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지기의 삶
선교 구제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우리교회에서 하는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4월말이니까 5월부터 이제 또 하지요. 5월 둘째 주 쯤에 할 건데, 성도들이 특별헌금해서 가난한 성도들 2000만원씩 도와주고, 여러 가정을 돕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맨 처음에는 무조건 가난한 사람을 도왔어요. 지금은 안 가난해도 돕습니다. 물론 다 가난한 사람이지만 진짜 가난한 사람이 있고, 덜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옛날에는 진짜 가난한 사람을 도왔어요. 지금은 그렇게 안 합니다. 이게 우리 경험입니다. 진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두 사람 중에 신앙생활 똑바로 하는 사람. 가난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가난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똑바로 하는데, 과거는 잘못되었거나 어쨌거나 이것은 바르게 되려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이 똑바른데 그랬을 때에는 외부요인들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이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다른 요인들 때문에, 워낙 부모로부터 받은 게 없고, 또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다든지, 아니면 선한 의도로 다른 사람을 빌려줬는데 사기를 당했다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도와야 됩니다. 그냥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하고, 신앙생활 똑바로 안해서 가난하고, 그냥 교회만 다니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이런 건 도우면 안됩니다. 그럼 이런 사람을 전혀 안 돕느냐, 이 사람은 먹을 것만 주면 됩니다. 거액을 안 준다는 것입니다. 쌀이 없으면 쌀을 퍼다 준다든지 이런 정도로 주는 것이지, 진짜 어려운데 성도들이 한달에 20만원 준다든지 이런 정도까지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거액을 주면 안됩니다. 교회를 도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어려운 교회는 그런 식으로 돕는 거예요. 몇 십만원 준다든지, 그런데 거액은 주는 게 아닙니다. 진짜 어떤 교역자가 먹을 거 없이 배곯고 있는데 이 목회자는 바르지 않아 그러고 안 돕는 게 아니고, 이런 거는 조금씩 돕는 겁니다. 십 만원 단위로 조금씩. 그러나 천만 원 단위로, 억 단위로 돕는 것은 상대가 바른 사람인 경우에만 돕는 거예요. 여러분, 선교 구제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제가 돈을 관리하면서 오랜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입니다.
옛날에 여러분 들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교회를 개척하고 작은 교회를 하면서 20-30명 될 때도 한 달에 100만원씩은 다른 교회를 도왔기 때문에 그 때 난 큰 교회들이 이해가 안 갔어요. 저렇게 큰 교회들이 목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수없이 많은 다른 목사들을 도울 수 있고 교회들을 도울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생색만 내고 10만원만 돕고, 20만원만 돕고, 왜 이렇게 짜고 왜 이렇게 자기중심적일까? 물론 그런 문제가 있어요. 실제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예요. 교회 안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크게 드러나고, 그러면서 큰 교회들이 생색만 내지 진짜 형제애를 가지고 돕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거예요. 예외적인 교회도 있지요. 그걸 보고 내 마음이 너무 상했어요. 그래서 ‘주님,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우리 하는 거 보세요. 주님, 우린 하잖아요. 나 믿을 수 있잖아요, 주님. 주님, 나에게 돈을 주시면 가난한 교회 다 돕겠습니다.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가난한 교회 막 도와주고, 가난한 목사들 막 도와주고, 가난한 성도들 엄청 도와주고 하겠습니다.’ 난 주님이 되게 기뻐할 줄 알았어요. 주님이 기뻐하시는데, 되게 기뻐하진 않으셨어요. 그 마음을 기뻐하는데 책망하셨어요. “너는 그렇게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에게 경제적인 복을 주면 그냥 가난한 성도, 가난한 교회들에게 막 도와주는 게 내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네가 나의 청지기가 되기 원한다. 나는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를 도와주지 않아야 될지를 알고 있다. 어떤 자들은 그런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 된다. 어떤 자들은 그런 어려움을 통과해야 된다. 그것은 그들이 자처한 것이다. 내가 그를 축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준 돈으로 그를 막 도와주는 게 그게 어떻게 내 일이냐? 그것은 기만히 쓰는 것이지. 그것은 얄팍한 알량한 인간의 자비지.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선교를 하고 구제를 할 때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내 음성을 들어야 된다. 그냥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끌리면 안된다. 그냥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지고 상대들이 당하는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이것만 보고 막 도와주는 이거 안된다. 선교하고 구제할 때는 반드시 내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 인도를 받아야 된다.” 그래서 제가 놀라울 정도로 잘 도와주고 놀라울 정도로 거절을 잘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으면 안 돕습니다. 또 성령의 승인이 떨어진 이상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저기해도 안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건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볼 때는 내가 인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니까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아무개 목사, 어느 교회 얼마를 도와줘라. 그게 꼭 음성으로 들리는 게 아니지만, 내 영에 공명이 되어서 ‘이게 하나님 뜻이구나.’ 내 영으로 확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가 책망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그랬잖아요. 로마서 14장에. 내 영이 나를 책망하면 안됩니다. 내 양심이 나를 책망하거나 ‘너무 과하게 줬어. 너무 인색하게 줬어.’ 이러면 안됩니다. 그것을 일일이 다 귀로 들리는 음성으로 듣는 게 아니고, 내 영에 ‘이게 적당하다. 이 정도 도와주면 맞다. 이 정도 지원해 주는 게 맞다.’ 영에 오는 게 있습니다. 그 이상을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그것은 선교 구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월권입니다. 하나님이 청지기인 나에게 맡겨준 돈을 가지고 월권을 하는 것입니다. 지 멋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셈할 때 책망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나 구제할 때 항상 신경 쓰는 게 성령께서 도와주려고 하나 말라고 하나. 뭐 도와달라고 그러든 말든 상관안합니다. 도와달라고 안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도와달라고 그래도 철판 깔고 안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도와달라고 그러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께서 이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면 도와줍니다. 그 다음에 얼마를 도와주라 그러나. 얼마에 감동을 주시고, 얼마에 편안한 마음을 주시나, 얼마의 금액에 내 영이 공명을 하는가. 그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그것 가지고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게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목사는 교회 재정을 관리하면서 반드시 청지기가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도울 때도 어려운 교회라고 돕고 이거 아닙니다. ‘우리 친척 교회는 작은데 십일조를 거기로 보내면 안될까요?’ 그것은 월권입니다. 그건 선교 구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제 넘은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에요. 구제하고 싶으면 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본교회에 드릴 것 드리고 나머지에서 쪼개서 해야 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선교 구제라는 것으로 합리화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교 구제할 때에는 하나님의 원칙(십일조, 일반 헌금은 본교회에 드린다)을 지켜야 되고, 그리고 다른 재정에서 도울 사람 있으면 돕는다. 그 다음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교회다 그러고 돕는 거 아닙니다. 어려운 목사님이다 그러고 돕는 거 아닙니다. 그런 값싼 동정심에 이끌려 다니는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정직하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믿고 재정을 맡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예전에 신디 제이콥스의 예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신디 제이콥스가 저에게 재정에 대해서 엄청난 예언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도와주고 싶은 교회도 많고, 세계적으로 선교사 파송하는 것, 고아원이든 신학교든 목사님이 꿈 꾸고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재정이 올 것이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냥 몇 백억이 온다 이런 예언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원하는 모든 일을 마음껏 다 할 수 있는 그런 재정이 올 것이다. 큰믿음교회에 사업가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헌금을 하게 될 것이고, 아무튼 어마어마한 재정이 오게 될 것이다. 그냥 큰 돈 이게 아니라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재정들이 오게 될 것이다.” 이게 중요하다고 이걸 꼭 기억해 두라고 두 번씩이나 경고하면서, 이걸 반드시 기억해 두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엄청난 재정을 부으려고 할까요? 그건 내가 선교와 구제를 어떻게 해야 될지를 알기 때문에, 내 속에 돈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심이 없고 청지기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저는 우리교회 들어온 돈이라고 내 돈이라고 생각 안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몇 십억이든지 전체든지 어디든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면.
그 다음에 값싼 동정심에 의해서는 구제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거절도 잘 하고, 거절 못하는 사람은 청지기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이에요? 자기 꺼에요? 거절을 못하면 안됩니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들, 동정심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게 어떻게 청지기가 되겠어요, 거절을 못하는데, 달라는 대로 다 주는데. 그렇지 않아요?
청지기가 되려면 긍휼만 갖고 되는 게 아닙니다. 분별력이 있어야 되고, 단호해야 되고, 거절도 잘해야 되고, 순종도 잘해야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순종도 잘해야 됩니다. 여러분, 청지기 되는데 관심있는 사람들 많지요? 능력받기 원하는 사람도 많지만 마지막 때 일터사도들이 일어나게 되고, 그 다음에 세상의 부가 교회로 들어옵니다. 그런 통로들로 쓸 사람들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데에 정말 쓰임받기 원한다 그러면 지금 제가 전하는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갖춰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재정 문제에 대해서 그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색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사랑이 많고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청지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돈 가지고 자기 맘대로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신뢰할 수 있어야 재정을 받는 거예요.
여러분, 신디 제이콥스가 그 예언 하고 난 다음에도 우리교회가 그 뒤로도 얼마나 부흥하고 재정에서도 그 때에 비해서 엄청 부유해졌지요. 그 때에 비해서 헌금도 엄청 많이 나오고 그런데 이것은 시작도 아닙니다. 지금도 몇 백억씩 오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게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큰믿음교회에 엄청나게 부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신디 제이콥스가 예언한 것처럼 재정을 엄청나게 부을 거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슨 교회가 돈이 저렇게 많아, 무슨 교회에 돈이 저렇게 들어오나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세계적으로 이제 막 부으실 것인데, 왜냐하면 재정 문제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도 성도님 중에서도 청지기가 되기 원하시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원리를 꼭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성령님은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여러분, 설교대회를 5월 중에 한 번 하려고 하는데, 지금부터 설교 준비들 하셔요. 또 1년에 두 차례씩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재를 발굴해야 됩니다. 하나님만 딱 알지 우리는 모릅니다. 사무엘도 몰라보고 엉뚱한 사람에게 기름부으려고 했는데,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얼굴만 보고.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열두 제자 뽑을 때 산에 올라가서 밤새 기도하셨잖아요. 철야 기도하고 열두 명 알아보고 뽑았잖아요. 나는 예수님처럼 철야도 못해요. 예수님이 철야 하셨으면 나는 한 40일 금식해야 알아보지 않겠어요? 정말 인재들을 발견해서 훈련시켜서 키우려고 하면 설교대회를 꼭 해야 됩니다.
오늘 제가 차타고 오면서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데, 이런 주제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여러분들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있고, “그 때 할 말을 주실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을 주실 것이다 그런 말씀을 했어요. 그냥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고 의지적으로 하는 생각이 있고, 그냥 주입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물론 마귀가 주입시키는 생각도 있습니다.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가룟유다에게 집어넣었더라.” 그런 것은 분별해야지요.
생각이 음성입니다. 첫째, 생각은 자기 영의 음성입니다. 자기 영이 생각을 통해서 말을 합니다. 내 영이 생각을 통해서 스스로 얘길합니다. 그 다음에 귀신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들 얘기에요. 그러면 가룟유다 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던 것처럼, 생각을 집어넣어 줍니다. 그게 정욕적인 생각이든, 탐욕적이니 생각이든, 명예욕에 대한 생각이든, 시기하는 것이든, 질투하는 것이든, 원망하는 것이든, 불평하는 것이든 귀신도 주로 생각을 통해서 말합니다. 귀신이 여러분에게 들리는 음성으로 한다 그것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성령님도 주로 생각을 통해서 말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종교적인 목사들은 이해 못하는 것은 너무 무식한 것입니다. 성령이 말씀했다는 것을 너무 신비적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런데 변목사는 어째 저래 성령께서 말했다고 하냐, 직통계시 이단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 스스로 착각해서 소설을 쓰는 거예요. 내가 듣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설교할 때, 또 어느 때 성령께로부터 들었다고 말씀하는 건 그게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하는데 문맥에 보면 그 방식이 마땅히 할 말을 줄 것이다, 혹은 지혜와 구변을 줄 것이다, 혹은 그 때 뭘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성령이 말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왜 생각을 성령이 말씀했다 그럽니까?’ 성경에서 그걸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썬다 싱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각을 통해서 말씀한다.’ 그렇게 말했고, 플레이드 맥클랑도 ‘하나님은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찰스 피니도 ‘하나님은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러분, 이게 기독교 성현들의 경험이고 성경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걸 이해 못하는 총회장이 이상한 것이고, 그걸 이해 못하는 이대위 위원들이 이상한 것이고, 교단들이 어둡고 수준이 낮고 이상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생각을 통해서 성령님이 자기에게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오늘 제가 설교대회에 대해서 나눈 것이 그런 것입니다. 또 오늘 제가 준비되지 않은 설교에 대해서, 설교는 어떤 것이다. 충격적인 거에요. 강해설교는 설교가 아니다. 상상도 못할 말이잖아요. 그런데 성경적으로 설교가 분명하게 어떤 것인지, 그게 맞는 말입니다. 강해설교는 성경공부지 설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말하는 거예요? 영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통해서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는 것을 그 시간에 듣고 말하는 거예요. 설교대회에 대한 것도 내가 구상한 게 아닙니다. ‘아,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겠다.’ 구상한 게 아니라 성령께서 생각을 통해서 내게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환상만 보는 것 가지고 안됩니다. 입신한다 그러면 제가 좋아하는 줄 아는데 안 그럽니다. 난 누가 입신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경계심부터 확 갖습니다. ‘이거 가짜 아니야? 이거 교만한 자 아니야? 이거 영적으로 혼탁한 자 아니야? 속는 자 아니야?’ 그런 사람이 입신하는 사람 중에 많기 때문에, 입신하는 자 중에 바르게 들어가는 자는 아주 드물기 때문에 경계심부터 확 갖습니다. 이번 데이비드 집회 때 봤다고 나오는 사람 보세요. 그게 제대로 본 거예요? 성부, 성자, 성령 들을 때부터 ‘아, 저거 혼탁하구만.’ 무슨 예수님이 데이비드 옆에 서고, 성령님이 옆에 서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데이비드가 뭔데, 딱 들어봐도 잘못 보는 사람이고 양신 역사하는 거지. 나는 입신 들어간다고 다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입신으로 받으려고 하면 큰일납니다. 데이비드를 통해서 확인을 했잖아요. 하나님이 입신의 역사를 이루고 잘 분별해서 제대로 들어가는 건 좋지만 입신했다고 해서 혹 할 것도 없고 입신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특별하게 볼 것도 없습니다. 한 개도 안 특별합니다. 나는 입신하는 수많은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기도해서 입신하는 많은 사람을 보았습니다. 한 개도 안 특별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 분별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되지만, 제일 정확한 것은 입신이 아닙니다. 입신이 바르게 들어가지 못하면 제일 혼탁합니다. 제일 위험합니다.
그 다음에 환상, 예언이 아닙니다. 이것도 입신 정도는 아니라도 혼탁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또 제대로 훈련받지 않으면, 겸손하지 않으면, 말씀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속을 수 있고, 얼마든지 마귀가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런데 제일 정확한 게 뭐냐,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깜짝 놀랄지 모르지만, 제일 정확한 것은 입신이 아닙니다. 제일 정확한 것은 환상도 아닙니다. 예언도 아닙니다. 제일 정확한 것은 성령이 속에서 말씀하는 것,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내 아버지의 성령이니라.” 내가 말하는 생각은 성령께서 속에서 말씀하는 것을 포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생각 자기 생각 말고 귀신이 집어주는 생각도 말고, 쓸데없이 떠도는 상념들 말고. 이게 제일 정확합니다.
그래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내적증거, 바로 거기에 관한 것입니다. 영의 증거, 그게 바로 거기에 관한 것입니다. 뭘 보고 듣고 이런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목회하면서 제가 무슨 성령신학교에 대해서 무슨 설교대회나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차타고 오다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좀 끄적거리고, 뭐 검토를 합니까, 무조건 합니다.
영에서 나오는 생각만큼 정확한 게 없습니다. 제 여지껏 경험으로 보면 입신이니, 환상이니, 예언이니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에서 나오는 그런 생각, 바꿔 말해서 성령께서 내 영에 말씀한 것, 영에 착 달라붙는 생각,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영에 착 공명이 되면서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는구나. 성령을 통해서 나에게 이렇게 지시하는구나. 가르쳐주시는구나.’ 이게 영에 자연스럽게 공명이 되는 거예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이런 생각, 이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성경 빼놓고. 저는 그런 게 오면 무조건 합니다. 교회 일에 대해서도, 신학교에 대해서도, 교단 일에 대해서도, 뭐에 대해서든 그런 게 나에게 오면 무조건 합니다. 또 그런 게 나에게 오면 아무에게도 안 물어봅니다. 변목사님에게도 안 물어보고, 김옥경 목사님에게도 안 물어보고, 밥 존스 목사님에게도 안 물어봅니다. 그건 정확한 거예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걸 개발을 해야 됩니다. 신앙생활하면서도 그걸 개발해야 됩니다. 이게 중심이 딱 서 있으면서 환상을 봐야 됩니다. 이게 없으면서 환상을 보니까 별 오만 잡동사니를 다 봐가지고 안되는 겁니다. 이게 딱 중심이 되 있으면서 예언을 해야 됩니다. 이게 딱 중심이 되 있으면서 입신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정확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똑바로 안되고 입신하면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뭘 보고 온 건지 모릅니다. 예수를 만난 건지, 다른 예수를 만난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되어야 됩니다. 이게 영분별의 기초가 되고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잘 들으세요. 신앙생활이 뭐예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이것입니다. 성경 말씀 듣고 따르라는 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당연히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대로 사는 게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날마다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 성경말씀대로 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쳐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들을 놓쳐버릴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가면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거 중요한 얘기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아라. 그래서 이 사람이 광야에서 이 말씀대로 삽니다. 계속 이 말씀대로 삽니다. 이 사람은 가나안을 놓칩니다. 이 사람은 천국은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가나안은 놓칩니다. 사역도 놓치고, 기업도 놓치고. 광야에서 아무리 말씀대로 살아봐요. 어떻게 가나안 땅을 들어가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기 원하는데, 율법 지키는 거로는 가나안 땅을 못들어갑니다. 말씀대로 사는 거로는 가나안 땅 못들어갑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들어가요?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가야 들어갑니다. 율법, 십계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불기둥, 구름기둥을 따라가야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이 종교화 되가지고 말씀대로 사는 게 신앙생활 되버렸습니다. 이게 강해설교, 제자훈련하는 교회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예견할 수 없는 일은 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주신 기업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주신 그런 사역이 없습니다. 보세요. 강해설교, 제자훈련하는 교회들의 특징이 뭐냐, 기적이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말씀대로 살 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야 됩니다. 기적은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 갖고 탁 친다고 갈라져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할 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반석을 칠 때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그 다음에 기적이 어디서 일어나요?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그 곳에서만 일어난 것입니다. 광야 전역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시내산 근처에 있으면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고, 그것이 여리고 가까이 오면 거기서 일어나고. 이해하십니까? 다른 데서는 안 일어나는 거에요. 아무리 말씀대로 살아도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바꿔놓았습니다. 교회가 크니까 헌금 많이 나오고 빌딩 짓는 거 그게 무슨 기업입니까? 그것은 회사 사업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 멤버스 늘어나고 돈 많으면.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 교회를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초자연적인 기업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주기를 원하는, 교회 크면 뭘 짓고 이런 게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업들, 그 다음에 하나님이 그 교회를 통해서 일으키기 원하는 초자연적인 사역들, 이런 것은 성경공부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불기둥, 구름기둥 쫓아가야 되는 것처럼 그래야 기업을 얻고 불기둥, 구름기둥이 머물고 인도하는 그 곳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반석에서 물 안나옵니다. 거기서만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데는 하늘에서 만나가 안 내려옵니다. 거기서만 만나가 내려오는 것입니다. 거기서만 옷이 안 닳습니다. 딴 데 광야에 있는 사람들은 옷도 신발도 다 닳습니다. 우리가 종교적이 되면 이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 나오는 것, 만나 내려오는 것, 옷이 안 닳는 것, 전쟁에서 이기는 것,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기업을 얻게 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게 한국교회 다수의 교회들이 갖고 있는 증상입니다. 광야에서 십계명만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하고 말씀대로 살고 봉사하고, 이게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여전히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적으로 중요한 게 뭐예요? 성경공부하고, 말씀대로 살고, 봉사하고 단순히 이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음성하고 주님하고 떨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음성을 아는 것,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거예요. 성경을 이해하는 게 아니고 주님을 아는 거예요. 이걸 아셔야 됩니다. 요한복음 5장 39-40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을 아는 게 영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아는 게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그분의 음성에 익숙해지는 것, 그분과 친밀해지고, 그분의 음성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을 따르는 것, 이게 신앙생활의 정수라는 것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가 뭐 강해설교 잘하고, 제자훈련 잘하고, 뭐 프로그램들 무슨 학교, 무슨 학교 하고, 이런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목회자는 성도보다도 주의 음성을 더 정확하게 잘 듣는 것, 단순히 설교 잘 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음성을 정확하게 잘 듣는 것, 그리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주님이 원하는 대로, 주님이 지시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게 목회를 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이해 되셔야 됩니다. 괜히 제가 시간 끌고 있는 것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잘 듣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이 어떻게 들리느냐? 생각을 통해서 들립니다.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그냥 눈에 막 보이고, 물론 그런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게 아니고, 우리 속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내 아버지의 성령이니라.” 내 속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바깥에서 말씀하면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이고 꼭 그래야 될지 모르지만 내 속에서 말씀하기 때문에 말이 필요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소리가 필요 없을 수 있습니다. 속에서 말씀하기 때문에 아무런 그림이 필요 없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 바깥에 있는 게 아니고 내 영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내 영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영에게 직접 말씀하기 때문에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영에게 직접 개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육신의 껍데기에 쌓여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저 사람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말해야만 압니다. 천국에 가면 육신이 있어도 이게 신령화된 것이고, 영과 영의 본질적인 만남과 하나님을 만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 변승우입니다.’ 말 안해도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가 변승우인 것을 압니다. 영과 영으로 교제가 되기 때문에 거기서는 입을 열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이것이 영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주된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영계의 가장 주된 의사소통 방법은 환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환상이 없다는 게 아니고, 영계의 가장 주된 의사소통 방법은 입신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방언 통변도 아니고, 영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 방법은 생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 생각이 상대한테 가고 상대의 생각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말도 없고 보이는 것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게 천국의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거나 천사를 만나거나 모세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그분들이 다 입 열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대화가 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내 아버지의 성령이니라.” 말씀하시는 자,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생각이 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들었다, 성령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걸 말하는 게 아니고, 무슨 특이한 체험을 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것은 실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나에게 말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목사들이 이해를 못하고 신학자들이 이해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게 없는 게 잘못이지, 그것은 활성화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얘기를 하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과 교제해야 되는데, 내가 성령님과 교제해야 되는데, 예수님과 교제해야 되는데 어떻게 교제하는가? 그 방법입니다. 생각입니다. 이것이 가장 대표적인 하나님이 우리하고 의사전달 수단으로 이것이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맨 처음에 미숙할 때는 이게 내 생각인가, 이게 주님이 말씀하신 건가, 이게 사탄이 준 건가 의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자꾸 들어보면 그러면 각 사람의 음성에는 음색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귀신의 음성에도 음색이 있습니다. 내 영이 말하는 것에도 음색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님이 말하는 것에도 음색이 있습니다.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음성을 한 번 듣고 몇 번 듣고 그러면 그 사람 음성을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의 음성을 듣기 때문에 그냥 파묻혀져 버립니다. 그런데 가족들의 음성, 엄마라든지 아버지라든지 부부라든지 자녀라든지 음성을 자꾸 듣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음색, 그 사람의 음성의 특징들이 각인이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음성을 딱 들으면 그냥 아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심지어는 예전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익숙해지면 분별이 필요없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랍니다. ‘들은 음성을 다 분별해야지, 분별이 필요없다면 듣는 대로 다 믿으면 뒤죽박죽되지.’ 그건 영의 세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익숙해지게 되면, 지 마누라 음성인지 아닌지 확 아는 것처럼, 나중에는 어떤 생각이 딱 올 때 이게 내 생각인지, 귀신이 속이려고 주는 생각인지, 성령의 음성인지를 분별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그냥 안다고요. 바로 안다고요. 1초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요. 성령이 주셨구나. 성령님이 말씀하는구나. 내가 차 안에서 들으면서 다른 얘기도 많이 하고 다른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왜 이것만 붙잡겠어요? 수양관에서 여기 올 때까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왜 이것만 얘기해요? 다른 생각은 만고 내 생각이니까, 그런데 이 생각이 딱 오는데 즉각 아는 거예요. 성령님이 나에게 지금 뭘 말하고 있구나. 성령님이 지시를 하고 있구나. 그러면 그것은 내용 살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진짜 말하는 분이 성령이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게 제일 정확하다는 거예요. 환상을 보는 것보다, 입신을 하는 것보다, 예언보다, 어떤 국제적인 선지자가 예언하는 것보다도 이게 제일 정확하다는 거예요.
이 말을 또 기억하세요. 우리는 선지자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는 성경이 완성되지 않고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성경만 얘기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야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지자를 통해서 확증을 얻을 수는 있지만, 선지자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나온 것처럼. 그러면 이게 또 검증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는데 성령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그 성령이 어디 있어요? 내 머리 위에 있는 게 아니고, 옆에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에 영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옴으로써 우리가 천국이 되었습니다. 더 검증을 시켜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천국이 되었습니다. 내 영 안에 천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내 영과의 통화는 지상의 방식으로 되는 게 아니라 천국의 방식으로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생각과 생각으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과 생각으로, 바로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면서 천국이 내 영 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나의 영과의 통화는 하나님이 환상이라는 것을 방편으로 삼을 수도 있고, 예언을 방편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방언 통변을 방편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영과 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과의 주된 의사교류는 바로 영과 영으로 직접 통하는 그런 생각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사역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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