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에 돌맹이가 없다면 겔 47:8~9 출처 '사랑하는 교회' 카페
10년 쯤 전, 청평의 어느 기도원 아래 1년간 셋집을 얻어 살았던 적이 있다.
화야산 계곡 하류의 좀 큰 개울 가, 날마다 방안을 채우는 물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깨었다.시냇물은 기도원을 찾아온 분들에게 봄엔 각종 나물로, 여름엔 다슬기로,
가을엔 토실토실 밤토실로 여벌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어디선가 오리들도 와서 하루 종일 집 앞 물에서 놀다 갔다.
먹거리 던져주고 반가워해 주는 내게 그 친구들은 하얗게 빛나는 생명(알)을 물속에 선사해주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대신 '밤 줍고 알줍는' 별미의 재미가 있었다.
물가에 앉아 생명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교향악을 온몸으로 음미하는 행복감을 누렸는데,
겨울에도 멈추질 않았던 선물은 시냇물의 연주였다.
시 23편을 느끼며 잠들었던 그 시냇물엔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았는데,
연주소리는 그 모나고 굴곡진 것들을 감싸 안는 물들의 사랑노래였다.
쪼르랑 또르랑~♬ 단순한 그 음률이 싫증 한 번 나지 않고 늘 새로웠다.
시냇물 세레나데! 모난 돌과 시냇물로 이토록 싫증나지 않는 협주곡을 만드시다니,
아~ 하나님은 얼마나 멋지고 솜씨 좋은 작곡가시며 연주자이신가!
물속 돌멩이들은 마치도 죄 다 주워내고 싶은 우리 기억의 시냇물에 잠긴 날카로운 상처이다.
혹은 내 삶에 개입하여 날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며 상황들이다.
이것이 없는 영혼들이 있을까? 이것을 안고 살고픈 영혼들이 있을까?
하지만 안다. 돌멩이들을 싹 주워냈을 때 시냇물의 노랫소리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요셉에게 보디발의 아내가 없었다면?
-에스더, 모르드개에게 하만이 없었다면?
-다윗에게 사울왕이 없었다면?
-스데반에게 바울이 없었다면?
-초대교회에 박해가 없었다면?
...............................
예수님이 이토록 우리 삶의 주제가가 되어있을까?
우리는 ‘정말 좋은 것’을 놓쳤거나 한 참 오래 후에 받게 되지 않았을까?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이런 돌멩이들은 어느 정도 허용이 된다.
하지만 탁월한 화가가 얼룩을 그림의 일부로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어 내듯,
날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그 때마다 그것들을 이용해 조경을 새롭게 하신다.
영성은 고통의 창조적 리모델링이다.
이후 완전한 영광의 영역에 속하기 전까지 이런 크고 작은 돌멩이들은 계속 삶속에 던져질 것이다.
하지만 안고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의 은혜에 의해 내면의 지형과 분위기가 새로워진다.
우리 마음의 시냇물엔 아픈 기억, 잘난 재능, 못난 무기력, 못 가진 자원, ‘너 때문에’, ‘하필이면 내게 왜?’ 라는 불만 등...
거치적거리는 각지고 모난 돌멩이, 바위들이 얼마쯤 채워져 있을 것이다.
물이 돌같이 흐른다면 무슨 소리를 낼까? 아무리 좋게 들어도 그야말로 락 음악(Rock Music)이겠지.
물은 물같이 흐른다. 상처에 찔려 ‘으아 죽겠네’ 비명 소리를 노래소리로 바꾸어 버린다.
그렇다. 많이 아파하며 깨닫고 보니 결정적 문제는 돌멩이가 아니라 물의 어떠함이다.
아무리 각지고 날카로움이 있더라도 상처 받는 대신 부드럽게 감싸고 노래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내 존재성 자체가 사랑이냐 아니냐가 문제의 결정적인 해답인 것 같다.
내게도 이런 물 같이 감싸는 사랑의 힘이 부족했음을 절감한다.
나무나 석유, 심지어 쇠도 태우면 존재자체가 연기로 사라지고, 바위도 가루를 내면 먼지로 흩어진다.
하지만 얼음을 녹여보라. 물로 존재한다. 물에 뜨거운 맛을 주어보라. 수증기로 존재한다.
구름에서 습기를 제거해보라. 다시 물로 모인다. 그 물을 이번엔 차가운 맛을 안겨 보라. 다시 얼음이 된다.
가장 연약한 듯 가장 낮은 데를 지향하는 물! 이것이 물의 힘이다.
그러나 그 밀도로 인하여 또 얼마나 강력한가? 이 연약한 것이 가장 무거운 쇳덩이를 가볍게 띄운다.
손으로 찌르면 아무런 저항 없이 물러나고 쪼개지지만, 손을 빼면 금방 ‘뭔 일 있었어요?’ 한다.
빽빽한 영광처럼 빽빽한 물 같은 고밀도의 사랑을 할 수 있기를.
세상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고 미움도 혀를 내두르고 물러가버리는 그런 사랑을...
이런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이 속성을 가지고 하늘비전을 완성해가는 것이 하나님나라이다.
존재적 변화 없이 기술적으로 문제를 제거하고 그 터 위에 꿈을 세워나가는 건, 땅의 나라요 자기왕국이다.
물 같은 사랑의 사람!
그는 가장 바보같이 사는 듯 한 데 수많은 생명이 그 가슴에서 살아가고 있다.
십자가의 바보란 이런 물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죽음이 죽일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예수님과 같은 사랑DNA 구조를 가진 예수형제, 예수가족들이다.
우주의 시초를 놓으시던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 !
태중의 생명은 어머니 몸의 양수를 요람 삼고 자란다!
물은 생명을 기르고 낳는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사망의 저주를 씻고,
성령님은 우리 안에 솟아나는 생명수 되어 영원한 생명을 낳고......!
사랑의 물길에 아픔도, 더러움도 다 떠내려간다.
천국에 공기가 있다면, 천국에 물이 흐른다면 그 성분은 ‘사랑’일 것이 틀림없다.
이 물을 마신 영혼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사랑의 춤을 추게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물은 성령님의 표상이요 솟아나 감싸고 흐르는 사랑과 생명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일은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 때문에 된다.
모난 돌멩이 같은 그 사람의 어떠함에 초점을 두지 말자.
포기하지 않고 그 영혼을 품어 물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을 두자.
물길은 흐르면서 넓어지고 깊어진다. 시냇물소리와 강물소리가 다르듯 물이 깊어지면 소리가 달라진다.
나 혼자 먹고 살기에도 힘겹던 옹달샘물이 불어나 개울물이 되고, 점점 불어 사랑의 시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온 민족과 열방 가운데로 흐르게 된다. 사랑의 노래도 더 깊어져간다.
바다 같은 사랑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마디 음성은 하나님이 발하시는 ‘많은 물소리’같은 무게를 갖는다.
주님을 마신 내가 주님과 같은 가슴이 되어 그렇게 물처럼 흐르기를.
성령의 사랑을 맛보지 못해 영혼의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감싸 안고, 품어
노래하며 흐르는 사랑의 물길이 되기를.
“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겔 47:8~9,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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