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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함 / 데이빗 윌커슨

LNCK 2018. 7. 5. 09:47

 

◈온전함                        스크랩

데이빗 윌커슨

 

◑당신은 예수님께 돌아왔던 1명의 문둥병자인가?

      

어떤 이들은 아예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죽은 종교를 더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 "고등 종교의식"들의 형식주의와 허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 그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은 그 장기간의 정결 의례를 통과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종교적인가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사실,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대단한 의식입니까?

 

보세요. 먼저, 제사장이 두 마리의 새를 취하여, 흐르는 물위에서 잡고,

피가 물위로 떨어지게 합니다. 그리고는 우슬초를 백향목 패들(40 cm)에 묶어서

이를 진홍색의 실과 함께 살아있는 새를 향해 흔듭니다.

그리고 이 새의 날개와 꼬리를 피와 물에 담그게 됩니다.

 

이 피는 깨끗해진 문둥병자의 이마와 손목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리고 나서 그 살아있는 새는 공중에 날려 보내줍니다.

이제, 문둥병자는 자신의 옷을 빨고, 그의 모든 털을 밀고 몸을 씻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진안에 들어 올 수가 있었지만,

아직 7일 동안은 장막 밖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제 팔 일에, 그는 두 마리의 숫양과 한 마리의 흠 없는 암양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돌아옵니다.

그는 또한 10리터의 밀가루와 반 리터 정도의 기름을 가져와야 합니다.

이들은 속건죄와 속죄죄 또 번제를 위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 오일을 자신의 손바닥에 붓고, 땅에 일곱 번 뿌립니다.

리고는 양에서는 피를 취하여 정결하게 된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우편 엄지손가락과 우편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이제 제사장은 오일을 앞에 세 부위에 다시 바르고, 남은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붓습니다.

 

이 얼마나 의식적인 행위들입니까?

이 문둥병자들도 자신들이 무척 종교적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름을 바르고 붓고, 피를 뿌리는 정결 의식들은

몇 가지 무척 중요한 것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의 의미를 빼고 나면 이것은 모두 죽은 의식에 불과합니다."

 

이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에 치유하심을 받고 왔지만, 다시 죽은 의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자존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교회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다시 물질적인 기복신앙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이들은 결코 주님을 다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이들을 이러한 형식주의로 돌려보냈습니까?"

라고 물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이들을 돌려보내신 이유는

이 의식들 배후에 있는 실재를 알게 됨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배고픔을 얻기를 바라셨다고 생각합니다.

 

정결 의식을 행할 때 그 앞에 "흐르던 물" -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물'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피를 뿌림" - 예수님께서 '내가 피를 흘리며, 십자가에 달리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죽임 당한 어린양" -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여러분, 이스라엘에는 이러한 제의들 각각의 의미들을

이들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에게 설명해주는 제사장은 없었습니다.

결국 문둥병자들은 이 제의들을 기계적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 문둥병자들이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의를 통해서 그들이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부를 때에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모든 진리를 가지신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이것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은 오늘날 교회에 앉아서

자신들조차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목회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수많은 가난한 영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영혼은 메마름과 지겨움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점점 이런 신앙생활에 싫증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니, 예수님께서 나를 이렇게 자리에 앉아서

그저 뭔가 아는 것처럼 시늉만 하는 목자 밑에서 메말라 죽으라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말인가?

나에게 진실을 보여달라. 나에게 예수를 달라 !"

      

왜 매 세대마다 열정과 감사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달려오는 "한 사람"이 있을 까요?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자

돌아오는 자를 주목하시는 걸까요?

나머지 90%는 계속해서 형식과 복잡한 절차를 통과하고 있는데요.

 

저는 그 사마리아인이 형식과 제의들에 묶여있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믿습니다. 그는 사실 그 모든 형식을 버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정통' 유대인으로 자라왔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제의와 예식에 길들여졌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그 전통에 묶여있는 것입니다.

 

러나 이 사마리아인이 이 모든 종교적인 예식을 보았을 때, 그는 소리쳤습니다,

"이게 아니야!!"

      

그는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예배 참석자들의 허식을 보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이 과부들에게서 부당하게 돈을 빼앗고,

그들의 집을 가로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이 뇌물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드는 환전상들이 성전에 가득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율법사들이 일반 백성들을 위해서 법을 만들지만

자신들은 조금도 지키지 않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는 위선자들, 겉만 번지러한 철면피들, 이중 인격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리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이건 꼭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꼴이군!

이건 내게 도움이 안 돼, 내겐 뭔가 진정한 것이 필요해!"

 

이 사마리아인은 다른 아홉 명과 함께 마을로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제사장에게로, 교회로, 사회로, 인간의 존엄성으로, 행복한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합니다.

"잠깐만! 과거에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소유했을 때를 기억해보자.

내가 돈과 명예와 안정을 다 소유했을 때, 내가 행복했던가?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그 아끼던 친구들도 '내가 문둥병에 걸린 것 같다'는 한마디에

모두 고개를 돌렸지 않은가? 나의 삶은 죄악 된 습성들에 젖어 있었고,

마음속엔 미움과 쓴 뿌리가 가득했어. 나의 삶은 공허했고, 생지옥과 같았어.

왜 내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는 그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나 자신을 봐. 이젠 난 깨끗해.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어. 교회에 가보는 것,

잠시 늦출 수 있지 않은가? 나의 가족들은 날 언제나 기다려 주었는걸.

그리고 새로운 삶도 좀 미루어 두자. 지금은 예수님께로 가야해.

난 나를 고쳐주신 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겠어!"

그는 결국 이제까지 역사 속에서 모든 마지막에 남은 자들이 얻었던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저 쪽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전혀 없어! 그저 허상일 뿐이지! 나는 예수님께로 가겠어.

그분이 바로 나의 실상(reality)이 되실 분이시거든"

그 남은 한 사람의 문둥병자는, "영광!"

그의 중심에서 솟아나는 찬양을 결코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달려와 엎드려, 온 맘과 힘을 다해 소리 높여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만일 누군가 여기 이 사마리아인처럼 예수님께 경배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분명 결코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간단 말인가?

이 예수님이야말로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실 분이 아니신가!"

 

저는 이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예수께서 산으로 가시든 해변으로 가시든

거기 모인 무리의 맨 앞에 그 깨끗함을 받은 사마리아인이 앉아있습니다.

 

그는 외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하나님께 영광을! 당신을 찬양합니다!"

저는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듣는 듯 합니다.

"예수여, 나를 같이 데려가소서!" 그리고, 저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그의 모습 또한 상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이 감사로 가득한 문둥병자가 절대 갖지 않았던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류가 알지 못했던 잠재적 능력입니다.

 

4년마다, 1월이 되면, 미국에서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의 수장인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있습니다. 그의 서명은 곧 법이며,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통솔하며, 그가 그저 버튼 하나를 누름으로서

모든 나라들을 파괴시킬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능력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능력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그분이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절대적인 통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1:19-22).

 

그 한 명의 문둥병자는 이런 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 능력은 성전의 휘장이 둘로 갈라진 후에 온 것이니까요.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 나아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절의 "담력" 이란 말은 "활짝 열어,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드러냄"은 마귀들의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마귀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또 하나님께서 내게 오시는 특권을 얻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나아오시는'

이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 여러분, 이제 믿음의 확신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새나 염소나 황소의 피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리 주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9:12-14).

 

하나님의 자녀가 겁내지 아니하고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그 순간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감격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아와 "나는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만일 나의 마음이 나를 정죄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보다 크십니다!"(3:20 참조).

      

이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두 번째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를 온전케 만드셨다"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19).

 

이때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병에서의 치유 이상의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까지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도 하나님께서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 온전함!

 

저는 이 한 명의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깨끗함을 입은 아홉 명의 친구들을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들이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아마 아홉 명은 모여서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맞이해야 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아내들은 다른 이와 결혼했고,

아이들은 부끄러움에 이들을 모른척했으며 오랜 친구들은

아직도 그들을 이방인 취급하였습니다.

다시금 정상인의 생활에 적응하기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막 돌아온 이 사마리아인 친구를 바라봅니다. "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자네는 우리의 병을 고쳐준 갈리리 사람 예수를

아직 기억하는가? 도대체 그분에게 어떤 일이 생긴 거지?

아니, 그리고 자네는 왜 이렇게 행복한가?"

 

그는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난 예수님과 어제도 같이 있었다네. 난 이제 그분을 따르고 있지.

난 그분의 제자고 그분이 바로 나의 선생님이시라구.

난 자네들처럼 새 삶에 적응하느라 문제를 겪은 적도 없고,

나의 가족들이 나를 모른다해도 또 내 친구들이 나를 버려도 내겐 별 문제가 아니네.

예수님께서 나를 받아 주셨는걸!"

 

"여보게 형제들, 내가 그 비밀을 알려 줄까? 난 하나님과 동행한다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할 바를 가르쳐주시지.

난 지금 '천막 만드는 사람'이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은 나의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네!"

 

아마 그는 그 나머지 아홉 명에게 그와 같이 예수님께 가보자고 초청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그를 실망시켰을 것입니다. "미안하네, 우리는 요즘 일주일에 3일은

율법공부를 해야해. , 요즘 우리는 그 '메시아'가 언제쯤 오실지에 대해서

중대한 논의를 하고있는 중이라서 같이 갈 수 없겠는걸."

그들은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이미 그분을 놓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 그 한 명의 사마리아인은 다시 떠나갑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는 노래를 부르며 갑니다. "내 마음에는 한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는 천사도 부를 수 없는 노래랍니다. 구원받았네! 구원받았네!"

그는 그를 온전케 하고 자유케 하는 구원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이 한 명의 문둥병자 보다도 더 커다란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린 문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이리 오렴, 너는 깨끗케 되었단다. 이것을 믿고, 담대히 살려무나.

리 와서 그리스도를 만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