이 원래 떡 먹는 거예요.

성경에는 고린도서에는 늦게 오는 사람이 있기 전에, 너무 많이 먹어서 취했대요.

성찬과 떡을 너무 먹어서 취했다는 거예요. 성찬을 거의 식사대용으로 쓴 거죠.

 

현대인의 성찬은요. 주스에다가 전병이에요.

제 생각엔 그걸 볼 때마다, 구원의 복음을 이렇게 전병처럼 축소시킨 거 같아요.

 

이스라엘은 성찬할 때 처음에 힘들었던 게 뜯는데, 한 무더기를 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래요. 술을 더 달래요. 입가심하려고. 너무 힘든 거예요 처음에.

이게 은은하게 안 되는 거예요. 빨리 씹어야 해요. 양이 많아서.

그런데 성경엔 그게 맞잖아요.

 

우리들은, 마치 그 빵을 요만큼 전병으로 혀에 녹게 만든 것처럼.

구원의 복음을 작게/단순화시킨 거 같아요. 여러분 구원의 복음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마지막 때에, 사탄이 넘쳐요. 영화처럼. 비행기에서 보면 영화를 검색해보니까

귀신 영화는 일정 분량이 언제나 있어요. 놀라워요. 귀신 영화가. 호러 영화들.

 

여러분, 영화가 반증하지 않습니까. TV 드라마가 반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만 오면 전혀 귀신 이야기를 안 해요. 어디가 더 깨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영화와 교회 중에.

 

여러분 귀신이 많아요. 저희 집에서 엄청 나오고 있어요.

외람된 예지만, 저희 집사람이 기도에 맛을 들였어요. 정말 놀랐어요.

새벽 기도 갔다가 집에 와서 또 해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에게 귀신이 나왔어요.

벙어리 귀신이.

 

저희 집사람은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말하는 걸 안 좋아해요.

그냥 성경이 내성적인줄로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주님의 성령을 사모하고 성경도 엄청 봤어요.

내가 가진 책은 거의 다 봤어요.

 

여러분은 안 놀라는데, 같이 살아본 남편으로서는 기적이에요.

예전에 우리 집사람은 책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에요. 정말 잘 모르죠.

 

근데 정말 주님의 진리 안에서, 기독교 서적을 다 봤어요.

성경을 영어로 전체를 다 봤어요. 지금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귀신이 나오는 거예요. 기도하면 성령님이 막 역사하는 거예요.

방언이 막 통변이 되는 거예요. 아 방언 얘기하지 말고.

 

여러분 방언 예언은 우리가 좋아하는 거예요. 주님이 좋아하는 건? 믿음이에요.

메인은 믿음이에요. 근데 현대인의 교회는 스끼다시가 많은 거예요.

간 많이 치고. 여러분 메인 사시미는 간이 없어요.

 

믿음에는 심리학적인 책이 필요 없어요.

전심으로 나아가는 자는 주님 앞에 믿음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그 믿음으로 말씀을 받기 바랍니다.

 

여러분,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는 거예요.

기도해보세요, 금식해보세요. 그럼 내가 내 속에 얼마나 생각 속에, 육체 속에

무의식 속에 귀신이 있는지 말도 못해요.

 

현대인의 예배는 간절한 사람을 주님이 바라보도록 안배한 것이 아니라

전혀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예배에 부담이 없도록 만든 거예요.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여러분 제가 큰 교회에서 설교해 봐도 정말 두려워요. 구원받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제가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되기를 원치도 않아요.

 

저는 환란날이 왔을 때 이 교회가 공산주의 속에 살아남은 중국 교회처럼

참된 교회가 되길 바라요. 제 마음의 갈망은 그것뿐입니다.

 

그런데 그럴려면 영이 구원받아야 해요.

우리의 영이 성령과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야 해요.

로마서에 나오지만. 우리의 영이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를 증거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요한 웨슬리의 아버지가 죽을 때 유언합니다.

형식주의 밖에 없는, 거의 가톨릭과 다를 바 없는 성공회 시절에

아버지가 성공회 목사님인 요한 웨슬리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말합니다.


로마서 82절 인용하면서 요한아, 너는 내적 증거가 있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우리의 영이 성령과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증거하노라는 말씀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말한 거예요.

 

요한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을 다닐 때 별명이 성경 벌레에요. 현대 큐티의 원조죠.

가톨릭 영향으로 그들은 미사 밖에 없을 텐데, 성경을 매일 보는 거예요.

지금은 존경 받지만 그 당시에는 욕먹었어요. 이단처럼.

 

성경을 왜 보는 거야?’ 그럴 때였어요. 별명이 성경 벌레입니다.

그런데 그는 구원을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요한계시록에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어요.

거기에 모든 죄들을 자세히 말했어요. 첫번째 종류가 무슨 죄인지 아세요?

두려워하는 자에요.

 

둘째는 믿지 않는 자에요. 순서가 이상하죠? 두려움이 죄인가?

두려워하는 자는 못 들어간대요. 너무한 것 같죠.

 

여러분 목회를 해보니까 정말 알겠어요. 그 말씀이 뭔지.

두려워한다는 건 자기가 주인이란 뜻이에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첫 반응이 뭐에요. 두렵다고 말했어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직 그들은 하나님이 믿어지는 분이에요. 다만 하나님 앞에서 그냥 두려운 거예요.

성경에 하나님이 두렵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두려운 거예요.

 

여러분 풍랑칠 때 주님이 뭐라 그래요.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그 분이. 아 풍랑 속에서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풍랑을 뚫고 들렸어요. 그 말이. 풍랑을 뚫고.

여러분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증명됩니다.

 

저는 풍랑을 모르고, 홍도로 가는 배에서

제가 풍랑 주의보가 내린 밤에 나가봤어요. 깜깜한 밤에.

 

저는 평생을 못 잊어요. 풍랑치는 배 갑판에 섰는데,

난 그게 (물의 벽이) 하늘인 줄 알았어요. 처음에 깜깜해서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거기가 물이더라구요. 근데 그 공포는 잊을수가 없어요.

심장이 저기 발바닥에 내려가는 것 같아요. 말이 안 나오고 발이 안 떨어져요.

말이 안 나와요. 발이 내 발이 아닌 거예요. 그 두려움 잊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현대인이 만든 예수님은 공자 예수에요.

그날 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풍랑 소리를 뚫고 주의 말씀을 들었어요.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풍랑을 뚫고 들렸어요. 풍랑 속에서.

 

여러분, 현대 주일 설교 톤으로 말하면 들리지도 않아요.

여러분, 욥은 고통 속에서

그 고통 속에서, 자식이 죽고 비즈니스가 망한 고통 속에서

욥은 폭풍 속에서 주님의 말씀 들었어요.’

 

현대인의 설교는요, 사람들이 부담될만한 모든 말씀을 삭제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게 나와요. 28절이.

여러분. 그게 더 요긴하면 바울이 1절에 써놓지 8절에 써놨겠어요.

 

현대인의 암송카드를 보면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는 사람들이 받을만한 구절만 모아놓은 거예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 그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그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거만 딱 떼놓고 탈북자에게 보여주면 딱 그래요. 이거 누가 한 말?

요구르트 아줌마. 아무 부담이 없는 거예요. 문만 열어주면 돼.

 

현대인의 전도지는 너무나 쉽고 단순해보이는 것만 모아놨어요. 그 앞 구절이 뭐에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는 말씀이 있어요.

전도지에는 그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앞의 구절이.

 

현대인의 전도지는 정말 위험해요. 그것은 그 천국문에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전도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국과 소련이 공산화되어서, 그 죽음의 핍박 속에서 살아남았어요.

그러는 동안에 이 미국과 한국에서는, 그들이 겪은 핍박의 양처럼

미국과 한국은 미혹의 양을 겪고 있는 거예요.

 

저는 양쪽 나라를 오가면서 도대체 신앙 생활하기에 어디가 더 어려운가를 묻는다면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에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에요.

 

전도지를 볼 때마다 두려워요. 여러분, 요한 웨슬리처럼

성경의 한 단어도 소홀치 않고

마귀에 대한 구절도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열심 있는 신자가, 사고 냅니다.

 

저는 요즘 일어나는 간절히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는 귀신들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설교 준비했어요.

 

여러분 베드로가 제일 많이 혼나죠. 왜 그래요?

열두 사도 중에서 베드로가 가장 주님께 나아갔기 때문에, 드러난 거예요.

 

주님께 나아가면 들어가져요. 제가 한국차를 오래 타고 다녔는데 차를 천천히 몰아요.

근데 천천히 몰때는 벤츠랑 우리나라 차랑 다른 점을 못 느껴요.

천천히 몰 때는 벤츠를 왜 사나 모르겠더라구요. 얼마나 좋은데.

근데 120이상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벤츠가 왜 비싼지 용납이 돼요.

 

베드로. 다른 제자들은 시속 30마일로 주님 따르는 거예요.

안전거리 유지하면서 부담 없는 예수를 믿은 거죠.

그런데 베드로는 아니었어요. 베드로는 전심으로 나아갔어요. 100마일로 따른 겁니다.

주님이 무슨 기쁜말 할 때 언제나 베드로 밖에 없어요.

그러니 베드로의 허물이 드러나는 거예요.

 

여러분 간절히 예배하고 간절히 찾아보세요.

그럼 우리 속에 생각 속에 사탄에게 점유된 게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제야 드러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면서 사탄이 있나. 그러지 마요.

그러다 큰일 나는 수가 있어요.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주님을 따르는 거에 죄와 중독과 각종 이해할 수 없는 저주들로

우리를 막는 그것과 싸움하는 거예요.

 

에베소서 6장에 이렇게 마쳐요.

종말로 너희는 사탄의 계책을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옷을 입으라.’

여러분, 뭐라구요?

오 마이 갓. 그냥 칼만 들면 안되나. 안된대요.

 

투구부터 신발까지 마련해놨어요. 마귀는 전체를 치는 거예요. 그리고 말해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믿습니다, 공격할 수 없어요. 방어일 뿐이에요.

뭐가 있어야 해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레마에요.

오늘날은 레마라는 단어를 조심해요. 욕 먹을까봐. 마귀의 전략이에요.

 

우리가 마귀를 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공격성 갑옷은 하나밖에 없어요.

투구를 던질 생각은 아니겠죠? 하나밖에 없어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여러분 마지막 때에요. 사탄이 발악하고 있습니다. 왜 전도가 안 됩니까.

죄와 사망과 사탄의 역사 때문입니다. 전도하셔야 합니다.

전도할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지, 그들이 깨어나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이 죽어있다는 것을 말해줘야 해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어요. 형상이 뭡니까. 영이에요.

주는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더 읽으실 분 ...................................

 

여러분 예배를 전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잘 모르는 분도 알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그러나 찬양 봉사로부터 식사 봉사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일만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섬김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기름 부으심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이런 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지적인 깨달음과 그런 지적인 동의로는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 성경은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지성적인 사람은 성경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하지 못합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합심하여 2천년 전에 십자가의 죽은 분의 그 피가

지금 내 죄를 씻는다는 게 이성적으로 전달이 돼요?

 

그 분이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는데, 그것도 믿기 어려운데.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건데. 3일만에 부활한 그 부활 생명이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는 거예요.

이게 설명이 돼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 외에는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교회를 오래다녔지만 구원받지 못한 분이 많다는 것이죠.

여러분 정죄성 발언이 아니에요. 저부터 정말 회개합니다.

 

저도 지난달부터 회개하는 중입니다.

정말 제가 그래도 나는 다른 목사보다는 해야될 말을 많이 했어.

제가 지난달에 주님이 나에게 보여주신 것은요. 너는 그래도 사람을 중요시했어.

내가 너에게 주는 말을 할 자가 아니야. 제가 거기에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 이 부족한 목사부터 온전히 회개하길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이에요.

제가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사람이 부담될만한 성경을 조심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그래도 나는 남보다는 바른 말을 많이 했어. 이 자체가 뭐에요?

사람을 신경쓰는 것이죠. 여러분 제가 정말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을 기쁘게 하시는

예배와 설교를 안배하는 목사되길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두렵습니다.

 

주일날 오는거와 십일조하는 거, 이건 주님이 전혀 모르시는 기독교에요.

이건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못 이겨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에 이르길 축원합니다.

이것이 현대인이 잃어버린 구원의 한 부분이에요.

영이 살아나는 것. 영으로 살아야 해요. 아멘.

 

신학적으로 성경은 파이널 오쏘리티에요. 성경은 최종 권위이지 원천 권위가 아니에요.

성경을 원천 권위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저를 공격해요. 성령파라고.

그들은 성경이 완성됨으로써 성령의 역사와 은사는 끝났다는 거짓된 교리를 감추고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뉴욕 땅이

북미 전체에서 성령을 가장 막는 땅을 살고 있어요.

 

여러분, 주님이 진노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에 목숨을 겁시다. 마지막 때입니다.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기쁘게 합시다.

안 그럼 우리는 사탄에게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사탄을 이길 자는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하기 전에 주님은 성령을 부어서 교회를 세웠어요.

그 기록을 묶은 게 성경입니다. 성경은 최종본이지 원천 권위가 아닙니다.

 

성령의 검,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없는 동안 한 분이 간증했다면서요?

몇 분이 간증했다면서요. 그 중 한 분이 오전에 저에게 찾아왔어요.

자기 난생 처음이래요. 자기는 대표 기도도 일주일 전부터 써야 한 대요.

그런데 목요일날 밤 11시에 전화가 왔대요. 내일 간증하라고.

이 분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대요.

 

다른 사람 있냐했더니 없다고 하더래요. 일을 마치고 늦게 왔대요. 교회에.

근데 성령님이 정말 생각을 뛰어넘어서 인도하는 걸 경험했다는 거예요.

성령은 계십니다. 저는 설교 준비한 것보다 호흡처럼, 주어진 성령을 신뢰합니다.

 

여러분도 들을 때에 성령을 의지하여 듣게 되길 바랍니다.

저의 신학적 경향에 걸려넘어지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듣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2천년 전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지는 것이 실제가 되고.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신. 그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성령충만 받으라는 말은 에베소서밖에 안나와요.

 

그런데 로마서, 고린도, 갈라디아, 에베소, 골로새 모든 성경에 세례가 무엇인가가 나옵니다.

뭐가 더 중요해요? 성령 받으라는 말보다 세례가 무엇인가를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왜냐면 세례는 예수의 죽으심과 같아서.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는 것입니다.

 

전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을 기대하진 마요.

저는 서론 본론 결론이 없는 인생이에요. 이렇게 마치려고 합니다.

좀 어색하고 거북할지라도 서론본론결론에 중독된 여러분. 여러분이 다시 짜세요.

멋있는 건 결론에 보내시고 애매모호한 건 본론에 넣으시고. 여러분이 다시 만드세요.

 

다만 지금 설교하는 중에 하나님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함께 듣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걸 확신합니다.

사탄이 있습니다. 사고도 많아요. 어려움 많아요. 사탄이 우리를 치는 거예요.

왜요? 좋은 일이 다가오니까. 여러분 좋은 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