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캐리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다 히13:13 출처
◑1. 구두 수선공이 위대한 Vision의 선교사로
1761년 햇볕이 따사로운 8월의 어느날 영국의 노스햄턴셔의 작은 마을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렸습니다. “응 애!”
그것은 윌리엄 캐리가 하나님나라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울음소리였습니다.
캐리는 어려서 꽃과 나무와 새 그리고 곤충을 벗하며 자라난 전형적인 촌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주특기는 나무타기였습니다.
그는 공부에 대한 욕구도 강했습니다.
당시 문맹률이 매우 높던 시절, 그는 끈질긴 도전정신으로 글을 깨우쳤습니다.
더 나아가 외국어인 라틴어와 헬라어에도 손을 대었습니다.
고교를 졸업한 후 캐리는 아버지의 압력으로 구두수선공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두 발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구두수선은 유망직종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평생 신발만 어루만지다 죽을 팔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의 팔자를 고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779년 캐리가 19살 때, 한 기도모임에서 히13:13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는 이 한 말씀을 통해 그동안의 세상과 타협하여 살던 뜻뜨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능욕을 받고자하는
분명한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다른 어떤 학문보다 성경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그의 목표는 구두공장 공장장에서 예수님의 선전부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이끄는 영적 부흥운동이
전 영국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세계선교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비레인 교회에서 목회에 전념하고 있던 캐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캐리가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 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인생을 바꾸어 놓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쿡선장은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며 태평양의 알려지지 않은 섬들과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삶에 대해 자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문명의 혜택을 못 받아 옷도 헐벗고 (아니면 더워서) 살아가는 부족,
사람을 먹는 풍습을 지닌 부족 등...
그리고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유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 책을 읽고 있던 청년 캐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맥박은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케도냐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내가 여기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결단했습니다.
그때부터 캐리는 세계지도에 이미 알려진 나라의 인구, 종교등을 표시하며
선교지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도는 그의 기도목록이었습니다.
그는 세계지도를 꼭 껴안고,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교회는 캘빈주의의 영향으로 선교운동에 눈을 돌리지 않았으며,
선교는 예수님이 사도들에게만 주신 특별한 사명으로 국한 시켰습니다.
세계선교에 눈을 뜨게 된 캐리는,
교회안의 무감각한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워야겠다고 방향 잡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들의 모임에서 캐리는 해외선교에 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자 한 원로목사가 일어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그만 열내고 자리에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려고 한다면
자네나 우리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으실 걸세.”
이것은 그의 선교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캐리 안에 불붙은 세계선교에 대한 vision과 성령의 불은
더욱 크게 타올랐습니다.
캐리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의 유언적 명령이 곧 우리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1792년 봄 그는 <이교도 개종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책을 통해 세계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이 책은 루터의 95조항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세계선교열풍을 전 유럽으로 확산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후 캐리는 침례교회연합회 모임에서
이사야서 54:2,3 ‘네 장막터를 넓히라.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항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곳이 되게 할 것임니라’는
말씀을 전하며, 간절한 기도 가운데 여러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비젼을 심었습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나와 당신을 통해 위대한 세계선교의 역사를
이루실 때인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시도하라 했습니다.
그의 비전이 넘치는 메시지에 감동을 받은 목사들이
당장에 그 다음날로 유명한 <침례교 선교회>를 만들었습니다.
7년동안 아무도 그를 이해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배척했지만,
그가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현실에 절망치 않고 끈질기게 도전하였을 때
18세기의 타락한 영국을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각지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였습니다.
◑2. 위대한 시도
▲1793년 캐리가 32세 되던 해, 그는 인도영혼들을 향한 상한 목자의 심정을
안고
인도 선교사로 가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그 길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캐리의 말을 듣고 딱 한마디 했습니다. ‘미친놈’
둘째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의 아내도 촌사람 곧 촌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공주병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는 아기랑 캐리랑 아기자기한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녀는 캐리에게 ‘여보, 인도는 절대로 안돼요, 제발 우리 아기들도 좀 생각해 주세요...엉엉엉’
여자가 눈물을 흘릴 때, 갈대와 같은 남자의 마음은 얼마나 흔들리기가 쉽습니까?
그러나 캐리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했기 때문에 이제 돌이킬 수가 없소.’
캐리는 사랑하는 가족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셋째는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하비레인 교회의 성도들은 캐리와 같은 훌륭한 목회자를 잃는다는 생각으로
교회의 장래를 위해 절대로 목사님을 보내지 않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간절히 기도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캐리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와 처제,
그리고 토마스라는 선교 동역자와 함께 인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이 인도 땅에 도착했을 때, 인도는 선교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힌두 (젊은) 과부들은 사티(Sati)라는 제도에 따라 남편이 죽으면 함께 불에 타야했고,
갠지스 강가에선 'Gunga mai kai jai (갠지스강의 여신이여 영광을 받으소서)'
외치며
어린아이들을 악어가 득실한 강에 던지는, 그런 미신이 가득한 나라였습니다.
또, 당시 인도는 동인도 회사의 점령아래 있었고, 선교를 절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캐리는 추방을 면하기 위해 내륙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말라리아가 창궐한 곳이었습니다.
아내 도로시와 큰아이 2명은 이질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한 아들을 잃게 되었고, 아내는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열대기후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도 고난이 되었습니다.
캐리는 멋지게 선교를 하려던 이상적인 꿈이, 산산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캐리는 그의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시며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내가 이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나의 모든 근심을 내어 맡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설사 이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나에게 이 고귀한 사명이 맡겨진 사실만으로도 기뻐하고 또 기뻐하겠습니다.’
▲캐리는 자비량 선교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본국의 선교회를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인디고 공장의 감독으로 취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캐리는 충분한 선교비를 벌면서 선교의 기초가 되는 인도어 정복에
온힘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1년 후부터 그의 위대한 시도가 구체화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캐리는 성경번역과 더불어 말씀을 전파하고 또 여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벵갈에서 7년간 땀 흘렸지만, 단 한명의 인도인 개종자가 없었습니다.
큰 아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800년, 19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동인도 회사의 추방령으로
캐리는 선교기지를 덴마크 영내인 세람포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캐리가 인도에서 흘린 모든 눈물과 땀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쉬나 팔이라는 첫 번째 개종자가 탄생했습니다.
그가 카스트제도와 우상숭배를 거부하자
2천명의 군중이 그를 재판장으로 끌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변화의 역사가 줄기차게 일어나
그 후 18년간 600명이 세례를 받고 수 천 명이 예배에 참석하는
승리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세람포르 역사가 흥왕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합심동역에 있었습니다.
캐리와 워드와 마쉬만, 그들은 세람포르의 삼총사라 불리웠는데,
23년간 팀을 이루어 서로간의 긴밀한 사랑의 교제로 힘을 얻으며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대형화재로 인해 수년간 작업하여 완역한 성경원고와
두 권의 문법책, 다국어 사전들이 소실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캐리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총사는 팀웍을 새로이 갖추고 다시 도전했습니다.
캐리는 편지에 '잃어버린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두 번 가는 것이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처음보다 훨씬 더 충실한 결과를 낳아 더 유익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다시 시작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낙망치 않고 도전하여 결국 수많은 인도방언과 중국어 미얀마어
말레이어등 44개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이처럼 그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함으로 인도선교의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인도땅에 묻혔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그의 그칠줄 모르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18세기 침체된 영국을 선교사를 파송하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캐리는 파이오니어/ 선구자 역할을 감당했고,
캐리를 필두로.. 그를 따르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자원해서,
18세기 개신교 세계선교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가 문을 연 것입니다.)
그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세계선교의 불을 당긴 위대한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의 믿음으로 근대선교역사가 시작되었고
19세기 선교황금시대 The Great Century를 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인도의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 근대 선교의 문을 활짝 연 근대선교의 아버지였습니다.
▲과거 저(필자)는 잘나가던 집안에서 압구정동을 배경으로 하여
신선한 오렌지후보로 자라났습니다.
저는 사장님이신 아버지를 간절히 의지했습니다.
저는 안일하게 살아도 아버지가 마련해 놓으신 양재동 빌라에서
아내와 아기와 아기자기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힘들게 위대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왕자 병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러나 freshman시절 아버지 사업이 폭싹 망했습니다. 양재동 빌라도 날라 갔습니다.
깊은 밤, 저는 집 앞 놀이터에서 구겨진 내 인생을 한탄하며
줄담배와 소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저는 위대한 일을 시도할 엄두도 안 났습니다.
또한 42시간, 수면기록을 갖고 있는 무력하고, 갈대와 같이 연약한 내가
무슨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것 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을 때, 제게도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만방에 전하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타올랐습니다.
저는 주위에 있는 학우들과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쓸모없던 저를 변화시키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제가 캐리와 비교해서 그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캐리는 23살에 세계선교에 눈을 떴지만
저는 20살에 이미 눈을 뜨고 기도를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캐리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믿음의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캐리와 같이 끈질긴 도전정신으로 성서한국 세계선교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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